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

안동준(경상대학교)

2023.02.17 | 조회 6509

2021년봄 증산도 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

 

안동준(경상대)

 

 

목차

. 문제 제기

. 선행 연구 검토

. 동방의 천신으로서 동황태을

. 천황대제와 태을천존

. 남은 과제

 

 

논문요지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과 그 계보에 대하여 기존의 연구는 주로 진한秦漢시대의 태일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했다. 본 논문에서는 일부 학자들이 제기한 동황태일설東皇太一說을 재론하면서 그 근거를 후한시대의 ?노자중경老子中經?에서 찾아내어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을 살폈다. 태을원군이 태을신과 관련한 원군元君이란 점을 고려하면, 도교에서 원군의 칭호를 최초로 드러낸 무극태상원군無極太上元君과 무관하지 않다고 논지를 전개하고, 송대宋代 이후의 태을구고천존은 무극태상원군에서 파생한 신격임을 밝혔다.

태을구고천존은 태을상원지기太乙上元之炁의 화생인 점에서 원기元炁의 화생인 무극태상원군의 성격과 일치한다. 위진시대의 태을원군이 무극태상원군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위진시대 이후의 도교경전에서 찾았다. 이는 진한시대의 태일신이나 송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심성구고천존尋聲救苦天尊과 다른 계보이다. ?노자중경? 계열의 도교에서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태을천존 신앙이 후한시대의 무극태상원군 신앙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무극태상원군이 위진시대에 태을원군으로 숭배되다가 송대에 다시 태을구고천존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한편으로 위진시대의 상청파上淸派 도교에서 태을원군을 신봉하고 그 전통을 꾸준히 계승해 왔지만, ‘태일구고천존의 성호聖號를 암송하는 존상법存想法은 상청파보다 송말원초宋末元初의 영보파靈寶派 도교에서 계승발전되었다는 점도 새롭게 밝혔다.


. 문제 제기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특정한 신격을 믿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권능을 지녔기 때문이고, 그러한 권능은 신앙의 대상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고 신봉하지만 때로는 오랜 전통에 힘입어 신앙 집단이 묵시적으로 부여한 권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태을천존太乙天尊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태을천존이란 명호에서 알 수 있듯이 천존天尊은 그 자체로 존엄한 천신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도교란 종교조직 내부에서 검증된 신격이다. ‘태을太乙또한 교단도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에 걸쳐 최고의 신으로 숭앙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식어이다. ‘태을태일太一이라 하는 까닭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제마저 최고의 유일신으로 높이 받들어 모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교신앙의 핵심적 어휘인 태을또는 태일에 관한 논의가 신앙적 차원과 별도로, 종교학천문학고고학역사학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연구사를 따로 마련할 만큼 방대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얼핏 보면 추상적이거나 관념에 치우친 논쟁으로도 비치지만, 도교학의 중요한 주제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사상사의 전반적인 문제와도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두루 알려진 바와 같이 태일이란 용어는 진한秦漢시대의 문헌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전국시대 문헌인 ?초사楚辭?에 이미 동황태일東皇太一’, 또는 동황태을東皇太乙이란 말이 있는 것을 간과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진한시대의 태일과 전국시대의 동황태일이 같은 개념인가, 아니면 다른 개념인가 하는 논쟁도 치열하다. 동황태일을 다루는 ?초사?에 대한 주석이 대체로 후한시대 이후의 것이고, 게다가 동황이란 수식어는 하늘 중심의 북극성을 염두에 둔 진한시대의 태일 개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무제는 태초력太初曆을 시행하면서 천문현상에 바탕을 둔 상고시대 제례의 시공간을 비틀어 놓아서 진시황 당시의 연제燕齊 방사들이 숭배하던 태일신太一神에 대한 제의가 과연 한무제 시절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도 의문이 들도록 만들었다. 분명한 점은 현존하는 문헌자료들은 대다수 후한시대 이후의 것인 탓에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고전들이 한대 이후의 화이관華夷觀으로 재단되었을 여지를 얼마간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동방 중심주의를 암암리에 주장하는 동황태일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도교신앙의 하나로 널리 숭배되는 태을천존과 그러한 신앙의 연원을 다루는 과제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이 고대 태일신太一神숭배사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현재 도교학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논의하고자 하는 의도는 기존의 정설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소개하는 데 있지 않다. 진한시대에 흥기한 태일신 숭배사상은, 전국시대까지 만연했던 동방 중심주의가 고조선 멸망 이후 등장한 중화中華란 말에 담겨 중원 중심주의로 옮겨가는 근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는 본말이 전도되어 소중화小中華란 말까지 남겼다. 하지만 동방 중심주의의 흔적이 동황태을또는 태을천존이란 말로서 남아있기 때문에 심층적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에 따라 통념으로 수용했던 태일신앙 및 그와 관련한 여러 선행 연구들을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 의문점이 드러나면 연구자로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신앙적 숭배 대상의 연원 문제가 종교신학과 관련한 예민한 주제란 점을 감안하여 태을천존 신앙의 계보를 간략하게 제시하는 선에서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선행 연구 검토

