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세계문화

지명 ‘시베리아’의 유래를 찾아서 (1)

홍미선 연구위원

2021.04.09 | 조회 354

지명 ‘시베리아’의 유래를 찾아서 (1)


상생문화연구소 홍미선(불어학 박사)



2019년 여름, 몇 개월 뒤면 Covid-19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전 지구를 덮쳐 해외여행은 추억 속에 갇힌 꿈이 되어버릴 것을 상상도 못한 채, 나는 시베리아의 한 끝자락을 여행하고 있었다. 이름은 한없이 익숙하건만 낯설기 그지없던 미지의 땅이라서 더욱 와 보고 싶었던 시베리아!


마음 같아선 횡단철도 전 구간을 완주하며 한반도 면적의 60배나 되는 광활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달려보고 싶었지만, 현실과의 타협이 불가피했기에 나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나의 첫 시베리아 여행지로 선택했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장장 12시간 걸려 도착한 하바롭스크에서 나는 벌써 다음 여름휴가 땐 시베리아의 좀 더 깊은 곳을 여행하리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 번째의 여름이 가까워오는 지금,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시베리아 여행은 언제쯤이나 다시 가능할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발로 하는 여행 대신 머리로 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시베리아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 나섰다. 이 칼럼은 그 여행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기록으로 본 ‘시베리아’의 유래

프랑스어로 시베리아는 Sibérie라고 하는데 발음은 ‘씨벨히’에 가깝다. 프랑스의 사전들은 이 지명이 러시아어 сибирь [씨비르]에서 왔고 이 러시아어 단어는 15-16세기에 서시베리아에 존재했던 시비르Sibir 칸국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시베리아’가 ‘시비르’ 칸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통설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 문헌에서는 ‘시비르 칸국(khanat de Sibir)’이라고도 하지만 ‘시베리아 칸국(khanat de Sibérie)’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중국어 문헌에서 ‘失必兒汗國실필아한국(시비르 칸국)’이라고도 하고 ‘西伯利亞汗國서백리아한국(시베리아 칸국)’이라고도 하는 것과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비르’와 ‘시베리아’의 어원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시비르 칸국이란 명칭이 건국과 동시에 선포된 국가명이 아니라서 정확히 어느 시점을 시비르 칸국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통일된 답을 찾기 힘들다. 혹자는 아불 카이르Abu-l-Khayr(1412-1468) 칸이 즉위한 1428년이라고 하고, 혹자는 킵차크 칸국의 분열기인 1440년경으로 보기도 한다. 또 여러 문헌들을 읽어 보면 시비르 칸국이 본격적으로 성립되기 전부터 그 지역이 이미 시비르 지방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 시베리아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확인이 어렵지만, 그것에서 파생된 명사로 ‘시베리아인’을 뜻하는 Sibérien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10년으로 기록되고 있다.(TLF 사전 외 다수) 프랑스에서 시베리아라는 지명은 적어도 1610년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1375년에 아라곤 왕이 프랑스 왕에게 선물한 세계지도에 시비르 지방의 위치가 Sebur라고 표시된 것을 보면 늦어도 14세기를 전후하여 프랑스어에도 시비르 지방을 지칭하는 말이 등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유럽 최초의 기록, 카탈루냐 세계지도(1375년)

서유럽에서 시베리아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75년에 크레스케스Abraham Cresques(1325–1387)가 완성한 카탈루냐어 세계지도이다. 아라곤의 왕이 이웃한 강대국 프랑스의 왕 샤를 5세에게 선물한 이 지도(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에 볼가강 동쪽 지역이 ‘Sebur’로 표시되어 있다.


아라곤 왕국(1035-1706)은 중세 및 근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로 오늘날 스페인의 아라곤 자치지방에 해당한다. 카탈루냐어로 제작된 이 지도는 풍부한 삽화와 설명을 담고 있는데 지도상 북동쪽, 곧 서시베리아의 위치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Los munts de Sebur on neix lo gran flum Edil.”

(대하천 에딜강이 발원하는 Sebur의 산들.)


1839년 프랑스 왕립인쇄소에서 발간한 『1375년본 카탈루냐어 지도의 해설서Notice d'un atlas en langue catalane, manuscrit de l'an 1375』는 위의 ‘에딜강’을 볼가강fleuve Volga으로, ‘Sebur의 산들’을 우랄산맥Monts Ourals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지도상의 Sebur가 시비르/시베리아와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최초의 기록, 프라 마우로의 세계지도(1450년경)

이탈리아의 성직자였던 프라 마우로Fra Mauro(약 1400-1460) 역시 신대륙 발견 이전인 1450년경에 거대한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두 개의 원본이 있었는데 포르투갈 왕정에 보내진 1459년 본은 소실되었고, 정확한 완성 연도를 알 수 없는 다른 한 본은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의 유물로 현재 베네치아 코레르Correr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볼가강 북동쪽의 방대한 지역이 ‘시비르 지방P. Sibir(Provincia Sibir)’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표기와 별도로 바로 옆에 Sibir라는 표기가 하나 더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시비르 지방 내에 ‘시비르’라는 도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비르 칸국이 15-16세기에 서시베리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비슷한 시기에 유럽(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상 서시베리아의 위치에 나타난 시비르Sibir 지방이 시비르 칸국임은 자명하다.




러시아 최초의 기록, 15세기의 러시아 연대기 

러시아에서 ‘시베리아’를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1406년의 사건을 기록한 『아르한겔고로드 연대기Архангелогородские летописи』(1819:126)이다.


