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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다시 개벽 7회 천주와 하나 되는 시천주侍天主

문계석 연구위원

2016.12.07 | 조회 3175

◇동학과 다시 개벽 7회

 

천주와 하나 되는 시천주侍天主

 

 

4) 천주를 입증하는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법

 

절대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천주의 실존을 부정할 것이다. 그들은 천지만물의 창조변화와 질서유지란 단순히 자연의 이법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자연의 창조변화를 이법적 천으로 인식하려는 자들도 이 노선에 편승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수운은 우주자연의 모든 것이 천주의 조화자취이고, 성인이 출현하여 그 자취를 궁구하여 이법을 창안해 가르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즉 우주자연이란 단순히 이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보면 천주의 조화로 인한 자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창조변화와 질서 유지는 절대자 천주에 근원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입증 방식은 수운이 새롭게 제시한 불연기연에 의한 논법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수운이 제시한 논법, 즉 불연에서 기연으로의 전환을 통해 천주의 실존을 입증해 보고자 한다. 이 논법은 일찍이 서구에서 형이상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본체론적 증명우주론적 증명의 형식에 비교해볼 때 근본적으로 다른 논법임을 알 수 있다.

 

불연기연의 의미

수운이 천주를 증명하는 방식은 자신이 새롭게 창안한 독특한 논리, 즉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논법이다. 그는 불연에서 기연으로의 전환을 통해서 천주의 실존을 입증한다.

불연기연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수운은 확정하기 어려운 것은 불연이요 판단하기 쉬운 것은 기연이다. 먼데를 캐어 견주어 궁구해 보면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고 또 그렇지 않은 것이다. 조물자에 붙여 보면 그렇고 그러하며 또 그러한 이치이다.”라고 정의한다. 불연은 그렇지 않다는 부정의 뜻이다. 불연은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안되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초논리적인 불확실성의 세계를 말한다. 반면에 기연은 그렇다는 긍정의 뜻이다. 기연은 현상으로 드러나 있어서 확인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납득이 되는 것이고, 논리적으로 궁구해 보면 알 수 있는 확실성의 세계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창조변화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그 근원을 파악해야 한다. 근원이란 창조변화의 제1원인, 즉 아르케arche이기 때문에 자체로검증되거나 인식되는 대상은 아니며, 곧 불연에 속한다. 그렇지만 근원을 전제하지 않으면, 현상세계의 기연이란 성립될 수 없다. 그렇다면 천주는 분명히 기연이 아니라 불연의 영역이다. 불연의 영역에 속한 천주는 어떻게 확실성의 영역에 들어온다고 할 수 있는가?

우선 불연과 기연의 관계에 대하여 정의해보자. 불연과 기연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두 측면을 의미한다. 하나이며 둘이라는 의미는 본체와 현상의 관계로 파악해볼 수도 있다. 즉 기연을 현상으로, 불연을 본체로 본다면, 기연은 불연이 현상론적인 결과로 드러난 조화의 자취이고, 불연은 기연의 근원적인 바탕이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불연은 기연의 근거로 인식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근거로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천주이다. 다시 말해서 기연의 정점에서 보면 천주는 불연이 되지만, 불연의 정점에서 보면 천주는 기연의 근거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수운이 제기한 불연기연의 논법은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동경대전불연기연장을 검토하여 형상론의 관점, 존재 원인의 관점, 근거의 관점에서 불연기연의 논법을 제시하여 천주의 실존을 입증해볼 것이다.

 

형상론의 관점

수운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형상形相에 주목한다. 사람은 사람의 형상이 있고, 개는 개의 형상이 있으며, 콩은 콩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모든 만물은 각기 고유한 형상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고유한 형상은 셀 수없이 많고 다양하게 존재하며, 각각의 형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들의 형상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인가? 그것은 선대로부터 변함없이 이어져온 것이거나 그러한 형상을 창조할 그 무엇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 ‘로부터 우연히 스스로 된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에서 질서를 갖춘 형상은 절대적인 없음[]으로부터 우연히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형상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오늘날 생물학적인 유전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람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낳고, 개가 개의 형태를 낳으며,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지 팥이 나오는 법이 없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여 흐르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형상을 갖춘 수많은 종류의 것들이 각기의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수많은 종류의 것들이 새로운 형상으로 창조되어 존속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수하고 다양한 형상은 누가 창조한 것인가? 그것은 분명히 그러한 형상을 조화造化하는 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 질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화를 짓는 자는 유한한 인간의 인식 영역을 넘어서 있기 때문에 불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수운에 의하면, 각기 창조되어 존재하는 형상의 유래를 찾아 먼데까지 견주어 추적해 볼지라도, 최초의 형상이 각기 어디로부터 유래하였는지를 알기가 아득하기 때문에 기연이라고 말하기가 어렵고 오직 불연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 원인의 관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원인(causa)에 관한 문제는 존재 원인과 운동의 원인으로 따로 구분하여 말해볼 수 있다.

