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투르크의 기원을 찾아서

전원철 연구위원

2022.07.11 | 조회 5039

투르크의 기원을 찾아서

 

지난 6월 에르도안 정부의 터키는 국가와 민족명을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이 나라의 새로운 국명인 '튀르키예라는 말에서 '투르크주서(周書)에 따르면 돌궐의 선조는 알타이산(金山)의 양지쪽에 살며 조잔(茹茹)의 철공(鐵工)으로 살았는데, 알타이산 모양이 투구(兜鍪)와 비슷하고, 그 풍속(其俗)에 투구를 투룩(突厥)이라고 하여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학자들에 따르면, 이 말은 옛 투르크어로 '힘세다'를 뜻하며, 예전에 보통 튀르키예인과 오스만인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그 옛날 이 민족의 이름은 북사北史돌궐전에 기록된 바, 이시바라 카간(沙缽略可汗)이 수나라 문제에게 보낸 天生 大突厥天下賢聖 天子伊利俱盧設 莫何始波羅 可汗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돌궐(突厥)’이고, 735년경의 빌게 카간 비문에서는 투르크 보둔(투르크 백성)’이다. 이는 투르크 학자 이용성에 따르면 괵튀르크에게만 적용된 말이다.

한편 터키라는 국명은 튀르키예 학자 일베르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이 투르키아또는 투르크메니아’, 독일인들의 튀르카이’, 16세기에 영어로 터키Turkie”라고 한 것에서 왔다고 한다.

금번에 국명을 바꾼 이유는 케임브릿지 영어사전에 따르면, 영어로 Turkey는 소문자로 쓰면 칠면조를 뜻하고 또 속어로는 실패작, 바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이다. 영어어원사전 www.etymonline.com은 영어에서 Turkey칠면조를 뜻하는 이유는 마다가스카르 원산의 칠면조를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에 처음 도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튀르키예인들이 보기에 칠면조겁쟁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이 싫은 것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지난 여러 해 오랜 논의를 거친 뒤 마침내 국명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튀르키예인들과 코렐리(Koreli: 한국인)은 형제민족이라고 한다. 왜일까? 튀르키예의 투르크 민족과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1) 동이東夷의 후손인 흉노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투르크(突厥)


주서이역전異域傳에 따르면 투르크인 최초의 왕조는 아사나(阿史那)’ 씨 가문이고, 이 가문은 흉노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匈奴之別種)’이다. 그런데 한서(漢書흉노전(匈奴傳에 따르면, 흉노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손이다. 곧 하나라를 세운 하우(夏禹)의 후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하우는 동이東夷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이 말을 극도로 삼가하였던 사마천도 자신이 쓴 사기오제본기(五帝本紀)와 하본기(夏本紀)에서 스스로 인정하여 최초로 동이라고 적은 ()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이루장구離婁章句 에서 보듯이, 맹자가 직접 동이인(東夷之人)’이라고 한 순() 임금도 자기 자신과 같이 동이인 아버지를 둔 하우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렇다면 하나라는 동이의 나라이고, 그 후손인 흉노도 동이의 후손이다.

한편 후한서동이전이 명백히 밝히고 있듯이, 우리 코리안들의 선조인 , 부여국夫餘國,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삼한三韓등이 모두 하나로 동이라고 불린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며, 나아가 군자의 나라라, 공자도 구이(九夷)에 살고 싶다.”고 한 바 있듯이, 우리도 이 고대의 우리 족칭을 자랑으로 삼는다. 동쪽사람을 뜻하는 동이는 우리말 이 이, 저 이(이 사람, 저 사람)’ 하듯이 사람을 뜻하는 다른 말이다.

한편 우리와 친족관계인 투르키예 말로 동이‘Doğu라고 하는데, 이는 Güneş doğu-dan doğ-du (동에서 해가 떴다)’는 말에서 보듯이 동사원형 뜨다(doğ-mak)’의 어근 doğ-()‘에 소리 부드러운 끼임새 꼬리말 ‘-u’가 붙은 말로 보인다. 결국 ‘Doğu()-yi(, 사람)’의 후손이 바로 코렐리(코리안), 흉노와 투르크인들이다. 그렇다면 동이의 후손인 코리안들과 흉노, 그리고 흉노에서 갈라져 나온 씨앗 투르크인들은 모두 원래는 한 선조의 후손, 형제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2) 투르크와 오구즈 위구르

 

돌궐을 세운 아사나씨 가문은 지나 서북부 오늘날 위구리스탄의 투르판 지역에서 멀지 않은 감숙성 돈황에 가까운 평량(平凉) 지방의 한 사내아이와 한 마리의 암늑대(牝狼) 사이에서 태어난 가문이라 한다. 이 사내 아이의 종족은 주서돌궐전이 돌궐은 흉노에서 갈라진 씨앗이다.’는 기록으로 보아 분명 흉노인이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흉노단우국(匈奴單于國)을 비롯하여 이 가문이 세운 카간국을 투르크 최초의 나라인 괵투르크(하늘의 투르크/푸른 투르크)’라고 한다.

