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한국의 마고여신

박성혜(한밭대)

2023.04.21 | 조회 2275

2022년 증산도 후천선문화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한국의 마고여신

- 부도지符都誌의 마고를 중심으로 -

 

박성혜(한밭대)

 

1. 머리말

2. 마고와 땅 창조

3. 마고와 인류창조

4. 마고의 최고신적 속성

5. 맺음말

 

국문초록

본고는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를 중심으로 한국의 마고여신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도지의 마고는 땅과 인류를 창조하는 최고신적 속성을 보여준다. 이를 한국의 설화와 비교함으로써 그 독특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 신화는 국가 권력이 생겨나기 이전 자연신이자 대모신으로서의 속성, 선도성모의 모티프를 유지하여 그 신성성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성서와 비교하며 마고할미의 서사를 구축하기도 하고, 건국신화에 포섭되지 않고 최고신적인 속성을 유지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가 담긴 신화이다. 이는 기존에 전승되던 한국의 마고할미 신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변용한 사례로서 기존의 마고 할미의 유형과는 다른 또 다른 전승 사례로 볼 수 있다.

주요술어

마고할미, 부도지, 창조, 선도성모, 단군

 

 

1. 머리말

 

한국 신화에서 마고할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땅을 창조하는 경우도 있고, 인간들에게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산신으로 변형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형상화 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마고할미의 다면적인 형상은 마고할미 신화가 매우 오랫동안 한국에서 전승되면서 변형되어 온 신화임을 방증한다.

마고할미의 다양한 형상을 담은 여러 자료들 중 부도지符都誌는 그중에서도 독특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할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부도지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부도지의 서문과 김시습이 썼다고 하는 징심록추기에 따르면, 부도지󰡔징심록󰡕의 일부로 신라 눌지왕 대의 박제상(朴堤上)이 삽량주(현재 양산) 간으로 있으면서 열람할 수 있던 자료와 가문의 비서祕書를 정리한 󰡔징심록󰡕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박제상의 후손인 영해박씨 가문에서 전하다가 단종 손위 이후 김시습과 금강산을 거쳐 함경도 문천의 운림산의 삼신궤三神匱 밑바닥에 몇 백년간 감춰져 있다가 박금에게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1953년 박금이 해방 후 월남하면서 이를 위에 두고 내려오게 되자, 그가 󰡔징심록󰡕을 번역하고 연구하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원문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1986년 가나출판사본의 <부도지 번역에 부쳐>에 따르면 박금은 울산의 피난소에서 1953년에 부도지를 재생, 프린트본으로 출간하였으며, 이때 제명을 요정 징심록연의要正 澄心錄演義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한자본을 김은수가 번역하고 주해하였다.

이와 같은 부도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박제상이 쓴 것이다. 그러나 부도지에서 주장하는 텍스트의 생성 시기를 그대로 신빙하기에는 여타 위서僞書와 같이 텍스트 본문의 내용에서 추론할 수 있는 시기적 배경과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텍스트가 위서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 텍스트는 마고할미 신화, 단군 신화와 같이 한국에서 면면히 전승되어 왔던 신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본질적으로 구비전승된다는 특성상 처음에 형성된 신화의 형태를 순수하게’ ‘그대로유지하면서 전승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신화의 가장 시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신화는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애초에 신화가 순수하게’, ‘그대로전승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따라 변화되고, 그 당시에 강제되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내용이 변화하는 것은 신화의 전승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 안에서 자신들이 기억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변화된다. 신화의 서사 구조, 모티프, 신화적 인물의 이름 등이 다양하게 변하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신화에 흔적을 남기는데, 이러한 변화는 신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이 신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풍성한 신화적 상상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각 아래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의 형상화를 살펴보고, 그 신화적 상상력의 특수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마고와 관련된 내용이 서술된 부도지1장부터 9장까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를 다른 마고할미 신화와 비교해보면서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의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도지󰡕에 담긴 신화적 상상력이 지닌 가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길 기대한다.

 

2. 마고와 땅 창조

 

1장과 2장은 마고성과 마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3장은 마고가 땅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된다. 먼저 마고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자.

 

선천시대에 마고대성은 실달성實達城 위에 허달성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또한 이 음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다.