먼저 존재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의 존재를 예로 들어 보자. 나의 존재는 부모로부터 나에게로 전해진 것이다. 부모 없이는 나의 존재란 현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부모 없는 자식이란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그 말이다. 또한 나의 존재는 자손에게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나 없이는 나의 자손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모두 기연이다. 나아가 나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찾아 거꾸로 소급해서 올라갈 수 있다. 부모의 존재는 조부모로부터, 조부모의 존재는 증조부모로부터 최초의 조상에 이를 때까지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알 수 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조상까지의 파악은 모두 기연인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조상을 넘어 그 원인을 찾아 한 걸음 더 소급해 올라가게 되면, 인류의 존재는 과연 어떻게 해서 연유하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각기 다른 종류의 존재 또한 최초에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는가의 물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천지만물이 최초에 어떻게 해서 각기 존재하게 되었는가의 근원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알 수 없는 초논리적인 불연의 세계이고, 이에 근거해서 기연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연의 모든 운동 원인을 추적하여 최초의 원인을 밝혀 보자. 주변을 둘러보게 되면 자연적인 모든 것들은 잠시의 정지도 없이 운동 변화한다고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것들의 운동 변화의 방식은 각기 다르다. 그것은 각기 다른 방식의 원인이 제공되기 때문에 그렇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운동과 변화의 원인에 원인을 찾아 무한히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사유는 더 이상의 원인이 없는 최초의 운동 원인에까지 이를 것이다. 최초의 원인 직전까지의 파악은 모두 기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원인 그 자체를 넘어서게 되면 더 이상의 원인이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사유의 추론을 통해서 인식해 가다보면 기연의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정점에서 진일보하게 되면 대립항인 불연不然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 변화는 궁극적으로 불연에 근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근거의 관점

평소에 아무런 반성 없이 살 때는 기연으로 보이는 것들도 반성적으로 그 이유나 근거를 따져 물을 때는 기연이 아닌 것이 허다하다. 수운은 不然其然장에서 따져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적인 사태에 대해 대략 7가지의 예를 들어 불연을 말하고 있다.

4계절의 변화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갈마듦으로써 만물이 생장염장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四時之有序兮], 선천의 운수가 가고 후천의 운수가 옴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산위에 물이 있는 까닭[山上之有水兮], 말도 못하는 아기가 자신의 부모를 알아보는 이치[赤子之穉穉兮 不言知夫父母], 성인이 출현할 때 황하수가 한 번 맑아지는 까닭[聖人之以生兮 河一淸千年], 밭을 가는 소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이유[耕牛之聞言兮], 까마귀가 반포지은 하는 까닭[烏子之反哺兮], 강남으로 날아갔던 제비가 봄이 오면 자기가 태어난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유[玄鳥之知主兮]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근거를 알기란 그리 쉽지 않은 불연이다.

기연은 합리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고, 불연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것들의 조화자취를 궁구하게 되면 논리적으로 그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 이치는 기연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치의 정점에 이르게 되면 이치를 이치가 되도록 하는 근원’, 즉 기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으로서 불연에 직면하게 된다. 기연은 모두 인식에 속하지만 불연은 인식 불가한 초논리적인 것이다.

 

천주에 대한 입증은 불연에서 기연으로의 전환

천주에 대한 증명은 불연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 즉 불연에서 기연으로의 전환에 있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사유의 질적인 도약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유의 질적인 도약은 곧 먼데를 견주어 조물자에 붙여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연에 속했던 모든 것이 조물자의 그렇고 그러한 이치에서 벌어진 것임을 인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유의 질적인 도약은 어떻게 가능한가? 본말本末을 궁구하는 방식이 그 하나일 수 있다. 그래서 수운은 이에 외적으로 나타난 지엽적인 현상[]을 헤아려 살피고 그 근본[]을 궁구해 보면, 만물은 만물이 되고 이치가 이치 되는 대업은 얼마나 먼 것이냐고 했던 것이다. 즉 자연세계에 나타나는 유형적인 천지만물의 현상[]을 깊이 있게 궁구하여 보면, 그것들이 나타나도록 하는 어떤 무형의 이치[]가 있다. 현상을 현상이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무형의 이치라는 얘기다. 그런데 무형의 이치가 이치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도이다. 이러한 도와 관련하여 대학大學에는 드러난 현상과 그 근본이 있고 사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 할 일과 나중 일을 가릴 줄 알면 도에 가깝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도는 다름 아닌 근원의 도, 다시 말해서 천주의 도이다.

수운은 왜 불연기연장에서 불연이었던 천주를 기연으로 전환하여 그 존재를 입증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천주의 존재를 깨달아야 천주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불연이란 알지 못하는 것이므로 불연을 말하지 못하고, 기연이란 아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기연을 믿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는 것은 말할 수 있고 믿을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은 불연을 기연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불연을 기연으로 전환하는 것은 곧 본말本末을 궁구하여 무형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다. 무형의 이치가 이치도록 하는 것은 곧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근원으로서 천주의 도를 밝히는 것이다.

