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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儒敎의 신관神觀

양재학

2011.10.14 | 조회 6197
유교儒敎의 신관神觀


112_1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 동양철학연구부 양 재 학楊在鶴

우리 가족은 설날과 추석을 포함하여 1년에 열 세 번 제사를 지낸다. 때로는 밥을 세 그릇씩 올리는 제사도 있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음식을 마련하느라 며칠 전부터 종종 걸음하셨고, 아버지는 좋은 밤과 대추를 구하려 애쓰셨던 광경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부모님에게서 제사지내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들은 적은 없으나 조상만은 정성껏 모셨다. 아버지는 말년에 중풍으로 인해 오랫동안 투병 생활하였다. 그럼에도 제삿날에는 어김없이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 위패를 향해 꾸벅 절하시던 모습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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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자손들의 친선도모를 위해 있는 게야…”라는 아버지의 어눌한 말투가 지금도 귓전을 맴돌고 있다. 매년 명절이면 고향 가느라 전국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될 정도로 수많은 차량이 이동하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이며, 조상은 후손들에게 살아 있는 귀신인가? 이러한 물음은 최고신을 비롯한 조상신이 과연 실재하는가라는 신관神觀(신에 대한 이야기)의 문제와 직결된다.

다문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인의 의식에는 여전히 유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교는 조상숭배를 중시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공자孔子(B.C 551-B.C 479)의 도덕적 가르침을 종지로 삼는 학술인가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다. 조선을 지배한 유교는 과연 공자의 사상인가, 혹은 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朱子(1130-1200)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적인 유교인가라는 궁금증이 뒤따른다. 주자가 공자의 사상을 자신의 시대와 관점에서 공자의 유교를 새롭게 해석하여 체계화한 학문이 바로 성리학性理學[新儒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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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들 역시 주자의 해석을 통해 논어, 맹자, 중용, 대학[四書三經]을 배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주자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결국 우리는 신유학의 거울을 통해 사서삼경을 읽는 셈이다.

따라서 유교의 본질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유교의 뿌리와 만나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공자의 유교를 잉태시킨 원시유교原始儒敎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시유교와 공자가 개창한 유교의 정신은 다르다. 전자의 핵심이 종교라면, 후자의 그것은 도덕철학이다. 공자의 유교는 원시유교의 근본을 일정 부분 상실했거나 변질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시유교의 원형을 모르고, 공자 또는 성리학의 입장에서 유교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타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고전을 읽는 간접 경험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원시유교 역시 자연의 경이로움을 숭배하거나 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원시유교의 중심에는 상제님과 함께 자연신들을 존중하는 신앙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원시유교에서는 천지에 생명을 불어넣고 다스리는 절대자를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 불렀다. 유교의 정치철학서인『서경』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높은 산에 올라가 상제님에게 천제天祭를 올린 기록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요임금이 제위의 일을 마치고 요임금 시조의 사당[文祖]에서 순이 제위를 받았다. … 드디어 상제님께 류類 제사를 지내시며 … 여러 신에게 두루 제사하셨다.[正月上日, 受終于文祖, … 肆類于上帝 … ?于群神.]”1)

또한 사마천의 불후의 명저인『사기史記』「봉선서封禪書」는 황제가 등극한 후에 가장 먼저 태산泰山 정상에 올라가 천제를 지냈다는 사실을 수록하고 있다. 원시유교에 나타난 숭배의 대상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최고신인 상제님에 대한 신앙(천지를 주재하는 인격신)
2. 일월을 비롯한 자연물에 대한 외경심(큰 산이나 강, 바람과 비 등의 신격화)
3. 효와 연관된 조상숭배(영혼불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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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신인 상제님은 조물주로서 인간의 생명과 운명, 그리고 사회와 역사의 섭리를 주재하는 지고무상의 존재이다. 하지만 상제님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성격이 바뀌거나, 아예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유교의 주제인 천명사상天命思想으로 나타난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진리의 근거는 하늘[天]이다. 만물의 원천은 하늘이기 때문에 하늘은 진리와 인간 행위의 준거 또는 표준이다. 이러한 하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방식이 바로 동양철학의 역사적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아버지 복희伏犧 이래로 요순堯舜을 거쳐 종교와 철학이 분리되기 시작한 하은주夏殷周 3대에 와서 국가의 각종 제도가 완비되었다.

