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당대唐代 『전기傳奇』에 나타난 도교 수행론 탐구

나우권(고려대학교)

2023.03.20 | 조회 3518

2021년가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당대唐代 전기傳奇에 나타난
도교 수행론 탐구

 

나우권(고려대학교)

 

목차

1. 들어가는 말 : 배형과 전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

2. 도사의 신물神物인 거울-고경기古鏡記

3. 인도불교를 모방하느라 도교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두자춘전杜子春傳

4. 당대 도교의 전형성(1) : 예교禮敎와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여성들

5. 당대 도교의 전형성(2) : 덕을 쌓고 성명쌍수를 이루며 무위를 실천하는 수행법

6.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 배형과 전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

 

기이한 이야기를 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전기傳奇는 당나라의 문학 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당나라 후기의 배형裵鉶이 그의 소설小說 모음을 전기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전기라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전기작품이 널리 퍼지게 된 배경으로, 온권溫卷 풍습이 거론된다. 온권은 과거 시험 전에 수험자가 박학다식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나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추천을 기대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송대宋代 조언위趙彦衛운록만초雲麓漫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나라의 과거 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먼저 당시의 유명한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시험관에게 알린 다음에, 자신이 지은 글을 바친다. 며칠이 지나서 또 글을 올린다. 이것을 온권이라고 한다. 유괴록전기등이 모두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러한 글들은 여러 가지 체제를 구비하여, 그 속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력, 시를 짓는 문장력, 논리적인 생각들을 알 수 있다

 

배형전기裵鉶傳奇를 집주集註한 쪼우릉가(周楞伽) 역시 한사寒士들이 온권을 시험관에게 헌납하여 그들의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이한 이야기로 자신의 박학다식함과 문재를 뽐내는 수단으로 사용했을까? 대략 두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전기류의 문학 작품에 대한 문화 향유계층이 증가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통시대의 역사에 대한 또 다른 관점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당대의 지식인들과 대중들에게 전기류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허구(fiction)가 아니라 사실(fact)로 인식되어 또 하나의 역사로 파악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많은 이야기들처럼. 실제 전기에서는 수많은 고사와 역사적 사실, 지명, 인명들을 사용하여 현실적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역대의 전기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송대宋代의 진진손陳振孫은 문이재도文以載道로 대표되는 전통적 유가 지식인의 사유를 담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전기6권은 당나라의 배형이 지었는데, 그는 고변高騈(821-884)의 종사從事였다. 윤사노尹師魯는 일찍이 범중엄(문정공)이 지은 악양루기를 보고 전기체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체가 시대에 따라 변할지라도 핵심은 도리를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문정공의 글을 어떻게 전기와 같은 수준에서 논의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전기는 어느 한 시절에 재미삼아 쓴 글일 따름일 것이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유가의 정통적 가치와 결이 다른 문화가 존재했다. 선진先秦산해경山海經을 필두로, 한대漢代에는 유향劉向열선전列仙傳등으로 대표되는 신선설화가 존재했고, 위진남북조시기는 기이한 것을 지괴志怪류의 작품들이 널리 퍼졌고 수당시대에는 지괴전통 위에 스토리텔링 요소가 강화된 전기작품이 널리 전파되었다. 유가적 관점만이 올바른 글쓰기 형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재고를 요한다.

나아가 전기의 작자인 배형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곤 하였다. 송대의 조공무晁公武는 배형과 같은 무리들이 신선과 같은 괴력난신怪力亂神류의 잡설을 말함으로써 그가 모시던 고변을 미혹케 하였고, 결국 당나라가 망했다고 비판한다. 조공무는 昭德先生郡齋讀書志傳奇조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당서』「예문지에서는 배형을 고변 막하의 문객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신선과 허황된 일들에 관한 것들이다. 고변이 여용지에게 현혹된 것은 틀림없이 배형과 같은 무리들이 유혹하여 나타난 결과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배형과 같이 도교적 성향이 짙은 인물들이 고변을 망치게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가 멸망했다는 관점은 공정하지 못하다. 쪼우릉가(周楞伽)는 배형이 고형 문하에 있을 때와 전기를 저술하던 시기가 다르다고 주장함으로써, 배형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 반대한다.

필자는 이와 더불어 도교에 비판적인 유학자들의 치우친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당나라는 도교를 국교로 존숭하면서 삼교를 두루 중시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귀족 가문들 사이에서는 유가적 친연성이 높은 인물과 더불어, 도교적 친연성이 높은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고변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고변(821-887)은 산동山東의 명문인 발해고씨渤海高氏 출신으로 당나라 후기의 3명장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 의종懿宗 초년에는 서쪽 변경에서 일어난 당항강(黨項羌)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함으로써 진주자사秦州刺史가 되었다. 함통咸通4(863)에는 남쪽 변경의 안남도호총관경략초토사安南都護總管經略招土使로 부임하여, 질서를 바로잡고 수로를 뚫는 등의 선정을 펼쳐 그 덕을 칭송하는 천위경신착해파비天威徑新鑿海派碑가 만들어졌다. 이후 내우외환의 위기에 빠진 당말 혼란기를 적극적으로 수습하면서, 동쪽 변경의 천평天平서천西川형남荆南진해鎭海회남淮南 5개 진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면서 여러차례 왕선지와 황소 봉기군을 진압하는 역할을 맡았다. 말년에 황소가 장안을 함락하도록 방기했다는 사실로 인해서 당을 멸망시킨 인물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회남을 아우르는 강대한 세력을 갖출 정도로 뛰어난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갖고 당말의 혼란기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공평한 평가가 필요하다.

절도사로 대표되는 지방 막부幕府를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재들이 모였을 것이고, 고변에게는 그의 기질상 도교적 지식인들이 많이 모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배형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이고, 또 다른 대표적인 인물이 신라의 최치원이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최치원이) 고국 신라로 돌아오려 할 때 동갑내기 고운顧雲유선가儒仙歌를 지어 주었다고 하는데, ‘유선儒仙이라는 호칭 자체에서, 신선 최치원의 자질은 당나라 체류 시절부터 배태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 최치원은 재당 시기에 도교 전적들을 열독했고 선서(仙書)를 볼 때마다 장대한 포부가 더욱 돈독해진다고 하였다. 그밖에도 계원필경에는 최치원이 지은 재초문이 많이 실려있는데, 도교를 숭상한 고변을 대신해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속안(俗眼)으로 신선의 자태 엿보기 어려워, 종일토록 소산사(小山詞)를 읊조렸네. 이 몸을 닭과 개처럼 의탁하니, 다음날 하늘에 오를 때 버리지 마소.

