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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지성인과 만남

문계석 연구위원

2018.09.07 | 조회 4142

이 책을 내면서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인간의 삶이란 풀잎에 서린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게 잠깐 비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중국 한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와의 전쟁에서 이능李陵이 지은 시의 일부분으로, 전쟁포로로 잡혀 고생하는 소무蘇武를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귀화歸化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썼다.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창업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당대의 쟁쟁한 유학자儒學者로서 후에 태종 이방원을 도왔던 권근權近(1352~1409),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일과를 마치고 퇴궐退闕하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인간은 모두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아주 귀하게 태어나서 단 한 번 뿐인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은 어쩌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삶의 과정 속에서 오늘의 시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지 못한 삶이어서 비탄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대부분은 잠에서 눈을 뜨자마자 시간에 쫒기면서 일터로 달려가고, 저녁이면 과중한 업무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언저리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어쩌다가 힘든 삶을 벗어나 한거閑居한 여유를 갖기라도 하면, 이러저러한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되고, 지나간 삶의 자취를 더듬어본다. 그러다 보면 불현 듯 나는 삶의 좌표를 잃지 않고 본래 부여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이나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고집해왔던 지나간 삶의 가치관을 흔들어대는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일종의 회의懷疑이고, 진정한 가치를 희구希求하는 반성적인 삶의 첫 출발이 될 수 있다. 소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출범한다. 아무리 고귀하고 심오한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도 삶의 가치에 대한 반성이나 회의가 없다면, 지혜知慧(sophos)를 추구하는 철학과 거리가 먼 삶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철학의 빈곤은 반성적인 삶의 부재不在를 의미하고, 이는 삶의 가치에 있어서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원인이 된다.

존엄한 인격자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서양 지성사知性史의 전통에서 볼 때, 철학은 지혜의 동반자요 진리탐구의 왕좌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대다수는 철학에 대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근거리고, 실생활에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가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특히 물질만능주의나 자본주의 척도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당연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방이나 동방에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소위 현자賢者로 일컬어지는 분들은 끊임없이 지혜를 추구해 왔고, 각자 평생을 투자하여 철학이라는 지혜의 금자탑金字塔을 굳건하게 세우기도 하였다.

현자들은 무엇 때문에단 한 번 뿐인 인생을 지혜를 추구하는 일에 헌신했던 것일까? 그것은 지적 호기심이나 현학적인 멋을 부리기 위해서였을 수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영원한 진리를 획득하여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하여 실생활에 이득이 되도록 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 동기야 어찌됐던 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마도 아침이슬 같은 인생을 넘어 영원한 삶을 희구希求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간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통하는 길은 바로 지혜의 창고인 철학의 진리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최고의 지혜를 담은 진리의 지침서다. 최고의 지혜를 획득한 과거의 현자들은, 자신의 영혼이 그것을 꽉 붙들고 있는 한, 살아서는 지혜의 화신化身으로 지내고, 죽어서 육신이 사라진다 해도, 불멸의 지혜와 함께 자신의 영혼이 존속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영원한 지혜는 불생불멸하는 최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는 현상現象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생성변화에 종속하는 현상은 감각으로 파악되는 일시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의 지혜를 인식하고 드러내는 철학은 단숨에 달성될 수 없는, 매우 지난至難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책에서 서양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현자賢者들이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이룩해 낸 지혜의 창고를 열어 소중한 내용만을 뽑아 조금 정리해 놓았다. 정리된 내용의 주제는 철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 측면, 즉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존재론(Ontology), 진리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다루는 인식론(Epistemology),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의 여부를 다루는 신론(Theology)이 핵심이다.