짐세 이전에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출현하였다. 짐세가 몇 번 종말을 맞이할 때 마고가 궁희와 소희를 낳아 두 딸에게 오음칠조 五音七調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다.

先天之時大城在於實達之上하야 與虛達之城으로 竝列하니 火日暖照하고 無有具象하야 唯有八呂之音自天聞來하니 實達與虛達皆出於此音之中하고 大城與麻姑亦生於斯하니 是爲朕世.

朕世以前則律呂幾復하야 星辰己現이러라. 朕世幾終麻姑生二姬하야 使執五音七調之節하다. (2)

 

위 인용문은 별과 마고의 출현을 설명한다. 인용문에 따르면 짐세 이전에 율려가 다시 반복되어 별들이 출현한다. 이후 8려의 음에서 실달과 허달, 대성과 마고가 태어난다. 이 내용을 종합해보면 짐세 이전에 이미 별들과 햇빛이 있었고, 이후 짐세가 되어 팔려의 음에서 실달, 허달, 대성, 마고가 생긴다. 여기에서 짐세 이전에 있었던 율려律呂는 한국과 중국의 음악에서 본래 6율과 6려를 합해서 부르는 용어로, 12음을 양성陽聲과 음성陰聲으로 구분하여 양성은 양율, 음성은 음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8려의 음 역시 율려의 일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별들과 실달, 허달, 대성, 마고가 출현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율려나 팔려의 음은 그 안에 음양의 사고가 내포된 악용어이다.

그리고 2장의 내용에 따르면 짐세가 끝날 때 마고가 두 희, 즉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태어나게 하는데 이들은 오음칠조를 맡게 된다. 오음칠조에서 칠조는 음악의 일곱 가지 곡조로 궁, , , , , 오성, 즉 오음에 각각 7조가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악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악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그 안에 내포된 우주자연의 조화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학의 예악에서 예에 상응하는 악은 예와 함께 도덕적 교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우주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며, 을 본받아 만든 것인데, 천이 변화의 상징이므로 변화의 이치를 아는 것이 악의 근본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후천의 운이 열렸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곧 음상을 이루니, 성과 음이 섞인 것이었다. 마고가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의 지역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수운水雲의 위를 덮고, 실달의 몸체가 평평하게 열려 물 가운데에 땅이 생겼다. 육해가 병렬하고, 산천이 넓게 뻗었다. 이에 천수의 지역이 변하여 육지가 되고, 또 여러 차례 변하여, 수역과 지계가 다 함께 상하가 바뀌며 돌므로, 비로소 역수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기. . . 토가 서로 섞여 빛이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구분하고 풀과 짐승을 살지게 길러내니, 모든 땅에 일이 많아졌다.

後天運開律呂再復하야 乃成響象하니 聲與音錯이라. 麻姑引實達大城하야 降於天水之域하니 大城之氣l上昇하야 布冪於水雲之上하고 實達之体平開하야 闢地於凝水之中하니 陸海竝列하고 山川廣圻이라. 於是水域變成地界而雙重하야 替動上下而斡旋하니 曆數始焉이라. 以故氣火水土l 相得混和하야 光分晝夜四時하고 潤生草木禽獸하니 全地多事. (3)

 

위 인용문은 후천시대에 마고가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의 지역에 내려놓으면서 땅이 생기는 과정을 서술한다. 실달대성이 천수의 지역에 떨어지자 대성의 기운이 상승하여 물구름 위에 퍼지고, 실달의 형체가 평평하게 열리면서 땅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육지와 바다가 병렬하고 산천이 넓게 그 경계를 뻗어나갔다. 더불어 역수, 즉 시간이 시작되고 풀과 짐승이 자라기 시작했다. 3장의 내용을 염두한다면 마고는 별들이 이미 있던 즉 하늘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팔려의 음에서 나온 실달과 허달 중 실달을 가지고 땅을 만든다. 요컨대 자신과 그 본질이 같은 실달로 땅을 만드는 것이다.

