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도교의 네 가지 상호 연관된 수련법 논술 1

담석창 (사천대학교 도교와 종교문화연구소)

2023.05.09 | 조회 2364

2022년 증산도 후천선문화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도교의 네 가지 상호 연관된 수련법 논술

 

담석창 (사천대학교 도교와 종교문화연구소 교수)

 

 

도교는 중국에서 근원한 토박이 종교로써 중화 전통문화의 주요 창조자와 전승자 의 역할을 하는 종교 중의 하나이다. 도교의 학설은 황제와 노자를 대표로 하고 연년익수를 수련하여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도교는 황로신선도라고도 한다. 학계에서 도교가 성립된 시대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도교가 전국(기원전476-기원전 220)시기에 성립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도교가 동한 시기(서기476 -220)에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필자는 도교 형성을 다루는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한 글이 두 편 있는데, 한편은도교의 기원과 사회적 역할 재인식이라는 제목으로 중국도교2013년 제2기에 게재되어 있고, 다른 한편은 도교 문화 양생 및 현대적 가치라는 제목으로 호남대학(湖南大學) 학보에 게재되어 있다.

필자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마천의 사기등의 문헌에 의하면, 도교는 황제(黃帝)(기원전 2697년부터) 때에 시작되어 선후로 원초(元初)도교’, ‘고전(古典)도교’, ‘제도(制度)도교의 세 가지 형태를 거쳐 발전해 왔다. ‘원초도교는 황제를 대표로 하여 황제 재위 기간 동안 시작되었고, ‘고전도교는 노자를 대표로 하여 춘추전국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제도도교는 양한(기원전202~220) 시기에 형성됐는데 장도릉(張道陵)이 창시한 정일맹위도(正一盟威道)’를 상징으로 한다.

도교는 특히 생명 수양과 인격 완성을 중시하는 문화 종교이다. 기나긴 역사의 발전 속에서도교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수많은 효과적인 수련 방법을 창조하고 창안해 냈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도 성과도 꽤 많았다. 필자가 본문에서 탐구하려는 대상은 존상(存想), 음송(音誦), 좌망(坐忘), 내단(內丹)이다. 이 네 가지를 한 편의 글에 담아 논술하는 것은 이 네 가지 수련법문에 내재된 내용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생명양호에 있어서 기승전결처럼 불가분의 총체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존상음송

 

필자는 존상음송에 대해 따로 검토해 본 적이 있다. 도교문화 십오강》《도교 수행 지요등 초기 저서에서는 주로 존상을 다루었지만 최근에는 학술지에서 전문 논고를 발표하여 음송을 고찰하였다. 본문에서 존상음송을 함께 다루는 것은 내경(內景)의 상()과 외음(外音)의 경()이 서로 대응하여 서로 통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1. 존상

 

존상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형상을 구상함으로써 생각을 집중시키는 생명수양의 방법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말 이래, 학계에서는 존상문제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전개하였다. 그 주안점은 아래의 세 가지 방면에 있다.

첫 번째로 존상의 사고방식과 철학적 의미에 대한 탐구이다. 중국철학사5(1995)에는 류중위(劉仲宇)의 논문 존상 약론도교적 사고의 신비성에 대한 초보적인 탐색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에서 존상은 도교의 가장 상용적이고 특색 있는 사고방식으로써 도교의 법술, 재초과의(齋醮科儀) 등에서 널리 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모든 법술과 과의의 관건이 된다고 지적하였고, 특히 존상은 도교적 사고방식의 본질이며, 또한 도교의 종교적 사고의 신비성의 집중적 구현이라고 강조하였다.

사고의 각도에서 고찰하는 것을 제외하고, 심령 철학의 시각으로 존상을 탐구하는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학이론(學理論)201426기에 개제된 왕웨이장(王維江)<황정경>의 존상술 및 그 현대 심령철학적인 의의라는 논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가 있다.

존상술은 황정경의 중요한 수련법으로써 정신을 집중시켜 형성된 한결같은 생각을 통해 심신을 조화롭고 통일되게 한다.

이 방법은 도가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나 일반인에게나 모두 심신의 건강과 연년익수, 지혜를 깨닫도록 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존상이 인간을 정신적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존상의 현대 심령 철학적 가치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두 번째로, ‘존상의 내포와 기능을 의학적 양생과 의식요법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철학적 사고 방면에 대한 고찰에 비해, 의학적 양생 관점에서 존상을 해독해 내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끈다. 이 방면의 논문은 비교적 많은데, 주요 대표작으로는 중국 기공학1998년 제10기에 실려 있는 위안위차오(袁宇橋)가 발췌 편집한 존상피역요법(存想避疫療法)이다. 이 글은 비교적 짧은 것으로, ‘보충설명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황제 소문 유편(黃帝素問遺篇)등에서 따온 믿을 만한 사료가 뒷받침되어 있다. 논문은 존상의 기술 실행 과정을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의사항을 설명해 실제 연습에 있어 안내 역할을 한다.

중국도교3(1999)에는 장쩌훙(張澤洪)의 논문 도교 재초과의에서의 존상이 게재되어 있다. 이 논문은 비록 도교의식에서 존상의 응용 상황을 고찰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생명 예속의 건강 기능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였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단의(壇儀)의 설립에서든 재의(齋儀)의 실행에서든 모두 존상을 빼놓을 수 없다. 건재(建齋)하고 행도(行道)할 때, 우선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법사는 삼광(三光)의 정기를 끌어들이고 구풍(九風)의 진정(真精)을 움직이며 여러 신령들을 부려 음양의 기를 호흡하며 별자리를 예배하고 결계(結界) 금단(禁壇)한다.

 

이와 같이 더러움을 없애고 금단하는 기능은 작게는 사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크게는 천지를 깨끗하고 밝게 비칠 수 있다. 도교에서는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방해할 수 있어 바른 기운이 아니면 액막이를 할 수 없으며 더러운 것은 본성(本真)을 파괴할 수 있어 진기(真炁)가 아니면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초(齋醮) 정단(淨壇)의 의미는 생기(生炁: 한밤중부터 다음날 정오까지의 기운)를 유동하게 하여 단장을 티끌 하나 묻지 않는 청정지로 만든다. 재초 과의는 비록 치료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그 속에 대의정신(大醫精神)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중서의 결합 잡지(世界中西醫結合雜志)1(2012)에 게재되어 있는 루제(路潔) 외의 논문 심리 신경면역학에서 내경존상 오기 호신(存想五氣護身)’ 방역법의 과학적 함의 탐구에서는 황제내경(黃帝內經)중의 자법론(刺法論)은 역병 예방에 대해 비교적 전면적으로 논술하였으나, 그 중 존상 오기 호신법이 도교적인 색채가 비교적 농후하기 때문에 여태껏 중시 받지 못했다고 지적하였다. 이 논문은 존상 오기 호신법의 과학적 함축을 탐구하였는데, 존상과 생각 등이 뇌 속의 엔케팔린의 발생을 증가시켜 면역 세포의 활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심리신경 면역 각도에서 존상 오기 호신법이 인체의 면역능력을 증강시키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그 방법의 방역 법도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 한층 더 연구하여 발굴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였다.

중의 건강 양생(中醫健康養生)4(2018)에 게재되어 있는 장하이보(張海波)의 논문 존상: 신기한 상상력에서는 존상은 기공의 심성 조절 방법 중의 중요한 내용이며 중의(中醫) 기공 단련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지적하였다. 논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만물은 모두 존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대상은 대부분 수련자에게 익숙한 장면이나 사물이다. 실존적 경물의 구속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존상의 대상은 일상생활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릇 심신의 건강에 좋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심리 세계의 환원을 할 수 있다.

