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전진교의 신선관 - 초기 전진교 문헌을 중심으로 -

최수빈(서강대)

2023.03.16 | 조회 2791

2021년 가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문


전진교의 신선관

- 초기 전진교 문헌을 중심으로 -

 

최수빈(서강대)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전진교의 신선개념

III. 전진교의 成仙을 위한 수행이론

1. 수행의 목표: 本來眞性=金丹의 획득

2. 자력구제적 기술로서의 性命雙修

3. 사회참여적 成仙求道의 길: 功行雙修

III. 전진교 신선관이 보여주는 대중성, 일상성, 보편성

1. 전진교의 보편구원관과 개혁적 전교방식

2. 전진교의 보편적 득선관과 개신교(청교도)의 구원관

3. 전진교의 보편적 구원관과 신선개념의 대중화와 일상화

IV. 마치는 말

 

 

I.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금원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초기 전진교의 신선사상을 중심으로 근세 이후 도교 신선사상의 변화와 그 특성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창사자인 王重陽七眞, 곧 그의 7제자들을 비롯한 초기 全眞敎 도사들의 문헌에서 말하는 신선, 그리고 成仙의 의미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생물학적 죽음을 昇仙의 관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질병을 예방하여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성선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며 온전하고 질병 없는 심신의 회복을 위해 과도하게 보일 만큼 금욕적 수행을 일삼기도 한다. 이렇듯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의미적 맥락을 포함한 전진교의 신선관은 唐代에 정착된 重玄學적 논의와 內丹사상과 수련법,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도교의 생리학적 이론, 불교의 윤회와 업 관념에 기초한 불교적 생사관과 명심견성을 지향하는 선불교의 명상법, 󰡔포박자󰡕를 필두로 하여 그 이후로 계속 진화해 온 가학론적 신선관과 외단적 상징체계, 그리고 상청파 등에 의해 발전된 내면적 명상법(存思體內神 관념 등)과 초월자로서의 신선개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복합적, 종합적 로 하는 신선관, 즉 육체의 불사를 신선의 조건으로 이해하는 사고, 그리고 상청파의 초월적 신선관 등이 결합한 복합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전진교 문헌에 나타난 신선관은 다음과 같은 특성들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신선의 의미와 조건에 대한 재해석 및 의미의 심화

2. 신선가학론의 발전에 기반한 득선의 보편화.

3. 得仙과정의 내면화와 자기주체화

4. 신선의 대중화와 일상화

 

이상과 같은 특성들은 전진교의 교의와 수행법의 체계적인 수립에 의해 구현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진교 교의의 핵심은 性命雙修功行雙修로 정리된다. 초기 전진교 도사들은 成仙을 위해 이상의 두 가지 수행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성명쌍수는 도사 개인의 수행, 眞功을 위한 몸[]과 마음[]의 균형 있는 연마를 말하는 것이며 공행쌍수는 수행자 개인의 수행인 진공, 그리고 타인과 사회를 위한 이타적 노력, 眞行, 양자의 균형 있는 실천을 지칭하는 것이다. 전진교 도사들은 수행자 자신의 득도를 위한 심신수행, 自利的 수행, 그리고 사회참여를 통한 대중구제의 利他的 수행, 양자의 균형 있는 병행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求道成仙의 길로 생각했다. 진공과 진행은 內日用外日用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내일용은 참되고 깨끗하게 심성을 다스리는 공부로서 성선을 위한 초세간적이며 금욕적인 범주의 자기수행을 지칭한다. 한편, 외일용은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자기보다 타인을 중요시하는 이타적인 행위의 실천을 말하며 그 안에는 소극적으로 개인을 돕는 것뿐 아니라 때로는 사회개혁이나 정의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까지도 내포한다. 진행, 혹은 외일용은 이타적 행위나 사회개혁적 행위 외에도 전 우주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 곧 우주적 윤리(생태윤리)의 실천까지도 내포한다.

전진교를 창설한 王重陽(1112-1170)으로부터 전진교는 이상의 이중적인 수행양식을 동시에 고수했다. 즉 출가제도를 공식적으로 표방하며 도사들 개인의 극도로 전문적인 수행실천-깊은 경지의 심성공부와 극심한 금욕적 수행-을 장려하는 한편, 대중적인 집회를 통한 포교활동에 힘쓰는가 하면 금이나 원 왕실과도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일면 극도의 초세간적인 성격과 대중적이며 사회참여적 지향 양자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 전진교의 가장 큰 특성이다. 이러한 전진교의 종교적 특성은 전진교의 신선관과도 맞물려 있다. 전진교도들이 지향하는 신선의 이상은 탈세간적인 초월자로서 개인의 차원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세간 안에서 대중들에 대한 이타적 실천을 베푸는 존재로서 사회적 차원까지 아우를 때 보다 더 가치 있고 완성도 높은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또한 지식이나 영성이 고매한 이른바 지적 엘리트나 종교적 엘리트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신선이 될 자질을 소유함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진교에서는 일반신도들을 위한 교단조직을 형성하여 대중적 강좌를 통해 교의와 수행법 교육에 힘썼다.

한편, 전진교에서 성선을 위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서 淸靜을 제시한다. 전진교에서 성선의 요건으로 제시한 청정의 핵심은 모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청정의 핵심은 세간과 초세간, 출가와 재가 등의 외적, 혹은 형식적 구분을 초월한 마음의 완성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행의 원리 때문에 전진교에서는 출가제와 금욕주의적 수행을 원칙으로 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입세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정이라고 하는 내면의 태도는 철저한 자기검열과 탈세간적인 금욕적 자세를 요구하는 한편 반대로 삶과 행위의 외적 형식이나 사회적 지위, 신분과 같은 질서로부터 전진교인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기제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II. 전진교의 신선개념

 

全眞敎라는 敎名 자체가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 곧 신선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李道純󰡔中和集󰡕에서는 全眞에 대해 이른바 전진이라는 것은 본래의 참됨을 온전히 하는 것이다. 을 온전히 하고 를 온전히 하며 을 온전히 하는 것을 모름지기 全眞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곧 온전함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오염이 있으면 곧 참됨디 아니다.”라고 말한다. , , 을 온전하게 하며 참됨을 완전하게 구현한 상태가 全眞의 의미라면 이렇듯 全眞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이른바 신선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진교에서는 전진, 곧 온전하게 참을 실현하는 것의 관건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의 조건들을 바탕으로 삼아 세속적 욕망과 가치에 탐닉하는 가치에서 떠나 性命을 온전히 회복하고 늘 심신이 淸靜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초기 전진교의 도사들은 신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우선 馬丹陽王重陽은 각각각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말하길, 오롯이 를 배우는 것에 전념하면, 사람마다 神仙이 될 수 있다.

