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와 세계문화

원방각圓方角의 비밀

황경선

2013.06.25 | 조회 10319


황경선 / 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

“나는 바닥에 일(一) 붙을 줄 알고 빼려 드니 누구든지 일 자, 삼 자를 쥐어야만 임자네.”(도전 11:216:5)

1. 참성단의 ○, □, △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 국내 현존하는 제천단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군께서 운사 배달을 시켜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래 역대 군왕들을 비롯하여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 영걸들이 이곳에서 천제를 올렸고, 이런 제의祭儀는 근세조선에까지도 이어졌다.

어떤 사람은 이 제단을 두고, 맨 위에 제물을 올려놓으면 전체적으로 세모 형태로 보인다는 ‘참신한’ 생각을 피력한다. 곧 참성단에서 ○, □, △을 보는 것이다. 이 마리산 동쪽에 자리한 정족산에는 삼랑성(지금의 정족산성)이 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그릇 전해지고 있으나 이 역시 운사 배달이 참성단과 함께 지은 것이다. 삼랑은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이름이며 성은 삼랑이 머물며 호위하던 곳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이 적막하고 외진 곳을 노래한, 고려시대 이숙첨李叔詹의 시를 소개한다. “어초유설구천경漁樵猶說舊天京” 이곳 삼랑성은 하늘 도시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리산과 전등산 근처에 굴이 있어 혈구穴口로도 불렸던, 서해 섬 강화도는 천경과 천단이 있는 성스러운 터전인 것이다.


마리산 참성단 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 □ 형태의 제단이 요동지방 우하량 지역에서 발견된다. 동서로 160m, 남북으로 60m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제사유적이다. 돌을 쌓아올려 만든것으로 원형과 방형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홍산문화에 속하는 이 지역의 유적, 유물은 BC 3,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제단을 명, 청 시대 중국의 황제들이 천제를 지내던 북경 천단구조의 원형이 된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새외’, 곧 자신들의 국경 바깥으로 여기던 이 지역에서는 제단만이 아니라 적석총, 여신묘, 옥기류의 부장품들이 발굴된다. 이런 유적, 유물들은 이곳에 초기 국가가 성립돼 있음과 이 문화의 주체가, 저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며 경원시하던 동이 배달족임을 고고학적으로 강력히 시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2. ○, □, △과 하늘, 땅, 인간
상고시대 둥그런 형태와 네모반듯한 형태의 제단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은 문헌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삼한의 옛 풍속이, 10월 상일上日에는 모두가 나라의 큰 축제에 참여하였다. 이때 둥근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땅에 대한 제사는 네모진 언덕에서 지냈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목角木(세모 나무)에서 지냈다. 산상山像과 웅상雄像은 모두 이러한 풍속으로 전해오는 전통이다.”『( 태백일사』)

이러한 제의는 천원지방 사상의 반영으로 본다. 하늘의 덕성은 원만하고 땅의 덕성은 방정하다는 것인데 이는 각기 ○와 □의 도상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사람은 △로 나타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지향하는 형태의 △로써 천지의 중심에서 천지를 조화롭게 하며, 그 뜻을 실현하는 인간의 위상을 담아낸 것이다. △는 곧 조화와 인간의 상이다. “원(○)은 일一이 되어 하늘의 ‘무극 정신’을 뜻하고, 방(□)은 창조의 순서에서 이二가 되어 하늘과 반대이지만 짝이 되는 정신〔반극反極〕을 말하고, 각(△)은 삼三이 되어 천지의 주인인 인간의 태극 정신을 형상함이로다.”『( 태백일사』) 둥근 것은 사제司祭, 네모진 것은 생산, 세모꼴은 통치의 비유며, 1은 정신적인 본질의 실재, 2는 대치, 조화, 충돌, 3은 창조를 위한 형식 혹은 정신적인 종합의 상징이란 풀이도 이와 상통하는 것이다.


△ 혹은 3으로 상징되는 사람은 또한 나무로도 비유된다. “대개 대시에 삼신 상제님께서 천지인 삼계를 만드실 때, 물로써 하늘을 상징하고, 불로써 땅을 상징하며, 나무로써 사람을 상징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땅에 우뚝 서서 하늘을 대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삼한관경본기』) 배달국 치우천황 때 선인 유위자가 한말이다. 앞서의 인용문에서 삼한의 옛 풍속이 조상에 대한 제사는 각진 나무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그 이유도 여기서 헤아릴 수 있다.

