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속의 철학

금주의 한자 07회 傍若無人방약무인

이재석 연구위원

2016.04.22 | 조회 3474

금주의 한자 07회

傍若無人방약무인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겸손을 미덕으로 삼곤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거나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히려 자기자랑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면접에서는 자기 자신을 효과적으로 PR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또 자식이나 아내자랑을 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가장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그래도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적당한 선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금주의 한자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을 말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 ‘방약무인’이다.

금주의 한자 ‘傍若無人방약무인’에서

‘傍방’은 ‘곁’을 뜻한다. ‘도울 조助’자와 결합된 ‘傍助방조’는 ‘옆에서 도와주다’는 뜻이고, ‘볼 관觀’자와 결합된 ‘傍觀방관’은 ‘어떤 일에 관계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하다’는 뜻이다.

‘若약’은 ‘-과 같다’는 뜻이다. ‘위 상上’, ‘착할 선善’, ‘물 수水’자로 구성된 ‘上善若水상선약수’라는 말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無무’는 ‘없다’는 뜻이다. ‘無依無托무의무탁’이란 말이 있는데, ‘의지할 의依’자, ‘맡길 탁托’자로 구성된 이 말은 ‘몸을 의지하고 맡길 데가 없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하고 외로운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손수변扌’의 ‘托탁’자 대신에 ‘말씀언변言’의 ‘託탁’자를 쓰기도 하며, ‘依託의탁’, ‘無依託무의탁’이란 표현을 쓴다.

‘人인’은 ‘사람’을 뜻하는데, ‘화할 화和’자와 결합된 ‘人和인화’는 ‘여러 사람이 화합하다’는 뜻이고, ‘물결 파波’자와 결합된 ‘人波인파’는 ‘사람의 물결’이란 뜻으로 수많은 사람을 이른다.

‘방약무인’은 ‘곁에 마치 사람이 없는 것 같이 행동한다’는 의미로,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기史記》〈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온다. 자객刺客은 지금말로 하면 암살자 혹은 킬러를 말함이니, 자객결전은 ‘킬러들의 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사기》는 전한 무제武帝 유철劉徹(서기전156-서기전87) 때의 사관史官인 사마천司馬遷(서기전145년?-서기전90년)이 저술한 책으로서 중국 최초의 기전체통사紀傳體通史이다. 기전체란 《사기》처럼 본기와 열전 등으로 구성하는 역사 서술 방식을 말하며, 통사는 한 왕조의 역사를 서술하는 단대사斷代史와 달리 전 시대에 걸쳐 역사적 줄거리를 서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책에는 황제黃帝부터 한 나라 무제까지 약 3천 년 간의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돼 있는데, 체제는 제왕의 사적을 기록한 ‘본기本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연대를 표기한 ‘표表’, 경제, 정치, 천문, 지리 등을 기록한 ‘서書’, 제후왕에 대해 기록한 ‘세가世家’, 여러 뛰어난 인물에 대한 전기인 ‘열전列傳’ 등 다섯 가지 체제로 구성돼 있으며 총 130편입니다. 이 책은 중국의 사학과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수많은 뛰어난 인물 전기는 중국 고대 전기문학의 전범이 되었다.

중국의 걸출한 사학가요, 문학가이며 사상가인 사마천은 자가 자장子長으로서 지금의 섬서성 한성韓城 남쪽에 위치했던 용문龍門 출신이다. 사마가 성이고, 이름이 천이다.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사관인 태사령太史令으로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수많은 역사문헌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고대에 사관은 대체로 세습을 하였기 때문에 20여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되었다. 훗날 그는 흉노에게 항복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무제 유철의 노여움을 사서 하옥되고 말았다. 그러다 사형과 궁형宮刑의 선택에서 학자에게 치욕스런 궁형을 택하고 발분해서 12년의 노력 끝에 불후의 저작 《사기》를 완성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궁형은 고대 중국에서 행하던 다섯 가지 형벌 즉 오형五刑 중의 하나로서 죄인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이다.

그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형가荊軻는 위衛 나라 사람이다. 그는 평상시에도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또한 그는 검술을 좋아하여 매일같이 하루 온종일 친구들과 함께 검술과 무기를 익히며 무예 연마를 했다. 매일 새벽 날이 밝아오면 그는 곧바로 일어나 검술을 연습했으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야 비로소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는 검술뿐만 아니라 글 읽는 것도 매우 좋아하여 좋은 시와 문장을 많이 읽었다. 항상 게을리 하지 않고 배움을 좋아하여 전국시대에 유명한 협사俠士가 되었다.

