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우주의 주재자 상제

문계석(상생문화연구소)

2023.04.03 | 조회 3165

2021년가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우주의 주재자主宰者 상제上帝

 

문계석(상생문화연구소)

 

목차

1. 들어가기

2. 서양의 상제관上帝觀

1) 서양의 창조관創造觀

2) 동양의 주재관主宰觀

3) 창조관과 주재관을 통일한 증산도의 상제관

3. 상제님은 우주의 주재자主宰者

1) 이법의 주재자

2) 삼계를 다스리는 증산상제님의 대권大權

3) 증산상제님은 개벽장開闢長 하느님

4. 맺음말

 

 

1. 들어가기

 

우리가 광활한 천체우주를 조밀하게 관망할 때 항상 느끼는 것은 신비로움과 벅찬 경이로움이다. 그것은 뭇 생명이 끊임없는 창조와 조화로운 변화에서 비롯한다. 소위 학문의 주된 과업은 창조와 변화의 법칙을 구명究明하는 것이다. 학문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은 무엇보다도 창조와 변화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다. 이 작업을 철학에서는 존재론적 탐구라고 한다. 왜냐하면 존재 근거가 없다면 현실적인 창조 변화의 법칙이 구현된다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탐구에서 인간의 원형정신原形精神은 근원의 존재를 물리적인 극정신적인 극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정신적인 극의 관점에서 본다면, 만유의 존재근거는 바로 으로 본다.

은 원초적인 본유관념本有觀念이다. 본유관념으로 인해 인간은 우주자연의 장엄함과 숭고함이 의 연출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고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한결같이 천체天體가 신성하고, 신성한 것이 자연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것,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란 신들과 유사하며 신의 화현化現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창조 변화는 의 영명靈明한 작용의 결과로 드러난 것이고, 이로부터 우리는 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만물에 대한 진리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주만물의 창조변화를 구현하는 주체는 이고, ‘은 음양陰陽 짝으로 분석할 수 있다. 증산도에서는 원신元神주신主神으로 구분한다. ‘원신은 창조변화에 역사하는 근원의 바탕으로 본체신本體神이고, ‘주신은 창조된 현상계를 주관하여 변화의 질서를 잡아가는 주재신主宰神이다. 특히 주신은 인간과 같은 품격을 가진, 즉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人格的 존재를 함축한다. 따라서 천지우주는 원신주신의 역동적인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신성한 장이라 할 수 있다.

종교문화의 자궁으로 들어가 보면, 현실적인 문명사에서 활동하는 들의 근원은 일신一神이다. 왜냐하면 근원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통에서 볼 때, 서양문화권에서 일신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절대적인 신(The God)’을 지칭하고, 동양 문화권에서는 천상의 임금님으로 상제上帝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통상 서양 종교문화의 특징은 창조관이 중심이고, 유일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전적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동양 종교문화의 특징은 주재관이 중심이고, 천상의 상제님이 우주만물의 변화질서를 주관하여 주재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종교문화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로서 완전한 하나님이 독존獨存하심을 전제한다. 이 하나님은 태초太初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로부터’ ‘·을 비롯하여 우주만물을 말씀(logos)’으로 창조하셨다. 창조 이후 하나님은 피조된 세계를 초월해 있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완전성을 본성으로 하는 하나님은 ·에 종속하는 불완전한 세계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관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하나님은 주재관이 미약하다.

반면에 동양의 종교문화에서는 세계에 내재하여 우주만물의 변화질서에 관여하는 최고의 주재자가 실재함을 전제한다. 최고의 주재자로서 상제上帝는 우주만물과 신들을 주관하여 다스린다. 그런데 고대에 절대적이었던 상제의 주재권능이 후대에 이르면서 퇴색하게 되고, 급기야 상제의 존재성마저 몰락의 위기에 접어든다. 왜냐하면 주재성의 주체가 근원의 이법理法으로 대치代置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대의 동양 문화권에서 근원의 이법이 창조관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지만, 상제의 주재성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이 논문의 목적은 창조관주재관의 관점에서 동·서양의 신론을 검토하고, 양자를 종합 통일할 수 있는 신관이 증산도의 상제관에 있음을 모색摸索하는 데에 있다. 그 논의 과정을 소개하면, 필자는 먼저 서양 종교문화의 근거가 되는 창조관과 동양 종교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주재관을 소략하고, ‘창조관주재관을 종합 통일하는 주체가 증산도의 상제관임을 개괄적으로 밝혀볼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창조성과 주재성의 주체가 되는 지존무상한 상제님이 삼계대권三界大權으로써 우주만물을 주재하여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개벽장開闢長 하느님임을 소략해볼 것이다.


2. 서양의 상제관上帝觀

 

1) 서양의 창조관創造觀

 

서양 종교문화에서 제시하는 창조관은 기독교의 신관이 독보적이다. 기독교의 유일신唯一神은 태초太初에 아무 것도 없는 에서 우주만물을 말씀(logos)’으로 창조한 창조주이다. 창조주로서의 유일신은 전지全知하고 전능全能하고 무한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완전한 인격자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 유일신은 전능한 존재로서 우주만물을 창조했고, 전지한 존재로서 피조된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을 구제해줄 수 있고, 감각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로서 피조된 세계를 초월해 있다는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의미의 유일신신앙관은 오래 전에 형성되어온 신관이고, 오늘날 상당히 체계성을 가진 종교로서 서구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창조주로서의 유일신은 어떻게 태동하여 서양 종교문화에 자리 잡게 되었는가? ‘유일신의 신앙은 히브리인(Hebrew)의 하나님에서 기원한다. 성서에 의하면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Abraham)을 우르(Ur)에서 가나안(Canaan) 땅으로 이끌었다. 가나안에는 이미 페니키아닌, 블레셋인(Palestine), 히타이트인 등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강력한 신을 꼽으라면, “‘(El)’, ‘바알(Baal)’, ‘야훼(Yahweh)’”이다. ‘은 신과 인간의 아버지, 혹은 시간의 아버지란 뜻이지만, 셈족 언어로는 신들 중의 으뜸가는 신을 의미하며, 후에는 자신의 민족을 염려하며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신이었고, ‘바알은 원래 폭풍과 비의 신으로 다신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며, 가나안 지역에서 널리 숭배되었던 신이었다. 그리고 야훼는 하늘의 신, 부족신이었고, 후에 전쟁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기원전 13세기경의 출애급 이후 모세(Moses)는 시나이(Sinai) 반도에서 야훼로부터 받은 십계명十誡命을 통해 히브리인의 종교공동체를 결성하게 된다. 싱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것은 유일신숭배이다. “너의 하나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원래 야훼라는 부족신部族神은 블레셋인의 다곤(Dagon)’과 싸우는 전쟁의 신이었고, 인간처럼 질투하고 시기하며 또 은총을 베풀기도 하는 인격신이었다. 가나안으로 들어온 히브리인들은 일찍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강하고 힘센 하늘의 신, ‘야훼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막한 사막을 배경으로 처한 악조건의 자연환경과 타민족의 압박 및 탄압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6~7세기경부터 히브리의 예언가들은 야훼가 히브리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유일신이라고 가르친다. “이스라엘이여 들어라.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은 한 분이시다. 그대의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유일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The Creator)”이며 역사와 인류의 심판자라고 끈질기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 창조주라는 말은 슈메르(Sumer)나 바빌론(Babylon) 등지의 고대 근동지방에서 태동한 우주창조관이다. 이러한 사상이 기원전 6~7세기경 바빌론 포로기와 페르시아(Persia) 통치기간에 유대지방으로 들어갔고, 이 시기에 우주창조의 기원에 대한 바빌론 신화를 처음으로 접한 예언자집단은 야훼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초보적인 안목을 갖게 된다. 이로부터 자신들이 고백했던 출애굽기의 야훼 하나님이야말로 우주만물을 창조한 초자연적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전에는 부족의 조상신에 지나지 않았던 야훼가 세계를 창조한 주권자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됨으로써 유일신이 창조주로 승격되었던 것이다.

