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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다시 개벽 6회 주재자로서의 천주(상제)

문계석 연구위원

2016.11.24 | 조회 1162

 

동학과 다시 개벽

 6회 

 

 

3) 주재자로서의 천주(상제)

 

우주宇宙라는 개념은 자체로 질서와 조화調和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전체적인 질서가 유지되고, 공간의 틀에 근거해서 무한한 창조변화가 조화롭게 일어나는 것이 우주라는 얘기다. 그래서 우주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창조변화는 마구잡이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와 체계를 갖고 있다. 우주에서 이러한 질서와 체계는 통시적(diachronic)이고도 공시적(synchronic)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 전체에서의 질서와 체계는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자연의 물리법칙을 신봉하는 이들은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동양의 형이상학적 진리를 선호하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논의되는 의미의 천도天道를 말하기도 한다. 수운은 우주만물의 변화질서와 체계의 유지가 성리학적 기반에서 천도에 의한 것이라는 노선을 따른다.

천도는 우주만물이 창조변화되는 근원의 법도이다. 문제는 천도가 어디에서 근원하는가의 소자출所自出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수운이 말한 천도는 천주로부터 출원한다는 입장이다. 이 말은 곧 천도는 천주가 스스로 내놓은 법도이기 때문에 천주의 도라는 얘기다. 천주는 천도를 주재함으로써 우주만물의 창조변화와 그 질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주는 우주만물을 관장하여 다스리는 실제적인 주재자가 된다. 이는 마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주재자는 그 나라의 국주國主가 되듯이, 우주 전체를 맡아 다스리는 주재자는 곧 천주라는 뜻이다.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천주를 주재성의 근원에서 파악한 것이며, 그 신위는 바로 주재자 상제上帝이다.

 

유형의 주재자

절대자 천주는 창조성과 주재성을 본성으로 한다. 앞서 논의한 무형의 조물주는 우주만물에 대한 창조변화의 근원으로 파악한 것이고,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천주를 우주만물의 변화질서와 체제 유지의 근원으로 파악한 것이다. ‘주재자란 무슨 뜻인가? 주재主宰란 글자 그대로 주인 주맡아 다스릴 재자로 주관하여 다스리는 주인을 지칭하며, 는 사람, 물건, 일 등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지시어로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주재자는 무엇을 맡아 다스리는 자란 뜻이다. 따라서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우주만물을 전체적으로 관할하여 다스리는 자를 지칭해서 말한 것이다.

주재자로서의 천주유형의 주재자를 지칭한다. 여기에서 유형有形이란 형상形相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천주를 무형의 조물주로 파악한 것은 본체本體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유형의 주재자로 파악한 것은 실체實體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본체와 실체간의 차이는 실제적인 형상을 갖추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실체는 근원의 본체 자리와 일체가 되어 형상을 가진 실재로 화현化現된 것을 일컫는다. 비유가 적절하진 않겠지만, 이는 마치 인간의 본체가 실제로 인간의 형상을 갖춘 존재로 실재하는 것에 비유되거나, ‘무형의 도가 화현했다고 말하거나, ‘무형의 다르마가 화신化身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유형의 주재자는 무형의 조물주와 일체가 되어 현실적으로 화현한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유형의 주재자는 우주 전체를 관할하여 다스릴 수 있는 능력에 걸 맞는 그런 주재권이 요구된다. 그러한 능력은 우주만물의 창조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조화권능造化權能을 자유자재로 쓰는 주재권능이다. 자유자재란 말은 의지를 가진 인격자를 함축한다. 그래서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무형의 조물주가 내놓은 천지만물을 전체적으로 총괄하여 실제로 질서 있게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천주가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주재 대상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즉 우주만물과 그 운행의 전체를 총칭한다. 이 전체는 바로 동북아 한민족의 사유구조에서 볼 때 하늘, , 인간이 그것이다. 하늘, , 인간이라는 삼재三才는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을 구성하는 근본 틀이기 때문이다.