 

논자는 상상력으로써의 존상이 심신의 건강에 갖는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였다. 이 결론은 고전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천적 검증도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존상의 예술미학 연구이다. 1993어문 교학과 연구에 게재되어 있는 샤오공허우(肖功厚)의 논문 존상즉목허견(存想則目虛見)’의 현대 미학적 해석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존상즉목허견은 중국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정귀(訂鬼)란 글 중의 관건 구절이다. 그 뜻은 너무 그리워하거나 명상하다 보면, 눈의 착각을 일으켜 허황하게 귀신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천지간에 귀신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귀신이 있다고 착각하는지 소박하게 밝혔고, 심미 문화적 관점에서 허견의 특질을 분석하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왕충(王充)논형·정귀(論衡·訂鬼에서 뽑은 존상은 비록 도가에서 양생을 위한 자각적 생각 조작(操作)과는 다르지만, 내심 경계(意境)가 생기는 각도로 보면, 허황하게 귀신을 본다는 것은 주의력이 전이되는 객관적인 효과가 심미적으로 몽롱한 느낌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학연구3(2005)에 게재되어 있는 청췬(程群), 판현이(潘顯一)의 논문 도교의 존상과 예술 창작에서의 심미적 상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의 하면도교 수련에서의 존상과 예술 창작에서의 심미적 상상은 상상의 두 가지 유형으로서, 양자 사이에 비교적 큰 차이가 있으면서도 일부 상통하고 유사한 점 또한 존재한다. 이 논문은 두 가지 상상이 이룰 목적, 상상의 방식, 상상의 내용, 상상이 만들어내는 원천, 상상이 주체에 주는 자유 등을 비교하여 양자가 일부 유사한 점(모두 강렬한 감정 체험을 수반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상심미적 상상의 인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도교의 존상이 반드시 강한 감정체험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존상은 사람의 정신을 실제에서 허공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것이 계속 배제하는 과정인데, 이 때에는 감정도 배제의 대상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강렬한 감정 체험을 수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유형의 조작 과정에 강렬한 감정 체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근거가 있다. 이런 존상은 사실상 예술의 심미적 상상이다. 이백(李白)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에서 묘사한 경관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장주(漳州)사범대학 학보2(2011)에 게재되어 있는 청췬(程群)의 논문 도교의 존상종교형태의 심미적 상상도교 미학의 기본 문제 분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가 있다.

 

도교의 존상은 수련, 법술, 재초 법사 활동에서 행해지는 도교 고사(高士)의 창조적 상상 활동으로, 예술창조 과정에서의 예술가의 심미적 상상과 상당 부분 일치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도교 존상은 종교 형태의 심미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교 존상은 몇 가지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도사의 존상은 고도의 자유성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둘째, 도사의 존상은 왕성하고 열렬한 종교적 감정의 전개를 수반한다. 셋째, 도사 존상 중의 심상(意象)은 매우 풍부하고 번잡하다. 그리고 존상의 심상은 대부분 도교의 신선 계보 중의 신령, 신선, 선계의 영물 등등이다. 넷째, 도사의 존상 활동은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도문 중의 사람들은 존상을 통해 인간과 신 사이의 교류와 의사소통을 실현할 수 있으며, 어떤 구체적인 종교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청췬의 이 논문의 결론은 2005종교학연구에 게재되어 있는 그와 판현이의 논문 도교의 존상과 예술 창작에서의 심미적 상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연구 성과에 비해 더욱 구체적으로 논술하였고, 문제를 더욱 객관적으로 다루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시간의 세례가 연구 사업에 있어서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존상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주로 종교철학, 의학양생, 예술미학의 세 가지 방면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존상 발생의 심리적 메커니즘, 심신의 상호작용 과정과 그 원리에 관해서는 여전히 깊이 고찰할 필요가 있다.

도경을 살펴보면, ‘존상에 관한 여러 가지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종리권(鍾離權)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비전 정양진인 영보 필법(秘傳正陽真人靈寶畢法)권하 내관제구(內觀第九)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 법이 도에 맞으니, 흔히 말하는 존상의 이치와 같으며, 또한 선승(禪僧)이 입정할 때와 같기도 하다. 마땅히 신선들이 사는 명산 승경을 택하여 방을 마련하고,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고, 가부좌를 틀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을 걸치며, 악고(握固: 도교 양생 수련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종의 손의 자세인데, 엄지손가락을 네 손가락 아래에 구부림)하고, 천지간 각종 신령을 생각하며, 눈을 가볍게 감고, 마음속의 잡념을 없애야 한다.

 

위 글에서 말하는 이 법은 바로 내관법이다. 저자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내관법은 대도에 부합하여 흔히 말하는 존상의 이치와 같고, 좌선하는 스님들이 입정하는 모습과 같기도 하다. 이런 내관법을 실시하려면 좋은 환경을 찾아가 예절에 따라 분향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와 옷고름을 풀고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아 존상해야 한다.

 

내관의 법을 존상의 이치처럼 여기는 이상, 그렇다면 우리는 거꾸로 존상은 내관법과 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내관으로부터 접근하면 대체로 존상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전 정양진인 영보 필법(秘傳正陽真人靈寶畢法)의 권하 내관제구(內觀第九)에서는 내관과 존상을 관련시키고 나서 내관의 일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정좌할 때 소리가 들리고 광경도 보인다. 이 때는 소리나 광경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만약에 끌려가면 수많은 마군(魔軍)을 끌어내어 마음의 평온함을 교란할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큰불이 타오르고 불빛이 높이 솟아오른다는 것을 상상하는데도 몸은 조금도 흔들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의 과정을 분신(焚身)’이라고 한다. 거센 불길이 타오르면 마군은 자연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 음흉함은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 하늘과 땅 사이에 불길이 치솟아 모든 것을 태워버려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상상을 한다. 이어서 거마와 가무, 덮개 달린 마차를 탄 고관과 귀인들, 비단 옷을 입는 귀부인과 미녀들, 온통 번화하고 번창한 광경인데, 사람들이 즐겁고 대오를 이루며, 오색구름이 솟아올라 마치 천계에 오른 것과 같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천계에 올라가게 되면, 수많은 높이 솟은 푸른 누각, 꼬불꼬불 뻗어있는 안뜰과 가옥, 도처에 있는 진귀한 금옥, 꽃과 과일, 연못과 정자들을 볼 수 있다. 잠시 후, 특이한 향기가 사방에서 풍기며, 기악(妓樂)의 소리가 요란하다. 손님과 친구들이 가득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태평을 함께 축하하고 진귀한 노리개를 서로 교환한다. 이러한 광경은 비록 음마군(陰魔軍)이 아니지만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수련자들이 외부의 일을 저버리고 외로움을 달게 받아들여 자연에 잠적하거나 벽지에 몸을 숨기고 사는 만큼 마땅히 절념하고 정을 잊어야하며, 거동을 스스로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내관 존상은 능동적이지만 경물 미련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한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도학에서의 주장에 의하면, 존상은 많은 법문(수행방법)이 있어 체외의 경치뿐만 아니라 체내의 경치도 존상할 수 있다. 당나라의 도가의사 손사막(孫思邈)천금요방(千金要方)에서 영기(迎氣)’ 존상법을 소개하였는데, 공자의 사무사(思無邪)’를 인용하여 서술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마땅히 항상 황제내시법을 연습해야 한다. 계속해서 존상하고 생각함으로써 오장을 경()을 매달아놓은 것처럼 오색이 분명하게 보이게 해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정오의 방향으로 향하여 두 손을 무릎 위에 펴놓고 마음속의 으로 기를 보되, 위로는 머리꼭지에 오로고 아래로는 용천(龍泉)까지 내린다. 매일 이렇게 하는 것은 영기라 한다. 항상 코로 숨을 몰아쉬고 입으로 숨을 토하되, 숨을 토할 때 입을 조금 벌려야 하고 크게 벌리면 안 된다. 숨을 적게 내쉬고 숨을 많이 들이마시기 위해서이다. 들이마시고 싶을 때마다 복부까지 기를 보낸다. 기를 들이마시는 것은 주인을 위한 것이다.