창조주 유일신 사상을 전제로 해서 기독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단언적으로 선언한다. 유일신이 빛이 있으라말하면 그것이 생겨나고, ‘하늘, , 태양, , 별들이 있으라고 말하면, 그것들이 창조되어 질서 있게 운행하고, ‘생명들이 있으라하면 온갖 종류의 동식물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일신 하나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시점에서 우주만물을 말씀(logos)”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절대자 유일신의 창조는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의미한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두 가지가 결정적이다. 하나는 천지만물의 창조 이전에 혼돈(chaos)’이나 무질서한 질료(hyle)” 같은 것이 있어서 창조주 유일신이 여기에다 형상(eidos)’을 부여함으로써 질서를 가진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 이전의 존재를 전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일신은 천지만물을 최초로 창조했다는 창조주라는 주장에 논리적으로 모순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창조주 유일신은 태초에 오직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무 것도 없는 에서 시간 공간 및 천지만물을 말씀(logos)”으로써 창조를 감행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천지창조 이전에는 공허혼돈과 같은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창조주 유일신은 변화에 대응하는 시간時間과 존재에 대응하는 공간時空조차도 창조했음을 함축한다. 이는 창조주 유일신이 피조된 세계에 들어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시간과 공간에 종속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에서 명백히 함축하고 있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넘나들 수 없는 단절된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주 유일신이 자체로 영원불변하며 완전한 존재라면, 이는 시간·공간을 초월超越해 있어야함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만일 완전한 하나님은, 피조된 시·공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한정성과 변화성에 종속하게 되고, 결국 무한성과 영원성이 파괴되어 완전한 존재라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피조된 우주만물은 시·공에 종속하기 때문에 모두가 잠시의 정지도 없이 변화하여 생멸生滅하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지만, 완전한 유일신은 시공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생멸의 고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존재하는 창조주 유일신은 태초의 창조 이후 피조된 우주만물의 계속적인 생성변화에 직접 관여할 수 없다. 이는 창조주 유일신이 절대적인 존재이더라도 시·공 안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창조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주재할 수 없음을 함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기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끌어들여 태초에 창조가 일어난 이후에도 창조주 유일신이 지속적으로 피조된 우주만물에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즉 창조주 유일신은 영원으로부터 창조했기 때문에, 피조된 우주만물은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개별적인 사물의 형상이 계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초월해 있는 창조주의 문제가 무리 없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유일신은 시공에 종속하는 인간 및 세상을 어떻게 구원救援할 수 있는가의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창조주 유일신은 인격적 존재에 대한 구세신앙이다. 이는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유일신이 유한적인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고, ‘시공안으로 들어와 인간의 내면적인 삶에 침투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관여해야만 함을 함축한다. 이로부터 인간에 대한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한 창조주 유일신 하나님은 피조된 현실세계에 직접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유일신 하나님은 구세救世의 사역을 담당할 자를 세상에 보내야만 했다. 이분이 바로 구세주(Kristos)’이다. 그럼에도 현실세계로 들어온 구세주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격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구세주는 하나님의 말씀(logos)”의 화신化身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 이미 말씀 있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니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화신은 유일신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대리자요, 심부름꾼이며, 2의 신으로 아들이라는 것이다. 신의 아들인 말씀의 화신은 세계의 대사제이고, 고통을 겪는 인류를 구원하여 밝고 영원한 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구세주이다.

구세주는 진정 누구인가의 문제가 있다. 예수(Jesus)가 탄생한 이후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3세기 동안 예수가 말씀의 화신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을 계속하게 된다. 그 논쟁은 아리우스(Arius) 교단과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교단의 투쟁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결국 그리스도교회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여 인간에게 믿음을 일으켜 은혜를 주어 구원받을 수 있는 성령聖靈을 끊임없이 가르친다.

로마시대로 접어들자 그리스도교회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진정한 실체가 하나이고, 위격에 있어서 셋이다(Una substantia tres personae)’는 사상을 끌어들인다. 이로부터 정립된 것이 소위 삼위의 하나님으로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이다. ‘삼위일체세 분의 하나님이 각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위격에 있어서 세 분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세 위격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聖父], 구세주 아들 하나님[聖子], 피조물에 깃들어 있는 영적인 하나님[聖靈]이다.

그러므로 서구의 기독교문화권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의 실체로 태초에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다. “전능한 하나님이 말하기를,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지금도 존재하고, 전에도 영원히 존재해 왔고, 장차 오시게 될 존재이다.”. “‘아버지 하느님의 천명天命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사역한 아들(성자) 예수는 아버지가 여시는 하느님의 왕국(the Kingdom of God)’을 선포하였다. 이는 모두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임을 함축한다.

