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찾기

동학과 다시 개벽 11회 천주와 후천개벽

문계석 연구위원

2017.03.15 | 조회 1270
동학과 다시 개벽 11

 

 

4. 천주와 후천개벽

 

2) 원리로 알아보는 후천개벽의 정당성

 

수운이 제시한 다시개벽은 곧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후천개벽이란 말은 수운이 직접 쓰지 않은 용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저작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언어 사용의 용법으로 볼 때, ‘다시라는 용어는 선 후의 시간 과정을 함축하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서 수운이 제시한 다시개벽은 곧 선개벽을 전제로 한 후개벽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후개벽에 자를 붙여 다시개벽을 후천개벽이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운의 다시개벽을 후천개벽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근거는 오만 년 전에 일어난 개벽의 시간적 운상運象에는 앞서 있는 하늘이란 뜻의 선천先天을 붙이고, 다시개벽의 시간적 운상에는 다음의 하늘이란 뜻의 후천後天을 붙여서 선개벽을 선천개벽先天開闢으로, 후개벽을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론적인 사고에서 볼 때 수운의 다시개벽은 곧 후천개벽을 뜻하는 것이다.

후천개벽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후천개벽의 이치를 역수원리로 밝혀내어 후천의 이상세계가 건설될 것이라고 주창한 철인이 있다. 다름 아닌 조선 말엽에 살았던 김일부金一夫이다. 이에 대하여 증산상제는 주역 공사는 이미 일부一夫 시켜서 봐 놓았노라.”(도전3:198: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도전2:31:5-7)고 전한다. 다시 말해서 우주의 주재자 상제는 후천개벽기에 인간으로 오시어 오만 년 새 세상의 운수를 주도해 갈 후천개벽의 대도를 선포할 것임을 수운으로 하여금 세상에 알리도록 하였고, 일부를 세상에 내 보내어 그 이치를 역수원리로 밝혀 후천개벽의 정당성을 드러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일부가 천명을 받아 작성하여 세상에 내놓은 후천개벽의 역수원리는 바로 정역正易에 압축되어 있다. 정역은 후천개벽이 오는 이치를 상수로 밝힌 역수원리이다. 그 역수원리가 밝히고자 한 핵심은 후천이 개벽되어 새로운 운행질서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극相克의 도가 주류를 이루었던 선천 말기의 쇠운이 마감되고, 후천개벽으로 다함이 없는 운수[無極之運]인 성운이 돌아들면서 이에 걸 맞는 만고에 없는 무상의 도[無極大道]가 세상에 출현하며, 상생相生의 도가 자연과 인간과 문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게 된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천개벽은 선천개벽이래 인류가 염원해온 완성된 조화세상이 건설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장에서 선천 말기의 쇠운에서 후천개벽의 성운으로의 전환, 즉 후천개벽의 정당한 이치가 무엇인지를 밝혀볼 것이다. 먼저 우주론적 사상의 연원이 되는 도서圖書를 통해 선천· 후천이란 용어가 어떻게 해서 동양철학의 역학에 등장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검토해볼 것이다. 그런 다음 정역에서 일부가 밝힌 개벽의 이치, 즉 선천개벽으로 열린 세계의 이치가 선천의 역수원리였다면,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세계의 이치는 후천의 역수원리라는 것을 제시해볼 것이다. 후천의 역수원리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수운이 말한 다시개벽, 즉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세상이 왜 조화낙원의 세상이 되는가를 합리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천의 용어 검토

문명사에서 볼 때, ‘선천 후천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어떻게 쓰여지기 시작한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아마도 맨 처음 이 개념은 대체로 역의 철학을 연구하는 자들에 의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철학易哲學의 관심은 주로 천지변화의 운상運象을 이해하여 체계적으로 밝혀내는 것에 있는데, 천지변화의 운상은 주로 상수象數로 나타낸다. 상수를 바탕으로 하여 역철학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면서 선천· 후천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선천· 후천이란 용어는 어느 때 누구에 의해서 쓰이기 시작했을까? 문헌의 기록으로 볼 때, 〮 ․ 후천의 개념은 시기적으로 송대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송대 역철학의 시작은 초기에 도가계통의 도사道士인 도남圖南 진단陳搏에서 비롯된다. 진단은 화산華山의 희이선생希夷先生으로 불려지기도 하는데, 진단의 역철학은 북송의 소강절邵康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던 것이다.

