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환단고기
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 22장 백제의 시조와 건국 과정
백제의 시조와 건국 과정
高朱蒙이 在位時에 嘗言曰 若嫡子琉璃來면 當封爲太子라 하야시늘
召西弩가 慮將不利於二子라 하야 歲庚寅三月에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하고 南奔至辰番之間近海僻地하니라.
而居之十年에 買田置庄하야 致富累萬하니 遠近이 聞風하고 來附者衆이러니
南至帶水하고 東濱大海하야 半千里之土境이 皆其有也라
遣人致書于朱蒙帝하야 願以內附어늘 帝甚悅而奬之하시고 册號召西弩하사
爲於瑕羅시라 及至十三年壬寅而薨하고 太子沸流가 立하니 四境이 不附라.
고주몽 성제가 재위하실 때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적자 유리가 오면 마땅히 태자로 봉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소서노召西弩는 장차 자신의 두 아들(비류와 온조)에게 이롭지 못할 것을 염려하다가, 경인庚寅(단기 2292, BCE 42)년 3월에 사람들에게서 패대浿帶의 땅20)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달려가 진辰·번番(옛 진한과 번한) 사이에 있는 바다 가까운 외진 땅에 이르렀다.
그곳에 산 지 10년 만에 밭을 사서 장원을 두고 재산을 모아 수만 금에 이르니 원근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따르는 자가 많았다. 남으로 대수帶水에 이르고 동으로 큰 바다에 닿는, 5백 리 되는 땅이 모두 그의 소유였다.
그리고 주몽제朱蒙帝에게 사람을 보내어 글을 올려, 섬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임금께서 매우 기뻐서 칭찬하시고 소서노를 책봉하여 어하라於瑕羅라는 칭호를 내리셨다. (어하라 재위) 13년 임인(단기 2315, BCE 19)년에 이르러 소서노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 비류沸流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於是에 馬黎等이 謂溫祚曰 臣이 聞馬韓이 衰敗立至하니
乃可徃立都之時也니이다 溫祚曰 喏다 乃編舟渡海而始抵馬韓 彌鄒忽하니
行至四野에 空無居人이라 久而得到漢山하야 登負兒岳而望可居之地할새
馬黎烏干等十臣이 曰 惟此河南之地는 北帶漢水하고 東據高岳하고
南開沃澤하고 西阻大海하니 此天險地利難得之勢라 宜可都於此오
更不可他求也하소서 한대 溫祚가 從十臣議하야 遂定都于河南慰支城하고
仍稱百濟하니 以百濟來故로 得號也라 後에 沸流가 薨하니
其臣民이 以其地로 歸附하니라.
이때 마려馬黎 등이 온조溫祚에게 이르기를, “신이 듣기로 마한의 쇠망이 임박하였다 하니 가서 도읍을 세울 때라 생각하옵니다” 하니, 온조가 “좋다”라고 하였다. 이에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 먼저 마한의 미추홀彌鄒忽(지금의 인천 부근)에 이르러 사방을 돌아다녀 보았으나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었다.
오랜 뒤에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岳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아보았다. 그때 마려馬黎, 오간烏干 등 신하 열 명이 간하였다.
“오직 이곳 하남河南 땅은 북으로 한수漢水를 끼고, 동으로 높은 산이 자리잡고, 남쪽으로 기름진 평야가 열리고, 서쪽은 큰 바다(황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연적으로 험준한 지형과 지리적인 이로움은 얻기가 쉽지 않은 형세이오니, 마땅히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른 곳을 더 찾지 마옵소서.”
온조가 신하 열 명의 의견을 좇아 드디어 하남 위지성慰支城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백제百濟21)라 하였다. 백 사람이 건너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뒤에 비류가 세상을 떠나자 그 신하와 백성이 그 땅을 바치며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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