 

 

2) 동양의 주재관主宰觀

 

태고적 동북아 지역에서 발생한 역사문화의 근원을 찾아 추적하다 보면, 의식이 싹이 트기 시작한 시원始原의 인간은 원초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공포감恐怖感과 경외감敬畏感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형성된 관념은 바로 범신汎神에 대한 원시적 본유관념本有觀念이다. 범신에 대한 신앙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주관하는 존재가 바로 이라는 믿음에서 출범한다. 그런데 원시 공동사회가 형성되면서 범신에 대한 믿음은 공동체적 삶의 질서秩序와 공생共生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점차 유일신唯一神에 대한 숭배의식이 도입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공동사회의 질서를 관리하는 최고의 지배자는 곧 범신을 주재하여 다스리는 유일신에 대응하는 존재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때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태고적에 원시 공동체사회가 국가단위의 사회에로 진입하면서 인간의 의식은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하늘[]’에 대한 관념을 도입하게 된다. 물론 이때의 하늘은 두려움과 경외심으로부터 형성된 본유관념이지만, ‘지극히 높고 보다 더 큰 것이 없는[至高無上]’ 최고의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원시 공동체 사회가 국가단위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통치자는 국가단위의 조직과 질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하늘을 최상의 존재로 숭배하기에 이른다. 이는 질서 잡힌 국가단위의 사회를 이룩한 통치자가 우주자연을 관할하여 다스리는 최고의 주재권主宰權하늘에 두게 되었음을 함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현실적으로 무한한 허공과 같은 자연적인 하늘[自然之天]’이기도 하지만 주재지천主宰之天이기도 하다. 동양의 오래된 경전,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은 곧 주재지천主宰之天임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주재란 말은 만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는 주재의 주체가 되는 으뜸이 되는 지고至高한 인격적 존재임을 함축한다. 왜냐하면 위격位格에 있어서 우주의 운행 및 자연현상의 모든 만물을 총괄하여 두루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을 가진 인격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주만물을 맡아서 주관하는 주재지천과 범신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유일신관념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서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결합된 천신天神의 관념이다. 이로부터 국가단위의 사회를 이룬 당시의 통치자는 천신을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종교문화를 형성하게 됐던 것이다.

천신의 주신主神은 누구인가? 하늘의 주신은 바로 으뜸이 되는 신(The High God)’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가치의 측면으로 보나 주재의 측면으로 보나 이보다 더 근원적이고 더 높은 호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으뜸이 되는 신상제上帝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상제에서 천상의’, ‘하늘의란 뜻으로 최고로 높은 곳을 말하고, ‘하느님혹은 으뜸이 되는 임금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배옥영은 해와 달, , 그리고 구름이나 바람 또는 우레와 같은 여러 신들은 상제인 하늘 다음으로 배향되었던 차신(次神)으로서상제의 존재는 고대 원시신앙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절대적인 지존의 인격신으로 인식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천신의 정명正名상제천上帝天이다. ‘상제천천상의 하느님혹은 하늘 임금님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상제가 계시는 자리로서 상제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는 것이고, ‘상제천상天上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위 상자를 붙여 상제님으로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상제천은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을 관할하여 다스리는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주재자主宰者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상제上帝는 으뜸이 되는 천상의 하느님이고, ‘주재主宰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통치자를 지칭한다.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면, 갑골문자甲骨文字나 동양의 시경, 서경에 등장하는 상제천주재자를 일컫는 오래된 명칭으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이는 상제천이 상벌을 주관하며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는 인격적 주재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경에서 상제가 하나라 걸 왕의 잘못을 책하고 상나라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밝게 했다는 내용, ‘상제가 주나라의 문왕에게 상제의 법을 따르도록 종용하는 내용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주재자 상제천은 형성화시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숭경과 제의의 신앙적 대상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식의 진화와 문명화가 발전하면서 상제천은 내적인 의미의 분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는 상제천에서 상제의 의지意志가 떨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부터 상제의 위격은 하늘[]과 동격의 의미로 간주되지만, 자연현상과 인간 만사의 길흉화복 등 만사를 주재하는 상제천의 의지는 곧 천도天道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유가의 효시라 불리는 공자孔子상제천을 아직 견지堅持하고 있었지만, “오직 요()만이 하늘을 본받았다고 말한 것은 이를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요가 본받은 하늘은 직접적으로 천도를 가리키는데, ‘천도는 곧 만물의 주재 원리인 상제천의 의지를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제천의 의지를 대신하는 천도가 국가를 다스리는 주권자의 정치권력이 신권臣權과 관련을 맺으면서 상제천은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로부터 생겨난 관념이 제천사상祭天思想이다. “제천은 하늘에 대한 존엄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신의 의지를 계승하는 의식으로써 그 존재인 천()을 통하여 백성들에 대한 지배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통치자들은 상제천의 의지를 계승하는 제천의식을 통해 백성들에 대한 지배와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확립하여 하였던 것이다.”

적어도 공자孔子까지만 하더라도 하늘은 단순한 자연적인 하늘[自然之天]이 아니라 모든 도덕질서의 표상으로서 인간에게 덕성을 부여하고,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상제천의 관념이었다. 그러나 공자 이후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를 거치면서 지극히 높고, 보다 더 존귀한 것이 없는 상제개념은 퇴색일로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오히려 의 관념이 확대되면서 천도는 다양한 관점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송대宋代에 이르자 상제천에서 상제란 관념이 떨어져 나가고 하늘[]은 단순히 자연적인 하늘[自然之天]로 전락하게 되고, ‘천도의 개념이 문명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한마디로 지고지순한 최고의 하늘은 천도天道로 이해되기에 이른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주자朱子를 꼽을 수 있다.

주자는 자연으로서의 천관天觀을 궁극의 또는 태극太極로 보고, 만물의 화생을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도로 설명한다. “하늘은 음양오행으로써 만물을 화생한다는 주장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자는 태극이란 아무런 형체가 없지만, 자체로 동정動靜이 있어 음양陰陽두 기운[二氣]’를 생하고, 음양의 기운이 서로 원기 왕성하게 교감하여 오행五行, ····의 기운을 생성하고, 오행에 따라 우주만물이 생성변화한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하늘은 창조이법으로 취급되어 최고의 주재자로서의 상제천의 관념은 문명사에서 사라지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상제천천주天主의 관념으로 동방에서 다시 역사의 문전에 나타나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서구의 기독교가 동양 문화권으로 유입되면서 부터다. ‘천주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중국 명으로 이마두利瑪竇가 가톨릭(Catholic)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Deus)을 번역한 이름이다. 그는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천주상제는 같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내 나라의 천주는 즉 중국말로 상제이다 내 천주는 옛 경전에서 상제라 호칭한다.”. “천주께서는 인간과 만물을 주재하시니 오직 그 뜻이 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고 함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즉 가톨릭에서 말하는 천주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중용中庸등의 옛 경서에서 말하는 상제와 같지만 이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천주교天主敎가 한국에 유입되자 한국의 실학자들도 천주가 곧 상제천임을 주장한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천주는 유가에서 말하는 상제이다라고 했고, 이에 대해서 이항노(李恒老, 1792~1868)는 상제를 천지를 맡아 다스림을 일컬어 제라 하고, 만물을 맡아 다스림을 일컬어 신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규정을 내린다. 다신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천관은 인격적 주재자를 강조하여 상제라고 부른다. “주재하는 천이 상제이다. 그것을 천이라고 부르는 데는 나라의 군주를 나라님이라고 부르는 점과 같다.”는 주장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주재의지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정약용에게서 천이란 어떤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서 정약용은 천의 존재가 신령하고 밝다는 것을 형체를 초월한 존재임을 의미하며 동시에 지각이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제의 조화에 의한 만물의 주재는 절대적인 힘을 보이는 것이어서 어떤 것도 잠시라도 그것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주재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사실은 곧 상제천의 부활을 의미한다.

