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한국 고유의 선仙 사상과 증산도의 태일선太一仙

황경선(상생문화연구소)

2023.03.10 | 조회 4652

2021년가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한국 고유의 선사상과
증산도의 태일선太一仙

 

황경선(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목차

1.

2. 한국 선의 특질에 대한 선행 연구

3. 인즉선과 하느님 신앙 및 성통공완

4. 참동학의 선 태일太一

1) 내내 한 일이 동학

2) 참동학 증산도의 선 사상

3) 태일이 되어 태일을 이루다

5.

 

 

국문초록

이글은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性通功完, 인즉선人卽仙, 보다 엄밀하게는 이 셋의 조화를 한국 선의 요체로서 파악한다. 이때 하느님은 인격적 실재로서 삼신, 지기 등 비인격적 우주 생명과 일체를 이룬다. 성통공완은 내안에 내주內住한 신성을 밝게 틔워 천명으로 주어진 공업[홍익인간]을 땅 위에 실현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인즉선은 선이란 인간에게 이미 본성으로서 주어진 것이자 이윽고 실현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국 선의 고유함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하느님 신앙 가운데 천지의 신령한 기운과 하나 되어 본성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사역함으로써 내게 씨앗으로 주어진 선을 열매 맺는다.’ 우리는 이러한 선이 한국 고대의 사상과 종교의 중핵이었으며 근대에 이르러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수운의 동학도 그것을 재현하려는 시도였음을 살펴본다. 그리고 참동학인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한국 선의 우주적, 역사적 완결이 제시됨을 밝히고자 한다.

주요술어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性通功完, 인즉선人卽仙, 동학, 개벽.

 

 

1.

 

선풍仙風은 멀리 주나라, 나라 때도 들을 수 없었고 가까이로는 송나라, 나라에서도 아직 찾아보기 어렵구나.” 한국의 선은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전통이라는 고려 시대 문인文人 이규보李奎報의 말이다.

이규보의 말대로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선과 중국의 도교 사이에는 결코 혼동될 수 없는 차이가 놓여 있다. 그럼에도 문화의 접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외래 도교와 한국 선의 혼융은 얼마만큼, 또 어디에, 어떻게 한국 선의 고유함이 있는지 명쾌하게 구별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물론 양자 혼융의 성격은 당연히 한쪽으로의 완전한 환원이 아니라 한국 선의 외래 도교의 수용이거나 후자의 토착화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히 규정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 흡수와 토착화에서 어느 것이 주체를 이루는가, 달리 말해 한국의 전통적 선을 기반으로 외래 도교가 해석되고 받아들여졌는가, 외래 도교를 중심으로 전래의 선풍이 가미되었는가? 예컨대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기 단군이 제천祭天한 마리산에서 도교의 제례인 초제醮祭가 거행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 한국 고유 제천의식의 유습遺習인가 아니면 중국 도교의 수입과 영향 아래 이뤄진 도교 의식儀式인가?

이런 점이 정리되기 위해 한국 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먼저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선의 연원淵源 문제를 떠나 명칭 사용의 모호함이 제거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한국 선 혹은 한국 도교에 중국 도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면 그 호칭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고유의 선적 전통과 문화에 대해 도교라는 개념을 피하고 혹은 선 사상혹은 선도仙道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도교라는 중국식 개념체계 하에서 한국도교를 인식하고, 그래서 한국도교 역시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라고 한다면 “‘도교자체 개념에서 파생되는 순환논법일 뿐이라는 주장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비판은 한국도교보다는 한국선도로 개념화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 선적 전통에 대한 일치된 호명이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한국 선의 특질이나 고유함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너희 무리는 오로지 하늘이 내려 주신 법을 지켜 이 통하고 공이 이루어지면[性通功完] 하늘에 들 것이다[朝天].” 이 글에서는 단군왕검의 가르침에 분명하게 선포된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性通功完에서 한국 선의 고유함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성통공완은 문자적 의미로 보면 본성을 틔우고[性通] 공업을 완수[功完]한다는 말이다. 이때 공업은 하느님의 뜻이나 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드는 조천朝天은 설명이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하느님 신앙의 완성으로써 주어지는 선의 복락이라고 새긴다.

이에 대해서는 기존 연구에서도 주목한 바 있다. 특히 차주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유일신 신앙과 성통공완으로써 한국 선을 파악했다. 조천에 대해서는 신의 고장으로 복귀며 그것은 인간의 신화神化 또는 선화仙化라고 이해했다. 그 밖에도 한국 선의 정체성을 주목하는 여러 선행 연구들이, 비록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한국 선의 고유함은 하느님 또는 하늘 신앙과 성통공완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지시 또는 함의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이의 타당성은 이후 논의에서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고려 말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라고 밝혔다. 제천의 의의는 인간이 제 본질이나 참됨에 이르는 인간 완성에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른 선도 계열의 기록들에 근거할 때, 인간이 온전히 실현해야 할 본질은 선을 말한다. 이 경우 선은 인간의 참됨으로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자 동시에 우리가 현실에서 아직 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그런 의미로 인즉선人卽仙이다. 한국의 선은 人間 앞에 開明本來의 길이며 태고적 인류가 하늘에서 명받은 근원적인 인간 가능성이다. 이 규정을 적용하면 행촌 이암은 제천으로서 대표되는 하느님 신앙이 선의 바탕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삶의 삶다움에 대한 물음이 하늘을 반향反響하여 확인되며 그러한 경험내용이 제천의례로 나타난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바꾸어 전통적으로 한민족에게 있어 신선의 추구는 인간이 완전함에 이르고 하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하느님 신앙에 대한 염원에서 형성된 것이며 “[조천은] 한국 선도 수행의 최종 목표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다. 이에 따라 우리의 주제 역시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에서 인간 완성으로서의 인즉선에 이른다.’로 구체화된다.

선에 관한 규정은 생각만큼 확고하지 않다. 선에 대한 이론적 체계나 이론의 축적이 다른 주제에 비해 확고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선이 비의적秘儀的 측면을 가지고 있고 또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구전전수口傳傳授에 의지해 계승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선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는 잠정적이나마 선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한다. 먼저 선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을 알아보자.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신선神仙사람이 산 위에 있는 모양[人在山上皃]”이라고 풀이하였다. 은 한나라 이전에는 으로 썼다고 한다. ‘은 춤추는 옷소매가 바람에 펄럭인다는 뜻이다. 청나라의 단옥재段玉裁설문해자의 주석에서 소매를 펄럭여 춤추며 날아오르는 것[舞袖飛揚]을 뜻한다고 해설한다. 설문해자에서 오래 살다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張生僊居 从人嚮].”라고 기술돼 있다. 또한 석명釋名에서는 선늙어서 죽지 않는 것[老而不死者曰仙]”이라고 밝힌다.

