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관왕삼교론과 지상신선

원정근(상생문화연구소)

2023.03.15 | 조회 2746

2021년 가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관왕 삼교론과 지상신선

 

원정근(상생문화연구소)

 

목차

1. 왜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인가

2. 한국선과 중국선-불사와 장생의 만남

3. 증산도의 선과 조화

4. 관왕 삼교론

5. 후천의 지상신선을 위하여

 

 

국문초록

이 글은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을 관왕 삼교론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영원히 생겨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사不生不死의 지상신선이 될 수 있는가를 논구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증산도의 선은 단순히 유불선의 선이 아니다. 후천의 선도仙道로서 선천의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면서도 초월하기 때문이다. 유불선의 모체이자 태곳적 황금시절의 원형문화로서의 신교神敎의 선사상과 동학에서 좌절된 지상신선의 꿈을 완성하려는 참동학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이다. 참동학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신선공부를 통해 온 생명이 독자적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도 우주적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는 후천의 지상신선, 즉 태일신선太一神仙 또는 태을신선太乙神仙을 추구한다.


주요술어

관왕 삼교론, 지상신선, 무극대도, 태일신선, 태을신선

 

 

1. 왜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인가

 

한나라의 악부시 상화가사相和歌辭·해로薤露에서는 염교 잎의 이슬, 어이 쉬 마르는가? 이슬이야 말라도 내일 아침이면 다시 내리지만, 사람 죽어 한 번 가면 언제나 돌아올꼬?”라고 하여, 염교 잎에 맺힌 아침 이슬에 빗대어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인생의 덧없음을 탄식한다. 상화가사이相和歌辭二·호리蒿里에서는 무덤은 뉘 집 땅인고? 잘나고 못남 없이 혼백을 거둔다오. 저승사자는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사람의 목숨은 잠시도 머뭇대지 못하네.”라고 하여,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한 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고뇌와 슬픔을 노래한다.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는 사는 해 백 년도 채우지 못하건만, 늘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사네. 낮 짧고 밤 길어 괴롭거니와, 어찌 촛불 밝혀 놀지 않으리오? 응당 때맞춰 즐겨야 할지니, 어찌 내년을 기다리랴?”라고 하여, 기껏 살아봐야 고작 백 년도 못사는 주제에 천년의 근심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면서 제때에 삶을 즐기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질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큰 숙제의 하나는 죽음과 삶의 문제이다.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수도자들은 죽살이에서 벗어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육기陸機(261-303)는 죽살이를 노래하는 대모부大暮賦에서 “대저 죽음과 삶은 얻음과 잃음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그러므로 즐거움은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고슬픔은 이보다 더 깊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원효元曉(617-686)죽기 괴롭거니 태어나지 말고, 태어나기 어렵거니 죽지 말지어다.”라고 하였다. 삶이 괴롭거니와 죽지 말고, 죽기 어렵거니와 다시 태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으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불생불사不生不死의 길은 없는가? 불로장생不老長生과 불사장생不死長生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헛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인간이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어 매 순간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증산도에서 선은 단순히 유불선의 선이 아니다. 후천의 선도仙道로서 선천의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면서도 초월하기 때문이다. 유불선의 모체이자 태고 시대의 원형문화로서의 신교의 선사상과 동학에서 좌절된 지상신선의 꿈을 완성하려는 참동학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이다. 참동학의 후천 선사상은 한국 선도의 새로운 부활을 꿈꾼다. 선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을 추구하는 것이다.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유불선의 정수를 모아서 후천의 신세계, 즉 조화선경세계를 여는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조화로써 다스려 말없이 가르치고 함이 없이 교화되며 내 도는 곧 상생이니, 서로 극()하는 이치와 죄악이 없는 세상”(도전 2:19:1-2)을 열려는 것이다. 후천의 조화선경造化仙境, 지상선경地上仙境, 현실선경現實仙境 문화를 열어가는 열매문화로서의 선이다. 증산도의 선은 선도의 조화造化사상을 바탕으로 불로장생과 불사장생의 조화선경세계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선풍도골仙風道骨(도전 7:59:5)이 되게끔 하는 데 그 궁극적 목표가 있다. 후천의 지상신선으로서의 태일선太一仙 또는 태을선太乙仙이 바로 그것이다. 태을선은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어 신천지와 신문명을 새롭게 여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신인간을 뜻한다.

증산도의 후천의 선문화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통해서 현실화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후천개벽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후천의 선문화가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후천개벽은 선천 상극세상의 자연질서와 문명질서를 후천 상생세상의 자연질서와 문명질서로 전환시켜 새 천지와 새 문명을 만들려는 것이다. 후천개벽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자연개벽과 인간개벽과 문명개벽이다. 신천지에 입각한 신인간의 신문명, 즉 후천의 새 우주문명이 바로 후천개벽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2. 한국선과 중국선-불사와 장생의 만남

 

신선사상의 근본특성은 불사不死에 있다. 신선사상은 불사不死의 관념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자』 「6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암컷이라 한다.”고 하여, ‘곡신불사谷神不死를 제시한다. 춘추좌전』 「소공 20제 경공이 말했다. ‘예로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그 즐거움이 어떠했을까?’ 안자가 대답했다. ‘예로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옛사람의 즐거움일 것이니, 군주께서 어찌 얻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불사의 사상이 춘추시기에 이미 중시되고 토론되었음을 입증한다.