 

이 몸을 닭과 개처럼 의탁한다는 것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단약을 먹고 승천할 때 그의 식솔 300여 명은 물론 그가 남긴 약그릇을 핥아먹은 닭과 개까지 다 하늘로 올랐다는 󰡔신선전神仙傳󰡕의 고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와 같은 도교적 지식인에 대해서 후대의 유학자들은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회남 지역은 황로학黃老學의 대표적 경전 가운데 하나인 회남자淮南子를 낳은 지역이다. 도가도교류의 정치모델을 구상했으리라 생각되는 고변 막하에 도가도가에 친연성이 높은 배형과 최치원과 같은 인물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기에, 그러한 인재를 우대했다(尙賢)는 점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아래에서는 󰡔전기󰡕에서 나타나는 도교적 수행론의 양상을 도사의 신물, 당대 초기의 도불교섭 사례, 당대 도교의 전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겠다. 당대 도교의 전형성은 다시 예교禮敎와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여성들과 성명쌍수性命雙修와 이타행利他行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하겠다.

 

2. 도사의 신물神物인 거울-고경기古鏡記


주인공 왕도王度는 혼란기인 수양제隋煬帝(605-616) 시기에 어사御史를 마치고 하동河東(山西省 일대)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도교적 성향의 인물(奇人)인 후생侯生을 만나 스승을 극진히 모셨다. 후생은 임종에 척사斥邪의 기능을 가진 오래된 거울(古鏡)을 주었는데, 그것은 황제黃帝가 만든 15개의 거울 가운데 중간인 8번째() 거울이었다. 거울을 소지한 후 다양한 일들이 펼쳐진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학다식함을 뽐내면서 소설의 개연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대업8(612) 겨울, 저작랑著作郞으로 임명되어 황제의 명을 받들어 국사國史』「소작전蘇綽傳을 짓고 있었다. 당시 표생豹生이라는 노비를 통해 거울의 유래를 파악하였다. 표생은 일찍이 소작蘇綽 문하에 있었기에, 소작이 하남河南의 묘계자苗季子로부터 거울을 전해 받고는 매우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작이 임종을 앞두고 점을 쳐서는 거울이 떠돌다가 후씨侯氏를 거쳐 왕씨王氏에게 간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왕도는 소작전의 끝 부분에 소작이 점술에 탁월하였는데, 묵묵히 홀로 운용하였다는 문장을 붙였다.

둘째, 거울을 관리하는 방법에 관련된 마경磨鏡의 이야기이다. 대업9(613) 정월 초하룻날 외국 승려가 거울의 기운을 감지하고 와서 관람하기를 요청하였다. 거울에 금고金膏를 바르고 자분紫粉으로 닦은 다음 해에 비추면 거울의 밝은 빛은 담벽 너머까지 투시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오장육부를 비출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그 약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마경인磨鏡人과 관련하여, 열선전』「부국선생전에서 보랏빛 환약으로 병을 치료하고, 전염병도 물리쳤다는 구절이 있다. ‘거울메타포는 자신의 진면목을 관찰하고, 타인(=요괴)의 잘못을 드러내며, 병을 낫게 하는 기능을 가졌다고 파악된다.

셋째, 대업9(613) 겨울, 달빛을 머금은 거울(陰中陽)이 전염병을 다스린 일이다. 당시 하북사람 장용구張龍駒가 왕도의 예하에서 작은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수십명이 감염되었다. 장용구에게 거울을 주면서 밤에 비추라고 시켰다. 많은 환자들이 거울을 보고는 장용구가 달을 가지고 와서 비추는데 달빛이 닿는 곳마다 마치 찬물이 몸에 끼얹어지듯 오장육부가 시원해졌다라고 하였다. 그 즉시 열이 내리고 다음날 저녁에 모두 병이 나았다. 이는 고열로 고생하는 전염병 환자들에게 얼음 찜질등으로 해열작용을 하는 것에 비유된다. 달빛의 음기를 활용하여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으로, 본초강목本草綱目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고감古鑑을 구워서 귀신을 물리친다는 내용과 연결해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한편, 왕도는 거울의 치유능력을 보고서 많은 전염병 환자를 구제하려 하였으나, 꿈에 용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가지고 자줏빛 옷을 입은 자진紫珍(거울의 신)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병은 죄악의 결과이므로, 하늘의 뜻을 거슬러 낫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억지로 무리하지 말라. 다음 달이면 전염병이 약화될 것이다”. 이는 행위의 결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건강과 질병이라는 과보는 불가피한 것이므로 감수해야만 한다(順天)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을 거슬러(逆天) 억지로 건강을 유지하려는 것은 또 다른 위기를 조장한다는 경고의 의미를 전한다.

넷째, 어떤 거짓도 용납하지 않고 순수한 광명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이야기이다. 대업大業7(611) 장안으로 돌아가 정웅程雄 집에 머무는데 앵무라는 아름다운 하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하녀는 거울 앞에서 천년 묵은 여우임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자백하였다. 천년 묵은 여우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다른 사람을 섬길 뿐 해치지는 않는다(變形事人非有害也). 그러나 여우 모습을 숨기고 환술로 사람 모습을 꾸며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그 자체로 신선의 법에서 싫어하는 바(神道所惡)이므로,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왕도가 여우를 살려주려고 하였지만, 여우는 수치스럽게 원래의 여우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차라리 술 한잔 마시고 장쾌하게 죽는 길을 선택하였다.

이곳에서의 여우는 사람을 잡아먹는 구미호가 아니다. 장수하면서 인간으로 변신하는 역량을 갖게 되지만, 탈태脫胎로 대표되는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 못한다. 여우라는 한계 속에서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람인 척 할뿐이다.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위선僞善은 신선이 되고자 하는 진리의 세계(神道)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거울(天鏡)은 투명하게 비추어 숨을 곳이 없게 하는 정화淨化의 대리물이기에, 한 점의 음기陰氣마저도 용납하지 않는다. 신선의 세계에서는 무구無垢의 순양지체純陽之體만이 존재한다. 이에 여우는 생명을 중시하는 도교적 모습을 보이지만, 구차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죽음 역시 슬퍼할 것이 아니라는 장자莊子의 논의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비장悲壯하게 죽음을 수용한다.

다섯째, 대업9(613) 가을, 예성芮城 현령(오늘날의 산서성 서남단에 속하는 곳으로 황하 중류에 있다)으로 부임하면서 음사淫祀를 폐지한 일이다. 현청 앞에는 둘레가 몇 장이나 되는 오래된 대추나무가 있었고, 현령들이 올 때마다 이 나무에 복을 빌었다. 왕도는 음사淫祀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추나무에 거울을 걸어두었다. 그날 밤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였다. 다음날 이마에 왕자를 새긴 큰 뱀 한 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어있었다. 뱀을 내다버리고 나무를 파보았더니, 거대한 뱀이 살던 흔적이 있었다. 그 굴을 메우자 마침내 요상하고 괴이한 일이 끊어졌다.

