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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가섭원부여기 : 3세 대소
3세 대소 재위 28년
乙卯元年이라. 春正月에 王이 遣使高句麗하야 請交質子한대
高句麗烈帝가 以太子都切로 爲質이러시니 都切이 不行하니
王이 恚之하야 冬十月에 以兵五萬으로 徃侵卒本城이라가
大雪로 多凍死하야 乃退하니라.
癸酉十九年이라 王이 侵攻高句麗하야
至鶴盤嶺下하야 遇伏兵하야 大敗하니라.
대소왕의 재위 원년은 을묘(환기 7192, 신시개천 3892, 단기 2328, BCE 6, 고구려 2세 유리명열제 14)년이다. 봄 정월에 왕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왕자를 볼모로 교환하자고 청하였다. 고구려 열제烈帝(2세 유리명열제)께서 태자 도절都切을 볼모로 삼으셨는데 도절이 가지 않으므로 왕이 노하였다. 겨울 10월에, 왕이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졸본성을 쳐들어갔으나 큰 눈이 와서 얼어 죽는 군사가 많아 물러났다.
재위 19년 계유(단기 2346, CE 13)년에 왕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학반령鶴盤嶺 밑에 이르러 복병을 만나 크게 패하였다.
壬午二十八年이라. 二月에 高句麗가 擧國來侵한대
王이 自率衆出戰이라가 遇泥淖하니 王御馬陷하야 不得出이라
高句麗上將怪由가 直前殺之한대
我軍이 猶不屈하야 圍數重이러니 適에 大霧七日하야
高句麗烈帝가 潛師夜脫하사 從間道而遁去하시니라.
夏四月에王弟가 與從者數百人으로 奔至鴨綠谷하야
見海頭王出獵하고 遂殺之하야 而取其民하며
走保曷思水濱하야 立國稱王하니 是爲曷思라
재위 28년 임오(단기 2355, CE 22, 고구려 대무신열제 5)년 2월에 고구려가 국력을 다하여 쳐들어왔다. 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다가 왕이 탄 말이 진구렁에 빠져서 나올 수가 없었다. 이때 고구려 상장 괴유怪由가 곧장 나아가 왕을 죽였다.
부여군은 오히려 굴복하지 않고 고구려군을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마침 짙은 안개가 7일 동안 계속되자 고구려 열제께서 밤을 틈타 군사를 비밀리에 움직여 포위망을 벗어나 샛길로 달아나셨다. 여름 4월, 왕의 아우가 추종자 수백 명과 더불어 길을 떠나 압록곡鴨綠谷에 이르렀다. 마침 사냥 나온 해두국海頭國 왕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 백성을 취하여 갈사수曷思水 가로 달아나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라 일컬었다. 이 나라가 바로 갈사국(갈사부여)이다.
至太祖武烈帝隆武十六年八月하야
都頭王이 見高句麗日强하고 遂擧國自降하니
凡三世歷四十七年而國絶이오.
命都頭爲于台하사 賜第宅하시고
以琿春으로 爲食邑하사 仍封爲東夫餘侯하시니라.
고구려 6세 태조무열제太祖武烈帝 융무隆武 16(단기 2401, CE 68)년 8월에 이르러 도두都頭왕(갈사국 3세)이 고구려가 날로 강성해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니, 시조로부터 3세, 역년 47년 만에 나라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고구려 열제께서 도두를 우태于台로 삼아 살 집을 주고, 혼춘琿春을 식읍食邑으로 주어 동부여후東夫餘侯로 봉하셨다.
秋七月에 王從弟가 謂國人曰
先王이 身弑國亡하야 人民이 無所依하고 曷思는 偏安하야
不能自國하고 吾亦才智魯下하야 無望興復하니
寧降以圖存이라 하고 以故都人民萬餘口로 投高句麗한대
高句麗가 封爲王하사 安置椽那部하시고
以其背에 有絡文하야 賜姓絡氏러시니
後에 稍自立하야 自開原西北으로 徙到白狼谷하고
又近燕之地러니 至文咨烈帝明治甲戌하야
以其國으로 折入于高句麗하니 椽那部絡氏가 遂不祀하니라.
이 해 가을 7월에 대소왕의 종제從弟가 백성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리 선왕先王께서 시해를 당하시고 나라는 망하여 백성이 의지할 곳이 없고, 갈사국은 한쪽에 치우쳐 있어 안락하기는 하나 스스로 나라를 이루기 어렵도다. 나 또한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킬 가망이 없으니 차라리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자”라고 하였다.
드디어 옛 도읍의 백성 1만여 명과 함께 고구려에 투항하니, 고구려에서는 그를 왕으로 봉하여 연나부椽那部에 살게 하였다. 또 그의 등에 띠 같은 무늬가 있어 낙씨絡氏 성을 내려 주었다.
그 후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開原 서북에서 백랑산白狼山 계곡으로 옮겨갔는데 연燕나라와 가까운 곳이었다. 고구려 21세 문자열제文咨烈帝 명치明治 갑술(환기 7691, 신시개천 4391, 단기 2827, CE 494)년에 이르러 나라가 고구려에 굴복하여 들어가니 연나부의 낙씨는 마침내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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