불사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춘추시대이지만, 전국시대에 적지 않은 불사의 개념이 문헌에 나온다. 산해경山海經초사楚辭이다. 특히 산해경은 전국시대에서 한초에 이르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신선사상의 근본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불사의 개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산해경에는 불사수不死樹’, ‘불사민不死民’, ‘불사지약不死藥’, ‘불사국不死國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개명의 북쪽에 시육·주수·문옥수·우기수·불사수가 있다.

 

죽지 않는 백성이 그 동쪽에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몸이 검고 오래 살며 죽지 않는다.

 

개명의 동쪽에 무팽·무저·무양·무리·무범·무상이 있다. 알유의 시체를 둘러싸고 모두 죽지 않는 약을 가지고 죽음의 기운을 물리치고 있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는데, 성은 아씨이며 감목을 먹는다.

초사』 「천문에는 연년불사延年不死라는 말이 나온다. “목숨을 연장하여 죽지 않는다면, 수명은 어디에서 그치는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초사』 「원유에는 단구에 있는 선인에게 나아가, 죽지 않는 옛 고향에 머무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왕일王逸의 주석에 따르면, 사람이 도를 얻으면 몸에 새의 깃이 돋아나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선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선인이 되어 선향仙鄕에 올라가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책』 「초책에는 형왕에게 불사약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형왕에게 죽지 않는 약을 바친 사람이 있었다. 알현을 청하는 사람이 약을 들고 들어가자 근위병이 물었다. ‘먹을 수 있는가?’ 알현을 청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에 빼앗아 먹었다. 왕이 노하여 사람을 시켜 근위병을 죽이라고 하였다. 근위병이 사람을 시켜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알현을 청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알현을 청하는 자가 먹어도 된다기에 먹었습니다. 저에게는 죄가 없고 죄는 알현을 청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식객이 죽지 않는 약을 바쳐서 제가 그것을 먹었는데 임금님께서 저를 죽이면 죽는 약입니다. 임금님께서 죄 없는 저를 죽이시면 알현을 청하는 사람이 임금님을 속이려 한 것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에 형왕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

 

한비자』 「외저설좌상外儲設左上에는 식객 가운데 연왕에게 불사의 도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서 배우게 하였다. 배우러 간 사람이 다 배우기도 전에 식객이 죽었다.”라고 하여, ‘불사不死의 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전국 말기에서 진한의 교체기에 등장하는 신선사상의 특징은 불사不死에 있다. 사마천은 전국 말기에서 진나라 때까지의 군주들이 신선이 되기를 추구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 때부터 사람들을 발해로 보내 봉래방장영주를 찾게 하였다. 이 삼신산은 발해에 있으며,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근심스럽게도 그곳에 이를 만하면 바람이 불어 배를 밀어냈다. 삼신산에 가 본적이 있는 사람들에 따르면, 뭇 선인과 불사약이 다 그곳에 있다. 그곳의 사물들과 짐승은 모두 희고,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도착하기 전에 멀리서 보면 구름과 같고, 도착하면 삼신산이 도리어 물 아래에 잠겨 있는 듯하다. 도착할 만하면, 바람이 곧 밀어내 끝내 이를 수 없다. 세상의 군주치고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한 뒤에 바닷가를 순시하자 방사들이 이런 일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말하였다.

 

사기』 「봉선서에 따르면,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이 발해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봉래와 방장과 영주의 삼신산을 찾고, 선인과 불사약을 탐색했다. 삼신산과 신선의 불사약에 대한 탐사열풍은 진시황에서 최고의 단계에 이르고 한 무제까지 지속된다. 전국시대에서 진한에 이르기까지 제왕들은 신선을 추구하는 구선求仙의 활동을 벌여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선의 활동은 신선과 선계를 신앙하는 데서 출발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제나라와 연나라의 불사의 관념은 초월적 불사를 추구하던 동방 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주의 성격이 강한 중국의 신선사상은 진한 이후로 삼신산과 신선에 대한 탐사열풍이 점차 시들해지면서 신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이룬다. 신적이고 초월적인 신선을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선神仙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신선은 의 합성어이다. ‘의 개념은 의 개념보다 더 일찍 출현하였다. 중국 고대에서 은 대체로 천신天神을 가리킨다. 후한의 허신許愼설문해자에 따르면, “이란 천신이 만물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는 의미 요소이고, 은 발음 요소이다.” 여기서 천신이 만물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천신의 특이한 능력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향은 설원』 「수문에서 신령이란 것은 천지의 근본이고, 만물의 시초이다.”라고 한다. ‘따라서 은 천상에 존재하면서 조물주처럼 우주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조화造化의 모체를 뜻한다.

은 상고시대에 으로 기술하였다. 설문해자에서는 을 해석하면서, “사람이 산 위에 있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는 모양()의 옛 글자이다. ‘은 상형자로서 높은 산 위에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옛날 사람들은 높은 산에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높은 산의 정상은 천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선인의 상승적, 초월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선의 개념이 산악숭배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후대의 지선地仙의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또한 은 한나라 이전에는 으로 썼다. ‘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장생불사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설문해자에서 오래 살다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장생長生과 승천昇天은 선의 요체이다. 장자』 「천지에는 선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함께 번창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덕을 닦아 한가롭게 지낸다. 천 년을 살다가 세상에 싫증이 나면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 저 흰 구름을 타고 천제의 고향에 이르니, 세 가지 근심이 이르지 못하고 몸에는 늘 재앙이 없다.

