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속의 철학

서양철학사상 6 | 4. 실재론에서 관념론으로의 전향

문계석 박사

2019.12.26 | 조회 157

[철학산책]

서양철학사상 | 4. 실재론에서 관념론으로의 전향


4. 실재론에서 관념론으로의 전향


1) 중세에서 벌어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간의 논쟁
암흑기로 접어든 학문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이탈리아 반도 북쪽의 조그만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점차 세력을 키워 오랜 세월에 걸쳐 지중해 연안 주변 국가들을 무력으로 통합해 나갔다. 이리하여 로마는 여러 국가들의 색다른 문화를 수용 통합하여 과거 도시국가의 틀을 벗어나 대 제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 감행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로마시민들은 절대자에 기대어 영혼의 안식처를 갈구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신앙지상주의가 싹터 주변으로 점점 확대되어 갔다. 신앙지상주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고 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0-220)의 사상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 합리주의 이성으로써 가톨릭 교리를 정당화하려는 모든 학설에 대해 반대한다. 오히려 철학을 이단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면서, 가톨릭의 교리가 이성에 불합리하기 때문에 진리라고 역설한다. 그 역설은 그가 “신의 아들(예수 크리스트)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신의 아들은 죽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완전히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신의 아들은 묻혔다가 부활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초기 로마제국의 위풍당당했던 위상은 콘스탄티누스(F. V. Constantinus, 274-337)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가톨릭교회가 공인(313년)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반면에 점점 확대되는 신앙지상주의는 로마제국의 안위를 지탱하는 정치세력을 더욱 위협하게 됐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북방에서 밀고 내려오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반달족의 침입은 로마제국을 빈사상태의 지경에까지 몰고 갔다.

이민족의 색다른 문화가 로마로 유입되고, 로마제국의 정치적인 혼란이 가중되자 가톨릭교회의 세력은 급속히 확장되어 갔다. 이런 상황을 보다 긍정적으로 말해 보자면, 로마제국의 쇠퇴는 고대문화의 총체적인 보유자가 되려고 노력한 가톨릭교회가 북방의 게르만 민족을 개화시키면서 중세의 종교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서양 중세의 신권정치를 위한 신앙지상주의 기반이 확고하게 다져지게 되는데, 그 중심에 교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가 등장하여 활동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에 극도의 타락한 삶을 살았다. 그는 특히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마니교(Manichaeism)의 교주가 될 뻔도 하였지만, 유대교를 독실하게 신앙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설득과 플로티노스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그는 플라톤 철학을 기반으로 『신국론』을 비롯하여 신학의 교리를 옹호하는 많은 글을 썼다. 430년 반달족이 침입하자 그는 피난을 마다하고 신학적 교리에 대한 믿음을 펼치기 위해 마지막 펜대를 든 채 글을 쓰면서 창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신앙지상주의에 힘입은 중세의 신권정치는 북방의 기성문화를 제압하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또한 중세 봉건주의 사회에서 발현되는 통일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한 몫을 하게 된다. 반면에 정치 사회 문화가 교회의 주도권 하에 있었기 때문에, 학문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 문명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수학과 과학, 인간생명의 안녕에 힘쓰는 의학 등은 당연히 종교의 엄격한 감독 하에 놓이게 된다. 역사가들이 중세를 학문의 암흑기라 부르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
가톨릭교회는 초기부터 교부 철학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종교교리를 점차 확립해 나갔고, 이를 무기로 포교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갔다. 9세기경에 이르자 가톨릭교회는 교리에 대한 철학적 합리성을 부여하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철학은 교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학문적인 체계를 세우는 일이 주된 업무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합리적인 교리를 가지고 이교도들을 설득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중시하게 되었고, 논리학은 수도원에 부속된 학교(schola)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철학은 학교의 교사에 의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이라 불린다. 서양 중세의 스콜라철학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스콜라철학은 본격적으로 에리우게나(Eriugena, 810-877)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종교는 진정한 철학이요, 진정한 철학은 진정한 종교이다.”는 주장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교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는 얘기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객관성이 뒷받침돼야 올바른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 계시의 진리는 마땅히 이성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합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체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신앙과 이성의 화합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런데 종교적인 교리와 학문적인 조직, 신학과 철학은 뭔가 불협화음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인 교리와 신앙이 신학의 중심 내용이라면, 학문적인 조직과 이성은 철학의 중심 내용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교리를 대변하면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신학이고, 학문적인 조직을 대변하면서 이성으로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라면, 양자의 관계는 화합하기 힘든 부분을 포함하기 때문에, 서로 갈라서 대립해 있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화합하는 문제가 곧 스콜라철학의 전개에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교부시대에 이성은 단지 신성한 교회를 이단적인 사상으로부터 지키거나 신앙이 없는 자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스콜라철학에 들어오면서 이성은 신앙의 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삼는다. 그러다보니 스콜라철학은 초기부터 교리의 해석과 합리화에 따른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성을 통한 교리의 조직에 많은 역할을 수행했던 스콜라철학자는 안셀무스(St. Anselmus, 1033-1109)이다. 그를 스콜라철학의 비조(鼻祖)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신앙이 이성의 활동에 당연히 앞서 있다고 보았고, 이성이 신앙의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말은 이성의 논리로 탐구하는 철학이 종교적인 신앙이 요구하는 대로 신학적 교리를 영원한 반석이 되도록 공고히 해야 함을 뜻한다. 중세 스콜라철학에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은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해서 나온 것이다.

