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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태백일사 : 대진국본기 6 대진의 통치 영역과 신교의 생활화
대진의 통치 영역과 신교의 생활화
南定新羅하사 置泥勿·鐵圓·沙弗·岩淵等七州하시고
北畧鹽海·羅珊·曷思·藻那·錫赫과 及南北虞婁하사 置諸部하시니
長白之東曰安邊이오 鴨江之南曰安遠이오 牧丹之東曰鐵利오
黑水之上曰懷遠이오 灤河之東曰長嶺이오 長嶺之東曰東平이오
虞婁는 在北大蓋馬之南北하니 地廣이 九千里라 境宇大開하야 文治熙洽하니
上自國都로 下至州縣히 皆有學하야 九誓五戒를 朝夕誦習하며 春秋考績하야
衆議薦貢하니 人旣畜力하고 家盡待用이라.
선황제께서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여 이물泥勿, 철원鐵圓, 사불沙弗, 암연岩淵 등 일곱 주州를 설치하고, 북쪽으로 염해鹽海, 나산羅珊, 갈사曷思, 조나藻那, 석혁錫赫과 남·북 우루虞婁를 공략하여 여러 부部를 설치하셨다.
장백(백두산) 동쪽을 안변安邊이라 하고, 압록강 남쪽을 안원安遠이라 하였다. 목단 동쪽을 철리鐵利라 하고, 흑수(흑룡강) 위를 회원懷遠이라 하고, 난하 동쪽을 장령長嶺, 장령 동쪽을 동평東平이라 하였다. 우루虞婁는 북대개마 남북에 자리잡고 있었다.
땅 넓이는 9천 리로 영토가 크게 개척되고 문치文治를 잘 베풀어서, 위로 수도에서 아래로 주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교가 있고 구서오계九誓五戒를 아침저녁으로 외워 익혔다. 봄가을로 관리의 공적을 조사하고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어진 인재를 천거하였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힘을 차차 쌓아 기르면서 집에서 인재로 쓰이기를 기다렸다.
自是로 國勢富强하고 內外安悅하야 自無盜窃姦謀之端이오 唐倭新羅와
及契丹이 莫不畏服하야 天下萬邦이 皆以聖人興治之海東盛國으로 欽頌之라.
更五代하야 耶律이 雖頻数加兵이나 終不能服也라 後에 經莊宗和皇帝彛震과
順宗安皇帝虔晃과 明宗景皇帝玄錫하고 至哀帝諲譔하야 爲契丹所滅하니
自世祖로 傳十五世하야 共二百五十九年이러라」 하니라.
이로부터 나라가 부강해지고 안팎이 편안하고 기쁨이 넘쳐 도둑질하거나 간사하게 모의하는 폐단이 저절로 사라졌다. 당과 왜, 신라, 거란이 모두 두려워하여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 만방에서 모두 성인이 다스리는 해동성국이라 칭송하였다.
5대(당나라가 망한 후 일어났지만 단명으로 끝난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등 다섯 나라)의 흥망 시기(단기 3240, 907~단기 3293, 960)에 야율耶律5)이 비록 여러 번 싸움을 걸어 왔으나 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 뒤에 장종 화황제莊宗和皇帝 이진彛震(12세), 순종 안황제順宗安皇帝 건황虔晃(13세), 명종 경황제明宗景皇帝 현석玄錫(14세)을 지나 애제哀帝 인선諲譔(15세)에 이르러 거란에게 멸망당하였다(신시개천 4823, 단기 3259, 926). 세조世祖로부터 15세를 전하여 259년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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