웅상에 대한 얘기는 또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도해단군께서 …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게 하셨다. 그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고, 가장 큰 나무를 택하여 환웅상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웅상이라 하셨다.”『( 단군세기』) 이와 관련하여 늘 함께 인용되는 것이 『산해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숙신(조선)국에는 백의민족이 살고 있다. 북쪽에 나무를 모시는데 이름을 웅상雄常이라고 한다.”나무가 조상을 기리는 신물神物으로 숭배된 것이다. 소도의 나무는 『삼국지』「동이전」에도 언급되는데, 별읍別邑에 소도를 세우고 거기에 천군天君이라 불리는 천신天神을 두어서 제를 주관하게 하고 그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워 북이나 방울과 같은 무구巫具를 걸어두었다는 내용이다. 또 이 나무와 유사한 조형물이 사찰의 법당 앞에 있기 마련인 탑 혹은 탑머리란 지적도 문화의 연원관계나 습합과 관련하여 흥미롭다.

△의 도상은 또 하늘, 땅과 삼위일체가 돼 수행하는 사람의 가부좌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홍산문화의 유적지에서도 △의 요소는, 물론 또 다른 방식으로도 탐색될 수 있겠지만, 이미 알려진 것에서도 너끈히 발견된다. 여신묘의 여신상이 그것이다. 종족의 시조묘로 추정되는 여신묘에서는 여신두상을 비롯하여 부서진 여신상의 조각들이 다수 발견됐다. 크기가 사람에 가까운 여신상은 황토질 점토로 빚어 만든 소상塑像이다.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 복원해보니 여신상은 반가부좌한 모습이었다. 오른다리를 왼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쥔 상태로 단전앞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영락없는 △의 상이다. 후손들의 제사의 대상이었을 이 여신은 시조이면서 당시 문화에 비춰볼 때 정치적 권력자이면서 종교적 스승이었을 터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탈해왕 얘기가 여기에 비교될 수 있다. 탈해왕이 죽어 장사지냈는데, 그 후 신이 나타나 “나의 뼈를 조심해서 묻으라”고 한다. 이에 뼈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궐내 안치하니 신이 또 말하기를 “뼈를 동악에 두라”고 했다. 뼈를 부수어 인신상人身像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궐내에 안치했으니 그것은 신상神像과 다를 바 없다. 정치적 군주며, 종교적 지도자인 조상의 소상을 부수어진 뼈를 넣어 만들기 위해서는 점토가 재료로 사용돼야 했을 것이다. 만약 홍산문화의 여신묘에서도 유골성분이 발견된다면 둘 사이의 문화적 친연성은 더욱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3. 천부경과 ○, □, △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지인은 원방각으로만이 아니라 또한 1, 2, 3의 수로도 나타낸다. 한민족의 고유한 경전인 『천부경』에는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이란 구절이 등장한다. 하늘의 이치에 부합되는 글이란 뜻을 가진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구성돼 있는데, 우주의 본성과 변화이치,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한민족의 깨달음을 담고 있다. 동방 최초의 경전으로도 꼽힌다.

인용한 “천일일 지일이…”에서 가운데 일一은 하늘, 땅, 인간이 한 근원에서 비롯됐으며, 셋은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 뒤에 붙는 일一, 이二, 삼三은 양을 대표하는 근본인 하늘이 먼저 나고[一], 만물을 낳아주는 어머니 음인 땅이 다음에 나고[二〕 그리고 하늘, 땅의 교합에 의해 인간이 생겨났음[三]을 가리킨다. 하늘과 땅은 인간 안에서 그를 통해 조화되고 그 이상을 실현한다. 한편 인간과 더불어 만물이 생겨나니 인은 곧 인물人物(인간과 만물)이며 셋은 여럿〔多〕이다. 이는 1-(2)-3의 논리요 원방각의 사상이다. 그럼으로 『천부경』은 일에서 시작하여 삼이 되고 삼이 부풀어나 가득함〔萬〕이 되고 다시 그 가득함이 일로 돌아가는 진리를 요체로 한다.

또 다른 맥락에도 ○, □, △은 숨어 있다. “운삼사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이란 구절이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삼과 사, 오와 칠에 대해서는 여러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삼이 네 단계를 거쳐 원, 즉 우주의 고리를 이루며 오와 칠은 그 조화의 중심, 동력이란 뜻은 공통적일 것이다. 삼이 네 단계를 거쳐 원을 이루니 ○, □, △이다. ○, □, △을 하나로 합하면 ?( ○ 안에 □, △가 들어 있는 그림)이 된다.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삼일도라 불리는 ?( ○ 안에 □, △가 들어 있는 그림)에서 오, 칠의 수도 발견될 수 있다. 이 도상 안에 접점이 5개 있고 면이 7개 들어있다는 것이다. ○안에 □, △가 들어가 있는 삼일도는 원 안의 3개의 삼각형이 원과 조화를 이뤄 움직이면 삼태극 모양이 된다.