신학의 시녀가 철학이라면, 신학은 주主가 되고 철학은 종從이 된다. 신앙의 교리가 일차적인 주主가 된다면 이성이 탐구하는 철학은 이를 뒷받침하는 종이 된다. 신앙적 교리의 주인은 신이고 교리 조직의 주인은 이성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신과 인간 간에는 주종관계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종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세 암흑기에는 이성에 의한 철학적 탐구든 과학적 탐구든 신앙의 교리에 어긋나는 탐구는 절대 금물이었던 것이다.

보편논쟁普遍論爭이 대두한 까닭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道典』2:118:2-4)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진정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죽었을 때 생명을 구성했던 육신(에너지 덩어리)이 흩어져 버림과 동시에 인간은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이라면, 그 실재가 되는 것은 혼魂이고, 그 혼은 죽어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천상)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거기로 돌아간 혼은 개별적인 것일까 보편적인 것일까? 만일에 실재하는 혼이 보편적이라면 거기로 돌아간 인간의 혼은 전적으로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크라테스의 혼과 홍길동의 혼은 서로 구분이 될 수 없는 동일한 ‘하나’가 되고 만다. 그러나 개별적인 영혼의 구원을 전제하는 가톨릭교회는 보편적인 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혼이 실재해야 함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위 보편자가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가의 논쟁은 서양 중세 스콜라철학의 중심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앙과 이성 간의 관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스콜라철학의 논구는 소위 보편논쟁普遍論爭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런데 보편논쟁의 발단은 원초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보편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은 로마의 마지막 철학자 보에티우스(M.S. Boethius, 480-524)이다. 그는 중세에다 풍부한 사상과 많은 문제들을 제공해 준 인물이다. 특히 그는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전부 알려줄 요량으로 주요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포르피리오스(Porphyrios, 232-304)의 서론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요컨대 인간의 실체, 본질, 덕 선, 유, 종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개념과 하양, 뜨거움 등과 같은 다른 서술 범주의 개념들인데, 과연 이들 보편개념이 실재하는가 아니면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가의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보편논쟁이란 무엇인가?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편자와 개별자(개별적인 사물)를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우선 서로 다른 ‘개별적인 사람’을 여러 번 관찰하고 비교하여 특수한 성질들은 버리고 공통적인 성질들만 추상하여 비물질적인 보편개념을 이끌어낸다. 즉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이 되는 ‘사람’은 보편 개념이다. 반면에 ‘이 사람(소크라테스)’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것으로 오직 ‘단 한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물질적인 개별개념이다.

보편논쟁은 보편자와 개별자 간에 무엇이 실재하는가의 주장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다. 이는 보편자만이 실재하고 개별자는 보편자에 참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는 플라톤 철학의 진영과 개별자만이 실재하고 보편자는 개별적인 사물로부터 추상해 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진영 간에 벌어지는 대립이라 볼 수 있다.

보편자의 문제는 무엇 때문에 그리 중요했던 것일까?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을 추상적인 보편자라고 하느냐 아니면 구체적인 개별자라고 하느냐에 따라서 교리에 대한 믿음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스콜라철학에서 보편논쟁을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삼았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보편적 개념들, 즉 절대적인 ‘신의 존재’, 구원을 받는 ‘인간의 영혼’, 신성한 가톨릭 ‘교회의 이념’,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이 되는 ‘원죄’ 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종교적인 믿음의 향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콜라철학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거리였던 것이다.