 

이른바 황제내시법이란 사실상 바로 존상이다. 물론 허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오장이 매달려 있는 (경쇠)’처럼 소리도 있고 색채도 있어 아주 분명하다. 구체적인 조작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을 유의하여 아침에 일어났을 때를 택한다. 둘째, 자세를 유의하여 반드시 양손을 무릎 위에 평평하게 펴야 한다. 셋째, ‘마음의 눈으로 내관한다. 즉 육안으로 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지해야 한다. 넷째, 내관 선로를 유의하여 오장의 기가 위로는 머리꼭지에 오로고 아래로는 용천혈(湧泉穴)까지 내리게 한다. 다섯째, 내관 존상 시의 납기(納氣)’를 많이 흡입하고 적게 내쉼으로써 배를 불려 격막을 밀어주고 내장을 마사지하는 효과를 얻는다.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내관 존상의 특징은 영기에 있다. 소위 ()’이란 것은 우선, 자신의 내기(內氣)의 행진을 생각으로 맞이하는 것이고, 그 다음, 내기의 작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유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내관 존상은 주인을 위한 것인데, ‘생각에 비해 말하자면 는 손님이니 그래서 생각이 주인을 대신하여 주동적으로 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존상의 조작 요령은 무엇일까? 당나라의 저명한 도사 사마승정(司馬承禎)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란 나의 신들을 모아두는 것을 일컫고, ‘이란 나의 몸을 생각하는 것을 일컫는다. 눈을 감아야만 자신의 눈과 마주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다잡아야만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마음과 눈이 모두 내 몸을 벗어나지 않아야만 자신의 정신이 소모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존상은 점점 좋은 경지로 들어갈 것이다. 만약에 눈이 자꾸 남만 쳐다보면 자기의 마음도 따라서 흘러갈 것이고, 마음이 늘 다른 일을 생각하면 눈도 저절로 바깥일을 보는 데 정신없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것만 추구하고 자신을 관조하지 않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고 요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이라 하고, 정은 복명(複命)이라 한다. 본성이 존속되어 있는 것은 우주 만물의 오묘한 문()이다. 존상이 점점 좋은 경지로 나아가면 도를 배우는 데 절반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사마승정은 역경점괘의 요지에 따라, ‘존상점문(漸門)’ 계열에 귀속시켰다. 소위 ()’이란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뜻이 있다. 이렇게 보면, ‘존상은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조금씩 해 나가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존상의 그 사상 취지는 수심(收心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인즉, 평소 외부의 사물을 쫓던 마음을 자아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근복명(歸根複命)이다.


2. 음송

 

음송문제와 관련하여, 학계의 연구 성과가 비교적 적다. 중국에서 가장 큰 논문 사이트인 지망(知網)에서 세 편만 찾을 수 있다.

종교학연구1(2007)에 게재되어 있는 푸흥장(蒲亨強)의 논문 <노군 계경(老君戒經)> <노군 음송 계경(老君音誦誡經)> 중의 도교음악 사료 연구에서는, 이 두 경전이 모두 북위 시대의 천사도 지도자 구겸(寇謙)이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연결시켜 그 중의 송사(頌詞)’팔윤악(八胤樂)’ 등 음계를 고찰하였다.

종교학연구(2015)에 게재되어 있는 류토(劉陶)의 논문 <노군 음송계경(老君音誦誡經)>에서의 유거(劉舉)’ 약론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가 있다. 노군음송계경에서의 유거(劉舉)’는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특별히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기호인데,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하였을 무렵 나타난 유씨(유수(劉秀)를 가리킴)가 덕을 쌓아 천자가 된다는 것이나, “유씨가 다시 일어나고 이씨는 보좌한다는 것은 참위신학에 뿌리를 둔, 오래된 참기(讖記:적어 둔 참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한 멸망 후, 민간 도교 교단은 유씨 참기를 자신들의 체계에 포함시키고, 또한 말세론으로 그것을 개조하여, 도교의 특색을 갖춘 참기로 만들었다. 논문의 내용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류토의 이 논문은 일종의 역사 연구이지, 음악학 연구가 아니다.

필자는 2016중주학간(中州學刊)에 논문 도가 음송 및 그 양생치료 효능 연구를 발표한 바가 있다. 졸문은 음송에 관한 전문적인 논술로, 태상노군 계경(太上老君戒經)노군 음송계경(老君音誦戒經)에 대한 토론에 한하지 않고 이 두 경전을 바탕으로 음송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 그리고 기능 등을 탐구하였다. 졸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가 있다. 도가의 음송은 유구한 연원을 가진 일종의 소리로 제어하는 기술로서, 음계에 따라 노래하게 되며 고정된 선율을 가지고 있어 비록 선가(仙歌)나 도곡(道曲)과는 다르지만, 이미 음악의 기본 기능을 갖췄다. ‘음송(吟誦)’음송(音誦)’을 비교해 보면 양자가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음송(吟誦)과 음송(音誦)은 모두 글자에 근거해서 음을 형성하고 기를 운용해서 발성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송(音誦)은 문독(文讀) 음성을 중히 여기는 것으로, 언어 본체에 더욱 부합되는데, 음송(吟誦)은 장엄하고 정대하며 고묘하고 조화로운 음률을 중요시한다. 도가의 독특한 기예로서, 음송(音誦)은 성정을 도야하고 대도를 느껴 통하는 신성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실행 과정에서 음송 주체는 우보(禹步), 존상 등의 방식에 맞추어 심성(心性) 수양을 하고, 객체를 감지하여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한다. 도가에서 봤을 때, 음송은 직접적인 감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을 집중시키고, 내기(內氣)의 운행을 유도하여, 병을 치료하고 양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낡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창조하는 자연보완 법칙을 따라, 적극적이고 신중하게 도가의 음송 자원을 개발하고 운용하면, 현재와 미래 사람들의 건강한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송나라의 도사 여태고(呂太古)가 편찬한 도문 통교 필용집(道門通教必用集)1 긍식편(矜式篇)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서(神瑞) 2년 여름 41(음력), 홀연 두 사람이 용을 타고 깃발을 들고 와서 태상노군이 오셨다고 말하였다. 잠시 후, 태상노군이 구룡옥차(九龍玉車)를 타고 신선들의 안내와 호종을 받아 산꼭대기에 강림하셨다. 겸지(謙之)가 진심으로 예를 올리자, 태상노군이 왕방평(王方平)을 명하여 겸지를 앞으로 인도하고 나서 내가 중악(中嶽) 집선궁(集仙宮) 주인의 보고를 받았는데, ‘장도릉(張道陵) 등선 이래 수련자들이 가르침을 받을 데가 없게 되었다는데, 지금은 중악 도사 구겸지(寇謙之)의 행보가 자연에 부합함으로 스승의 자리에 앉기에 알맞다는 것이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천사의 임무를 맡기고 운중 음송 신과경(雲中音誦新科經)으로 너를 훈계할 것이니, 그것을 널리 알려 나라를 보좌하고 세상을 도우며 백성을 교화해라고 말씀하셨다. 겸지가 위임을 받고 나서 보니, 오색의 누대와 전각들이 모두 사라졌다. 겸지는 그 후로 의지와 품행이 날로 새로워진다.