큰 틀에서 보면 원, 방, 각은 『천부경』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서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 『천부경』은 모두 81자니 가로 9자, 세로 9자로 배치하면 방(□) 형을 이룬다. 또 일一로 시작해서 일一로 돌아가는 순환을 이루니 원(○)이 들어있다. 여기에 그 순환의 중추를 이루는 논리가 1, 3 혹은 3. 1의 논리니 △의 요소가 또한 간직돼 있다.

『천부경』이 전하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윷에도 당연히 ○, □, △이 있다. 윷판은 4개의 삼각형이 원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윷놀이는 원방각의 놀이, 천지인 삼재가 어우러진 “천지놀음”(11:216:4)인 셈이다.

가톨릭의 성호가 갖는 상징성을 원, 방, 각으로 풀기도 한다. 이마와 가슴 양쪽으로 긋는 성호는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천[성부]와 지[성자]는 이마[天, ○]에서 가슴[地, □]으로 직선으로 연결되고 인[성신]은 양쪽으로 그음으로써 △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4. 원과 꽃과 소…
하늘의 덕성을 상징하는 원에서 읽을 수 있는 일차적인 의미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다. 원은 또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충만하고 충만하지만 텅 빈 것이다. 그곳에는 선후도 우열도 없다. 서로 다른 것이 고유함을 견지하 하나로 통일된 화쟁과 대동의 상像이다. 원은 곧 모든 것은 하나이며 하나는 모든 것이란 우주의 실상(존재)을 혹은 우주 일자一者를 표현하고 있다. 초기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로고스(모든 변화를 지배하는 ‘대립의 조화, 통일’이란 원리)를 원에 비유한다. 그는 로고스의 근본 의미를 모든 것을 그 안에 “불러 모으는 것”이자 그것들이 그렇게 “불러 모여 있음”으로 이해한다. 원의 둘레와 같은 것으로서 로고스는 곧 만물이 그렇게 있는 방식‘( 어떻게’)이면서 근거‘( 왜’)란 것이다. 또 하이데거의 존재(존재사건)를 “모든 것이며 하나인 유일무이한” 놀이로 규정할 수 있는데, 그것을 도상으로 풀어내면 원이다. 고대 동굴 벽화나 토기 등에 새겨진,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는 시원의 인류가
품은 그 같은 존재이해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역시 고대 신화나 예술에서 모티브로 다양하게 등장하는 꽃은 그 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나의 꽃이 봉오리에서 시작하여 활짝 피기까지의 과정을 7개의 도상으로 풀어내면서 꽃에 담긴 원의 의지, 원의 생명을 이렇게 내보이기도 한다.

|: 처음에 뻗치는 힘, ━ : 옆으로 뻗는 힘, ╋ : 그 두 개 음양 힘의 충돌, Х : 대립 가운데 이상적 배합이 이뤄지며 부풀어나기 시작, * : 그 부푸는 기세가 커지고, 卍 : 어느 쪽으로 회전이 이뤄지며, ○ : 그 회전의 끝에 영원한 정지. 앞의 , ━는 □, 이어지는 ╋, Х는 △, 그리고 뒤의 *, 卍는 ○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7이 기본이 되고 그것이 3으로 요약되어 마침내는 ○이 되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시구를 빌려 말하면 원의 의지, 원의 생명으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해석에 따르면 신화와 예술속 꽃은 우주 에너지가 부풀어져 하나의 구체球體로 형성되는 과정을 묵시한다.

옛날 부처는 영산靈山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인다. 가섭이 그걸 보고 웃는다. 그러자 부처는 말하기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법문은 이제 가섭에게 속한다”고 한다. 꽃으로써 전한 미묘한 법문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이 하나인 공空이 색色이고 색이 공인 원의 사상은 아니었을까?

꽃은 신라 향가의 「헌화가」에도 등장한다. 소를 끌고 온 한 노인은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다. 꽃에서 원을 보는 해석에 비친 이 이야기는 한 노인의 사랑이거나 치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이 바친 꽃은 원이 전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담고있다. 그럴진대 소를 끌고 온 노인의 정체는 산 속이나 동굴 등 수행과 신성한 제의가 행해지는 성스러운 곳에서 내려온 진리의 마스터인지도 모를 일이다.

△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얘기들이 많다. 앞에서 땅위에서 서서 하늘을 향하는 모습의 △는 인간과 조화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는 △는 남자의 생식기를, △가 뒤집어진 ▽는 여자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이 또한 △가 인간, 인체와 관련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3)와 ▽(3)이 결합하면 ☆이 된다. 그 별은 생명의 별, 생명을 주관하는 별이 될 것이다.『천부경』의 또 다른 구절 대삼합륙大三合六을 떠올릴만하다.

