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증산도의 신선 사상 고찰

서대원(충북대)

2022.11.30 | 조회 419

2021년봄 증산도 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甑山道神仙 思想 考察

 

서대원(충북대, 창의융합교육본부)

 

 

목차

1. 들어가며

2. 도교 신선[]의 의미

2.1 신선의 초기 의미

2.2 통신通神

2.3 외단外丹의 선

2.4 내단內丹의 선

2.5 여론餘論

3. 증산도 신선 사상 고찰

3.1 신선의 개념

3.2 신선의 능력

3.3 신선의 공능

4. 증산도 신선 사상에 대한 평가

5. 결론

 

 

논문요지

우리는 신선(神仙)’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다. 사실상 ()’ ‘()’ ‘신선(神仙)’의 개념은 동일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혼용된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신선(神仙)’에 대한 고찰이다. 그런데 이 신선(神仙)’ 선인(仙人)’ -은 중국 도교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증산도의 신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중국 도교의 신선관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선진시기의 신선관:산속에 살면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세속을 떠나 초연한 삶을 유지하며 세상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한대(漢代) 신선관:통신자(通神者)를 지칭하며 세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변혁하고 구제하려 한다.

단도(丹道) 신선관:외단과 내단의 방법으로 신선이 되며, 일반적으로 세속의 일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

증산도는 기본적으로 선도(仙道)의 기초 위에 유학과 불교 그리고 천주학이라는 서학의 정수를 뽑아 융합시킨 신선도(新仙道)이다. 이것은 증산의 언행을 보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수장인 증산(甑山)은 대선인(大仙人) 즉 신선(神仙)이다.

 

증산은 상제(上帝)이기 때문에 증산 상제혹은 상제님이라 부른다. 이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넓은 의미로 보면 통신(通神) 신선관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와 조선 인민에게 오만년의 선경(仙境)을 만들어 주어 구제하고자 한다. 즉 초월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제하려 한다. 이 점도 한대(漢代) 신선관과 유사하다. 단지 상제와 증산의 관계 설정에 따라 한대(漢代) 신선관과의 차이가 보인다. 즉 증산도에서 보는 신선이란 신명(神明)들의 의지를 대변하여 이()에 의거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통신자(通神者)이다.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운명을 부여하는 자이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신선(神仙)’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다. 이 어휘는 기본적으로 도교(道敎)의 어휘이다. 아마도 이 어휘는 어릴 적에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신선(神仙)’은 두 개의 단어가 합쳐서 하나의 어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 ‘()’ ‘신선(神仙)’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셋은 어느 정도 엄밀하게 분류할 수도 있지만 사실상 혼용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도 협의(狹義)와 광의(廣義)로 나눌 수 있으며 협의로 나눌 경우 도파(道派)에 따라 그 의미가 동일하지 않을 것이며, 광의로 사용할 경우 이 세 용어의 차이와 외연을 확실하게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서는 우선 신선(神仙)’이란 어휘를 사용하겠다.

본고는 증산도(甑山道)의 신선관(神仙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단지 이것은 위의 설명에 따르면 좀 광의의 신선관(神仙觀)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증산도의 신선관(神仙觀)은 재래(在來) 어느 도파의 신선관과도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만일 어느 일파의 협의적(狹義的)인 신선으로 논한다면 신선이다 신선이 아니다 하는 논의가 앞설 것이다.

필자는 증산도(甑山道)를 포함한 어느 한쪽이 신선이 신선 맞는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논의를 할 의향도 없다. 단지 본고에서는 증산도(甑山道)’의 신선관(神仙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신선(神仙)’이란 본래 중국 도교의 개념이기 때문에 증산도(甑山道)’의 신선관(神仙觀)도 중국 도교의 신선관(神仙觀)과 무관할 수도 또 그 영향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본고에서는 먼저 도교의 신선관을 서술하고 다시 증산도의 신선(神仙) 사상을 고찰하여 그 특징과 의미 등을 살펴보겠다.

2. 도교 신선[]의 의미

 

위의 세 가지 - ‘()’ ‘()’ ‘신선(神仙)’ - 중에 우선 ()’을 살펴보자.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선도 어떤 사람의 경지 혹은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시선(神仙)’ 혹은 중국의 구어(口語)에서 말하는 신선(神仙)’도 사실상 ()’을 말한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2.1 신선의 초기 의미

 

()’은 본래 (+ -)과 같은 자형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이 글자는 갑골문(甲骨文)이나 선진(先秦) 서적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한대(漢代)에 출현한 글자가 아닌가 싶다.