이것은 이무기로 대표되는 존재에게 복을 빌고 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음사 문화를 비판한 것이다. “요사스러운 일은 사람이 일으킨 것이므로, 음사를 끊어야 한다는말로부터 화복과 수명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기에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조한 도교의 논의와 일맥 상통한다. 결국 거울의 양기陽氣로 음기陰氣 덩어리인 이무기를 제거하고 광명光明을 회복한다. 대업13(617) 715일 거울을 넣어둔 갑에서 비명 소리가 나더니, 한참 뒤에야 그쳤다. 갑을 열어 보았더니, 거울은 사라지고 없었다.

 

3. 인도불교를 모방하느라 도교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두자춘전杜子春傳

 

내용은 다음의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a두자춘은 북주北周에서 수나라 사이에 활동하던 사람으로, 이상만 크고 방탕하여 술과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였다. 어느 해 겨울, 한 노인이 나타나 배고픔과 추위에 떨던 두자춘에게 300만냥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빌려주었다. 두자춘은 부유해졌지만, 사치를 일삼아 1-2년 사이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알거지가 된 두자춘에게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1,000만냥을 빌려주었다. 이번에는 돈을 잘 사용하여 부자가 되리라고 다짐했지만, 역시 1-2년도 안되어 재산을 탕진하고 무일푼이 되었다. 노인이 두자춘에게 세 번째 도움의 손길을 펼쳐 3,000만냥을 주었다. -b두자춘이 감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하였다.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세 번씩이나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돈으로 인간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겠습니다. 고아와 과부들이 먹고 입을 수 있게 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도덕(名敎)을 일으키겠습니다. 이 일을 완수한 다음에는 오직 어르신이 시키는 일을 하겠습니다.” 노인이 그대는 원하는 일을 다 한 다음, 내년 중원절中元節(음력 715)에 노자의 쌍 회나무 아래로 오시게라고 하였다. 두자춘은 저택을 사서 고아와 과부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고, 올바른 윤리를 실천하고 사회 정의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계획한 일을 모두 마치고, 약속한 시간에 노인을 만나러 갔다. 노인을 따라 화산華山 운대봉雲臺峰에 올라갔다. 40여리 쯤 가자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깨끗한 집이 나타났다. 그 집안에는 높이가 9척 정도 되는 단약丹藥을 만드는 화로火爐가 있었고, 주위는 좌청룡 우백호로 대표되는 빼어난 자연환경을 갖추었다. 노인은 속세의 옷을 벗고 황색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도사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노인은 두자춘에게 백석白石 3환과 술 한잔을 가져와 먹게 하고는, “조심하면서 말을 하지 마시게. 비록 도교의 존신尊神·악귀惡鬼·야차·맹수가 나타날지라도, 지옥도가 펼쳐질 지라도, 그리고 그대의 가족들이 고통스럽게 결박되거나 온갖 고난을 당하다라도 모두 진실眞實이 아닌 허환虛幻한 것일세. 단지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게. 마음을 편안히 하고 두려워하지 마시게나. 결국 아무런 고통이 없을 걸세. 오로지 내가 말한 것만 기억하게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두자춘이 노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 나타난다. 첫째, 일단의 군인들이 나타나 자신을 죽였지만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았다. 둘째, 맹수와 독충들이 나타나 자신을 위협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셋째, 폭우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내리쳤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넷째, 지옥의 악귀와 귀신들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자신을 던지려 했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다섯째, 존귀尊鬼들이 아내를 잡아와 온갖 고문을 가했지만, 끝내 대꾸하지 않았다. 여섯째, 두자춘의 혼백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여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일곱째, 병약한 여자로 환생하여 온갖 고통을 겪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여덟째,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홉째, 남편이 아내로부터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내리쳐 죽였다. 아이의 머리가 깨지면서 피가 튀는 것을 보고, 애착의 마음이 생겨서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노인(=도사)이 수행하던 집 위로 큰 화재가 일어나고 있었다. 도사는 탄식하면서, “그대는 칠정에 구애되지 않는 경지에 올랐지만, 애착만을 끊지 못했네. 만약 그대가 소리만 지르지 않았다면, 나의 단약이 완성되고 그대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을 것을. ! 신선의 재목(仙才)을 얻기가 힘들구나.”라고 하였다. 도사가 떠나고 두자춘은 탄식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두자춘전의 초반부는 방탕한 삶으로부터 노인을 만나면서 개심改心을 하는 과정, 에서 으로 전환하는 종교적 인간의 ()탄생 모티프가 잘 나타나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반부는 본격적인 구도과정에서 경험하는 내적인 체험, 환상, 정신적 극복 그리고 실패의 요인까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자춘전은 현장玄奘(586-665)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수록된 바라나시婆羅痆斯國(Varbnasi, 오늘날의 베나레스Benares로 갠지즈강 서안에 있다)의 녹야원鹿野苑 부근에 있는 구명救命 혹은 열사烈士 신화를 모방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내용 역시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 이 연못에는 과거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수행자가 제단을 쌓고 수행을 하는데, 그 제단 주위에서 긴 칼을 차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숨을 죽이고 말을 하지 않는 용감한 호위무사(烈士)가 필요하다. 용감한 호위무사를 발견하고 500에 해당하는 돈을 주면서 마음껏 사용하게 하고, 이후에도 더욱 많은 재물을 여러차례 주었다. 그가 은혜를 갚고자 하니, 수행자는 하룻밤 동안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호위하기만을 요구하였다. 호위무사는 수행자를 지키고 밤을 새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공중에서 불이 나고 연기와 불길이 구름처럼 솟구치는 것을 보고, 고함을 지르면서 수행자를 끌어당겨 못 속으로 피신시켰다. 왜 침묵하지 못했느냐는 수행자의 질문에 호위무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한밤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세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 예전에 모시던 주인이 자기 잘못을 사과하고 심지어 나를 죽여도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둘째, 남인도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학업을 하고 결혼하고 부모의 상을 치르고, 자식을 낳는 온갖 일을 겪어도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셋째, 65세가 너머 아내가 나에게 목소리를 내보라고 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자식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자식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호위무사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슬퍼하면서 죽었다.

