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찾기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김철수

2012.05.11 | 조회 11932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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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일본
필자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속담에는 자연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하고 조심하란 경구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화산, 지진. 자연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곧 믿지 못한다. 대신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의 믿음이지만.

작년에 일본열도 동북지방에서 큰 쓰나미가 덮쳐 일본 역사에 전무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딛고 조용히 사후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 소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 문화’라 칭송도 들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일본종교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왜? 일본사회를 이해하는데 종교(문화)는 필수라 보기 때문이다. 종교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 종교가 흘러들어왔다. 자생적 종교라 믿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신도 등 갖가지 종교문화에서 구성되어진 사고방식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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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일본사회에는 종교도 참 많다. 마치 ‘종교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는?” 하고 물으면 “무종교”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예를 찿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단지 병존하여 있는 전시장이 아니라, ‘토착적이고 외래적인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 감정,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섞이고 짜인 일종의 직조물’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 곧 수많은 가미[神, 精靈]로 가득 찬 나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일본인은 종교에 이상스럽게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3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8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조사한 〈종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고 답한 사람이 75%에 달했고(그러나 ‘신불神佛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54%였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23%였다. 곧 ‘종교를 가진 인구’는 1979년 조사에서 34%였던 것과 비교하면 11% 감소한 것이다. 이는 근 30년 간 거의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의 91%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50% 이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의 종교 귀속의식은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세적이며, 풍부한 종교적 생활
그러면 도대체 일본인의 종교관은 어떤 것일까?
일본사회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 신종교 등 각종 계통의 종교단체가 400개를 넘고, 그 활동도 사회 전체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인 심성과 행위를 보여준다. 경제나 정치,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제외해버리면 그 의미(meaning)가 상실되어 버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유명한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특정 기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업공양탑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상이나 불단, 신단(神棚, 가미다나)들, 그리고 각종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출생, 결혼, 장례식 등 각종 통과의례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 공양(供養)의 확대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조나 죽은 자에 대한 공양, 그리고 유산, 중절, 사산된 태아[水子みずご, 미즈고]에 대한 수자공양(竪子供養). 그러한 공양시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전국유산아(流産兒) 무연(無緣) 공양탑(生長의 家에서 1961년 건립), 오사카에 세워진 73미터나 되는 수자공양탑[辯天宗冥應寺] 등은 모두 낙태아의 위패를 제사하고, 지장(地藏)을 만들어 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페트(애완동물)공양탑도 있고, ‘00家愛犬之墓’라 적힌 납골당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는 인형공양도 있으며, 최근 못쓰게 되어버린, 곧 생명력이 다한 게임기 공양도 있다.

14110_p132_07현대사회는 합리화 및 효율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음(陰)적인 세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세계를 찾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갈망이나 불안감을 종교는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를 일러 ‘위협산업’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종교가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여러 지역에 동물묘지[動物靈園]가 설립되어 번성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인형, 게임기의 생명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小)가족화 된 오늘날 개나 고양이 등이 자녀 형제와 똑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대행 역할을 종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종교의 특이성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종교에 귀속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종교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에도(江戶)시대(17~19세기 중반)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신에게 출생을 알리고, 일상생활은 유교윤리에 따르다가, 죽었을 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개 남자아이는 출생 후 31일째, 여자아이는 33일째, 그리고 ‘7-5-3’이라 하여 남자아이는 3, 5살, 여자아이는 3, 7살 되는 해 11월 15일 신사참배를 한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씨신(氏神, 우지가미: 지역공동체가 숭배하는 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자(氏子, 우지코: 지역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다. 신에게 아이의 성장을 보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공동체로서는 공동체의 일원을 맞아들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유교적 일상생활이 근대 서구적 양식으로 바뀌어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루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의 인사(初詣, 하츠모우데)는 신사에서,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올리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다중신앙은 일본인에게 종교란 현세를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인에게 진리란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을 넘어선 이념이나 법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절대라든가 보편이라든가 불변성 혹은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모두가 그대로 진리일 뿐이며,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일본인의 사유방식은 이 세상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가미(神)조차 오류를 범한다.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명히 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싸울 때에도 양쪽 모두 이기고 졌다는 식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곧 일본인이 고대로부터 형성하여온 ‘화’(和)의 관념과 통해 있다. 오갈 데 없는 섬나라에서 평화는 상이한 것들의 공존, 그것을 허용하는 관용성이 가장 현실적인 화(和)라고 보는 것이다.