자원(字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생불사(長生不死),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升天而去] … 『설문(說文)에는 오래 살다가 옮겨 감이다. … 『석명(釋名)나이 들어도 죽지 않는 사람을 선()이라 한다. ()으로 옮겨 감이다. 그래서 인()과산( )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어대사전(漢語大辭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초탈하여서 장생불사하는 사람

 

字形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산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으며 이것은 세상과 두절하고 초탈하게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듯하고, 여러 설명을 볼 때, 장생불사가 기본적인 의미로 보인다.

즉 장생불사하며 세상을 초탈한 사람이란 의미일 것이다. ‘()’의 본래 의미는 대략 위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나. 역사상 보이는 ()’은 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의 설명이 너무 간략해서일 수도 있고 역대의 선관(仙觀)’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점은 그 연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선진(先秦)에서부터 그러하다.

()’의 연원 격에 해당하는 장자(莊子)의 묘사를 보자.

 

막고야(藐姑射)의 산에 신묘한 사람이 살고 있다. 피부는 빙설(氷雪) 같고 부드러운 몸은 처녀 같다.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먹고 살며, 운기(雲氣)를 타고 비룡(飛龍)을 부리며 사해의 밖에까지 유람한다. 그 정신이 모아지면 만물이 병들이 않게 하고 풍년이 든다.

 

이 글은 본래, “大而無當, 不近人情焉황당하여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이야기라 하며 인용되고 있다. 단지 위 인용문은 좀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산속에 신인(神人)이 산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속세를 떠났다는 의미의 ‘(+ -)’이나 산에 사는 사람이란 ()’의 자형 모두에게 적용된다. 아울러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음식으로가 아니라 특별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특별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선() 선인(仙人) 신선(神仙)을 연상할 수 있다. 즉 이런 풍문 혹은 전설이 전국 시대 이미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선에 대한 과념은 최소한 전국 시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보여진다. 인간 세상을 떠나 산중에 산다. 인간의 생황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현재 높은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선진 고전에는 어떻게 하면 신선이 되는지 그 임무나 역할을 무엇인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후대의 신선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자(莊子)의 진술이 정말 신선술인지도 확언하기 어렵다. 즉 진인(眞人)과 선()의 관계도 장자(莊子)원문을 검토해 보았을 때 그리 명료하지 않다. 그럼에도 장자(莊子)의 여러 사상과 선()은 후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선()의 의미도 여러 변화를 겪으며 구체적으로 변모된다.

 

2.2 통신通神의 선

 

도교 성립가의 초기 도교 이론을 볼 수 있는 서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평경(太平經)이다. 태평경에서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태평경에 의하면, 우주는 본래 기()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서 정()과 신()이 파생된다. 태평경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태평경에서는 태초(太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형용하고 있다.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 최초로 시작하였을 때에는 안으로는 위아래 해와 달 삼광(三光)이 없어서 위 아래로 어두컴컴하였다. 어두컴컴하여 분별이 없었다. 비록 분별이 없었으나 그 안에는 절로 상하(上下)좌우(左右)표리(表裏)음양(陰陽)이 있어 서로서로 버티고 있어서 분별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원기(元氣)라고 부르며 태평경에서는 매우 자주 언급된다. 단지 이 원기는 천지가 나우어지기 이전이나 이후에나 존재하는 영원하며 최초이며 최후이고 어떤 의미로는 최고의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생정(氣生精), 정생신(精生神)”의 구조로 천지만물과 사람을 설명한다. 즉 정기신(精氣神)의 구조로 우주와 그 안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의 사이 모든 사물에는 각기 스스로 정()과 신()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정()이 생겨나고, ()이 발생하면 신()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표현을 보면 마치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에만 이 논리가 적용되는 듯하지만 사실상 천지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천지로 앞에서 말한 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기에는 원기(元氣)의 정신(精神)이 있다. 다시 말하면 원기(元氣)에는 원기의 신이 있다. 천지에는 천지의 신이 있다. 그런데 신은 비록 기()에 의해 발생하지만 발생된 후에는 기()와 정()을 통솔하고 관리한다. 단지 기()가 쇠퇴하게 하면 결국 신()도 고갈되기 때문에 정기신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만물만사에 신()이 있다는 점이다. 원기(元氣)에도 신()이 있고 천지(天地)에도 신()이 있으며 사람에게도 신()이 있으며 사람의 백체(百體)에도 각기 신이 있어 관리를 한다. 즉 우주는 기()로 이루어져 있으나 각처에 신()이 있어 기가 운용되고 관리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신이 있고 그 아래 신들의 조정(朝廷)이 있어 전체 우주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 기()가 충만하지만 마찬가지로 신()도 충만하다. 이것은 신()들 간()의 교류가 가능한 근거가 된다. 정기신(精氣神)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타물(他物)의 신()과 교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가 원기(元氣)의 신() 혹은 천지의 신()과의 교류도 가능하다. 그리고 자기의 직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파직된 신()이나 해를 끼치는 사신(邪神)과의 교류도 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과 교류하는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즉 통신자(通神者)이다. 이런 태평경에 의하면 매우 여러 명칭이 있지만 이런 자를 ()’ 혹은 선인(仙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인(仙人)을 등급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명칭