호위무사 설화는 일체개고一切皆苦를 겪으면서, 오욕칠정으로부터 벗어나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불교적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수행자의 이야기이다. 인도설화에 기반한 불교적 맥락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그런데 두자춘전에서는 몇가지 단점이 보인다. 첫째, 단약을 만드는 화로를 지키는 사람에 불과한 두자춘을 신선의 재목(仙才)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어색하다. 둘째, 도교에서 모시는 수많은 신들을 존신尊神이라고 하는데, 이를 악귀·야차·맹수·지옥 등과 연결하여 부정적으로 해석한 것이 부자연스럽다. 도교의 존신마저도 불교의 제천諸天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폄하의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셋째,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였지만, 아내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애착으로부터 벗어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적 맥락에서 우리가 머무는 세상의 실상은 연기緣起라는 점에서 공이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공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옳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공공空空頑空에 얽매이는 수행자들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당대唐代 초기初期 도사인 성현영成玄英은 공공 개념을 수용하여 유로 대표되는 현실에 집착하지 않고, 로 대표되는 이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유비무非有非無의 현을 말한다. 나아가 이 현으로부터도 걸림이 없는(無滯於玄) 중현重玄을 말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당대 중국도교는 불교를 수용하면서 도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중현학重玄學을 창조하였다.

남북조 시기의 도불논쟁에서 도사들은 불교를 비판하는 논점 중의 하나로, 가정윤리와 사회국가윤리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중현학에서는 충과 효자로 대표되는 가정 및 국가 윤리를 긍정하였다. 그런데 두자춘전은 집착을 버리는 것에 빠져, 부부夫婦와 부자父子로 대표되는 가정윤리를 도외시하였다. 자식이 죽어가는 속에서도 침묵하기를 요구하는 두자춘전은 아직 중국화에 이르지 못한 모습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한계는 전기위자동전韋自東傳에서 해소된다. 그 내용은 네 가지로 구성된다. 위자동은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승려를 잡아먹는 야차를 때려잡는다. 그때 한 도사가 나타나 자신이 단약을 만들어 성공의 기미가 보일 때마다 요괴가 와서 화로를 부순다고 하면서 칼을 들고 와서 지켜주기를 요청하였다. 세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첫째, 새벽녘에 살무사가 나왔고 물리쳤다. 둘째,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났으나 물리쳤다. 셋째, 날이 밝아올 무렵 한 도사가 나타나 이제 단약이 완성되었네라고 하면서, 위자동의 공로를 치하하였다. 순간 자신이 지키던 도사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는 (자만하고 방심하여), 칼을 풀고 인사를 하였다. 도사는 그 틈을 타서 단약을 만들던 도구를 부수었다. 위자동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떠났다. 이와 같이 위자동전은 부부와 부모 자식간의 정리를 훼손하는 내용을 제거하고서도, 두자춘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였다. 수행의 과정에서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4. 당대 도교의 전형성(1) : 예교禮敎와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여성들

 

앞서 한대 도교 이래의 전통적 신물을 다룬 고경기, 불교와의 습합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두자춘전을 고찰하였다. 이제는 당대 도교의 전형적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을 고찰하겠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식인이 아니라,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예들이 적지 않다.

장무파전張無頗專에서는 장무파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용왕의 딸(공주)이 등장한다. 공주는 원대랑에게 부탁하여 용궁에 있는 귀한 약인 옥룡고玉龍膏를 장무파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약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게 하고, 나아가 연애 편지를 써서 그를 사모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유가의 전통적 여성상과 달리, 마치 근대 초기의 주체적인 신여성을 보는 듯하다.

섭은랑전聶隱娘傳은 남성 위주의 협객俠客에서 벗어나 여협女俠을 논의함으로써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관을 제시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섭은랑은 정원貞元(785-805) 연간 위박절도사魏博節度使를 지낸 섭봉聶鋒의 딸로, 10살 무렵에 한 비구니에게 납치되어 무술을 연마하고 여러 악인들을 암살하였다. 5년 후 집으로 돌아와서, 어느 날 특별한 재주가 없는 마경인磨鏡人을 만나 결혼하였다. 원화元和(806-820) 연간에 자신을 알아주는 진허陳許절도사 유창예劉昌裔를 호위하였다. 원화 8(813) 유창예가 황상을 알현하기 위해 도성으로 돌아가자, 그를 떠나 山水를 찾아 늙지 않는 至人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개성開成(836-840) 연간에 촉의 잔도에서 유창예의 아들 유종劉縱을 만나 화를 피할 수 있는 약을 전한다.

섭은랑은 10세 무렵에 스승에게 이끌려 전통시대 여성으로서의 사회화 과정을 겪지 않았다. 도가도교 성향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협의俠義를 실천하였다. 만년에는 출세를 버리고 자연을 찾아 도의 세계를 탐구하였다. 즉 전통시대 속에서 예교에 걸림이 없었던 인물이다. 예교의 구속으로 벗어난 여성 무사였지만, 결혼을 하고 의를 실천하면서 유가 가치를 실천하였고, 나아가 입신양명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지인을 찾는 도가도교적 삶을 살았다.

한편, 섭은랑은 부모자식간의 정을 끊으라는 스승과 달리 인정과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 살수였던 그의 스승은 부모자식간의 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없애버리라고 하였다. 섭은랑의 아버지가 딸을 제자로 주지 않으려 하자, 그의 스승은 쇠로 만든 궤짝에 넣어두어도 저는 반드시 딸을 훔쳐 가겠다라고 하였고, 탐관오리가 어린 자식과 함께 있어서 섭은랑이 살인하기를 주저하자, “이후로는 이런 경우를 만나면 먼저 그가 아끼는 자식을 먼저 처단한 다음에 그를 죽여라라고 하였다. 칠정七情을 배제하고 가차없이(斷情) 살해 대상을 죽이라는 잔혹한 스승과 달리, 섭은랑은 부모자식간의 정을 고려하는 다정다감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진허절도사 유창예를 만날 때도 인간적 면모가 드러났다. 위박절도사의 명령으로 유창예를 암살하러 갔지만, 그의 인품에 감동하여 오히려 그의 신변을 헌신적으로 호위하였다. 유창예가 사망하자 먼길을 달려가 조문하고 서럽게 통곡하였고, 그의 아들의 안전을 위해 조언하기도 하였다. 섭은랑은, 무정無情을 요구하는 두자춘전과 달리, 인정으로 가득한 무정蕪情한 인물이었다. 무정無情에서 무정蕪情으로의 변화는, 중국적 특색의 강화로 파악된다.

번부인전樊夫人傳은 두 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남편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번부인에 주목한다. 번부인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상우上虞 현령을 지낸 유강劉綱의 아내이다. 유강과 번부인이 도술에 뛰어났지만 몰래 수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도교 인물인 것을 알지 못했다. 한가할 때 유강과 번부인이 도술 시합을 할 때면, 번부인은 언제나 유강보다 뛰어났다.