서양의 철학에 눈을 뜬 독자에게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만, 지혜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초심자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글도 반복해서 읽으면 자연히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는 옛 성현聖賢의 충고도 있지 않는가?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정독精讀을 해 간다면, 누구나 현자들이 전하는 영원한 지혜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서양 고대의 이집트나 그리스 문화를 이끌어왔던 신화神話(Mythos)의 시대가 어떤 이유로 철학의 시대로 급격하게 전향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다. 거기에는 인간의 반성적인 사유를 통해 전개되는 논리論理(Logos)가 있었음을 제시해 보았다. 신화의 시대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중시하나 철학의 시대는 이성의 날카로운 논리적인 사유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리적인 사유로부터 다양한 학문적 체계가 구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2부는 소위 현자들이 탐구해낸 영원한 진리, 즉 철학이 일구어낸 진리가 무엇인지를 개괄해 보았다. 영원한 진리는 변함없이 참되게 존재하는 실재實在(Reality)에 대한 것이다. 실재는 잠시의 멈춤도 없이 창조 변화해가는 현상계의 배후에 항존恒存하면서 현상세계의 존립 근거가 된다. 이러한 실재론은 각기 다른 두 영역으로 갈리게 되는데, 물리적인 실재와 정신적인 실재가 그것이다. 전자는 물리적인 존재가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의 실재임을 주장하는 원자론과 그 후예들이 속하고, 후자는 정신적인 존재가 세계를 구성하는 형이상학적 진리임을 말하는 플라톤주의와 그 후예들이 속한다.

3부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실재가 영원히 존재한다면, 인간이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는 앎의 기원, 앎의 방법 등을 분석하는 인식론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두 진영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 불변의 진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소위 경험주의 전통이라 불리는 인식론이고, 후자는 합리주의 전통이라 불리는 인식론이다. 경험주의 인식론은 과학적 지식의 토대가 되었고, 합리주의 인식론은 수학적 진리의 토대가 되었다. 후에 독일 출신의 칸트I. Kant는 양자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통일하여 새롭게 인식론을 체계화한다.

4부는 19세기와 20세기에 새롭게 대두되는 철학적 사유를 주제별로 소략해 보았다. 오직 물질만이 근원적인 가치요 실재라고 주장하는 유물론唯物論,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를 문제 삼은 실존주의實存主義, 경험적인 현상을 넘어서 순수 의식에 있는 본질을 다룬 현상학現象學,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재론하는 귀납적 형이상학,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삶의 체험을 중시하는 삶의 철학, 하이데거M. Heidegger의 변종 존재론, 기호논리학을 바탕으로 언어를 분석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석철학分析哲學, 인간사회에서 행동양식의 성립근거와 존재가치를 다루는 사회철학이 그 중심이다.

5부는 전통적으로 논의되었던 신론을 소략하여 보았다. 신론의 중심 주제는 인격적 유일신(The God)이 존재하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무신론(Atheism), 유일신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유신론(Theism), 단 한분의 신이 자기 민족만을 위한다고 주장하는 단일신론(Henotheism), 온 세상이 신이 드러난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범신론(Pantheism), 온갖 세상의 존재가 신이 내재하여 창조 변화되는 과정이라고 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영원한 지혜의 지침서라 불리는 책은 사실 뜬 구름 잡는 만큼이나 이해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철학의 내용들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럼에도 역시 깊은 통찰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산적해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천천히 반성적으로 사유하면서 끝까지 독파해 낸다면, 당신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사상가요, 진실로 영원한 지혜를 체득하는 철학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20186

상생문화연구소 문 계 석

차례 | Contents

이 책을 내면서 4

 