아직까지 하나라(대략 B.C2070-B.C1600 추정) 사상과 문화의 실체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하늘의 뜻에 따라 각 왕조의 교체에는 천명이 개입한다는 정치적 천명관이 수립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를 대부분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연구하여 왔다. 그 이면에는 엄청난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세계관과 종교관을 비롯한 철학적 사유의 변형이 이 시대에 이루어진 점이다.

천명에 대한 인식은 은말주초殷末周初에 완전히 바뀐다. 그 시대는 사상적 혼돈기였다. 은과 주의 정권교체는 정치와 군사적 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문화2)와 사상, 종교 전반에 격심한 변동을 가져 왔다. 즉 인문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주나라의 창업은 은나라의 종교문화를 계승하는 동시에 극복하는 혁명이었다.

대만臺灣의 육군 소장출신 서복관徐復觀3)은 은나라의 이념을 종교문화, 그리고 주나라의 정체성을 인문문화라고 구분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 역시 인간의 이성적 사유에 기초한 주나라의 문화로부터 실질적인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4)

이러한 배경에는 공자의 발언이 크게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는 하은夏殷을 본받았으므로 그 문물제도가 찬란하다.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5) 공자는 정치적 입장에서 천명을 계승한 주나라의 규범을 인문정신의 푯대로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공자의 정신세계는 종교와 인문의 정신이 분명하게 분리되지는 않았다.6)

따라서 유교사상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면 종교적 천명사상 → 정치적 천명사상 → 도덕적 천명사상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천명사상을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공자다. 공자에 이르러 우주의 본질이 바로 인仁이며, 그 ‘인’이 인간의 본성으로 주체화되었다는 휴머니즘으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공자의 유교사상은 윤리적 색채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일원적 다신관으로 출발하고, 자연에는 영성이 가득 차 있다는 종교적 세계관은 공자에 이르러 철학의 주제가 도덕 형이상학으로 바뀌는 운명을 맞는다. 다음은 공자가 평소 생각한 유교사상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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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아宰我가 물었다. “3년상은 기간이 너무 오래인 것 같습니다. 군자가 3년 동안이나 禮를 차리지 않는다면 예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3년 동안이나 樂을 다루지않는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다 없어져 햇곡식이 나오고, 불씨를 얻기 위해 나무를 뚫어 불을 일으키는 나무도 바뀌었으니, 1년으로 그치는것이 좋겠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 너에게 편하겠는가?” “편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자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대로 하라. 군자는 喪中에는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거처하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제 네가 편하다면 그대로 하게나.”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말하기를 “재아는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나은 지 3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러기에 3년상이 온 천하에 공통된 喪禮이거늘 재아는 3년의 사랑을 그 부모에게 두고 있느냐.”(『논어』「양화편」)

이는 아기로 태어난 뒤 3년 동안은 부모가 극진히 키운 만큼 자식은 그 보답으로 최소한 3년상을 치르는 관습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견해 차이를 알 수 있는 대화이다. 요즈음 부모는 자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극진히 모셔야 부모답다고 인정받는다. 심지어 자녀가 결혼하면 아파트를 장만해주어야만 부모 대접을 받고, 자식은 재산상속을 위해(?) 효도하는 웃지 못할 세상이다.

속담에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사랑은 자식에게로 향할뿐 부모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내 자식이 아프면 택시 타고 병원으로 직행하는 반면에, 부모가 아프면 버스 타고 병원에 달려가는 우리네 일상을 꼬집은 표현이다. 즉 공자는 3년이 너무 길기 때문에 1년으로 줄이자는 제자를 비판하고, 한없이 넓고 큰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효도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리가 바로 유교의 가르침이다.

이처럼 유교의 탈종교적 성향은 인륜과 천륜관계를 중시하는 인문주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귀신의 세계를 회의하는 공자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공자는 괴이한 일, 무력에 관한 일, 난동을 부리는 일, 귀신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子不語怪力亂神] (『논어』「술이편」)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사람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고 대답했다. 다시 죽음에 대해서 묻자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은 다음의 세계를 알겠는가?”[季路問事鬼神, 子曰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논어』「선진편」)