신불습합(神仏習合)으로 이뤄진 신관
이런 화(和)의 정신이 종교에도 스며든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전까지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이었다. 신도와 불교가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교사원(寺院) 내에 신사의 토리이(鳥居)가 있고, 하지만 대보살(八幡大菩薩), 신사의 신을 불(仏, 호토케)이라 부르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곧 일본은 고래로부터 ‘팔백만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석가도 예수도 일본에 오면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 동시에 일본인은 해외의 사상을 변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바꿔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썩음의 신, 강의 신….

유바바 : “여기는 말이야, 인간이 올 곳이 아니야. 8백만의 신령님들이 지친 몸을 달래러 오는 목욕탕이란 말이다.”

일본에서 신을 ‘가미’(カミ)라 한다. ‘가미’는 선악, 귀천, 강약, 대소 그리고 초인적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가미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실제로는 1천이 좀 넘는 신들이 보이고, 『고사기』에도 300개 이상의 신이 등장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의이다.

“가미는 우선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신이며, 또한 그 신들을 숭배하는 장소인 사원에 거주하는 정령들이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그리고 조류, 짐승, 수목, 초목, 바다 같은 것도 포함된다. 옛날 관례로는 비일상적인 것, 초월적인 덕목을 지닌 것,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을 막론하고 ‘가미’라고 불렀다.”

‘팔백만 신’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신의 수는 무수히 많다. ‘가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다수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것은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 지수풍토 등을 비롯하여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붙여진 가미의 명칭이다. 위인,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세 말기에는 인간 자체를 가미로 모시는 이키가미(生き神) 관념까지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고, 신을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 종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종교화 토양이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인은 고대로부터 신과 부처들을 여러 가지로 짜 맞추면서 모셔왔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독점적으로 믿는 태도는 발달되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집안에 불단과 신단이 동시에 모셔져 있다. 출생해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를 바라며, 죽어서는 불교식 장례식을 거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종교적 혼합이나 절충현상이 심하다. 정월에 신사를 참배하고,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나 백중맞이(盆:봉. 8월 15일 조상을 제사하는 불사)에는 사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때로는 신종교의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또 대다수는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답한다. ‘무종교이지만 종교심은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습관화되어 버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의미는 교단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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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역사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일본인의 무의식에는 강렬한 원령(怨霊)신앙과, 원령을 발생시키지 않는 ‘화’(和)의 신앙이 있고, 신도는 그 위에 성립했다고 지적하였다. 불교도 결국은 원령을 진혼(鎮魂)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독특한 ‘언령’(言霊, 우리가 내뱉는 말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말을 삼가야 된다는 믿음)신앙도 일본인이 무의식 내에 ‘화’(和)를 이루려는 사고구조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원령 신앙을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노노케’(もののけ)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 원령이다.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는 숲의 원한이 낳은 재앙의 신 다타리 신의 저주, 그 저주를 풀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일본 원령신앙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종교현황
14110_p132_04그러면 교단종교를 중심으로 일본사회의 종교현황을 살펴보자.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교 신자수는 신도계가 약 1억 580만명, 불교계가 약 8,900만명, 기독교계가 약 200만명, 그 외 약 900만명으로 합계 2억 600만명이 된다. 일본의 총인구가 1억 2천명 정도이므로 2배 정도의 신자수가 되는 것이다. 신도계와 불교계만으로도 거의 2억명이 된다. 이는 조사가 설문조사로 행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단체의 신자수를 많게 신고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 불교의 신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오랫동안 신불습합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메이지 초기에 신불분리(神仏分離)가 이루어진 후에도 신도와 불교 사이의 구별이 애매한 면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신단[神棚]을 모신 가정에 불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인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인 가정이 많다. 이처럼 신도를 신앙하는 자와 불교에 귀의하고 있는 자를 포함하면 2억명을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신도와 불교 2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토착신앙이 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신도와 불교는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신도는 크게 나눠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神社神道), 막말(幕末) 이래 형성된 교파신도(敎派神道) 및 종교단체를 결성하지 않고 가정 및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신도(民俗神道)가 있다.