 

만물을 구제하고 살아있는 것을 이롭게 하면, 이 이루어져 곧 (의 경지로) 간다.

 

위의 인용문에서 마단양은 學道, 곧 도를 깨닫기 위해 온전히 전념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구절은 전진교 신선관이 가지 두 가지 중요한 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外丹이나 어려운 道術과 같은 難行道를 통하지 않아도 득도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仙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學道者라면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전진교의 신선관은 기본적으로 神仙可學論을 강하게 전제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보편구원, 成仙의 보편적 실현가능성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물론 초기 전진교의 도사들의 學道를 위한 수행은 매우 금욕적인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선을 하는데 특별한 지식이나 영적 능력, 자격이나 조건을 전제하지 않으며 득도에 대한 강한 열망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이상과 같은 보편적 구원관으로서의 신선사상이 정착하게 된 배경으로는 불성사상의 영향으로 도교에 수립된 道性사상과 唐代에 더욱 심화된 신선가학론적 영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왕중양은 신선의 조건으로서 利他行의 실천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전진교의 수행은 , 양방면으로 진행된다. 개인적인 자기수양과 더불어 대중구제와 이타행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成仙이 탈세간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세간 내에서 적극적인 이타행의 실천을 통해 구현된다고 하는 이론은 전진교의 신선관의 고유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진교가 기본적으로 出家淸修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진교 도사들은 개인의 탁월한 지식이나 능력, 의지력 등을 요구하는 개인주의적 구제론을 부정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득도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대중들에 대한 傳敎와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볼 수 있다. 요컨대 전진교의 신선관은 成仙의 보편가능성과 대중성, 현실 참여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일반적으로 신선의 기본요건으로 장생불사를 말하며 특별히 육체의 불멸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전진교에서 말하는 신선은 , 곧 물리적 육체의 불멸과 무관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태상께서 말씀하시길, “나 또한 저절로 머리가 희어졌으니 누가 형이 완전하겠는가?”라고 하셨다. []은 다양한 사물의 세계[萬物之數]에 속하니, 어찌 몸[]에 의지하여 장생불사 하려는 (생각을) 하는가! 마음으로 깨달으면 삿된 욕망이 생기지 않으며, 마음이 지혜로우면 항상 빛나서 사라지지 않는다. 원신(元神)이 저절로 드러난 연후에 명()을 보존해야 오래 존재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은 때가 되면 무너지고 땅은 때가 되면 내려앉고, 산은 때로 부러지고 바다는 때로 마른다. 무른 이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뒤에는 무너진다. 오직 도를 배우는 사람만이 이 도와 합해지는 데 이르러, 곧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

 

갈홍을 비롯하여 중세의 많은 도교인들에게 있어 , 곧 육체는 , 곧 정신이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므로 신선이 된다는 것은 형과 신을 동시에 보유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전진교에서도 인간 존재의 본질을 有形無形로 보고 이 두 가지 형태의 기를 정화하여야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것은 인간의 가시적 육체에 대한 관점이다. 󰡔진선직지어록󰡕 등의 기록에 따르면 현상적인 육체란 단지 신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신선이 되고 나면 벗어버려야 하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純陽元神이 그것을 벗어나서 도와 합해지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선이 된다고 말한다. 육체는 바로 순양의 元神, 다른 말로 하면 成胎가 완성될 때까지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가시적 육체의 소멸은 곧 죽음이다. 그런데 전진교에서 말하는 불사는 가시적 육체의 소멸과 무관하다. 전진교 도사들에게 육체적 소멸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 개체의 영원한 존속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의 소멸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창출하고 새로운 형태의 몸을 형성하는 것이 그들 수행의 목표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몸은 陽身’ ‘身外之身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전진교에서 말하는 신선, 혹은 불사의 형태가 정신의 불멸로 이해될 수는 없다. 元神이나 眞性, 陽身이라는 것이 단순히 영육이원론에서 육체와 대별되는 정신과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전진교의 신선은 정신적 불멸자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신체, 은 다른 유형적 사물(이 있는 존재)과 마찬가지로 無常한 대상이므로 유형적 신체를 동반한 영생, 즉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형, 혹은 과 분리된 , 혹은 의 단독적 불멸을 주장하는 것 또한 아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삶이라고 하여 영혼의 불멸과 등식화할 수도 없다. 도교는 기본적으로 심신이원론이나 영육이원론, 혹은 形滅神不滅을 주장하지 않는다. 전진교와 같이 절대적으로 불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친 종교일지라도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후대 南北合宗 이후에 가면 신선사상에 내포된 , 즉 육체의 문제가 더욱 강조되어 전진교 北宗보다는 육체의 승선이 더욱 강조된다. 이렇듯 후대 내단전통에 비하여 초기 전진교 전통에서 정신의 불멸을 더욱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형과 신의 분리를 주장하는 형태의 불멸로 보기는 어렵다. 전진교에서 말하는 신선은 영적 존재만도 아니고 육체적 존재도 아니다. 현상적 육체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새롭게 생산된 새로운 불멸의 몸 혹은 자아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이 신선이다. 즉 몸은 몸인데 현상적인 몸은 아닌 몸, 정신은 정신인데, 유심적 차원의 정신은 아닌 정신이 바로 신선의 존재양식이다. 따라서 몸 밖의 몸[身外之身)]’ 등의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몸 밖의 몸이란 에서 신과 합하게 된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무형의 신체로서 보이지 않는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전진교의 신선은 세속적 육체를 유지한 상태, 有形的 形神合一의 상태로 승선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육체의 존손 여부와 무관한 승선, 다시 말해 無形的 形神合一, 혹은 변화된 육체[身外之身, 혹은 陽身]의 승선을 말한다.