후반부는 당나라 정원貞元(785-805) 연간에 상노파(湘媼)로 변신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자신을 알아본 스승과 부모의 강요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소요逍遙가 등장한다. 소박하게 살면서 부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상노파는, 어느날 소요라는 여아女兒를 보고 제자로 삼았다. 그 부모가 쫓아와서 몽둥이로 때리고 꾸짖으면서 딸을 데리고 갔지만, 소요는 동아줄로 목을 매면서까지 저항하면서 수행자의 길을 가고자 했다. 결국 그의 뜻대로 상노파에게 돌아와 수행을 하였다. 이것은 당나라의 도교가 부모와 남편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는 완충적 역할을 한 현실을 반영한다. 스승에게 강제로 납치되다시피 끌려가서 살수 수업을 받았던 섭은랑과 달리, 스승과 부모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소요는 현실성이 높다. 소요가 도술을 연마하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은 다음 장에서 고찰하겠다.

손각전孫恪傳은 과거에 낙방한 손각이 만난 아름답고 부유한 원씨 여인을 다룬 이야기이다. 손각과 결혼을 한 뒤 두 아들을 낳아 길렀고, 집안을 아주 엄하게 다스려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였다는 데서,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방을 빌리러 온 손각을 만나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모습에서 일반 부녀자에게서 보기 힘든 대담성과 강인함이 엿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이후 수준 낮은 도사(張閒雲 處士)와 함께 자신을 해치려던 손각을 매섭게 질타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원씨는 바로 알아차리고 크게 화를 내며 손각을 꾸짖었다. ‘그대의 곤궁한 처지를 내가 화락하고 편하게 해주었더니,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마침내 해서는 안될 짓을 하다니, 이런 심보를 가진 사람이 남긴 음식은 개나 돼지도 먹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절개와 덕행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 원씨가 마침내 보검을 찾아내어 토막을 내었는데 마치 연뿌리를 자르듯 가볍게 절단하였다. 손각은 더욱 두려워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자 원씨가 웃으며 장한운 이 보잘 것 없는 놈이 제 동생을 도의道義로 가르치지 못하고 이런 흉악한 짓을 시키다니 다시 오면 단단히 모욕을 주겠어요.” 한편으로 남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잘못을 용서하면서 원만한 해결을 유도하는 현명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확실히 사촌형과 달리 그리 모질지 않군요. 제가 당신의 배필이 된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아내의 달래는 소리에 손각은 비로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형적 인물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엄정한 도리로 남편을 질책하고 손쉽게 검을 부러뜨려 자신을 능력을 과시하기도 하며, 남편과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하는 행동으로 보아, 원씨를 단선적인 평면인물이 아니라 감정을 그대로 지닌 입체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후 원씨는 가정을 원만히 관리하였고, 손각은 남강南康의 경략판관經略判官을 맡게 되었다. 남편과 더불어 임지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짙푸른 자연을 보면서, 원씨는 결국 남편과 자식에게 이별을 고하고 원숭이들을 쫓아 숲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남편을 따라 떠난 남행南行에서 자신이 뛰놀던 옛길을 지나고 원숭이들이 이리 저리 도약하는 것을 보면서 오래도록 잠자고 있던 산림과 자연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옛 장소나 동료를 만나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삼국유사에 수록된 신도징申圖澄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자식들을 잘 키우다가, 결국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호피虎皮를 걸치고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와 달리, 인간을 위해 제 목숨을 희생하는 상반된 논의도 등장한다. 삼국유사』「김현감호金現感虎는 신라 원성왕 때 호랑이가 인간과 혼인하고 세 마리의 오빠 호랑이의 잘못을 대신 지고 김현의 칼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으로써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이다.

김현감호신도징에 대해서 각각을 희생이라는 가치의 실현을 통해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운 호랑이, 호랑이의 모습을 한 진정한 인간을 형상화하였다거나 신도징과의 사랑을 갈망하지만, 끝내 호랑이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는 비극이라는 평가는 삼국유사를 편집한 일연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김현감호가문과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삶을 포획하는 남성/가장 중심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나아가 유가의 인간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사물 각각이 우열이 없다는 도가도교의 제물론적 인식에 근거하여 자연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전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전통시대의 가치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예교에 구속되지 않는 활달함을 보인다. 손각전에서는 남녀로 대표되는 음양의 비유를 인간과 이류異類(혹은 요괴) 사이로 확장한다.

 

장처사가 탄식하며 또 무릇 사람은 하늘에서 양정陽精을 품부받고, 요괴는 음기陰氣를 받는다네. 혼이 위주가 되어() 백이 없어지면 사람은 장생하게 되지만, 백이 위주가 되어 혼이 사라지면 사람은 곧 죽는다네. 그러므로 귀신과 요괴는 형체가 없이 오로지 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인은 그림자가 없이 오로지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음양이 성하고 쇠함, 혼백의 교전은 몸 안에서 조금이라도 제 자리를 잃게 되면, 기색으로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네. 조금 전에 동생의 신색(神采)을 보니, 음이 양의 자리를 빼앗고 사악한 기운이 정상적인 오장육부를 가로막고 있으며, 진정眞精이 이미 줄어들었고 정신적 작용이 점점 무너져 가며, 진액도 모두 빠져나갔네. 뿌리와 꼭지(根蒂)가 요동치고 뼈마저도 곧 흙으로 변하려 하며, 얼굴에는 혈색이 없으니, 필시 요괴에서 녹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네.

 

명나라 때의 전기전등신화』「모란등기牡丹燈記와 조선의 김만중이 쓴 구운몽』「가춘운은 선녀가 되었다 귀신이 되었다 하고, 적경홍은 여자가 되었다 남자가 되었다 한다에서도 사람은 양이고 귀신은 음이어서 귀신이 사람의 양기를 고갈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논의가 보인다. 최진아는 이에 대해 이러한 사유의 배경에는 인간은 남성()이고, 요괴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다. 바꿔 말하면 여성이 지닌 음적인 속성은 남성에게 두려움과 매혹이라는 상반된 측면을 제시하고, 남성은 그것을 요괴라는 존재로 치환하는 것이다. …… 요괴 여성의 이미지는 현대문화 속에도 존재한다. 하지마 그것은 이제 원숭이, 호랑이, 여우 등이 둔갑한 요기 대신에 매력적이고도 유능한 악녀, 즉 팜므파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 남자 주인공의 승리로 끝난 이 영화(원초적 본능과 위험한 정사)에서 모든 허물은 여자에게로 돌아간다. 그녀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남성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요괴였음이 확인되는 순간 남성의 질서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것이 바로 요괴 여성과의 연애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손각전에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요괴(원씨)를 죽여서 남성 우위의 인간 사회를 건립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손각이 초췌해진 것은 음주등의 방탕함에 기인하였을 뿐, 원씨때문이 아니었다. 원씨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고 십수 년간을 행복하게 살았다. 원씨는 요괴와 사람이 더불어 살 때, 즉 남녀가 평등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때 품행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손각전에서 말한 요괴는 사람으로 변신한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숲을 가로지르는 신성한 존재이면서 인간의 물건을 훔쳐먹는 범속한 대상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요괴의 또 다른 대상으로 여우가 종종 거론된다. 산해경에서 여우는 청구국의 청구산에 사는 신령스러운 힘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잡아먹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곽박은 구미호의 신성성에 주목하여 세상이 태평하면 출현하여 상서로움을 보인다라고 주석하였다. 최소한 손각전에서 요괴는 인간과 함께 사는무해無害한 존재이기도 하고, 인간과 떨어져 삼림 속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삶을 누릴 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원씨는 인간 세상에서 손각과 함께 살다가, 결국 인간의 세상을 벗어나 원숭이라는 본래 모습으로 회귀하였다.