우주 전체의 근본 틀이 되는 삼재는 어떻게 해서 정해지게 된 것인가? 이에 대하여 수운은 음양이 서로 어울림에 비록 우주만물이 그 가운에서 변화하여 나오는 것이나 그 중에서도 사람이 최고로 신령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삼재의 이치가 정해진다.”라고 말한다. 무시무종의 시점에서 맨 먼저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해서 현현顯現된 것이 바로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이 열린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만유 생명의 존재가 창조변화되는 근거로서 천체天體와 지체地體라 할 수 있겠는데, 그에 대한 상징어는 순양純陽과 순음純陰으로 불릴 수 있다. 하늘과 땅의 조화, 즉 순양순음의 현묘玄妙한 조화작용으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만유의 존재가 창조 변화되어온 것이다. 하늘, , 인간이라는 삼재라는 것은 이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조화에 의해 창조된 만유의 것들 중에서 가장 신령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가장 신령하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품부 받아 드러낸 것이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 즉 하늘의 이치는 무한한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고, 땅의 이치는 하늘이 뿌리는 창조성을 아낌없이 화육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조화로 만유를 무한히 창조 육성하는 궁극 목적은 성숙한 사람을 기르는 데에 있다. 그것은 성숙한 인간만이 만유의 창조 목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영성靈性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곧 천주의 섭리를 깨우칠 수 있는 가장 신령한 존재는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며, 만물들 중에서 인간이 최고로 존귀한 존재가 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지존무상의 인격자이다. 그것은 무형의 조물주가 그대로 현현한 실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우주에서 창조 육성되는 모든 것들이 조화調和를 이루어 자연과 문명과 인류가 최선의 목적에 이를 수 있도록 삼계를, 즉 하늘, , 인간세계를 관할하여 통치한다. 문제는 천주가 삼계를 어떻게 주재하여 다스리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천주는 우주만물이 생겨나라’, ‘일월성신이 질서 있게 운행하라’, ‘지구의 계절은 춘하추동으로 순환하라와 같이 그렇게 말로써 주재하는 것도 아니고, 천주가 마음먹은 대로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이 그렇게 다스리는 것도 아니다.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하늘, , 인간의 삼계를 다스리되, 천도天道를 주재함로써 우주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을 관할하여 다스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천주는 천도의 주재자

천도天道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말한다면 하늘의 도이다. 여기에서 수운이 말하는 천도는 하늘의 도[天道], 땅의 도[地道], 인간의 도[人道]라고 할 때의 하늘에 한정되어 있는 천도와 다르다. 왜냐하면 우주자연의 근본 틀은 하늘, , 인간의 삼계三界이며, 천도는 삼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천도는 자연의 이법, 인륜의 도법, 문명사의 법칙 등, 삼라만상의 전체를 포괄하는 전일全一한 대도라고 할 수 있다.

전일한 특성을 가진 천도는 동양의 우주관에서 언급되는 기존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 주자학의 연장선상에서 언급되는 유가儒家의 이법적 천도나 도덕적 천도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며, 도가에서 말하는 자연의 도(道法自然)와도 다른 양상을 갖는다. 그 까닭은 수운이 제시하는 천도가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계의 위계질서, 온갖 위선과 허위, 부패가 판을 치는 사회현상, 역사 속에 등장하여 생겨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의 변천사조차도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도는 하늘, ,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삼계의 도이다. 삼계의 도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가? 그 소자출所自出은 절대자 천주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수운의 은 우주의 삼계를 포괄하여 말한 것이고, 삼계의 도는 절대자 천주의 대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형의 조물주가 운용하여 역사하는 창조변화는 천도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며, 조물주의 본체와 일체가 되어 실재하는 유형의 주재자는 조화권능으로써 삼라만상을 조화하여 질서 있게 주재하여 이끌어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천도를 주재하여 삼계, 즉 천지만물을 다스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우주자연 전체에서 일어나는 창조변화의 조화 자취란 삼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삼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천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즉 하늘, , 인간계를 포함하는 천도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은 우주 천지에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은 곧 그 어느 것도 주재자로서의 천주의 주재 영역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우주만물을 어떻게주재하여 다스리게 되는가? 수운은 천주의 도는 무위이화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무위이화無爲而化는 글자 그대로 표현하자면억지로 함이 없이 저절로 되는 것을 뜻한다. 그가 무위이화를 말한 뜻은 천주가 우주만물의 창조변화를 주관하여 다스리는 주재방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천도의 주재방식은 바로 무위이화라는 얘기다.

무위이화로 주재되는 천도는 음양의 동정動靜에 따른 땅의 성쇠盛衰의 법도로 펼쳐진다. 하늘에서는 음양 동정의 이치가 작용하고, 땅에서는 성쇠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음양은 동정으로 작용하는 창조성의 법칙이라 할 수 있고, 차고 비는 성쇠는 일체의 모든 것이 현실 속에 구현되어 드러나는 변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음양 동정의 이치가 불변하다면 그에 따른 성쇠의 현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를 수운은 차고 비는 것이 번갈아 가면서 서로 이어져 나가는 수가 있고, 동정의 원리가 변하여 바뀌는 이치가 없다.”라고 기술했던 것이다.