공자의 사상은 어둠의 세계인 죽음보다는 밝음의 세계인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나마 ‘귀신 섬기는 일’을 언급한 것은 귀신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종교적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귀신 섬기는 예식을 통해 인간들로 하여금 도덕성을 확립하려는 의도였다. 인간 귀신[人鬼]에 제사지내는 ‘효도’와, 천신天神에 제사지냄으로써 하늘에 대한 공경심을 배양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7)그러니까 유교의 종교적 색채는 점차 퇴색된 반면에, 윤리도덕의 실천이 중요한 덕목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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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진시대先秦時代8)에도 공자의 귀신관은 실용주의 철학자였던 묵자墨子(B.C479-B.C381)에 의해 비판받았다. 묵자는 귀신의 실재를 밝히고 논증한「명귀편明鬼篇」을 발표하여 귀신이 실재한다고 믿었다. 특히 그는 허례의식에 빠진 유교에 대해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제례를 배운다[無鬼而學祭禮]”라고 말하여 고대의 귀신관이 공자의 유교에 의해 변형됨을 아쉬워했다. 결국 귀신관의 원형은 묵자가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하은주 3대의 사상이 녹아 있는『주역』역시 음양원리와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신을 얘기한다. 이러한 주역의 귀신관은 동양인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과 역사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음과 양의 움직임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신이라 일컫는다.[陰陽不測之謂神]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 즉 음양의 조화는 너무 신비로워 알 수 없는 경계가 신이라는 뜻이다. 신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고,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음양법칙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주역의 입장이다. 그래서 신의 인격성 또는 자연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경향도 이 구절의 풀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특히 성리학자들은 신을 천지의 공능 또는 자연의 신비스런 조화로만 보았다. 만물의 생장과 화육은 천지 자체에 내재한 조직적 질서에 바탕한 음양의 신묘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견해 또한 주역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세상의 신은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신은 얼굴 있는 신과 얼굴 없는 신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顯現] 세상의 모든 현상은 신의 또다른 얼굴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에는 신이 내재해 있다. 신들은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각각의 신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 만일 신들이 없다면 이 세계는 존립기반이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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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만물을 신묘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레보다 빠른 것이 없고, 만물을 흔들어 널리 퍼뜨리는 것은 바람보다 빠른 것이 없고, 만물을 마르게 하는 것은 불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만물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연못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만물을 적시는 것은 물보다 잘 적시는 것이 없고, 만물을 마치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은 간보다 성대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물과 불이 서로 미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거스르지 않으며, 산과 연못이 기운을 통한 뒤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을 완수한다.[神也者는 妙萬物而爲言者也니 動萬物者莫疾乎雷하고 撓萬物者莫疾乎風하고 燥萬物者莫?乎火하고 說萬物者莫說乎澤하고 潤萬物者莫潤乎水하고 終萬物始萬物者莫盛乎艮하니 故로 水火相逮하며 雷風不相悖하며 山澤이 通氣然後에아 能變化하여 旣成萬物也하니라](『주역』「설괘전」6장)

이 문장의 주어는 ‘신’이고, 나머지는 건곤을 제외한 여섯 괘의 구체적인 작용과 효과를 뜻한다. 그리고 그 주제는 ‘신의 손길은 자연으로 말하다’일 것이다. 마음은 몸을 통해 말하듯이, 자연은 아무런 말없이 신을 통해 비를 내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드러낸다.

신은 만물의 지휘자다. 즉 진, 손, 감, 이, 태, 간의 작용은 신의 지휘를 받아 움직인다. 만물을 움직이는 것은 우레가 가장 힘세고, 만물의 힘을 널리 퍼뜨리는 것은 바람이 가장 빠르고, 만물의 에너지를 일으키는 것은 불이 최고의 효력을 발휘하고, 만물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어 기쁘게 하는 것은 연못이 최상이고, 만물에게 생명의 혼을 심어주는 것은 물만큼 최대의 효능을 나타내는 것이 없고, ‘간’은 만물이 휴식을 취한 다음 재충전하도록 쉼터를 제공하는 최적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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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곤의 자녀들은 조직의 질서를 깨뜨리는 파괴자가 아니다. 오히려 모자란 점은 보충해주고,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움직여 건곤의 뜻을 확대 발전시키고 완수한다. 신은 만물의 변화 속에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낸다. 신의 얼굴은 우레, 바람, 불, 연못, 물, 산의 움직임으로 나타날 따름이다.

과연 ‘신’은 천지에 동력을 불어넣는 주재자의 손길인가? 신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인가? 실제로 변화를 주재하고 참여하는 최고신[上帝]은 있는가? 그리고 신은 단지 천지변화의 오묘함을 수식하는 형용사에 불과한가? 이에 대한 성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과거에는 우주 생성의 비밀을 캐는 열쇠로만 알았지, 신학의 범주로 이해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주역은 생명의 중앙은행인 건곤을 제외한 여섯 괘[震, 巽, 離, 兌, 坎, 艮 = 六子女]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의 행위를 언급하고, 신은 우레와 바람 등의 얼굴로 만물의 변화에 개입한다고 말한다. 신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창조의 과정[生成]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신은 운동을 일으키는 모든 원인을 총괄하지만, 그 행위는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신묘하다[妙]’는 수식어를 붙였던 것이다.