앞의 인용문에서 선인은 그림자가 없이 오로지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仙人無影而全陽也)”는 말이 있다. 그림자가 없다는 또 다른 용례로, 산해경대황서경수마국이 있다. …… 수마는 똑바로 서면 그림자가 없고 크게 외쳐도 메아리가 없다라고 하였다. 곽박은 수마가 이인異人이라고 주석하였다. 회남자』「지형훈에서 건목이 도광에 있는데 뭇 임금들이 오르내리던 나무로 한낮이면 그림자가 없고 불러도 소리가 없다. 아마 천지의 한가운데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모든 오염으로부터 벗어나 가장 올바른 자리에 도달하는 순양지체純陽之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파악된다.

선인의 경지를 그림자가 없는 순양지체로 묘사하는 도교전통에서 본다면, 도교를 주음적主陰的이라고 하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도교를 주음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성 신선이 드물지 않고 노자에서 유약柔弱과 현빈玄牝을 중시하는 점 등에 주목한다. 이때의 음양은 강함으로 대표되는 높음()과 유약으로 대표되는 낮음()을 대비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에 반해 순양지체를 추구한다고 할 때의 음양은 비정상적인 모든 상태()와 정상성을 회복하여 광명의 빛에 머무는 것()에 주목한다. 음양이 가진 여러 측면 가운데 일부에 주목하여 주음, 혹은 순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필자는 도교의 남녀 수행법이 다른 것에 주목하여,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도교의 음양관이라고 파악한다. 여성 수도자는 여성성의 소실을 전제로 순양지체를 이루고자 하고, 남성 수도자 역시 남성성의 소실을 전제로 순양지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리괘離卦()와 감괘坎卦()가 만나 순양純陽의 건괘乾卦()를 만든다는 상징은 남성(리괘)과 여성(감괘)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5. 당대 도교의 전형성(2) : 덕을 쌓고 성명쌍수를 이루며 무위를 실천하는 수행법

 

주한전周邯傳은 주한이 외국인 노예인 수정水精을 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정은 잔머리에 밝고 교활하면서[慧黠] 잠수를 잘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잠수하여 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나오면서 부자가 되려는 탐욕에 빠져 들었다. 우저기牛渚磯의 가장 깊은 곳으로 잠수하여 괴수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절제하기도 하였다. 몇 년이 지나 상주相州의 팔각정八角井 아래에 황금색 용[金龍]과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탐욕(greed)에 빠지게 된다. 주한의 명령을 받은 수정은 왕택에게 날카로운 검을 빌려 용을 죽이고 여의주를 빼앗으려 했지만, 우물 속 용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토지의 신이다. 그대들은 왜 부정한 방법으로 여의주를 빼앗아, 마을 사람들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가? 이 못에 사는 황금빛 용은 하늘의 사자使者로 여의주를 가지고 비를 내려 우리 토지를 윤택하게 하거늘, 어떻게 저 보잘 것 없는 수정의 재주를 믿고 황금빛 용이 잠든 틈을 타서 여의주를 훔치려 했단 말이오?”

돈버는 재주가 비상했던 수정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자제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리다가 죽임을 당했다. 주한은 황금알을 낳는 수정을 잃었다는 점에 탄식하고, 왕택은 자기의 보검을 잃었다는 사실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수정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익에만 골몰하자, 토지의 신이 꿈 속에 나타나 경고하였다. 비가 내려 토지가 젖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농민들을 무시하고, 그 모든 성과를 독점하려 했던 왕택과 주한과 수정의 탐욕을 꾸짖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여의주를 빼앗아, 마을 사람들의 삶을 가볍게 여긴다고 한 것은, 개인이 이익을 독점하여 공공의 삶이 피폐해지는 모습 혹은 공공재인 자연을 독점하려 하는 인간의 문명을 비판한 것으로도 읽힌다.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수행은 시작된다.

강수전江叟傳은 용으로부터 여의주를 얻어 수선이 되는 이야기를 전한다. 용을 만나는 계기로, 잡귀를 쫓는 회화나무 신령이 등장한다. 강수가 술에 취해 회화나무 아래에서 자는데, 두 회화나무 신령이 대화를 한다. 동생 회화나무 신령은 삼갑자나 될 정도로 삶에 집착[貪生]하면서 물러설 줄 모르는 형님 회화나무를 비난하면서 작별을 고하였다. 날이 밝은 뒤 강수는 그칠 줄을 알아야 한다[知止]는 동생 회화나무 신령을 찾아가 도를 배울 스승을 소개해주기를 요청한다. 이에 형산衡山의 포선사鮑仙師를 찾아가게 되었다. 평소 피리에 조예가 있었던 강수는 포선사로부터 옥피리를 받아 삼년을 열심히 연주하여, 용으로부터 여의주를 얻을 수 있었다. 여의주를 얻고는 제호醍醐를 사용하여 사흘간 달이면 작은 용들이 나타나고 그 용들에게 달인 약물을 화수단化水丹과 바꾸어 선계를 두루 체험하였다.

포선사는 피리를 불어 감응을 일으키면 반응이 나타나는데 그 뜻은 현으로 대표되는 도이다라고 가르쳐주었다. 포정의 제자인 갈홍은 포박자抱朴子에서 도를 현혹은 현도玄道로 표현하였으므로, 피리를 삼년 동안 불어 그 음률을 터득하였다는 의미는 무화武火의 수행을 터득한 것이다. 용으로부터 여의주를 얻은 뒤 제호로 달여 화수단을 얻는다는 것은 문화文火를 사용하여 내단을 성취한 것을 가리킨다. 강수의 수행을 정리하면, 현세의 삶에 집착하지 않고, 생명을 주는 피리를 연주하는 수행을 통해서 내단을 이루고 선계를 체험한다는 것이다.

소광전蕭曠傳은 소광이 용왕의 딸인 직초낭자織綃娘子를 만나 나누는 대화를 나누는데, 그 속에 용의 수행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광이 용이 좋아하는 바에 대해 묻자, 직초낭자는 용은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길게는 천년을 자고, 짧아도 수백년보다 적지 않습니다. 동혈에서 엎드리거나 바로 뒤척이면서 잠잘 때(偃仰) 비늘 사이에 먼지가 쌓입니다. 때로는 새가 나무의 씨를 물고 와서 그 위에 버리는 탓에 비늘 틈으로 나무가 자라고, 한 아름 되는 나무가 될 때 즈음해서야 바야흐로 용이 깨어납니다.”라고 하였다.