도사였던 진단은 도서역학圖書易學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고, 처음으로 선천, 후천이란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근거는 주여동周予同진단은 도가에서 수련할 때 쓰는 그림을 얻었는데, 이로부터 태극太極 무극無極 하도河圖 낙서洛書 선천先天 후천後天 등의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고 말한 것에서 확인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한 선천, 후천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앞선 시대와 다음의 시대를 구분하는 뜻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단의 선 후천 개념은 도서圖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도서圖書란 무엇을 뜻하는가? ‘도서하도河圖낙서洛書에서 를 따서 합한 이름이다. ‘하도의 유래는 복희씨伏羲氏가 하늘을 이어 왕노릇 할 적에 용마가 황하에서 나오자 마침내 그 무늬를 본받아 팔괘를 그려 전하는 것이고, ‘낙서는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릴 적에 등에 무늬가 있는 신귀神龜가 나왔는데 등에 나열되어 있는 수9까지 있으므로 이를 차례로 배열하여 것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하도는 앞선 시대의 것으로 선천역이고, ‘낙서는 뒤에 나온 것으로 후천역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단은 도서를 고문에 밝았던 박장伯長 목수穆修에게 전했고, 목수는 정지挺之 이지재李之才에게 전함으로써 이지재는 도서상수 변화에 능통하게 되었다. 이후 이지재는 상수학에 밝은 소옹邵雍 강절康節(1011~1077)에게 전하게 됨으로써 소옹은 도서역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천지변화의 운상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송대의 역철학은 도서역학에 근원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도서역학은 하도와 낙서를 역의 핵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도와 낙서에 그려진 문양은 천지음양의 상으로 보이는데, 주역周易에서 천지변화를 이루며 귀신을 부리는 것은 도서의 상과 수에 있다고 본다.

송 대에 도서역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선천 후천이라는 용어가 여러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복희가 그린 하도는 선천의 역도이고 문왕이 그린 낙서는 후천의 역도로 보았다. 주자朱子역본의도易本義圖에는소씨 설에 의거하면 선천이라는 것은 복희가 그린 역이고, 후천이라는 것은 문왕이 편 역이다. 복희의 역은 애초에 문자가 없고 도식만 있어서 상과 수를 붙였지만, 천지만물의 이치와 음양종시의 변화가 두루 갖추고 있고, 문왕의 역은 지금의 주역인데, 공자가 이른바 전을 지은 것이 이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복희가 그린 선천역도와 문왕이 그렸다는 후천역도에서 선천· 후천의 개념은 앞서 진박이 생각했던 시간적인 순서의 의미에서 선· 후천의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관의 관점에서 볼 때, 선천역은 우주자연의 창조변화에서 원래 나타나는 그대로의 것을 상수로 드러낸 역도이며, 후천역은 선천역을 자연과 인사의 변화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고쳐서 상수로 정리한 역도라는 뜻에서 선· 후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체용體用으로 말해 본다면, 곧 복희의 선천역이 가 되고, 문왕의 후천역이 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자는 복희 팔괘는 수의 자연이고, 문왕팔괘는 용에 나타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선천은 천지의 당연한 이치를 모사하였으니 순전히 천리라는 것이요, 후천은 천지의 당연한 이치를 정돈하였으니 인사를 참작한 것이라 한다. 그 뜻이 진실로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연관의 관점에서 본 선천역도 후천역도의 체용體用 관계는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어 기술되기도 했다. 통치시대관의 관점에서 본 선천과 후천이 그것이다. 공자가 인문주의 통치 이념을 세우면서 유학의 가장 이상적인 통치이념의 모델로 삼은 것은 요 순 시대이다. 인문주의 전통을 세우면서 공자는 요임금이 가장 모범적으로 국가를 통치한 임금이라는 뜻에서 선천의 시대라 하고, 이후의 제왕들은 요임금의 통치원리를 이상형으로 따르려 했다는 뜻에서 후천의 시대라고 했다. 이에 대해 소옹은 요임금 때는 선천이요 요임금 이후는 후천인데, 후천은 곧 선천의 법을 본받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자연관의 관점에서 본 선천과 후천의 체용의 문제는 심론心論에도 적용되기도 하였다. 인간의 마음을 선천이라 하고 그 마음을 써서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후천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옹은 선천의 학은 마음이요 후천의 학은 그 자취이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인간의 탄생 전과 후를 나누어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을 선천이라 하고, 그 이후를 후천이라 하는 생리적인 의미에서 선후천관이 있다.”는 선 후천관이 있다.