천주의 도에 대한 깨달음은 사유의 질적 비약을 동반한다. 사유의 질적 비약은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며, 믿음과 동시에 불연이 기연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믿음, 사유의 질적 비약, 그리고 곧 천주의 도를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모든 불연을 조물자에 붙여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불연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기연으로 전환되어 우리가 천주를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믿음을 통해 불연이 기연으로 전환되고, 기연을 통해 다시 천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며, 이를 통해 천주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과 인식의 관계로 볼 때, 수운은 결국 천주를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천주를 믿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천주와 하나 되는 시천주侍天主

 

수운이 창도한 동학의 목적은 지구촌 인류가 모두 금수와 같은 상태를 버리고 신천지의 새 인간으로 거듭남으로써 도성덕립道成德立한 성인이 되는 길이 그 하나이다. 그 방안으로 그는 각자에게 타고난 마음을 닦고 정기를 바르게 하는[修心正氣]” 수행론을 제시하고 있다. ‘수심정기의 수행론은 유교나 불교의 도법과는 다른, 수운 자신이 제시한 수덕修德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수덕의 정법은 정성과 공경을 다해 한마음으로 천주를 신앙[誠敬信]’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수운이 도덕가에서 성경誠敬 이자二字 지켜내어라고 한 뜻은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한마음으로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핵심이다. 믿음의 대상은 천도의 주재자, 즉 인격적 상제上帝이며, 상제를 신앙함으로써 모두가 그와 한 마음으로 통하고, 천도를 깨달아 천명에 따라 살게 되면 누구나 도성덕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천주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되는 것인지를 선명하게 정의하는 일이다. 천주를 바르게 신앙하지 않으면 천주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결국엔 맹목적인 신앙관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주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유지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천주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수운에게 천명으로 내려진 주문呪文을 올바르게 밝히는 것에 들어 있다고 본다. 주문이란 천주를 지극히 위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수운이 말하는 천주를 무형의 조물주와 유형의 주재자로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학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제로부터 직접 받아 내린 시천주 주문侍天主 呪文을 명확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천주 주문은 본주문강령주을 합하여 총 21자로 구성되어 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本呪文),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降靈呪)”가 그것이다. 시천주 주문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핵심을 이루는, 본주문의 천주天主와 강령주문의 지기至氣관념을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필자는 먼저 시천주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 강령주문의 지기에 대한 의미를 보다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분석해볼 것이다. 그런 다음 지기와 천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바른 것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시천주가 가지는 포괄적인 뜻을 파악해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수운의 동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 가르침에 대한 최종 목적을 간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천주 신앙을 토대로 하여 동학의 궁극목적인 신인합일의 경계(“吾心卽汝心”)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볼 것이다.

 

1) 지기至氣에 대한 정의

 

세상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구도의 길에 들어섰던 수운은 경신년 45일에 처음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이 변화가 일어남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은 기화지신氣化之神의 경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기화지신의 경계란 밖으로는 기의 변화가 있고(外有氣化) 안으로는 신령의 작용이 있음(內有神靈)을 의미한다. 즉 외적으로는 상서로운 기운(성령의 기운)과의 접촉을 통해 신체의 급작스런 변화가 나타나고(외유접령지기外有接靈之氣), 또한 내적으로는 성령이 들어와 수운 자신은 영적인 자극을 통해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인 천주의 마음과 통하게 되고, 이로부터 천주가 내려주는 가르침(내유강화지교內有降話之敎)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운이 천주와의 직접적인 친견이 이루어지고, 이로부터 천주의 가르침을 천명으로 받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곧기화지신의 경계에 이름을 전제로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기화지신의 참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기화氣化에 대한 뜻을 알아야 하지만, 우선 강령주문, “지금 지극한 지기에 접해있으니 원컨대 지기가 크게 내림이 되게 해 주십시오[至氣今至願爲大降]”라는 8자에서 지기至氣에 대한 의미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지기의 의미 분석

지기란 무엇인가? 수운은 지라는 것은 지극하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지기는 허령창창하여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고, 명령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이다. 형체가 있는 것 같으나 어떤 상태인지를 형상하기 어렵고, 듣는 것 같으나 보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혼원한 하나의 기운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정의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지기에 대한 수운의 정의를 다섯 가지 관점, ’, 허령창창虛靈蒼蒼’,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 연이여형이난상然而如形而難狀 여문이난견如聞而難見’, 시혼원지일기是渾元之一氣로 구분하여 각각 그 의미하는 바를 검토해 보고, 이를 종합적으로 설명해볼 것이다.

에서 지극至極하다는 뜻이다. 이는 지기가 모든 창조변화의 전체요 근원임을 나타내기 위한 접두어로 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이란 더 이상 가늠할 수 없는, 상위의 근원이 없는 궁극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원인에 원인을 추적하여 소급해 올라가면 더 이상 소급할 수 없는 최초, 더 이상의 근거를 요할 수 없는 궁극의 근원을 표시하기 위한 개념이라는 얘기다. 이는 결국 지기의 존재 위격位格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창조변화와의 근원에 근원을 추적하여 소급해 보면, 결국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불연不然에 도달하게 마련이다. 불연의 경계에 이른 정점은 가 갖는 의미이고, 여기에서 무언가를 최초의 근원으로 설정해야만 하는데, 지극의 대상은 바로 수운이 제시한 지기至氣라는 것이다. 수운의 우주론적 사고의 틀에서 본다면, 지기는 무형의 조물주가 운용하는, 만유 생명의 창조변화가 용사用事되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형의 조물주는 지기를 활용하여 만유의 존재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에서는 볼 때 지극은 곧 아르케arche’를 말하는 것과 같다. 동양의 성리학자들은 지극의 의미에서 우주만물의 궁극의 존재 근거로 본체를 설정하기도 한다. 주렴계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할 때의 태극太極의 경계에 해당한다. 나아가 주기론자가 제시한 물리적인 존재의 극으로 기를 설정할 때의 그 경계를 지칭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에서 허령창창虛靈蒼蒼이란 우주 전체가 허령으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기에 대한 본성을 규정하는 핵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수운은 앞서 분석했던 무형의 조물주에 대한 포괄적인 본성을 여기에서허령창창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천지만물을 짓는 조화지적의 본체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허령虛靈이란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가를 말해보자.