신선에 대한 다음의 정의들도 그와 같은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선은 도가에서 불로불사의 술을 얻어서 변화자재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선인仙人과 같은 말이다.”신선사상이란 인간이, 스스로가 개발한 神仙方術에 의해서 不死의 생명을 향유하는 동시에, 과 같은 전능의 권능을 보유하여 절대적 자유의 경지에 優遊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위 규정들을 횡단매개하는 공통적인 의미는 이렇게 모아질 것이다. 선은 인간이 수행을 통해 육신의 유한성을 비롯한 일체의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으로서 주어진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하여 신적 경지에 이르러 절대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아울러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실을 미리 적시해둔다. 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산의 의미나 산악숭배는 하느님 신앙을 배경으로 해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서 천신天神이 내리고 오르며,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해되는 터라 이미 선과 하늘의 관련을 말하고 있다. 산악신앙이 한민족의 고유 신앙 속에 끈질기게 작용해 온 이유도 여기에 놓여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 우리는 선행 연구의 주장들을 종합하여 한국 선의 특질을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 인즉선으로 보는 우리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얻어 낼 것이다. 이어서 한국 고대 이래 선 사상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다룬다. 이때 단군세기檀君世紀, 규원사화揆園史話등 선도仙道 문헌들이 주요 전거로 활용된다. 이 점이 이 글의 방법론적 특징이 되겠다. 그리고 이런 선 사상이 근대 동학에서 재현되며 참동학으로서의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그 실체가 확연해진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할 것이다.

 

2. 한국 선의 특질에 대한 선행 연구

 

선행 연구 가운데 차주환의 주장은 적어도 이 글에게는 선구적이다. “韓國 神仙思想核心唯一神 信仰性通功完하여 天界로 올라가 神鄕으로 돌아가는 데 두어져 있다.” 그는 花郞道神仙思想에서도 한민족 신선사상의 근원을 단군설화로 여기면서, 천신에 대한 외경과 순성純誠한 노력을 통해 신향神鄕의 일원一員이 되라는 단군의 가르침이 한민족 신선사상의 핵심사상임을 확인한다. 그는 한국의 신선사상 고찰에서 극히 중요한 것은 공업이 완수되기에 하늘로 올라가 신향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영생을 누리는, 곧 신선이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그는 인즉선에 이르는 길은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성에 통달하여 순전히 하늘의 법도에 따른 부선멸악扶善滅惡의 행위를 실천하는성통공완에 있음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화랑도는 조의皂衣, 참전參佺, 선비와 더불어 그 선을 좇는 선도仙徒이다.

차주환의 또 다른 연구인 韓國神仙思想始原은 신선사상을 공간으로 하여 성립된 도교란 자력적이건 타력적이건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방법이 그 전부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도교가 발생하게 된 것은 순의 상제 신봉과 산악제천이 변천을 거치면서 신선방술이 흥기한 이후 한 무제에 이르러 상제 신봉과의 연결 없이 다만 불로장생을 희구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선 사상과 도교의 구별이 상제 신봉, 즉 하느님 신앙 여부와 유관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글과 차주환의 근접성은 그의 경우 선도 문헌인 규원사화, 단군세기등을 일정하게 수용한다는 점에서 기인할 것이다. 예컨대 조선 숙종 때의 인물로 추정되는 북애자가 지은 규원사화에서는 세상에서는 중국 문헌에 의지하여 선교仙敎가 황제, 노자에서 뻗어 나왔다고 여기지만, 실은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푸는 신교神敎가 신시시대부터 있어, 거기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는 선의 연원과 동시에 선과 하느님 신앙의 관련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글과 차주환의 연구는 모두 이러한 주장의 기본적 수용 위에서 성립된다고 본다.

차주환과 함께 한국 고유 도교나 선도의 정체성 정립에 선도적 역할을 한 도광순은 그의 논문 風流道神仙思想에서 도교의 중추사상이기도 한 신선사상은 한국의 고유한 원시사상인 풍류도의 근본사상을 이룬다고 밝힌다. 풍류도는 통일 신라 시대 말 최치원崔致遠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나라의 고유한 도라고 밝혔듯, “민족 고유의 주체적 종교, 한국 고대종교의 결정체로 상정된다. 그는 신선사상이 풍류도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한국 선의 자생설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거들이 활용된다. ‘단군신화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신선사상이다.’ ‘중국 대륙에서 신선설이 처음 등장한 곳이 한반도에 인접한 연나라, 제나라이다.’ ‘적어도 중국에서 선진先秦시대까지 신선이 있는 장소로 언급하는 해중海中 또는 발해의 삼신산은 여러 기록으로 보아 한반도(백두산을 가리키는 태백산)에 위치함이 분명하다.’ ‘중국에서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서 신선 사상이 방선도方僊道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이 방선도는 귀신의 일, 즉 무와 관련이 깊다. 그런데 무는 선과 함께 동북아시아 동이족에 의해 발달된 문화이다.’

그는 선을 인간의 신성화로서 말한다. 그리고 이는 인간이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는 바탕이자 자신의 본성으로 내주한 신성을 자각하여 초인간적인 능력의 자기실현을 신앙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신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다. 신선이 되어 노니는 것은 우주적 생명의 직관천지신명과의 영적인 융화·합일, 즉 신인합일이나 천인합일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선은 인간이 품부받은 아레테를 온전히 발현하는 일이며, 그것은 동시에 이미 신적인 경계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물론 본래적 인간은 이미 선인仙人이며 선인은 또한 신인神人이란[人卽仙 仙卽神] 얘기이다.

이와 더불어 경천위민敬天爲民, 즉 신과 인간을 공경하고 봉사하는 한민족의 근원신앙이 선의 모태가 된다고 본다. 여기서 한국 전통 신앙의 뿌리는 하느님(, , ) 신앙이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본체는 ᄇᆞᆰ이며, ‘ᄇᆞᆰ은 천, , 그리고 광명을 의미한다. ‘풍류도 ᄇᆞᆰ의 뜻이다. 그는 신라, 고려에서 국가 행사로서 치러진 팔관회八關會팔관ᄇᆞᆰᄋᆞᆫ의 음사音寫라는 점과 고려사의 다른 기록들을 들어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신라의 선풍을 이은 팔관회는 우리나라에 고유한 도인 풍류도의 종교적 제전이고 하느님에 대한 제사 의식이며, 이는 동시에 풍류도의 신앙적 경지가 천인합일적 세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요컨대 신선사상은 하느님 신앙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ᄇᆞᆰ사상으로 전개되어 나온 우리 민족의 기본적 의식구조 자체로서 자생, 사상적 체계형성을 이미 이루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송항룡 역시 같은 견해를 나타낸다. 천사상, ᄇᆞᆰ사상 위에 성립된 도교神道 내지 선도仙道는 고유사상으로서 韓國道敎思想源流 내지는 道敎思想에 대한 受容의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설명한다.