소통지신(所通之神)

비고

神人

元氣之神

神性元氣(之神)과 유사하지만 元氣之神과 달리 형태가 있다.

眞人

大地之神

神性大地(之神)과 유사하지만 元氣之神과 달리 형태가 있다.

仙人

四時之神

위와 같은 방식

道人

五行之神

위와 같은 방식. 도인은 미래와 길흉을 잘 안다 함.

 

이것은 매우 대략적인 것이다. 단지 여기에서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사실상 원기지신(元氣之神)은 천제(天帝) 혹은 상제(上帝)라 불리우는 존재로서 최고신을 지칭한다. 그래서 태평경에 의하면 신인(神人)은 진인(眞人) 이하의 선인(仙人)이나 일반인도 경외(敬畏)하지만 원기지신(元氣之神)도 그를 존중하며 그 이하 신()들도 그를 경외한다고 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와 같은 선인관(仙人觀) 혹은 신선관(神仙觀)은 뒤에 다른 선인관(仙人觀) 신선관(神仙觀)으로 교체된다. 그렇지만 이 형태 그대로는 아니지만 통신지인(通神之人)을 숭배하던 관념은 현재 알려지기로 상대(商代)에 이미 유행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사유 형태는 그 근원이 상대(商代)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이며 주대(周代)의 민간에 흐르던 것이 한대(漢代)에 집성(集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단지 중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더 나가 세계적인 경향을 보이며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일 중국 도교의 선인관(仙人觀) 혹은 신선관(神仙觀)이 단학(丹學)을 통한 선인관(仙人觀) 혹은 신선관(神仙觀)으로 대세가 변모하지만 태평경 류의 선인관(仙人觀) 혹은 신선관(神仙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도교 내부에 일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민간 도교에서는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중국 도교의 신 가운데 중국의 지역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조(媽祖)는 송대(宋代)의 여인으로 출발점은 이무(里巫)였다고 한다. 즉 동네 통신자(通神者)이다. 그를 신선(神仙) 혹은 선인(仙人)으로 받들어 송원명청 시기를 거쳐 현대에는 더욱 번성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통신자(通神者)()’이라 지칭하는 경우는 현대에까지 내려오고 있다. 명청 시기 도교의 민간 교단에서는 이런 일이 더욱 흔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이런 선인관(仙人觀) 혹은 신선관(神仙觀)은 선진 특히 장자(莊子)혹은 설문해자(說文解字)등의 설명과 차이가 있다.

우선 태평경(太平經)의 선인(仙人) 혹은 신선(神仙)은 기본적으로 신()의 전령(傳令) 혹은 전의(傳意) 더 나가 해설자(解說者)들이다. 태평경(太平經)의 주장에 의하면 태평경(太平經)의 내용은 모두 신의 뜻을 전해 기록한 것이다. 하나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여쭙습니다. 도가 참으로 마땅하고도 즐거이 실현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신인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이 문서를 천상 여러 신들에게서 받았고, 여러 신들께서는 말씀해주셨다. 나는 음과 양,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 등과 더불어 응한다고 들었다. 이것이 커다란 증험이다.

 

일반적으로 육방진인(六方眞人)이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질문을 하고, 천사(天師) 혹은 신인(神人)이라는 사람이 이에 대해 답변을 한다. 그런데 이 천사는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듯이 제신(諸神)’이나 천신(天神)’의 뜻을 전달해 주고 있다. 이런 점은 장자(莊子)혹은 설문해자(說文解字)등에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특징은 더욱 중요하다. 이들은 인간사회 전반을 구제하거나 개혁하려 한다. 즉 선()이 세속을 초월해 있거나 불개입하는 입장이 아니라, 세속에서 세속을 개혁하거나 구제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나름의 이론을 통해 신도를 모으로 어떤 신통술(?)등을 동원하여 세상을 구제하려 하고 있다. 만일 세상이 그들의 말을 따라 개혁되면 그 결과 신들은 인간 세상을 태평기(太平氣)를 준다고 한다. 즉 신이 인간에게 주는 약속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위에서 일부 보이듯이 기() 음양(陰陽) 오행(五行)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고 나름대로 치밀한 방술체계와 존재에 대한 해석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로는, 이런 영향은 중국의 태평천국의 기의(起義)에까지도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2.3 외단外丹의 선