 

태을구고천존에 대한 논의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 문제를 중심으로 그동안 이루어진 중국 학계의 주요 연구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이양정(1989)이 도교의 여러 대신大神 가운데 하나인 태을구고천존은 청현상제라고도 칭한다. 太乙救苦天尊 亦稱靑玄上帝라고 주장한 이후, 양숭웅(2004)은 사어四御에 남극장생대제南極長生大帝를 포함시킨, 육어六御의 반열에 태을구고천존이 있다고 했다. 뒤이어 문호(2005)는 태을구고천존이 육어보다 한 등급 위에 자리한 선천존신先天尊神이며 오로천존五老天尊의 하나라고 했다. 곧 오로천존 가운데 동방목공로東方木公老의 화신이 태을구고천존이라 주장하면서, 태을구고천존은 동화제군東華帝君의 화신과 연계되기에 동왕공東王公 또는 동왕부東王父라 하기도 하며, 때로는 동황태을東皇太乙이라 하는 것도 모두 이를 말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태을구고천존의 계보를 동방목공로 동방청제東方靑帝 동극청화대제東極靑華大帝 태을구고천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행연구에서는 태을구고천존이란 명호에서 태일또는 태을이 반드시 수반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물론 문호(2005)의 논문에서 동황태을이 태을구고천존의 연원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언급했지만, 동황태을을 태일신앙과 관련지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중국의 도교학자는 소등복, 진요정, 이원국이다.


