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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원전 (원문/해석)
태백일사 : 고려국본기 3 궁예의 출생과 양길과의 만남
궁예의 출생과 양길과의 만남
大震國明宗景皇帝天福九年五月五日에 弓裔가 生於外家하니
其屋上에 有素光이 若長虹하야 上屬天이라 新羅日官이 望之하고
以爲將不利於國家라 하야 以聞한대 王이 嫌之하사 使人抵其家하사 殺之러시니
其母가 賂珍寶하고 請抱而逃竄하야 劬勞養育하고 年十餘歲에 祝髮爲僧하야
號善宗하고 及壯에 放逸如故하야 不拘檢僧律하고 軒輊有膽氣라
대진국 (14세) 명종 경황제 천복 9년(단기 3211, 878) 5월 5일에 궁예가 외가에서 출생했다. 이때 지붕 위에 흰 빛이 긴 무지개처럼 하늘에 뻗쳐 있었다. 신라 일관日官이 이것을 바라보고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이 꺼려서 사람을 그 집에 보내 아기를 죽이려 하였다. 그 어미가 진귀한 보물을 주며, 아기를 안고 도망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식을 길렀다. 궁예 나이 10여 세에 머리 깎고 중이 되어 법명을 선종善宗이라 하였다. 장성한 뒤에도 여전히 마음대로 거리낌없이 행동하였고, 계율에 구애받지 않았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담력이 있었다.
嘗持鉢赴齋라가 有烏啣牙籤이 落鉢中이라 視之하니 有王字어늘
秘不言하고 頗自負러라. 先自安勝으로 有勞王事로대 而新羅는 不報하고
反收其土地人民而盡奪하야 只以王妹로 妻之而已라
高句麗遺民이 以故로 累世積怨하야 怏怏起變而屢敗라가
일찍이 궁예가 바리때를 들고 재齋를 드리러 가는데 까마귀가 입에 물고 있던 상아 점대를 바리때 속에 떨어뜨렸다. 살펴보니 왕王이란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사실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으나 자못 자부하였다.
앞서 고안승 때부터 임금을 모시는 일에 공로가 있었으나, 신라는 보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 땅과 백성을 모두 빼앗았다. 다만 왕의 누이동생으로 아내를 삼게 하였을 뿐이었다. 고구려 유민이 이 때문에 여러 대에 걸쳐 원망이 쌓여 앙심을 품고 여러 차례 변을 일으켰으나 패하였다.
至弓裔하야 見國家衰亂하고 乘欲聚衆하야 復祖宗之舊土하고 洗積世之仇하야
乃投竹州賊箕萱하니 萱이 侮慢不禮라 弓裔가 鬱悒不自安하야 潜結萱麾下의
元會申烜等하야 爲友하고 投北原賊梁吉하니 吉이 善遇之하야 委之以事하고
分兵百騎하야 使東畧州郡하니 皆降之오 又攻阿瑟那하니 衆至六百이라
自稱將軍하고 與士卒로 同甘苦하고 予奪을 不以私하니 衆心이 皆畏之라.
궁예는 국가가 쇠약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기회를 틈타 무리를 모아 조종祖宗(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여러 대의 원한을 씻고자 죽주竹州의 도적 기훤箕萱에게 몸을 던졌다. 그러나 기훤은 아랫사람을 업신여기고 거만하여 예로써 대우해 주지 않았다. 궁예는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여, 기훤의 부하인 원회元會, 신훤申烜 등과 몰래 결탁하여 친구로 삼아 북원(北原, 지금의 원주)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투신하였다. 양길은 궁예를 잘 대우하고 일을 맡겼다. 군사 100기를 나누어 주고 동쪽 지방의 주와 군을 치게 하니 모든 고을이 항복하였다.
궁예는 또 아슬나阿瑟那(지금의 강릉)를 공격하였다. 무리가 600명에 이르자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었다. 군사와 고락을 함께하고 주는 일과 빼앗는 일을 사사로이 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경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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