이에 더해 생명의 빛이 유래하는 태양을 천상계의 주신이며 완전한 인간 생명의 가능근거라고 파악하면서, 신선사상의 바탕인 ᄇᆞᆰ 사상은 천과 인간의 동일성구조의 철저한 바탕 위에서 전개된다고 밝힌다. 이런 관점은 좀 더 확장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태양이 주신이라면 태양의 빛[日精]은 우주 한 생명으로서의 신성神性 혹은 신령한 조화造化의 기운에 유비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천과 인간의 동일성은 빛을 중심으로 하는 천신天神과 천지의 신성, 인간 셋 사이의 일치임을 함의한다. 그리고 이 일치는 더 이상이 허용되지 않을 큰 하나[太一]일 터이다.

후속되는 또 다른 연구들을 검토해 보자. 조선 유학에 계승된 단군 신화의 하늘 관념신선사상탐색 또한 기본적으로 한국 선이 하늘 관념을 바탕으로 신인합일, 천인합일의 신선사상으로 전개됐다고 밝힌다. 이때 하늘은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격적 초월신으로서의 하늘천인무간天人無間으로 표현되는 하늘이 그것이다. 인간과 하나를 이루는 후자의 하늘은 적어도 비인격적이며 비실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실체적으로 있는 둘의 사이 없는합일이란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문은 조선 유학이 중국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하늘관념과 이로부터 비롯된 신선사상 때문으로 본다. 예컨대 수양론은 그 지향점을 하늘에 두고 있기에 양자에서 그것은 서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중국 성리학에서 수행은 천리天理를 내면화하려는 이지적理智的 경향을 보이는 반면 조선의 유학은 경에 머물러[居敬] 내 안의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는[對越上帝] 명상적, 종교적 방식의 수양론을 따른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선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질로서 인즉선을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영성에서 공통적인 것은 신인神人[]을 향한 소망이며, 단군이 신인으로 등장하는 단군신화는 한국인의 본성에 속하는 이 열망과 과정에 대한 서사敍事이다.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웅녀의 기도는 환웅과 그의 족속들과 같이 신시神市에서 살 수 있는 사람, 즉 신인 또는 선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선인(仙人)단군을 통한 홍익인간 함의 소고도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천손족天孫族이라 여긴 고대 한민족은 인간이면서 하늘을 경외하며 신인, 선인이 되고자 추구했다고 한다. 이능화를 인용하면서, “단군 숭앙의 전통에는 신앙적 측면 이외에 신선사상에 기반한 수행의 선맥이 있어왔다.”라고 하며, 한국 고대의 선인 또는 신선은 하늘과 인간의 중간자이고 마침내 하늘과 합일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 하느님 신앙과 결속된 한국의 선에서 유유자적, 현세이탈의 신선과는 달리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공업을 구현하는 실천적 인간상을 본다.

한국 도교의 역사와 특성은 한국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교단도교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한국에서 한국 도교의 기원이나 최고신에 대한 인식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한국 도교의 경우 황제나 노자가 아닌 환인, 단군 등 한국 건국신화에서의 최고신적 존재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국 도교는 중국 도교와 구분하기 위해 화랑, 풍류도, 국선, 선랑, 선인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한국 옛 문헌들에 나오는 을 중국 도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의미에 차질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은 중국의 신선과 같이 초속적超俗的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일면 집단윤리와 토착문화에 대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는 성속 통합적 세계관을 지닌 존재이다.

이밖에도 그는 산악숭배, 샤머니즘을 한국 선의 특질로 제시한다. 샤먼을 매개로 한 산악 제천에서는 천계와 지상의 합일, 즉 천인합일관이 표현되어 있고 홍익인간과 자기완성의 이념이 이념이 동시에 추구되고 있다고도 해명한다. 아울러 북두, 본명성本命星, 육정신六丁神 등의 하위신, 특히 북두칠성에 대한 숭배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지는 한국 선의 특징으로 꼽으면서, “이 역시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성립한 한국 원시도교의 기본 성향과 관련이 깊다.”라고 밝힌다. 본래 샤머니즘에서는 천계의 중앙으로서 북두를 숭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이라는 외래적 카테고리를 적용하기 전 산악숭배는 앞서 설명한 이유에서, 또 칠성은 하느님의 별이란 점에서 하느님 신앙이라는 선적 요소를 갖고 지니고 있다. 사기』 「천관서天官書에서는 북두칠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칠성은 천제가 타는 수레로서 하늘의 정중앙을 운행하면서 사방을 직접 통제한다.” 또 일찍이 중국의 제왕문화에는 태산의 정상에 올라 하늘의 상제에게 제를 지내는 봉선封禪 의식이 있었다. 이때 단순히 하늘이 아니라 반드시 북두칠성을 향해 의례를 행하였다. 북두칠성은 뭇 별의 중심으로서 상제의 자리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라 할 것이다.

한국신선사상의 전개와 분파는 우리의 신선사상이 고유하다면 먼저 중국의 신선과 우리의 신선이 어떻게 다른가를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문제 제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신선사상에서의 신선을 산신山神의 개념으로 구체화시키자고 제안한다. 이와 관련 산신 신앙이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교, 불교, 도교에서도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더불어 칠성 신앙을 역시 한국 신선사상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꼽는다. 그러나 이미 밝혔듯, 산악 숭배나 칠성 신앙은 하느님 신앙에 수렴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한국선도의 전개와 신종교의 성립은 근현대에 출현한 신종교에 한국 선의 전통이 반영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선적 요소로서 지고신에 대한 신앙, 수련을 통한 신선 지향과 함께 다음의 사실을 지적한다. 신종교에서는 한국 신선사상은 미륵신앙과의 결합을 통해 유토피아적 개벽사상, 지상선경의 사상을 열어냈다는 점이다. 또 그와 같이 민중적 저항의 에너지가 도교를 중심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미륵신앙을 통해 표출된 현실을 한국에서 도교 교단이 성립할 수 없었던 한 요인으로서 꼽는다. 이 논문은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신종교를 민간신앙이나 미륵신앙에 습합되어 숨겨져 있던 한국 전통 선의 부활로서 자리매김한다.

