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동정
노종상 연구위원, 『세계횐단학회지』에 논문 발표
노종상 연구위원이 세계환단학회가 발행한 학술지 『세계환단학회지』 3권2호(2016. 12)에 논문 「복애伏崖 범장范樟 연구」를 발표했다.
다음은 논문 「복애伏崖 범장范樟 연구」의 초록이다.
초록 복애伏崖 범장范樟과 『북부여기』연구
이 논문은 복애伏崖 범장范樟(? ~ ?)과 그의 저서 『북부여기』에 대한 연구이다. 범장은 여말선초의 학자이다. 그가 남긴 저서는『화해사전華海師全』, 『화동인문총기話東人物總記』, 『북부여기北夫餘紀』, 『천부경주해天符經註解』 등이 있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고려가 막을 내리고 조선이 개국한 격변기였다. 범장은 태생적으로 성리학자였다. 금성범씨는 범장의 증조부 범승조가 시조다. 그는 남송 성리학자다. 그는 성리학 도입에 직접적인 공을 세운 장본인이다. 범장의 부친 후춘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로 알려진 안향의 문인이다. 범장은 포은 정몽주의 제자다. 범장이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시작한 것은 공민왕대였다. 그는 덕녕부윤德寧府尹·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의 관료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 개인의 자아는 세계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신진사대부 세력을 끌어들인 이성계 일파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났다. 5백년 사직의 고려왕조는 무너졌고 조선이 건국했다. 범장은 조선 개국을 반대했다. 그는 고려조에 충절을 지킨‘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살고 있는 ‘은일의 인사’ 원천석을 만났다. 동지 20여 명과 함께 매년 봄 가을로 치악산 정상에서 단군을 위시한 열성조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동지들과 함께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범장의 두 권 저서 『화해사전』과 『화동인물총기』다. 우리는 사상적인 면에서 범장의 세 가지 내면풍경을 주목하였다. 성리학자 풍경·우리 고유의 전통 신앙인 신교적 풍경 그리고 사학자 풍경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은 그의 ‘사학자 풍경’이다. 텍스트는 지금은 전하지 않은 그의 저서 『천부경 주해』를 젓줄로 하여 『화해사전』·『화동인물총기』 그리고 『북부여기』이다. 그는 공자의 ‘춘추필법’을 역사철학으로 삼았다. 이 역사철학을 가지고 그는 상고사서 『북부여기』를 기록했다. 『북부여기』는 우리 역사에서 잃어버린 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키워드; 범장, 성리학자, 두문동 72현, 정몽주, 역사, 춘추필법春秋筆法, 『북부여기北夫餘紀』, 천보산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