마고의 땅 창조는 한국의 창세신화인 <창세가>와 비교했을 때 천지를 분리하지 않고, 땅을 직접적으로 창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찾을 수 있다. 김쌍돌이본 <창세가>는 미륵님이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떨어뜨린 이후 직접 각각 두 개인 해와 달을 하나씩 떼어 별로 만들어 해와 달이 각각 하나가 되는 질서를 만든다. 그런데 마고의 경우 이미 존재하던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그 본질이 같은 실달을 물에 떨어뜨려서 물과 실달의 작용으로 인해 실달의 형체가 평평해져서 땅이 생기게 한다. 그리고 해와 달을 직접적으로 조정하지 않는다. 별들과 햇빛은 마고가 출현하기 전부터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마고의 땅 창조는 자연스럽게 땅이 생기는 과정에서 역수, 즉 시간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역시 실달이 땅이 되듯이, 수역과 지계가 바뀌어 돌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고가 땅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마고성의 보수과정에서 확인된다.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麻姑城地上最高大城이니 (1)

 

이에 마고가 궁희와 소희와 더불어 대성을 보수하여 천수天水를 부어서 성내를 청소하고, 대성을 허달성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때 청소를 한 물이 동과 서에 크게 넘쳐 운해주의 땅을 크게 부수고, 월식주의 사람들을 많이 죽게 하였다. 이로부터 지계의 중심이 변하여 역수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과 판의 현상이 있었다.

於是麻姑與二姬修補大城하고 注入天水하야 淸掃城內하고 移大城於虛達之上이러라. 是時淸掃之水l 大漲於東西하야 大破雲海之地하고 多滅月息之人이라. 自此地界之重變化하야 曆數生差하니 始有朔昄之象이라. (9)

 

위 인용문은 마고성에 대한 설명이다. 1장에서는 마고성이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이라고 언급하고, 9장에서 마고는 이 성을 보수한다. 마고가 성을 보수하게 된 계기는 5장부터 서술된다. 이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마고성에서 인류가 번성하며 조화롭게 살다가 포도를 과하게 먹게 되자 이를 금지하게 된다. 이러한 금지가 금지하지 아니하되 스스로 금지하는자재율을 파기하는 것이다 보니 마고가 성문을 닫아버린다. 이렇게 되자 성 안의 사람들이 누렸던 조화가 깨지게 되고 이 상황을 보고 처음으로 포도를 먹은 사람과 그 가족, 그를 따라 포도를 먹었던 많은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들 중 잘못을 뉘우친 사람들이 성곽의 밑을 파헤치자 성이 파손되면서 성 안의 지유地乳가 마르게 된다. 마고는 이렇게 파손된 성을 두 딸과 보수하고, 천수를 부어서 성을 청소하고, 허달성과 나란히 있던 마고성을 허달성의 위로 옮긴다.

사실 한국의 마고 전승에서 마고할미가 성을 쌓았다는 각편은 적지 않고, 실제로 그 성의 이름이 마고성인 경우도 있다. 일례로 경북 문경의 고모산성의 경우, 할머니가 치마폭으로 성을 쌓았기 때문에 이를 마고성이라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듯 마고 할미가 성을 쌓았다고 하는 설화가 적지 않은 것은 마고할미가 한반도의 신석기 거석숭배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신이었기 때문인데, 마고할미는 성을 쌓는 것 외에도 바위의 제작자나 여산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또한 마고는 바위를 세우거나 튕기기도 하고, 자신의 손바닥 자국을 남기거나 흙을 날라서 지형을 만드는 것으로 형상화되면서 대모신으로서의 관념을 드러낸다.

그런데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성은 일반적인 마고할미의 설화에서 확인되는 마고성과는 차이가 있다. 먼저 부도지의 마고성은 마고가 쌓은성이 아니다. 2장에서 본 바와 같이 팔려의 음에서 마고와 대성이 생성되는데, 대성이 바로 마고성에 해당한다. 다만 마고가 마고성을 보수하고 청소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모습에서 성을 직접 쌓지는 않더라도 보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부도지의 마고성이 기존의 설화에서 확인되는 마고성과 차이가 나는 원인은 마고성이 성서의 <창세기>를 의식하며 낙원으로 형상화되고, 고대 한민족의 발상지인 파밀고원의 낙원 마고성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국의 신화를 바탕으로 민족의 발상지나 기원을 유대, 바빌론, 앗시리아, 히타이트 등 성서의 무대나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동서 경계지역을 거론하는 것은 근대 일본에서도 있었던 현상이다. 일본인들의 경우 이 작업을 기기신화를 가지고 한 것이라면 부도지는 마고할미 신화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다를 뿐 마고성을 파미르고원으로 추정하는 것은 근대 일본에서 자국의 기원을 서구에서 찾던 작업과 다르지 않다. 오구마 에이지는 일본에서 있었던 이러한 담론의 생성 원인으로 서양과의 비교 속에서 오는 열등감이나 절망감을 언급하는데, 이는 부도지의 경우에도 일정부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3. 마고와 인류창조