14110_p132_05신사신도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없고(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명확한 교의가 있다), 엄밀한 입신(入信) 규정도 없다. 씨자(氏子)로 들어가는 것이 이에 가깝지만, 신단[神棚]을 설치하거나 신사에 기부 및 제사(祭事)에 참여하는 경우를 신자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종교법인이 된 신사는 약 8만개이며, 또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숭경(崇敬)을 받고 있는 신사도 다수 있다. 이러한 신사에서 받들어지는 제신(祭神)은 흔히 팔백만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실로 다양하며, 또 제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사 중에는 신궁, 대사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신사들도 있으며, 이 중 신궁은 일본왕실과 관련된 신사이거나 역대 일본왕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신도의 종교전통 내에서 특정 조직자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신자가 형성되는 조직종교이다. 때문에 신종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주교(黑住敎), 출운대사교(出雲大社敎), 부상교(扶桑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이다.

불교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대승(大乗)불교이다. 불교는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다.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나라(奈良)시대(710~794)에는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 하여 삼론종(三論宗), 성실종(成実宗), 법상종(法相宗), 구사종(倶舎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厳宗) 등이 널리 퍼졌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85~1333) 초기까지 일본불교는 8종이었다. 남도육종에 천태종, 진언종이 더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한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호넨(法然)의 정토종,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일련(日蓮)의 일련종 등 일본인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불교가 형성되었다. 또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임제종과 조동종도 전해졌다.
2차대전 이전에 종교단체법이 성립될 때 28종파로 정리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종교법인령이 성립되고 정부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수의 불교 교단이 분파 독립되어 2007년 말 현재 154개의 불교종파가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기독교의 일본 전도는 1549년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 Xavier)가 일본에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초두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를 금지하였고, 도쿠가와(德川) 막부도 철저하게 탄압을 하여 기독교도는 이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일본에 기독교의 본격적인 재포교가 준비된 것은 막말 경(19세기 초 중반)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들도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도수는 현재 세례를 기준으로 하여 공식적으로 전인구의 0.8%이다. 사비에르가 일본열도에 최초로 포교했던 직후의 시기에도 1%를 넘었었다. 현재 신자수가 1%를 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본의 기독교 관계자는 이를 ‘1%의 벽’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율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낮다. 또 한국 등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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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수가 적다고 해서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 사회에 점하고 있는 위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기독교의 위상은 그 공식적인 신자수를 능가하는 위치에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이어 제2위의 종교이며,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본의 종교를 말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기독교는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추진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명확한 입신(入信) 의례를 거쳐 종교조직의 회원이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공식적 신자수가 적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별로 나누어 보면, 신자수가 제일 많은 교파는 가톨릭(구교)이다. 가톨릭의 총수는 45만명 정도로 일본 총인구의 0.3%이다.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최대교파는 일본기독교단이다. 또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복음파라 불리는 교파는 구미권의 기독교에 비해서도 성서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성서만을 보는 ‘무교회 운동’(지도자는 内村鑑三, 우찌무라 간산이 유명하다)도 있다. 그리스정교(일본정교회)의 신도수는 일본에서 1만명 전후로 추정되며, 또 여호와의 증인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종교, 일본사회의 종교 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1991년), ‘행복의 과학’이 돌연 일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일본인들의 동경하는 도쿄대학의 법학부 출신이었고, 그가 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돔에서는 그의 탄생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성황리에 치러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행복의 과학’은 신종교였다. 소위 신종교가 종종 쓰는 수법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포교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1990년대는 세기말적 흐름이 일본사회를 지배하면서 제4차 종교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일본사회에서 이러한 종교 붐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제1차가 막말유신기, 제2차는 2차 대전 패전 직후, 제3차가 1970년대였고, 바로 제4차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막말유신기, “에에쟈나이까”
19세기 일본사회에는 역사적인 거센 조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이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왔으나 막부는 쇄국을 고집해 문을 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黑船] 네 척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아니 위협했다. 결국 막부는 미국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일본의 문을 개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민중들 사이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이를 ‘오카게마이리’(お陰參り)라 한다. 이세신궁에 모신 신의 음덕을 바라는 참궁(參宮)이었다. 1830년의 오카게마이리는 약 500만명의 인파가 들끊었다. 오사카에서 이세(伊勢)에 이르는 길가에는 참궁을 위한 인파가 혼잡하였고, 그 사람들은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신위(神威)를 받들어 미친 듯 “에에쟈나이까(いいじゃないか)”로 쓴다. 곧 “(세상바꿈이)좋지 아니한가”를 노래하고 춤추며 이세신궁으로 향했다. 이러한 참배물결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서, 봉건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867년 막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大政奉還]했고, 조정은 천황정치의 부활을 정식 공포했다[왕정복고]. 이듬해 천황은 수도를 쿄토에서 도쿄로 옮기고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이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1869년에 다이묘(大名)들의 영지와 영내 백성들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하고[版籍奉還], 1871년에는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대신 전국을 현으로 나누어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했다[廢藩置縣]. 또한 메이지정부는 신사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祠)’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취급하여,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한 국가신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래서 신사는 국가가 제사 및 보호 유지해야만 하는 시설이 되었다. 이러한 막말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흑주교(1814), 천리교(1838), 그리고 금광교(1859) 등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다.