 

아마도 황건기의(黃巾起義)의 실패로 인해, 도교는 변화가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새로운 선인관(仙人觀)이 발생한다. 갈홍(葛洪) 포박자(抱朴子)는 이런 입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선인(仙人)이란 무엇인가? 포박자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의 삶[人道]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것이 이상[]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옷을 입고, 높은 지위에 처하고, 눈은 잘 보이며 귀는 잘 들리고, 골절은 튼튼하고, 안색은 즐거우며 윤기가 흐르고, 늙어도 (기가) 쇠하지 않고, 장수하며 모든 일을 잘 처리하고, 왕래가 자유롭고, 추움 더움 바람 습기가 내 몸을 손상시키지 못하고, 모든 무기와 병원균이 나에게 침범하지 못하고, 근심이나 즐거움 비방과 칭찬이 부담되지 않는 삶을 누리는 것이다.

 

연년익수(延年益壽)하여 장생구시(長生久視)라며 무병건강하여 욕망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선인(仙人)이다. 여기에서 보면 선인(仙人)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서술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개인이 영구적으로 안녕하며 능력이 발전하고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인(仙人)이 될 수 있는가? 외단(外丹)이라는 방법으로 선인(仙人)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신선이란 藥物로 몸을 保養하고 술수를 사용하여 장수를 하며 안으로는 병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 밖으로는 우환이 들어오지 않게하며 비록 장구한 시간동안 활동을 하지만 죽지 않고 본래의 육체가 변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외재(外在)하는 약물을 복용하여 신선이 되는 것을 외단(外丹)이라 부른다. 포박자에 의하면 외단이 선인(仙人)이 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포박자 류의 선인(仙人)을 정리해 보자.

첫째,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즉 소극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왕성한 생명력[]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선인(仙人)이라 한다.

둘째, 건강해지거나 연년익수(延年益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효과는 제한적이며 선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외단(外丹)이다.

셋째, 사회저인 역할이나 기여보다는 개인의 안녕과 영구함이 기본 가치이다. 이점은 아마도 외단(外丹)이라는 이론보다는 당시 도교가 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적응으로 보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선()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벗어나 초탈해 있다는 본래의 이미지에는 더욱 가까워졌다.

 

2.4 내단內丹의 선

 

외단(外丹)을 통해 선인이 되는 조류는 상당기간 유지되다가 수대(隋代) 정도 때부터 내단(內丹)의 사유가 발생하고 당말이후 종려학파(鐘呂學派)에 의해 확립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단 도교의 정통이 되어 있다. ‘종려(鐘呂)’는 종리권(鐘離權)과 여동빈(呂洞賓)을 지칭한다. 이들 일군(一群)의 도사들이 창시한 방법이다.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도교에서는 사람 더 나가 만물은 정기신(精氣神)으로 되어 있다고 여겨져 왔었다. 이점은 외단(外丹) 도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이 정기신을 외재하는 약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내단(內丹)에서는 이와 같은 관점을 바꾸었다. 약물은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성명(性命)의 내부적 구조인 정기신(精氣神)에 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내단(內丹)이라 부른다. 즉 외재적인 약물이 아니라 내재적인 정기신을 수련하여 선인(仙人)이 되겠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 방법만이 가장 확고하고 우수한 방법이라 여긴다. 이들도 일반적으로 입산수단(入山修丹)을 한다. 후일 성명쌍수(性命雙修) 중 우선성과 구체적인 수련법을 놓고 파별이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이론은 동일하다. 이런 이론은 송대(宋代)에 매우 유행하였고 후일 전진교(全眞敎)에서 흡수 계승하여 중국 도교의 정통이자 주류가 되었다. 물론 정통과 주류라는 말에는 비정통과 비주류가 존재하고 있었음도 내포한다.

그럼 내단 선인에 대해 정리해 보자.

첫째,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외단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전진교 등 주류에서는 방중술 등이 배제된다. 즉 욕망에 대한 입장이 과거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선인이 되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내단(內丹)이다.

셋째, 기본적으로는 외단과 마찬가지로 세속에 대해 초탈적이나 외단에 비해서는 친세속적이다.

