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풍속사전

누에

2013.06.17 | 조회 8377

 

누에

 

 

(누에고치)

 

 

누에와 비단

 

누에는 나방의 유충을 말한다.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며 입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아주 유용하고 신비한 생물이다. 누에고치로부터 나온 실이 명주로서 비단을 만드는 재료이다. 비단은 고대부터 중국과 서역간의 교역 물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로마 시대에 로마의 상류층은 중국의 비단을 수입하였는데 중국을 가리키는 ‘세리카’(Serica)라는 말도 비단(sericum)으로부터 온 것이다. 서역을 통한 중국과 서양간의 육상교역로는 비단길(silk road)로 알려졌다. 값비싼 비단을 생산하기 위한 양잠법養蠶法 즉 누에를 길러 고치를 생산하는 방법은 중국에서는 비밀로 여겨져 외부로의 누출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양잠법은 금령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과 서로 전파되었다.

 

흔히 양잠과 비단은 중국에서 고조선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최근의 고고학 발굴은 고대 한민족이 중국보다 양잠과 비단직조 기술이 앞섰음을 보여준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나온 옥잠(옥누에)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고대 한민족은 BCE 2700년경 신석기 시대에 이미 양잠을 시작했고 사직물을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대 단군왕검이 하백의 딸을 황후로 맞아 잠업을 관장하게 하였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일 것이다.

 

 

누에의 일생

 

누에는 유충기간 동안 모두 네 번의 잠을 잔다. 그래서 누에의 나이는 1령에서부터 5령까지가 된다. 네 잠을 자고 난 다섯 살 누에는 뽕잎을 먹는 것을 중단하고 실을 토해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그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달 정도이다. 누에는 아주 예민한 벌레여서 누에를 키우기 위해서는 보통 정성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뽕잎을 깨끗하게 준비해서 먹이지 않으면 누에는 뽕잎을 먹지도 않으며 잠도 자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는 누에는 몸이 크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에를 기르는 일은 아기를 기르는 이상으로 정성을 요구하였다.

 

 

민속에서의 누에

 

누에는 13 마디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일년 열두 달과 윤달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 벌레’라는 뜻의 ‘잠?’이라고도 쓴다. 누에를 키워 실을 뽑아내는 양잠은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큰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대 동방에서는 신농씨의 딸이자 황제 헌원의 부인이었던 누조?祖를 누에신으로 숭배하였다. 누조가 누에를 치고 양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농사신인 신농에게 바치는 선농제와 함께 누조에게 바치는 선잠제先蠶祭도 지냈다. 잠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누에 치는 여인을 시켜 제를 지내되 술을 사용하지 않고 차를 사용하였다. 마을 단위에서도 풍년제나 동제 때 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때 마을에서 가장 베를 잘 짜는 할머니를 사제로 삼아 처녀들이 이 사제로부터 길쌈 재주를 물려받는 상징적 의식을 행하기도 하였다.

 

증산 상제와 누에

 

증산 상제는 사람 기르는 것을 누에 기르는 것에 견주어 말씀하였다.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道典 3:180)

 

또 야심가인 차경석이 보천교를 세우고 정읍에 그 본부를 크게 지을 것을 아시고 그러한 시도를 누에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정읍이 대창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道典 3:187)

 

차경석이 지은 보천교의 십일전十一殿은 1922년부터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된 건물로 그 규모가 경복궁 근정전의 두 배에 이르렀다고 한다.(건평 136평, 높이 87척) 단일한 건물로는 우리나라 건축사상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건축에 사용된 대들보는 만주에서 가져왔다. 전내에 제탑을 설치하고 주위에는 용두용신을 조각하여 금으로 도금하였다. 또 황금색 기와를 올렸는데 이는 중국 황제의 거처를 본딴 것이었다. 십일전을 비롯한 보천교 본소는 당시 세인들의 이목을 크게 끌었으나 차경석이 죽고 난 직후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되었다.

 

 

조선 땅은 누에와 같다

 

증산 상제는 또 한 일一자를 써놓고 “조선 땅은 한 일 자 누에와 같다”라고 했는데(道典 1:22), 이는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고 나중에 다시 나방이 되는 등 신통한 조화를 부리듯 조선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대 동방에서는 누에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가 하면서 풍운조화를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중국의 헌원계 족속들은 누에가 변신하여 용이 된다고 믿었다. [김현일]
 

 

참고문헌
 
김대성, 『금문의 비밀』, 컬처라인, 2002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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