 

여기서 세 가지 근심이란 질병과 노쇠와 죽음을 가리킨다. 신선이 되면, 질병과 노쇠에서 벗어나고 생사의 고통에서 탈출하여 천지 사이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

둘째, ‘’’은 춤추는 옷소매가 바람에 펄럭인다는 뜻이다. ‘은 본래 긴 소매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춘다는 뜻이다. 너울너울 춤추며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신령스러운 존재가 바로 신선이다. 답답하고 복잡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천지만물과 하나가 되어 아무 근심이나 걱정 없이 자유롭게 소요하는 존재이다. 청나라의 단옥재段玉裁(1735-1815)설문해자의 주석에서 소매를 펄럭여 춤추며 날아오르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이라는 글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한나라이다. 한대의 훈고학자 유희劉熙석명釋名』 「석장유釋長幼에서 늙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을 선이라 한다. 선은 옮긴다는 뜻이다. 옮겨서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라고 한다. 선술을 터득하여 더럽고 번잡한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는 존재를 신선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희가 선을 형성자이면서도 회의자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선은 대체로 세 가지 특성-초월적超越的 특성과 비상적飛翔的 성격과 불사적不死的 성격-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신선은 기본적으로 장생불사하면서 인간세상을 떠나서 산속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하늘로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이므로 신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신선에서 의 두 글자는 병렬관계일 수도 있고 수식관계일 수도 있다. 두 글자의 관계를 병렬관계로 보느냐, 아니면 수식관계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 파악이 달라진다. 병렬관계로 보면, 신선은 신인과 선인의 생략형이다. 수식관계로 보면, 신선은 신령스러운 선인의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에 신선을 다른 어떤 존재와도 구별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그 의미의 중점은 선에 있다고 하겠다. 신이 선의 수식어가 될 경우에는 선의 속성은 신의 능력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도교에서 신선은 두 번째의 의미에 치중하는 것으로 고대인들의 장생불사에 대한 추구와 그런 능력을 확장하려는 소망을 반영한다.

선진시대에는 신과 선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있었다. 하지만 진한시대에 이르러 신과 선이 점차 합치되면서 그 경계선이 애매모호하게 된다. 사마천司馬遷사기』 「봉선서에서 을 나누어 서술하면서도 하나의 합성어로 보고 있다.

후한시대의 반고班固(3-54)한서』 「예문지에서 신선가神仙家라는 항목을 따로 두어 불사에 관한 전문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신선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선이란 성명의 참됨을 보존하고, 노닐면서 세상 밖의 것을 구하려는 자들이다. 애오라지 뜻을 씻어내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삶과 죽음의 영역을 같이하여 가슴속에 한 점 두려움도 없게 하는 것이다.

 

반고가 지적한 것처럼, 신선은 생명의 참모습을 보존하고 생사의 한계를 초월하는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반고가 보기에 신과 선은 본래 같은 것이다. 반고는 신선을 한 낱말로 붙여 쓰고 있다.

위진현학자 혜강은 양생론養生論에서 신선은 기이한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이 학문을 통해서 신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술하였다. 그러나 도교의 신선술과 금단술에 통달하였던 갈홍葛洪(283-363)은 인간이 도를 배워서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학도구선學道求仙을 주장한다. 그는 포박자내편』 「근구勤求에서 신선은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피와 기장을 파종하여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강조한다. 갈홍은 신선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신선삼품설神仙三品說을 제시한다. ‘천선天仙지선地仙시해선尸解仙이다.

 

상사는 몸을 들어 하늘로 올라가니, 천선이라 한다. 중사는 명산에 노니니, 지선이라 한다. 하사는 우선 죽었다가 나중에 허물을 벗으니, 시해선이라 한다.

 

천선은 몸을 들어 하늘로 올라가 천상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신선을 말한다. ‘지선은 지상의 명산대천을 노니는 신선을 말한다. ‘시해선은 매미가 허물을 벗어 갱신하는 것처럼 우선 죽었다가 나중에 육신의 거추장스런 껍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선을 말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갈홍이 신선의 도를 얻은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면서 이 세상에 머물며 오래오래 사는 신선을 최하의 신선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국선과 중국선은 어떻게 다른가? 한국선과 중국선이 모두 불사不死의 선과 장생長生의 선을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그 궁극적 지향점은 다르다. 한국선이 초월성이 강한 불사의 선이라면, 중국선은 현실성이 강한 장생의 선이다. 중국문화는 다른 나라의 문화와 비교할 때, 종교성보다는 현실성이 강한 특징을 갖는다. 중국문화는 중국인의 현실적 삶의 방식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문화모형이다. 이에 비해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에 비해서 종교의 초월성이 강한 문화이다.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만남은 선문화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초월성이 강한 불사의 한국선과 현실성이 강한 장생의 중국선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장생의 선과 불사의 선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장생의 선은 유형의 형체를 가진 인간이 일상적인 사람들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장구한 시간을 사는 것을 추구하며, 불사의 선은 무형의 참된 몸을 지닌 인간이 생사의 대립에서 벗어나 시공 속에서 시공을 넘어서 영원한 현재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사의 선은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영원한 현재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내단사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생의 선에서 불사의 선으로 성숙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선의 근본적인 특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선은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를 섬기는 국선國仙에 그 중점이 있다. 동방 9천년 선문화의 원형은 삼랑선三郞仙이다. ‘삼랑이란 말은 본래 삼시랑三侍郞이라고 부르는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나오는 삼신시종지랑三神侍從之郞의 줄임말이다.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와 하나가 되어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선인을 가리킨다. 삼신일체상제의 광명을 회복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삶을 실천한 국선國仙들이다. 한민족사의 시원 나라인 배달국의 천황랑, 단군조선의 국자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등이 모두 삼랑이다. 삼랑은 한국의 선맥을 계승하여 신선세계를 추구한 사람들이다.