 

2.5. 여론餘論

 

여기에서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진교(全眞敎) 이후의 도교 상황과 여동빈(呂洞賓)에 대한 고찰이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내단학(內丹學) 혹은 내단술(內丹術)은 송대 이후 중국 도교의 정통과 주류가 되었다. 실제로 외단(外丹)은 상당히 쇠미해 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멸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단이 중국 도교의 정통이 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단(敎團) 도교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태평경은 천사도가 되었다가 상청파가 되었고 그것을 계승한 모산파(茅山派) 도교가 존재할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신() 중심의 도교 이론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민단 도교들에서는 이런 경향이 강하게 보인다. 그들은 신탁이나 예언 신통력 혹은 술수들을 바탕으로 자기들을 유지하였다.

특히 청대(淸代)에 이르러 민단 도교들이 성행(盛行)하였고 이런 이론들이 다시 전진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신 중심의 도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청대에는 매우 강력했다. 이 부분은 본 논문에서 비교적 중요하다.

 

3. 증산도 신선 사상 고찰

 

3.1 신선의 개념

 

필자는 신선(神仙)’이라는 개념으로 증산(甑山) 상제(上帝)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증산(甑山) 상제(上帝)를 신선관으로 분석해도 되는지를 먼저 살펴 보고자 한다.

중산교(甑山敎) 도전(道典)을 읽어 보면, 증산교 교리에는 유불도와 기독교 등이 모두 섞여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단지 섞여 있다는 것이 빈주(賓主)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불도 기독교 중 무엇이 중산교(甑山敎)의 주()이고 무엇이 빈()일까?

도전(道典)에 이에 대해 비교적 분명하게 논술되어 있다. 다음을 보자.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이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나의 도()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들 쏙 뽑아서 선()에 붙여 놓았느니라.

 

필자가 보기에 이 인용문은 매우 중요하다. 증산이 스스로를 선도(仙道)에 분속시키는 내용은 다른 곳에도 보이나 그 성격까지 보여주는 것이 이 글이 제일 명료해 보인다.

우선 마지막 구절인 내가 유불선 기운들 쏙 뽑아서 선()에 붙여 놓았느니라.”에서 증산교가 선도(仙道)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어떤 선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유불 등의 장점을 모아 선교의 기본 가르침 위에 녹여 넣은 선도(仙道)이다. 필자가 유불 등이라 말한 것은, 증산은 이마두 즉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천주학(天主學)까지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증산교는 유불서를 비교 참작하여 만든 선도(仙道)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증산교가 도교이던가 아니면 도교에 까깝다는 알 수 있는 자료는 매우 많다. 단지 두 가지는 매우 흥미롭다. 도전(道典)에서 보면 증산은 약방을 개설하여 생업을 하며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이것은 수많은 도사들의 행적과 유사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증산은 주문과 부적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 자체가 도교적일 뿐 아니라 부적에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과 같은 도교 부적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그대로 보이고 있다. 즉 매우 도교적이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증산은 선도 즉 도교의 인물이고 아울러 우선 그를 대선인(大仙人)’으로 간주해야한다. 이런 이유로 증산(甑山) 상제(上帝)를 도교 신선의 개념으로 분석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증산교의 신선관(神仙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도전(道典)어디에서도 성명(性命)에 대한 수련을 다루고 있는 글은 없다. 더욱이 외단성선(外丹成仙)의 이야기도 없다. 이 점은 증산교의 신선관이 외단’ ‘내단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단도(丹道)에 의한 신선(神仙)이 아니다. 그런데 이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삼국시대를 발굴 자료를 보면 외단술(外丹術)이 이미 한반도에 전래되었던 듯하며, 아울러 내단술(內丹術)도 들어왔던 듯하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조선초부터 내단술(內丹術)이 전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학자(儒學者)들도 이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도전(道典)에는 단학(丹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산의 성선(成仙)은 단학과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이전의 신선관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설명에 의하면, 1901년 모악산에 있는 대원사에 들어가 수도를 하여 성도(成道)를 하여 9년간 이적을 보이고 천지공사를 하며 전도를 하고 인간의 모든 병을 대속하여 선거(仙去)하였다.