III. 전진교의 成仙을 위한 수행이론

 

전진교의 성선을 위한 수행법 기본적으로 자력적인 內丹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전진교는 , 또는 으로 표현되는 육체의 수련에 기초하여 혹은 으로 표현되는 정신의 수련을 도모하여 궁극에 가서 眞性, 혹은 陽神을 회복하는 형태의 成仙을 지향한다. 전진교의 수행론 역시 그 초점은 性命雙修에 있다. 전진교의 내단법은 불교의 유심론적 수행관의 영향을 받아 남종단법에 비하면 공부, 곧 마음수양을 중시하지만, 공부 역시 중시하다.

전진교의 성선수행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참된 본성을 회복하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그리고 본래진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서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이 성명쌍수와 공행쌍수이다. 성명싸수와 공행쌍수를 통해 본래의 진성을 회복하여 자기 안에 金丹을 획득할 때 비로소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진교의 신선수행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수행의 목표: 本來眞性=金丹의 획득

 

갈홍의 󰡔포박자󰡕로부터 金丹은 물질적이든 상징적이든 成仙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내외단을 막론하고 금단은 수행자가 획득한 불멸의 약으로서 자체, 得仙者라면 보유해야 할 필수불가결의 상태, 우주와 생명의 精髓를 의미한다. 즉 신선이 된다는 것은 결국 물질이든 정신이든, 든 금단을 합성하여 도와 같이 영원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전진교의 조사인 왕중양은 이러한 金丹을 다름 아닌 본래의 眞性이라고 말한다. 왕중양이 쓴 <金丹>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본래의 진성을 금단이라고 부르며 임시적인 조건들이 합한 인간 삶의 조건[四假]을 등불로 삼아 연마한다. (마음이) 오염되지 않아 어떤 망령된 생각도 없앨 수 있다면 저절로 쇠락에서 벗어나 신선의 제단에 들어간다.

 

금단의 鍊成은 곧 자기의 마음수련이며 마음수련을 통해 자기 안에 금단, 곧 본래의 진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邪念妄想을 제거하여 마음에 어떤 생각도 가지지 않게 되면 저절로 곧 바로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삼교합일적 특성을 보여주며 특별히 불교교학와 수행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전진교의 교학에서 本來眞性은 선불교에서 見性成佛이라고 할 때의 과 유사한 용례로 이해되기도 한다. 특히 왕중양에게 있어서 깨달음이란 본래적으로 인간의 심성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조건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본성은 이미 깨닫도록 조건 지워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성은 불교의 불성에 해당되는 도교적 용어인 道性, 혹은 元神과도 통하는 용어이다. 본래의 眞性은 즉 선불교에서의 의미와 유사하게 파괴와 소멸이 없는 영원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른바 신선의 요건으로 일컬어지는 장생불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장생불사는 一靈眞性이다.

 

이른바 장생불사를 구현하는 신선의 주체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眞性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성은 세속적인 모든 사념과 욕망을 제거한 상태, 無心에 이르러 획득되는 것이며 무심의 상태에서 진성을 획득하면 바로 生死를 초월한 영원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생각도 생겨나지 않으면 생사를 벗어난다.

 

無心은 바로 진성이 획득된 신선의 내면상태이며 이러한 상태를 통해 생사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성의 획득이 목적인 성선의 수행법에서 어떤 물질적 丹藥이나 불멸의 육체, 괴력을 발휘하는 도술 등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성의 획득이 바로 장생불사이고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 존재가 바로 신선이다.

 

2. 자력구제적 기술로서의 性命雙修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진도는 종려내단도의 수행노선을 채택하여 성명쌍수를 성선을 위한 수행의 기초로 삼으며 신선이 되는 수행은 곧 성명을 어떻게 다루는 지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性命에 통달하는 것, 이것이 곧 참된 수행의 길()이다.

 

성명에 대해 왕중양은 이고 (性者, 神也. 命者, 氣也.)’라고 정의하며 이 서로 결합된 것이 곧 神仙(氣神相結, 謂之神仙)이라고 정의하고 말하고 있다. 즉 성명을 연마하는 것은 곧 신과 기를 연마하는 것이며 전진교는 이러한 性命雙修, 바꾸어 말하면 神氣雙修를 성선의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으로 삼았다. 성명쌍수는 性功命功, 거칠게 말해 明心見性의 마음수양과 精氣煉成의 몸수양을 양자의 균형 있는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마단양이 또 묻기를 무엇을 가리쳐 성명을 본다고 합니까? 조사(왕중양)이 답하길, 이란 元神이고 이란 元氣이며 (이들을) 이름하여 性命이라고 하는 것이다.