지금까지 논의에서 한국 선의 기원과 정체성에 대한 기존 연구의 주장들이 대개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 인즉선의 조화로 환원될 수 있음을 시사하거나 확인했다. 또한 이 셋의 일체는 인즉선의 인간, 즉 본성을 틔워 하느님을 숭배하고 신인합일되어 부선멸악, 경천위민의 공업을 완수하는 본래적 인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임이 묵시默示돼 있다. 그리고 이 선적 요체는 이 땅에 신향神鄕의 새 세계 건설(개벽)의 동력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다뤄진 선행 연구들은 제한적이다. 분량 상의 이유로도 그렇지만 가급적 다양한 관점에 비춰진 한국 선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 의도로 필자의 선택이 개입됐다. 내용 또한 순수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다음 장을 미리 내다보며 일정하게 부연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전개됐다. 장의 설명들은 다시 장을 통해 보다 뚜렷이 확증될 것이다.

 

3. 인즉선과 하느님 신앙 및 성통공완

 

이 장에서는 위에서 제기된 한국 선의 요소인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 인즉선의 조화가 한국 고대 신선사상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이를 단군신화, 특히 환단고기안에 수록된 선도 문헌들에 실린 신시 배달과 고조선의 건국에 관한 기사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단군신화가 선의 원형적 기록이며 자생적인 신선사상의 대표적인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삼성기에 따르면, 환웅이 신시神市에 나라를 세우자 웅족과 호족이 신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神戒之氓]’이 되고자 했다. 이들은 신단수神壇樹에 가서 기도했고 이에 환웅은 주술呪術로써 이들의 뼈와 정신을 바꾸었다. 이때 환웅은 먼저 신이 남긴 정해靜解의 방법으로 그렇게 했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매를 주며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도록 했다. 또 다른 기록태백일사』「신시본기에 인용된 조대기에는 다음과 같은 당부가 함께 주어진 것으로 기술돼 있다. “스스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루 구제하면[自由成眞 平等濟物] 사람의 모습을 갖춘 대인大人이 되리라.”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고 계율을 지키며 21일을 지낸 웅족은 인간의 모습을 얻었다. 그 후 웅족 여인들[熊女]이 주문을 외우며 아이 갖기를 빌자 환웅은 그들을 임시로 환족桓族으로 받아들여 혼인케 했으며 자식을 낳으면 환족으로 입적시켰다.

소략한 이 기사에는 우선 인간의 길이 신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이 두드러진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신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신령한 주술로 영육靈肉이 바뀌어야 하며 신이 준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금기와 수행을 통해 스스로 참을 이루는[성통] 동시에 만물을 고루 구제하는공덕의 실천[功完]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게 될 된 인간, 다시 말해 웅녀가 간구하고 환웅이 약속한 신시神市의 사람또는 대인은 누구인가? 한국 고대 사유 공간에서 인간의 전범典範이었던 환인, 환웅, 단군에 관한 기록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환인은 천계天界, “천산天山에 머물며, “아버지의 도父道로써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이 풍요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게 했다. 더불어 사람들이 수행을 하여 지극한 선에 이르러 마음을 밝게 열고 하는 일마다 길상吉祥하게 되며 세상에 쾌락하게 머물게 했다.” 환인 자신도 도를 얻어 장생하며 몸에 병이 없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땅으로 정한 신시에 도읍을 정하고 배달나라를 열었던 환웅은 환인의 명에 따라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였다. 환웅은 또 삼칠(21)일을 택하여 천신에게 제사 지내며 바깥일[外物]을 금기하여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였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했으며, 선약仙藥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 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시고, 천지조화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신명을 부렸다.”

환인, 환웅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나라를 연 단군왕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지극히 신성한 덕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고 현묘한 도를 깨쳤으며,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렸다. 단군왕검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했다. “너희 무리는 오로지 하늘이 내려 주신 법을 지켜 모든 선을 돕고 만 가지 악을 없애 성이 통하고 공이 이루어지면 하늘에 들 것이다.” 그리고 단군왕검 자신 하늘의 마음을 유지해서 공업을 완수하고 신향으로 돌아갔다.”

단군신화 그리고 그 신화의 주인공들인 환인, 환웅, 단군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고대 사유 공간에서 소망한 인간됨은 분명해졌다. 그것은 참나[眞我]로 거듭 나 하느님을 섬기며 장생長生과 조화의 즐거움을 누리는 선의 삶이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선은 곧 한민족의 초기적인 자기정체성이자 근원적 인간관이었다.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의 궁극처를 선[人卽仙]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인즉선의 길인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한국 고대 사상과 종교에서 하느님은 누구인가?

환단고기에 수록된 저술들을 비롯한 선도 사서史書들에 따르면 한국 고대 사유에서 만물과 만사萬事의 근거와 공통된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신이다. 도광순의 표현을 빌면 우주적 생명인 이 신은 삼신三神으로 불린다. “모든 것이 삼신이 지은 바인 것이다.” 특히 인간은 만물 가운데 유독 삼신의 신성을 고르게 품부 받았다. 삼신은 이렇게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조화를 짓는, 신령한 우주 생명이지만, 그 성격은 허하고 공한 한 뿌리의 기운[一氣]이다. “한 기운[一氣]이 하늘이며 공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신이 있어 ”. “이 신은 곧 기요, 기는 곧 허요, 허는 곧 하나다.” 생명의 본체인 일기는 안으로 삼신이 있으며, 삼신은 밖으로 일기에 싸여 있는 것이다. 또한 신령한 기인 신의 본질은 빛으로 이해된다. “크고 텅 빈 가운데 빛남이 있으니 그것이 신의 모습이다.”오직 생명의 근원 되는 기와 지극히 오묘한 신은 광휘로 충만하다.” 이는 최남선을 비롯하여 도광순, 송항룡 등이 견지한 =ᄇᆞᆰ사상에 대한 선도계 문헌들의 해명이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고대 하느님 신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삼신이 또 다른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환단고기의 사서에서 삼신은 문맥에 따라 제사에 감응하며 화복을 주관하고 기쁨과 분노의 정감을 지닌 인격적 최고신을 지시한다. 이러한 의미의 삼신에 대해서는 상제이외에 천제天帝”, “천신天神”, “일신一神”, “대조신大祖神” “삼신상제三神上帝등으로 표현하여 인격성과 주재성이 두드러지게 한다.

