연구원 칼럼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11. 가도의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원정근 연구위원

2021.12.06 | 조회 727

11. 가도賈島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이다. 시인이 구름이 뒤덮인 깊은 산속에 사는 은자를 만나러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난 뒤에 쓴 시다.

가도賈島(779-843)는 중당 시기의 시인이다. 자는 낭선浪仙이고, 하북성 범양范陽(지금의 탁주涿州) 사람이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여 출가해 중이 되었다. 법명은 무본無本이었다. 뒤에 한유의 권유로 환속하였다. 당나라 문종文宗 때에 장강현長江縣의 주부主簿라는 벼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도를 가장강賈長江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도는 퇴고推敲라는 말로 유명해진 시인이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 캐러 가셨어요.

다만 이 산 속에 계시련만,

구름 짙어 간 곳을 모르겠네요.”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

언사채약거言師採藥去.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

 

시인은 이 시에서 매우 쉽고 간결한 언어를 구사하였다. 하지만 깊은 의미를 단순하지만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동자와의 문답형식으로 지은 시다. 이 시의 독특함은 물음 속에 대답이 있고, 대답 속에 물음이 있다는 점이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었다고 하였으니, 시인이 먼저 동자에게 은자가 어디에 가셨는가를 물었을 것이다. 동자가 스승께서 약을 캐러 가셨다고 답하였으니, 시인이 또 동자에게 은자가 약을 캐러 간 곳은 어디냐고 물었을 것이다. 이 산속 어딘가에 계실 것이라는 동자의 답변 속에는 또 은자가 약을 캐는 곳이 구체적으로 이 산속 어디인가를 묻는 시인의 질문이 이미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찾아 왔건만 은자를 만나지 못했으니, 시인은 분명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산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니 천만다행이다. 구름이 너무 짙어 은자가 약을 캐러 간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으니 또다시 절망이다. 희망과 실망이 번갈아 오간다.

은자가 살고 있는 곳에 소나무와 구름이 있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이다. 추위에 잘 견디는 추운 계절의 세 친구라는 뜻이다. 우뚝 솟은 소나무와 구름이 피어오르는 깊은 산은 세속을 초탈한 은자의 고매한 품격을 대변한다. 가도의 이 시는 구도자求道者가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구름이 짙게 깔린 산에서 은자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움을 암시한다. 세속의 탐욕과 편견에 찌들어 사는 인간이 산중의 은자隱者를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해타산에 얽매여 사는 인간이 진정한 삶의 진리를 찾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중국을 포함한 한국의 수많은 묵객墨客들이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라는 그림으로 가도의 시의詩意를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취옹醉翁 김명국金明國,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수은睡隱장득만張得萬(1684-1764), 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 등이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를 남기고 있다.

길손으로 병주에 머문 지 십 년,

돌아가고픈 마음에 밤낮으로 장안을 그리워했지.

뜻밖에 다시 상건수를 건너려다,

고개 돌려 병주를 바라보니 고향이로세.

객사병주이십상客舍幷州已十霜,

귀심일야억함양歸心日夜憶咸陽.

무단경도상건수無端更渡桑乾水,

각망병주시고향却望幷州是故鄕.

 

이 시의 제목은 도상건渡桑乾이다. 상건을 건너며 지은 시다. 상건은 산서성 남쪽을 흘러가서 동으로 흐르다가 하북성 노구하蘆溝河로 흘러든다. 고향을 그리는 향수와 타향살이의 비애를 읊은 시다. 시인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에 있는 병주에서 십 년이란 세월 동안 관리로 근무하였다. 밤낮으로 고향인 지금의 장안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병주의 객지생활을 정리하고 막상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니, 병주가 도리어 고향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수 김상진이 고향이 좋아에서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노래하였다. 타향보다는 고향이 더 좋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도의 경우도 김상진의 노래와 마찬가지다.

 

몇 리 밖 차가운 물소리 들리고,

산마을 집에는 이웃이 드무네.

괴이한 새 광활한 들판에서 우니,

지는 해에 나그네 두렵기만 하네.

초승달이 해가 지기도 전에 떠오르고,

변방의 봉화는 진 땅을 지난 적 없네.

쓸쓸한 뽕나무 밖,

연기가 점점 친근해지네.