주재자로서의 상제천은 동학東學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상제천주를 동일한 인격적 주재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천주의 주재성에 관하여 상고로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이 서로 갈아들고, 네 계절이 성과 쇠에 의하여 바뀌는 것이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 역시 한울님 조화의 흔적이 천하에 밝게 나타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천상의 상제로부터 직접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천상문답天上問答사건이다. 천상의 상제님은 최수운에게 두려워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고 반문하고, 그런 후에 본주문本呪文을 내린다. 본주문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13자로 일명 시천주주문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시천주란 천주를 극진히 모신다는 뜻이다. 천주는 바로 하늘의 원 주인으로 주재자 상제를 일컫는다.

 

3) 창조관과 주재관을 통일한 증산도의 상제관上帝觀

 

서양의 종교문화를 이끌어온 유일신 하느님의 창조관과 천상의 상제님이 우주만물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주재관은 어떻게 종합 통일될 수 있는가? 이는 증산도의 신관神觀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우주자연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됐는가를 보자. 서양의 창조관이 제시하는 것처럼, 우주만물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창조주 유일신唯一神이 있어서 그 의지에 따라 말씀Logos”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현대의 과학자 호킹(S. Hocking, 1942~2018)이 제시하듯이, ‘무한우주에는 창조주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대과학의 우주론에서 대폭발설(big bang theory)”이 제시하듯이, 우주는 스스로 열린 것이다. 한마디로 우주는 개벽우주開闢宇宙라는 것이다.

개벽우주에 대해서 증산도는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온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오니라.”고 규정한다.

태초太初에는 아무 것도 없는 암흑뿐인 카오스(chaos) 상태였다. 여기에서 태시太始문득대광명의 우주가 처음 열린 것이다. 시원개벽으로 원시 우주의 대광명이 출현한 것이다. 대광명은 현대 과학의 용어로 말하면, ·공 조차도 없는 엄청난 밀도를 지닌 우주알(cosmic egg)”, 인플라톤(Inplaton)”이 급팽창하면서 발생한 원시우주의 탄생이다. 이 상황을 환단고기광대한 빔에 광명이 있으니 이것이 신의 형상이요, 광대한 기가 장존하니 이것이 신의 조화라고 기술한다. 여기에서 대광명은 창조의 근원이고, ‘광대한 기천지간에 가득한 창조의 바탕이다. 그래서 우주의 대광명은 모든 창조변화의 발원지가 되는 영원한 생명과 빛의 본원으로 볼 수 있고, 이로부터 신과 기의 조화로 천지만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광명은 학술적인 용어로 말하면 바로 일신(一神, One spirit)’이다. ‘일신은 자체로 어떤 고정된 특성이나 형체가 없는 근원으로 조화신성造化神聖이다. ‘조화신성은 논리적으로 기능성의 관점에서 창조성주재성으로 분석된다. ‘창조성은 현실적인 우주만물의 창조 근원이고, ‘주재성은 질서를 잡아가는 다스림의 근원이다. ‘창조성주재성은 음양陰陽 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볼 때, ‘일태극一太極을 정적인 측면의 음과 동적인 측면의 양으로 분석하는 이치와 같다. 증산도에서는 조화신성창조성의 측면에서 원신(元神, Primordial God)’으로, ‘주재성을 양의 측면에서 주신(主神, Sovereign Ruller of Universe)’으로 말한다.

원신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일신으로 우주를 관통해 있는 창조의 본체신本體神이다. 그런데 본체신으로서의 원신은 현상계의 작용으로 보면 세 손길로 드러나기 때문에 삼신三神으로 말한다. 여기에서 삼신은 각기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신이 현상계의 실제적인 창조 작용에 있어서 세 손길의 추동력으로 작용함을 뜻한다. 한마디로 일신즉삼신一神卽三神이다. 이를 삼신오제본기삼신일체三神一體라고 기술한다. 여기에서 한몸[一體]’은 창조의 근원으로 일신이고, ‘삼신은 현상계에서 세 신성이 작용하여 우주만물을 뽑아내는 신성이다.

세 신성으로 작용하는 삼신은 구체적으로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신성으로 분석된다. 신교문화에서 볼 때 조화의 신성은 대덕大德으로써 우주만물의 창조를 주장主掌하는 신이고, ‘교화의 신성은 대혜大慧로써 그것들을 육성하고 가르침을 주장하는 신이고, ‘치화의 신성은 대력大力으로써 그것들이 온전하게 성숙할 수 있도록 질서 있는 조율을 주장하는 신이다. 따라서 우주만물의 끊임없는 창조변화는 삼신의 손길이 매 순간 작동하여 그 존재목적을 향해 지속적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이다. 달리 말하면 하늘이든, 땅이든, 사람이든, 무수하게 많은 동식물이든, 심지어 풀잎하나 모래알하나이든, 우주안의 모든 것에는 삼신이 깃들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볼 때 창조주로서의 신은 세계를 떠나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 내재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원신의 짝은 주신이다.주신은 의지를 가지고 일정한 영역의 질서를 잡아가는 신으로 주체主體가 되는 신이다. ‘주신은 주로 인간의 감정과 의지를 가지기 때문에 인격신人格神이다. 왜냐하면 개벽으로 열린 우주에는 삼신의 작용으로 인간들이 화육됨으로써 천지간에 인격 신명들이 등장하게 되고, 점차 각양각색의 무수한 인격신명들을 관할하여 질서를 잡아가는 주신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시대 이후 인류는 문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각 지역별로 혼란된 문화의 질서를 바로 잡으면서 통치 질서를 세우기 시작했다. 즉 문명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 등장하여 여러 종족을 하나로 통일하여 국가를 이루면서 최고의 통치자로 군림하듯이, 신의 세계에도 점차 지상신至上神의 관념이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화가 확대되면서 등장한 많은 인격신명들은 천상계, 지하계, 인간계에서 품계에 따라 주재활동을 하게 됐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상 신명계에는 한 나라를 다스렸던 제왕신도 있고, 각 민족의 창세기 하느님 노릇을 하고 있는 지방신도 있다. 지방신은 일정한 영역을 다스리는 주신이다. 바빌론의 주신은 마르둑(셈족 언어로는 바알Baal) 으로 비와 천둥, 풍요의 신으로 농업을 주관한다. 가나안 땅의 신들 가운데 주신은 신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뜻의 엘(El), 유대민족이 하느님으로 모시는 여호아(Yahweh)는 중동 지방에서 일어난 그 지방의 인격신이며, 일본민족이 하느님으로 모시는 천조대신은 일본의 지방신이다. 중국 한족漢族의 지방신은 반고이고, 동방 한민족의 지방신은 단군왕검이 지방신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상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명세계에도 통일된 신국을 형성하면서 여러 인격신들이 모여 한 분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잡혀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세계에는 인도문명이 자리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로 신명세계도 문명의 차원을 열어가면서 문명신들이 나오게 되고, 이로부터 천상에는 질서를 잡아가는 주신들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상에 국가 단위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그 질서를 잡아 통치하는 임금이 있듯이, 신명세계에도 각 민족의 지방신과 과거의 성자 및 원시의 신성들을 총체적으로 관할하여 주재하는 최고의 주신이 실재하게 된 것이다. ‘최고의 주신은 인격신들 가운데 도격道格과 위격位格에 있어서 지극히 존귀하고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至尊無上]’, 그래서 천상의 유일무이唯一無二일신一神이다.