한편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三聖祖 시절 교화敎化의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무형의 신성으로서 삼신을 하늘[]’이나 허공으로 부르는 한편 주재적 인격신을 일신一神으로 호명한다. 그리고 이를 각각 1장과 2장에서 다룬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장 허공(또는 천)의 내용은 이렇다. “천제는 이렇게 말했다. ‘오가五加와 백성들아! 저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저 아득하고 아득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체와 바탕이 없고, 처음과 끝도 없으며, 위 아래와 동서남북도 없다. 또 겉도 비고 속도 비어서 있지 않은 곳이 없고 감싸지 않는 것이 없다.’”

1장 허공은 하늘이라는 또 다른 장 이름이 말해주듯 우주의 근본인 일자一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아득한 창공이 아니라 있지 않은 곳이 없고 감싸지 않는 것이없는 우주의 근본 되는 실재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형태도 바탕도 시종始終도 방위도 없고, 밖으로 보면 비어 있지만 안으로는 조화의 가능성으로써 충만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기며 신이다.한 기운이 하늘이며 공이다.” 그것은 또한 본질상 천지를 가득 채운 일광명一光明이다.

반면 2장 일신一神에서는 상제를 더 이상 위없는 자리 또는 천궁에 계시면서 모든 것을 빠트림 없이 다스리는 최상신最上神으로서 기술한다. “상제[]는 위없는 으뜸 자리에 있어 큰 덕과 큰 지혜, 큰 힘을 가지고서 하늘을 생겨나게 하고 무수한 세계를 주재하며 만물을 짓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림이 없고 밝고 신령하여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수 없다.” 상제의 주제는 저 천지의 신령한 조화기운인 허공 혹은 하늘을 씀으로써 함이 없이 하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늘의 일신은 능히 허를 몸으로 삼아 주재한다. 그러므로 한 기운이 곧 하늘이며 공이다.” 삼성기에서는 이 주재의 사태를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님[乘遊至氣]”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저 신령한 기운인 삼신은 일신의 주재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품고 있는 무궁한 조화의 능력을 현실화할 수 있다. 그래서 삼신이 비록 위대하나 제가 실제로 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신一神은 공과 색이 오고 감에 주재함이 있는 듯하니 삼신이 위대하지만, [조화를 주재하는] 공능은 실제로는 상제에게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신은 하나의 존재자, 물론 으뜸의 존재자로서 포함하지 아니함이 없고 없는 데가 없는 기의 소산이다. “일신은 밝고 밝은[斯白力] 하늘에 계시며 스스로 화한 신이다.” 따라서 상제는 텅 비어 있으며, 밝고 밝으며, 신령한 기인 하늘 혹은 공에 속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허공[]과 일신, 삼신과 상제 또는 삼일신고1장과 2장은 함께 속하는 방식으로 일체를 이룬다. 다시 말해 인격적 최고신인 하느님[일신, 상제]삼신’, ‘허공’, ‘하늘[]’으로 불리는 천지의 신령한 기운과 하나이다. 이에 대해 한국 고대문화는 인격적 실재와 비인격적 실재를 조화시키는 비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관에 상응하여 성통공완의 의미가 결정된다. 성통은 본성을 틔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의 본성이란 원래 삼신으로부터 내려 받은 것이니 은 또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성통은 우리에게 본성으로 내주內住하는 신성을 틔워 또는 되찾아 저 생명의 원천인 신성과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또 삼신의 본질은 광명이니, 성통은 내 마음의 밝은 것과 천지 광명이 하나로 통하는 성통광명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한국 전통 사상과 종교에서 신은 언제나 인격적 실재와 비인격적 실재의 일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만큼 신을 향한 성통은 신을 소리쳐 부르는 것만으로도, ‘신 없이비인격적 신성을 체득하여 그것과 하나 되는 것만도 아니다. 단순히 신중심적인 신앙만으로도 인간중심적인 수행만으로도 올바른 성통이 되지 않는다. 그 둘 모두다. 우주적 한 생명인 신성으로부터 나눠 가진 본성을 회복하여 그와 하나 되는 마음에 일신이 임한다. 오직 그곳에서 일신을 만날 수 있다[朝天].

그러나 여전히 성통만으로는 신에 대한 섬김이나 친견親見이 완성되지 않는다. 일찍이 환웅은 웅녀에게 스스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루 구제하면 사람의 모습을 갖춘 대인이 되리라.”라고 참인간의 길을 제시했다. 삼일신고3장 천궁天宮에서도 동일한 가르침이 나온다. “성통공완한 자만이 천궁에 들어 영원한 즐거움을 얻으리라.” 성통에는 공완이 따라야 한다. 성이 통하고 공이 이뤄져야 하늘에 들 수 있고, 스스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루 구제할 때 참 인간인 선으로 새로 나 무너지지 않는 복락을 누린다. 여기서 완수해야 할 공또는 공업功業이란 신으로부터 주어진 천명天命으로서 인간이 마땅히 떠맡아야 할 과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신의 아들이나 대행자로서 하늘의 뜻을 폈던 환인, 환웅, 단군에 따르면 그 천명의 핵심은 홍익인간이다.

홍익인간의 근본 뜻은 환웅이 웅녀에게 그랬듯,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참된 인간의 모습을 갖도록 해주는 데 있다. 우리가 어떤 차별도 없이 인간을, 아니 나아가 접하는 모든 것들을 제 모습, 제 자리를 얻도록 살릴[接化群生] 때 홍익, 즉 그들을 진정으로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자신 또한 자기완성과 영원한 즐거움에 이른다. 곧 홍익인간의 공업은 위아爲我로써 위타爲他를 삼고 위타로써 위아를 이루는 상생의 실천인 셈이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선은 하느님을 섬기며 삼신과 하나를 이루는 가운데 제 본성을 찾고 하늘의 뜻을 완수하여 선에 이르는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과 인즉선, 보다 엄밀하게는 이 셋의 조화로 집약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함이 없을 이 일체는 하느님 또는 하늘의 양의성를 고려할 때 삼신과 상제, 인간 삼위의 일치이다. 또한 신령한 기운 자체인 천지와 천지를 몸으로 삼는 제 그리고 성통공완하는 인간 사이의 조화이다. 이 큰 하나[太一]는 다음의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천지의 충만한 조화기운인 삼신은 제의 존재와 권능의 원천이 돼 주는 한편 상제는 주재를 통해 삼신의 창조성을 발현케 한다. 이로써 양자는 같지만 섞일 수 없고 다르지만 나뉘지 않는 일치를 이룬다. 그리고 인간은 삼신과 하나 되어, 상제를 섬기고 그 뜻을 실현하여 선에 이르고 상제는 그 마음자리에 임함으로써 상제와 하나 됨을 이룬다. 상제를 섬기고 천지의 신령한 기운인 삼신과 일체를 이루는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해[人中] 천지, 인간, 상제가 하나로 조화돼 태일을 실현하고 그 참됨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일의 중심은 인간이다. 인간이 가장 존귀하며, 그를 일러 태일이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태일 인간의 또 다른 이름은 거발환이다. “거발환은 천지인을 하나로 정하는 것을 호칭한다.” 그리하여 태일은 하늘, , 인간 혹은 상제, 천지, 인간이 일체를 이루는 큰 하나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 하나를 지키는 성숙한 인즉선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은 거발환이 되고 태일이 되어 태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개벽된 세상이다. 다음으로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선을 살펴볼 차례이다.

