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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태백일사 : 고려국본기 8 윤관의 여진 정벌
윤관의 여진 정벌
都元帥尹瓘이 攻破女眞하고 立碑于先春嶺하야 以爲界하고 遣子彦頤하야
奉表賀하니 平章事崔弘嗣·金景庸과 叅知政事任懿와 樞密院事李瑋等이
入對宣政殿할새 極論尹瓘·吳延寵·林彦等이 妄興無名之兵하야 敗軍害國하니
罪不可赦니이다 하고 諫官金緣 ·李載等이 亦相繼劾之하야 曰
人主之取土地는 本欲育民也어늘 今爭城而殺人하니 莫如還其地而息民이오
今不與면 必與契丹으로 生釁이니이다
도원수都元帥 윤관尹瓘3)이 여진을 쳐서 무찌르고 선춘령先春嶺에 비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4) 아들 언이彦頤5)를 임금에게 보내어 표表를 올려 하례하게 하였다.
그런데 평장사 최홍사崔弘嗣·김경용金景庸과 참지정사 임의任懿와 추밀원사 이위李瑋 등이 선정전宣政殿에 들어가 임금 앞에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윤관, 오연총吳延寵, 임언林彦 등은 망령되이 명분 없는 군사를 일으켜 전쟁에 패하고 나라를 해롭게 하였으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간관 김연金緣, 이재李載 등도 역시 계속 탄핵하였다.
“임금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본래 백성을 기르고자 함인데, 지금 성을 다투며 싸워 사람을 죽였으니, 그 땅을 돌려주고 백성을 편히 쉬게 함만 못하옵니다. 지금 돌려주지 않으면 반드시 거란과 틈이 생길 것입니다.”
上曰 何也오 緣曰 國家初築九城할새 使告契丹호대 表稱女眞弓漢里는
乃我舊地오 其居民이 亦我編氓이어늘 近來에 寇邊不已故로
收復而築其城이라 表辭如是로대 而弓漢里酋長은 多受契丹官職者니
契丹이 以我爲妄言하야 以加責讓하리니 我若東備女眞하고 北備契丹이면
臣恐九城이 非三韓之福也니이다
임금이 물었다. “무엇 때문인가?”
김연이 아뢰었다. “나라에서 처음 9성을 쌓을 때, 거란에 고하는 표문에 ‘여진의 궁한리弓漢里는 우리의 옛 땅이다. 그 거주민 또한 우리 백성인데, 근래에 도적들이 변방을 끊임없이 침입하였기 때문에 다시 수복해서 성을 쌓는다’고 하였습니다. 표문의 내용이 이러하나 궁한리 추장은 거란의 관직을 많이 받은 자이니 거란은 우리 주장을 망언이라 책망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만약 동쪽으로 여진을 방비하고, 북쪽으로 거란을 방비한다면, 신은 9성이 우리 삼한三韓에 복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옵니다.”
諫議大夫金仁存이 亦請還舊地라. 上이 宣諭曰 兩元帥之伐女眞은
受先帝之遺志하고 軆朕躬之述事하야 身冒鋒鏑하고 深入賊壘하야
斬馘俘虜를 不可勝計오 而闢千里之地하고 築九州之城하야
以雪國家之耻하니 則其功이 可謂多矣라. 然이나 女眞은 人面獸心이라
反復無常하고 厥有餘醜하야 無所依處故로 酋長이 納降請和에 群臣이
皆以爲便하고 朕이 亦不忍이러니 有司守法에 頗有論劾하야 遽奪其職이나
朕이 終不以此로 爲咎오 庶幾有孟明之復濟也니라.
간의대부 김인존金仁存 역시 옛 땅을 돌려줄 것을 청하였다.
임금(16세 예종)께서 유시諭示하셨다.
“두 원수가 여진을 친 것은 선제先帝(15세 숙종)의 유지를 받고, 짐이 몸소 말한 일을 행한 것이니라. 몸소 적의 칼끝과 화살을 무릅쓰고 적진에 깊이 들어가서 베고 포로로 잡은 자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천 리 땅을 개척하고 9주州에 성을 쌓아 국가의 치욕을 씻었으니 그 공은 가히 크다 하리로다.
그러나 여진은 인면수심으로 그 변덕이 심하다. 그 남은 무리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추장이 항서를 바치고 화친을 청해 오니, 신하들이 모두 편하게 여기고, 짐 또한 차마 하지 못하겠다.
유사有司가 법을 따져서 자못 탄핵하는 말이 많으므로 급히 그들의 직책을 박탈하려 하나, 짐은 끝까지 이를 허물로 삼지 아니할 것이다. 맹명시孟明視가 다시 황하를 건너 공을 세운 것과 같이 하기를 바라노라.”
睿宗文孝大王四年秋에 撤九城하야 還女眞舊地하니라. 先是에 女眞이
使褭弗史顯等하야 入朝奏曰 昔에 我太師盈歌가 嘗言我祖宗이 出自大邦하니
至于子孫하야 義當歸附가 可也라 하더니 今太師烏雅束이 亦以大邦으로
爲父母之國이러니 至甲午年間하야 弓漢村人이 自作不靖이나
本非太師之指揮라 國朝鳴罪討之나 復許修好故로 我信之하야
不絶朝貢이러니 去年에 大擧하야 殺我耄倪하며 築置九城하야 使孑遺之民으로
靡所止歸하니 太師遣我하야 來請還地云云이라
又會宰樞·臺省·知製誥·侍臣·都兵馬判官과 及文武三品以上하사
更議還九城可否하신대 皆曰可라
舊史에 云 「兩將軍이 立碑於先春嶺曰至此爲高麗之境이라 하니
先春嶺은 在豆滿江七百里外松花江近地云이라」 하니라.
예종 문효文孝대왕 4년(단기 3442, 1109) 가을에, 9성에서 철수하고 여진의 옛 땅을 돌려주었다. 이에 앞서 여진이 요불褭弗, 사현史顯 등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이렇게 상주하였다.
“옛날에 저희 태사 영가盈歌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조종은 대국(고려)에서 출생하였으니6) 자손 대에 이르러서도 마땅히 귀부歸附함이 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태사 오아속烏雅束께서도 역시 대국(고려)을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갑오 연간에 이르러 궁한촌 사람들이 스스로 난리를 일으켰으나, 본래 태사가 지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조國朝(고려)에서는 죄를 물어 이들을 토벌하였으나 다시 수호를 허락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이를 믿고 조공을 끊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군사를 크게 일으켜 저희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을 죽이고 9성을 쌓아 외로이 남은 백성으로 하여금 돌아갈 곳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에 태사가 저희를 보내어 땅을 되돌려 주실 것을 청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재추[宰樞], 어사대 판사御史臺 判事와 중서문하성 성재省宰, 지제고知製誥, 시신侍臣, 도병마판관과 문무 3품 이상을 소집하여 다시 9성을 돌려주는 것에 대하여 가부를 물으니 모두 돌려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옛 사서에는, “두 장군이 선춘령에 비를 세우고 ‘이곳이 고려의 경계이다’라고 하였다. 선춘령은 두만강에서 700리 밖, 송화강 근처 땅에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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