천상의 일신은 어떻게 해서 최고의 주신이 되어 우주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되는가? 이에 대해서 이맥李陌천상계에 문득 삼신이 계셨으니 이분은 곧 한 분 상제님이시다. 주체는 일신이나 각각의 신이 때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으로만 삼신이다고 말한다. 즉 주체로서 일신은 주신들 중의 최고의 주재자로 상제님이다. 상제님은 창조 근원인 원신(삼신)과 한 몸이 되어 우주만물을 주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한민족의 정통사서 환단고기에서는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로 말하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삼신상제三神上帝’, 더 줄여 말하면 상제님이시다.

삼신상제님은 삼신과 하나 된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은 조물주 삼신자체가 스스로 하나의 인격체로 온전하게 화현化現하여 실재하는 주재자이다. 달리 말하면 무형의 삼신과 일체가 되어 온전한 인격체로 드러낸 신이 바로 삼신즉일상제三神卽一上帝이다. 이 한분 상제님은 삼신의 조화권능을 온전히 발휘하기 때문에 지존至尊의 신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삼신상제님은 위격에 있어서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 “천하에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는, 지존무상한 하느님으로 하늘, , 인간사에서 활동하는 모든 신들을 관할하여 다스리신다.

삼신상제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유형의 실제적인 조화주 하나님이시다. 조화주 하나님은 유가에서 말하는 우주를 주재하여 통치하시는 상제님이요, 서양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도를 주재하고 계신 아버지 하느님이다. 이는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신 그 하느님이시다. 조화주 하느님이신 삼신상제님은 후천 가을 우주의 개벽시대에 가을 천지의 인존人尊 하느님으로 화신하시어 가을개벽을 주재하신다.

 

3. 상제님은 우주의 주재자主宰者

 

1) 이법의 주재자

 

동양의 사유에서 형이상학적 진리의 보고寶庫는 통상 주나라 시대에 정리된 으로 알려져 있다. “생겨나고 생겨나는 것을 역이라고 한다.”고 하였듯이, ‘은 존재가 시간계열 속에서 나타나는 생성生成을 함축한다. 생성의 역은 그 자체가 변화變化를 의미한다. 변화는 크게 실체實體의 변화와 형질形質의 변화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본질本質이 바뀌는 경우이고, 후자는 속성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철학의 전통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도, 즉 음양陰陽의 교체交替에 따른 로 규정한다. 따라서 역의 근본 문제는 음양의 교체에 따른 변화의 도[變化之道]’라고 축약縮約할 수 있다. ‘변화의 도, 무형의 것이든 유형의 것이든, 한마디로 우주만물이 걸어가는 이치理致[]’이다.

그러한 변화의 도는 어디에서 출원하는가? 중국 한나라 때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0?~ 120?)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다.”고 했고, 반면에 한민족의 정통 역사 경전 환단고기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출원한다.”고 했다. 아무튼 변화의 는 자체로 아무런 형체도 없고 명확히 규정된 인식도 없지만, 거시세계이든 미시세계이든 일체의 것들이 출원하는 소이연所以然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도는 모든 창조변화를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다. 달리 말하면 변화의 도는 전체로서 전일全一하다. 전일하기 때문에 전체는 부분을 수용하고, 부분은 전체를 반영한다. 따라서 변화의 도를 벗어나 있는 것은 천지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주자연에서 변화의 도는 공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의 네 단계의 이법으로 분석된다. ‘장의 순환이법은 현상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명의 창조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 이법은 우주만물이 창조되어 생겨나는 탄생이다. 요컨대 농부가 콩 씨를 뿌리면 콩이 나오고, 볍씨를 뿌리면 벼가 생겨난다. ‘의 이법은 낳은 것들이 분열하여 커가는 성장이다. 요컨대 싹이 튼 콩은 여러 줄기로 분열하여 성장한다. ‘의 이법은 분열 성장한 것들이 열매를 맺어 수렴 통일한다. 요컨대 콩이나 벼가 성장의 극점에 이르면서 꽃이 피고 씨가 여물면 농부는 이들을 결실하게 된다. ‘의 이법은 다음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저장이다.

그러므로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우주만물은 저장된 것에서 끊임없니 생겨나고[]’, 생겨난 것은 분열성장하고[], 성장한 것은 결실하여 매듭이 지어지고[], 결실된 것은 다음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해 휴장[]하는 과정으로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이법은, 거시적인 것이든 미시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우주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에게 전적으로 적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법칙이다. 이와 같이 네 단계로 순환하는 변화의 도는 통상 생···로 표현되고, 불가에서는 성···으로 말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로 언급된다.

문제는 우주를 관장하는 주재자主宰者 없이도 우주만물이 의 순환이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진행되느냐이다. 이에 대해서 서구 계몽주의 사조思潮를 지배했던 이신론理神論(Deism)”을 거론해볼 수 있다. ‘이신론에 의하면, 완전한 유일신 하느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한 뒤로는 초연한 입장으로 물러나서 현실세계의 창조변화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우주만물이 자연의 창조이법에 따라 저절로 운행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세계의 창조변화가, 마치 시계제작자(watchmaker)’가 만들어 놓은 시계처럼 기계적으로 돌아가듯이, 자연의 이법에 따라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맹점盲點이 숨어 있다. 만일 시계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이는 시계제작자가 현실세계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시계가 이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 순환이법에 따라 우주만물이 끊임없이 창조 변화할 수 있도록 주재하여 주관하는 주체主體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이에 대해서 성리학性理學의 거장巨匠 주자朱子사람들은 다만 주재主宰라는 말로써 천제天帝를 설명하려 하면서 형상이 없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통치자 하느님 제()는 우주의 창조원리인 리()를 맡아 다스리시는 분이라, 이 주재 자리가 세상에서 이르는 옥황대제(玉皇大帝)와 같나니 배우는 자 모두 능히 답할 수 없도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는 우주만물의 창조변화정신을 주재하는 주재처가 있고, 여기에 계시면서 우주만물이 의 이법에 이탈되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도록 마름질하여 주재하는 우주의 원 주인主人이 실재한다. 그 원 주인은 바로 하늘 임금[天帝]’이다.