보편자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을 지적해 보자. ‘인간의 영혼’이 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여기에서 구원을 받는 주체는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는 ‘공통적인 영혼’ 아니면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이 되는 ‘개별적인 영혼’이어야 할 것이다. 만일 보편자만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개별적인 영혼에게 내려주는 은총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인간이 죽어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간다 하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영혼은 없고 오직 보편적인 영혼만이 실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개별적인 영혼의 구원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개별자(개별적 영혼)가 실재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진영에서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신성한 가톨릭 ‘교회의 이념’의 문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신에게 경배를 드리는, 신의 권역에 속하는 신성한 곳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교회가 있음을 보듯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교회다. 개별적인 교회에 참석해서 신에게 경배도 드리고 참회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적인 교회는 신성하지도 않고 영원히 실재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신성한 가톨릭 ‘교회의 이념’이 신성하고 신의 권역에 속하는 것이라면, 교회는 보편자로서 실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플라톤 철학의 진영에서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보편논쟁의 출발은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진행되다가 절충론折衷論으로 끝나게 된다. 우선 안셀무스는 에리우게나의 사상에 동조하면서 플라톤 진영에 서서 보편자만이 실재한다는 극단적인 실재론(realism)을 전개해 간다. 여기에 대립하여 맞선 스콜라철학자는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4)다. 특히 둔스 스코투스(D. Scotus, 1266-1308)와 오캄(W. Ockham, 1280-1349)은 보편자란 단순히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극단적인 유명론(nominalism)을 내세운다. 결국 보편논쟁은 후에 아벨라르두스(P. Abelardus, 1079-1142)의 절충론(온건 실재론)이 등장함으로써 일단락되고,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에 이르러서 종합 정리된다.

극단적인 실재론의 입장
스콜라철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에리우게나는 종교와 철학, 신앙과 이성의 일치를 주장한다. 절대적인 신은 최고의 유개념類槪念으로 유일한 실재이며, 전적으로 선善한 존재이다. 모든 만물이 신에 의존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에리우게나는 신이 근원의 본질이요 최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플라톤의 철학에서 말하는 이데아들 중의 이데아가 최고 보편자로 실재한다는 극단적인 실재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콜라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셀무스는 굳은 신앙에 기초를 두고서 이성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나는 믿기 위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신앙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신앙은 모든 이해에 앞서 있고, 철학이 추구하는 지혜는 신앙으로 가져와질 때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대한 믿음을 플라톤의 사상을 동원하여 학문적인 진리로 정립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성한 가톨릭교회, 즉 보편적인 교회가 신도들 개개인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특수한 개별적인 교회에 앞서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보편적인 교회와 개별적인 교회들의 관계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의 구체적인 개별자의 관계와 마찬가지라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해서 그는 개별적인 인간이 보편적인 교회에 속할 때에만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고,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은 실재하는 것이고 개별적인 것에 앞서 있다.”는 논지에 따라 안셀무스는 신성한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가장 큰 보편자로서의 절대적인 신이 실재함을 논증한다. 보편자가 참되게 실재한다는 입장에서 그는 보편적인 인간의 실재,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원죄의 실재, 개별적인 인간의 속죄와 크리스트의 구원을 앞세운 가톨릭교회의 당위성을 주장하게 된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
안셀무스는 최고의 보편자인 신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신이 실재한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었느냐 하면, 신의 존재를 논증하기 위해 사색에 열중한 나머지 그는 식사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몇 년 동안이나 신에 대한 논증을 찾아 헤맨 나머지 결국 방법을 발견해 냈다.

그의 신 존재 증명은 두 방식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현상의 사물을 통한 경험적인 증명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 이성을 통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① 신에 대한 경험론적 증명 :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선善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들이 실제로 무수히 많다. 이러한 것들은 생멸生滅의 노정에 있다. 그러나 경험에 주어지는 것들은 ‘자체로 존재’하거나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분명히 어떤 ‘원인이 되는 다른 것’에 의존해서 존재하거나 선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 원인은 결과로 존재하거나 선한 것보다 ‘더 완전하게 존재하거나, 더 선한 것들이다.’

만일 이성의 사유가 그 원인에 원인을 찾아서 무한히 소급해 가다보면, 더 이상 소급해 갈 수 없는 지점, 즉 궁극의 완전하고 선한 존재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더 이상의 원인이 없는 가장 완전하고 선한 존재’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자체로 독립적이어서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나, 다른 것들이 모두 이것에 의존해서 존재하거나 선하게 되는 최초의 원인으로 ‘절대적으로 선한 하나의 존재’이다.

최고의 원인으로 가장 완전하고 선한 하나의 존재는, 내적으로 아무런 정도(degree)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생성 소멸의 도정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완전히 선한 존재로 절대적인 신神이라고 말한다.