 

위에서 중양이 말하는 見性命은 곧 元神元氣이며 이것은 識神, 곧 수행을 거치지 않은 현상적 인간의 인식이나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조화와 불통의 육체적 기와 구별되는 본래적 정신과 육체, 이른바 선천성명을 가리킨다. 전진교에서 택한 내단의 성명쌍수의 수행은 결국 현상적인 인간의 존재양태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육체와 정신을 회복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듯 본래적인 정신과 육체의 회복을 통해 진성을 획득하며 진성의 획득은 바로 成仙이라는 것은 그 바탕에 인간 안에 스스로가 신선이 될 수 있는 잠재태가 갖추어져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 안에는 궁극적 실재인 로부터 품부 받은 道性이 갖추어져 있고 도성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여 적극적으로 신과 기를 연마하면 결국 세속적 오염에 의해 가려진 본래의 성과 명을 회복하여 신선의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北宗이라고 불리는 전진교는 이와 같이 南宗 내단도와 동일하게 성명쌍수를 수행의 기본지침으로 삼았으나 성과 명, 양자 중에 공부를 더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즉 남종이 先命後性의 공부 노선을 채택하였다면 북종은 先性後命의 공부 순서를 선택하고 있다. 선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明心見性의 마음수양이야말로 成仙을 위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할 공부라고 본 것이다. 전진교에서는 성선의 수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심성의 淸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고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세속적 욕망을 제거하고 항상 平常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전진교에서 말하는 평상이란 감정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中和를 훼손하지 않아 , 장수와 요절, 생과 사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淸靜한 마음, 平常心의 유지는 결국 眞性의 회복을 의미하며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平常은 바로 眞常이다. 마음이 온갖 변화에 응하면서도 사물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항상 응하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점차로 참된 도(眞道)에 들어가 평상함이 곧 도이다. 세상 사람들이 평상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이 주재함이 없으므로 정()이 사물의 흐름을 좇아 그 기가 뭇 구멍들 속으로 어지럽게 흩어지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구처기의 제자인 윤지평의 저술인 󰡔北遊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북유록󰡕에서는 위의 인용문 바로 뒤에 불교의 평상과 유교의 평상의 내용을 언급하여 자신이 말하는 평상의 의미가 바로 그러한 타 종교의 평상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지평이 平常으로 해석한 것은 득도가 無爲淸靜과 은둔수행을 통해 달성되며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을 교정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평상을 眞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온갖 변화에 응하면서도 사물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항상 고요해서 점차로 참된 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지평은 평상개념을 통해 세속을 떠나야만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것가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상을 유지하는 것이 득도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진교에서는 淸靜(깨끗하고 고요함)淸淨(깨끗하고 맑음), 두 가지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여 수련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淸淨에 대해 마단양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스승(단양)께서 말씀하시길, 淸淨이란, 은 마음의 근원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氣海를 맑게 하는 것이니 마음의 근원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들이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없으니 따라서 이 안정되고 神明함이 생겨난다. 기해가 맑아지면 삿된 욕망이 끼어들지 못하니 이 온전해지고 배가 차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淸淨이란 心源氣海가 인간의 본성, 혹은 생명이 본래의 참된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공부가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 精氣를 닦는 공부도 함께 병행되어야 마음의 청정, 眞性의 회복을 이룰 수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한편, 바로 앞에서 언급한 평상심의 강조는 개인의 자기수행인 眞功(성명공부)가 단순히 탈세간적이고 은둔적 양식을 고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진교의 성선은 개인적 자기수행인 眞功, 곧 성명공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타적 실천인 眞行이 동반될 때 완성된다.

 

3. 사회참여적 成仙求道의 길: 功行雙修

 

전진교는 출가와 독신제도를 기본으로 한다. 초기부터 전진교의 도사들은 세속적 생활의 안락함을 버리고 동굴이나 누추한 암자에 머물면서 엄격하고 혹독한 고행적 수행을 일삼았으며 점차 교단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출가도사들이 도관에서 엄격한 계율에 따라 打坐와 경전공부, 수행법 공부 등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초기 전진도 도사들의 삶은 혹독한 고행과정 그 자체였다. 걸식은 기본이고 헐벗고 추위와 더위, 눈과 비를 무릎 쓰는 극도의 금욕주의적 생활을 이어갔다. 여름에도 물을 마시지 않는가 하면 겨울에도 불과 가까이 하지 않는 생활을 하기도 하고 무릎으로 기거나 맨발로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고행적 수행을 이어갔다. 이러한 금욕주의적 수행을 통해 왕중양 이하 칠진들은 모두 내면적 청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같은 고행적이고 탈세간적인 수행법 또 다른 수행의 형태의 금욕주의적 수행은 세속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번잡한 세속세계 한 가운데에 머물면서 번뇌와 잡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청정 혹은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단련을 하는 것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청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득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왕중양은 (?)과 계곡 깊숙이 머무르는 것이 시끄러움을 없앨 수 있으나 시전(?)에 위대한 은둔은 참된 도리를 갖출 수 있게 한다.”라고 말하여 초세간적 고행보다 세간 내에서의 수행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때와 장소에 관계 없이 흔들리지 않는 平常心淸靜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도 말한다.

전진교에서는 眞功, 즉 개인공부가 기초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眞行, 곧 일상적 삶과 사회 안에서 대중을 구제하고 이타행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전진교에서 채택하는 수행의 방법이나 그들이 지향하는 종교적 이상, 곧 신선의 모습은 단순하거나 일원적이지 않다. 수행자의 마음이 온전히 세속적 욕망과 잡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오히려 세간에서 수행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전진교에서 추구하는 진행의 실천을 위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세간 내에서의 수행은 진공과 진행, 곧 수행자 개인의 수양과 대중을 위한 이타행 양자를 도모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실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공과 진행의 병행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약 眞功을 실천하려고 하면 마음을 맑게 하고 뜻을 단단히 하며[] 을 가다듬고 음직이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정말로 깨끗하고 맑아 元一을 안고 지키며 신을 보존하고 기를 견고히 하는 것이 眞功이다. 만약 眞行을 실천하고자 하면 덕을 쌓는 수행을 하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항상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혹은 선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입도수행을 하게 이끌며 어떤 일을 할 때에는 남을 우선시하고 자기는 뒤로하며 모든 사물들에 대해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니 이것이 곧 진행이다.