먼저 소등복(2006a)은 태을구고천존의 신격 형성이 주대周代대을大乙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태일이란 명호는 신격의 대소에 따라 나타나는데, 진시황 때와 한무제 때는 천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격이었다가 위진시대 중엽에 다시 태을구고천존이란 이름으로 흥기했다고 한다. 문호(2005)가 태을구고천존의 연원이 동왕공에서 비롯한다고 했지만, 2009년에 소등복은 재차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 ‘태을구고천존은 영보파靈寶派의 신격으로서, 상청파上淸派에서 모시는 부상대제扶桑大帝 동왕공과 견주어 동방을 다스리는 천신인 점에서는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태을구고천존이란 명호는 부상대제 동왕공이란 말이 등장한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며, 태을구고천존의 연원을 동황태일까지 소급한다고 하더라도 동왕공과 함께 모두 원시천존에서 파생한 신격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왕공과의 관련성에 대해 다소 모호한 태도를 취한 소등복과는 달리, 진요정(2009)은 태을구고천존은 태일성신에서 비롯하나, 태일성신에서 연원한 태일천존은 후대의 태을구고천존과 다르다고 파악했다. 태을구고천존은 당오대唐五代에 비로소 등장한 신격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진요정의 주장에서 주목할 점은, 당나라 초기의 관음신앙에서 유래한 구고천존과 진한시대의 태일신이 송대宋代에 와서 결합하고, 명대明代 이후에 도교과의道敎科儀의 주요 신격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원국(2010), 후한 이후 도교가 성립하면서 상고시대의 태일신앙을 흡수하여 장각張角의 태평도太平道에서 종전의 태일신을 중황태일이라 부르며 숭배하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태일중황太一中黃태일원군太一元君태일상원군太一上元君태일진인太一眞人태일구고천존이란 다양한 명호로 나타난 것이라 했다. 이러한 이원국(2010)의 관점은 소등복(2006a)의 주장을 구체화한 것으로, “태일신 중황태일 태일구고천존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관점은 문호(2005)가 제시한 계보에서 동황태일중황태일로 대체한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초나라의 무속과 관련지어 다룬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 오성국(2014)의 주장에 따르면, 초나라 사람들이 남다르게 숭배했던 동황태일을 후대의 도교에 수용하여 변모한 것이 태을진인또는 태을천존이고, 나중에 천황태을天皇太乙이라 받들고 제사까지 지내게 된 것이라 한다. 게다가 태을구고천존을 모시는 도교과의 절차나 구체적 동작도 ?초사?「구가九歌동황태일을 노래하는 초나라 무사巫師의 행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상의 논의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태을구고천존태일신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일신이 전국시대의 동황태일에서 유래하는가, 아니면, 진한시대의 태일신에서 유래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보였다. 문호(2005)는 동황태일에서 유래한 동왕공이 태을구고천존으로 변모되었다고 주장하고, 오성국(2014)동황태일에서 천황태을로 변모하다가 나중에 태을구고천존으로 일컫게 된 것이라 한다. 반면에, 소등복(2009)과 진요정(2009)은 동황태일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원국(2010)은 이러한 두 가지 대립적 관점에서 절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태을구고천존의 등장 시기에 대해서도 소등복과 진요정은 각각 위진시대와 송대로 다르게 파악했다. 진요정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태일신의 제사 성격이다. 태일신 제사가 국가의 제천의례이기 때문에 민간에서 사사로이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초기 도교경전에서도 진한시대의 태일신 제사와 유사한 과의科儀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진요정의 주장은 심성구고천존尋聲救苦天尊에서 태을구고천존의 연원을 모색한 소등복의 시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성구고천존의 명칭과 성격에 초점을 두고 불교의 관음신앙을 수용한 흔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행 연구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첫째, 태을천존 신앙이 태일신을 숭배하는 고대 신앙에서 비롯한다고 하지만, 태일신앙의 연원 문제는 여전히 미결 과제로 두었던 것이다. 비록 곽점郭店 초간楚簡에서 태일생수太一生水란 문구가 발견되어 태을태일로 확정했지만, 관방의 제례 또는 도교신앙의 차원에서 숭배되는 태일신?초사?동황태을문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둘째는 동황태일과 진한시대 태일신과의 관계에서, 태을천존이 본래 동황태일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진한시대 태일신에서 직접 유래한 것인지, 또는 동황태일이 태일신으로 변모하고 태일신이 나중에 도교에 수용되어 태을구고천존으로 등장한 것인지 그 연원과 계보를 분명하게 해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는 태일신에서 파생한 신격 가운데 당송 이후에 등장하는 태일상원군太一上元君과 태을천존의 관련성이다. 태일상원군이 전국시대의 동황태일이나 진한시대의 태일신과 어떠한 관련이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위진시대에 이미 ?포박자?에서 태을원군太乙元君이 언급되고, 당송 이후의 도교문헌에 태일상원군이 태상노군의 모친으로 화생했다는 무상원군無上元君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도교의 여신이 당나라 말기 또는 송대에 출현한 태을천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미결의 과제로 남겼다. 진요정(2009)?포박자?에 나오는 태을원군이란 신격이 사실상 원군이라는 여성 신격으로 표현한 태일신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태을천존과는 계보가 다르다고 했다.


이러한 세 가지 의문점은 태일에 대한 이해를 단선적으로 파악한 연구 방법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일을 궁극적 실체로 간주하는 철학적 사유와 문헌상으로 산견되는 자료를 열거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는 관련 문헌에 근거할 때 설득력이 있고, 문헌에 의존하는 역사학적 접근은 대상의 실체를 만날 때 신빙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태을천존의 연원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초기 도교의 문헌자료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고, 그런 다음에 고고학적 유물이나 천문학적 자료를 보강하여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 동방의 천신으로서 동황태을

 