② 신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 :
안셀무스는 경험적인 사물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서 신의 존재를 논증할 수 있다고 한다. 논증과정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Zeno)이 ‘존재는 불생불멸하는 일자’임을 논증한 방식, 소위 불합리에로의 환원이라 불리는 귀류법(歸謬法)의 방식을 활용한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일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되면, 결국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한 신은 실재할 수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존재론적 논증 혹은 본체론적 논증이라 불리는데, 귀류법에 의한 논증과정은 다음과 같다 :

“더 이상 크다고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id quo maius cogitary non potest)”, 즉 ‘가장 완전한 인격자’는 실재한다. 만일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성에 내재하는 ‘가장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이 우리의 지성 안에 관념으로만 실재하는 것보다 지성 밖에 실제로 실재하는 것이 ‘더 완전한 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념적으로 ‘가장 완전한 인격자’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관념 밖에 더 완전한 인격자의 실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기모순에 봉착하게 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가장 완전한 인격자’인 신은 우리의 관념 속에 뿐만 아니라 관념 밖에 실제로도 존재한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은 당시 수도사인 고닐로(Gaunilo)에 의해 논박을 받았다. 고닐로에 따르면, 우리의 지성 안에 ‘가장 완전한 인격자’의 관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지성 밖에 ‘실제로’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성 안에 ‘가장 완전한 세계’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어딘가에 실제로 실재한다는 것은 따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셀무스의 가장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신의 존재증명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셀무스가 생각한 ‘가장 완전한 인격자’에 대한 관념과 고닐로가 말한 ‘완전한 세계’에 대한 관념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각기 주장된 것으로 보인다. 안셀무스는 관념을 실재론적인 입장에서 사용했고, 고닐로는 관념을 관념론적인 입장에서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셀무스의 주장에 대한 고닐로의 논박은 결정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신의 존재에 대한 안셀무스의 논증은 후에 삼각형의 존재와 그 본질이 분리될 수 없듯이, 신의 존재와 완전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한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의 신 존재증명, “원인이 결과보다 더 크다.”고 말한 라이프니쯔(G.W. Leibniz,1646-1716)의 우주론적 신 존재증명, “신에게 존재의 질을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헤겔(G. Hegel, 1770-1831)의 신 존재 증명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된다.

극단적인 유명론의 입장
보편자가 실재한다는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즉 개별적인 존재가 실체라는 사상이 널리 소개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8세기경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슬람 세력의 영향권에 있던 스페인, 이집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아프리카 북부 등지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특히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이슬람 철학자 아비켄나(Avicenna, 980-1037)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무장하여 대단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세기에 접어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스콜라철학에 도입되어 알려지면서 유명론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편자는 단순히 지성이 창출한 개념(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론을 제기한 스콜라철학자는 로스켈리누스이다. 그에 따르면 “보편은 이름이고 보편자는 실제적인 사물 다음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실재하는 것들은 모두 개별자들이다. 보에티우스가 지적했듯이, ‘하양’과 같은 보편자는 입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공기의 숨과 같은 단순한 말이라는 얘기다. 현실이란 오직 개별적인 사물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란 인간이 창출해 낸 ‘이름’이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는 유명론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주의(Thomism)에 반기를 들고 등장하는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엄 오캄에 이르러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극단적인 유명론은 “보편자가 개별적 사물에 앞선다(universalia ante res)”고 주장한 안셀무스의 실재론에 정면으로 대립한다. 유명론의 주장에 의하면, 보편개념이란 사물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물 안에 존재성을 갖는 것도 아니며, 단지 인식 주관에만 존재하는 단순한 사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자는 기호나 명칭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오직 개별적인 사물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오캄은 지식이란 개별적인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지각에 기초를 두고 있고, 개별적인 경험으로 들어올 수 없는 ‘보편적인 존재는 깎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날카로운 지적들 때문에 오캄은 후에 ‘오캄의 면도날’이란 애칭이 붙었다.

심지어 오캄은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바늘 끝에서 춤을 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말을 던짐으로써 보편자가 실재한다는 주장이 전적으로 허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야유했다는 속설도 있다. 오캄은 왜 그런 야유를 보냈을까? 오캄은, 만일 보편자만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개별적인 수많은 인간이 구원을 받아 천상에 올라갔을 때, 거기에 보편적인 ‘하나의 인간 영혼’만이 실재하고 개별적인 인간의 고유한 영혼이란 찾아볼 수 없음을 꼬집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빤히 경험하는 개별적인 영혼의 차별은 보편적인 영혼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인간의 구원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최고의 보편자가 되는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의 존재, 보편적인 신성한 교회의 이념, 원초적으로 아담이 지음으로써 개별적인 인간에게 지워진 보편적인 원죄의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론이 득세하게 됐다. 이성으로써 신앙을 합리화하려는 스콜라철학의 일차적인 목표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제는 신성한 교회의 권위도 무너졌다. 결국 스콜라철학이 해체되면서 인간은 외면적인 신앙에 따르는 것보다 각자 자신의 내면에 고요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신비주의가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과 때를 같이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온건실재론과 그 종합
로스켈리누스가 대표하는 유명론과 안셀무스가 대표하는 실재론 두 진영 간의 대립을 어떻게 해결해야 바람직한가의 문제가 제기되자, 양자의 대립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등장한다. 그것은 플라톤의 극단적인 실재론적 입장도 일부 수용하고 극단적인 유명론의 입장도 일부 수용하여 절충한 온건실재론이다. 온건실재론은 개별자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질료(hyle)와 형상(form)의 내재를 앞세운다. 아벨라르두스(P. Abelard, 1079-1142)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온건 실재론의 중심에 있다.