그런데 도전(道典)의 묘사에 의하면 증산은 상제가 하범(下凡)한 것이다. 즉 인간세계로 내려온 상제(上帝)이다. 그래서 그를 증산(甑山)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세계로 내려온 상제(上帝)”는 매우 많은 이론적 설명을 필요한 서술이다. 단지 도전(道典)은 이론서라기 보다는 이적과 말씀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점은 학자들의 해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도전(道典)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어느 해인가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랜만에 고향에 가시니 마침 당고모의 혼례일이라 집안의 남녀노소가 많이 모였는데, 상제님께서 들어서시자 친척들이 모두 반가이 맞으며 말하기를 어이 일순이, 너 본 지 오래구나. 듣자니 너는 비상한 조화를 부린다던데 우리는 전혀 보지를 못했으니, 오늘 너 잘 만났다. 어디 그 술법 좀 구경 좀 하자꾸나!” 하시거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아이구, 제발 거두게!”하며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니라.

 

위 글을 볼 때, 아마도 증산이 어렸을 때에는 특별한 이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런 추측이 맞다면 증산이 이적을 보이고 새로운 주장을 한 것은 성도(成道)이후이거나 그 이전 어떤 시점 이후부터일 것이다. 그렇다면 상제하범(上帝下凡)’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상제(上帝)가 강일순(姜一淳)으로 태어나 비범함을 숨기고 있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능력과 가르침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 강일순(姜一淳)이 어느 순간부터 상제(上帝)가 된 것이다. 즉 그 어느 순간부터 상제하범(上帝下凡)’이 된 것이다. 그 때부터가 증산(甑山) 상제(上帝)’ 혹은 상제(上帝)인 것이다.

필자는 두 번째의 가능성이 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 때의 증산(甑山)은 그야말로 신선(神仙)이다. 내면으로는 신()이고 외면으로는 선()인 신선(神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선인관(仙人觀)은 기본적으로 태평경(太平經)에 보이는 선인관과 유사하다. 만일 첫 번째의 해석을 따른다면 비록 매우 많은 설명 거리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접어두고 사실로 인정한다면 비록 동일하지는 않지만 마찬 가지로 한말(漢末) 도교의 작품인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의 내용과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어떤 입장을 취하던 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을 통해 이적과 교설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통신(通神)의 선인관(仙人觀)’이라 볼 수 있다.

단지 여기에서 몇 가지를 더 논의해 보자.

우선 일반적인 통신(通神)이라기 보다는 상제하강(上帝下降)과 강일순(姜一淳)의 몸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도전(道典)에 의하면, 잠잘 때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업무를 본다고 하니 상주(常住)’라 할 수는 없지만 생활시 강일순(姜一淳)이 필요에 따라 상제(上帝)를 부르거나 묻는 형식이 아니다. 즉 강일순(姜一淳)이 바로 상제(上帝)이다. 이 내용은 도전(道典)의 여러 곳에 보인다. 이럴 때 강일순(姜一淳)이 바로 증산(甑山) 상제(上帝)’ 혹은 상제(上帝)이다.

또 한 가지, 필자의 주장은 증산교의 선인관(仙人觀)태평경(太平經)과 기본적인 면에서 상통(相通)하고 닮았다는 것이지 태평경(太平經)에서 근원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태평경(太平經)은 읽을 수도 없었다. 필자기 보기에, 당시 민간 중국 도교 및 일부 도교 유파와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며, 우리나라 고래(古來)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며, 구한말(舊韓末) 우리의 상황 혹은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이 복잡하여 얽혀서 이와 같은 신선관(神仙觀)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3.2 신선의 능력

 

도전(道典)에는 심심치 않게 천조(天朝)’란 어휘가 보인다. 하늘에 있는 조정(朝廷)이란 의미이다. 이 표현은 갑골문과 태평경(太平經)등에 보이는 제정(帝廷)’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보인다. 즉 국가정부에 공무원 조직이 있듯이 하늘에도 공무원 조직이 있으며 그 최고봉에 상제(上帝)가 있다. 그렇다면 상제(上帝) 이하의 신()들은 모두 상제(上帝)의 명()을 받들어 행사를 하게 된다.

더욱이 증산(甑山) 상제(上帝)는 상제친림(親臨)의 상태이다. 신들이 어찌 그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증산의 기본적인 능력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는 매우 중요하다. 도전(道典)에 의하면, 모든 곳에 신()이 있다. 도전(道典)의 설명을 들어보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이니,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하시니라.

 

이 설명에 의하면 만사만물(萬事萬物)에 신이 있다. 그러므로 인체에도 수많은 신이 있으며 산천에도 신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신들은 기본적으로 천조(天朝)의 명을 받들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상제의 명()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신선(神仙)의 능력이란 이 귀신들을 움직이는 능력이다. 증산(甑山)은 상제(上帝)이기 때문에 어떠한 신선보다도 능력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상 도전(道典)에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짐에 귀신의 도움이 필요함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 중 한 설명을 들어보자.