앞서 태을천존 신앙의 연원 문제가 태일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얽혀있다고 언급했다. 진한시대의 태일신과 전국시대의 동황태일이 태일이란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한나라 때 숭배했던 태일신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황태일이란 신격이고, 전국시대의 태일은 동황태을 또는 동황태일로 전승되어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신격을 지칭하는 신격으로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하나는 동황東皇이란 수식어이다. 전국시대의 이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동황은 동서남북에 각기 존재하는 오제五帝의 하나인 동제東帝로 규정하는 후대의 주석은 정곡正鵠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어떤 문헌에서도 서황태일西皇太一이란 어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결정적 증거이다. 시각을 달리해서 천신을 동방에 위치한 절대 신격으로 간주하는 경우를 찾아보면, ?주례周禮?「춘관春官대종백大宗伯에서 그 사례를 읽을 수 있다. ?주례?에서는 창벽蒼璧으로 천신께 예를 올리고, 황종黃琮으로 지신에게 예를 올린다. 以蒼璧禮天 以黃琮禮地고 했다. 여기서의 예천禮天예태일禮太一과 같은 뜻이다. 또한 창벽은 창천蒼天에 대응하는 예물이고, 봄하늘을 가리키는 창천동방을 상징하는 색깔이기 때문에 창벽예천蒼璧禮天은 곧 동방의 하늘에 예를 올리는 것을 뜻한다. 이로 미루어 동황태을은 동방의 절대 신격을 숭배하는 춘추시대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태일태을의 문제이다. 궁극적 실체로서의 태일개념은 전국시대 이전의 각종 문헌에서 그 연원을 유추해 볼 수도 있지만, 절대적 신격으로서 구체적인 명호가 등장한 것은 전국시대이다. ?초사?「구가동황태을이 바로 그것이다. 잘 알다시피 동황태을을 놓고 당시에는 태을이었는지, 아니면 태일의 잘못된 표기인지 오랫동안 논쟁이 지속되었다. 잠정적으로는 태을태일은 통용되는 어휘라고 인정하다가 1993년에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곽점郭店 초간楚簡에서 태일생수太一生水란 문구를 발견하면서 사정이 일변했다. 중국 대륙의 학자들은 이를 태일로 확정하고 그동안의 논쟁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학계에서 주도한 태일 논쟁이 민간신앙이나 각종 도교문헌에 출현한 태을이란 수식어까지 태일로 교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태일태을의 문제는 이론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전통과 관습의 문제이다. 특히 태일이란 용어가 진한시대의 관방에서 장악했던 절대신의 명호라는 점에서 세심하게 검토해야 할 여지가 있다.


앞서 진요정(2009)이 왕조에서 독점하는 태일신을 민간에서 공유하기 위하여 갈홍이 ?포박자?에서 태을원군로 지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문인文人들의 필독서인 소통蕭統(501-531)?문선文選?동황태을이 나타나는 곡절까지 해명하지 못한다. 또한, 경세치국의 대표적 문헌으로 널리 유통되었던 당대唐代?태을금경식경太乙金鏡式經?이나 원대元代?태을통종보감太乙統宗寶鑑?에서 태을신太乙神을 절대 신격으로 신앙하는 태도는 태일신과 다른 계통의 태을신신앙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라는 자와 하나라는 태일이란 특정 용어에서만 통용되는 글자이다. 후한시대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을 현조玄鳥라 하고, 제나라와 노나라에서는 이라 한다고 했다. 전국시대의 금문金文의 글꼴은  ‘ ' 이다. 그리고 태을太乙대을大乙과 통용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의 상형象形을 검토해보면, 초계楚系  간백문자簡帛文字에서는 ' ’과 ''로 나타난다.  이는 꽁지가 없는 큰새大鳥가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쳐서 하늘 위로 나르는 형상이다. 또한 갑골문과 금문에서의 의 상형이 이고, 사람 자가   인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의 회의會意문자가 아니다. 이를 감안하면 최소한 전국시대 초나라에서는 태을큰새로 간주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태을의 원형을 이렇게 본다면, 신화와 전설로 나타나는 ?장자?「소요유의 대붕大鵬이나 ?신이경神異經?의 희유希有와 같은 거대한 새도 태을의 다른 형상일 수 있고, 고대 천문학에서 순 또는 주작朱雀이라 일컫는 별자리도 태을을 형상화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대 화상석에 나타나는 동왕공을 두고 태일신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태일신의 형상을 보여주는 동왕공이 다른 한편에서는 인신조면人身鳥面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래 그림이 그러한 동왕공의 형상이다. (도상 1, 2, 3)

 

 







닭처럼 생긴 인신조면 도상을 동왕공의 형상으로 간주하는 까닭은, 다음에 소개하는 <도상4><도상5>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부상수扶桑樹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표현한 구도가 동왕공을 묘사한 다른 형상과 대체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도상 4,5)