아벨라르두스는 개별자가 실재한다고 확고하게 주장하면서도 보편적인 개념은 개별자에 앞서 존재하거나 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 ‘안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식은 개별자가 아닌 보편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개별적인 사물에 관계해서만 보편자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생전 보지도 못하고 아무런 정보도 갖지 않은 외계인外界人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 보자.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외계인에 대한 어떤 표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실제로 외계인을 직접 보기라도 한다면, 그러한 표상은 잘못된 것이거나 확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온건실재론은 감각될 수 없는 보편자가 지식의 참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개별자만이 실재하는 것이고 보편자가 단순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은 아니다. 보편개념이 개별자 안에 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개별적인 사람은 ‘사람’이라는 공통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불려진 것이 아니라, ‘사람임’이라는 보편자가 내재해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 불려진다는 얘기다. 요컨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는 명제가 있다면, ‘사람’이라는 보편개념은 인간의 지성이 추상해낸 것이지만, 이러한 추상 개념은 곧 그 개념에 대응하는 그 무엇이 ‘소크라테스’의 개별자 안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건실재론에 따르면, 보편자가 경험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은 그것이 사물 ‘안에만’ 있는 것이지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편개념은 사물에 ‘앞서서’, 즉 신적 정신 속에 자리 잡은 피조물의 원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 지성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보편개념은 사물보다 ‘뒤에’, 즉 지성이 사물과의 일치를 통해서 비로소 창출될 수 있는 개념의 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실재론과 유명론을 종합한다. 그 방식은 아벨라르두스의 입장과 거의 유사하다. 그는 이성의 지식과 신앙의 일치를 주장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신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고,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자와 개별적인 사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활용하는데, 형상은 신의 지혜에 의해서 주어지고, 이것이 질료에 가해져서 개별적인 것들이 창조되었음을 주장한다. 온건실재론의 입장에서 그는 보편적인 형상이 실재하고 개별적인 사물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 형이상학적 유심론의 대표자 라이프니쯔
신앙의 속박에서 해방된 인간의 이성
중세의 신권중심 사회질서 체제는 종교개혁의 회오리가 일자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결국 신앙의 중심교리인 구원의 문제가 최우선의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제는 보편적인 교회의 관심사가 아닌 개인의 양심의 문제라는 시대적 요청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는 중세 교회의 철학적인 지주였던 스콜라철학의 붕괴를 초래했으며, 보편자가 아닌 개별자의 실재성이 강조된다.

특히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인문개벽이라 부를만한 일종의 사상적 정신운동이 일어난다. 소위 문예부흥이라 통칭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가 그것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문화와 로마문화를 재인식하여 새롭게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로 근대의 세계를 열어주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고 본다.

르네상스의 암묵적 의미는 중세의 신 중심 사회에서 신과 믿음[信仰]의 시종侍從에 불과했던 인간과 이성의 권위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종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신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고, 이성 또한 교리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거나 비판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새 역사 전개의 주체가 되었으며, 이성은 교리에 대한 믿음에 위배될 수 있는 학문적 탐구의 영역으로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로부터 르네상스는 휴머니스트의 부활이니 이성에 토대를 둔 인문주의 부활이니 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근대가 개벽되도록 촉진한 역사적인 배경은 과학혁명기라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의 진보가 한몫을 차지한다. 신앙의 교리와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이룩한 괄목할 만한 자연과학의 성과는 종교로부터 자연의 분리를 더욱 촉진하였고, 실질적으로 이성과 신앙의 분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로써 이성은 새 시대의 학문적 확신과 뚜렷한 전망에 희망을 품었으며, 순수 이성으로 사유하여 탐구하는 수학은 자연과학적 지식의 짜임새를 구성하는 데에 핵심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이성을 통한 수학적 지식이 갖고 있는 확실성의 방법은 철학적 사유의 진리탐구에서도 확고한 표본이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 새롭게 출현하는 근대의 철학은 영국의 경험주의(empiricism)와 대륙의 합리주의(rationalism)로 갈라진다. 합리주의는 원래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理性(ratio)을 사유의 규준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합리주의는 가톨릭 종교가 내세우는 초자연주의나 초합리주의가 아닌 자연에 있어서 인간존재의 이성을 중시하거나, 인식능력을 이성과 감성으로 나눠볼 때 이성만이 확고한 진리로 이끌 수 있다는 신념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합리주의는 필연적인 사유로부터 보편타당한 이성적 진리의 탐구를 목적으로 삼는데, 사실에 있어서 ‘그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항상 ‘꼭 그러하다’는 필연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충족될 수 있는 진리는 경험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필연적인 사유에서 찾아진다.