 

4. 참동학의 선 태일太一

 

1) 내내 한 일이 동학

 

천하를 통일하는 도()인데 우선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도전11:29:5)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도전2:16:2~3)

너희들은 앞으로 신선을 직접 볼 것이요, 잘 닦으면 너희가 모두 신선이 되느니라.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도전11:199:8~9)

 

증산 상제께서 하신 일은 불로장생의 영락榮樂을 누리는 선의 세계를 처음으로 여는 것이며, 그래서 상제님의 도를 규정하면 선도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증산 상제는 하늘로 복귀하는 어천御天에 즈음해 당신이 인간으로서 한 일과 관련하여 또 이런 말씀을 남긴다. “내내 하고 난 것이 동학(東學)이라, 이제 천하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일을 다 본 뒤에 돌아오리라.”(도전10:34:2) 우리는 이 말씀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다시 말해 그러면 동학이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알아보는 방식으로 증산도 선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는 동학에서 재현되고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온전히 모습을 나타내는 한국 선맥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186045, 수운의 기도에 응답한 천주는 자신을 세상 사람이 부르는 상제라 밝히며, 자신에겐 영부가 있는데, 그 이름이 선약仙藥이며 그 형상은 태극이요 궁궁弓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운이 그것으로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또 자신을 위하게 하면 그 또한 장생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이른다. 하늘의 상제는 선약으로 사람을 살리고 자신을 위하게 하는 공덕을 펴면 장생의 선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언약하는 것이다. 이른바 이 천상문답은 시천주侍天主의 하느님 신앙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공덕으로써 인즉선에 이른다는 가르침이 수운이 천명으로 개창한 도의 요체를 이룰 것이란 점을 내보인다.

수운이 지은 가사의 다음 구절들도 그의 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선의 성취란 점을 밝힌다.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아니냐.”어화세상 사람들아 선풍도골 내아닌가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불로불사 하단말가진시황 한무제가 무엇없어 죽었는고 내가그때 났었다면 불사약을 손에쥐고 조롱만상 하올 것을...”봄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워 오네.”

그렇다면 수운에게서 입도한 그 날로 군자가 되고 선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 대답은 시천주하면 혹은 시천주로써 조화정 만사지하리라.’는 그의 시천주주, 특히 에 대한 그의 설명 속에 담겨 있다.

“‘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서[內有神靈 外有氣化]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一世之人 各知不移] 것이요.” 여기서 안으로 신령하고 밖으로 창창하게 기화하는 것은 모든 사물과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한 뿌리의 기운인 지기至氣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기란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 하나 보기는 어려운것이다. 우주적 한 생명인 지기는 그렇게 허하고 공하지만 일에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없는 신령한 것[虛靈]이다. 밖으로 천지에 창창한 무형의 기는 그 내밀한 본성과 공능功能에서 보면, 어디나 있지 않음이 없고 하지 않음이 없는 신인 것이다. 수운의 설명은 앞서 기와 신(삼신)의 관계에 대해 일기는 안으로 삼신이 있으며, ... 삼신은 밖으로 일기에 싸여있다고 밝히는 소도경전본훈의 구절과 비교된다. 요컨대 수운에서도 신은 기며 기는 허이고 허는 하나다.’

따라서 천주를 바르게 섬기는 시란 우주의 근본을 이루는 지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그리로 지극히 화하고자 하는[至化至氣], 지무망至無忘한 마음이 될 것이다.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守心正氣] 그리로 끊임없이 향하는 섬김과 모앙의 장[]에서 천주가 임하는 또는 천주를 맞이하는[朝天] 것이다. 이로써 시는 천주와 지기가 조화를 이루는 마음자리로서 드러나고 있다. 이는 수운에게서도 천주와 지기, 즉 인격적 실재와 비인격적 실재가 묘합妙合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조천의 장인 천주를 모심, 섬김[]’은 수운에게서 인간의 본성, 인간의 자기됨, 다시 말해 사람이 태어난 근본과 삶의 참 도리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그에게서 본성을 트는 성통은 시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제 본성을 되찾아 천지 기운에 화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시는 조화정 만사지하며 불로장생하는 선의 길이다. 따라서 시를 본성을 하는 인간은 또한 모두 선의 가능성, 말하자면 선약을 이미 자신 안에 지니고 있다. “나는 또한 신선이라. 이제보고 언제볼꼬 너는 또한 선분仙分있어 아니잊고 찾아올까 수운의 꿈에 나타난 도사[천주]가 수운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한 약속이다. 다같이 신선이 되어 신선인 천주를 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로써 수운의 뜻은 우리에게 본성으로 주어진 시를 열어, 천주를 섬기는 시천주의 마음을 회복하여 장생과 조화의 복락을 누리는 선[지상신선]의 삶을 얻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이르는 선약”, ‘가슴속 불사약은 시천주, 다시 말해 하느님 신앙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운에게서도 선은 인즉선, 즉 선은 인간의 본성이면서 아니 잊고 찾아성취해야 할 과제이다.