 

이 단락은 긍식편·역대 종사 약전(矜式篇·曆代宗師略傳)구겸지(寇謙之)’ 절에 보인다. 소위 신서(神瑞) 2년은 바로 서기 415년이다. 이 글은 그 당시 구겸지가 태상노군에게 운중 음송 신과경을 전수받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겸지가 명을 받아 나라를 보좌하고 세상을 도우며 백성을 교화하는 결심을 보여주었다. “태상노군이 오셨다는 것은 도가에서 단을 설치하고 붓을 내리는 장면(마치 존상의 상황)을 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글에 언급된 음송은 남북조 시대 제도 도교가 수송(修誦)’을 중시하였다는 많은 정보를 넌지시 드러냈다. 필자는 여태고(呂太古)가 특별히 음송글자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는 바로 화하송(華夏頌)과 보허성(步虛聲)”이라는 주를 단 점에 주목했다. 이른바 화하송이란 마땅히 낭송사의 이름이고, ‘보허성이란 음송의 음계이다.

보허성의 유래에 관하여, 남북조 시대 유경숙(劉敬叔)이원(異苑)5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은 자 자건(子建)이고, 어산(魚山)에 올라 동아(東阿)에 임했을 때 문득 산굴에서 독경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명석하고 투철하며 먼 골짜기까지 울려 퍼져 숙연하고 영기가 있었다. 조식은 자신도 모르게 옷섶을 거두어들이고 경의를 표하고 마침내 거기서 여생을 보내는 마음이 생겨 바로 모방하였다. 지금의 범창(梵唱)은 모두 조식이 본떠 만든 것이다. 또 한 가지 설이 있다. 진사왕이 유산하다가 갑자기 공중에 맑고 멀리 울려 퍼지며 우렁찬 독경 소리를 들었다.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그 소리를 따라 적어 뒀는데 그것이 바로 신선성(神仙聲)’이고, 도사들이 이를 본받아 보허성(步虛聲)’을 만들었다.

 

조식(曹植, 192-232), 패국(沛國) (지금의 안후이성 보저우시) 사람으로, 조조(曹操)와 무선변황후(武宣卞皇後)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동양무(東陽武)에서 태어났고, 생전에 진왕(陳王)이었다가 죽은 뒤 ()’라는 시호를 얻어 진사왕(陳思王)이라고도 한다. 유경숙의 이원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보허성은 조식이 산에 들어가 들은 것을 계기로 하여 전해진 것이다. 그 속에 말하는 독경소리는 조식이 모방하고 만들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원시적인 성운이 있었으나, 후에 (도사들이) 이를 모방하고 개조하여 비로소 보허성을 만들었음을 말해 준다.

정통도장(正統道藏)에 진()나라의 동진태상 소령동원 대유 묘경(洞真太上素靈洞元大有妙經)이 수록돼 있다. 그 중의 태제군게 대유 묘찬(太帝君偈大有妙贊)에서는 보허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화(대자연의 발전과 변화) 초기는 어둑어둑한데, 아침의 노을빛이

아득히 바람에 흩날린다.

텅 빈 고요한 어둠 속에 하늘과 땅은 넓고 명랑하게 둘로 갈라졌다.

정화를 응집하고 알을 품는 것처럼, 응결하고 화육하여 도관을 생성한다.

순수한 본성으로 마음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으면, 어느덧 어둠을 깨뜨려

광명을 맞이할 것이네.

이제야 비로소 근심이 사람을 늙게 하고, 운이 좋으면 다시 은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 속에서 보허를 읊으며, 구불구불 감돌아 옥경산(玉京山)을 예배한다.

허무한 경지에 무릎 꿇고 절하고, 신기한 향기가 바람에 흩날린다.

순식간 천제의 궁궐들이 허무를 따라 날아가 버렸네.

 

이 찬사(贊辭)는 천지조화의 초기부터 시작하여 음과 양 양의(兩儀)가 분리하고 생명이 육성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인생이 짧기 때문에 하늘나라로 되돌아가는 기술을 연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의 옥경(玉京)’은 도교가 지향하는 천상 신선의 경지이다. 남북조 시대 주무제(周武帝)의 지시로 편집된 무상비요(無上秘要)등의 기재에 따르면, ‘옥경산의 정식 명칭은 영보 현도 옥경산(靈寶玄都玉京山)’이다. 동현 영보 옥경산 보허경(洞玄靈寶玉京山步虛經)에서는 개천수산(蓋天首山)’, ‘미현상산(彌玄上山)’, ‘나현동허산(羅玄洞虛山)’고상진원산(高上真元山)’, ‘중보유겁인산(眾寶幽劫刃山)’, ‘무색대보산(無色大寶山)’주관동현산(周觀洞玄山)’경화태진산(景華太真山)’불사의산(不思議山)’태현도옥경태산(太玄都玉京太山)’등 총 열 가지 호칭이 있는데, 줄여서 현도산(玄都山), 옥산(玉山), 소대(蕭台), 옥산상경(玉山上京), 울라소대(鬱羅蕭台)라고도 한다고 주장한다. 동현령보옥경산보허경은 이와 같이 주장한다. “현도옥경산은 삼청(三清) 위에 있으며 색채도 티끌도 없다. 산 위에 옥경금궐(玉京金闕) , 칠보현대(七寶玄台), 자미상궁(紫微上宮)이 있으며 산 속에 삼보신경(三寶神經)이 있다. 산의 팔방에는 저절로 칠보 나무가 자라나는데, 한쪽에 한 그루씩 자라나 여덟 그루가 팔방에 가득차고 온 하늘을 뒤덮고, 삼계를 망라한다. 현도옥경산은 무상대라천(無上大羅天)의 태상무극허황천존(太上無極虛皇天尊)에 의해 다스려진다. 그 산림과 궁실은 모두 제천(諸天) 성중(聖眾)의 명부가 배열되어 있다. 제천의 성제왕(聖帝王), 고선진인 등 무수한 선인들이 한 달에 세 번씩 배알(拜謁)하는데, 단향목과 영향풀(靈香)을 피우고 비선들이 꽃잎을 뿌리고 칠보현대를 세 바퀴 돌면서 공동가(空洞歌)를 읊조린다. 이 때, 제천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수많은 기생들이 연주하는 운오(雲璈, 원나라 때 궁중에서 쓰던 타악기의 일종) 소리가 명랑하고 깨끗하다. 진비(真妃)들이 일제히 정절을 휘두르며 노래하고, 늠름한 얼굴의 선동들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옥녀가 천천히 나아가며 나풀나풀 춤춘다. 덩실덩실 춤추는 아름다운 자세가 참으로 침착하고 우아하다.” 도교의 삼십육천의 최고층인 대라천승경(大羅天勝境)에는, 현도 옥경산을 중심으로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신성한 공간구상에 기초하여 제도도교에서는 불사를 행하고, 과의 단장을 설치할 때 가운데 있는 것을 옥경산으로 하여 하늘의 최고 경지를 상징하곤 한다. 이러한 설치에서 알 수 있듯이, 도가 사람들은 초의를 행할 때 옥경산을 빙빙 돌아야 한다. 따라서 보허를 읊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특수한 동작 체계에 맞추어 전개한 것으로 음송(音誦)’의 신성성과 특정한 리듬성을 구현하였다. 이 점은 동현령보옥경산보허경(洞玄靈寶 玉京山步虛經)에 기록된 동현보허음(洞玄步虛吟)(열 수 중의 두번째)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초단의 핵심을 도는 것은 마치 구름 위를 밟는 것과 같으며, 도의 규율 속에서

걷는 것과 같다.