우선란 태허太虛의 의미와 같다. 태허란 아주 없는 무가 아니라 아무런 형체를 갖지 않는, 하지만 진공묘眞空妙有의 상태로서 천지간에 전일적全一的으로 가득 차 있는 천지기운을 뜻한다. 서화담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면 허란 곧 기의 모습이라 하였고, 태허太虛기가 가득 차서 빈틈이 없는 상태이며, “터럭 하나 용납할 수 없이 가득 찬 상태 를 지칭한다. 주기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천지만물이 구체화되어 나오는 근원이 된다는 의미에서 근원의 기[元氣]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말해본다면, 자체로는 무엇으로도 규정되어 있지 않으나 장차 그 어떤 것으로 규정되어 구체화될 수 있는 상태의 역동적인 질료matter로 이해할 수도 있고, 물리적인 차원에서 말해본다면 우주 전체에 편만해 있는 에너지와 같은 일종의 (에너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란 모든 생명의 존재 근원으로 정신적인 의미의 신령神靈함을 뜻한다. 신령함이란 용어는 원초성을 강조하여 달리 표현하면 근원의 신, 즉 원신元神이라 할 수 있다. 원신은 우주 전체에 충만하게 깃들어 일신一神으로 말할 수 있으며, 어디에나 침투해 들어가 생명의 창조와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의 발원發源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동방 한민족의 도가 사서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주체는 일신이지만, 각기 따로 있는 개별적인 신이 아니나 작용으로 본 즉 삼신이다. 삼신은 만물의 창조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전에서는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도전4:62:4-6)라고 하여 창조변화의 근원을 신으로 규정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태허와 신령으로 분석되는 허령신과 기가 융합되어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신과 기는 근원의 의미를 강조하여 말한다면 원기와 원신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신기神氣는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두 측면이다. “은 기를 떠날 수 없고, 기 또한 신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그 뜻이다. 이를 현상의 관점에서 말해본다면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측면의 관계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정신의 극단은 물리적인 것이고, 물리적인 것의 극단은 정신적인 것으로 말할 수 있는데, 사실 정신과 물리란 한 몸체의 두 측면이라고 할 수 있듯이, 신과 기는 하나의 두 측면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허령은 우주 전역에 꽉 들어차 있는 신기神氣(元神元氣)의 다른 표현이고, 곧 무형의 조물주에 대한 포괄적인 본성의 규정으로 볼 수 있다.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한 신령은 만물의 창조변화를 이끌어가는 형상이 없는 생명의 신이요, 그 기운은 천지만물로 구체화되어 드러나는 힘의 원천으로 천지기운이 되는 셈이다. 즉 천지만물이 창조변화로 드러날 때 작용의 주체는 신령(원신)이고, 객체화되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태허(원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유는 생명의 신기가 깃들어 존재하게 되고, 신과 기가 분리된다면 이는 곧 죽은 것이며, 결국 각기 흩어져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령은 태허를 수단으로 하여 만유의 생명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며, 태허는 신령을 통해 만유의 생명으로 구체화되어 현실성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

창창蒼蒼이란 숲이 푸르고 무성하게 자라고 늙어가는 모습을 뜻한다. 즉 창창은 허령한 지기의 작용으로 인해 개별적인 만유생명이 우주 전체에 역동적으로 창조변화되는 과정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우주만유는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한 기와 신의 묘합妙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주만물은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해서 음양동정의 법도에 따라 천지기운이 작용하여 창조변화되어 가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음양기운의 작용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기자체가 아니라 신이다. 즉 음양동정으로 운용되는 기에는 항상 신이 따르고, 신이 주체가 되어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게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과 기의 묘합으로 만유생명의 창조변화가 이루어지는데, 그 흔적을 수운은 조화지적造化之迹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에서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사불명無事不命이란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한 지기가 모든 일()에 전적으로 간섭하고 명령함을 표현한 뜻이다. 여기에서란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온갖 종류의 개별적인 사태事態를 지칭하기 때문에, 무사불섭 무사불명이란 지기가 천지만물의 창조변화에 간섭하고 명령하지 않음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기가 모든 일에 대해간섭명령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에서 말한허령을 본성으로 한다. 허령은 어떤 의미에서 간섭과 명령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민족의 역사경전 환단고기의 내용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즉 지기의 본성인 허령은 천지 기운인 태허[一氣]와 생명의 주체인 신령[三神]으로 분석되는데, 그 신령은 전일적인 일신이나 그 작용으로 보면 삼신(세 가지 본성)으로 나타난다. 달리 표현하면 무릇 생명이 되는 본체는 일기이니 일기는 그 안에 삼신을 포함하며, 모든 지혜의 근원 또한 삼신이니 삼신은 밖으로 일기를 감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와 융합된 삼신은 기를 운용하여 생명의 창조創造, 성육成育, 목적目的性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즉 삼신의 창조성은 존재이법을 짓는 것이고 성육성은 태허로 표현되는 천지기운을 동원하여 이법을 실현하는 것이며, 목적성은 기운의 과불급을 조절하여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목적의 실현으로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동방 한민족은 신의 이러한 조화작용을 삼신론으로 표현해서 조화, 교화, 치화의 신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취해보자. 사람은 지기를 받아서 사람으로 태어나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맨 먼저 지기를 타고 들어온 신령이 부모에서 제공된 유전 정보를 파악하고, 정보에 따라 천지기운’(태허)을 끌어 들여 생명체를 형성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앞서 말한 조화의 신이 개별적인 사람의 존재이법(정보)을 파악하고, 교화의 신이 이법의 실현에 적합한 에너지(천지 음양기운)를 끌어 들여 조직화하면서(태아의 성장 발육) 영적인 깨달음으로 발육시키고, 그리고 치화의 신이 창조의 목적(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내적으로는 생명의 자기조직을 질서 있고 균형 있게 조절하고 외부적으로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최선의 목적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가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체의 활동은 신과 기의 묘합 작용이다. 즉 사람의 몸 안에는 항상 내재적인 원신의 신령함(內有神靈)이 깃들어 있고, 밖으로는 기화의 작용(外有氣化)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체 안에는 모두 신이 들어가 작용하고, 이것의 활동에 의해 개별적인 생명의 형성화 작업(생명체의 자기조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생명체에서 활동하는 지기(태허+신령)가 본연을 회복하여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면, 이 상태를 수운은 기화지신氣化之神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게 됐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간섭과 명령의 주체는 내재적인 신령이고 그 작용으로 드러난 것은 태허()의 운동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에서 연이여형이난상然而如形而難狀 여문이난견如聞而難見이란 신과 기의 묘합 작용(지기의 활동)을 우리의 감각 지각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을 표현한 뜻이다. 이 사실은 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생동하는 천지만물의 모든 창조변화는 지기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지기 자체는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한 허령을 본성으로 한다. 그러므로 지기는 천지에 가득 차 있어서 모든 창조변화의 근원이 되지만,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기 때문에 신묘神妙하다고 묘사할 뿐이다.