한편 흉노에서 나온 부계 가문은 아니지만 모계 가문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종족이 있다. 오늘날 투르크인의 일부라고 간주되는 위구르(Uighur)’인들이다. 이 종족은 흉노공주늙은 숫늑대(老狼)’ 사이의 후손이다.

위구르의 선조들인 위흘韋紇/원흘袁紇북사(北史)철륵전에 의하면 한()나라 시대에는 흉노와 함께 그 연맹의 일부를 이룬 딩링(丁零)/틸리에 속했다가 그 뒤에는 고거(高車)’ 연맹, 테렉(鐵勒, 철륵)’ 연맹의 한 부락이었다. 바퀴가 높은 달구지를 한문으로 고거(高車)’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어에서 테렉(鐵勒, 철륵, Terek)’이다. 이 테렉(鐵勒, 철륵)은 우리말 달구지달구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부락 중 하나인 위흘/원흘은 후일 철륵 연맹의 장이 되었다. 이 부락은 나중에 신당서(新唐書)열전이 보여주듯이, -당대에 와서 위구르(回紇, 回鶻)’로 기록되었다. 당말-오대 시대에는 위구르 카간국이라고 불렀다.

이에 앞서 제2동돌궐이 수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워진 아사나씨 돌궐의 퀼테긴 비문(732)과 빌게 카간의 비문(735)은 그들을 오구즈(Oguz)’라고 부른다. 이 비문들에 따르면 그 전에 뵈클리 카간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 뵈클리라고 불리던 고구려에서 온 2가지 종족이 나온다. ‘오구즈인들과 타타르인들이다.

그들은 빌게 카간비문 동면의 12, 13행이 보여주듯이, 처음에는 빌게 카간 자신의 종족인 투르크인들이 아닌 그 적대 종족들이었다. 당시 투르크인들과 같은 종족이라고 간주된 종족은 단지 빌게 카간 비문과 통감등 한문사서에 나오는 돌기시(突騎)’라고 불린 튀르기시인들뿐이었다.

그러나 돌궐의 퀼테긴과 빌게 카간의 시대에 오구즈인들은 투르크인들과 함께 돌궐의 퀼테긴과 빌게 카간의 백성 중 일부로 편입되었다. 빌게 카간은 자신의 묘비명 동면 18, 19행에서 투르크 백성에게 그리고 이어서 오구즈 백성이여 들어라! ... 타타르 백성들이여 들어라!’ 고 하며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투르크인들이 아닌 이 두 종족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놀랍게도 바로 오늘날의 말로 부르자면 재외(在外) 부려-고구려인들이었다! ‘오구즈(Oguz)’인들은 투르크어로 오구르(Ogur)’인이라고도 기록되었고, 신당서호고르(烏護, 烏紇)()나라 때에는 위흘(韋紇)이라고 적었는데, 이 말의 옛소리는 코고르(Kogor)’, 커구려(고구려)’와 같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살아간 지역도 바로 고구려 서북 변방인 오늘날 내몽골 흥안령과 몽골리아(말갈) 지역이었다.

호흘(烏紇)’은 나중에 廻鶻(회골)’이라고도 적었는데, 이 소리의 당시 옛소리도 커고르(고구려)’이다. 위구르 카간국은 고구려가 망하자, 그들이 옮겨간 괵투르크 제국을 이어 744년 오늘날의 몽골리아 땅에서 일어났다.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3)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扶餘)’인들과 사촌인 투르크오구즈인들


방금 본 이 세 종족 중 특히 투르크인들과 위구르인들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흥미롭게도 둘 다 시조 부부 중 하나가 흉노-투르크어로 부리(附離: : 늑대)’라는 점이다. 다만 앞서 북사돌궐전과 북사고거전에서 각각 보았듯이, 부처 중 어느 하나가 암늑대(牝狼)이냐, 숫늑대(老狼)이냐 하는 것만 다르다. 두 종족 사이의 단 하나의 차이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나, 팔다리가 잘린 흉노의 한 사내아이와 그를 발견하고 먹이를 주어 살린 암늑대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이 투르크이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리따운 흉노공주늙은 숫늑대(老狼)’ 사이의 후손이 위구르의 시조라는 차이뿐이다.