입을 열어 제일(帝一)의 존귀함을 찬송하다 보면, 몸은 저절로 조양된다.

팔해(八海)의 선동에게 출발 준비를 명하고, 고선이 손을 잡고 재초의 장소로 왔다.

제천(諸天)에서는 향기로운 꽃을 끊임없이 부리고, 신령이 찾아오는 바람이

쓸쓸하게 불기 시작했다.

숙원이 일찍 수명의 근본을 안정시켰으니, 흥미도 틀림없이 높은 기준에

맞추게 될 것이다.

태상노군 앞에서 마음껏 즐기라, 만겁은 절대 다시 시작하지 않으리라.

 

이른바 선행(旋行)’이란 옥경산의 상징인 초단의 핵심을 도는 것이다. 당말 오대 고도(高道) 두광정(杜光庭)󰡔태상황루재의1권에서 은 이 사를 베껴 쓰면서 보허선요(步虛旋繞)’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를 통해 보허음송의 조작이 빙빙 도는 과정에 이루어졌음을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빙빙 도는 것은 과의 실행자들의 집단 행위이니만큼, 보허 음송(音誦)은 반드시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하므로, 리듬과 운율을 강조하는 것은 그 중요한 기술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리듬과 운율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살운강보현기에서 대체로 그 속의 오묘함을 체득할 수 있다. ‘운강(雲綱)’이란 말은 오늘날 운종(雲叢)’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지만, 필자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운강(雲綱)’운강(雲罡)’의 차용으로 봐야 한다. 소위 ()’이라는 것은 천강성(북두칠성)의 두병으로써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북두칠성은 늘 상운이 감돌기 때문에 운강(雲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두칠성은 사람들에게 방향을 잡아주고 강령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운강(雲綱)’으로 확대되었다. 도교 과의를 행할 때 항상 천강성을 밟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역경(易經) 상수학(象數學) 중의 낙서팔괘(洛書八掛)’ 방위(方位)의 변환과 맞물려 특별한 리듬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기(玄紀)’는 바로 현묘한 기강이다. 무상비요(無上秘要)31 우경숙분품(遇經宿分品)에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일곱 명의 천신들이 제정한 기강은 하늘에 돌아가는 상등의 글월인데, 어떤 것이 운으로 합쳤고, 어떤 것이 어떤 것이 상하가 서로 만나 글자의 음이 된다. 사람의 진짜 이름을 명시하는가 하면, 단음절어나 다음절어를 겸용하기도 한다. 모두가 먼 옛날 원기를 낳은 태허지경에서 나온 것이다. 뛰어난 성인들이 이 글들을 모아 엮음으로써 종교 경문을 천명하였다. 후학들이 그 내용을 탐구하여 수련의 비결을 얻어 자연히 등선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육합(六合: 상하와 사방)이 형성되고 칠상(七傷, 일곱 가지 병의 원인)이 또한 생겼다. 이를 중요시하면 온전할 것이지만, 이를 소홀하면 망할 것이다. 인연이 있는 자가 부지런히 정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언덕에 은거하면서 장기간 정오 불식을 준수하고, 멀리 깊은 산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리고, 아침과 저녁에 독경하며, 여러 잡념을 버려 마음속에 원시 혼돈의 기운을 주입시키면, 심오한 도를 얻어 대낮에 천계에 날아가 신선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칠성(七聖)’은 북두칠성을 주관하는 일곱 명의 천신을 가리킨다. 위 글의 뜻은 다음과 같다. 일곱 명의 천신들이 제정한 기강은, 천상도를 빙빙 도는 상등의 대작을 통해 표현된다. 이러한 대작은 운율이 있는 것이다. 보허 음송(音誦)은 이런 대작에 맞추고, 보법(步法)의 진퇴는 북두칠성의 모양에 부합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바로 백관자조리(百關自調理)’이다. 즉 인체의 관절 맥락을 원활하게 하여 장애가 없게끔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조작 규정에서, 우리는 또 초단 법사의 음송 과정에서 생명 경지의 천인합일을 보게 되었다. 도교의 소위 칠보현대(七寶玄台)’는 하늘에도 있고, 초단에도 있기 때문이다. 초단의 중심인 옥경산을 둘러싸 보허(步虛)로 음송(音誦)하는 것은 천상계를 감통하여 원기가 유행하는 생명의 이상적 상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3. 음송과 존상의 관계

 

이제 우리는 음송존상이 두 가지 수련법의 관계를 대략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음송존상이 아니지만, 행하는 과정에는 존상이 수반된다. 음송할 때 칠보현대를 돌면서 낭송하고 노래한다. 돌 때 천상 칠보현대에서 신선이 모여 경을 듣는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이런 상상은 예술적 상상과 서로 겹치는 효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음송의 실행자가 스스로를 신선 행렬에 포함시켜 특별한 천인합일(天人合一)’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때는 자아(自我)는 내가 아니라 도와 합진(合真)’이라 한다. 이로부터 전통적인 음송존상을 빼놓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존상이 극에 달해야만, 비로소 천지자연의 주파수 궤도와 연결할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41장에서 말하는 대음희성(大音希聲)’이 바로 이런 원리다.

그리고 존상을 보면 그 과정도 음률 조화 조작에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현도율문(玄都律文)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항상 평단(平旦), 일중(日中), 일입(日入) 후에 오방과 오기를 존상하는데, 동방의 청기가 청룡이 되고, 서방의 백기가 백호가 되고, 남방의 적기가 주작이 되고, 북방의 흑기가 현무가 되고, 중앙의 황기가 자기 몸이 된다. 그러고 나서 오방음을 조화시켜서 이를 음송한다. 율법을 어긴 자는 벌로 삼백일 동안 기도하고, 주관은 좌천된다.” 이 대목은 우선 존상의 시간을 말했다. 율문에서 다음 세 개의 시간대를 택했다. 첫째, ‘평단(平旦)’은 태양이 지평선에 머무를 때로 대개 묘시(卯時,오전 5시에서 7시까지) 쯤이다. 둘째, ‘일중(日中)’은 바로 정오이다. 셋째, ‘일입후(日入後)’는 대개 유시(酉時, 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각)’이다. 이에 근거하여 보면, 현도율문에서 말하는 존상은 시간의 리듬을 엄격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바로 음송에서 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다음, ‘존상의 대상은 오방의 기(). (), (), (), (), () 이 다섯 가지 색깔이 오방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오장, 오방, 오음과 상호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존상의 대상에도 음률의 소통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존상의 조작 과정은 마지막에 이르러 오방음을 조화시켜 이를 송축해야 한다.’ 그 중 오방음은 바로 동남중서북의 오방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음조, 즉 각(), (), (), (), ()이다. 이 오음은 전통의학에서 오장을 조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꼽힌다. 황제소문·영추경(黃帝素問·靈樞經)10 사객 제칠십일(邪客第七十一)에서는 이렇게 논술하고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이에 사람은 머리가 둥글고 발이 네모진 것으로 상응한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사람은 눈이 두 개 있다. 땅에는 아홉 주()가 있고, 사람에게는 구멍 아홉이 있다. 하늘에는 비바람이 불고, 사람은 기쁨과 노여움이 있다. 하늘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사람에게는 음성이 있다. 하늘에는 사시가 있고, 사람은 사지가 있다. 하늘에는 다섯 음이 있고, 사람에게는 다섯 장기가 있다. 하늘에는 여섯 가지 양율(陽律)이 있고,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다. 하늘에는 겨울과 여름이 있고, 사람에게는 한열이 있다. 하늘에는 해가 열 개 있고, 손에는 열 손가락이 있다.” 영추경은 인체를 천지의 시공간과 낱낱이 연관시켰다. 그 중 오음오장의 관계에 관한 논술은 우리가 도가 존상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음악 양생과 문화 치료에도 도움을 주었으며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 ‘존상에서 좌망으로의 과도

 

존상음송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좌망(坐忘)’의 수련법과도 관계가 있다. 이러한 정신적 코스를 따라 추적해 보면 내단 수련의 관련 내용도 볼 수 있을 것이다.