역학의 원리에서 소강절이 선천과 후천을 규정하는 것과는 달리 주기론主氣論의 우주론적 관점에 체용의 논리를 적용하여 선천과 후천을 말하는 학자도 등장했다. 대표적으로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소강절의 역학 원리를 완전히 터득하고, 주돈이周敦頤(1017~1073)에서 출발하여 장횡거張橫渠(1020~1077)로 이어지는 학통을 연구했다. 이 학통에서 주장하는 주요 학설은, 천지만물의 창조변화란 단순히 일기一氣의 이합집산離合集散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서 태허太虛는 근원의 체가 되고 기의 운동은 창조변화의 용이 됨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송대 성리학을 완전히 소화했다고 평가되는 화담은 소강절의 선 후천 개념을 여기에 적용한 것이다.

화담은 천지만물의 궁극적인 시원始元은 오직 하나의 기[一氣]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기에 대해서 그것을 에서 보자면, ‘맑고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라고 규정한다. 태허를 그는 만물이 생성하기 이전이라는 뜻에서 선천先天이라고 했다. 태허의 크기는 바깥에 한계가 없고, 그것에 앞서 시작 바가 없기 때문에 그 유래를 가히 궁구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태허의 맑고 허하고 고요한 것[]이 기의 근원이다. 선천의 태허는 무한히 퍼져 있어서 한계가 없으며, 일호一毫의 빈틈도 없이 충만한 것이어서 비거나 빠진 데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손으로 뜨거나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허는 이면서 허하지 않은 실재이다. 이 허가 곧 이다. 그렇다고 이 에서 가 생겨난 뜻은 아니다. 맨 처음은 시작이 없고 그 크기는 바깥이 없으며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담연무형淡然無形가 곧 기인 것이다[虛卽氣].

선천의 태허가 용사用事한 것이 바로 후천이라고 화담은 말한다. 즉 태허의 가 분화되어 천지만물이 생성 변화되는데, 이것을 후천이라는 뜻이다. “일기가 분화하여 음양이 된다. 양이 극단에까지 고취하여 하늘이 되고, 음이 극단에까지 응집하여 땅이 되었다. 고취된 양의 극에 정이 맺힌 것은 해가 되고, 응축된 음의 극에 정이 맺힌 것은 달이 되었다. 양의 극에 남은 정은 분산해서 성신星辰이 되고 땅에 남은 정은 불과 물이 되었다. 이것을 후천이라 부르니, (일기가) 용사한 것이다.”

화담은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사유체계에서 천지만물의 창조되기 이전의 본체계를 선천이라 하고 창조된 이후의 현상계를 후천으로 말한 것이다. 천지만물의 본체는 담연무형태허이지만, 본체의 작용으로 인하여 하늘과 땅이 열려 만유의 존재가 창조된다. 여기에서 화담은 하늘과 땅이 열리기 이전의 본체를 선천으로 규정하고, 선천의 일기인 태허가 개벽이 되어 천지만물이 생성된 이후를 후천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에 이형기는 선천은 천지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고, 후천은 만물이 생성된 이후의 현상계를 뜻하였다. 천지창조라는 개벽을 기준으로 하여 이전은 선천이고 이후는 후천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후천 개념의 의미 적용에 대하여, 송대 초기의 성리학적 체계에서는 복희의 역이 의 의미에서 천지만물의 창조 원리를 밝히고 있는 선천역으로 규정되었고, 문왕의 역이 의 의미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용사되어 천지만물의 창조변화를 드러내는 후천역으로 규정됐다. 이에 대하여 화담은 우주론에 적용하여 본체의 의미에서 천지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을 선천으로 규정하고, 작용의 의미에서 창조된 이후를 후천으로 규정했다. 후천에 대한 화담의 사상은 물론 송대 성리학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우주론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후천 역도의 출현

선천과 후천의 용어를 말함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로 규정한 이론이 등장한다. 선천과 후천의 의미를 역수曆數원리로 체계화한 것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증산상제는 주역周易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도전5:248:6), “일부가 내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도전2:31:5)고 했다.