 

부도지의 마고가 여타 마고할미 신화와 다른 큰 특징 중 하나는 마고가 인류의 시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마고가 낳은 궁희와 소희로부터 네 천인과 네 천녀가 태어나는데, 이들은 인간의 시조를 낳는다. 그리고 인간들은 마고성에서 계속해서 번성하며 지내다가 흩어지게 되고, 마고로부터 이어지는 계보에서 환인과 단군이 출현한다.

 

마고성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천부를 받들어 선천을 계승하였다. 성 중의 사방에 네 명의 천인이 있어 관을 쌓아놓고 음을 만드니, 첫째는 황궁씨요, 둘째는 백소씨요, 셋째는 청궁씨요, 넷째는 흑소씨였다. 두 궁씨의 어머니는 궁희씨요, 두 소씨의 어머니는 소희씨였다. 궁희와 소희는 모두 마고의 딸이다. 마고는 짐세에 태어나 희노의 감정이 없으므로 선천을 남자로, 후천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궁희와 소희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두 천인과 두 천녀를 낳았다. 합하여 네 천인과 네 천녀였다.

麻姑城地上最高大城이니 奉守天符하야 繼承先天이라. 城中四方有四位天人堤管調音하니 長曰 黃穹氏次曰 白巢氏三曰靑穹씨오 四曰 黑巢氏也. 兩穹氏之母曰穹姬兩巢氏之母曰巢姬二姬皆麻姑之女也. 麻姑l生於朕世하야 無喜怒之情하니 先天爲男하고 後天爲女하야 無配而生二姬하고 二姬亦受其精하야 無配而生二天人二天女하니 合四天人四天女也. (1)”

 

1장의 내용에 따르면 마고는 먼저 궁희와 소희라는 딸을 낳는다. 그런데 이 과정을 살펴보면 선천을 남자로, 후천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두 희를 낳았다고 서술된다. 여기에서 배우자가 없이궁희와 소희를 낳은 것과 이들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형상화된 것이 주목된다.

배우자가 없는 출산과 그 자녀가 비범한 존재로 형상화되는 것은 󰡔삼국사기󰡕의 선도산 성모의 전승과 매우 유사하다.

 

옛날 황실의 딸이 남편 없이 아이를 임신하여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자 바다에 배를 띄워 진한辰韓으로 가서 아들을 낳으니, 그 아이가해동海東의 시조 왕이 되었다. 황실의 딸은 지상의 신선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仙桃山에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상이다.”라고 하였다. 신은 또 송의 사신 왕양王襄이 동신성모東神聖母에게 제사 지내는 글을 보았는데, “현인賢人을 잉태하여 나라를 처음 세웠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에 동신東神이 곧바로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으나, 그의 아들이 어느 때 왕 노릇을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삼국사기󰡕의 전승에 따르면 제실의 녀로 형상화된 선도산 성모는 불부내잉不夫乃孕’, 즉 남편이 없이 아이를 임신한다. 이는 선도산 성모가 자연적 생산성을 구현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불부내잉의 모티프는 성모가 국가성립 이전의 자연적인 상태에서 숭앙되었을 풍요와 다산의 생산 신격이자 근원적 존재이기 때문에 결혼이나 그와 관련된 부수적인 서술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 부도지의 마고 역시 배우자가 없이 궁희와 소희를 낳고,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땅을 만들고 마고성을 보수한다. 이러한 형상화는 부도지의 마고 역시 국가 권력이 성립되기 이전 상태의, 창조신적인 면모를 내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제실녀가 진한으로 가서 낳은 아들은 해동의 시조왕이 되며, 동신성모는 현인을 잉태하여 나라를 처음 세운다. 개국을 한 시조의 정당성이 배우자 없이 임신을 한 제실녀나 동신성모로부터 비롯된다. 제실녀의 아들이 시조이듯, 마고로부터 태어난 궁희와 소희는 창세의 근원인 오음칠조를 담당하고, 무너진 성을 보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궁희와 소희로부터 태어난 네 천인과 네 천녀의 결연을 통해 인류가 태어난다. , 궁희와 소희 역시 비범한 존재로 형상화된다.