수운이 동학을 열어 베푼 도는 시에 대한 깨달음을 사회적으로, 우주적으로 확장하여 모든 사람이 시천주의 인간, 즉 본연의 인간됨을 회복하도록 하는 실천행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하는 하늘의 명을 완수하고자 하는 공완의 과정이었다. “오는 사람 효유해서 삼칠자 전해주니 무이이화 아닐런가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아니냐천명에 따라 인간을 이롭게 하는, 다시 말해 인간을 비로소 그의 본질인 선의 삶을 살도록 베푸는 홍익인간이 그에게서도 구현되는 것이다. 이는 오만 년 새 운수가 열리는 다시개벽에 참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상의 간략한 논의를 통해 수운의 동학에서도 선은 인즉선으로서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으로써 얻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 인즉선의 결속 그리고 그러는 한 천주, 지기, 시천주의 인간 삼위의 큰 하나, 태일이라는 한국 선도의 고유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운의 선도는 그의 죽음과 함께 미완에 그친다. 이제 선의 완결을 지어 좋이 신선의 연분을 맺도록 하는 일이 원동학이며 참동학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위에서 밝힌 바 내내 하고 난 것이 동학이란 말씀은 상제님의 도를 선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또한 그 선이 선맥의 완성, 결실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최제우는 유가(儒家)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나니 나의 가르침이 참동학이니라.”(도전2:94:9)

그렇다면 증산 상제의 가르침은 어떻게 참동학이 되어 선의 결실로서 발현되는가, 다시 말해 한국 고유 선의 중추인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 인즉선의 조화는 어떻게 구체화되는가?

 

2) 참동학 증산도의 선 사상

 

먼저 하느님 신앙을 보면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하느님은 고대 선도나 동학의 경우처럼 비인격적 우주 신성인 동시에 인격신 상제라는 양의兩意적 의미를 갖는다.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왔나니”(도전1:1:2~4)

 

삼신은 앞에서 천지의 신령한 기운으로서 만물의 바탕을 이루며, 조화를 짓는 우주의 근본으로서 밝혀졌다. ‘삼신’, ‘허공’, ‘하늘[]’, ‘지기등은 모두 빛을 본성으로 하며, 없는 곳이 없고 하지 않음이 없는 우주적 한 생명을 가리킨다. 그와 같이 인간과 만물의 모태가 되는 삼신을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는 바탕’, ‘으뜸이란 의미의 자를 써서 원신元神이라고 한다. 또 천지의 온갖 변화를 만드는 신령한 능력을 지녔기에 조화성신혹은 조화성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조화기운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상제의 주재를 통해 때에 맞춰 신령한 공능을 실현한다. 증산도 사상에서 우주의 한 기운[一氣]은 생장염장生長斂藏이란 우주 사계절의 정신에 따라 스스로를 전개한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도전4:58:4) 은 만물을 낳는 봄의, 은 만물을 기르고 가르쳐서 성장 발전하게 하는 여름의, 은 만물을 성숙 통일시키는 가을의, 그리고 장은 근원으로 복귀하여 휴식하는 겨울의 정신을 말한다. 이에 따라 봄의 기운은 만물을 싹 틔우는 방, 여름 기운은 만물을 길러 무성하게 자라게 하는 탕, 가을 기운은 만물을 성숙케 하는 신그리고 겨울기운은 본체로 환원하는 도의 성격을 갖는다.(도전6:124:9)

특히 가을에 들어 성숙과 통일의 본성을 회복하여 신의 변화성을 지닌 천지 기운은 지기라고도 불린다. 가을의 지극한 천지 기운은 이란 시명時命에 따라 거두면서 통일하고 죽임으로써 결실을 얻게 하는 개벽의 기운으로서 작용한다. 가을에 이르러 상제는 지상으로 내려와 가을의 새 기운인 지기를 만방에 돌려 개벽을 주재하고 새 세상을 여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음의 사실이 드러난다. 상제는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온갖 변화를 짓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조화의 한 기운을 써서 무위이화의 방식으로 온 우주를 맡아 다스린다. “一氣混沌看我形일기혼돈간아형하고 엄엄急急如律令엄엄급급여율령이라. 천지에 가득한 기운은 혼돈 속에 나의 모습을 보고 율령을 집행하듯 신속하게 처리하라.”(도전4:143:3) “내가 주재하는 천지 사계절 변화의 근본기강은 기()로 주장하느니라.”(도전6:124:9) 다시 선도문헌의 문맥으로 말하면 상제는 능히 이러한 허[지기, 삼신]를 몸으로 하여혹은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심으로써 함이 없이 만물을 짓고 말없이 행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나오는 말을 떠올린다. “공은 가고 색은 옴에 주재하는 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니 삼신께서 크신 이 되오나 제가 참으로 공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신이며 조화성신인 천지 기운은 상제에 속한다.

동시에 상제는 최고의 신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인 조화기운, 원신에 속한다. 상제는 원신에서 화한 인격적 존재다. 우주 본체를 이루는 원신 속에서 천지의 시간의 변화정신에 의해 스스로 화생한 인격신들 가운데에서, 천지를 주재하는 주권을 가진 최고신이 상제다. “일신은 밝고 밝은 하늘에 계시며 스스로 화한 신이다.” 상제는 하늘이며 허공인 조화성신이 홀로 변화한 주신主神이다. 우주의 비인격적 신성인 원신은 제마저도 신령스럽게 하는 것이다.

상제와 원신은 이와 같이 서로에게 뿌리가 되는 방식으로 함께 속하면서 한 몸을 이룬다. 증산도 사상에서 비인격적 우주 신성과 인격신 상제는 마치 [태양의] 빛과 [빛의] 태양이 하나가 되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룬다.

모든 것은 천지의 원신이며 조화성신인 삼신이 지은 바다. 천지에 충만한 신성이고 광명인 삼신은 인간과 만물의 본성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제 본성을 틔우는 성통은 내주한 신성을 회복하며 그 자신인 신이 되는 것[神化]이다. 이때 증산도 신관에서도 신의 의미는 양의적인 만큼, 성통은 천지의 신령한 조화성신과 하나를 이루는 가운데 상제를 모시는 것이다. 또는 상제를 섬기며 그 불생불멸하고 조화가 무궁한 천지의 신성과 밝은 빛으로써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통, 즉 인간의 신화는 천지와 함께 하는 수명과 천지의 조화를 얻는 선을 담보한다. 그래서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도 인간의 본성 회복 또는 온전한 인간[참나]은 신화神化이며 이는 곧 선화仙化로서 나타난다.