하늘 임금은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하늘의 주재 처에 거주하면서 창조변화의 이법을 맡아 다스리는 최고의 우주 주재자이다. ‘하늘 임금을 한민족 전통의 신교神敎 문화권에서는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왔고, 한민족의 역사 혼은 담은 역사경전에서는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라 호칭했다. 삼신상제님은 커다란 힌 보좌에 인간으로 모습으로 앉아 계신 인격적 하느님(The God)’이다. 동학東學에서는 이분을 무극대도無極大道로써 조화선경시대를 여시는 천주天主, 또는 상제로 말한다. 새로운 개벽세상을 열기 위해 인간으로 화신化身천주를 증산도에서는 증산상제甑山上帝님으로 호칭한다.

증산상제님은 우주만물을 주재하여 다스리는, 지고지순한 우주의 통치자이다. 우주의 통치자 증산상제님은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니라. 해와 달이 나의 명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고 선언한다. ‘의 순환이법을 써서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증산상제님의 주재방식은 무위이화無爲以化이다. 이는 신도神道로써 다스림을 함축한다. “신도(神道)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라. 신도로써 만사와 만물을 다스리면 신묘(神妙)한 공을 이루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니라.”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증산상제님은 우주만물의 주재자로 천지의 원 주인이다. 즉 천지의 원 주인은 천지天地로 몸을 삼고 일월日月로 눈을 삼아 우주의 삼라만상을 주재하여 통치한다. 이는 다음의 성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한 성도가 여쭈기를 해가 선생님의 명을 받고 멈췄다가 또 명을 기다려서 가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를 보고 너희들의 신심信心을 돈독히 하라. 해와 달이 나의 명에 의하여 운행하느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다시 여쭈기를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닙니까?’ 하니 이치가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이치이니, 그러므로 나는 사를 쓰지 못하노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하시고 나는 천지天地로 몸을 삼고 일월日月로 눈을 삼느니라.’ 하시니라

 

2) 삼계三界를 다스리는 증산상제님의 대권大權

 

증산상제님은 나는 천하에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느니라.”고 하였듯이, 위격位格에 있어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하느님이시다. 증산상제님은 또한 근원의 삼신과 일체가 되는 상제[三神一體上帝]’이기 때문에, 서구에서 말하는 절대 권능을 가진 유일신 하느님이다. 따라서 증산상제님은 본래 신들이 거주하는 천상의 보좌에서 하늘의 조정 대신들을 거느리고 우주 삼계三界의 정사를 섭리하는 인격적 천주天主, 즉 우주만물을 주관하여 주재하시는 지존무상至尊無上한 우주 통치자이시다.

증산상제님은 그러한 통치권한을 어떻게 가지게 됐는가? 그것은 선천개벽으로 열린 천상의 신명계와 지상의 인간계가 복잡한 문명화로 접어들면서 모든 권한과 권능이 삼신일체상제님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삼신일체상제님의 주재권능은 세 측면으로 압축하여 분석할 수 있다. 그것은 신권神權, 조화권造化權, 도권道權이다. ‘신권은 상제님이 근원의 삼신과 일체이므로 본성상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존재권[全在權]이다. ‘조화권은 뭇 생명의 창조 근원인 삼신과 하나이므로 자체로는 무엇이든 간에 타자他者로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우주사 전체를 통시석通時的이고 공시적公示的으로 인지認知하여 무엇이든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화권化權이다. ‘도권은 무상無上의 대도로써 신명들을 통어統御하기 때문에, 우주만물을 신도神道로써 주재하여 다스리는 통치권統治權이다.

신권神權, 조화권造化權, 도권道權을 가지신 삼신상제님은 신미년(辛未, 1871)에 우주의 정사를 천상의 조정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고, 신교神敎의 종주국인 동북아 간방의 조그마한 조선 땅에 인간의 몸으로 직접 화신化身하셨다. 인간으로 오신 증산상제님은 31세가 되던 신축(辛丑, 1901)년에 무상無上의 도통을 하시고, 이후로는 신권, 조화권도권으로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게 된다.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으로 화신하신 증산상제甑山上帝님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고 선언하신다.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여 우주의 무극대운無極大運을 여셨다는 의미에서 증산상제님은 무극상제無極上帝로 호칭한다. 여기에서 무극이란 권능에 있어서 한계가 없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조화권능을 함축한다. 따라서 무극상제님은 천지공사를 행하시기 위해 우주 주재자의 위격에서 삼계의 권한을 직접 주재하신다.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어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증산상제님은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시다. ‘삼계대권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삼계는 천상계, 자연계, 인간계를 지칭한다. 이는 하늘, , 인간을 통털어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근본 틀이다. ‘대권이란 삼계우주를 주재하여 다스리는 통치권한이다. 이로부터 증산상제님은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증산상제님은, ‘생장염장의 이법理法에 따라 통치수단인 신도神道로써 삼계를 주재하여 무위이화로 우주만물을 다스리기 때문에,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게 된다.

문제는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신 증산상제님께서 왜 신도로써 우주만물을 다스리는가이다. 이에 대해서 증산상제님은 나의 일은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신도神道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니라. 신도로써 만사와 만물을 다스리면 신묘神妙한 공을 이루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니라.”고 하셨다. 또한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서 일어나는 만사와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서 신도는 지극히 공적公的이고, 신묘神妙한 공을 이룬다. 따라서 신도로써 삼계를 다스림은 최상의 방책이다.

그러므로 증산상제님은 신명神明들에게 명하여 우주만물을 다스린다. 우주만물의 창조변화는 자연의 법도에 따라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천지간에는 신명들로 가득하다. 이를 관장管掌하여 자연의 법도에 따라 운행되도록 주관主管하는 신명들이 존재한다. 증산상제님은 이 신명들에게 명하여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는 비구름의 운행도 또한 그것을 맡은 신명의 명을 따르는 것이고,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이 없이는 안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그때그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에서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증산상제님이 신명을 불러 명하심은 두 방식으로 집약된다. 하나는 신명들을 소환하여 직접 명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신부神符를 써서 신명에게 명하는 방식이다.