 

진공과 더불어 진행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진교에서는 대중을 위해 사회적으로 많은 일을 성취고자 하였으며 龍門派를 비롯하여 전진교 내의 여러 분파의 도사들은 노동과 세속의 삶을 중시했다. 예컨대 구처기의 경우 징기즈칸을 만나 살육을 중지케 하는가 하면 어려운 백성들에게 조세를 면제해 줄 것을 건의하였고 전쟁 중에는 굶고 병든 교인들을 구제하여 살려 주기도 하였다. 칠진은 아니지만 전진교 盤山派의 대표적 인물인 王志瑾의 경우는 관중지역에 물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공급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큰 혜택을 주기도 했다.

전진교 도사들은 진행의 실천, 곧 이타적 행위를 명분으로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우 금욕적이고 청빈하며 윤리적으로 귀감이 될 만한 생활을 해서 당시 사회의 일반인들에게도 그것이 인정된 듯하다.

 

북조(北朝)의 전진(全眞)은 그 학문이 우선 노고를 견디고 밭 갈기를 힘썼다. 그러므로 무릇 거처와 입고 먹는 것은 그 자신이 한 것이 아니면 감히 누리려 하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에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근심 걱정, (무엇을) 간절히 원하거나 부러워하는 것을 끊어 버렸다. 남들이 견지지 못하는 것을 마음 편안히 여길 수 있었다.

 

한나라 이래로 처사(處士)는 기이한 행동을 하고 방사(方士)는 거짓으로 과장하였다. 몸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생불사의 연단술과 옥황상제에 초제(醮祭)를 지내고 재앙을 물리치는 비밀은 모두 도가에 속하였다....폐단이 극에 달하자 변하여 거기서 전진교가 일어났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뜻을 밝혀 덕이 닦아지고 도가 행해지니 우르르 모여들어 그것을 따랐고 알차게 번성하여 신도들이 생겼다.. 밭 갈고 우물 파서 스스로 그 일을 하며 생활하였다. 자비를 베풀어 만물을 접하고 풍속을 선하게 하기를 기대하였으며 거짓된 환상의 설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 소박하고 순수하였다.

 

이상의 인용문은 대 당시 지성인들의 눈에 전진교 도사들이 어떻게 보였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진교의 이미지가 그 이전의, 폐단을 일삼던 일부 도사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청빈하고 진실하며 금욕적이며 세속에서의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 그리고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잘 나타난다.

위잉스[余英時]와 구보 노리타다[窪 德忠]도 일찍이 지적한 바도 있지만 좡광바오[張廣保]는 용문파를 중심으로 한 전진교의 이와 같은 특성이 15-16세기에 일어난 서구의 청교도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기술한다. 그는 차이가 있다면 개신교의 경우는 上帝, 곧 하느님의 역량에 의지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라는 하느님의 요구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 사회활동을 하지만 전진교도들은 자력적 구원론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塵心, 곧 세속적인 마음속에서 眞心이 드러나기 위해 진행의 수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 실재관(기독교의 하느님, 전진교의 眞心)의 차이에 따라 노동효과가 차이가 난다고 설명한다. 전진교는 노동의 궁극적 가치가 본심의 단련에 있다고 보기에 세상에서의 행위에 과한 관심을 쏟지 않는데 반해 개신교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노동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또한 청교도는 이 세상에서의 노동 중에 체현되는 기민하고 절제된 이성적 생활, 곧 합리적 생활양식을 중시하는데 반해 전진교에서는 이러한 이성을 추구하는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좡광바오의 비교가 심도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적어도 전진교의 금욕주의며 근면하고 검소한 생활양식은 근세 칼뱅주의의 근면, 검소, 절약이라고 하는 생활윤리지침과 일치하는 지점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듯 적극적인 입세적 진행의 실천을 평가하면서 런지위[任繼愈]󰡔中國道敎史󰡕의 서문에서 전진교를 유교의 일개분파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는 극단적 주장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불교의 복사판이라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용어나 형식이 유교와 유사하다고 그것을 전부 유교의 것이나 불교의 것을 모방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에는 부당함이 있다. 근본적으로 유교나 불교와는 구원관 자체가 다르고 유사한 윤리관이나 수행관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거나 신앙하는 주체의 내면에는 상이한 사유의 메카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전진교가 사회적 참여, 이타행, 그리고 대중에 대해 그 이전의 도교분파와는 다른 이해와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도교 분파에서도 자비심의 발휘와 이타적 실천에 대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전진교의 경우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대중들을 대한 이타적,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 왕중양으로부터 전진교 도사들은 일반신도를 단순한 구제나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일반신도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당시의 다른 도교분파들과 차이를 보인다. 전진교에서는 신도들이 누구나 모두 성선과 득도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적 본성과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신도들에게 적극적으로 경전이나 명상수행법을 가르쳤다. 조사 왕중양부터 이른바 일반평신도 조직인 五會를 건립하여 이들 조직을 중심으로 전교하고 교단의 활동을 펼쳐나갔다.

전진교에서 평신도들은 다른 도교분파에서처럼 단순히 기복과 안위를 빌기 위해 주술을 베풀고 악행을 그치고 도덕적 삶을 살도록 훈계하는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대중들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득도와 성선의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대중들은 자신들의 道伴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신선의 길이 대중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들의 자력적 구제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본격적인 의미에서 신선가학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신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의 신선가학론은 당대를 거치고 금원대의 전진교에 이르게 되면 누구나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생각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진교의 이러한 사고는 도교 신선관을 보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의 것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III. 전진교 신선관이 보여주는 대중성, 일상성, 보편성

 

1. 전진교의 보편구원관과 개혁적 전교방식

 

전진도는 이른바 구보 노리타다(窪德忠)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개혁도교라는 명칭으로 불리듯 신도교분파 가운데에서도 가장 개혁적 성격이 강하다. 전진교가 처음 교파를 창시하고 활동하던 시기는 성리학과 선종의 영향을 바탕으로 이른바 평민문화가 성립하는 단계에 들어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진교를 비롯하여 이른바 신도교라는 명칭 하에 분류되는 이 시기의 도교분파들은 당대 이전의 도교분파들이 보여준 엘리트적(종교적 엘리트), 혹은 귀족적 모습과는 다른 종교적 양상을 보여준다.