참고로 동왕공을 태일신으로 파악하는 근거는 다음의 <도상6>에서 찾을 수 있다. 사방에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있고 그 중앙에 앉아있는 인물이 태일신으로서의 동왕공이다. 동왕공 특유의 삼유관三維冠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도상6>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초사?의 동황태을은 춘추시대에 절대 신격으로 숭배되었던 동방 하늘의 천신이며, 거대한 새의 형상으로 표현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새 토템을 가진 상고시대의 집단이 동방의 하늘을 숭배한 흔적이 동황태을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 말은 특정 시기에 일어난 새 토템 종족의 소멸이 절대 신격의 지지층과 그 위상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상고시대의 새 토템 종족은 한대 이후의 역사기록에서 도이島夷로 알려진 조이鳥夷이다. 이에 대해 고힐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대에 이처럼 큰 하나의 종족으로서, 그에 대한 문헌자료가 극도로 희소한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한나라 이후의 사람들이 일찍이 이러한 종족의 존재를 잊었거나 도이島夷로 곡해하고, 심지어 로 바꾸어 그 흔적마저 인멸할 지경에 이르도록 이처럼 천박하게 감추려고 했으니, 어찌 탄식하지 않겠는가.

 

. 천황대제와 태을천존

 

그러나 고힐강의 이러한 탄식과 달리, 초기 도교경전에서는 새 토템의 천신天神상상태일도군上上太一道君이라 하여 후한시대까지 숭배해 왔다. 그 증거를 후한시대의 저작으로 밝혀진 ?노자중경老子中經?에서 찾을 수 있다.