수리문한수數里聞寒水,

산가소사린山家少四鄰.

괴금제광야怪禽啼曠野,

낙일공행인落日恐行人.

초월미종석初月未終夕,

변봉불과진邊烽不過秦.

소조상자외蕭條桑柘外,

연화점상친煙火漸相親.

 

이 시의 제목은 모과산촌暮過山村이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산마을을 지나노라니, 몇 리 밖에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물이 차갑다는 건 실제 물이 차갑다기보다는 시인의 마음이 그렇다는 뜻이다. 사방에는 인적조차 드물다. 황량한 들판에는 괴이한 새가 우니, 어둑어둑한 산길을 가는 나그네의 마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기만 하다. 초승달이 해가 지기도 전에 산마루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변방의 봉화불이 이 진 땅에는 피어오른 적이 없다. 산마을은 지금까지 전란의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진 땅은 지금의 섬서성 일대를 가리킨다. 스산한 산마을을 지나고 있지만, 산마을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니 마음이 점차 따스해온다.

한적하게 사니 이웃이 드물고,

풀길이 황폐한 뜰에 이어지네.

새는 연못가 나무에 깃들고,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다리를 지나니 들의 풍경이 달라지고,

구름발이 움직이니 돌도 따라 움직이는 듯.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리니,

은거하자던 약속 어기지 마시게.

한거소린병閑居少隣竝,

초경입황원草徑入荒園.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과교분야색過橋分野色,

이석동운근移石動雲根.

잠거환래차暫去還來此,

유기불부언幽期不負言.

 

이 시의 제목은 제이응유거題李凝幽居이다. 이응이 은거하던 곳을 찾아가 지은 시다. 인적이 드문 곳에 한갓지게 사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응은 은자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우거진 잡풀이 황폐한 뜰에까지 이어져 있다. 새는 못가의 나무에서 잠자고, 중은 달빛 아래서 문을 두드린다. 다리를 지나며 바라보는 들판의 풍경이 사람을 매혹시키고, 구름발이 흩날리니 산의 돌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시인은 이응에게 비록 잠시 길을 떠나지만 머지않아서 다시 돌아올 것이니, 함께 은거하자던 약속을 어기지 말자고 한다.

퇴고라는 말이 있다. ‘퇴고는 시와 글을 여러 번 다듬어 고친다는 뜻이다. ‘퇴고라는 말은 이 시의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에서 유래한다. 가도가 시를 쓰다 자로 해야 할지 자로 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던 차에 당시의 경조윤 한유를 만나 그의 권유에 따라 밀 를 두드릴 로 바꾸었다.

자가 자보다 더 적절한 시적 표현일까? 달빛이 밝고 사방이 고요하다. 승려가 문을 열고 무작정 밀고 들어가는 자를 쓰는 것보다는 자를 써서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온 사방이 오히려 더 적막하다는 시적 효과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 두 구절 3년 만에 얻고,

한 번 읊조리니 두 줄기 눈물 주르륵.

지음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고향 산속에 돌아가 은거하리라.

이구삼년득二句三年得,
일음쌍루류一吟雙淚流.

지음여불상知音如不賞,

귀와고산추歸臥故山秋.

 

이 시의 제목은 제시후題詩後이다. 시를 짓고 난 뒤의 심정을 읊조린 시다. 시 두 구절을 3년 만에 가까스로 얻었다니, 가도는 참으로 괴팍하고 유별난 시인이었다. 만약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고향집에 돌아가 숨어 살면서 남은 삶을 보내겠다고 선언한다. 시인이 시 한 구절을 얻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심했는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인생의 진리를 찾는 것도 이런 구도자의 정신이 필요치 않겠는가?

십 년이나 한 자루 칼을 갈아

시퍼런 칼날을 쓴 적이 없네.

오늘 그대에게 꺼내어 보여주노니,

누구에게 공평치 못한 일이 있나?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상인미증시霜刃未曾試.

금일파시군今日把示君,

수유불평사誰有不平事.

 

이 시의 제목은 검객劍客이다. 한 자루의 칼을 10년 동안이나 숫돌에 정성껏 갈고 또 갈았지만, 한 번도 시퍼런 칼을 사용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정의의 칼을 휘둘러 공평치 못한 세상에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며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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