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조철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김현일 연구위원

2022.08.31 | 조회 3417

조철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2000)

 

조철수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수메르어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수메르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첫 번째 인물이 아닐까 한다.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9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철학이 공부하고 싶어 신학과로 전과하였다고 한다. 1976년 대학 졸업 후 이스라엘로 유학을 가서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고대 수메르어, 아카드어 등을 공부하였다. 그가 1983년 이집트 학과에서 파피루스에 기록된 고대이집트의 행정문서와 편지들을 분석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이집트 문자도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히브리대학교에서 강사를 하며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였다. 1991년에는 수메르어 문법 연구로 아시리아 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메르어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1982년부터 몇 년 동안 이스라엘 학술원에서 후원하는 수메르어 사전편찬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1995년 귀국하여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 고대 중동 문헌과 이스라엘 종교사, 구약성서, 아카드어 등의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고대 중동의 신화를 알리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2000), 수메르 신화(2003),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 신화의 비밀(2003) 등의 책을 펴냈다.

본고에서 소개하려는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게 나누어 두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메소포타미아 즉 수메르와 바빌론 문명의 신화이다. 1고대 근동 신화와 성서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다른 하나의 주제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이다. 2유일신 관념의 탄생3고대 이스라엘의 종교개혁그리고 4초기 유대교의 지혜가 이 주제를 다른 부분이다.

이 책의 전제 가운데 하나가 히브리인들의 성서 즉 구약성서가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전문가들로부터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장이다. 창세기의 창조신화와 노아 홍수 이야기, 또 출애굽기를 비롯한 율법서들에 나오는 이스라엘 법들이 수메르의 우르남무 법전이나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법들과 비슷하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사실 히브리인들의 역사 자체가 수메르문명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시작되었다. 구약의 창세기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심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우르 출신이었다. 그가 왜 수메르 땅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되었던 지에 대해서는 바이블은 침묵하고 있다. 단지 야훼가 그에게 나타나 가나안 땅으로 가면 너를 축복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식구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구약 외경 문헌에서는 아브라함은 유일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상숭배가 만연하였던 갈대아 땅(수메르)이 싫어서 떠났다고 한다. 사실 수메르인들과 그들의 문명을 계승한 바빌론인들은 많은 신들을 섬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남긴 신화들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신들의 족보를 기록한 점토판에 의하면 신들의 수는 3,600 이상이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있다고 하니 3,600의 신들을 엄청 많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신들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메르 도시들은 또 각기 수호신이 있었다. 각 지역에서 숭배하는 신이었는데 소위 지방신이다. 한 도시가 정치적으로 강력해지면 그 수호신의 지위도 따라서 높아졌다. 그래서 수메르의 신들 간에 위계가 생겨났다. 수메르인들은 주요한 50신들을 아눈나키라고 불렀는데 하늘의 신인 의 자식들이라는 뜻이다. 나눈나키 중에서도 안을 포함한 일곱 신은 만사를 결정하는 주신들로 꼽혔다.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인 안은 원래는 우루크의 수호신이었는데 우루크에 이어 니푸르가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니푸르의 수호신 엔릴이 신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신들의 왕인 안은 하늘로 올라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한가한 신이 되었다.

BCE 2천년기 초 메소포타미아 중류에 위치한 바빌론이 흥기하여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지배하게 되자 그 도시의 수호신인 마르둑이 엔릴의 자리를 이어 받게 되었다. 마르둑은 수메르에서는 예전에는 별로 언급되지 않던 신이었는데 바빌론의 흥기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으뜸신이 된 것이다. 그를 이르는 말이 이았는데 이는 주님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처럼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누마 엘리쉬는 바로 이 마르둑 신의 흥기를 주제로 한 신화이다.