우선 증산상제가 언급한 일부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일부一夫 김항金恒이다. 그는 천재지변이 잇달고 내우외환에 허덕이면서 국운이 쇠퇴일로에 치닫던 조선 말엽에 살았던 인물이다. 수운이 진단한 세태의 원리로 말해본다면, 그는 선천 말기의 쇠운에서 후천의 성운으로 전환하는 개벽의 시점에 살았던 것이다. 그는 성리학자들이 말한 · 후천의 의미를 전환하여 증산상제가 말한 내일 한 가지”, 즉 수운이 말한 다시개벽의 정당성을 이치로 밝힌 것이다. 이것이 정역正易에서 역수원리로 체계화하여 밝힌 후천개벽론이다.

후천개벽론을 담은 정역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일부는 36세에 연담蓮潭 이수증李守曾(1808~1869) 선생을 사서師事하면서부터 학문적 전회를 가져오게 됐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그는 역학을 밝혀놓은 주역周易연구하였다. 연구 중에 그는 문왕의 역이 괘의 배치가 불완전하여 현실적으로 모순과 투쟁이 만년하게 됐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는 심법전수의 핵심을 담은 서전書傳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1881년에 정역서문인 대역서를 쓰고, 정역팔괘를 그렸으며, 1884년에 정역』「상경을 쓴 뒤 1885년에 하경을 씀으로써 60세에 이르러 복희의 선천역과 문왕의 후천역의 한계를 극복한 정역을 완성했다.

정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바른 변화, 바른 역이란 뜻이다. 이는 천지변화의 원리를 상징하는 정역의 괘상이 바르게 배치되어 음양의 완전한 조화가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달리 말해서 정역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천지 자연사는 물론이고 인간의 삶과 인류의 문명사 또한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상극질서의 품에 묻혀 원억冤抑이 난무했었지만, 정역이 출현함으로써 건곤乾坤이 제 위치를 찾아 천하에 새로운 변화의 질서가 세워져 인간사의 정륜이 바로 잡혀 이상적인 화평이 실현될 것으로 일부는 확신했던 것이다.

일부가 창안한 정역을 기준으로 볼 때, 정역의 출현 이전은 선천역도가 전개되는 시대요, 정역의 출현은 곧 후천역도가 전개되는 시대가 됨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서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켜 왔다.”(도전4:16:2-3) 하지만 정역은 상극으로 일관된 선천에서 후천으로의 변혁 소식, 즉 상생의 운수가 나오게 되는 후천개벽의 정당한 이치를 밝혀낸 것이다. 후천개벽의 도는 상생의 대도이다. 이에 대하여 증산상제는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리니 대인대의大人大義의 세상이니라.”(도전2:18:3-5)고 말한다.

정역은 어떻게 해서 이상적인 세상을 열게 되는 상생의 도를 말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건곤이 제자리를 찾아 위치함으로써 조화調和의 괘도卦圖가 짜여지고, 그럼으로써 하늘과 땅의 변화와 그 운행질서가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역수원리의 개벽이라 할 수 있다. 역수원리의 개벽은 선천의 역수원리에서 후천의 역수원리로의 개벽, 곧 후천개벽이다. 왜냐하면 후천개벽의 이론적 정당성은 바로 정역의 역수원리에 있기 때문이다.

 

원역原易과 선 후천의 역도曆道

후천개벽의 이론적 정당성을 우리는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역도曆道로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일부는 정역의 서문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는 대역서大易序에서 아아 거룩하도다. 우주의 변화가 무궁한 변화로 이루어짐이여! 이라는 것은 역이니 이 없으면 성인이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또한 없느니라. 그런 까닭에 순수원역과 미래의 역이 이른 바 내가 지은 것이니라.”고 선언한다.

에서 일부는 주역에서 밝혀진 역자는 상야라[易者象也]”라는 명제를 역자는 역야라[易者曆也]”로 바꾸어 본질적으로 새로운 근본명제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은 달력(책력)을 지칭한다. 달력은 일월日月의 운행에 따른 우주의 시간변화를 도수로써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정역의 역은 기본적으로 천지의 생성변화가 천지상수원리天地象數原理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대의 변화를 가리키는일월역수원리日月曆數原理에 의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정역에서 해명한 역수曆數는 우주만물의 변화 역사를 섭리하는 가장 근원적이며 포괄적인 시간의 원리를 밝힌 것이다. 즉 우주질서가 바뀌는 시간변화의 흐름을 역으로 말했던 것이 일부라는 얘기다.