시혼원지일기是渾元之一氣는 글자 드대로 혼융된 근원이 하나의 기운이다. 여기에서 혼융된 근원[渾元]’이란 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원기元氣원신元神의 융합을 뜻하는데, 수운은 이것을 통섭하여 일기一氣라고 표현한 것이다. 지기는 융합의 의미에서 보자면 신은 기요 기는 허이며 허는 곧 일기라고 말하는 일기인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무릇 생명이 되는 본체는 일기이니 일기는 그 안에 삼신을 포함하며, 모든 지혜의 근원 또한 삼신이니 삼신은 밖으로 일기를 감싸고 있다.”고 한 것과 맥이 상통한다. 따라서 수운의 지기는 본체로 보면 우주 전역에 깃들어 있는 허령창창한 일기 이지만, 그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 바로 그 주체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운의 지기는 천지기운과 신이 혼융된 것이며, 천지만물의 모든 창조변화란 전적으로 천지에 편만해 있는 신과 기의 묘합妙合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과 기는 각기 서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기의 움직임에는 항상 신이 타고 있어 신이 이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개별적인 생명체는 나름대로 자기조직을 하면서 상이하게 창조 변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전일적인 일신 즉 일기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동되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기의 존재론적 특성

수운이 제시한 지기는 천지간에 가득하다는 의미에서 모든 개별적인 생명체의 창조변화를 이루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지기는 에서 보듯이 단순히 물리적인 근원으로서의 순수한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근원으로서의 신령을 포함한다. 즉 지기는중심에는 반드시 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뜻한다.

신은 근원으로 보면 일신이지만, 그 작용으로 보면 삼신의 의미를 갖는다. 삼신은 각기 세 손길로 작용하는데, 조화의 신은 개별적 생명의 창조이법의 근거가 되고, 교화의 신은 이법을 실현하는 성육의 근거가 되며, 치화의 신은 목적으로 이끄는 주재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수운이 말하는 지기의 존재론적 특성은 천지간에 편만해 있는 물리적 에너지와 같은 ’, 그리고 를 운용하여 생명의 창조를 이끌어 내는 신으로 규정해볼 수 있다. 즉 신과 기의 특성이 혼융된 것이 수운이 제시한 지기이며, 이는 곧 에서 보듯이혼원의 일기로 정의되고 있다.

혼원의 일기로 정의되는 수운의 지기의 관념은 먼저 동양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에서 전제된 기화론氣化論의 우주관을 수용할 수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신의 특성을 포함하는 지기 관념은 서양의 창조신관에서 빚어지는 아포리아aporia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수운의 지기론은 형이상학적 우주론과 창조론을 통섭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지를 지적해 보자.

첫째, 수운이 말한 지기는 원기元氣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우주적인 질료(Universal matter)’의 의미라기보다는 자체로는 아무런 형체도 없는 무와 같다는 의미에서 태허太虛이고, 이는 곧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근원의 바탕이라는 의미로 규정될 수 있다. 바탕으로서의 원기는 우주 전체를 두루 관통하고 있어서 언제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고, 이로부터 모든 개별적인 창조변화에 필수적으로 관여한다는 의미에서 천지만물이 창조 변화되는 근원의 실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지기가 동양 성리학의 주기론主氣論의 사유를 일부 수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주기론에 의하면 천지만물이 창조변화되는 근원은 이다. 대표적으로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장횡거張橫渠(1020-1077)가 이에 속하는데, 그는 기의 본체를 태허太虛라 규정하고, 그 작용으로 기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일어남으로써 천지만물이 창조 변화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기일원론氣一元論적 형이상학의 입장이다. 이러한 사상의 노선은 정명도程明道에 계승되고, 명대明代에 이르러 육왕학파陸王學派(육구연陸九淵, 왕양명王陽明)로 이어져 조선으로 유입된다. 이후 조선에서는 기대승奇大升(1527-1572)을 중심으로 하는 주기론적 사상이 전개되는데, 이언적과 서경덕徐敬德이 이 진영에 속한다. 그들은 천지만물의 생성변화의 근거를 무형의 태허를 바탕으로 하는 일기의 취산작용聚散作用으로 본 것이다. 특히 화담 서경덕은 주기론적 입장에서 기를 떠나 리가 객관적으로 실재할 수 없다는 기외무리설氣外無理說을 제창하기도 한다.