에누마 엘리쉬에는 신들의 이야기만 나오고 인간의 창조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인간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이 태어난 이야기라는 다른 신화에 등장하는데 바이블의 창세기와는 사뭇 다르다. 작은 신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강을 준설하여 강둑을 쌓는 힘든 일을 하였는데 물론 큰 신들은 병사들에게 사역을 시키고 감독만 하는 장교처럼 일은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였다고 한다 작은 신들은 자신들의 삶을 심하게 불평하면서 소란을 일으켰다. 큰 신들은 골치가 아팠다. 그러자 지혜의 신(안키)이 잠에서 깨어나 작은 신 하나를 잡아 죽여 그의 살과 피에 흙을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혜의 신은 이 진흙으로 일곱 명의 남자와 일곱 명의 여자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짝을 맺어 인간의 시조가 되었다. 물론 이제부터 인간은 작은 신들을 대신하여 노역을 감당해야 하였다. 인간이 신들을 위해 태어났다는 이러한 생각은 인본주의에 물든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듣기 거북한 신본주의라 할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당시에는 아주 드문 신관인 유일신관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신관이다.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할 것 없이 고대에 다신관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신이 한 분만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한 주장이었다. 히브리인들도 처음부터 야훼를 유일신으로 숭배하지는 않았다. 야훼는 다른 신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히브리인들의 종족신이었을 따름이다. 물론 이런 야훼를 따르지 않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이 섬기던 바알 신을 섬기던 사람들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역사서들을 뒤져보면 수두룩하게 나온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러하였다. 또 아세라 여신도 아주 이스라엘 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아세라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수메르의 사랑의 여신 인안나, 바빌론의 유명한 이슈타르 여신과 같은 신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세라 여신의 목상을 세우고 언덕 높은 곳에는 신들을 모신 신당을 만들어 숭배하였는데 야훼 신만이 진정한 신이고 따른 신들은 우상에 불과하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을 우리는 좀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야훼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터인데 구약성서의 선지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BCE 9세기 중반 이스라엘 북왕국의 엘리야였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쪽의 유대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엘리야는 바알의 사제들 — 〈열왕기서에는 바알의 선지자들로 나온다 과 아세라의 사제들 950명을 카르멜 산에서 학살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 왕국에서 어떤 신을 숭배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종교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고대인들은 야훼주의자들과는 달리 하늘의 태양과 달, 별들을 움직이는 신들을 믿었다. 또 신들의 상을 만들어 숭배하였다. 신상을 만들어 이를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여 그 앞에 제물을 바치고 절하는 것은 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훼주의는 이러한 신상도 금지하였다. 심지어 야훼의 신상을 만드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깊숙한 곳인 지성소에도 야훼의 신상은 없고 대신 야훼가 내린 율법이 기록된 상자(언약궤)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상숭배 즉 야훼 이외의 신들을 숭배하는 관습은 야훼주의자들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교숭배에 대한 투쟁에 열심을 보인 왕들이 이스라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유대 왕국의 히즈키야(우리말 개역성서의 히스기야)와 그 손자 요시야 왕이 그런 왕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신화3부에서는 이들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요시야 같은 야훼주의 군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대 왕국은 결국 우상숭배자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요시아의 아들 쯔드키야(시드기야) 왕 때였다. 그는 이집트 편에 붙어 바빌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당시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짜르(느부갓네살)가 쯔드키야 면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쯔드키야를 장님으로 만든 다음 그를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유대 왕국의 지배층의 대다수가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야훼주의자들의 정신적 보루였던 예루살렘 성전도 바빌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성전이 사라졌으니 야훼에게 제물을 바치고 숭배할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당에 모여 율법서(토라)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율법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랍비라고 하였다. 야훼를 유일신으로 믿고 숭배하는 유대교는 율법서 연구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율법서에 기록된 가르침들과 구전 율법들을 모은 책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율법 연구를 중심으로 한 유대교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이후 등장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수 시대에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 자구까지 엄격히 지키려 한 사람들이 바리사이파였다. 바리사이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율법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안식일에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조차 불경한 것으로 보았다. 예수가 이런 바리사이파를 격렬히 비판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예수 당시에 또 하나의 중요한 파로는 엣세네파가 있었다. 엣세네파는 바리사이파와 대립하였다고 하는데 이들도 바리사이파처럼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개인의 재산을 공동체에 바치고 엄격한 규칙하의 단체생활을 하였다. 이들이 자신의 개인재산을 바치고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은 바리사이인들과는 달리 종말신앙이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47년 사해 주변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는 이들이 남긴 유산이다.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는 수메르 문명과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명저이다. 저자가 수메르어와 히브리어에 정통하다는 것이 책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이 출간된 10년 뒤에는 조철수 박사는 그의 해박한 유대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평전을 출간하였다. 유대교와 예수의 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그런데 이 분이 안타깝게도 수년 전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필자는 그 소식을 듣고 훌륭한 인재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대학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많이 길러 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다. 우리 대학 사회가 얼마나 인재를 알아보지 못했는가 하는 분노와 함께... 그러나 그가 그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권의 좋은 책들을 남긴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6개(3/1페이지)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