시간변화의 흐름을 밝히는 역은 시명時命에 따라 밝힌 일부의 정력正曆과 과거에서 지금까지 써온 윤역閏曆으로 구분된다. 윤역은 윤달을 쓰는 세상이고, 정역正易은 정역正曆으로 무윤역無閏曆이다. 무윤역은 해와 달의 운행도수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윤달이 없는 세상이다. 달리 말해서 윤달을 쓴다는 것은 음양의 운행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운행되기 때문에 자연질서, 문명질서, 인간질서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윤달이 없는 정역은 음양이 합덕合德하여 운행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화평의 극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윤달을 쓰는 세상을 서로 분란 투쟁으로 일관된 선천으로 규정한다면, 정역을 쓰는 세상은 조화로 일관된 후천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에서 일부는 인류로 하여금 천명天命과 천시天時를 자각하여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곧 성인의 사명이라고 본 것이다. ‘역이 없으면[無曆]이면 성인도 없다[無聖]’고 할 때 역수원리가 없으면 성인이 출현할리도 없다는 뜻이다. 이는 천지역수원리에 근거하여 천명을 받은 성인이 인류역사 속에 출현함으로써 새로운 우주변화의 시간질서를 담은 역도의 이치를 밝혀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인이 없으면[無聖] 역 또한 없다[無曆]’고한 명제가 그것이다. 따라서 성인의 학은 역학이다. 성인은 인류역사 속에 출현하여 역수원리를 하나의 학문적 체계로써 드러낸다. 성인의 도통연원을 쫓아서 역도가 밝혀지고 새로운 역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주질서의 시간대가 거대하게 변화할 때 시명時命에 따라 성인이 출현하게 된다. 성인의 출현은 새로운 역도를 밝혀내어 우주질서의 변화신비와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섭리를 인류에게 전해준다. “천지에 말이 있으니 일부가 감히 말한다. 천지가 말하고 일부가 말한다. 일부가 말하고 천지가 말한다.” 일부는 스스로 성인으로 자처하고, 우주의 대 개벽의 시간대에 와서 성인으로서 우주변화질서의 내용을 밝혀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역正易이란 한마디로 후천역이며 매래역이며 제3의 역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천역에서 후천역으로의 전환은 과거역過去曆에서 미래역未來曆으로의 교체이다. 이는 곧 과거의 달력에서 미래의 달력으로 전환함을 뜻한다. 지난 세상은 선천이며, 새 세상은 후천인데, 일부는 후천세상의 새로운 역수원리, 즉 후천개벽의 정당성을 새로운 시간질서의 변화 원리로 세상에 전한 것이다.

에서 일부는 윤달이 없는 정역이 완전한 역임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일부가 천지의 수는 일월을 도수로 규정한 것이니, 일월의 역수가 바르지 않으면 역이 될 수 없음이라. 역은 정역이라야 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원역이 어찌 항상 윤역 만을 쓰겠는가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역原易은 무엇인가? 그것은 태초의 역, 근원의 역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일부는 초초지역初初之易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초초에서 앞의 는 순수원역을 강조하여 지칭한 것이다. 천지역수의 모든 변화는 원역의 원리 내에서 이루어지며, 원역의 원리에 맞추어 우주변화의 운행 질서가 전개되는 것이다. 일부는 원역의 원리를 인류 역사상 처음 지었다. 그래서 그는 원역을 가장 근원적인 존재로서의 태초의 역이라 한 것이다.

이러한 순수원역 원리는 현실 속에서 전개될 때에는 두 역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윤달이 들어 있는 윤역閏曆과 윤달이 없는 정력正曆이다. 윤역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분리되어 운행하는 불완전한 역이고, 정력은 음양이 합덕하여 조화를 이루어 운행하기 때문에 완전한 역이 되는 것이다. 윤역과 정력의 관계에 대하여, 윤역을 선천의 역이라 한다면 정력은 후천역이라 할 있다. 그리고 순수원역의 원리는 윤역과 정력, 즉 선천역과 후천역의 근원역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는 역학의 본질적인 변화지도로서 천지역수변화원리를 천명하고 후천변화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역도의 본의를 완전히 밝혔다고 본 것이다.