마고의 근원적인 생산력과 대모신으로서의 이미지는 지유地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유, 즉 땅의 젖은 마고성 안에서만 흐르는 식량으로, 지유를 마시면 혈기가 청명해지고 마시지 못하면 배가 고파 어지러워 쓰러지게 된다. 6장에서 지유를 먹지 않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가 생기고 침이 뱀의 독처럼 되었다고 서술하는 것을 보아 지유는 마고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식량이자, 그들의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형상화된다.

이렇듯 근원적인 생산력을 가진 대모신인 마고는 궁희와 소희로부터 태어난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인류를 창조하라고 명령한다.

 

이 때에, 본음本音을 맡아서 관섭管攝하는 자가 비록 여덟 사람이었으나 향상을 수증修證하는 자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났다가, 잠깐 사이에 없어지며 조절이 되지 못하였다. 마고가 곧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을 하게 하니, 이에 네 천인이 네 천녀와 결혼하여 각각 삼남 삼녀를 낳았다. 이가 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인간의 시조였다. 그 남녀가 서로 결혼하여, 몇 대를 지내는 사이에, 족속이 불어나, 각각 3000 사람이 되었다. 이로부터 12 사람의 시조는 각각 성문을 지키고, 그 나머지 자손은 향상을 나눠서 관리하고 수증하니, 비로소 역수가 조절되었다.

是時管攝本音者l雖有八人이나 未有修證響象者故萬物閃生閃滅하야 不得調節이라. 麻姑l 乃命四天人四天女하야 辟脇生産하니 於是四天人交聚四天女하야 各生三男三女하니 是爲地界初生之人祖也. 其男女l又復交聚하야 數代之間族屬各增三千人이라. 自此十二人祖各守城門하고 其餘子孫分管響象而修證하니 曆數始得調節이라.(4)

 

마고는 궁희와 소희의 자녀들인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령하여그들이 결혼을 하고 각각 삼남 삼녀를 낳도록 한다. 그리고 이들이 낳은 삼남 삼녀가 서로 결혼하여 각 족속이 삼천 명에 이르게 된다. 마고는 자신이 인류를 낳지는 않지만 자신이 낳은 궁희와 소희, 이들로부터 출생한 네 천인과 네 천녀가 자손을 낳도록 명령하면서 인류를 창조한다. 이때 네 천녀의 협, 즉 옆구리가 열리는 것은 파충류의 출산과 유사해 보인다. 이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수록된 알영의 출생을 떠올리게 하는데, 󰡔삼국사기󰡕의 경우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알영이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에서는 계룡의 왼쪽 옆구리에서 출생한 여자아이가 알영이라고 서술한다. 이렇듯 마고의 인류 창조의 과정에는 한국의 마고 신화나 시조 신화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모티프들이 확인된다.

 

4. 마고의 최고신적 속성

 

부도지의 마고 형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마고가 건국 신화의 서사 밖에 위치하면서도 건국주의 계보의 가장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도지10장에 서술된 황궁-유인-환인의 계보와 연이어 서술되는 11, 12장의 환인-환웅-임검의 계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계보의 서술 이후 임검, 즉 단군이 세운 부도符都가 어떠했고, 그 후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서술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는 일종의 건국 신화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건국 신화의 경우 국가 권력 정당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부계와 모계 중 부계의 혈통을 강조하고 이로부터 국가 시조의 신성성을 강조한다. 이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 신화에서 명확히 보인다.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웅, 환웅이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 환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삼인을 통해 그 정당성을 추인받지, 단군의 모계인 웅녀로부터 혈통의 신성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사실 웅녀 역시 곰을 토템으로 하는 집단의 시조신격이었지만, 단군 신화라는 건국 신화 안에서는 그저 건국의 실현자를 태어나게 하는 배우자로서의 기능에 그친다.