 

말씀하시기를 산 사람이 일을 한다고 해도 신명이 들어야 쉽게 되느니라.”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는니라. 그 때 그 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

 

여기에서 신명은 신명(神明)’이다. 즉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신명이니 귀신(鬼神)을 지칭한다. 범사에 신명이 있으니 그의 도움이 있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설명이 보인다. 도전(道典)의 설명을 들어보자.

 

정미년에 하루는 호연이 사진이나 박을 줄 알면 내 사진이라도 박을 텐데, 왜 그런 재주가 없어요?”하고 투덜거리니,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다 이치가 있어야 하지, 모든 일이 이치 없이는 못하는 것이다.”하시니라.

 

이 말에 의하면, 세상의 일이 귀신의 도움이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나가 상제(上帝)의 의지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치 즉 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맥의 흐름이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이 이()는 상제(上帝)나 귀신(鬼神)이 만든 것이 아닌 그보다 선재하는 어떤 것인 듯하다.

그렇다면 신선의 능력도 이 이()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단지 이 이()가 허용하는 한에서는 상제와 귀신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신선(神仙)의 능력이다.

여기에서는 단지 증산((甑山) 상제(上帝)에 대해서는 논의하였으므로 그 능력은 광대하여 거의 무소불능으로 보일 것이다. 단지 도전(道典)에 보면 부적으로 신명(神明)을 불러 통신을 하게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도 신선(神仙)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 이후 그의 능려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능력은 그 신명의 능력에 비례할 것이다. 상제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즉 통신의 대상에 따라 능력의 광협고하가 결정될 것이다.

 

3.3 신선의 공능

 

신선은 사회에 어떤 공능(功能)을 가지는가? 우선 도전(道典)의 말을 들어보자.

 

하루는 여러 성도들을 앉혀 놓고 말씀하시기를 최수운이 성경신이 지극하기에 내가 천강서(天降書)를 내려 대도를 열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대도의 참 빛을 열지 못하므로 그 기운을 거두고 신미년에 직접 강세하였노라.”

 

그렇다면 여기에서 대도를 열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도전(道典)의 말을 들어보자.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로되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모여들어 상제님이 아니면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하시었다.

 

결국 천지를 바로잡는 공사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천지를 바로잡는 공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도전(道典)의 말을 들어보자.

증산 상제님은 후천개벽 시대을 맞아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인존시대(人尊時代)를 열어주신 통치자 하느님이시니라. 상제님께서 신축년 음력 77일에 성도하시고 조물로 하느님으로서 대우주 일가(一家)의 지상선경(仙境)을 여시기 위해 신명조화정부(神明造化政府)를 세우시니 선천 상극 세상의 일체 그릇됨을 개혁하시어 후천 오만년 선경세계를 건설하시고 억조창생의 지각문(知覺門)을 열러 주시어 불로장생의 지상낙원에서 영생케 하시니라. 이에 기유까지 9년동안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와 신명계(神明界)의 대개벽 공사를 행하시니라.

 

여기에서 여러 가지를 읽어 낼 수가 있다. 우선 증산에게 있어서, 신선(神仙)이란 천지를 세우는 공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우주를 다시 개벽하는 것이며 인간세계를 선경(仙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산중에 거하거나 하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의 뜻에 따라 세상에 나와 세상을 혁신시키는 공능이 있다. 비록 신명을 대표하지만 실상은 매우 입세적(入世的)이며 인간 생활에 매우 강한 관심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도전(道典)에 보면 상당히 많은 내용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와 신명계(神明界)의 대개벽을 이루어 5만 년간의 선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러한 우주를 바꾸는 큰 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 관심 그리고 사랑은 도전(道典)곳곳에 보인다. 그리고 더 나가 한민족 단군 후손들에 대한 사랑도 여러 곳에 보인다. 이것은 한민족이 가진 업보와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모든 신선이 증산과 같은 능력과 공능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신선은 세속을 떠나 초연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세속에 관심을 가지고 법술 등으로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천도와 인도에 근거하고 신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4. 증산도 신선 사상에 대한 평가

 

증산도 신선 사상에 대해 평가를 하기에 앞서 증산도 이전 재래 사상과의 대략적인 비교를 한 번 해 보자.