 

역수曆數의 원리로 밝히는 선후천 개벽의 이치

그럼 순수원역 원리[初初之易]는 그 변화수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자. 그것은 인류 역사의 근원이 되는 역으로 그 기수가 375를 일주기로 한다. 375도의 원역기수를 밝힌 인물은 일부가 처음이므로 이것을 일부지기一夫之朞라고도 한다. 초초지역을 바탕으로 해서 제요지기帝堯之朞’, ‘제순지기帝舜之朞’, ‘공자지기孔子之朞가 나온다. 제요지기는 요임금이 말한 도수이고, 제순지기는 순임금이 말한 도수이며, 공자지기는 공자가 말한 도수이다.

이들 세분이 제시한 기수에 대하여 일부는 제요지기는 366일이고 제순지기는 3654분의 1이니라. 일부지기는 375도이니 십오를 존공하면 바로 공자지기 360일이다.”라고 말한다. 부연하자면 “375도는 원역도수로서 정역에서 처음 구체적으로 천명한 기수임으로 이를 일부지기라고 한 것이요, 360도는 정역도수로 주역周易 계사繫辭의 건곤책수에서 이미 말한 것임으로 공자지기라 한 것이요, 366윤역도수는 서경 요전편에서 제요가 명언한 것임으로 제요지기라 한 것이요, 365도 사분의 1 윤역도수는 서경 순전 편에 준제가 칠정을 정제하고 사시일월의 운행도수를 재조정하여 당시에 변화된 역수를 밝히는 치력명시의 정사를 행하였음으로 제순지기라고 규정한 것이다.”

윤역의 일주기는 제요지기의 366제순지기의 3654분의 1’로 운행한다. 윤역은 음양이 고르지 못한 선천역이다. 그러나 순수원역은 선천의 윤역 만을 쓰지 않고, 음양이 합덕하여 그 조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미래의 역(360도 정역)도 쓰게 된다. 즉 순수원역은 후천의 완전한 역, 즉 정역을 쓰게 되는 것이다. 정역은 375도 기수가 실제로 운행하는 역이 아니고 360도 기수가 운행하는 역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순수원역의 15도를 본체로 하여 360도의 정역기수가 운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부의 정역은 음양이 분리하여 생장하는 제요지기의 윤역과 제순지기의 윤역의 세계를 선천이라 하고, 다시 이 윤역세계가 변화하면서 음양이 합덕함으로써 일부지기의 원역을 체로 하고 공자지기의 정역이 운행되는 세계를 후천으로 보았던 것이다.

선천과 후천을 말함에 있어서 천지변화의 상수원리와 정역의 역수원리와는 어떤 관계인가? 앞서 밝혔듯이 복희팔괘는 천지만물이 태생胎生하는 원리를 표상한 것이고, 문왕팔괘는 상극질서에서 성장成長하는 원리를 표상한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복희와 문왕의 괘도가 음양이 완전하게 조화 일치하는 완성의 세계를 표상한 정역괘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복희팔괘의 생역生易과 문왕팔괘의 장역長易을 계승하여 집약적으로 내포하면서 천지만물의 성상成象을 표상한 것이 바로 정역의 완성역完成易이라는 뜻이다. 천지만물의 성장과 완성을 준거로 볼 때, 생장의 역은 음양이 고르지 못한 윤역으로 선천의 역이고, 완성의 역은 음양이 합덕하여 조화를 이루는 미래의 후천역이다. 따라서 전자를 표상하는 복희 문왕팔괘를 선천역이라 하고, 후자를 표상하는 정역팔괘를 후천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부는 성리학적 전통의 우주론적 의미를 탈피하여 후천개벽 사상을 합리적인 역수원리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는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사상이 일부의 선· 후천 역수원리로 정당화됨을 말해준다. 이를 근거로 할 때 선천의 윤역에서 후천의 정력으로의 전환은 후천개벽이 있게 됨을 역수론으로 입증한 것으로 본다. 즉 수운이 제시한다시개벽’, 즉 후천개벽의 당위성은 무리 없이 확보되는 셈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주역 공사는 일부一夫를 시켜서 봐 놓았노라.”고 하거나, “일부가 내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는 핵심 뜻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역, 즉 미래의 후천역은 새로운 차원의 시간질서가 개벽됨을 전제하는 것이며, 이는 곧 상생의 무극대도가 출현하여 조화 낙원의 완전한 세상이 개벽됨을 역수의 이치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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