이처럼 시조신화가 건국신화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계의 약화와 부계의 강화는 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포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 신격이나 시조 신격은 집단의 기원의 자리에서 국가 시조의 어머니자리로 전환된다. 웅녀가 그러했고, 유화가 그러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선도산 성모의 여러 전승 중 성모의 정체가 제실의 녀로 제시된 것 역시 그러한 흔적이다. 그리고 마고할미 신화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 다양한 각편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는 건국 신화의 서사 밖에서 땅의 창조, 인류의 창조, 건국주 혈통의 시원이라는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두고 부도지의 마고 신화가 생성 당시의 관념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도지서사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모계의 혈통이 강조되는 계보 안에서 부계 중심의 관념이 포착된다. 앞서 3장의 논의에서 살펴본 네 천인과 네 천녀가 각각 삼남 삼녀씩 총 24명의 남자와 여자를 출산한 사례의 경우, 12명의 인간의 시조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여기에서 12명의 인간의 시조는 모두 남성을 가리키고, 황궁-유인-환인-환웅-임검으로 이어지는 계보 역시 남성이다. 이를 통해 이미 남성을 중심으로 한 계보의 관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고의 서사와 지위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전승이 가능했을까? 부도지에서 마고가 자신의 서사를 유지하고 기존의 관념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서술될 수 있었던 이유로 마고성의 갖는 의미를 고려해볼 수 있다. 앞서 2장에서 부도지에 서술된 마고성의 독특한 점을 설명했듯, 마고성은 초기 인류가 살아가던 낙원으로 서술된다. 이 낙원에 대한 서술이 건국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서사만큼이나 중요했기 때문에, 낙원의 창조한 마고의 지위도 유지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땅의 창조, 인류창조와 같은 내용은 건국 신화의 틀 밖에서 건국을 한 집단의 기원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건국 신화의 구조 안에 포획되어 그 흔적만 남았던 시조 신격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다. 환언하자면 건국신화는 건국주의 혈통과 건국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계 혈통을 강조하면서 시조 신격이 약화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부도지의 경우 마고를 통한 자연의 생성 과정과 인류의 출현 과정이 뒤이어 제시되는 나라의 운영 원리이자 모태로 인식되어 건국 신화의 바깥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마고할미 신화가 가지고 있었던 대모신으로서의 신격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배치 속에서 마고는 최고신의 지위를 유지한다. 이는 단군에게 투항한 마고할미의 형상을 담은 설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평양시 강동군의 남쪽 구빈마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이 마고할미가 족장인 인근 마고성의 마고족을 공격했다. 싸움에서 진 마고할미는 도망친 후 박달족과 단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단군이 자신의 부족에게 너무도 잘해주는 것을 보게 된다. 마고는 단군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단군은 투항한 마고할미와 그 아래 아홉 장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아홉 손님을 맞아 대접한 곳이 구빈九賓 마을이고, 마고가 항복하기 위해 마고성으로 돌아오면서 넘은 고개를 왕림枉臨 고개라고 한다.

 

인용문은 박달족과 마고족의 갈등 속에서 마고할미가 단군에게 마음으로 복종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전설은 평양에서 단군과 마고의 전승이 섞이는 과정에서 마고의 지위가 단군의 아래로 배치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처럼 건국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일반적인 특성과 평양의 마고할미 전승을 고려하면 마고의 최고신적인 지위는 부도지의 특성임을 알 수 있다.

 

5. 맺음말

 

지금까지 부도지에 형상화된 마고를 땅의 창조, 인류창조, 최고신의 지위라는 세 가지의 특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부도지에 형상회된 마고 신화는 국가 권력이 생겨나기 이전 자연신이자 대모신으로서의 속성, 선도성모의 모티프를 유지하여 그 신성성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성서와 비교하며 마고할미의 서사를 구축하기도 하고, 건국신화에 포섭되지 않고 최고신적인 속성을 유지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가 담긴 신화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에 전승되던 한국의 마고할미 신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변용한 사례로서 기존의 마고 할미의 유형과는 다른 또 다른 전승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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