왕중양의 창교시기부터 전진교는 교단 조직 운영이나 전교활동, 그리고 수행법이나 득선관이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보편적, 대승적 구원과 平常的 깨달음과 실천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흔히 전진교를 엘리트 교파라고 하는데 전진교가 당시 신도교 분파들과 비교할 때 기복적 주술이나 타력적 신앙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초기 전진교 도사들이 대부분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서인 계충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이거나 학식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인쇄술의 발달과 서적의 보급 확대를 토대로 독서인 층이 그 이전보다는 두터워졌으며 성리학을 비롯하여 지식의 보급을 확장하여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시대였다. 전진교 역시 이러한 근세적 분위기에서 전문적인 도사나 평신도 조직 모두 경전강독과 교리강의 등과 같은 지성적 접근을 교학이나 수행법의 전수와 공유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전진교 교도의 자격을 지성인층으로 제한시키거나 지식이 교리와 수행법의 접근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행위는 아니다.

다만 금단제조와 같은 難行道를 제시하거나 특수한 영적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 수행자에게만 밀의적으로 교의나 수행법을 전달하던 중세시대 도교분파들과는 달리 전진교에서는 보편적 成仙 가능성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실현하는 易行道로서 집단적 강독이나 강좌를 선택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진교는 이전의 도교분파와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출가집단과 평신도집단의 이중적 구조를 가진 점, 강좌나 독서 등의 개방적이고 집단적인 전도와 교육방식을 채택한 점, 평신도들도 득선의 주체로 인정된 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진교의 교리나 수행법, 교단 운영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고유한 특성들은 기본적으로 보편구제의 관념이 정착된 것과 도교적 구원인 成仙과 세속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변화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선불교적 세계관과 구원관이며 당시 사회전반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성리학적 학문관이나 인간이해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전진교의 경우 출가를 선택한 도사집단이나 평신도의 자격으로 입교한 인물들 모두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진의 경우만 보아도 유교적 선비, 지주, 평민 등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인물들이며 부나 학식의 정도도 차이가 있었다. 평신도 조직인 三州五會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종교는 세속적 지식 보다는 이른바 영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으로서 개인의 영적 감수성의 차이도 고려되어야 할 조건이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여 중세 상청파나 영보파와 같은 분파들은 엄격한 자격평가를 통해 경전을 전수하고 수행법을 교육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집단적 전수방식은 전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진진교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배경의 입교자들로서 수용하고 그들에게 전진교의 교의와 수행법 전달을 위해 중요 경전들의 강독과 집단적인 강좌 등을 채택하였다. 이와 같은 집단적, 대중적 전도방식의 채택은 개개인 모두의 득선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2. 전진교의 보편적 득선관과 개신교(청교도)의 구원관

 

전진교의 이와 같은 대중적 전교방식은 근세 개신교의 경우를 떠오르게 한다. 그 이전까지 종교적 교의와 수도의 핵심에 일반 신자는 다가설 수 없고 오직 사제의 매개적 역할을 통해서 신에게 접근이 가능했던 것이 종교개혁 이후 평신도도 직접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개신교적 교리가 등장한 것와 유사점이 발견된다.

이미 위잉스와 같은 학자는 전진교와 개신교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한 바 있다. 위잉스는 막스 베버가 중국에는 개신교의 청교도의 윤리관에서 발견되는 세속내적 금욕주의(innerworldy asceticism)’의 정신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한 반론의 제시하면서 근세 선불교(신불교)와 전진교, 신유교의 특성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대부분은 청빈과 검약,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근세 삼교의 모습을 그리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의 서술은 청교도에 비견되는 근세 중국종교의 외적 요소들을 전달하는 데는 성공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저술이, 막스 베버가 말하는 개신교의 정신적 변화와 그에 따른 실천윤리의 변화의 논의의 핵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막스베버가 말하는 세속내적 금욕주의개념은 유럽 중세의 수도원에서 수도도사들이 가졌던 매일 매일의 생활태도가 종교개혁에 의해 일반사회로 유도된 것이다. 즉 이미 수도원 안에서 확고한 생활양식으로서 완성되어 있던 저세상적 금욕주의(otherwordly asceticism)”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세속내적 금욕주의의 핵심은 위잉스도 약간은 언급한 바는 있지만 세속적인 활동의 가치를 긍정할 뿐 아니라 세속적 활동이 가진 종교적 가치와 의미를 명백하게 부여한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세속사회의 직업노동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것에 논의의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사회의 직업 활동이 모두 종교를 위한 활동이어야 하며 나아가 인간을 향한 신의 목적이 완성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생활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는 신 중심적인 생활태도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베버는 프랑케(Frank)이제 모든 그리스도 교인은 평생 수도승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한 말을 인용하여 이점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즉 세속의 생활행위의 목적이 모두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베버가 말하는 금욕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그것과 조금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베버는 그리스도교의 금욕주의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합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즉 동양의 수행과는 달리 그리스도교는 그 원칙에 있어서 성 베네딕토의 규율로부터 예수회에 이르기까지 현실도피, 혹은 달인인 척하는 고행으로부터 원리상 해방되었다고 한다. 금욕주의의 생활방식은 체계적으로 형성된 합리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목적은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인간이 비합리적인 충동의 힘과 현세 및 자연에의 의존을 탈피하여 신의 섭리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계획적인 의지의 지배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단한 자기반성과 윤리적인 효과를 숙고하면서 행위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수도승을 신의 왕국에 봉사하는 노동자로 교육시키고 그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통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훈육의 목표이자 매우 합리적인 수도승 덕목 일반의 목적이었고 청교도주의의 결적적인 생활실천의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상과는 달리 금욕의 목적은 뚜렷하게 인식된 청명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베버는 말한다.