의 용례 : “상제님께서 잠시 후에 방문을 여시더니 공중에 대고 한 신명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날을 잡아 신장들의 기운을 보기 위하여 힘을 겨루어 볼 터이니 준비해라. 시원찮게 하면 못쓰느니라. 새겨들어라.’ 하시니라. 이에 그 신명이 여쭈기를 그리하소서. 날은 삼월 삼짇날로 받을까요?’ 하니 그래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장소는 여기까지 올 것 없이 옥거리 사정으로 오너라.’ 하시니 그 신명이 그곳을 알지 못함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너는 신명이 되어서 그것도 모르느냐. 그래 가지고 어떻게 천지 일을 할 것이냐, 이놈아! 신명이라도 똘똘해야 된다. 바삐 가서 서둘러라.’ 하시매 절을 하고 물러가더라.”

의 용례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해와 달의 운행이라도 내가 명만 내리면 운행을 멈추느니라.’ 하시니라. 창조의 집에 이르시어 벽력표霹靂表를 묻으시니 즉시 우레가 크게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거두시고 이튿날 구릿골 약방으로 가시니라.”

이와 같이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신 증산상제님은 천지의 주인으로서 신명들에게 명하여 천지를 다스리신다. 심지어 의 용례에서 보듯이 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권능’, 즉 자연의 운행이법까지도 바꿀 수 있는 주재권능을 보여주고 있듯이, 증산상제님은 삼계대권의 주재자로서 천상계, 지상계,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주재하여 다스릴 수 있다. 이는 증산상제님이 우주 전체를 관할하여 통치하는 절대권능의 주재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으로 오신 증산상제님의 주재권능은 조화주造化主로서 삼계를 개조하여 지상낙원의 새 세상을 여는 데에 역사役事한다. 이에 대해 증산상제님은 이제 온 천하가 큰 병(大病)이 들었나니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造化)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선경(仙境)을 건설하려 하노라.”고 선언하신다. 다시 말하면 선천개벽先天開闢으로 열린 천지 우주는 총체적으로 병이 들어서 파탄의 일로에 놓여있다. 이는 증산상제님은 인류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총체적으로 진단하여 문명의 방향과 역사의 운명이 최선最善의 길로 나아가도록 우주사적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신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천지우주가 열리도록 집행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 즉 가을 대 개벽공사開闢公事이다.


3) 증산상제님은 개벽장開闢長 하느님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는 우주창조宇宙創造의 대전제로 개벽開闢이다. ‘개벽우주생명의 대변화 운동으로 하늘과 땅이 새로운 질서로 열림을 뜻한다. ‘개벽으로 우주만물은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매 순간마다 창조적으로 새롭게 드러내면서 진화하여 왔다. 창조적 진화의 기본정신은 주역周易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이 정신에 입각하여 우주만물은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법理法에 따라 순환해온 것이다.

의 순환이법은 시간계열의 변화과정으로 구분해볼 때 4단계로 분석된다. 4단계는 지구1년에서 보여주는 의 사계절四季節에 대응한다. 봄은 만유의 생명이 우후죽순雨後竹筍 탄생誕生하는 시간의 열림이고, 여름은 분열 확장하는 성장成長의 시간의 열림이고, 가을은 여름철 성장의 극점에서 열매를 맺어 수렴收斂하는 시간의 열림이고, 겨울은 다음 봄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수장守藏하는 시간의 열림이다. 지구1년이 4단계의 시간질서로 순환하듯이, 거시적인 우주1년도 4단계의 시간질서로 순환한다. 북송北宋 때 소강절邵康節(1011~1077)우주1년의 순환주기4단계의 시간질서를 지칭하는 원회운세元會運世의 법칙으로 정립한 바 있다. 따라서 의 순환이법은 우주1년의 시간질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구1년은 인간이 초목농사를 지어 거두는 주기라면, ‘우주1은 천지가 인간을 내고 가꾸어 거두는 주기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주1년은 상제님께서 우주를 다스리는 신년神年(Divine Year)의 주기이며, 또한 천지 대자연의 역사가 1회 운행하는 대주기(Grand cycle)의 역사이다. 따라서 우주의 봄철이 되면 지구에는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고, 여름철에는 다양한 종족으로 갈라져 각색의 문명을 꽃피우고, 가을철이 되면 지난 봄 여름에 분열성장한 문화를 추수하여 통일문명을 형성하게 되고, 겨울철에는 지구도 빙하기를 맞아 일체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긴 휴식기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개벽으로 순환하는 우주1년에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 우주의 봄 개벽으로 만유의 생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질서가 열리고, 여름 개벽으로 분열하여 성장하는 질서가 열리고, 성장의 극점에서 가을 개벽으로 수렴 통일하여 결실하는 질서가 열리고, 겨울 개벽으로 다음의 봄을 위해 만유의 생명이 폐장하는 질서가 열린다는 것이다. 증산도에는 우주1년에서 만유의 생명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봄 여름철의 시간대를 선천先天이라 하고, 여름철 말기의 극점에서 수렴통일하여 결실하고 폐장하는 가을 겨울의 시간대를 후천後天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우주의 봄철과 여름철에 의 질서가 열림은 전반기의 선천개벽先天開闢이고, 우주의 가을과 겨울철에 의 질서가 열림은 후반기의 후천개벽後天開闢이다.

선천개벽으로 탄생한 우주자연은 상극相克의 운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만유의 생명이 생장을 위해서는 상극의 질서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상극이란 서로 이기려고 경쟁한다는 뜻이다. 경쟁이 지나치면 분란투쟁으로 이어진다. 상극의 질서에서 생장하는 우주만물은 각기 서로 경쟁과 분란투쟁을 거치면서 성장의 가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인류의 문명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경쟁과 투쟁을 거치면서 정신문명의 진화와 더불어 물질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상극의 운에서 태동한 우주자연은 그 극점에 이르면 삼계三界의 혼란으로 치닫게 된다. 이에 대해 증산상제님은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고 지적한다.

우주 삼계가 혼란해진 결정적인 까닭은 누적된 원한怨恨 때문이다. 즉 선천 상극의 운에서 살아온 만유의 생명은 전적으로 원한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천지간에는 원한이 누적되어 가득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산상제님은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고 진단하신다.