한국의 선도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수운의 동학이다. 수운의 동학은 인간이 지상에서 신선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수운은 선어’, ‘선약’, ‘선풍’, ‘신선’, ‘지상신선등의 개념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수운의 은 수련을 통해 불사와 장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운의 에서 중요한 것은 다시 개벽과 맞물린 이란 점이다. 세계와 인간이 다함께 개벽되어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이란 사실이다.

수운의 선은 조화사상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수운은 동경대전』 「논학문에서 조화라는 것은 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조화무위이화無爲而化로 해석한다. ‘무위이화는 본래 우주만물이 누가 그렇게 되도록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하게 생겨나고 변화하는 창조적 조화작용을 말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수운에서 조화는 단순히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수운에서 천지만물의 자연변화를 가능케 하는 그 바탕에는 모든 변화를 주관하는 조화주의 주재성, 즉 천주조화天主造化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저 예로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이 번갈아 갈마들고, 사계절의 번성과 쇠퇴가 옮기지도 않고 바뀌지도 아니하나니, 이 또한 천주조화의 자취가 온 천하에 밝게 드러난 것이다. 어리석은 사내와 어리석은 백성은 비와 이슬을 내려 주시는 (천주의) 은택인 줄을 알지 못하고 함이 없이 절로 변화하는 줄만 안다.

 

수운의 선사상은 조화사상을 근거로 하여 동귀일체同歸一體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수운사상의 핵심은 잘못된 세계관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수운은 포덕문에서 또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고 하여, 당대에 만연했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파편화된 세상을 비판한다. 수운이 보기에 세계와 인간의 근원적 문제점은 자타를 이분화하는 주객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수운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꾀하는 자아위주의 세계관에서 동귀일체의 세계관으로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한다.

수운은 교훈가敎訓歌에서 그럭저럭 할 길 없어 없는 정신 가다듬어 한울님께 아뢰오니 한울님 하신 말씀 너도 역시 사람이라 무엇을 알았으며 억조창생 많은 사람 동귀일체同歸一體 하는 줄을 사십 평생 알았더냐.’”라고 하고, 도덕가道德歌에서 그러나 한울님은 지공무사至公無私 하신 마음 불택선악不擇善惡 하시나니 효박淆薄한 이 세상을 동귀일체同歸一體 하단말가라고 하였다. 억조창생에게 동학東學을 가르쳐서 천주께 동귀일체同歸一體 시키겠다는 것이다. 동귀일체는 우주만물이 모두 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만물이 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우주만물은 천지부모인 천주의 조화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모두 한 가족이다. 천지조화의 정점에 조화주로서 상제(천주)가 있다. 동귀일체는 천주 모심의 시천주를 전제로 한다. 천주를 모심으로써 우주만물과 한몸이 되는 것이다. 수운은 인간이 천주조화에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조화정造化定이라고 정의한다. 수운에 따르면, “조화라는 것은 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정은 그 덕에 합하여 그 마음을 정립하는 것이다.” 조화의 정립은 천주의 무궁한 조화인 무위이화無爲而化를 체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천도의 자연조화의 이치를 자각함으로써만 인도로서의 인간의 창조적 조화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의미는 조화주 천주께 정성()을 다하고 믿음()을 다하며 공경()을 다해서 천주의 덕과 합치하고(合其德) 천주의 마음을 정립(定其心)함으로써 우주만물과 한몸이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마음이 천주의 마음이 되고, 천주의 마음이 인간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운은 인간의 마음속에 신선이 되는 불사약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선약이란 무엇인가? 천주를 극진히 모시는 성경신의 마음으로 천주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천주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마음속에 깃들인 불사약이다.

수운의 선은 조화의 선이다. 조화의 선은 온 천지를 조화로 넘쳐나게 하는 자연조화의 선이고, 인간이 자기수양을 통해 마음과 기운을 바로잡아 신선이 되는 자기조화의 선이며, 동양의 유불선과 서양의 천주교를 통섭하는 문명조화의 선이다. 수운의 선은 자연과 인간과 문명이 다 같이 창조적 변화작용으로 충만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다.