그렇다면 칼뱅주의적 금욕주의(세속내적 금욕주의)와 그 이전의 중세적 금욕주의(저세상적 금욕주의)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베버는 우선 복음의 권고가 없어지고 금욕주의가 순수하게 현세적인 성격으로 바뀐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개신교의 금욕주의적 윤리에서 핵심은 탈마술(disenchantment)적 태도를 취하여 주술에 의지 하지 않고 비합리적 구조의 개신교적 구원관을 합리적 정신으로 세속내적 금욕주의 윤리를 수용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개신교 청교도들은 예정설에 근거한 철저한 신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금욕주의적 현실생활에 참여하는 데 자신의 구원과 현실생활을 더 이상 주술에 의존하는 않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수단으로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베버가 말하는 개신교 청교도의 세속내적 금욕주의의 개념은 초월적인 신의 윤리적 요구에 부합한 생활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도록 인간을 키워나가는 것을 내용으로 하며 그러한 인격을 가진 인간의 표면적 행동은 바로 세속의 직업노동에 매진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위잉스는 베버의 글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에서 근세 청교도의 세속내적 금욕주의와 사회참여적 태도가 중국의 종교전통 안에서 발견됨을 주장한다. 그 안에 전진교와 같은 신도교를 포함시켜 세속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좡광보 또한 다시 위잉스의 글을 인용하여 동의적 의사를 표현하는데 이상에서 언급한 개신교 청교도의 세속내적 금욕주의와 윤리관의 핵심에 대해서는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유사점에 대해서도 피상적인 내용만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진교의 경우 출가도사집단과 재가신자집단으로 구성되는 경우로서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성만 보면 베버가 중세 가톨릭의 수도자 공동체가 가진 저세상적 금욕주의적 성격과 루터나 칼뱅에 의해 주도된 개신교의 세속내적 금욕주의의 성격 모두를 읽어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 실재관이나 구원관 자체가 상이한 두 종교는 그렇게 외형적 현상만으로 동일하다거나 상이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베버의 논의의 중심으로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출현하게 된 사상적 구조를 밝히는 것에 있지 종교적 사유 자체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므로 그의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조금씩 부적합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가 기술한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적 윤리와 세속에 대한 청교도들의 태도가 초기 전진교의 구원관, 수행관, 세속사회에 대한 관점과 쳐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도자(도사)라고 하는 특수집단의 전유물이던 심층적 교의와 수행이 일반 대중의 영역으로 영입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평신도도 성직자의 도움이나 그들의 주술적 능력에 의존함 없이 (수준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접 종교적 구원의 길에 입문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었다. 초기 전진교에도 베버가 말하는 탈마술적 사고가 형성되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주술을 삿된 외방의 도구로 규정한다. 전진교에서는 초월적이고 비합리적 영역의 종교적 경험들 대신(혹은 그것과 병행하여) 합리적 정신에 의해 진행가능한 세속적 직무나 노동의 가치를 피력한다. 그들은 속무(俗務)를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을 여기지 않았다. 청정한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속무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구원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특별히 전진교에서 청정심, 혹은 평상심이 입세와 탈세를 막론하고 성선에 있어 가장 핵심인 점은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의례나 주술이 아니라 스스로의 종교적 자각이나 깨달음, 그리고 이상적인 내면상태의 유지가 윤리적 실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은 서양에서 말하는 이른바 근대적 윤리의식에 비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윤리적 규범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도()라고 하는 기준에 맞는 지를 자율적, 합리적 의식에 의해 판단하고 외형적 형식보다는 행위의 의도나목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은 매우 선진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진교의 경우 개신교의 예정절과는 전혀 달리, 자력적 특성이 강한 구원관을 가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세속적 가치와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주의적 수행과 정신적 순결[淸靜]의 유지-眞功->를 통해 수행자의 자기완성적 상태에 도달하면 <세속사회를 멀리하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른 중생들에게 이타적 삶-眞行->을 살면서도 신선의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세속 내에서의 실천을 통해 성선이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된다고까지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3. 전진교의 보편적 구원관과 신선개념의 대중화와 일상화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요컨대, 전진교가 그 이전의 도교분파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성, 이른바 개혁적 특성은 구원관의 변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성선의 주체 범위가 확장-소수의 종교적 엘리트에서 독서와 학습이 가능한 대중으로 확장-되었으며 구원(성선) 방식이 집단화, 혹은 대중화-경전강독, 강좌 등의 사용-되었다. 또한 수행의 장()이 확장-도관, 일상생활 영역 모두-되었으며 도관의 도사들은 세속사회에 나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역으로 재가신도들은 세속적 복을 얻는데 전념하는 대신 수도자의 전유물이던 경서강독이나 명상 등의 도관생활의 일부내용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상의 모든 특성들이 발현되게 된 바탕에는 도성(道性)관념, 즉 금욕주의적 수행이 가능한 도사나 세속사를 저버릴 수 없는 재가신도 모두 성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보편구제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도교의 신선관은 선진시대로부터 위진남북조, 당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화하였다. 신선관의 변천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신선의 이미지가 적 존재에서 인간적 존재로 점차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仙骨, 혹은 生而得之의 존재에서 學而得之의 존재로,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과 영적 통제력을 가진 초인간적 모습에서 점차 인간적 유형으로 점차 그 서술이 달라져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신선의 모습이 인간적, 더욱이 평범한 인간의 유형으로 본격적으로 바뀌게 된 전환점은 아마도 唐代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여동빈과 종리권 등 八仙개념이 문학이나 미술작품의 소재로서 활발하게 등장하게 된 것도 당송시대 전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팔선은 다양한 예술작품이나 희극의 소재로 채용되면서 신선이라는 존재를 보다 친근하고 일상적 접근이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전진교가 활약하던 금원시기에는 팔선을 비롯하여 신선이라는 주제가 대중문화에 더욱 더 인기를 누리며 확산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원대에는 雜劇의 한 종류로서 神仙道化劇이 널리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렇게 신선이 잡극의 소재로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당시 전진교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교세를 확장하여 사회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한 것에 그 배경이 있다고 한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전진교의 成仙관념은 보편구제적 특성을 보이는 바 이러한 신선관의 영향이 대중적인 형태로 반영된 것이 이러한 신선도화극이라고 추정이 가능하다.

