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태백일사 : 고려국본기 8 윤관의 여진 정벌

상생문화1 | 2024.02.13 01:22 | 조회 200

윤관의 여진 정벌


都元帥尹瓘 攻破하고 碑于先春嶺하야 以爲界하고 遣子彦하야

奉表賀하니 平章事崔弘嗣·金景庸 知政事任懿 樞密院事瑋等

入對宣政殿할새 極論尹瓘·吳延寵·彦等 妄興無名之兵하야 敗軍害國하니

可赦니이다 하고 諫官金緣 ·載等 亦相繼劾之하야

人主之取土地 本欲育民也어늘 今爭城而殺人하니 莫如還其地而息民이오

必與契丹으로 이니이다

 

도원수都元帥 윤관尹瓘3) 여진을 쳐서 무찌르고 선춘령先春嶺 비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4) 아들 언이5) 임금에게 보내어 올려 하례하게 하였다.

그런데 평장사 최홍사崔弘嗣·김경용金景庸 참지정사 임의任懿 추밀원사 이위李瑋 등이 선정전宣政殿 들어가 임금 앞에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윤관, 오연총吳延寵, 임언 등은 망령되이 명분 없는 군사를 일으켜 전쟁에 패하고 나라를 해롭게 하였으니 죄는 용서할 없습니다.

간관 김연金緣, 이재 등도 역시 계속 탄핵하였다.

임금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본래 백성을 기르고자 함인데, 지금 성을 다투며 싸워 사람을 죽였으니, 땅을 돌려주고 백성을 편히 쉬게 함만 못하옵니다. 지금 돌려주지 않으면 반드시 거란과 틈이 생길 것입니다.

 

上曰 何也 緣曰 國家初築九城할새 使告契호대 表稱眞弓漢里

乃我舊地 其居民 亦我編氓이어늘 近來 寇邊已故

收復而築其城이라 表辭如是로대 而弓漢里酋長 多受契官職者

以我爲妄言하야 以加責讓하리니 我若東備하고 北備契이면

臣恐九城 非三韓之福也니이다

 

임금이 물었다. 무엇 때문인가?

김연이 아뢰었다. 나라에서 처음 9성을 쌓을 , 거란에 고하는 표문에 여진의 궁한리弓漢里 우리의 땅이다. 거주민 또한 우리 백성인데, 근래에 도적들이 변방을 끊임없이 침입하였기 때문에 다시 수복해서 성을 쌓는다 하였습니다. 표문의 내용이 이러하나 궁한리 추장은 거란의 관직을 많이 받은 자이니 거란은 우리 주장을 망언이라 책망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만약 동쪽으로 여진을 방비하고, 북쪽으로 거란을 방비한다면, 신은 9성이 우리 삼한三韓 복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옵니다.

 

諫議大夫金仁存 亦請還舊地. 元帥之伐

受先帝之遺志하고 朕躬之述事하야 身冒鋒鏑하고 深入賊壘하야

馘俘 可勝計 而闢千里之地하고 築九州之城하야

以雪國家之하니 則其功 可謂多矣. 이나 人面獸心이라

反復無常하고 厥有餘醜하야 無所依處故酋長納降請和群臣

皆以爲便하고 이러니 有司守法 頗有論劾하야 遽奪其職이나

以此 爲咎 庶幾有孟明之復濟也니라.

 

간의대부 김인존金仁存 역시 땅을 돌려줄 것을 청하였다.

임금(16 예종)께서 유시諭示하셨다.

원수가 여진을 것은 선제先帝(15 숙종) 유지를 받고, 짐이 몸소 말한 일을 행한 것이니라. 몸소 적의 칼끝과 화살을 무릅쓰고 적진에 깊이 들어가서 베고 포로로 잡은 자의 수가 이루 헤아릴 없이 많고, 땅을 개척하고 9 성을 쌓아 국가의 치욕을 씻었으니 공은 가히 크다 하리로다.

그러나 여진은 인면수심으로 변덕이 심하다. 남은 무리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추장이 항서를 바치고 화친을 청해 오니, 신하들이 모두 편하게 여기고, 또한 차마 하지 못하겠다.

유사有司 법을 따져서 자못 탄핵하는 말이 많으므로 급히 그들의 직책을 박탈하려 하나, 짐은 끝까지 이를 허물로 삼지 아니할 것이다. 맹명시孟明視 다시 황하를 건너 공을 세운 것과 같이 하기를 바라노라.

 

睿宗文孝大王四年秋 撤九城하야 眞舊地하니라. 先是

使弗史顯等하야 入朝奏曰 昔 我太師盈歌 嘗言我祖宗 出自大邦하니

至于子孫하야 義當歸附可也 하더니 今太師烏雅束 亦以大邦으로

爲父母之國이러니 至甲午年間하야 弓漢村人 自作不靖이나

本非太師之指揮 國朝鳴罪討之 復許修好故 我信之하야

不絶朝貢이러니 去年大擧하야 殺我하며 築置九城하야 使孑遺之民으로

靡所止歸하니 太師遣我하야 來請還地云云이라

又會宰樞·臺省·知製誥·侍臣·都兵馬判官 及文武三品以上하사

議還九城可否하신대 皆曰可

舊史 將軍 碑於先春嶺曰至此爲高麗之境이라 하니

先春嶺 在豆滿江七百里外松花江近地云이라 하니라.

 

예종 문효文孝대왕 4(단기 3442, 1109) 가을에, 9성에서 철수하고 여진의 땅을 돌려주었다. 이에 앞서 여진이 요불, 사현史顯 등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이렇게 상주하였다.

옛날에 저희 태사 영가盈歌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조종은 대국(고려)에서 출생하였으니6) 자손 대에 이르러서도 마땅히 귀부歸附함이 옳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태사 오아속烏雅束께서도 역시 대국(고려) 부모의 나라 삼고 있습니다. 갑오 연간에 이르러 궁한촌 사람들이 스스로 난리를 일으켰으나, 본래 태사가 지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조國朝(고려)에서는 죄를 물어 이들을 토벌하였으나 다시 수호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이를 믿고 조공을 끊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군사를 크게 일으켜 저희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9성을 쌓아 외로이 남은 백성으로 하여금 돌아갈 곳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에 태사가 저희를 보내어 땅을 되돌려 주실 것을 청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재추[宰樞], 어사대 판사御史臺 判事 중서문하성 성재省宰, 지제고知製誥, 시신侍臣, 도병마판관과 문무 3 이상을 소집하여 다시 9성을 돌려주는 것에 대하여 가부를 물으니 모두 돌려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사서에는, 장군이 선춘령에 비를 세우고 이곳이 고려의 경계이다라고 하였다. 선춘령 두만강에서 700 , 송화강 근처 땅에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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