동아시아 인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는 되돌아감’()의 문제이다. ·폐풍邶風·식미式微에서는 호불귀胡不歸?”를 강조하였고, 사기』 「백이열전에서는 백이와 숙제가 채미가采薇歌에서 노래한 내 어디로 돌아가야 할꼬?”(아안적귀의我安適歸矣?)를 강조하였으며, 노자에서는 복귀復歸를 강조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되돌아감을 중시한 대표적 인물은 동진시대의 도연명(365-427)이다. 남송南宋의 주자지周紫芝(1082-1155) 태창제미집太倉稊米集·난후병득도두이집亂後並得陶杜二集에서 “두보에게는 구절마다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있고도연명에게는 돌아감을 말하지 않는 시가 없다.” 동아시아 인문학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증산 상제는 天上無知天(천상무지천)하고 地下無知地(지하무지지)하고 人中無知人(인중무지인)하니 知人何處歸(지인하처귀)리오 천상에서는 하늘 일을 알지 못하고 지하에서는 땅 일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은 사람 일을 알지 못하나니 삼계의 일을 아는 자는 어디로 돌아가리.”(도전2:97:3)라고 하였다. 공중을 나는 새들도 날이 어두워지면, 제 둥지를 찾아 돌아갈 줄을 안다. 두견새는 오늘도 세상 사람들에게 본향을 찾아 돌아가야 한다고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3. 증산도의 선과 조화

 

증산도 사상의 핵심과제의 하나는 선사상이다. 태모 고수부는 증산도의 선사상을 이렇게 말한다.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는 일은 다 신선(神仙)이 하는 일이니 우리 도는 선도(仙道)니라.” 하시고  “너희들은 앞으로 신선을 직접 볼 것이요, 잘 닦으면 너희가 모두 신선이 되느니라.” 하시니라또 말씀하시기를 신선이 되어야 너희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 하시니라.(도전 11:199:7-9)

 

증산도의 후천 선사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신선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증산 상제는 중국의 팔선 가운데 한 사람인 여동빈의 고사를 인용하여 신선사상을 해명하는 단초로 삼고 있다.  

 

 나의 일은 여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 동빈이 사람들 중에서 인연 있는 자를 가려 장생술(長生術)을 전하려고 빗 장수로 변장하여 거리에서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고, 굽은 허리가 펴지고, 쇠한 기력이 왕성하여지고 늙은 얼굴이 다시 젊어져 불로장생하나니 이 빗 값이 천 냥이오.’ 하며 오랫동안 외쳐도 듣는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허탄하게 생각하여 믿지 아니하더라. 이에 동빈이 그중 한 노파에게 시험하니 과연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는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다투어 사려고 모여드니 동빈이 그 때에 오색구름을 타고 홀연히 승천하였느니라.(도전 7:84:3-8)

신선이 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신선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는가? 증산 상제는 옛 시를 한 수 읊조리며 청룡황도대개년靑龍皇道大開年에 왕기부래태을선王氣浮來太乙船이라 수능용퇴심선로誰能勇退尋仙路리오 부불모신몰화천富不謀身歿貨泉이라 청룡의 황도가 크게 열리는 해에 왕도(王道)의 운기 태을선을 띄워 오네. 누가 용감히 부귀영화 물리치고 신선의 길을 찾을 수 있으리오. 부로는 네 몸 사는 길을 꾀할 수 없나니 재물에 빠져 죽느니라.”(도전7:62:2)고 말하였다. 인간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세속의 부귀영화에 빠지지 않고 신선이 되는 길에 있다는 것이다.

증산도 신선사상의 핵심은 조화造化에 있다. 증산 상제는 불지형체佛之形體요 선지조화仙之造化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니라. 불도는 형체를 주장하고 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하느니라.”(도전2:150:2)라고 하였다. 증산도의 선은 조화선造化仙이다. 조화선은 우주만물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모든 생명을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조화는 만든다는 뜻의 조자와 변화한다는 뜻의 화자의 복합어이다. 모든 만물이 누가 그렇게 되도록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하게 생겨나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자조自造자화自化가 바로 그것이다.

조화란 말이 고대 중국의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이다. 장자이제 한결같이 천지를 큰 화로로 삼고 조화를 큰 대장장이로 삼는다면. 어디에 간들 옳지 않으리오!”라고 하여, 천지를 만물의 본질을 뜻하는 화로로 삼고 조화를 만물의 작용을 뜻하는 대장장이로 간주한다. 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조화는 우주만물의 저절로 그러한 창조적 변화작용을 뜻한다.

서한 초의 가의賈誼(201~169)복조부鵩鳥賦에서 장자의 조화사상을 계승하여 천지와 조화와 만물을 각기 화로와 대장공과 구리에 비유한다. “대저 천지를 화로로 삼고 조화를 공인으로 삼으며, 음양을 숯으로 삼고 만물을 구리로 삼는다. 합치하고 흩어지며 사그라지고 자라나니, 어찌 일정한 준칙이 있겠는가? 천만 가지로 변화하여 애초에 한계가 있지 않도다!” 가의에서 천지는 만물의 본질이고, 조화는 만물의 작용이며, 만물은 만물의 모습에 해당하기 때문에 삼자는 삼위일체적 구조와 관계를 이루고 있다.

조화는 철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 회화에서는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작용을 뜻하는 조화를 회화의 원천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당나라의 장언원張彦遠(815-879)역대명화기·10에서 밖으로는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얻는다.”(外師造化, 中得心源.)라고 하였다. 이는 장언원이 마음은 조화를 배운다.”(심사조화心師造化)라고 주장하여 예술주체의 능동적 작용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남북조 시대의 요최姚崔(586-630)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주체와 예술객체를 이분화하는 요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것이다. 장연원은 예술객체(조화造化)와 예술주체(심원心源)의 관계를 정경교융情景交融의 경지에서 하나로 융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증산도의 조화사상은 선천이 후천으로 뒤바뀌는 개벽사상에 그 초점이 있다. 동아시아의 조화사상이 단순히 철학이나 예술에서 우주만물의 창조적 변화과정만을 해명하는 것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증산 상제는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조화권능을 지닌 조화주다. 조화주 증산상제는 인간으로 세상에 나와서 천지공사를 통해 구천지의 상극질서를 신천지의 상생질서로 전환시켜 후천의 조화선경세계를 건설하려고 한다. 증산도의 조화사상은 선천의 상극세상을 후천의 상생세상으로 바꾸려는 천지공사에 그 핵심이 있다.

