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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

2013.06.17 | 조회 6082

상생(相生)

 

문자적 의미

상생은 서로를 살린다. 서로를 잘되게 한다는 뜻이다.

 

본질적 의미

후천선경의 세상에서 모든 인간은 상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잘되게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한 후천선경은 바로 상생의 세상이다. 선천의 세상을 지배하는 이치가 상극이라면 후천선경을 지배하는 이치는 상생이다. 이러한 상생의 따라 만물들은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고 인간들은 대립과 투쟁을 벗어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 잘되게 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상생은 후천을 살아가는 인간이 갖게 되는 이상적인 마음 상태를 뜻한다.

 

핵심 사상

상생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극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상극과 상생은 우주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며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중 상극은 생장염장하는 우주 1년 중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성장하는 선천의 지배적 이치이며, 상생은 만물이 수렴․통일되는 후천의 지배적 이치이다.


이러한 상극', '상생이란 말은 원래 음양오행을 설명하는 한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즉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오행(五行)의 각각의 승부(勝負)작용으로 인한 상관관계를 상극과 상생으로 표현하였는데 오행의 상생은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의 상호 생()하는 관계이다. 이에 반해 상극은 오행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서로 극()하는 관계, 즉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의 관계이다. 상생이 만물을 살리는(낳는, ) 이치라면, 상극은 만물을 기르는(대립을 통해서 성숙시키는, )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상극과 상생이란 개념은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변화를 설명하는 원리로도 사용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동양의 성인(복희와 문왕)들은 천수상(天垂象)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주의 모습을 원리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주역의 기초가 되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이다. 일반적으로 낙서는 상극적 운동을 나타내는 상(, 선천팔괘도, 복희․문왕팔괘도)이라고 하며, 하도는 상생의 우주운동을 묘사하는 상(, 후천팔괘도, 정역팔괘도)이라고 한다.


증산 상제님은 일찍이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에 들어있다”(2:20:5)고 하였으며,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5:248:6) 라고 하였다. 이는 우주의 변화원리를 주재하는 주재원리가 하도와 낙서에 의해 알려지고, 그것을 통해서 선천과 후천이 상극과 상생의 이치로 존재함을 알려주신 말씀이다.


상극의 이치에서 상생의 운으로 들어서는 전환은 지축이 바로 서는 우주적 대변화에 의해 가능하다. 지축이 바로 선다는 것은 지축의 경사로 인한 양의 태과(太過)상태를 벗어나서 양과 음이 동등한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정음정양의 시대가 된다. 이 때는 음양의 작용이 동등하게 되고, 우주는 가장 정상적인 운동을 하게 된다.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되면 만물은 상호 조화롭게 작용하고 서로 상생하게 된다. 이러한 우주원리적 상생은 인간의 문화와 역사, 삶에도 영향을 미쳐서 서로 조화롭고 사랑하며 남 잘되게 하는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한다. 이러한 개벽을 증산도에서는 우주론적 후천개벽이라고 한다. 정음정양의 후천우주는 우주 내 모든 생명존재를 살림의 길로 인도한다. 우주와 우주의 이치가 조화롭게 되는 것은 그 우주 내 모든 생명이 바로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한마디로 상생이라고 표현된다. 즉 상생은 후천을 이끄는 지배적 이치가 된다.


상생의 이치가 우주 변화의 원리에 따라 후천의 지배적 원리가 될 때, 인간의 삶도 상생의 운에 따른 실천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우주론적 관점에서 상생을 철저히 이해할 때, 그리고 우주론적 의미의 상생을 근거로 할 때, 증산 상제님의 상생사상에 포함된 실천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상생의 도는 후천개벽을 실현하는 길이며, 후천개벽은 상생이 열리는 근거이다. 아무리 우주의 질서가 바뀌고 모든 생명이 그 본래성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인간간의 관계가 아름다운 상생의 관계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생명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상생을 지향하는 인간의 의지와 실천이 아무리 적극적이라고 하더라도 오직 후천개벽과 연관됨으로써 그 빛을 발하게 된다.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도전' 2:41:2)는 증산 상제님의 말씀은 선천의 상극지리가 후천의 상생의 도로 개벽되어,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게 되는 시점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알려준 것이다. 낡은 삶의 방식이란 바로 척과 원을 쌓는 세상에서의 삶의 태도, 이기주의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위무와 폭력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새 삶이란 이러한 선천의 모든 상극적 태도를 벗어버리고 상생의 조화를 지향하는 후천의 이상적인 삶인 선생(仙生) 그리고 선생(善生)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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