음양 동정에 따른 성쇠의 질서는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없이 운행되기 때문에 상도常道, 그 모습은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상연常然으로 표현된다. 상도요 상연이라는 의미에서 천지자연의 모든 현상을 수운은 자체로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이치[無往不復之理]”로 말하게 된다. 따라서 천도는 무왕불복의 순환이치로 펼쳐지는데, 이는 곧 우주의 유기적인 생명체는 물론이고 천지만물의 창조변화, 흥망성쇠의 전철을 따르는 문명과 인간사 모두가 전적으로 천주의 주재방식, 즉 천도(음양 동정에 따른 성쇠의 법도)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왕불복의 순환이치를 말함에 있어서 수운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바람이 불고 이슬이 내리며, 서리와 눈이 내리는 것이 그 때를 잃지 않고, 그 차례를 잃지 않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는 사시성쇠四時盛衰가 서로 바뀌면서 이어져 간다는 뜻이다. 이를 풀어서 네 단계로 분석하면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는 시간 마디로 말할 수 있다. 즉 생장염장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창조 변화하는 순환이법이 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생장염장의 순환이법을 주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는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道典4:58:4)고 말했던 것이다. 주재자의 주재섭리는 바로 생장염장의 순환이법인 것이다.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우주변화의 모든 것은 이러한 순환이법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얘기다.

자연사적인 것이든 문명사적인 것이든 생장염장의 순환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만유의 창조변화, 약육강식이 지배하면서도 상보적 관계로 유지되는 자연계의 위계질서, 시간 속에 생겨났다가 어느 정점에서 사라져가는 유형무형의 현상들, 이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생장염장의 순환이치를 따르게 마련이다. 생장염장으로 순환하는 천지만물은 모두 무위이화로 주재되는 천도에 의한 것이며, 천주는 천도를 주재하기 때문에, 우주사 전체는 곧 무궁무진한 주재의 힘으로 펼쳐지는 천주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천도의 주재자는 지존무상의 상제上帝

무위이화로 천지만물을 짓고 그것들의 질서를 총체적으로 관장하여 다스리는 천도의 주재자, 즉 하늘, , 인간 삼계를 총체적으로 관할하여 다스리는 통치자는 바로 수운이 목숨을 건 구도의 과정에서 직접 처음으로 만난 지존무상至尊無上의 인격신, 상제上帝이다.

수운은 경신년 45일 신비체험의 과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어느 신선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 그 신선은 스스로 자신이 다름 아닌 상제임을 수운에게 신위를 밝히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수운은 상제를 직접 친견하기 까지는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안심가에서 사월四月이라 초오일初五日에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天地가 아득해서 정신수습精神收拾 못할러라. 공중에서 외는소리 천지가 진동震動할 때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하였어라.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직접 친견하게 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상제는 누구인가? 위상 자로 최고로 높은 하늘에 있는 으뜸의 인격신人格神을 뜻하고, 천하를 호령하는 왕자의 호칭으로 천지만물 전체를 맡아 경영하여 다스리는 주재의 의미를 갖는다. 달리 말하면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그 신위神位가 바로 상제라는 뜻이다. 상제는 곧 무형의 조물주가 실제로 화신化身한 인격신, 즉 모든 조화권능을 그대로 쓰는 하늘 임금인 것이다.

지존무상의 상제와 주재자로서의 천주는 논리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동등同等개념이 아니라 동연同延개념이다. 수운이 천주를 주재자로 말한 것은 통치성을 강조한 표현이고, 상제로 말한 것은 지존무상의 인격신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천지만물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인격적 주재자에 대한 올바른 신의 호칭은 바로 상제이다.

상제는 지극히 존귀하고 으뜸이 되는, 지고신의 위격을 강조하여 호칭한 것이다. 즉 인격적 신성神性과 주재성主宰性에서 으뜸이 되는 상제는 천지만물의 원 주인으로 말할 수 있고, 신들을 비롯하여 자연의 변화와 인간사를 주관하여 통솔한다는 의미에서 하늘임금이 된다. 하늘임금인 상제는, 마치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을 원하는 사람이 그에 적합한 집을 설계하여 짓고, 가재도구 및 식솔들을 관할하여 집안 전체를 질서 있게 다스리는 집주인이 있듯이, 바로 호천금궐에서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무위이화로 주재하여 다스리는 최고의 인격적 주재자主宰者이다.