그런데 흉노-투르크어 부리(附離: : 늑대)’는 진짜 늑대일까? 말도 안 된다! 늑대와 사람이 어찌 혼인하여 사람을 낳겠는가? 사실은 고구려와 백제계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扶餘)’인이라는 말이 흉노-투르크어 부리(附離)’, 늑대()’와 소리가 같아, 이를 늑대로 신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서흉노전이 돌궐 시대 직전인 흉노시대에 흉노 상곡(上谷) 지방의 동쪽으로는 예맥과 조선이 이어졌다라고 하는 사실로 보아 이와 같은 시기에 조선(朝鮮)의 한 방국으로서 조선보다 좀 더 서북쪽에 존재한 부려(扶餘)’는 돌궐과 바로 이웃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바이칼 동편으로 오늘날에도 부랴(부여)-티아라고 불린다.

바로 그 부려(扶餘)’ 사람이라는 말이 흉노-투르크어로 늑대()’와 같은 소리인 말 부리(附離)’와 같은 소리를 가지고 있어 이처럼 늑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흉노인 사내와 코리안의 선조인 부려(扶餘)’ 여인이 혼인하여 태어난 종족이 투르크인들이고 반대로 흉노 공주와 코리안 부려 사내와 혼인하여 태어난 종족이 위구르라는 이야기이다. 결국 투르크와 위구르는 외사촌, 고종 사촌 형제 민족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투르크인들이 동이東夷하우夏禹의 후손인 흉노의 남은 씨앗이라는 사서의 이야기와 통하는 점이 있다.

 

4) 흉노와 딩링(테렉-위구르) 두 가지 이상 종족이 함께 나라를 이룬 흉노국


다른 한편 키르기즈인들도 흉노의 일부이다. 신당서회골(回鶻) 하에는 키르기즈인들이 붉은 머리칼(赤發)에 푸른 눈알(綠瞳)을 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로 보아 키르기즈인들의 신체특징으로 보아 그들 선조 중 일부는 애초에는 유럽인이었거나, 또는 우리역사의 일부인 금나라 시대 황두여진(黃頭女眞)’처럼 붉은 머리칼을 가진 퉁구스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DNA조사를 통해 흉노인이 유럽인이었는지 아시아 인종이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흉노의 후손 민족들이 투르크, 위구르, 코리안 경주 김씨, 그리고 흉노와 선비로 간주되는 북사우문막괴전에 기록된 흉노 우문막괴(匈奴宇文莫槐), 선비의 일파인 토곡훈인 것 등으로 보아 흉노는 대개 모두 아시아계였던 것은 사실이다.

한서흉노전에 적힌 흉노의 족장칭호인 탱리고도단우(撐犁孤塗單于), 이를 줄인 단우(單于)’는 우리말 단군(탕구리, 檀君)’과 거의 유사한 소리를 한자를 빌어 적은 말로 보이고, “흉노는 현명하다는 말을 또기(屠耆)’라고 한다(匈奴謂賢曰屠耆)”는데, 이 역시 똑똑이라는 우리말과 통한다.

또 단우의 아내인 알씨(閼氏)’도 고대 ‘-이 고대 한어에서는 ‘t/ss’소리를 가졌다는 역사언어학적 사실을 고려하면 귀부인을 가리키는 우리말 아씨와 소리가 같다. 한서흉노전에 기록된 흉노-투르크어 낱말 탱그리(撐犁, 하늘)’, ‘코토(孤塗, 아들)’에서 탱그리주서돌궐전의 투르크어 -텡그리(-登凝黎, -등응리/-텡그리)’로 이어지는데, 이는 지나어로 땅신(地神)’이라고 한다. ‘()-’은 우리말 /라고 보면, ‘()’이라는 뜻이 된다. ‘-텡그리(登凝黎)는 분명히 오늘날 투르크어 Tanri(하늘/)와 몽골어 Tenger(하늘/)의 요소이다. 따라서 비록 기록된 흉노어 어휘가 몇 개 안되어 그 실체를 알기는 어렵지만, 흉노어는 고대 한국어, 투르크어, 몽골어 3가지 요소가 모두 혼합된 언어가 아닐까 한다.

이처럼 선조가 동이라는 점, 신체적 특징을 본 외모의 공통성, 또 칭호의 공통성 등 세 가지를 측면을 볼 때, 흉노국에서는 정령, 흉노 및 한민족을 포함하여 서넛 이상의 동북아시아 민족이 함께 살고 있었으리라. 혹은 같은 뿌리의 민족이 나중에 점차 분화한 것이다.