선천의 말기에는 상극의 질서에서 맺힌 원한이 폭발하게 된다. 이는 지구촌에 닥쳐오는 인류의 재앙災殃, 즉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대지진, 화산폭발, 이상기후, 끊임없는 전쟁, 알 수 없는 병겁病劫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악재惡材는 모두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들이다. 다시 말하면 현하의 대세는 생장의 시기에서 염장의 시기로, 선천의 묵은 세상에서 후천의 새 세상으로 바뀌는, 가을개벽이 임박한 시기이다. 가을개벽은 생장을 매듭짓는 결실의 추수기로서 새 세상으로 전환하는 후천개벽이다. 후천개벽은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가 전면적으로 바뀌는 가을 대 개벽이다. 온 천하가 가을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는 후천개벽은 우주만물이 전면적인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삼계우주의 주재자 증산상제님은 인존 천주로서 개벽장 하느님이시다. ‘개벽장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은 후천 개벽기에 닥쳐오는 전면적인 파국을 막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천지를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전무후무한 공사를 행하시게 된다. 그 의의에 대해 증산상제님은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옛일을 이음도 아니요, 세운世運에 매여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증산상제님은 천도天道와 신도神道를 거두고,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하여 천상계, 자연계, 인간계의 기존 질서를 새롭게 개편하는 작업에 임하신다. “이제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로써 선경의 운수를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고 하셨듯이, 증산상제님의 개벽공사는 바로 천지신명들과 더불어 지상선경의 새 판이 열리도록 선천 상극 세상의 틀을 완전히 뜯어고쳐 후천 상생의 대도세계를 여시는 것이다.

증산상제님의 가을 대개벽공사는 개벽장 하느님으로서 신명계의 질서를 바로 잡아 선천의 과정에서 쌓이고 쌓인 원억寃抑을 풀어주시고, 극도의 혼란으로 치달은 선천 상극의 운로를 매듭짓고 후천가을의 상생의 운로를 열어 인류가 성공하는 지상 선경의 세계를 물샐틈없이 구축하셨다. ‘개벽장 하느님으로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인간세계도 뜯어고치신 9년 동안의 천지공사는 자연과 문명과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과 신명세계를 함께 구원하는 일이다. 우주구원의 법방으로 짜 놓으신 가을 대개벽의 천지공사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해원解寃·상생相生·보은報恩을 그 실천 이념으로 하고 있다.

 

4. 맺음말

 

삼계우주는 선천 여름철 성장의 질서에서 가을철 수렴통일의 질서로 바뀌는 대개벽기를 맞이하게 되고, 인간과 만유의 생명은 선천의 상극질서에서 누적된 원한怨恨으로 가득하여 전멸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하늘의 조정 대신들을 거느리고 삼계대권으로써 우주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늘 임금님, 즉 삼신 상제님은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화신化身하여 인간으로 오셨다. 인간으로 화신한 삼신 상제님을 증산도에서는 증산상제님으로 호칭한다.

삼계대권으로써 우주만물을 무위이화無爲以化로 통치하시는 증산상제님은 9년 동안 가을천지 개벽공사를 보신다. 이것이 소위 3대 가을 대개벽공사이다.

증산상제님은 맨 먼저 하늘 세계, 즉 선천 신명계의 질서를 바로 잡아 통일하는 신명개벽神明開闢 공사를 집행하신다. 천상의 신명 조화정부를 결성하심이 그것이다. 신명 조화정부란 신도神道의 무궁한 조화로써 우주사宇宙史를 다스리는 정부란 뜻으로, 삼계를 통치하는 우주문명의 사령탑이다. 만일 신명세계의 질서가 혼란하고 무질서하면, 이것이 인간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온갖 위기와 무질서와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증산상제님은 선천 봄 여름철에 만연한 상극의 운을 끝맺고, 후천을 개벽하여 가을철 상생의 운을 열어놓으셨다. 후천 상생의 운을 여는 공사는 상극의 질서를 상생의 질서로 바꾸는 자연개벽自然開闢이다. 자연개벽은 전면적인 창조변화의 질서가 바뀌는 것이므로 인류와 만유의 생명이 진멸의 화액에 직면하게 된다. 후천 상생의 운을 열기 위해서는 선천 상극이 낳은 원한이 총체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총체적인 원한의 일소一掃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문명개벽文明開闢과 대인대의大人大義한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인간개벽人間開闢이다. 이는 원한이 투사되어 발생하는 전쟁戰爭의 병란兵亂과 괴질의 병란病亂이라는 환란을 극복하여 후천의 신인류로 거듭나게 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삼계대권으로써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천지의 원 주인이신 증산상제님은 인류가 후천 대개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상생의 대도를 내려주셨다. 이것이 바로 증산상제님의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는 가을 개벽세상을 여시는 삼신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다. “만고 없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 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는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증산상제님의 대도진리는 선천 상극질서 속에서 천인 삼재三才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선경仙境 낙원으로 단장하여 인류의 숭고한 성인 시대를 여는 가을철 성숙의 무극대도이자, 선천 모든 종교의 이상을 실현해 주는 후천 상생의 대도이다.


참고문헌

 

<경전>

甑山道 道典

周易

正易

書經

詩經

東經大全

論語

列子

Holy Bible

 

<단행본>

김재홍 지음, 周易(周易소통의 인문학 ), 대전 : 상생출판, 2014

金榮一 지음, 丁若鏞上帝思想, 서울 : 景仁文化社, 2003

勞思光 지음, 鄭仁在 옮김, 中國哲學-宋明篇, 서울 : 탐구당, 1987

문계석, 서양 지성인과 만남, 대전 : 상생출판, 2018

배옥영, 周代上帝意識儒學思想, 서울 : 다른생각, 2003

丁若鏞, 與猶堂全書第二集)

尹錫山 註解, 東經大全, 서울 : 동학사, 1998

안경전, 상제님, 증산 상제님, 서울 : 대원출판, 1990

안경전 역주, 桓檀古記, 대전 : 상생출판, 2012

안경전 지음, 甑山道眞理, 대전 : 상생출판, 2015

안경전 지음, 개벽 실제상황, 서울 : 대원출판, 2005

안경전 지음, 천지성공, 서울 : 대원출판, 2010

李種聖, 神論,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1995

이용주 역, 마르치아 엘레아데, 세계종교사상사1, 서울 : 이학사, 2005

李瀷, 星湖僿說

李恒老, 華西雅言

朱熹, 中庸章句, 명문당 : 서울, 1976

崔東熙, 西學에 대한 韓國實學反應, 서울 :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88

水雲 崔濟愚, 夢中老少問答歌

수운 최제우, 용담유사

何新 지음, 洪憙 , 起源, 서울 : 동문선, 1990

허탁, 이요성 역주, 朱子語類1, 서울 : 청계, 1998

Steaven Hocking, A Brief History of Time, 김동광 옮김,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서울 : 까치, 1998

Paul Davis, God and New Physics, 유시화 옮김,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서울 : 정신세계사, 1998 ,

Platon, Timaeus

Thomas, Summa Theologia

Matteo Ricci, 天主實義, 서울 : 韓國敎會史硏究所, 1972

 

<잡지>

Newton(2010, 10월호), 서울 : 뉴톤코리아 편집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71개(2/8페이지)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