용이 잠들고 비늘 틈으로 먼지가 쌓이고 나무가 한 아름이 될 때까지 쌓인다는 상징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피로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주말과 휴가를 통해서 그 피로를 일부분이나마 해소한다. 수행의 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지거나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여러 행동들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용의 깊은 잠은 누적된 피로를 씻고 묵은 습관을 벗어남으로써 수행자로서의 기초를 갖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깊은 잠을 자고 난 뒤, 용은 마침내 떨치고 일어나(振迅) 수행에 접어든다. “자신의 허물을 벗고 허무에 들어가니 그의 정신은 맑아서 적멸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허무와 적멸의 단계는 모든 잡념과 번뇌가 사라진 정신 수련, 즉 성공부라고 하겠다. 이윽고 저절로 형체가 기와 더불어 그 변화를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얽힘이 풀려서 진공眞空의 단계에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여 육체 수련, 즉 명공부로 접어든다.

육체와 정신을 모두 닦는 성명쌍수性命雙修를 통해 진공에 접어든 그 상태에 대해 다음과 표현하였다. “마치 배태되지도 못하고 응결되지도 못한 듯하였으니, 그것은 마치 노자25장과 21장에서 말한 어떤 사물이 있는 듯 없는 듯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참된 정수로 기이한 것이었지만, 어둑어둑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용의 거대한 몸 전체가 온전히 겨자씨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가 움직여 가지 못하는 곳이 없었습니다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상태를 근본에 돌아가는 도술을 터득하여 조화옹과 공을 다툰다라고 하였다.

소광은 용에게서 발견되는 이상의 수행이 어떤 것이냐고 재차 질문한다. 이에 대해 직초낭자는 높은 선인들이 수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상중하 3등급의 수행 단계를 구체적으로 논술하기에 이른다. “상급의 수행자는 형과 신이 모두 통달하는 것이고, 중급의 수행자는 신은 뛰어넘으나 형은 가라앉으며, 하급의 수행자는 형과 신이 모두 추락합니다.” 즉 낮은 단계의 수행자는 정신과 육체 모두에서 수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중간 등급의 수행자는 정신 수련의 성과를 달성하기는 하지만 육체 수련에서 미진한 점을 보이는 것이며, 높은 단계의 수행자는 정신과 육체 모두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성명이 쌍수된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손각전에서 무해한 원숭이가 등장한 것처럼, 요곤전姚坤傳에서는 은혜를 갚는 여우가 나타난다. 모두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다. 요곤은 도가적 인물로 출세에 대한 욕망이 없이 물고기나 낚으면서 유유자적하는 인물이었다. 이웃에 사냥꾼이 살면서 토끼와 여우를 잡아서 생활하였다. 요곤은 사로잡힌 동물들을 불쌍히 여겨 돈을 주고 사서는 풀어주곤 하였는데, 이렇게 살아난 동물들이 수 백마리나 되었다.

숭산의 보리사 승려인 혜소惠沼가 매우 깊이 우물을 파고 장수하게 만드는 신선의 약초라는 황정黃精 수백 근을 넣어둔 다음, 요곤에게 술을 먹여 빠뜨리고는 우물을 막아버렸다. 황정의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요곤은 탈출할 방법이 없었고, 배가고플 때면, 황정을 먹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여우입니다. 당신께서 제 자손들을 적지 않게 살려주신 은혜에 감동하여 당신에게 도를 깨치는 요결을 알려주려고 왔습니다. 저는 천년을 묵어 하늘의 이치에 통한 천호가 되었습니다. …… 마침내 정신을 모으고 집중하자 문득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날아올라 동굴을 빠져나오게 되었고, 허공을 밟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신선들을 만나고 인사를 드렸지요. 당신께서도 단지 정신을 맑게 하고 사려를 없애며 현허玄虛한 도에 집중하십시오. 이렇게 정확히 하면 한달이 못되어 날아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요곤의 물음에 여우는 당신은 서승경西昇經에서 정신작용이 육체를 날게 하고, 또 산을 옮긴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까? 노력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떠났다. 요곤이 여우의 말대로 수행하자, 약 한달이 지나자 막힌 우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여우가 언급한 서승경은 위진의 육체 수련에 전념하는 도교를 비판하고 등장한 것으로, 남북조시대를 대표하는 도교 저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신 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용한 구절은 서승경의 사정장邪正章으로,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 도는 여기에서 나뉘어지는데 참된 도와 거짓된 도이다. 거짓된 도는 육체를 기르고 참된 도는 정신을 기른다. 참된 정신은 도에 통하여 나타나고 사라짐에 자유롭다. 참된 정신은 육체를 날아오르게 할 수도 있고, 산을 옮길 수도 있다. 육체는 썩은 흙으로 돌아가니, 어떻게 도를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요곤이 우물에서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은 황정이라는 외단 약물을 섭취함으로써 육체 수련을 하고, 여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정신 수련을 더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련 이전에 죽어가는 불쌍한 생명을 살리는 덕행을 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요곤은 적덕積德, 육체수련, 정신수련의 3요소를 모두 갖추어 득도했다.

요곤이 승려를 만나자, 승려는 크게 놀라면서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요곤은 우물 속에서 황정을 한달 동안 먹기만 했더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스스로 날아올랐다고 말했다. 이에 승려는 자신도 도를 깨치리라고 생각하면서 우물 속에 들어갔지만, 시체로 발견될 뿐이었다. 이것은 정신 수련이 빠진 상태에서 외단을 복용하는 육체 수련만으로는 도에 이를 수 없고, 남을 궁지에 몰아넣는 나쁜 행실로는 결코 도에 이르는 인연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앞 장에서 언급한 번부인전에서도 도교 수행법에 대한 논의가 보인다. 부모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逍遙는 상노파를 찾아온다. 그런데 상노파는 그에게 다만 먼지를 쓸고 물을 긷고 향을 태우고 도교경전을을 읽게 할 뿐, 특별한 어떤 수행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후, 상노파는 나부산羅浮山에 간다고 하면서 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하였다. 소요는 먼저 떠나 보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소요에게 폐관 수행을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3년후 상노파가 돌아와, 자물쇠를 열면서 내가 돌아왔으니, 너는 깨어나라라고 하였고, 소요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과 같았다고 한다.