둘째, 지기의 운용은 음양 동정의 굴신작용屈伸作用을 포함한다. 천주의 지기가 음양동정에 따라 운용되어 천지만물이 성쇠盛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음양이 서로 어울려 고르게 퍼짐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 만물이 그 가운데에서 화해 나온다고 했던 것이다.

셋째, 지기 관념은 전통적인 오행론五行論을 포함한다. 수운은 그런 까닭에 삼재의 이치가 정해지고 오행의 수가 나온다. 오행은 무엇인가? 하늘은 오행五行의 벼리[]이고 땅은 오행의 형질[]이며 사람은 오행의 영기[]이니, 천지인 삼재三才의 수를 여기에서 가히 볼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즉 지기의 펼쳐짐은 오행의 원리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행五行은 하늘의 이치를 근본으로 하여 나온 5 가지 법칙으로(“天爲五行之綱”), 만물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기운, 즉 목, , , , 의 기운이다. 땅은 하늘을 본받아 오행의 형질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地爲五行之質”). 그것은 땅에서 모든 형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행의 신령한 기운을 두루 갖춘 가장 영험한 존재가 된다(“人爲五行之氣”). 결국 천주의 지기는 삼재론과 오행론의 현상론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지기는 범신론汎神論의 입장을 수용한다. 수운의 지기는 우주 전체를 관통해 어디에나 편만해 있는 허령창창한 무형의 신기神氣이다. 앞서 분석했듯이, 이는 만유의 창조변화가 나오는 힘의 원천으로서의 원기元氣와 그러한 원기를 운용하여 만유의 생명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원신元神으로 구분된다. 달리 표현하자면 신과 기는 일체관계이지만, 굴신동정으로 작용하는 원기의 창조변화기운과 그 안에 내재해 있으면서 만물을 이끌어내는[有引出萬物] 원신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는 만유의 창조변화란 모두 신에 의한 기의 운용으로 빚어지는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2) 천주의 지기

 

강령주문에서 강령降靈이란 신령이 내림을 뜻한다. 수운 자신은 구도의 수행을 통해 지극한 경계에 이르게 됐고, 이로써 형언할 수 없는 대강령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체험은 그가 지극한 기운에 접하게 되어 자신의 몸에 기화지신氣化之神의 작용이 일어나게 됐음을 의미한다. 즉 그는 외부적으로는 지극한 기운으로 말미암아 몸의 떨림과 같은 이상 징후가 발생하고, 내부적으로는 일종의 영적인 비약 같은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지기와 혼연일체가 된 상태에 이른 것이고, 지기를 통해 천주가 내려주는 대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이를 깨달아 지기를 체화體化하게 되면 곧 도성덕립의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문제는 천주와 지기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이다. 지기는 천주의 지기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천주의 지기에서 지기가 천주에 속한다는 뜻을 의미할 수도 있고, ‘천주가 지기를 운용한다는 뜻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지기와 천주가 종속의 관계임을 뜻한다. 후자의 경우 또한 조화의 자취[造化之迹]가 만사만물이고, 모두 무형의 조물주가 지기를 운용하여 역사役事하게 된 현상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천주와 지기는 종속의 관계가 된다는 뜻을 함유한다.

필자는 천주의 지기에 대하여, 주체는 천주이고 지기란 천주가 운용하는 속성이라는 입장에서 논의해볼 것이다. 이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강령주문(“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금지今至’, ‘원위願爲’, ‘대강大降에 뜻을 파악하여 그 목적하는 바를 종합해 볼 때 보다 분명히 밝혀질 수 있다.

수운은 지기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에 대하여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게 되어 지극한 기운에 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빈다는 뜻이며, 대강이란 것은 (무한한 지기가 크게 내려 그것과 혼연일체가 됨으로써) 기화氣化의 작용이 일어남을 원한다.”는 뜻이라고 해설을 덧붙였다. 여기에서 천주와 지기는 종속관계, 즉 천주는 지기의 소유주라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기가 크게 내리게 되도록 청하여 빈다혹은 원한다는 뜻은 바로 조물주로서의 천주에게 말한 것이지, 지기에게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주의 속성으로 자리매김 되는 지기는 천지간에 어디에나 빈틈없이 들어 차 있는데, 천주로부터 그러한 지기를 받음으로써 인간은 기화의 작용이 일어나 천주의 성령에 통하게 되고, 이를 통해 천주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운이 제시한 강령주문의 지기는 천주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조물주인 천주에 의해 운용되는 것, 천주의 지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운 사후 동학 연구자들은 천주와 지기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하기 시작했고, 천주를 또한 달리 인식하려는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보였으며, 이로 인해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천주를 왜곡하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천주와 지기의 존재론적 지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관점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점을 바로잡기 위한 일환으로 천주와 지기의 존재론적 관계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보고, 지기는 곧 천주의 지기여야 한다는 점을 제시해 볼 것이다.