증산도와 단학(丹學) 도교와는 매우 다르다. 우선 성선(成仙)의 방법이 다르고 신선(神仙) 능력이 발생하는 이유도 다르며 사회적 공능도 다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한대(漢代) 도교인 태평경(太平經)과 비교해 보면, 매우 많은 유사한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상제하강(上帝下降)의 내용이나 이것도 크게는 통신(通神)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점 이외에 신선(神仙) 능력이 발생하는 이유와 능력의 범위에 대한 이론들은 태평경(太平經)과 거의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혁 더 나가 혁명하려는 의지 등도 태평경(太平經)과 별반 차이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증산도 신선 사상은 거칠게 보면 태평경(太平經)류의 신선 사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천주학과 잠시 비교를 해 보자. 왜냐하면 이마두 즉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천주학(天主學)을 참조하였기 때문이다. 다음 두 가지는 비교적 중요한 듯하다.

첫째, 증산 상제(上帝)와 예수를 비교하면 상제(上帝)가 곧 하느님이라면 증산 상제가 한 등급 위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왜냐하면 증산은 상제이고 예수는 상제의 명을 듣고 따르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하게는 삼위일체 등을 논해야 할 것이나 크게는 이럴 것이다. 그러나 증산 상제(上帝)가 성립하기 위해 혹은 해명하기 위해 매우 많은 이론적인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둘째, 상제(上帝)와 천주교 하느님을 비교해 보자. 필자가 보기로는 천주교 하느님의 이론적인 능력 범위가 더 크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주를 창조하고 항상 자유로우면 무소불지 무소불능한 방면, 상제는 신명들의 여론도 살펴야 하며, 상제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상제도 그것에 의거해야만 일을 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천지공사란 단순한 상제의 의지와 선택이 아닌 상제의 의지와 천지신명들의 동의나 의지에 의하고 이()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만일 기독교라면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앞의 인용문이 이에 대해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이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나의 도()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들 쏙 뽑아서 선()에 붙여 놓았느니라.

 

위 인용문에 의하면 증산도는 선도의 기초위에 유불과 천주교의 장점 혹은 정화를 취하여 만들어 놓은 신선도(新仙道)이다. 단지 필자가 도전(道典)을 거칠게나마 통독한 후 느낀 것은 구체적인 불교의 영향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유학 구체적으로는 주자학의 영향이 비교적 많고 사이사이 천주학의 영향이 보이는 듯하다. 이 이외 역학(易學)의 영향도 적지 않게 보인다.

사실상, 유도불합일 사상은 후기 도교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만일 중국 후기 도교와 비교한다면 유학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특징인 주자학과 비교한다면 영향력의 대소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유학의 민본 사상은 선말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였고 이()의 중요성은 당시 조선인에게 일종의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증산교의 신선관은 선말의 조선 상황에서 유불과 천주교 등을 종합하고 개선하여 창출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특징은 우주의 주재자는 상제(上帝)와 단군의 후손이라는 증산(甑山)의 말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어우러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결론

 

도전(道典)에 보면 원시반본(原始返本)’이란 어휘가 자주 등장한다.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보기에, 증사교의 여러 사상들을 연구하면 그 연원(淵源)이 있고 줄기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연원과 줄기를 조금 멀리까지 살펴보면, 태평경(太平經)류의 사고와 유불의 사고 그리고 천주교의 사고 등이 있을 것이고 좀 더 가까이 살펴보면 주자학과 상수역학 그리고 김일부의 역학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다시 원시반본(原始返本)’을 해 본다면 민족 고유의 사상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을 것이다. 만일 민족 고유의 사고에 이런 사유가 없었다면 증산교는 성립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하였듯이, 태평경(太平經)이 아니라 태평경(太平經)류의 사고는 상대(商代)의 갑골문에 널리 보이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도 보인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도전(道典)에서 자주 언급하는 신도(神道)’ 문화이다. 이 신도 문화는 필자가 보기에 증산학의 핵심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신선관을 포함한 여타의 모든 것은 이 신도 문화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라고 보여진다.

도전(道典)을 잠시 읽어 보자.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로서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이 이야기는 태평경(太平經)류의 사고는 우리 조선의 고유한 사고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잘 지키는 민족이기에 이 땅에 강세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는 결국 신도(神道)’를 지칭할 것이다. 즉 고유의 사고가 시기가 되자 증산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요소의 결합으로 새로운 선경(仙境)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상제가 친히 강세한 것이다. 이처럼 인류와 신명을 구원하기 위해 신도를 행하는 사람을 증산교에서는 신선(神仙) 즉 선인(仙人)이라 하는 것이다.

신선 혹 선인은 단순한 예언가도 아니고 신통력을 가진 대인물도 아니다. 예언도 하고 신통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병든 천지를 개벽하여 조화선경(造化仙境)을 만드는 주역이다. 즉 어떤 의미로 인간과 신명들에게 새로운 운명과 생명을 부여하는 창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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