소요의 수련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발적 의지로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를 설득하는 초발심初發心의 단계이다. 둘째, 마당 쓸고 물 긷는 평범한 일상생활과 향을 피우고 도교경전을 읽는 수행자로서의 생활이다. 이것은 기존의 습관을 바꾸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소박한 무위의 삶으로 나아가는 기초 단계, 즉 연기축기煉己築基이다. 셋째, 도와 합일하는 본격적인 수련 단계로 3년의 폐관閉關 공부이다. 3년의 타좌打坐 공부가 무르익었다는 증거로, 無知한 모양(, )과 마치 잠에서 막 깬 것같은 모습(如寐醒) 등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단계가 하나 더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상노파가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의 군산도君山島에 배가 좌초되어 위기에 처한 백여명의 사람들을 도술로 구제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의 어려움 앞에 구세救世의 노력이 추가되고서야, 비로소 상노파와 소요는 한날 한시에 진리의 세계, 곧 신선이 되어 떠난다. 이상과 같은 자리自利(자기 수행)와 이타利他(대중 구제)의 결합이 당대도교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6. 나오는 말

 

본고를 통해서 전기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하였다. 기존의 논의에서 논의되지 않는 필자의 독창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유가 지식인의 관점에서 도가도교적 지식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였다. 고변은 당대 후기의 3명장 가운데로 긍정과 부정적 면모를 함께 지닌 인물이므로 그를 객관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아울러 그 문하에 고형과 더불어 최치원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2장의 고경기에서는 초기 도교에서부터 중시된 도사들의 신물인 거울을 논의하였다. 거울은 척사와 더불어 이류의 거짓된 면모를 밝히는 역할을 하였다. 햇빛을 머금어 거짓을 환히 비춘다는 측면에서 양을 중시한다고 인정되나, 달빛을 머금어 열을 떨어뜨리는 냉찜질의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음적 면모도 발견된다. 하지만 냉찜질은 결국 병을 낫게 하는 역할을 하기에 음중양으로 해석된다. 정체가 드러난 여우 역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요괴가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또 다른 존재(異類)라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인간과 이류의 공존은 4장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무조건 장생을 추구하기보다 떳떳한 삶을 추구함으로써 죽음을 수용하는 면모 또한 주목된다.

3장의 두자춘전은 현장 대당서역기의 호위무사 신화를 모방하면서 아직 중국적 모델로 승화되지 못한 북주에서 당에 이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남북조에서 당대에 이르는 시기의 도가도교 진영은 가정윤리와 사회국가윤리를 고려하지 못하는 불교를 지속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런데 두자춘전은 집착을 버린다는 미명하에 부부夫婦와 부자父子로 대표되는 가정윤리를 도외시하였다. 이러한 한계는 전기위자동전에서 해소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부부와 부자간의 정리情理 문제를 제거하고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수행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으로 바꾸었다.

4장에서 5장은 당대 도교의 전형적 모습을 고찰하였다. 4장은 예교와 인간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장무파전은 자유 연애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용왕의 딸이, 번부인전은 남편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번부인이 등장한다. 섭은랑전은 잔인하게 사람을 살육하는 일반적인 무사들과 달리,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여, 무정無情에서 무정蕪情으로의 변화가 보인다. 이러한 점은 3두자춘전이 인도불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보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도교가 주음적인지 혹은 순양지체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논의하였다. 필자는 음양 개념의 다양한 층차를 고려하여,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도교의 음양관이라고 파악하였다. 리괘()와 감괘()가 만나 순양純陽의 건괘乾卦()를 만든다는 상징은 남성(리괘)과 여성(감괘)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점은 2고경기의 음중양 개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손각전은 현명하고 강인한 원씨 여인이 주인공이다. 인간과 요괴라는 이분법에 빠진 수준 낮은 도사를 의라는 관점으로 비판하고, 인간과 이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 부분에서 인간 세상을 떠나 자연의 세계로 회귀함으로써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면모를 드러낸다.

5장은 음양쌍수로 대표되는 자기 수양과 세상의 구제라는 사회적 실천을 고찰하였다. 주한전은 용에게서 여의주를 훔치는 이야기를 통해서, 탐욕으로 신성이 훼손되는 모습을 비판하였다. 강수전은 그칠 줄을 알아야 한다[知止]는 주장, 옥피리를 3년간 연주하여 노룡老龍으로부터 여의주를 얻는 비유로부터 무화武火의 수행, 제호醍醐를 사용하여 사흘간 여의주를 달여 소룡小龍들로부터 화수단化水丹을 바꾸는 비유로부터 문화文火의 수행을 엿볼 수 있었다. 소광전은 용의 수행법을 논의하였다. 잠을 좋아하는 용으로부터, 누적된 피로를 씻고 묵은 습관을 벗어나는 무위의 수행을 엿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수행과정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모두 닦는 성명쌍수性命雙修가 제시되는데, 이를 근본에 돌아가는 도술을 터득하여 조화옹과 공을 다툰다라고 명명하였다. 수행의 단계를 논의하면서, 성명쌍수를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낮은 단계의 수행자는 성명 모두를 실패하고, 중간 등급의 수행자는 성공부는 성공하나 명공부에 미진한 것이며, 높은 단계의 수행자는 성명공부 모두에서 성공한다라고 하였다.

요곤전姚坤傳의 여우는, 4장의 손각전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원숭이 부인을 넘어, 적극적으로 인간에게 은혜를 갚는 이류異類이다. 요곤전에서는 죽어가는 짐승들을 불쌍히 여겨서 방생하는 요곤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위험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혜소가 대비된다. 요곤은 적덕積德, 육체수련, 정신수련의 3요소를 갖추어 득도했지만, 혜소는 욕심에 가득차 있는 상태에서 황정을 먹는 육체 수련에만 빠짐으로써 사망하였다. 위진의 육체 수련에 전념하는 도교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서승경을 등장시킴으로써, 정신수련을 강조한 것은 남조시대 도교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점이 당대 도교에서 성명쌍수를 주장하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4장에서 잠시 언급된 번부인전에서 도교 수행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발적 의지로 수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모를 설득하는 초발심初發心의 단계이다. 둘째, 마당 쓸고 물 긷는 평범한 일상생활과 향을 피우고 도교경전을 읽는 수행자로서의 생활이다. 이것은 기존의 습관을 바꾸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소박한 무위의 삶으로 나아가는 기초 단계, 즉 연기축기煉己築基이다. 셋째, 도와 합일하는 본격적인 수련 단계로 3년의 폐관閉關 공부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단계가 하나 더 제시되는데, 그것은 민중의 어려움을 제거하는 구세救世의 노력이다. 이와 같이 자리自利(자기 수행) 위에 이타利他(대중 구제)를 결합하는 것 역시 당대 도교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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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京津신문 기사, 타찌바나 사라키(橘樸)<노신과의 대화>.

[그 대체적인 내용을 <鲁迅与橘朴关于山东扶乩的谈话>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jb.qlwb.com.cn/qlwb/content/20210114/ArticelA10002FM.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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