또 그와 같이 신화 또는 선화는 인간이 다른 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자신 안에 이미 내재된 본성을 발현하여 참 나[眞我]를 얻는 일이다. 그러기에 진화라 하지 않고 성숙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씨앗이 열매가 되는 것이다. 인즉선, 모든 인간에 선의 가능성이 주어져 있고 또는 선분仙分이 있고 그것을 현실화할 때 선의 결실을 맺는다. 이로써 하느님 신앙은 완성된다.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 이는 증산도 사상과 문화가 밝히는 조천에 대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한편 성통과 짝이 되는 공완은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는 더욱 긴박한 과제이다. “모사謀事는 내가 하리니 성사成事는 너희들이 하라.”(도전5:434) 모사재인하고 성사재인이란 말에서 의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말놀이가 아니라 이로부터 만사萬事가 신인합일, 천인합일로써 이뤄지도록 율법을 새로 정한 것이다. 하늘의 모사는 개벽을 극복하여 인간을 비롯하여 일체 생명이 제 본성을 온전히 발현하여 이윽고 참됨을 찾는 선경세계를 섭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사는 이에 상응하여 하늘의 뜻을 땅 위에 현실적으로 이루는 공업이다. 상제의 천지 사업에 참여하는 인간의 사역을 통해 비로소 천지와 만물은 본래의 질서를 찾아 새롭게 조화와 통일 속에 제 모습,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이는 인간이 인즉선의 인간으로 거듭나 천지를 위해 천지를 갱생更生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새 하늘, 새 땅 위에 선경세상의 새로운 문명이 이룩되는 것이다. 이처럼 증산도 사상과 문화에서 선은 우주적이며 역사적이다.

이 삶은 내 본성을 찾아 성숙한 인간이 되고, 그 진리로 이웃을 또한 인즉선의 새 삶으로 인도하는, 모두가 지상신선이 되어 동귀일체하는 상생의 실천으로 전개된다. “전 인류가 상제님의 도로써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홍익인간의 공업을 수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홍익인간은 참된 인간을, 다시 말해 선으로서의 인간[人則仙]을 무한히 늘리는[弘益] 것이다. 그래서 증산 상제의 업인간사업”(도전11:257:3)이라고 할 수 있다. “증산(甑山)이 증산(增産)이니라.”(도전11:259:2)

3) 태일이 되어 태일을 이루다

 

이제 선도로서 증산도 사상과 문화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가을개벽을 맞아 하느님을 섬기며 천지 신성과 하나 돼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인간 열매의 사역으로부터 천지는 조화와 통일의 신천지로 갱생한다. 이와 함께 인간은 장생과 조화의 선으로 새로 난다. 여기에서 한국 선도의 특질인 인즉선,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의 조화는 땅 위에서 역사적으로 현실화된다. 그것은 우주적 이벤트로서 일어난다. 이 일치는 또한 제와 천지, 인간 삼위가 하나로 어울리는 큰 하나, 태일로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하느님 신앙과 성통공완으로써 선의 세상을 여는 인간을 통해, 인간을 중심으로[人中] 이뤄진다. 그 큰 하나를 여는 인간이 또한 태일이다. 인간은 큰 하나의 장으로 쓰여 그 자신 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태일이 되어 태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고대 선도와 동학이 추구한 인즉선의 인간은 태일선太一仙으로서 완성된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 가장 큰 이유(도전1:1:8)도 그 태일()의 전범을 선구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데 있을 것이다.

아울러 태일의 발현에 따라 인간 외 모든 것들 역시 비로소 각자의 본질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태일의 한 울타리 안에서 그것을 중심으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좌절이나 억압, 원망 등 모든 비본래성의 굴레에서 해방돼 조화調和를 이루며 그것들이 본래 그러한 바 혹은 그것들의 마땅함[]을 이윽고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개벽된 세상이다. 이 가운데 인간에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이 허락된다. 새 하늘 새 땅 위에 선이 되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에 정주定住하게 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후천 선경세계는 가가도장(家家道場)이요,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인인(人人)이 성신(聖神) 되어 만백성이 성숙하고 불로장생하는 무궁한 조화낙원이라.”(도전7:1:5)

한편 증산도 사상에서는 태일을 성취하는 일차적 관건으로 수행이 강조된다. 특히 태을주 주문 수행이 공부의 중추를 차지한다. 태을주는 심령(心靈)과 혼백(魂魄)을 안정케 하여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하며 천하창생을 건지는 주문”(도전11:180:4)으로 규정된다. 태을주는 본심 닦는 주문”(도전11:282:2)으로서 읽으면 마음이 깊어지고, 생명활동의 동력원인 기운을 받고 천지의 조화성신을 접한다. 태을주는 마음과 영이 천지와 하나 돼 만물의 차별상을 뛰어넘어 대통일의 의식에 들어선 불멸과 조화의 새 생명으로, 즉 선으로 거듭나게 해 주는 주문인 것이다. “태을주 공부는 신선(神仙) 공부니라.”(도전7:75:4)

상제와 천지, 인간은 이 가운데 큰 하나를 이룰 수 있다. 태을주는 태일을 성취하도록 해주는 주문인 것이다. 증산 상제에 의해 완성된 태을주는 환인과 환웅이 인즉선의 길로 베풀고, ‘웅녀가 보여준, 또한 수운이 하늘로부터 내려 받아 사람들을 가르친 신교[] 수행의 계승이며 결실이다. “9천년의 한민족사에서 신교의 이러한 수행법을 이어받아 전 인류의 정신을 개벽시키고 도통의 길로 인도해 주는 신주神呪가 태을주太乙呪이다.”

 

5.

 

가을을 맞아 인간으로 오신 상제의 주재로 상제와 천지, 인간이 이윽고 큰 하나를 이뤄 선의 새 세상이 건립되는 일이 증산도 사상이 뿌리내리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이 증산도의 선에 한국 선도의 특질인 하느님 신앙, 성통공완, 인즉선의 조화는 비로소 지상에 역사적으로 구체화되고 현실화된다. 그래서 증산도의 선은 다가오는 새로운 것이며 또한 고대 삼성조 시대 이래 한민족이 품어 온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증산 상제의 한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써 글을 맺는다. 증산 상제는 하루는 종이에 한 일 자를 길게 그어놓고 그 획에 걸쳐 만물대선록萬物大善祿이라 써서 불사른다. ‘만물대선록이란 만물과 더불어 은혜를 함께 하는 대선심大善心을 가져야 천지 녹을 향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너지지 않는, 천지의 가장 큰 녹은 불로장생과 조화의 선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며 천지 기운과 하나 돼 내 본성을 찾고 하늘의 뜻에 따라 모든 것들이 조화 속에 제 본질을 찾도록 하는 상생의 한마음이 한 일 자다. 이로부터 선의 복락이 열릴 것이다. 그 선은 마땅히 태일이 되어 태일을 이루는 태일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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