 

나는 조화로써 천지운로를 개조改造하여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을 열고 고해에 빠진 중생을 널리 건지려 하노라.(도전2:15:5)

 

한국에서 조화사상은 중국과는 달리 철학이나 예술의 분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종교적인 차원에서 제시된 것이다. 신교의 삼신사상을 담고 있는 환단고기에는 삼신-조화신造化神, 교화신敎化神, 치화신治化神-의 하나로 조화신이 등장한다. 조화신은 우주만물을 창조적으로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주관한다.

이런 삼신의 조화사상이 오랫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선 후기에서 이르러서 후천의 개벽사상과 맞물리면서 새롭게 조명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조화사상은 그 이전의 동아시아의 조화사상과는 질적으로 그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조선조 후기의 정역과 동학과 증산도에서 말하는 조화사상은 선후천의 개벽사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조 후기의 조화사상은 선천 세상의 자연과 문명이 후천세상의 새로운 자연과 문명으로의 동시적 변화와 전환을 가능케 하는 후천 개벽사상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증산도의 조화사상은 모든 사상의 근원적 바탕을 이룬다. 모든 변화가 통일로 돌아가는 후천 개벽기에 이상세계를 건립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조화사상은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조화주 증산 상제의 조화권능에서 비롯된다. 증산 상제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도전2:13:5)는 놀라운 선언을 하였다.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이 선천의 낡고 병든 질서를 벗어나 증산 상제의 조화권능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이다.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에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도전2:16:1~3)

증산 상제는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조화권능을 가지고 모든 법을 합하여 써서 창조적 변화작용이 넘쳐나는 조화세상을 열고자 한 것이다.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가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도전2:21:1~5)

 

중요한 것은 우주만물을 새롭게 바꾸는 천지공사 자체가 천지조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천지는 오묘한 변화작용을 통해 온갖 사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킨다. ‘천지조화天地造化’(도전11:77:3)가 바로 그것이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든 일은 신명조화神明造化로 이루어진다. 신명은 조화를 부리는 신묘한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증산 상제님은 이 세상은 신명조화가 아니고서는 고쳐낼 도리가 없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천지보다 더 큰 조화를 지어낼 수 있는 창조적 변화의 주체라는 사실이다. 증산 상제는 오심지추기문호도로대어천지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내 마음의 문지도리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니라.”(도전4:100:7)라고 하여, 인간의 마음은 천지만물보다 더 큰 조화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

조화주 증산 상제는 조화권능으로 천지대신문을 열고 천상의 조화정부를 구성하여 신명조화를 바탕으로 천지조화와 인간조화를 삼위일체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후천의 조화세상을 여는 천지공사를 집행하였다. 조화선경은 천지조화와 인간조화와 신명조화가 하나로 합치되어 신묘한 조화작용이 온전히 발현되는 후천의 이상세계이다.

 

4. 관왕 삼교론

 

관왕 삼교론은 관왕론과 삼교론을 합친 말이다. 관왕론과 삼교론을 나누어 볼 때는 그 무게 중심이 관왕론에 있다.관왕冠旺이란 말은 본래 십이포태법十二胞胎法에서 비롯된 것이다. 12포태란 포, . , , , , , , , , , 으로 나뉜다. 우주만물은 자연의 조화와 이치에 따라 생겨나고 변화한다.

십이포태법은 좁은 의미에서 인간이 모태 속에 들어 있던 잉태기에서 시작하여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들어가는 생로병사의 전 과정을 말한다. 생명의 씨가 어머니 몸 안에서 잉태되어(포태胞胎) 뱃속에서 열 달 동안 길러져서 태어나면(양생養生)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며(욕대浴帶) 장성하면 관례를 치르고 원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보내며(관왕冠旺) 늙고 병들어서(쇠병衰病) 죽으면 장례를 치른다(사장死葬).

하지만 십이포태법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열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증산 상제는 천지생인天地生人하여 용인用人하나니 천지지용天地之用은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이니라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의 작용()포태 양생 욕대 관왕 쇠병 사장이니라.”(도전10:106:2)고 한다.

십이포태라는 열두 단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계는 관왕冠旺이다. ‘관왕은 십이포태법 가운데 의 두 단계를 가리킨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기에 해당한다. 젊은이가 관례를 치르고 힘차게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관왕도수가 십이포태법을 거슬러 나아가는 방식인 장사병쇠왕관대욕생양태포葬死病衰旺冠帶浴生養胎胞’(도전5:318:3)를 따른다는 점이다. 증산 상제는 성숙한 인간은 12포태법에서 포태(胞胎)의 운’(도전6:58:1)을 따른다고 강조한다. ‘포태의 운이 새로운 개벽세상으로의 획기적인 전환을 함축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관왕론은 후천세상의 통일문화를 여는 것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우주의 조화주 증산 상제는 유불선 삼교를 비롯한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여 후천세상의 통일 문화를 열기 위한 방안으로 관왕론을 제시한다. 관왕론은 원시반본原始返本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생명의 시원을 살펴서 그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생명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초적 모습으로 역행하려는 것이다. 관왕론은 신선이 되는 방안으로 생명을 역행하는 길을 채택한다. 때어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의 생로병사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면 범인이 되고, 생로병사의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일명의 도서십이종에서는 역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거스른다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의 처음으로 거슬러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집을 멀리 떠났다가 또 집으로 거슬러 되돌아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다. 비록 거슬러 나아간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이치를 따라서 나아가는 것이니, 곧 거스르는 가운데 크게 따르는 것이다. 일상적인 사람들과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거스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행逆行은 생명의 참모습으로 거슬러 돌아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집을 떠나 객지에서 떠돌며 방황하던 인생의 나그네가 진정한 삶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만 일상 사람들의 행위방식과 다르므로 역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행은 실제로는 생명의 참모습에 순응하는 것이다.