 

5) 고구려와 돌궐은 사돈 국가


한편 흉노와 옛조선 시대를 지난 때의 일이다. 700년 이상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지나의 선비족 수-당의 백만 대군을 여러 차례 물리친 고구려가 668년에 망하자 고구려 왕가와 그 수하 수십만의 고구려 백성과 대대로의 문중이 동돌궐로 난민이 되어 들어갔다.

구당서동이전 등은 고려 고씨군장은 돌궐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고 하여 이 사실을 명백히 전한다. 당시 그들은 빌게 카간 등의 투르크인들로부터 오구즈(오구르: 고구려) 백성타타르(대대로) 백성으로 불렸다.

이들 중 고구려 마지막 보장왕의 손자로 보이는 고려왕 막리지 고문간(高文間)712년경 괵투르크 제2대 카간인 카파간 카간(1대 일테리시 카간의 아우)의 딸이자, 4대 카간인 빌게 카간과 그 아우 퀼테긴의 사촌 여동생인 아사나(阿史那) 부인과 혼인하였다. 그 뒤 고문간은 715년 이후 돌궐에서 당나라의 하서를 거쳐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고향 땅인 오늘날 만주의 서쪽, 곧 당시의 말로 요서遼西로 돌아와 요서군왕이 되었다. 이 사실들은 책부원귀974 977에 나온다. 고문간이 관할한 요서 지역은 발해에 인접한 오늘날 요녕성 서부와 북경 가까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한반도 남방의 신라, 북방과 만주의 발해, 그리고 그 세 번째인 이 요서군왕국은 오늘날 학자들은 소고구려국이라고 부르는데, 대략 100년을 지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나라가 망한 고구려 왕가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동돌궐 왕가가 사돈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두 민족 간의 친족관계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코리안들은 예전의 고구려-백제-신라가 아니라, 신라-발해-투르크 사돈국 요서군왕국이라는 남북서 삼조(三朝)를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6) 자유와 민주를 위해 함께 피를 흘린 형제국튀르키예


오래 된 옛 역사를 떠나 가까운 지난 세기 우리 코렐리(‘코리안의 튀르키예어)와 투르크와의 관계를 상기해 보자.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주를 받은 북한이 민족 상잔의 6.25를 도발했다. 그러자 튀르키예는 UN의 부름을 받아 미국 다음으로 즉시, 2번째로 무려 약 15,000명에 달하는 병사를 보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는데 함께 피를 흘린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더 할 나위 없이 용맹했다.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말했다: “터키 병사들은 영웅 중의 영웅이다. 터키 여단에 불가능은 없다.” 이 전쟁에서 참전국 중 세 번째로 많은 수의 튀르키예 병사가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저 하늘의 무수한 별이 되었다! 이 때문에도 많은 이들은 흔히 튀르키예인들과 코렐리는 형제민족이라고 한다.

고통과 희생, 잿더미로 3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도 많겠지만, 나의 아버지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앳된 16세의 나이로 3년 간 참전하셨다. 미군이 당시 ‘A-Frame Special Forces(지게꾼 특수군)’이라고 불렀던 총 한 자루도 주지 않는 특수부대의 일원으로. 또 나의 작은 외삼촌도 조국의 자유와 민주를 지키려고 이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저 하늘의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되셨다. 알라의 끝없는 자비가 언제나 그에게 부드러운 손길을 벋어 주시기를! 또 나의 존경하는 우리 연구소의 투르키예 동료 에스라 님의 작은 할아버지도 투르키예군의 전사로 오셔서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우시며 갖은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이 전쟁이 끝나자 우리측 대표가 튀르키예 대표에게 물었다. “귀국 젊은이들이 우리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 이 고마움을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는가? 돈이면 돈, 물건이면 물건으로그러자 튀르키예 대표가 우리 대표의 손을 잡으며 답했다. “형제여, 형제의 나라를 위하여 우리 병사들이 피를 흘린 것에 무슨 보답이 필요하겠는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다만 힘든 것이 있었다면 우리 병사들이 전투 중에 살라트(Salat: 이슬람 기도)를 할 곳이 없어 돌바닥에 엎드려 해야 하는 것이었다. 형제의 나라에 마스지드(Masjid: 이슬람 사원)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에 우리 정부대표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았다. “‘다섯 개의 사원을 지어 형제의 나라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도록 하겠다!” 이리하여 서울 이태원에 이슬람 사원이 지어졌다! 알라는 위대하다! 다만 그 뒤 나머지 4개는 아직도 지어지지 않았다.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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