?노자중경?「제일신선第一神仙의 기록에 따르면, ‘상상태일上上太一도지부道之父라 하여 이전의 존재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 명호는 알 수 없지만, 크다고 하면 천하 팔방의 바다를 감싸는 거대한 존재이고, 작다고 손끝으로 만질 수 없는 미세한 존재로서 원기元炁 그 자체라 한다. 그 형상은 인두조신人頭鳥身으로 나타나고, 수탉雄鷄이나 봉황과 같은 모양이라 한다. 불로장생의 염원을 이루어주는 기복의 대상인 점에서 천추千秋로 널리 알려진 인면조人面鳥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거대한 크기로 미루어 희유希有와 같은 종류이다. 또한 태일의 상위 개념을 두 차원 상승시켜 높여 상상태일이라 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노자중경?의 논리에 따르면, 태일신은 세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존재를 알 수 없는 최상층의 태일신이 인두조신의 상상태일도군이라면, ‘상태일무극태상원군無極太上元君 천황대제天皇大帝이고, 그 아래의 태일황천상제皇天上帝 중극북신중앙성中極北辰中央星’, 곧 북극성에 해당한다. ‘상태일신과 그 아래의 태일신상상태일도군과는 달리 모두 구덕지관九德之冠을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의 형상을 갖춘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통념에는 태일신의 절대 신격이고, 그 존재는 유일한 것이며, 후대에 많은 도교의 신을 파생시키는 신앙의 원천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자중경?의 시각은 다르다. ‘무극태상원군상상태일의 아들이나 그 아들이 아니며 원기가 저절로 이루어진 존재 上上太一之子也 非其子也 元炁自然耳라고 했다. 또한 태미원太微垣의 구진句陳 안에 있는 요백보耀魄寶란 별이다. 太微勾陳之內一星是也 號曰天皇大帝耀魄寶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제오신선第五神仙에서 언급한 황천상제라는 태일신은, 성이 제황씨制皇氏이고 이름은 상황덕上皇德, 는 한창漢昌이며, ‘중극북신중앙성이라고 언급하면서 무극태상원군 천황대제와 구별하고 있다. 두 별은 모두 구진 6성에 있지만, ‘북극 중앙의 별은 구진 6성의 제1성으로 현재의 북극성이고, 천황대제는 구진 6성에 있는 제2156성이 사각형을 이루는 정중앙에 위치한 별이다. “태미원 구진句陳 안에 있는 하나의 별이다. 太微勾陳之內一星는 말이 이를 뜻한다.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서 태미는 태일의 조정이다. 太微者 太一之庭也고 한 까닭은 집무의 공간인 태미원으로 이동하여 오제성五帝星의 보좌를 받기 때문이다. 위진시대의 ?태상동방내경주太上洞房內經註?에서 태미는 황천상제의 궁궐이다. 太微 皇天上帝宮也라고 하는 의미와 상통한다. ‘태미에 대한 한나라 때 고유高誘의 주석에는 태미성은 태을천신의 이름이다. 太微星 名太乙天神고 하지만, 태미성이 따로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위진시대의 ?상청태상팔소진경上淸太上八素眞經?에서 태미천제군太微天帝君이란 명호가 등장하는데 36의 여러 천제天帝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 상상태일도군과 무극태상원군은 한무제 시기의 태일신에서 파생한 신격으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무제 시기의 태일신이 그 이전의 북극성인 천황대제에서 파생한 것이라는 주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태일신이란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숭배 대상이 있는 실제의 위치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연원이 서로 다른 존재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통념에 기인한 신앙의 문제이고, 사실의 차원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여기서 드러난 사실은 태일신에 대한 신앙이 고정불변하는 하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의 변혁이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예전의 태일신이 퇴장하거나 새로운 존재가 태일신으로 부상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후한시대 태평도에서 외친, “창천은 이미 죽었으니 황천이 서야 한다. 蒼天已死 黃天當立는 구호가 이를 의미한다. 전국시대 ?초사?「구가에서 언급된 동황태일창천이라면, 진한시대에 북극성 중심으로 중황태일이 등장한 시대가 황천인 것이다. 갑골문 학자로서 고대 신화를 심도있게 다룬 정산(1901-1952)은 동방 중심의 신앙인 동황태일이 북극성 중심으로 바뀐 현상을 가리켜, “태황신격泰皇神格의 극대한 변화일 뿐만 아니라 우주 중심의 극대한 변화라고 했는데, 다분히 이러한 사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태일신은 진한시대의 연제燕齊 방사들이 숭배하는 최고의 천신이었고, 불사약을 얻기 위해서 태일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방사의 책무였다. 기원전 213년에 불사약을 얻는 데 실패한 진시황은 방사들을 대거 숙청하였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처형된 숫자를 놓고 보면 방사가 대부분이었고, 방사와 연좌된 일부 유생들만 함께 처형되었다. 여기서 진시황이 자행한 분서갱유 사건 이후로 방사들의 전문특허인 태일신에 대한 내밀한 지식도 방사들과 함께 인멸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다가 기원전 104년에 또 한차례 큰 변혁이 일어났다. 한무제가 태초력太初曆을 시행한 것이 그것이다. 태초력이 시행되면서 춘추전국시대의 동지 정월이 입춘 정월로 바뀌고, 동지 정월의 춘사春祠가 입춘 정월로 옮겨짐에 따라 춘추시대의 전통적 역법曆法이 단절되었다. 새로운 역법의 시행이란 대변혁의 여파로 이른바 창벽제동蒼璧祭東의 원칙이 무너지고, 태일신 제례가 북극성 제례로 옮겨갔다. ?주례?