천주와 지기의 관계를 파악함에 있어서 비판적으로 상정해볼 수 있는 입장은, 지기와 천주가 대등한 존재로서 서로 양립한다는 견해, 양자가 동일한 실재의 두 표현(동연개념)이라는 입장, 그리고 인격적 천주 관념을 사상하고 천주를 내재적인 지기의 의인화된 천주로 보려는 경향이다.

 

천주와 지기는 서로 대등하게 양립하는가

천주와 지기는 독자적으로 대등하게 양립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논의는 세 관점에서 분석하여 수운의 입장이 아님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천주와 지기가 동일 선상에서 양립한다는 입장, 둘째로 천주는 초월자로서 지기는 내재자로서 양립한다는 입장, 셋째로 천주는 내재자로서 지기는 초월자로서 양립한다는 입장이다.

첫째는 근원으로 볼 때 지존무상의 천주가 각기 다르게 실재하게 됨을 뜻할 수 있다. 즉 천주 따로, 지기 따로 실재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이는 곧 이원론二元論적인 신앙관이 성립하게 됨을 함축한다. 이러한 입장은 수운이 말한 절대자에 대한 신앙의 체계에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앞서 밝혔듯이,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천주의 조화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수운의 천주관에 근본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초월적으로 실재하는 천주와 내재하여 천지만물의 창조변화에 역사하는 지기가 대등하게 양립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지존무상의 상제가 우주세계와 단절하여 천상에 독존하는 것이라면, 이는 수운에게 나타나 직접 대면하여 천명을 내린 천주, 포덕문두려워하지 마라 무서워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하거늘 너는 상제를 모르느냐[勿懼勿恐 世人渭我上帝 汝不知 上帝耶]”라고 말한 천주는 허구라는 얘기가 된다.

세 번째는 지기를 초월적인 실재로, 천주를 내재적인 실재로 보아 양립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논학문에서 서학의 천주가기화지신氣化之神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 사실, 즉 만유의 생명체는 지기에 근거해서 밖으로는 기화의 작용이 있고 안으로는 신령함이 있다는 수운 자신의 사상적 토대를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절대자 천주와 지기는 서로 대등하게 양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종속의 관계여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기는 천주의 지기이지 그 역은 아니라는 얘기다.

 

천주와 지기는 동일한 실재의 두 표현이라는 견해

이 주장은 인격적 상제로서의 천주란 없다는 전제를 암암리에 깔고서 내재적인 천주, 즉 지기와 천주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 노선을 지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논거는, 수운 자신이 저술한 도덕가천상天上에 상제上帝님이 옥경대玉京臺 계시다고 보는듯이 말을하니 음양이치陰陽理致 고사枯死하고 허무지설虛無之說 아닐런가는 초월적인 인격적 상제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교훈가나는도시 믿지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 하단말가”, 論學文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이를 어찌 알리오. 천지는 알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란 것도 나(천주)이니라.”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입장을 고수하는 자들의 논거에 의할 것 같으면, 만일 천주가 우주만물의 창조변화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세계를 초월하여 천상 옥경대에만 계신다면, 이는 서교의 유일신관과 같은 허무지설의 신앙관으로 흐르게 된다고 수운 자신이 앞서 강하게 비판한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초월적인 상제 관념을 버리고, 내재적인 천주만을 내세우게 된다. 그 결과 천주와 지기를 동일한 실재의 두 표현으로 이해하게 되고, 결국 내재적인 천주가 스스로 작용하여 천지만물의 창조와 변화의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앞서 분석한 주재자로서의 인격적 상제관념을 버리고 무형의 조물주로서의 천주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형의 조물주는 내재적인 천주요, 곧 지기로 간주될 수 있는 근거는 수운이 귀신이란 것도 나니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천지에 내재적인 지기는 내유신령외유기화의 원천으로 규정되고 있고, 음양의 굴신동정屈伸動靜으로 만유생명의 창조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음양의 굴신동정은 바로 귀신의 작용이고, 그것은 바로 내재적인 천주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삼라만상은 모두 안으로는 신령이요 밖으로는 기화이며, 천주(지기)를 떠나 사람의 신령이 따로 없고 천주의 기화를 떠나 사람의 기화가 따로 없다는 의미에서 천인일체天人一體라는 입장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에 깔고서 후기 동학 연구자들은 해월海月 최시영의 양천주사상의 연구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급기야는 의암義菴 손병희의 인내천사상으로까지 전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귀신이란 것도 나니라고 말한 뜻을 달리 해석해야 마땅하다. 중용에는 귀신이란 형체도 소리도 없으나, 사물의 시작과 종말은 음양이 합하고 흩어짐의 소위가 아님이 없으니, 이는 (귀신이) 그 사물의 본체가 되어 사물이 능히 (귀신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근거하여 본다면 지기의 음양동정에 의해 만유의 생명이 창조변화되는 것이며, 지기의 본체는 무형의 조물주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음양동정으로 이합집산되는 지기와 그 본체가 되는 무형의 조물주와는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기는 움직여지는 대상이고, 무형의 조물주는 지기를 움직이게 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음양동정의 본체는 무형의 조물주로서의 천주라 할 수 있으나, 이것의 실체는 유형의 주재자로서의 천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와 지기가 동일한 존재일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게 대두될 수 있는 것이다. 천주가 지기라면, 천주는 상제요 곧 지기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수운이 드러내고자 한 절대적인 인격적 상제관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안심가공중空中에서 외는 소리 물구물공勿懼勿恐 하였어라.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上帝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 용담가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開闢後 오만년五萬年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勞而無功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布德文나 역시 공이 없는 까닭으로 세상에 너를 태어나게 하여 이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등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절대적인 천주는 상제이고, 상제는 지존의 인격신이며, 인격적인 상제로부터 수운은 천명을 받게 됐던 것이다. 호천금궐昊天金闕 상제上帝”, “개벽이후 노이무공勞而無功”,“이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게 하니등은 인격적인 상제를 증명하는 핵심이 되고 있다. 앞으로 논의가 되겠지만, 인격적인 상제는 천상에 계시면서 오만 년 전에 하늘과 땅을 개벽하고, 천지만물의 창조변화와 그 운행을 무위이화로 주재하여 다스려 왔었지만, 사실 세상에 신교의 맥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상제의 실존을 모르고 있어서 아무런 공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는 자신의 실존을 알리도록 천명으로써 수운을 세상에 내보냈다.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상제는 수운이 말한 천주임이 분명하다. 천주로부터 수운이 받은 사명이란 호천금궐에 주재자로서의 상제가 실존한다는 것, 이제 오만 년의 운이 다하고 새 세상의 성운이 열리는 다시개벽이 있게 된다는 것, 쇠운의 정점에서 다시개벽으로 전환되는 시점에는 3년 괴질怪疾이 창궐하여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수운을 통해 전해지는 천주의 대도를 깨달고 천주를 지극히 위함으로써 다시개벽기에 도성덕립의 새 인간으로 거듭나야 함을 핵심으로 한다. 요행이도 수운은 천주를 친견하여 직접 천명을 받아 세상에 전하게 되니 천주도 성공하고 수운 또한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천주와 지기의 관계 정립에 대하여 대립된 두 노선이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은 확실하다. 그것은 앞서 말한 절대적인 천주의 조화섭리를 무형의 조물주와 유형의 인격적 주재자(상제)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근거해서 본다면, 우주만물에 내재하는 지기는 곧 무형의 조물주가 운용하는 것으로, 천주의 조화가 펼쳐지는 무한한 속성으로서의 존재론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에 유형의 주재자로서의 천주(상제)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천주가 지기를 운용하여 인간과 천지만물을 무위이화로 주재하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천주와 지기는 동일한 실재의 두 표현이 아니다. 천주와 지기의 관계는 종속의 관계이며, 지기는 절대적인 천주가 운용하는 지기여야 한다는 주장이 별 무리가 없이 성립할 수 있다.