 

1. ‘존상좌망의 기초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학자 사마승정(司馬承禎)천은자(天隱子)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좌망하는 자는 존상으로 얻으며 존상으로 잊는다. 도를 행하는데 그 행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좌선의 의리가 아니겠는가? 보고도 못 본다는 것은 망각의 의리가 아니겠는가? 무엇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그것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라고 한다. 무엇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가? 그것이 형체가 모두 사라져서라고 한다. 천은자(天隱子)는 눈을 감아 보지 않았는데, 만약에 도를 깨닫고 물러났으면, 늘 이렇게 말했다. “도는 과연 나에게 있구나. 내가 과연 누구인가? 천은자가 과연 누구인가?” 그리하여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 이르러 아무 것도 알지 않았다.   

 

천은자의 주장에 따르면 좌망존재에서 비롯된다. 처음에는 존상은 경지가 수반되는 조작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면, 도를 닦는 것은 존상해 온 그 경지를 내면에 계속 남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차원에 도달했으면 행하지 않고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소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욕심이 없으며, 아무런 사고도 없는 상태다. 소위 보지 않는것은 바로 형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 존상하여 일정한 형체를 얻고 나서 형체에 집착하지 않고, 물아양망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좌망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사마승정은 좌망론을 지어 이를 논술하였다. 이 책의 서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지가 분리되고 천, , 인 삼재의 지위가 정해졌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하고 오장의 기가 몸에 모여들어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 후에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숨기고 정신을 부려먹으며, 기를 교란시키고 정기를 소모하기 때문에, 천지와 합치지 못한다. (이에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짧고 곡절이 많은 인생을 택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다. ()에서는 천하 만물의 근본 원리를 궁구하고, 자기의 심체 자성을 철저히 간파함으로써, 자기의 운명을 바꾼다고 한다. 노자(老子)에서는 마음은 텅 비게 하고 배는 채워 준다고 하고, 또한 항상 무욕해야만 비로소 그 지극히 작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논어에서는 공자님은 네 가지의 마음이 전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으셨으며, 기필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셨으며, 이기심이 없으셨다고 한다. 맹자에서는 성선설을 주장하고, 또한 나는 자신의 호연지기를 잘 키운다.”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말씀들은 모두 생명의 요절을 나타낸 것이다. 저는 장서를 뒤져 보다가 당나라 정일(貞一) 선생의 좌망론(坐忘論)일곱 편과 뒤에 부기한 수익(樞翼)을 얻었다. 이 책은 식견이 아주 비범하다. 우선, 존경하며 믿는 것으로 사람을 인도하여 마음을 미혹시키지 않게 한다. 그다음, 수행과 무관한 모든 일을 단절하고, 마음을 단속하여 취사선책을 하고, 몸이 고요하고 마음이 밝게 한다. 그래서 이제 진관(真觀)이 그 뒤를 따를 차례다. 내외에 아무 것도 없어야 연후에 태정에 몸을 둘 수 있으니, 그래서 득도라고 하는 것이다. 상술한 것은 모두 점차적으로 심화시키는 좌망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요컨대, 좌망은 무물(無物)하고 무아(無我)하며 잡념이 전혀 없을 뿐인 것이다. 경신편(敬信篇)에서 직언한 바와 같이, 안에서는 자기의 몸을 느끼지 못하고 밖에서는 우주를 모르며, 도와 혼돈하여 하나가 되어 모든 근심을 내쫓아버린다. 이러한 경언(經言)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만약에 좌망의 묘함을 형성하였으면, 정신과 기는 자연히 서로 의지하며 지키고, 백맥(百脈)이 편안하고, 삼관(三關미려혈, 협척혈, 옥침혈)이 유창하여, 천양(天陽:하늘의 양기) 와 진기(真氣: 원기)가 몸에 들어와 머무를 것이다. 이것은 오래 살 수 있는, 외부로 전해지지 않는 이치로, 자고로 존숭과 존중을 받아 왔다. 신선이 세상 걱정으로 인하여 하는 수 없이 이를 누설하였다. 학자들이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하며, 부지런히 시행하고, 옛사람의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공연히 자포자기한다는 비웃음을 받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정말(丁未) 중양인데, 이 책을 판목에 새겨 널리 보급하려고 한다. 진정거사(真靜居士)가 삼가 서를 쓴다.

 

서언의 작자 진정거사(真靜居士)’가 누구인지 지금은 이미 고증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정일선생(貞一先生)’좌망론을 저술하였다는 주장은 반드시 그럴 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조대에 대해서는 조대의 이름이 아니라 아조(我朝)’ 또는 본조(本朝)’라고 일컫는다. ‘진정거사정일선생앞에 ()’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은 이상, 서언의 작자는 당나라 사람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진정거사의 서언은 처음에는 주로 좌망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는 천지인삼재 관계부터 말하고, 나아가서 경전의 말을 인용하여 선인들이 천성 함양을 중시하였음을 밝혀냈다. 이로부터 보면, ‘좌망을 실시하는 방법은 바로 성명의 요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좌망의 의미와 효능에 대해 한바탕 이야기한 후, 서언은 정일선생의 좌망론의 기본 내용을 정면으로 소개하고, 일곱 편으로 구성된 사상을 대략 소개하였다.

 

2. 좌망 수신의 기본 절차

 

문헌 자료 조사를 통해, 우리는 좌망론은 두 가지 판본이 있으며, 최초의 판본이 북송(北宋) 장군방(張君房)이 편찬한 운급칠첨(雲笈七籤)94에 수록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남송(南宋) 증조(曾慥)가 편찬한 도수(道樞)2좌망편상(坐忘篇上)이라는 발췌본이 수록되어 있다. 정통도장(正統道藏)태현부(太玄部)’에는 좌망론7편이 수록돼 있는데, 사마승정자미(司馬承禎子微) 가 편찬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저자는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무릇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생명이다.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대도(大道)이다. 사람에게 도가 있는 것은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 마른 바퀴 자국 속에 갇힌 물고기조차도 물 한 바가지를 얻어 연명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일찍 대도를 잃은 속인들은 대도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비록 사람들은 끊임없는 윤회가 안고 있는 고통을 싫어하면서도 생사윤회를 일으킬 수 있는 업력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흔히 도덕의 명성을 중시하면서도 늘 도덕에 부합하는 행위를 경시한다. 본말이 전도된 그런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궁지에 몰려서야 비로소 다른 길을 찾으려 하고, 완전히 방향을 잃어야만 비로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이미 나이가 들어 원기가 쇠퇴하였으니, 이때 아무리 많이 후회하고 한탄해도 벌써 때가 늦었다. 그래서 빈도(정일선생 자신)는 수진(修真)에 마음이 있는 인사를 위해, 여러 경서의 요지를 훑어보고, 이를 심법(心法)에 상응하는 조문(條文)7대 항목으로 간약하였고, 마지막 장에서는 다시 이 일곱 가지 항목을 좌망 수익(樞翼)으로 간단히 요약해 놓았다.

