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16 『시詩·소아小雅·사모四牡』 (3)

원정근 연구위원

2022.12.20 | 조회 2701

             (3)


내 동산에 가서,

오래오래 돌아오지 못했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제,

가랑비 보슬보슬 내렸네.

내 동쪽에서 돌아가건만,

내 마음 서쪽을 슬퍼하네.

평복을 지어,

다신 하무를 물지 않으리.

꿈틀꿈틀 뽕나무 벌레,

오랫동안 뽕나무 들에 있네.

웅크리고 홀로 잠자는 이,

수레 밑에서 새우잠 자네.

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

我東日歸, 我心西悲.

制彼裳衣, 勿士行枚.

蜎蜎者蠋, 烝在桑野.

敦彼獨宿, 亦在車下.

 

내 동산에 가서,

오래오래 돌아오지 못했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제,

가랑비 보슬보슬 내렸네.

하눌타리 열매,

처마까지 뻗었네.

쥐며느리는 방에 있고,

갈거미는 문에 있네.

빈터는 사슴 마당,

반딧불 반짝이네.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이는 그리워할 만하다네.

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

果臝之實, 亦施于宇.

伊威在室, 蠨蛸在戶.

町畽鹿場, 熠燿宵行.

不可畏也? 伊可懷也.

 

내 동산에 가서,

오래오래 돌아오지 못했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제,

가랑비 보슬보슬 내렸네.

황새는 개밋둑에서 울고,

아내는 집에서 탄식하네.

청소하고 쥐구멍 막으며,

원정 간 이 돌아오길 바라네.

둥근 도롱박,

오랫동안 장작더미에 있네.

내 못 본 지,

이제 세 해.

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

鸛鳴于垤, 婦歎于室.

洒埽穹窒, 我征聿至

有敦瓜苦, 烝在栗薪.

自我不見, 于今三年.

 

내 동산에 가서,

오래오래 돌아오지 못했네.

내 동쪽에서 돌아올 제,

가랑비 보슬보슬 내렸네.

꾀꼬리 나니,

그 날개 빛나도다.

이 아가씨 시집갈 때,

황백색과 적백색의 말이네.

어머니 허리에 묶어주고,

온갖 의식 다 갖추었네.

신혼 때도 매우 아름다웠거늘,

오랜 이별 뒤에야 어떠할꼬?

我徂東山, 慆慆不歸.

我來自東, 零雨其濛.

倉庚于飛, 熠燿其羽.

之子于歸, 皇駁其馬.

親結其縭, 九十其儀.

其新孔嘉, 其舊如之何?

 

이 시의 제목은 빈풍豳風동산東山이다. 전쟁터에 나가 수자리를 하던 병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집안 식구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객지에 나가 수자리를 살던 병사는 삼년이란 긴긴 세월 동안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평복을 지어 입고 다시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이 시는 수자리 나갔던 병사가 풍찬노숙風餐露宿에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마음에 두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인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흔개교심欣慨交心비흔교집悲欣交集을 절묘하게 표현하였다. “아동일귀我東日歸, 아심서비我心西悲.”가 바로 그것이다. 무겁고 갑갑한 갑옷을 벗어 던지고 수자리하던 동쪽에서 서쪽의 집을 향해 돌아가는 기쁨과 오랜 전란으로 서쪽의 고향에 있는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슬픈 마음을 동시에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둥둥 북을 치며,

무기를 들고 뛰어 오르네.

도성에선 흙일하고 조 땅에선 성을 쌓건만,

나만 홀로 남쪽으로 가네.

擊鼓其鏜, 

踊躍用兵.

土國城漕,

我獨南行.

 

손자중을 따라서,

진나라와 송나라를 화해시켰네.

나를 돌아가지 못하게 하니,

근심스런 마음 조마조마.

從孫子仲,

平陳與宋.

不我以歸,

憂心有忡.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머무나?

어디에서 말을 잃었나?

어디에서 찾는가?

숲 밑에서.

爰居爰處?

爰喪其馬?

于以求之?

于林之下.

 

죽든 살든 만나든 헤어지든,

그대와 함께하자고 언약했지.

그대 손잡고,

그대와 함께 늙자 했지.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 오래 헤어져,

나는 살 수 없구나.

! 멀리 떨어져,

나는 약속을 지킬 수 없구나.

于嗟闊兮,

不我活兮.

于嗟洵兮,

不我信兮.

 

전쟁을 혐오하는 어느 병사가 지은 시다. 이 시의 제목은 패풍邶風격고擊鼓이다. ‘격고擊鼓는 북을 친다는 뜻이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의 전장에 나가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한 병사의 애절한 노래를 전하고 있다.

죽음과 삶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병사는 죽든 살든 만나든 헤어지든, 그대와 함께하자고 언약했지. 그대 손잡고, 그대와 함께 늙자 했지.”라고 하여, 아내와 함께 백년해로百年偕老하지 못하는 자신의 슬픈 처지와 상황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처음 아내를 맞이할 때, 병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또바기 함께 늙자고 두 손 맞잡아 맹세했다.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고 싶은 것이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병사는 언제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비정한 전쟁이 병사와 아내 사이의 절절한 사랑을 갈라놓은 것이다.

문제는 수자리에서 풀려나 고향집에 돌아간다고 해도, 모든 근심 걱정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찍이 장자莊子가 이미 갈파한 것처럼,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어디에 가서 산들 위정자의 압박과 등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춘추전국시대 위정자의 가혹한 통치와 엄혹한 법망에서 온갖 부역과 착취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힘없는 백성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정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참으로 갈망하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위풍魏風석서碩鼠에서는 사람이 진정으로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렇게 노래한다. ‘석서碩鼠는 큰 쥐라는 뜻이다.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 먹지 마라.

세 해나 너를 섬겼건만,

나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리라.

즐거운 땅이여 즐거운 땅이여,

내 살 곳을 얻으리라.

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큰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세 해나 너를 섬겼건만,

내게 은덕을 베풀지 않는구나.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나라로 가리라.

즐거운 땅이여 즐거운 땅이여,

내 쉴 곳을 얻으리라.

碩鼠碩鼠, 無食我麥.

三歲貫女, 莫我肯德.

逝將去女, 適彼樂國.

樂土樂土, 爰得我直.

 

큰 쥐야 큰 쥐야,

내 곡식을 먹지마라.

세 해나 너를 섬겼건만,

날 위로하지 않는구나.

너를 떠나서,

저 즐거운 교외로 가리라.

즐거운 땅이여 즐거운 땅이여,

누가 길게 부르짖을꼬?

碩鼠碩鼠, 無食我苗.

三歲貫女, 莫我肯勞.

逝將去女, 適彼樂郊.

樂土樂土, 誰之永號?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없는 민중들은 몸과 마음이 평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시는 민중들의 이상세계에 대한 소망과 염원을 담고 있다. 민중들은 온갖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통치 계층을 몹쓸 놈의 큰 쥐에 비유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지배자의 수탈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민중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는 바로 포악한 정치와 잔혹한 세금에 시달림이 없는 즐거운 땅’(낙토樂土)이다.

뒷날 도연명은 도화원기병시桃花源記幷詩에서 가을에 곡식이 익어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세상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이상향을 제시하였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은 지배자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노동에 참여하여 힘껏 일하면서도 온갖 혜택을 다 함께 골고루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특히 아녀자와 노인이 사회복지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누군들 그곳에 살고 싶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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