고대 신화와 예술에서 ○이 꽃으로 표현되듯, △는 뱀이나 뱀 머리, ▽는 소나 소머리로 상징되기도 한다. 뱀(머리)이나 소(머리)는 △이나 3수 원리를 가장 적절하게 표시해 주는 동물인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성행했던 미트라교의 대표적 유물인 바르만 석비의 부조에 새겨진 ‘소 잡는 그림’에도 소가 주요 모티브다. 이 석비는 △와 관련하여 특히 흥미로운데, 미트라신이 수소를 올라타고 칼을 막 소의 목에 꽂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트라신은 미트라교에서 섬기던 태양과 빛의 신이다. 근데 눈길을 끄는 것은 꼬리 끝에 세가닥의 보리 잎사귀가 돋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는 3(머리)-1(몸통)-3(세 가닥의 보리 잎사귀)의 형태로 1, 3 혹은 3,1의 이치를 드러내고 있다. 이로써 소는 곧 진리나 진리의 경전을 상징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그럼으로 이 그림은 미트라신이 진리를 혹은 진리의 경전을 장악하는 순간을 그리고자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제 진리를 움켜쥔 미트라신은 위대한 능력을 갖춘, 진정한 구원의 신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헌화가」 속 노인이 끌고 온 것도 소다. 노인이 전한 꽃은 진리를 의미하고 노인 자신은 진리를 마스터한 스승일 것이란 추정은 이 대목에서 힘을 얻는다. 불교 사찰 건물의 벽에는 심우도尋牛圖라 불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자가 소를 찾는 일련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도 소는 진리나 진리의 경전을 의미한다. 단군이 소에 걸터앉아〔과우跨牛〕무위로써 다스렸다는 기록『( 규원사화』)도 그런 맥락으로 보면 전혀 새롭게 들린다. 소를 이끌고 간다는 뜻의 한자 ‘견牽’을 『강희자전』은 군자의 가르침을 비유한 것이며 도는 곧 소를 끄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음도 이런 해석에 유리한 방증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삼위태백, 삼각산, 우수주牛首州(소시머리, 소밀, 속말) 등 소에 관한 지명들, 제수祭需로 쓰이는 소머리, 소를 탄 노자… 등. 소의 알레고리가 우리를 유혹하는 눈짓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5.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제껏 원방각 혹은 천지인에 대해 여러 얘기들을 간략히 소개했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기도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억지스러움을 느꼈을 수 있다. 글의 초점은 원방각을, 소를, 1,3의 논리를 쥐고있는 곳에서 인류문화의 원형찾기가 시도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함이다.

여기서 글의 시작을 열었던 성구를 다시 살핀다. “나는 바닥에 일(一) 붙을 줄 알고 빼려 드니 누구든지 일 자, 삼 자를 쥐어야만 임자네.” 1, 3을, 원방각을, 천지인 삼재 이치를 쥐고 있는 곳에서 인류문화의 임자 찾기가 감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곳은 사상의 한류가 새롭게 길어져 나오는 풍성한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경 한 뿌리에서 수많은 줄기로 갈라져 나간 문화와 사상들이 통일되는 새로운 문명개벽, 문예부흥의 큰 기운 속에 열매 맺게될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철학을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으로 비유했다. 대상이 먼저 있고 인식 주체는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라 여기지 말고 세계란 인식 주체의 바라봄에 의해서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에 놓고 천체를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랬을 때 인식에 관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 글의 의도는 인류사, 특히 동북아 상고사에서 그런 시야변경을 제안하는 것에 해당한다. 중원에서 시베리아에서 동북아로 문화가 유입됐다고 생각하는 대신, 홍산문화가 말없이 웅변하듯, 동북아에 시원의 문화, 원형의 문화가 있어 그것이 중원으로, 더 먼 곳으로 전파돼 갔다고 시야를 바꿔보자는 것이다.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유교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또 최근 드라마, K-POP 등 한류의 대중문화가 세계 곳곳으로 스며들 듯이 말이다.

실제로 동북아의 홍산문화가 어떤 인류문명보다 오래된 것임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고, 중국 또한 그것을 그네 문명의 연원으로 보고 있다. 그 시원문화의 중심은 천지인 일체 사상으로부터, 하느님을 섬기며 천지와 하나 돼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으로 복락의 세상을 이룩하려는 이념일 것이다. 그랬을 때 동북아 상고사에 관련한 많은 미해결의 문제들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오히려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고사의 어둔 역사공간은 그런 혜안의 밝은 조명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저 대륙의 땅 밑 유물들에서, 왜곡과 은유, 생략으로 뒤틀린, 문헌의 자구들에서.

* 이하의 원(○), 방(□), 각(△) 에 대한 많은 사례들은 박용숙의 『한국의 시원사상』에서 따왔음을 밝혀둔다.

-  출처 월간개벽 2011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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