합리주의가 내세우는 이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하고 특수한 능력을 의미한다. 이성은 인간이 성장해가면서 발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천부적으로 타고난,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감각능력과 전적으로 다른 인식능력이라는 얘기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특히 파르메니데스, 퓌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서 알 수 있듯이, 이성은 로고스(Logos)요, 우주의 법칙으로서 유한적인 인간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인식능력, 신적인 능력이다.
근대의 합리주의자들은 절대적인 존재, 즉 신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절대적인 권위를 이성의 힘에 두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진리의 원천으로 보고, 이성에 의해서만 참된 진리파악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논리적이며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수학적인 탐구가 학문의 이상이라고 여겼다. 그런 까닭에 합리주의자들은 대부분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였다. 그 이유는 수학과 철학이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사유를 전개한 대표적인 합리주의 철학자는 르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를 필두로 하여 베네딕트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 빌헬름 라이프니쯔(G.W. Leibniz,1646-1716)를 꼽을 수 있다.

대륙의 3대 합리주의자들
시대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는 중세의 신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의 근대가 열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맨 먼저 학문사의 무대에 프랑스 출신 데카르트가 등장한다. 그는 당대의 최고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다.

유럽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나폴레옹은 “미래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세기의 늦잠꾸러기였다는 사실은 나폴레옹의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철학과 수학 분야에 남겨놓은 그의 탁월한 업적은 늦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수학자로서의 그는 복잡하게 기술한 유클리드 기하학 체계를 간명하게 기술하는 대수학과 해석 기하학을 창시했고, 철학자로서의 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려질 정도로 인식론(認識論, epistemology)이라는 새로운 철학의 길을 개척했다.

데카르트는 학창시절에 스콜라철학의 형이상하과 논리학을 공부하면서 당시의 시대정신을 사로잡은 자연과학과 수학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사색에 몰두했다. 자연과학에서 괄목할만한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참된 진리라고 여겼던 것이 내일에는 거짓이 됨을 개탄한 그는 가장 엄밀한 수학적 사유방법을 철학에 적용하여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를 정립할 굳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근대 합리주의 거장 데카르트는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냉철한 분별력을 가진 이성에 절대적인 신뢰를 둔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는 사유하는 이성야말로 진정한 실체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사유실체 외에 사물을 구성하는 궁극의 존재로 공간을 점유하는 연장(extendum) 실체를 내세운다.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는 모두 ‘유한실체’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무한실체’를 주장한다.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무한실체로서 신神이다. 그리고 무한실체와 유한실체 외에 그 밖의 나머지 것들은 모두 실체의 양태(mode)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속성이 서로 다른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 엄격히 구분해 놓은 데카르트는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심신이원론이란 마음(정신)과 몸(신체)는 본질적으로 근원이 다른 것임을 전제함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서 심신이원론에는 몸 따로 마음 따로 각기 작동한다는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피노자가 등장하게 된다. “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로 유명한 스피노자는 유태계의 혈통을 가진 네덜란드 출신으로 특히 윤리학을 기하학적 공리체계로 저술한 고독한 철학자였다.

스피노자는 유한자(정신과 물질)가 아닌 무한자로서의 “일자”만이 궁극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무한한 실체는 데카르트가 말한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가지 특성, 즉 무한한 연장과 무한한 사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한하게 존재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들은 이 두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사유와 연장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가 아니다. 오직 사유와 연장을 통해 파악되는 하나의 무한한 실체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한 몸체의 두 측면으로 구분되듯이 말이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대안이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오직 하나의 신만이 실체이다. 그러나 “신즉 자연”이다. 그는 우주만물이란 무한한 신이 펼치는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과 “생산되는 자연(natura naturata)에 불과한 것들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은 범신론汎神論(pantheism)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는데, 후에 범신론을 바탕에 깔고서 현대의 유기체적 형이상학을 전개한 화이트헤드의 범재신론(panentheism)이 등장하게 된다.

문제는 실체가 하나(신즉자연神卽自然) 밖에 없다면, 양태들로 등장하는 개별적인 것들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신의 속성인 연장과 정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개별적인 ‘나’의 존재와 ‘너’의 존재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 라이프니쯔의 형이상학적 단자론이 등장한다.