이 문헌은 11-18세기 러시아의 역사기록을 모은 ‘러시아 연대기’의 일부인데, 저자는 타르타르 칸 토크타미시Tokhtamysh(?-1406)가 살해당한 곳이 ‘시베리아 땅Сибирской земли(the land of Siberia)’의 칭기투라Chingi-Tura 마을 근처라고 기록하고 있다. 칭기투라는 당시 시비르 칸국의 수도였고 지금의 튜멘Тюме́нь(Tyumen)시에 해당한다.



독일 최초의 기록, 15세기 『한스의 여행기』

서유럽의 문학작품으로 시베리아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15세기 바이에른 출신의 실트베르거Schiltberger(1380-1440)가 쓴 『한스의 여행기Hans Schiltbergers Reisebuch』이다. 그는 30여 년(1396-1427) 동안 터키 술탄과 몽골 칸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근동과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그 때의 기록을 이 책에 담고 있다.


1460년 첫 출판 이후 여러 판본과 번역서로 나온 이 여행기에서 저자는 타르타르 왕자를 모시던 시기에 ‘Ibissibur’(혹은 ‘Wissibur’)라고 불리는 고장에 갔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Ibissibur’는 명백히 시베리아(시비르)를 가리키며 이르티쉬강 근처로 묘사되어 있다(Brunn, 2010:34-36).



시베리아를 언급한 세계 최초의 문헌, 13세기 『몽골비사』

『몽골비사』는 유목민족 최초의 역사기록으로 13세기에 몽골인이 쓴 책인데, 1207년의 사건을 기록한 제10장 239절에 ‘시비르’라는 이름이 나온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것이 시베리아라는 지명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프랑스인 역사학자 R. 그루쎄Grousset(1885-1952)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몽골비사』가 1252년에 완성된 것이라면, 시베리아라는 지명을 파생시킨 ‘시비르’가 문자 기록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구체적으로 1252년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몽골비사』를 통해서는 시비르라는 곳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몽골비사』는 몽골어 원본이 소실되고 14세기 명대의 한문 번역서인 『원조비사元朝秘史』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원조비사』는 한문 번역본만 아니라 몽골어 원본의 음을 한자로 베낀 음사본도 포함하고 있어 몽골어 원본의 복원에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원조비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면서 사실상 준원본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 초 『집사』 「부족지」 속의 ‘이비르-시비르’

몽골제국의 역사를 다룬 또 다른 책 『집사集史』의 「부족지部族志」에도 시베리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언급이 발견된다. 『집사(Jami al-tawarikh)』는 14세기 초에 페르시아 출신의 역사가 라시드 앗 딘Rashid–ad–Din(1247-1318)이 일칸국의 재상을 지내면서 몽골인 가잔Ghazan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방대한 역사서이다.


몽골제국의 역사는 물론, 중국에서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여러 민족의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슬람권 최초이자 최고의 세계사로 인정받고 있다. 


『집사』를 구성하는 첫 번째 책인 「부족지」는 몽골제국사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투르크 족이 자리잡고 사는 곳을 나열하면서 ‘이비르 시비르Îbîr-Sîbîr’(이스탄불 사본, Revan Köşkü 1518)라는 곳을 언급한다.


사본에 따라 이곳은 ‘이비르 와 시비르Îbîr wa Sîbîr’로 나오기도 한다(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사본[김호동, 2002:89]). 바이칼로프에 따르면, 13-15세기의 아랍인 여행자나 무역상들은 키르기스족의 땅 북동쪽, 이르티쉬강 계곡의 북쪽 어딘가를 [Ibis-Shibir], [Sibir-i-Abir], [Abir-i-Sabir] 등으로 다르게 불렀는데 이는 모두 시베리아(시비르)를 가리키는 말이다.(Baikaloff, 1950:287)


또한 파리에서 수학하고 유럽어에 능통했던 중국인 학자 풍승균馮承均(1887-1946)은 ‘亦必兒失必兒역필아실필아’(Ibir-Sibir)가 키르기스족 땅 북쪽에 있으며 『원조비사』에서는 약칭으로 ‘失必兒실필아’라 했지만 『원사』 「옥와실전」에는 전체 이름(亦必兒失必兒)이 나온다고 하였다(馮承均, 2015:3).

  

「부족지」의 저자 라시드가 말한 Ibir-Sibir/Ibis-Shibir/Ibir wa Sibir, 시리아 출신의 역사가 알 우마리Al-Umari(1301-1349), 이븐 아랍 샤크Ibn-Arab-Shakh(1383-1450) 등이 말한 Sibir-i-Abir와 Abir-i-Sabir, 그리고 풍승균이 언급한 亦必兒失必兒[Yìbìer shībìer]는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일견 달라 보이는 이 지명들을 조금만 주의 깊게 비교해 보아도 페르시아어, 아랍어, 중국어에 나타난 [Sibir]-[Shibir]-[Sabir]-[Shībìer]이 하나의 어휘에서 나온 4가지 변이형이란 사실이 자명해진다. 앞에서 보았던 1375년 지도상의 카탈루냐어 Sebur, 15세기 독일 책 『한스의 여행기』 속 Sibur 역시 또 다른 변이형인 것이다.


참고로 영어 문헌인 브렛슈나이더(Bretschneider, 1888:37, 88)에서는 「옥와실전」의 亦必兒失必兒는 ‘Ibirh Shibirh’, ‘Ibirh Sibirh’로 음사했고 라시드와 이븐 아랍 샤크의 문헌을 언급할 때는 ‘Aber Sibir’, ‘Sibir or Abir’, ‘Abir or Sibir’라는 음사를 쓰기도 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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