형가는 연燕나라로 온 이후에 은거해서 개고기를 파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고점리高漸離와 의기투합하여 지기知己가 되었다. 지기란 자기를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말하는데, ‘知己之友지기지우’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매일 두 사람은 연 나라의 저자거리에서 술을 마셨으며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될 정도로 취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고점리도 용맹한 무사였다. 그 뿐만 아니라 고점리는 ‘축筑’이라고 부르는 옛날 악기의 연주도 잘했다. 축은 쟁箏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13줄로 된 현악기인데, 다른 현악기와 달리 대나무자로 현을 쳐서 소리를 낸다. 1996년에 상영된 <진송秦頌>이라는 영화를 보면 갈우라는 홍콩의 유명한 배우가 고점리 역을 맡아 이 축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시끌벅적한 저자거리로 가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느 날, 형가와 고점리 이 두 사람이 시끌벅적한 저자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량의 8,9할 정도 되는 술을 마셨을 때 취기가 오르자 그들은 함께 제일 번화한 저자거리 한복판으로 갔다. 자리를 잡고 고점리는 축을 치며 형가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목을 놓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흥에 겨워졌으며, 이에 따라 노래 소리도 갈수록 더 커졌다. 이들의 고성방가高聲放歌 때문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는데, 그 숫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구경꾼들을 보고도 못 본체하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노래가 슬프고 비분강개한 대목에 이르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큰 소리로 통곡을 했다. 눈물이 비 오듯 하며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듯이 대성통곡을 하는데 마치 이 세상에 자기들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훗날 형가는 연燕 나라의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 영정 즉 훗날의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러 목숨을 걸고 길을 떠났다. 배웅해 주는 사람들 가운데는 고점리도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드디어 역수易水가에서 헤어져야 했다. 그때 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디찬데 장사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았다고 한다. 결국 이 노래대로 형가는 일을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한편 고점리도 뒷날 장님이 되어서까지 친구 형가의 원수를 갚으려고 진왕을 노리다가, 역시 실패하여 형가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방약무인한 행동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무례한 행동을 의미하나, 《사기》〈자객열전〉에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방약무인이라는 말로 표현했을 뿐 비난하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았다.

‘방약무인’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 말로는 ‘眼下無人안하무인’이 있다. ‘눈 안眼’자, ‘아래 하下’자를 쓰는 ‘안하무인’은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또 ‘輕擧妄動경거망동’이란 말도 있는데, ‘가벼울 경輕’자, ‘들 거擧’자, ‘망령될 망妄’자, ‘움직일 동動’자를 쓰는 ‘경거망동’은 ‘경솔하고 망령되게 행동하다’는 의미이다.

이 말들보다 좀 더 심한 표현으로 ‘傲慢無禮오만무례’와 ‘傲慢不遜오만불손’이 있다. ‘거만할 오傲’자, ‘게으를 만慢’자, ‘없을 무無’자, ‘예도 례禮’자를 쓰는 ‘오만무례’는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고 예의가 없다’는 의미이고, 또 ‘아니 불不’자와 ‘겸손할 손遜’자를 ‘오만불손’은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고 공손치 못하다’는 의미이다.

예의범절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 예의에 어긋나거나 예의가 없다, 무례하다는 말도 그 기준에 따라 정도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아닐까?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진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미덕을, 각박해지는 요즈음 더욱 소중하게 새겨보게 된다.

【단어】

傍방: 곁. /人(사람인)부, 총12획, páng/

若약: 같다. /艹(초두머리)부, 총9획, ruò/

無무: 없다. /灬(연화발)부, 총12획, wú/

人인: 사람. /人(사람인)부, 총2획, rén/

【출전】

荊軻嘗游過楡次, 與蓋聶論劍, 蓋聶怒而目之. 荊軻出, 人或言復召荊卿. 蓋聶曰: “曩者吾與論劍有不稱者, 吾目之; 試往, 是宜去, 不敢留.” 使使往之主人, 荊卿則已駕而去楡次矣. 使者還報, 蓋聶曰: “固去也, 吾曩者目攝之!”

荊軻游於邯鄲, 魯句踐與荊軻博, 爭道, 魯句踐怒而叱之, 荊軻嘿而逃去, 遂不復會.

荊軻旣至燕, 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 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離飮於燕市, 酒酣以往, 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荊軻雖游於酒人乎, 然其爲人沈深好書; 其所游諸侯, 盡與其賢豪長者相結. 其之燕, 燕之處士田光先生亦善待之, 知其非庸人也.

-《사기史記》〈자객열전刺客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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