 

사마승정은 우선 생명의 귀중함, 즉 생명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가 생명에 있어서 물고기의 관계와 같기 때문에,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도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세상의 속물들이 살아있는 것을 즐기고 죽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마치 도덕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명예를 사랑할 뿐 진정한 실제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생활 방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바로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사마승정은 고경의 요지를 탐구하고 심법의 요의를 추구한 끝에 일곱 편의 글과 보조적인 설명을 지어 좌망론이란 이름을 붙였다.

신심을 닦고 품성을 함양하는 법문으로서, 좌망은 어떻게 하는가? 사마승정은 이를 경신(敬信), 단연(斷緣), 수심(收心), 간사(簡事), 진관(真觀), 태정(泰定), 득도(得道)의 일곱 단계로 요약했다.

이른바 경신이란 수도의 신념을 세우는 것이고, ‘단연이란 속된 일이 있는 인연을 끊는 것이고, ‘수심이란 정좌할 때 마음속에 잡념이 한 점도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지 않다는 것이고, ‘간사란 경중을 가려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버리는 것이며, ‘진관이란 무욕의 마음으로 대도의 현묘함을 바라보는 것이고, ‘태정이란 외형은 말라 죽은 나무와 같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은 불기 없는 재처럼 염원이 없으며, , , , 혀 등 여러 가지 감각이 없고, 헛된 일을 욕심낼 염려는 없으니, 극히 고요하고 담담한 지경에 이르러 수정(修定)에 마음이 없지만 수정(修定)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득도란 좌망 수지(修持)를 통해 마침내 형체가 도에 따라 통하게 되어 신()과 합일된다는 것이다. 이 일곱 가지 단계에 대하여, 사마승정은 모두 경전을 인용하여 알기 쉽게 논술하였다.

경신에 대하여, 사마승정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습도의 근본은 굳은 신념에서 비롯되며, 덕행의 기초는 성실하고 공손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신념이 굳은 사람일수록 청정한 도리를 익히면 반드시 오래갈 수 있고, 마음이 지극한 사람일수록 그 덕행이 더욱 사방에 널리 퍼지게 된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찌하여 전국시대 사람인 변화(卞和)가 박옥(璞玉)을 초왕에게 바쳤으나 오히려 초왕의 오해를 받아 두 다리가 잘리게 되었다. 또 오자서(伍子胥)는 처음 대승을 거둔 오왕(吳王)을 간언하여 오나라를 보전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오왕의 노여움을 받아 사형 당했다. 이것들은 모두 유형적인 사물에 몰두하다가 마음이 이미 흐려져 상황을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극히 현묘한 도는 유형유색의 세계를 초월하고, 몸속의 참된 성품은 망상이나 욕망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다. 희귀하고 미묘한 말을 듣고 굳게 믿고, 허황된 허상을 듣고도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은 좋은 근성을 가진 사람이 좌망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신념은 청정 도법을 닦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러러보고 존중하며 결심하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근면하고 고행을 하면 반드시 청정의 도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장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형체를 잊고, 자신의 총명을 버리고, 형체와 지능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도와 하나가 된다. 이것은 좌망이라고 한다.” 좌망을 행하는 사람이 무엇을 잊어버릴 수 없겠는가? 안에서는 자기의 신체를 느끼지 못하고, 밖에서는 이 우주도 보이지 않으며, 도와 깊이 합쳐 속세의 만물을 더 이상 사려하지 않고 완전히 내버린다. 장자에서 말하는 대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말은 평범하나 뜻은 깊다. 그 참뜻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도 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자기의 몸속에 보물이 있으면서도 오히려 몸 밖으로 역행하여 찾으니, 어찌 찾을 수 있겠는가? 도덕경에서는 믿음이 부족해서 불신하게 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마침내 불신으로 인한 재앙을 초래할 것이니, 도를 믿지 않는 자는 무슨 도를 바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사마승정이 보기에는, ‘경신(敬信)’ 이 두 글자는 바로 도덕의 근원이다. 나무처럼 뿌리가 깊어야만 튼튼하게 자랄 수 있으니, ‘경신은 수도의 보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배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변화(卞和)와 오사(伍奢) 부자가 살해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증거이다. 변화(卞和)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사람들이 화씨(和氏)’이라 부른다. 전해 온 바에 의하면, 그는 형산(荊山)에서 다듬지 않은 원초의 옥을 얻어 초왕에게 두 번 바쳤으나 거친 돌로 여겨 임금을 속인 죄로 두 발을 베게 되었다. 오사(伍奢)는 춘추 시기 초평왕(楚平王)의 태자인 건()의 태부(太傅)를 지낸 사람이었다. 태자의 소사(少師) 비무기(費無忌)가 오사를 시기하여 초평왕에게 참소하자, 초평원은 오사와 큰 아들 오상(伍尚)을 살해했다. 오사(伍奢)의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가 오()나라에서 도망가 오나라 국왕 합려(闔廬)의 중신(重臣)이 되었다. 기원전 506, 오자서는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로 쳐들어가, 초평왕의 묘소를 파서, 시신을 300대나 매질함으로써 사원(私怨)도 풀었으나 부형의 원수를 갚았다. 오나라는 오자서 등의 모략에 의지하여, 마침내 일방의 제후 패주가 되었다. 기원전 483, 오왕 부차(夫差)의 파견으로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나갔다. 태재(太宰) 백비(伯嚭)는 틈을 타 오자서가 제나라의 힘을 빌려 오나라를 모반한다고 참언을 하였다. 오왕 부차는 참언을 곧이듣고 사람을 보내어 오자서에게 보검을 보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오자서는 죽기 전 문객에게 내 눈을 파내 동문 위에 매달아라. 내가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겠다.” 라고 당부했다. 오자서가 죽은 후 9, 오나라는 정말로 월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변화와 오사 부자, 전자는 보옥을 품고 있었고, 후자는 나라를 지키는 큰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본래 국가에서 얻기 어려운 인재였지만, 뜻밖에도 두 사람의 결말은 모두 비참하였다. 여기서 사마승정은 역사 이야기에 힘입어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고 한다. 지극한 도가 심원하여, 단지 표상에 머무르면 도를 깨닫고 실행할 수 없다. 사람은 일단 허상에 현혹되면, 본말을 분간하지 못하고, 거짓을 참으로 인식하여, 도의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좌망법문을 수련하려면, 마땅히 도를 닦는 신념을 확립해야 한다. 목표가 명확하고 믿음이 확고해야, 비로소 멀리 나아갈 수 있으며 도를 얻을 수 있다.