한편, 唐代에 도교교단이 정부의 강한 정치적 통제하에 놓이게 되면서 제도화되어 도사들의 신분이 정부의 공식적인 허가에 의해 주어지고 도교의 궁관들이 세속화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점차 당대 후기와 五代로 갈수록 제도권 도교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궁관도교를 벗어나 교외 밖에서 도교수행을 하고자 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10세기 무렵부터 종교공동체에 대한 왕실의 지원금이 끊어지게 되면서 도관과 사묘들이 쇠퇴하고 수계제도가 붕괴되었으며 더 이상 새로운 종교교의와 수행방법도 개발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도교수행을 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수행을 위해 찾아갈 만한 장소가 없었고 그들이 추종할 만한, 공식적으로 인정된 도사도 없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聖山을 헤매 다니며 홀로 있는 은거자들과 연결되기도 하고 스스로 오랜 기간 수행을 시도하고 실수를 반복한 끝에 효율적인 수행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북송시대 무렵의 수행자 곧 도사들 중 일부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끊어지자 대중을 위한 도교적 의례를 주관하며 생활을 유지하기도 했다. 대중들이 마음 편하게 살도록 그들의 조상과 소통하거나 장례식을 치러주거나 구체적인 목적달성을 위한 부적이나 주문을 작성하고 외주는 일을 하는 도사들이 많이 늘어나 道士, 혹은 法師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하였다. 북송시대에는 도관제도가 공식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12세기 후반에 가서 비로소 전진교를 통해 도관제도가 새롭게 부흥하고 갱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왕중양은 전진교를 창설하면서 자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사회를 떠나 은거와 금욕을 하며 온전히 도를 추구하는 데 삶을 바치도록 권면했다.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이나 동굴에 외롭게 살거나, 혹은 기존의 세속화된 도관의 형식과는 구별되는 수도공동체로서의 도관에 머물며 엄격한 계율준수와 철저한 금욕과 내면의 수행을 실천함으로써 성선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초기 전진교의 공동체 운영은 철저하게 성선수행과 전교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구처기를 비롯하여 전진교 도사들이 정계의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교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교세를 크게 확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 역시 수행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여건들을 보장하고 전교와 대중구제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전진교의 성선수행은 외부환경이나 외형적 종교제도와 무관하게 철저히 청정평상심을 유지하며 오직 진공과 진행에 매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출가와 도관제를 운영했지만 이러한 제도수립은 철저하게 금욕적인 수행을 위한 것이며 매우 허름한 거처에서 걸식을 하며 고행적 수행을 하고 대중들을 위해 이타적 실천을 것이 성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일상적 세속세계에 머물든지, 혹은 수행을 위한 사원에 머물든지 관계 없이 청정함과 평상을 유지하며 진공과 진행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도교 성선수행을 초세간적 영역에서 평범한 일상 영역의 것으로 확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IV. 마치는 말

 

지금까지 초기 전진교 문헌을 중심으로 도교사에서 전진교의 신선관이 다른 시대의 신선관과 구분되는 중요한 특성들을 신선의 개념과 성선수행법, 그리고 전진교 신선관이 보여주는 고유한 특성들에 대한 설명과 분석을 시도하였다. 갈홍의 󰡔포박자󰡕로부터 제창된 신선가학적 사고가 전진교에 와서 보다 체계적인 교의와 수행법을 통해 비로소 확고하게 자리잡았다고 판단된다. 특별히 唐代를 거치면서 重玄學적 사유를 기반으로 주술이나 의례, 혹은 外丹이 아니라 명상이나 수행에 초점을 둔 성선수행법이 점차 주류를 이루고 개발이 되면서 內丹과 같은 도교 고유의 수행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전진교의 신선관은 이러한 도교사적 발전에 기초해 성립되었다.

특히 道性개념 등의 정착을 통해 인간의 보편구제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정착이 되면서 성선수행에 참여하여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행자의 범위를 점차 확대시켜 나갈 수 있었다.

전진교에서는 나아가 淸靜平常이라는 내면적 태도의 유지를 통해 성선수행을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신선수행의 일상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眞功의 자기공부와 더불어 眞行의 이타행까지 실천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전진교의 성선수행에 대한 사고는 전진교의 신선개념에 사회참여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특별한 자격조건이 아니라 성선에 대한 강한 염원과 수행의 의지에 의해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전진교 도사들의 믿음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소수의 수행자에게만 秘傳의 방식을 통해 교의와 수행법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도관에 머무는 도사집단이나 평신도 집단에 공개적인 집단교육과 강좌 방식을 통해 전수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선수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전진교에서는 내단수행의 노선을 선택하되 성공부를 우선적으로 여기듯 내명적 명상에 의해 성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도교신선수행의 내면화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상과 같은 전진교의 신선관은 명청시기를 거치면서 중국은 물론 한국의 성선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조선시대 仙道의 맥을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크게 공헌을 했으며 구한말 다양한 대중적 형태의 신종교의 수행사상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구한말 이후 등장한 신종교가 보여주는 삼교합일적, 혹은 타종교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태도, 그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서민들의 구제에 초점을 둔 교리 등은 전진교의 성립 이후 중국도교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개혁도교로서의 전진교가 기존의 도교가 가지고 있던 교단운영이나 교학체계, 수행법의 한계를 극복하여 혁신적 양태의 도교를 수립하고자 애를 쓴 것과 마찬가지로 증산도와 천도교와 같은 한국의 신종교들은 조선시대 성리학이나 불교가 보여준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각 종교의 탁월한 이론들은 각각 수용하여 창의적 방식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새로운 교리를 성립시키고 이것을 대중적 차원에까지 확대하여 보급함으로써 종교 및 사회의 혁신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의 구원관 안에는 전진교의 신선과 성선내념과 상통하는 다양한 사상적 유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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