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동정
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9편 인도에서 불교의 ‘개벽’을 다시 보다
인도에서 불교의 ‘개벽’을 다시 보다
노종상 연구위원
『유마경』의 절정이라면 아무래도 제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의 ‘입불이법문’이 꼽힌다. 『유마경』의 법문을 흔히 ‘불이법문’이라고 할 정도다. ‘입불이법문’이 무엇인가? 모든 법이 둘이 아닌 도리에 증입證入하는 법문이다. 이 엄청난 문제를 던진 것은 유마거사다.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에서 만난 유마거사의 후예들(이하 사진은 같음)
흔히 불교의 교단(승단)을 이루는 구성요소를 사중四衆(다른 표현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사부중四部衆ㆍ사부제자四部弟子)이라고 한다. 구성원은 일반적으로 비구bhikkhu, 비구니bhikunī, 우바새upāsaka, 우바이upāsikā 등이다. 이 경우 비구ㆍ비구니는 출가인, 우바새ㆍ우바이는 남·여자 재가불자를 가리킨다. 두 그룹의 기능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좀 거칠게 표현하면 전자는 ‘수행자로서 가르치는 자’, 후자는 ‘배우는 자 혹은 제도 받는 대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절집 문화의 일반상식을 뒤엎어버리는 대표적인 경전이 『유마경』이다. 재가불자인 유마거사가 출가인, 그것도 대·소승의 현자들보다 뛰어난 경지에서 오히려 법문(가르침)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입불이법문품」이 단적인 예다. 대승불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보살, 그것도 32명의 내놓으라 하는 보살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마거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듯 시침을 뚝 떼고, “여러분. 보살의 ‘입불이’라는 법문에 대하여 각자 설명해 보시오.” 하고 넌지시 말했다.
이에 대해 법석에 모인 보살들은 각자 나서서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였다. 이기영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다들 그만그만한 이름 없는’ 보살들이다(이런 표현에 탐방객은 동의하지 않지만). 서른두 번째로 문수보살이 ‘입불이’라는 상태에 대해 법문한다.
“내 생각으로는 일체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설하지 않고, 보여주는 바 없고, 식별하지 않고, 모든 문답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 합니다.”
문수보살의 법문이 끝난 뒤에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당초 문제를 제기했던 유마거사가 아무 반응이 없는 까닭이다. ‘보살의 우두머리’로 일컬어지는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도 말이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문수보살이 나섰다.
“거사여. 당신이 말할 차례입니다. 무엇을 보살의 입불이법문이라 하겠습니까?”
다음은 본문을 인용하다. 일반적인 평가에 따르면 『유마경』의 핵심 중의 핵심이요,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다.
그때 유마힐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문수사리가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옳습니다. 옮습니다. 문자와 말과 설명, 그런 것이 일체 없는 것이 진짜 입불이법문인 것입니다.”
時에 維摩詰이 默然無言이라.
文殊師利가 歎曰하되 善哉로다 善哉로다.
乃至無有 文字 語言이 是真入不二法門이로다 하니라.
유마거사가 나선 것은 서른세 번째였다. 그는 입불이법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실로 엄청난 법문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법문보다도 많고 길고 큰…. 이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유마거사가 마지막에 가서 꽝하고 자기 결론을 내놓았다. 과연 유마거사의 법문이 명품이다. 묵연무언默然無言―침묵하는 것. 입불이법문의 극치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유마 거사가, 『유마경』이 ‘입불이법문’의 결론을 그렇게 내렸으므로 우리의 탐방기 가운데 바이샬리편도 이쯤에서 침묵을 지켜는 것이 좋을 듯한데, 아무래도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미안하지만, 좀 더 ‘하수’에 머무르고자 한다.
2020년 8월 말 현재, 대한민국은 거의 전쟁 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아니, 전 세계가 같은 풍경일 터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하긴, 전혀 아니라고 할 시각도 있을 것이다. 탐방객의 입장은 전자에 위치한다. 보이는 것이 한국이요, 당장 발등에 불이 붙었으니 한국만 두고 얘기하자.
지난 2월, 탐방객이 붓다의 나라 인도를 탐방하기 위해 떠나기 며칠 전부터 중국 우한 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이 없이 ‘괴질’이라고 불렀다)는 한국에 서서히 상륙하기 시작했다. 7개월여가 지난 지금, 방역의 모범국가로 전 세계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한국은 지난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행정조치 15호)가 시행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을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코로나19 감염확산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주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수도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염 확산을 이번 주 이내에 막지 못한다면 3단계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피하게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최악의 상황'에서 내려질 조치라며 신중한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도 “3단계 격상은 결코 쉽게 말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일상이 정지되고, 일자리가 무너지며 실로 막대한 경제 타격을 감내해야 합니다.”고 3단계 격상이 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강조했다. 행정을, 혹은 국가 통치를 맡고 있는 국가 기관으로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그러나 지금 탐방객은 정부의 신중한 태도 뒤편에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에게 눈길이 달려가고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 땅에 오신 증산 상제님은 “난은 병란病亂이 크니라.”(『도전』 2:139:7)라고 하였다. 과연 병란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화가 날 때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동서고금의 질병사 몇 장만 거꾸로 넘겨보면,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전염병에 의해 사라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디 역사뿐이겠는가. 조금만 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면, 이런 코로나 대유행 정도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하고 또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완전한 예방은, 대비는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유마경』 제8 「불도품」의 게송 일절이다.
혹은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우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모든 것이 영원한 줄 아는 사람에게
무상의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고자 함이라.
혹현겁진소或現劫盡燒 천지개동연天地皆洞然
중인유상상眾人有常想 소령지무상照令知無常
『유마경』 가르침 가운데 유독 탐방객의 시각이 머무는 이 구절이다.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우는 일이 있다! 무슨 말인가? 겁이 다했다는 말은 무엇이며,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겁이 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운다는 말인가? 소위 지구 아니 우주 멸망의 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가?
먼저 본문 중에서 ‘겁’에 대한 이야기를 눈 여겨 보자. ‘겁’은 산스크리트어 ‘칼파kalpa’를 옮긴 용어다. 겁파劫波라고도 한다. 아주 지극히 긴 시간을 말한다. 겁을 거듭하는 광원廣遠한 시간을 광겁曠劫, 영겁永劫, 조재영겁兆載永劫이라고도 한다. 같은 시간대를 얘기할 때 개자겁芥子劫, 반석겁盤石劫(불석겁拂石劫이라고도 한다), 진점겁塵點劫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나가르주나(용수)의 『대지도론』에 따르면 개자겁은 4천리 사방의 큰 성에 겨자씨가 가득 차 있는데 백 년마다 한 번씩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내 모두 없어지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반석겁은 4천리 사방이나 되는 바위산에 백 년마다 한 번씩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옷깃을 스쳐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1겁이다.
진점겁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물건을 갈아서 먹즙을 만들고 1천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점을 찍는다. 그래서 먹즙이 다 없어진 다음에 그 지나온 국토를 모두 가루로 만들어서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해서 계산한 겁의 수를 3천 진점겁三千塵点劫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5백천만억 나유타아승기那由他阿僧祇의 삼천대천세계를 깨뜨려 미진微塵으로 삼고, 같은 국토를 지날 때마다 그 미진을 하나씩 떨어뜨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1겁이다. 진점구원겁塵点久遠劫이라고도 한다. 혹은 범천梵天의 하루, 곧 인간세계의 4억3천2백만 년을 1겁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