Part I 철학의 문을 열면서

1. 신화神話시대 16

1) 호메로스Homeros와 헤시오도스Hesiodos 신화 17

2) 오르페우스Orpheus 종교의 가르침 21

3) 신화Mythos 시대에서 로고스Logos 시대로 26

2. 철학Philosophy이란 무슨 말인가 31

1) 철학哲學이라는 학문 31

2) 사랑philos이라는 의미 35

3) 무엇이 지혜sophia인가 42

3. 철학은 아무나 하나 51

1) 자신의 무지無智를 자각한 사람 51

2) 철학의 꽃, 형이상학形而上學 59

3) 철학적 탐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64

4) 실재reality를 찾아 나선 사람들 72

Part II 실재를 찾아낸 사유思惟

1. 소박한 물리적 실재론 80

1) 일원적一元的인 사고의 물활론Hylozoism 82

2) 사고의 갈림길에 선 두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88

3) 귀류법歸謬法의 창시자 제논Zenon 94

2. 원자론과 근대의 물리적 실재론 101

1) 실재와 생성의 대립을 해결하려고 시도한 다원론多元論 101

2) 고전적 원자론原子論(유물론의 원조) 109

3) 원자론에서 출범한 현대의 물리과학 121

3. 인문개벽의 근본은 형이상학적 실재론 131

1) 최초로 인문개벽을 주도한 사람들 131

2) 극단적인 실재론자 플라톤Platon 143

3) 형이상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163

4) 중세 철학의 길목에 선 플로티노스Plotinos 184

4. 실재론에서 관념론으로의 전향 198

1) 중세에서 벌어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간의 존재론 논쟁 198

2) 형이상학적 유심론의 대표자 라이프니쯔Leibniz 214

3) 주관적 관념론자 버클리Berkeley 226

4) 절대적 관념론자 헤겔Hegel 240

Part III 진리를 어떻게 인식認識할 수 있는가

1. 진리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260

1) 안다는 것의 의미 261

2) 인식의 두 통로: 감각과 이성 268

3) 진리인식의 두 기준, 대응설對應說과 정합설整合說 277

2. 진리인식에 대한 합리주의 접근방식 289

1) 합리주의 선구자 데카르트Descartes 291

2)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진리 299

3) 사유실체를 보증하는 신 305

4) 합리주의合理主義의 빛과 그림자 311

5)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의 선구자 315

3. 진리인식에 대한 경험주의 접근방식 321

1) 경험론의 선구자 베이컨Bacon 323

2) 로크Locke의 소박한 실재론 327

3) 버클리Berkeley존재는 지각된 것esse est percipi” 332

4) 극단적인 경험론을 제시한 흄Hume 338

5) 방황하는 과학적 탐구 법칙 346

4.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칸트의 인식론 354

1)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의 과제 358

2) 진리인식의 두 형식: 선험적 감성형식과 선험적 지성형식 369

3) 진리인식은 선험적 연역: 선험적 관념론 378

4) 변증법적인 가상의 세계들 382

Part IV 19세기와 20세기의 철학적 사유

1. 19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사유 390

1) 헤겔 좌파와 유물론Materialism 390

2) 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의 태동 403

3) 현상주의現象主義Phänomenalismus 출현 411

4) 변질된 귀납적 형이상학 421

2. 20세기에 대두한 다양한 서양철학 426

1) 삶의 철학Life Philosophy 428

2) 실존철학Existential Philosophy 440

3) 현상학Phänomenologie 453

4) 변종 존재론 - 하이데거Heidegger 462

5)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 473

6) 사회철학Social Philosophy 489

Part V 서양의 정신문화를 이끌어온 신(God)

1. 세계화된 그리스도교의 유일신론(Monotheism) 504

1) 창조주이며 유대민족의 단일신 야훼 하느님 505

2) 세계를 초월한 유일신과 구세messiah 사상 512

3) 범 세계화된 삼위일체The Trinity 하느님 518

2. 유일신론의 빛과 그림자 538

1) 종교적인 신앙과 철학적인 이성의 만남 539

2) 이데아들을 신국神國에 옮겨놓은 아우구스티누스 543

3) 현실세계에서 천국을 찾은 천사 같은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548

4) 신관神觀의 분화分化 554

5) 신관을 종합한 화이트헤드의 범재신론Panentheism 562

3. 인격적 유일신은 논증될 수 있을까 569

1) 인격적 유일신을 부정하는 무신론Atheism 571

2) 무신론의 주장을 반증反證하는 유신론Theism 578

3)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논증 587

4)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논증 595

 

참고문헌 602

찾아보기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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