관왕론이 십이포태법을 거스르는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역수반본逆修返本역수성선逆修成仙의 뜻이 담겨 있다. 생명의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역행의 방법으로 신선이 되려는 것이다. 후천의 신선세계에서 모든 생명이 새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증산 상제는 천지공사를 통해 우주의 가을철을 맞아 인류 문명이 성숙한 통일 과정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관왕론을 천지도수天地度數(천도지수天度地數)로 짜놓았다. 천지도수는 우주변화의 원리나 법칙을 뜻한다. 관왕론을 천지만물의 운행법칙으로 확정하여 놓았다는 말이다.

 

관왕冠旺은 도솔兜率 허무적멸이조虛無寂滅以詔니라. 이제 (인류사가 맞이한) 성숙의 관왕冠旺 도수는 도솔천의 천주가 허무() 적멸() 이조()를 모두 통솔하느니라. (도전2:150:3~4)

 

증산도의 선사상은 인류 원형문화 신교 신앙의 부활과 후천 5만년 새 세상을 여는 새 진리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거시적 안목에서 볼 때, 신교 신앙이 제1의 뿌리 종교라면 유교, 불교, 선교, 기독교는 제2의 줄기종교이며, 증산도는 제3의 열매종교에 해당한다. 열매는 그 안에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그 씨앗이 다시 땅에 뿌려지면 새로운 생명이 창조된다. 또한 열매 안에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의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유불선 삼교는 동아시아 문화의 핵심이자 정수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장구한 역사를 통해 유불선 삼교를 하나로 융합하려는 줄기찬 노력을 시도했다. 대략 동한(AD 25)시기를 전후로 하여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유입된 뒤, 중국사회에서는 전통사상인 유교와 도교를 어떻게 하면 불교와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였다. 이후 중국역사에서 삼교 회통론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여기에는 사상의 통일을 기반으로 정치적 통일을 기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의 삼교 회통론이 시대와 역사의 조건에 따라 그 내용이 끊임없이 달라지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삼교 회통론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삼교를 하나로 포함하는 이론을 그 주된 특성으로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 대표적 특성을 최치원의 풍류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곧 세 가르침을 포함하는 것으로 뭇 생명들을 접촉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에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의 가르침이요, 함이 없음의 일을 처리하고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주나라 주사의 종지이며, 모든 악한 일을 짓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 태자의 교화이다.

 

최치원의 풍류도인 선사상에는 삼교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포함삼교론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최치원의 포함삼교론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인 선도를 중심으로 유불선 삼교를 하나로 융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유불도 삼교합일의 선도仙道는 상고시대부터 전해내려 오는 한국 선도의 고유한 특성이다. 최치원이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정의를 내린 풍류도風流道는 한국 선도의 독특한 특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포함삼교包含三敎라고 하여 한국의 고유한 도인 풍류도에 유불도 삼교의 핵심과제가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도는 유불도 삼교사상과 이질적이 아니면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치원은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표현한 것이다.