20세기 세 번의 종교 붐, ‘신들의 러시아워’
20세기에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와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그리고 1990년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세 번의 종교 붐 현상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일본사회에서 국가신도가 폐지되었다. 천황 스스로가 신격(神格)을 부정(인간선언)하였고, 정교분리와 신교자유를 보장하는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종교사에 미증유의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히도노미찌, 대본, 혼미찌, 창가교육학회(1946년에 창가학회로 개칭)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국가신도에 종속되었던 천리교와 금광교도 재출발하고 있었다. 또 생장(生長)의 가(家), 대일본관음교단(오늘날 세계구세교), 지우(璽宇, 1945), ‘무아(無我)의 춤’으로 인해 ‘춤추는 종교’로 일약 유명한 천조황대신궁교 등이 재건 재발족 개교되었다. 이처럼 전후부흥기는 여러 신종교들이 난립 경쟁 발전한 소위 ‘신들의 러시아워’ 시기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에 힘입어 일본 국내에서 풍요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시작된 신비 주술 붐은 소위 ‘신신종교’ 및 ‘작은 교단’의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화가에는 ‘파친코점보다 그 수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로 소교단이 배출되고 얼마 안돼 신신종교로 불리워질 정도로 대교단으로 급성장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4번째 종교 붐은 세기말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세기말 때마다 찾아오는 종말론 이야기, 특히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예언 등은 서두에 보았듯이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신종교들을 탄생시켜 주고 있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종교단체로 등록된 신종교 교단수만 보더라도 300여개가 넘고 있고, 신자수도 대략 인구의 1~2할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종교 교단들은 각종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출판 문화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계진출은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였고, 이 이외에도 PL, 영우회(靈友會),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 생장의 가 등의 신종교 단체가 정치와 끊임없이 관련을 맺어왔다. 또한 이러한 신종교 교단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식의 종교관
일전에 이름있는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가 일본사회는 격조가 낮은 여러 잡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자연재해가 휩쓴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사회, 아니 일본의 종교문화를 잘 모르고 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종종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심지어 우리가 내뱉는 말[言] 한 마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식조사에서 ‘믿는 종교(교단)는 없으나 신불(神佛)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 응답이 다수라는 결과도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는 실제로 종교의례에 참가하면서도 특정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하고, 스스로는 ‘무종교’(無宗教)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신 및 불(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고 있지만 특정의 교단종교에 귀속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과 일본사회의 종교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차라리 ‘일본교’(日本敎)라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본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신앙, 팔백만신, 일상생활을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수용하고 녹여내는 습합(習合)신앙 등은 ‘일본교’라는 명칭을 무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무종교라기보다 일본교라는 종교의 신도’ 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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