라이프니쯔는 누구인가? 그는 독일이 낳은 최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다. 그는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의 존재가 우주라고 여기고, 철학과 수학, 물리학 및 공학에 관련된 여러 학문분야를 탐구하여 획기적인 많은 공적을 남겼다. 특히 수학과 철학에 관련해서 남겨놓은 학문의 업적은 근대의 지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학자로서의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의 역리에 등장하는 ‘무한분할’의 문제를 연구하다가 오늘날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분微分과 적분積分을 창시하였고, 동양철학에서 우주론적 체계를 담고 있는 「낙서洛書」의 근본 원리가 되는 음양陰陽 논리에 많은 영향을 받아 최초로 이진법의 수數 계산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또한 그는 기계적인 계산기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하였는데, 수학자 파스칼(Pascal Blaise, 1623-1662)의 계산기에 자동 곱셈과 나눗셈 기능을 추가했고, 톱니바퀴 식의 기계적 계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철학자로서의 그는 학창시절에 철학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스콜라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가 다른 사유의 길을 가도록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유는 이전에 발생한 여러 가지 사상적 대립을 조화시킬 목적으로 자신만의 통일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데로 나갔다. 특히 그는 데카르트의 물질관과 가상디(Pierre Gassendi, 1592-1655)의 원자론 종합, 기계론적 세계관과 목적론적 세계관의 조화를 시도한 예정조화설,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문제, 합리적인 이성론과 경험적인 감성론 등을 조화하는 글을 중점적으로 썼던 것이다. 「모나드론」, 「형이상학 서설」 「인간 오성론」 등은 대표적인 저술로 꼽힌다.

형이상학적 단자론(monadology)
라이프니쯔는 “신즉 자연”을 주장한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반기를 든다. 그럼에도 스피노자에게서 개별적인 사물이 비록 양태이지만 스스로 활동하는 것임을 파악한 라이프니쯔는 궁극의 실체를 본질적으로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힘으로 상정한다. 그에 의하면 “실체는 활동할 수 있는 존재”인데, 이것이 바로 “단자(monad)”이다.

그는 단자를 불멸의 실체로 보고 단자 형이상학을 전개해 나간다. 단자란 무엇인가? 단자 개념은 원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불가분적인 ‘하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monas”에서 유래하는데, 근원의 단일한 개체를 의미한다. 여기로부터 라이프니쯔는 단자를 궁극의 불가분적인 실체로서, 근원적으로 활동하는 힘을 가진 비물질적인 정신, 즉 무수하게 실재하는 정신적 개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유심론적인 형이상학을 전개한 철학자라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한 단자의 본질적인 특성을 요약하여 말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단자는 자체로 단일한 실재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떠한 영향으로부터도 파괴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실체이다. 결코 쪼개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단자는 원자(atom)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프니쯔는 단자가 ‘자연의 진정한 원자’라 한다. 그럼에도 단자는 물질적인 원자가 결코 아니다. 물질적인 원자는 양적인 크기와 차이가 있으나 질적인 차이가 없다. 반면에 단자는 질적인 차이가 있으나 전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적인 크기가 없다. 만일 단자가 어떤 공간적인 크기를 갖는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쪼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자는 어떠한 크기도 갖지 않은 비물질적인, 정신적인 실재이다. 공간적인 크기가 없다는 의미에서 단자는 “형이상학적인 점(point metaphysique)”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단자는 자체로 생생하게 활동하는 능동적인 힘을 갖고 있는 정신적인 “엔텔레키Entelechie”이다. 엔텔레키란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도입한 실재개념, 즉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자신 안에 생성변화의 ‘운동인’을 포함하는 제1실체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서 보자면, 엔텔레키는 운동인으로서의 목적인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단자는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근원의 정신적인 실체가 되는 셈이다.

셋째, 정신적인 실체인 단자는 본질적인 작용으로 “지각(perception)”과 “욕구(appetition)”를 가진다. 지각은 하나인 단자가 무한히 많은 것들을 표상하는 것을 말하는데, 단적으로 하나이면서 일체의 모든 것을 포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라이프니쯔는 단자를 그러한 정신으로 간주하여 자체로 하나이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표상할 수 있는 “우주의 산 거울”로 본 것이다. 이러한 단자는 또한 욕구를 가지는데, 욕구는 지각을 통한 보다 선명한 표상에로 향하는 경향 내지는 노력을 의미한다.