태정(泰定)’에 대하여, 사마승정은 장자의 언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자연의 빛을 발한다. ‘()’는 바로 마음이고, 천광(天光)은 고요하고 안정해서 도혜(道慧)를 발하는 것이다. 마음은 대도의 용기(容器)로서 극히 비우고 고요할 때 도혜(도의 참뜻)가 자생한다. 도혜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니 그래서 이름을 천광이라 불린다. 그러나 인간은 탐욕과 욕심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망념을 떨치고 심식을 조화시켜 순수한 고요함으로 돌아가야만, 본래의 원신(元神)은 비로소 스스로 깨어날 수 있지, 지금 어떤 와전처럼 본래의 참된 실체가 다른 데에서 난 것이 결코 아니다. 도혜가 이미 생성된 자는 신중하게 도혜를 감춰야 하고, 많은 앎을 탐내다가 고요함과 안정함을 해치면 안 된다. 도혜를 발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도혜를 품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고로 자기의 형체를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적다. 도혜를 품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망명(忘名, 이름에 연연하지 않음)이라 한다. 이런 사람이 자고로 아주 드물어서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권세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부유해도 사치스럽지 않으며 속간의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부귀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다. 마음을 다잡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도혜를 얻어도 원진(元真)을 함양하지 않는다. 이래서 청정의 도에 어긋나지 않음으로 진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검증할 수 있다.

 

그 중 천광(天光)’장자·잡편·경상초(莊子·雜篇·庚桑楚)에 보인다. 소위 태정(泰定)’은 화복은 마음에 들지 않다는 뜻이 내포돼 있으며, “도덕 수양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야, 영광(靈光)의 존재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사마승정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견해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우선, ‘()’마음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우태정(宇泰定)’은 바로 마음이 태연자약하다는 뜻이다. ‘마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사마승정은 비유로 설명하여 마음은 도의 용기이다.”라고 지적하였다. , ‘마음을 하나의 용기(容器)로 보고, 용기가 비어야만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마음를 담으려면 또한 그래야 한다. 마음을 비워 고요하면 가 들어올 것이다. 마음속에 가 있으면 지혜가 저절로 생길 것이다. 이런 지혜는 자연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지, 외력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니 천광(天光)’이라고 한다.

천광을 내려면, 욕심 없이 고요한 상태여야 한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본성이 현혹되어 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수도자는 겨울에 눈을 만나는 것처럼 조급한 마음을 식혀 순박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한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가려진 천진 본체의 인지적 지혜가 명철하게 드러날 것이며, 다른 어떤 지혜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순진한 지혜를 불러일으키게 된 이상, 그것을 자신의 보배로써 잘 보존하고 함양하며, 기타 평범하고 잡다한 인식으로 자기 내면의 안정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수도에 어려움이 있다는 말은 내면의 진정한 지혜를 자극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지혜가 있으면서도 남용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형해를 잊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명성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적다고 하였다. 본래의 참된 지혜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남용하지 않는 것은 명성을 추구하지 않아 명성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 되면 천하의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어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풍족하면서도 호화스럽지 않다면 속간의 과오를 면할 수 있어서 부귀를 오래 지킬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으며, 내적인 본진지성이 생성하여도 남용하지 않는다면, 그 수도과정이 틀리지 않기 때문에 진실하고 불변한 대도를 깊이 검증할 수 있다.

태정(泰定)’에 관한 사마승정의 논설은 그 핵심 요점은 혜이불용(慧而不用)’이다. 소위 불용(不用)’이란 그것으로 명성을 추구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쓰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본진지혜가 내보이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는 원인은 이러한 본진지혜(本真智慧)’가 내심의 보배인 만큼, 만일 그것으로 명성을 추구한다면, 에너지가 상실되어 본진 생명이 보존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사마승정은 명성의 추구를 수도의 큰 장애물로 본다. 따라서 성명(性命) 수양의 각도에서 보면, ‘좌망은 망명(忘名)을 긴요한 기본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도를 닦는 자가 좌망의 조작 순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마승정은 추익(樞翼)’이라는 보충 글을 따로 쓰기도 했다. 소위 ()’란 것은 중추나 핵심의 뜻인데, 여기서 좌망의 일곱 가지 단계를 가리킨다. 소위()’이란 새가 날아다닐 수 있게 하는 양 날개와 같은 뜻이다. 주역에 괘효사(卦爻辭)가 있는데, 이를 이라 한다. 그리고 괘효사를 해석하는 열 편의 전설이 있는데, 이를 십익(十翼)’이라 한다. 사마승정이 말하는 추익은 그 위상이 주역십익과 같다. 다만 추익은 열편이 아니라, 한 단락으로 두 부분이 포함하고 있어 마치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사실상, 그것은 좌망 기술 운용에 대한 주의사항과 효과 설명이다. 우선, 좌망추익(坐忘樞翼)에서 수도자에게 몸 이외의 세상사가 자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데, 이를 귀결하여 근행삼계(勤行三戒)’라고 한다. 삼계(三戒)란 간연(簡緣), 무욕(無欲), 정심(靜心)을 말하는데, 삼계를 지키는 목적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있다. 그 다음, 좌망(坐忘) 법문을 닦는 효과로 심신의 오시(五時) 칠후(七後) 상태를 실현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마승정은 이렇게 말한다.

도를 얻고 신선이 된 자의 정심(靜心) 수련을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고, 그들의 형체상의 표현 특징도 일곱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마음을 닦는 다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 심경(心境)이 동요하는 시간은 많고 조용한 시간은 적다. 두 번째 단계, 심경 파동과 조용한 시간이 반반이다. 세 번째 단계, 마음이 조용한 시간은 많고, 동요하는 시간은 적다. 네 번째 단계,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이 조용하고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이 흔들린다. 다섯 번째 단계, 마음과 대도가 하나가 됨으로 일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을 닦는데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며, 모든 죄과와 잘못이 모두 없어지고, 더 이상 아무런 고민도 없게 된다. 도를 닦고 신선이 된 자는 형체에 일곱 단계의 다른 표현이 있다. 첫 번째 단계, 모든 행위는 객관적 시기에 순응하며, 용모가 자상하고 상냥하다. 두 번째 단계, 과거의 질병은 모두 사라져서 몸과 마음이 홀가분하고 상쾌하다. 세 번째 단계, 몸은 보양되어, 더 이상 요절과 부상을 당하지 않고, 원기와 생기가 회복된다. 네 번째 단계, 수천 년 동안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선인이라고 부른다. 다섯 번째 단계, 자신의 형체를 기() 상태로 수련해 놓는다. 이런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여섯 번째 단계, 기 상태에 있는 형체를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정신상태로 수련해 놓는다. 이런 사람을 신인(神人)’이라고 한한다. 일곱 번째 단계, 정신상태에 있는 형체를 대도와 하나로 통합시킨다. 이런 사람을 지인(至人)’이라고 한다. 단계가 올라감에 따라, 이 사람들의 지혜는 더욱 뛰어날 것이다. 지고무상의 대도를 얻으면, 그들의 지혜도 원만하고 완전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오랫동안 수련하여 마음을 안정시켰지만, 이 다섯 단계의 심리 체험을 거치지 않고, 일곱 단계의 형체 표현도 없다면, 그는 여전히 생명이 짧고, 형체가 더러운 속인에 속해 몸이 죽은 후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미 지혜와 각오를 얻었고, 심지어는 이미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상식적으로 짐작하건대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행위는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사마승정은 심신(心身)’이 좌망하는 과정에서의 단계별 표현에 대해 각각 묘사하였다. ‘마음의 측면에서나 의 측면에서 볼 때, 그 표징 상태는 모두 차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성명(性命)을 수행하는 일종의 초월로, 심오한 생명의 경지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묘사에 작자의 많은 생명 체험을 함축돼 있다. 그 중 수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것과 선인, 진인, 신인, 지인 등의 주장은 물론 신앙문화적인 표현으로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일찍이 선진도가의 전적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장자에는 체계화된 논설로 나와 있다. 이러한 이상화된 언사는 오늘날 일반 사회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지만, 일종의 생명 경지의 기호학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선민들의 생명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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