최치원의 풍류도를 비롯한 기존의 한국의 삼교 회통론은, 선교의 자연사상과 유교의 도덕사상과 불교의 해탈사상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이런 최치원의 풍류도는 환단고기의 삼일론의 사유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하나를 잡으면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으면 하나로 돌아간다는 집일함삼執一含三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환단고기의 삼신일체론은 삼신과 일신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또 하나로 붙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증산도의 관왕삼교론은 환단고기의 삼일론의 사유방식과 최치원의 삼교 포함론을 계승하여 선(선도)을 중심으로 삼교를 통합하려고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은 우주를 통치하는 조화주 증산 상제의 무극대도에 의거하여 유불선 삼교를 통일함으로써 새로운 자연질서에 입각하여 새로운 문명질서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이 중국이나 한국의 삼교 회통론이나 최치원의 포함삼교론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불지형체佛之形體요 선지조화仙之造化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니라. 불도는 형체를 주장하고 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하느니라. 수천지지허무受天地之虛無하여 선지포태仙之胞胎하고 수천지지적멸受天地之寂滅하여 불지양생佛之養生하고 수천지지이조受天地之以詔하여 유지욕대儒之浴帶하니 관왕冠旺은 도솔兜率 허무적멸이조虛無寂滅以詔니라. 천지의 허무無極한 기운을 받아 선도가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太極)한 기운을 받아 불도가 양생 하고 천지의 이조(皇極)하는 기운을 받아 유도가 욕대 하니 이제 (인류사가 맞이한) 성숙의 관왕冠旺 도수는 도솔천의 천주가 허무() 적멸() 이조()를 모두 통솔하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술수術數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놓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도전2:150:1~4)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은 조화주 증산 상제의 주관 아래 유불선 삼교-선교의 조화와 유교의 범절과 불교의 형체’-를 하나로 융합하려는 것이다. 선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천지의 허무한 기운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의 조화造化이다. ‘조화는 우주만물이 누가 그렇게 되도록 시키지 않아도 절로 그러하게 만들어지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천지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범절凡節이다. ‘범절은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를 예의범절로서 통일적 질서와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생명을 기르는 양생의 길로서 형체形體를 중시한다. ‘형체는 그 무엇이라 단정하기 매우 어렵다.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 있다. “이어 태모님께서 창()하시기를 선지조화(仙之造化), 불지형체(佛之養生)이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하시고 단에서 내려오시니 상서로운 노을 흩어지니라.” (도전11:182:6)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로 미루어 볼 때, ‘형체는 천지의 적멸한 기운을 받아 생명의 본질인 심체心體를 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형체는 불교의 핵심사상인 마음공부를 뜻한다고 하겠다.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은 유불선의 삼교를 초월하면서도 포함함으로써 후천의 새로운 통일문명을 만들려고 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관왕 삼교론에서 관왕은 후천의 통일문명을 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뜻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증산도의 무극대도는 좁은 의미에서는 유불선 삼교를 통일하는 대도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동서양의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포괄한다. 무극대도는 삼계대권의 조화권능을 지닌 우주생명의 조화주가 구천지와 구문명을 새롭게 개조함으로써 새 우주문명을 열 수 있는 조화의 대도를 말한다.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宗長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 문명신文明神 거느려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요 선지조화仙之造化요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나의 도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의 기운을 쏙 뽑아서 선에 붙여 놓았느니라.(도전4:8:7~9)

유불선과 서도는 각기 세계 문화의 근본과 중추를 이루었다. 증산 상제는 선천 문화의 종장을 교체하는 일을 단행한다.  그리하여 증산 상제는 한국의 선도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여러 갈래의 문화로 나뉘어졌던 세계 문화의 정수精髓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측면에서 한데 모아 세계 통일문화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하루는 성도들이 태모님께 여쭈기를 교 이름(敎名)을 무엇으로 정하시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하를 통일하는 도인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 후일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면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도전11:29:1~2)

 

증산도에서 선은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은 유불선을 통합한 선이자, 중국의 도교를 포함한 한국의 선도를 동시에 의미한다. 그러나 증산도의 선도는 선천의 선도와 다르다. 왜냐하면 증산도의 선도는 후천의 선도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산도의 선도는 선천세상의 모든 문명을 하나로 융합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태일선太一仙또는 태을선太乙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은 온 천하를 통일하는 새로운 무극대도로서 후천 선경문화를 창출하는 데 그 궁극적 목표가 있다. 유불선 삼도가 무극대도로 통일되어 후천의 태평세상이 이루어지는 삼도합일三道合一의 태화세太和世”(도전11:220:4)가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증산도의 관왕 삼교론이 동서문화의 융합을 지향하기 때문에 불멸의 영생을 추구하는 서양의 선도인 기독교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5. 후천의 지상신선을 위하여

 

티끌세상과 풀잎인생에서 날마다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인생의 나그네는 오늘도 돌아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와 귀의처를 찾아 헤맨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진정한 삶의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천년만년 오순도순 즐겁게 살고픈 귀향의 소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기 위해 예로부터 지금까지 불로장생과 불사장생의 꿈을 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생명의 본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순환과 리듬을 떠나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순환과 리듬 속에서 사와 불사不死, 와 불화不化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 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본시 시공의 변화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 하는 연속적 변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초사』 「천문달빛은 무슨 덕이 있기에,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가? 그 이로움은 무엇인가? 뱃속에 토끼를 기르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달빛을 영생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무와 유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를 따로 고집하지 않고 시공의 연속적 변화의 흐름과 일치할 수 있다면, 와 멸속에서 불사不死와 불멸不滅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생명의 고향은 고정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존재이다.

선도仙道는 신선의 고향인 조화선경造化仙境을 꿈꾼다. 선도 수행의 이론적 기초는 인간의 몸을 천지에 유비하여 추론한 생명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인체의 구조를 자연계의 구조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음부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가 손 안에 있고, 모든 조화가 내 몸에서 생겨난다.” 인체는 소천지로서 우주의 대천지와 같기 때문에 우주론에 유비하여 추론함으로써 인체의 발생 본원과 그 순서를 탐구한다면, 천지처럼 무궁히 영원히 살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고 생사 속에서 생사를 벗어나는 선도를 찾아 신선이 될 수 있다.

선도 수행의 길은 시공에 순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역행하는 데 있다. 시공에 순응하면, 모든 생명은 삶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공을 역행하는 수행법을 터득하여 우주만물의 통일적 근원인 무극대도無極大道로 복귀할 수 있다면, 무극대도와 더불어 생겨나는 가운데 생겨나지 않고 변화하는 가운데 변화하지 않는 태을신선(후천의 지상신선)이 될 수 있다. 우주생명의 근원적 고향을 찾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생명의 근본에 복귀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선이 추구하는 조화선경造化仙境의 본향이다. 증산도는 태을주太乙呪 주문수행의 신선공부를 통해 온 생명이 따로 또 하나로 어우러져 유유자적하게 사는 후천 세상의 태을신선을 추구한다. 여기에 증산도 선사상의 고갱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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