신은 천지의 공능이라는 것이 주역의 대전제다[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정이천程伊川(1033-1107)은 천天, 건乾, 제帝, 귀신鬼神, 신神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형체로 말하면 ‘천’이고, 성정으로 말하면 ‘건’이고, 주재하는 것으로 말하면 ‘제’이고, 공용으로 말하면 ‘귀신’이고, 묘용으로 말하면 ‘신’이다.[以形體謂之天, 以性情謂之乾, 以主宰謂之帝, 以功用謂之鬼神, 以妙用謂之神.]9)

만물을 낳는 실체는 ‘하늘’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하늘의 숭고한 정신은 ‘건’이며, 만물을 섭리하는 인격적 주재자는 ‘제’이며, 한없는 힘으로 만물을 운행시키는 자연의 영성은 ‘귀신’이며, 신비하게 작동하는 생명의 쓰임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라 부른다. 주역은 ‘신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역은 일정한 실체가 없다[神無方, 易無體]’고 말했다. 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모든 곳에 스며들어 창조활동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여기서 바로 신은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원이므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 세상을 가득 메우는 것은 신이기 때문이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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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생성을 일으키는 변화의 주인공인 까닭에 만물의 실질적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리학자들은 철학의 굴레에 얽매어 신 자체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단지 음양의 신묘한 운동으로만 인식했다.

따라서 동양에는 도교道敎 이외에 자생적으로 발생한 종교가 없다는 이유에서 신을 종교적 관점에서 풀이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신은 인간의 감각능력으로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성리학의 결론이다.

이처럼 신관을 별도로 취급한 성리학은 공자의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자의 귀신관은 송대 성리학으로 계승되어 철학의 체계를 보완하는 이론의 한 분야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성리학은 유교사상의 철학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리학은 신관11)을 형이상학의 보조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원시유교는 모든 생명의 뿌리를 천명의 근원인 상제님에서 찾았다. 이러한 동양의 상제관을 비롯한 귀신관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철학적 사유에 밀려 민간신앙에 자리를 비워주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신관이 19세기 동북아 조선땅에서 되살아났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 신앙’으로써 잃어버린 상제관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마침내 상제님이 직접 이 땅에 강세하여 인류를 구원한다는 가르침을 핵심으로 하는 증산도가 등장하여 종교 통일의 불길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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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경書經』「우서虞書」“순전舜典”
2)殷의 원래 명칭은 商이었다. 상나라는 중국의 동쪽, 지금의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세워진 국가인 반면에 주나라는 서북부에서 발원한 민족이다. 민족간의 갈등이 심화된 은주의 교체는 사상적 혁명을 동반한다.
3)그는 학자들이 고대 사상가들의 흐름을 정신사적으로만 연구하고, 문헌적인 검토는 소홀히 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급장교의 신분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중국인성론사中國人性論史』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펴냈다.
4)공자는 “주周의 종법제도를 이어받겠다.” “나는 주공周公을 꿈에서라도 뵙고 싶다”라고 말 하여 인문정신의 근원을 주나라에 두었다.
5)『논어』「팔일편」, “周監於二代, 郁郁 乎文哉. 吾從周.”
6)『논어』「옹야편」 , “번지가 앎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 할 것이다.[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可謂知也.]’”
7)『논어』「팔일편」, “祭如在, 祭神如神在” 이에 대해 정이천은 “祭, 祭先祖也. 祭神, 祭外神也. 祭先主於孝, 祭神主於敬.”이라고 풀이하였다.
8)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秦始皇 이전을 선진시대라 부른다. 따라서 先秦儒學은 공자와 맹자 당시에 출현한 유교사상을 총칭한다.
9)『역정전』건괘, 괘사
10)이정용,『역의 신학』(서울: 대학기독교서회, 1998), 76-77쪽 참조. 주역을 기독교 신학으로 읽은 이정용(1935-1996)은 “‘궁극적 실재로 서의 역, 역 자체로서의 신’을 제시하면서, 신은 창조적인 생성과정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의 중심이요 내면적인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주는 모든 만물의 근원인 살아 변화하는 신 때문에 변화한다. 따라서 세계와 신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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