인격적 주재자의 호칭이 바로 상제였음은 고대 동북아 전통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상고사를 검토해 보면 상제는 예로부터 절대적인 인격적 주재신主宰神으로서, 최고의 외경畏敬과 숭경崇敬의 대상인 하늘[]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기도 하였다. 하늘은 신령한 최고의 인격적 주재신이면서 적어도 인간과 같은 감정과 의지를 가진 상제의 의미로 쓰였다는 얘기다. 이는 고대 원시유가에서 하늘과 상제를 같은 의미의 인격신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데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즉 중국 고대에서는 위대한 힘을 가진 어떤 것으로 자연천은 곧 상제천으로 쓰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상고시대 은나라의 갑골문甲骨文에 등장하는 상제는 자연 질서의 변화를 주관하여 다스리고, 인간에 대하여 통솔력을 행사하는 주재자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고대 농경사회에서 상제는 천상에 있으면서 대자연의 바람, 구름, 번개, 비 등을 주재하였고, 이들의 신에게 명령을 내려 백성에게 벌을 주거나 호혜를 베풀기도 하였다. 상제는 가뭄을 들게 하거나 비를 내리게 하여 흉작과 풍작을 관장하기도 하고, 마을을 건설하는 일, 이민족의 징벌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일, 도읍에 재앙을 내리는 일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최고의 인격적 주재신이었다.

시경詩經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하늘에 있는 인격적 주재자 상제를 찬양하는 많은 노래들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상제는 인간들의 행위와 그 가치에 대하여 상벌을 내리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평가하여 그런 자를 벌주거나 은덕을 베푸는 일도 상제가 담당한다. 그 예로 대아大雅(황의皇矣)편에 거룩하신 상제님은 붉게 빛남으로 천하에 임하시어 사방을 두루두루 살펴보시고 백성이 편안히 할 곳을 찾으셨네,” 그리고 ()하늘의 노여움에 고개를 숙여 함부로 희희낙낙 즐김을 없애고, 하늘의 슬기를 공경하여서 뛰놀고 다니는 일 없어야 하네. 하늘이 굽어보심은 밝고 밝아서 그대가 나고 듬에 함께 하시네의 기록을 들 수 있다.

서경書經에는 중국 상고시대에 역대 제왕들이 재위에 오르면서 하늘의 인격적 상제에게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즉 선행을 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행을 한 사람에게는 재앙을 내린다는 절대자라는 의미에서 하늘의 주인인 상제는 제천의식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특히 나라를 일으키는 것도 상제의 소명에 따른 것이다.주서周書(대고大誥)나 소자는 상제님의 명을 감히 저버릴 수 없다. 하늘이 녕왕(문왕과 무왕)에게 복을 내려 우리 작은 주나라를 흥하게 하시었다.”라는 기록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후에 등장하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은 바로 이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재자로서의 상제는 하늘에서 천도를 무위이화로 주재함으로써 성운盛運과 쇠운衰運에 따라 전개되는 자연사와 문명사, 그리고 인간사 등, 천지만물을 주관하여 다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상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최고의 유일신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수운이 표현한 아서라 저 사람은 네가 비록 암사하나 하님도 모르실까?”(흥비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상제는 인간에게 재앙이나 복록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명에 대한 생사존망도 관할한다. 권학가대저 인간 초목 군생 사생재천 아닐런가”, 논학문수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과 하늘이 만민을 내셨다는 것은 옛 성인이 이른 말씀으로 지금까지 길이 남아 있다는 뜻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도덕성과 관련해서 도덕가님은 지공무사 하신마음 불택선악 아시나니 효박한 이 세상을 동귀일체 하단말가는 상제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오직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함을 말해주고 있다.

옛 성현들이 깨달아 가르쳐 왔던 것처럼, 인륜의 도덕이란 것도 천주의 도요 천주의 덕(天道, 天德)에서 발원하는 것이고, 이에 근거해서 상제는 선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나쁜 사람에게는 불행을 주기도 하며, 장생이나 안녕을 도모하는 것, 사회적인 안정이나 국가적인 불행을 가져다주는 분이라고 수운은 간주했던 것이다. 이는 아마도 수운이 주재자로서의 천주를 통해서 유교적 전통의 상제관에 대한 동양적 인식을 반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호천금궐에 계신 상제가 개벽開闢으로 기존의 세상[先天]을 열어놓고, 만유생명의 창조와 그 변화가 천도의 질서에 따라서 전개되어 가도록 무위이화로 주재해 왔다는 주장에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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