 

지기는 의인화된 천주인가

지기가 곧 의인화된 천주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지기로부터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의 천지만물이 창조 변화되어 나오는 근원적인 본체로 규정하면서 지기를 신성한 천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근거는 교훈가억조창생億兆蒼生 많은 사람 동귀일체同歸一體 하는 줄을 사십평생 알았더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세계란 근원적인 본체로 말하면 아무런 형체가 없는 하나의 전일한 지기이지만, 이를 근거로 해서 수많은 개별적인 것들이 창조되어 많음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동질적인 존재가 된다는 얘기다. “동귀일체가 그 핵심이다.

동귀일체의 논리에 따르면, 최초에 신성한 본체로서 지기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유기적인 세포가 우연히 창조되었으며, 이것이 자기 복제를 하여 수많은 개별적인 세포들이 나왔고, 수많은 세포의 생명체가 모여 보다 복잡하고 진화된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인간과 같은 보다 진화한 개별적인 생명체들을 창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일한 신성한 지기를 본체로 하여 수많은 종류의 개별적인 것들이 스스로 창출되었다는 지기일원론의 입장이다.

지기일원론의 입장은 지기를 의인화된 천주로 간주한다. 지기일원론은 우주 전체의 속이 천주의 신령神靈이요 겉이 천주의 기화라는 입장에서 단순한 범신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범신론은 인격신을 배격한다. 인격신을 부정하는 범신론은 맹목적인 신앙관으로 흐르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운은 범신론자가 아니다. 수운의 천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기가 아닌 인격적 상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기를 의인화된 천주로 파악한다는 것은 수운의 절대적인 인격적 상제관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운이 말하는 절대적인 천주는 지기와 대등하게 양립하는 것도 아니고, 지기와 동일한 존재의 두 표현도 아니며, 지기가 의인화된 것도 아니다. 앞서 밝혔듯이, 절대적인 천주는 우주만유의 원 주인이지만, 그 조화섭리는 창조성을 본성으로 하는 무형의 조물주와 만유를 주재하여 다스림을 본성으로 하는 유형의 인격적 주재자로 분석된다. 여기에서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천주는 실제로 유형의 인격적 주재자, 즉 신의 위격으로 말하면 지존무상의 상제이다. 상제는 무형의 조물주와 하나가 되어 조화 신권을 그대로 쓰는 실제적인 천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형의 조물주가 운용하는 지기는 다름 아닌 천주의 지기로 천지만물이 창조변화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주와 지기는 필연적으로 종속의 관계, 즉 지기는 천주의 지기이지 그 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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