넷째, 단자는 불가분적이고 독립적으로 자존하는 실체이다. 그래서 단자는 다른 것이 침투하거나 들어갈 수 있는 어떠한 창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문제는 정신적인 의미의 단자가 상호 대등한 실체이면서 서로 포섭하고 포섭되는 관계가 성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하나의 사물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무한하게 실재하는 단자가 전체적으로 하나에 포섭돼야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개개인의 사람은 무수한 단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단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라이프니쯔는, 마치 원의 중심점이 무수하게 많은 직경을 포함하고 있듯이, 다른 여러 무리들을 지배하는 중심적인 단자들도 있다고 주장한다. 중심적인 단자는 우월한 단자들로서 무한하게 많은 단자들의 집단을 대표하여 단자들의 통일성을 이룩해주는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체에 포섭된 부분의 단자들은 지배적인 단자에 끼어들 수 있게 되고, 모든 단자들은 우주를 반영하면서 전체적인 하나에 저절로 종속되어 실재할 수 있게 된다.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단자들
자체로 능동적인 힘을 갖고 있는 무수하게 많은 단자는 생명이 없는 무기물과 생명이 있는 유기물을 구성한다. 그 구성은 대략적으로 세 단계로 차등을 두어 구분해볼 수 있다. 그것은 단자군의 욕구와 지각작용의 정도에 따라 최하위에 있는 것, 중간단계에 속하는 것, 최상위에 있는 것들이다.

무기물과 식물들은 최하위에 있는 단자들로 구성된다. 이들 단자들은 무의식적이거나 혼란된 지각을 가지는 것들이다. 감각기관을 가진 동물들은 중간 단계에 속하는 단자들로 구성된다. 중간단계의 단자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영혼은 감각적인 의식을 가지기 때문에, 동물들은 기억하는 의식적 지각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최상의 단자가 있는데, 인간의 이성적인 정신과 같은 생생한 지각을 가지는 것들이다.

이로부터 볼 때 단자들은 낮은 단계의 것일수록 무의식적이고 비활동적이지만, 높은 단계의 단자일수록 보다 생생하게 의식하고 더 활동적이다. 바위와 같은 물질은 잠자는 정신과 같이 무의식적인 지각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 같은 동물은 정신이 생생하게 의식하므로 보다 명료한 지각을 가진다. 그래서 모든 단자들은 우주를 반영하면서 전체에 포섭되어 실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실재는 그 성질 속에 자신의 활동의 연속률과 그리고 이미 일어났던 것의 전부와 앞으로 일어날 것의 전부가 함유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주자연에는 중복도 비약도 없는 단일한 정신의 실재들이지만, 생명이 없는 물체로부터 동물에로, 동물에서 이성적인 정신으로, 더 아나가 피조된 단자들을 창조한 원초적인 단자인 신에 이르기까지 지각의 질적인 차이에 의해 연속적이다. 따라서 자연 전체는 무한히 기묘한 예술 작품이요, 전체적인 조화로 완벽하게 짜여진 정신적인 체계일 수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쯔의 입장이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을까?
자연세계의 모든 것들은 완전히 창이 없는 독립적인 단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라이프니쯔는 단자들 상호 간에는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조화와 통일이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 그는 “예정조화설(harmonie preetablie)”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정조화설에 의하면, 생생하게 활동하는 역동성을 가진 단자들은 비록 상호 독립적으로 자신을 전개해나간다 하더라도 결코 자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신이 단자를 창조함에 있어서 원래 예정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안배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자들 상호 간에 밀접한 교섭이 없을지라도, 마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경우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자들은 조화통일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전개해 나간다.

우주자연의 모든 것이 신의 안배에 따라 계획된 것이라면 예정조화설은 자유로운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자유와 기계적인 필연성이 잘 조화되고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쯔의 주장이다. 이는 마치 신체와 정신이 각기 고유한 본질에 따라 운용되는데, 신체가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만 정신은 의지에 따른 목적을 향해 활동한다는 이치와 같다. 정신이 자유롭게 의지하는 대로 신체가 기계적으로 움직이더라도 원래 신에 의해 상호 일치하도록 정교하게 제작되었기 때문에, 양자는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따르면서도 조화통일을 이루어 작동하도록 정해져 있다.

라이프니쯔에 의하면, 우주자연의 전체는 가장 훌륭하고 자유로우며, 최고로 좋은 세계이다. 왜냐하면 우주자연의 전체는 완전히 선한 신에 의해 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세계 내부에 부조화나 악이 존재한다면 이는 자체로 불완전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완전함이나 선함에 기여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즉 악은 전체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거나 보다 큰 악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있다는 얘기다. 만일 세계 내부에 악이 전혀 없다면,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 평가될 수 없다. 부분적인 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한 내용이 풍요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쪽의 악은 전체의 선을 위한 것이요, 한쪽의 불완전은 전체의 완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부조화나 악은 전체의 조화나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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