창벽제천蒼璧禮天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석에서 이러한 혼란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동짓날 하늘에 예를 올리는 대상을 일러 천황대제라 하고 북극에 있다. 禮天以冬至 謂天皇大帝 在北極者라고 한다. 제천행사는 동짓날에 지내지만, 그 대상이 천황대제이다. 천황대제의 존재가 ?진서晉書?「천문지天文志에서도 언급되는 점에서, 정현의 주석이 오류를 범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천황대제가 북극에 있다는 정현의 주석은 정작 천황대제가 태미원에 있는지 아니면 자미원紫微垣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한무제 때 입춘 정월에 지내는 태일신으로 알려진 자미원의 북극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점은 ?노자중경?의 논리로 이해하면 간단하게 풀린다. 태초력이 시행되면서부터 상상태일도군을 숭배하는 창벽제동의 제천행사가 진한시대 이후로 그 대상을 잃어버려서 잠정적으로 태미원의 별자리를 의식하면서 동짓날에 진행되었고, 그러한 과도기에 상상태일도군 계열의 천황대제 무극태상원군이 태일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태상청정원동진문옥자묘경太上清静元洞眞文玉字妙經?에서 황천상제 태일원군은 하늘 중앙의 별이 그것이다. 皇天上帝太一元君者 天中央星是고 하거나, 송대宋代 육전陸佃?할관자鶡冠子?의 주석에서, “태일은 천황대제이다. 泰一 天皇大帝也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는 태일신 숭배신앙이 기원전 104년을 전후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편, 이러한 과도기를 거치면서 태일신의 정체성이 혼란을 거듭하자 무극태상원군의 신격도 예외없이 파란을 겪었다. ‘무극태상원군이란 명호가 위진시대에 이르러 태을원군太乙元君태상원군太上元君무상원군無上元君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동방삭東方朔이 지었다고 전하는 ?영기경靈棋經?에서는 무극태상원군을 일러 천지부모 태상원군 天地父母 太上元君이라 칭했고, ?포박자?에서는 황제와 노자에게 신선술을 가르치는 태을원군으로 묘사했다. 또한 ?상청태상황소사십사방경上清太上黃素四十四方經?의 축원문에서는 태상원군은 선도대신이다. 太上元君 仙都大神이라고 했다. 태상원군은 신선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선도仙都를 다스리는 큰 신이란 뜻이다. 뿐만 아니라 ?적송자장력赤松子章曆?에서도 태상고존太上髙尊 무상원군無上元君 자부성모慈父聖母라 일컫고 지극히 높은 천신으로 숭배했다. 그러다가 수당시대로 접어들면서 무극태상원군을 도군道君이라 하고, 태일원군은 황천상제 북극성이라고 하면서 두 가지 신격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때의 상청파 도사 두광정杜光庭?용성집선록墉城集仙録? 첫머리를 노자의 어머니 성모원군聖母元君을 첫 번째로 소개하는 여선열전女仙列傳을 남겼다. 성모원군이 현화지기玄和之炁의 화신으로 노자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에서 무극태상원군의 화신으로 드러나지만, 성모원군항목의 후반부에 태미태일원군太微太一元君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 점에서는 각기 다른 신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비슷한 시대의 상청파 계열의 ?석삼십구장경釋三十九章經?에서는 태일상원군이 만선萬仙을 관장하고 사방 산악의 진기眞氣를 주재하며 생사를 결정짓는 신이라고 한다. 위진시대의 태상원군과 같은 위상을 지닌 점에서 당나라 시기의 태일원군도 여전히 태상원군과 같은 신격으로 숭배되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북송시대의 도교문헌 ?유룡전猶龍傳?과 같이, 성모원군과 태일원군을 동일한 신격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남송시대의 도사 여원소呂元素가 편찬한 ?도문정제道門定制?에서는 선천태후先天太后 태을원군太乙元君이라 일컬으며 태을원군을 성모원군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성모원군과 태을원군이 확연하게 둘로 나누어 서로 다른 존재로 규정하게 된 시기는 송말원초宋末元初 이후이다. 성수만년궁聖壽萬年宮 도사 조도일趙道一?역세진선체도통감후집歷世眞仙體道通鑑後集?을 편찬하면서 무상원군無上元君태일원군太一元君이란 별도의 항목을 만들어 기술한 내용이 그 증거이다. 무상원군은 두광정이 ?용성집선록?에서 성모원군이라 지칭한 여신이고, 태일원군은 ?포박자?의 태을원군이다. ?용성집선록?에서 한 항목에 넣어 다루었던 것이 ?역세진선체도통감후집?에서는 별개의 항목으로 다루게 됨에 따라 노군성모老君聖母와 노자의 스승으로서 두 신격으로 분화되어 각각 무상원군태일원군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선천적 원기元炁로 이루어졌다는 원군元君이란 의미도 퇴색되어 후대에 와서는 여선女仙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되었고, 무극태상원군은 태상노군의 어머니로서 무상원군이란 명호를 얻어 마침내 서왕모까지 금모원군金母元君이라 부르면서 수하에 거느리는 여선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태을원군의 연원이 복잡하듯이 태을천존의 연원도 복잡하지만, 한결같이 태을신과 관련한 도교의 신이란 점은 부정하지 못한다. 태을원군이 태을신과 관련한 원군이란 점을 고려하면 도교에서 원군의 칭호를 최초로 드러낸 무극태상원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문헌적 근거가 당나라 시기의 저술로 알려진 ?구황신경주해九皇新經註解?이다. 여기서는 태을구고천존이 태을상원지기太乙上元之炁라고 이르는데, 태을상원지기가 무극태상원군을 가리킨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이는 진한시대의 태일신이나 심성구고천존과 다른 계보인 ?노자중경? 계열의 도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는, 일부의 도교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존상법存想法의 핵심인 수일守一수행에 있어서 그 하나를 태일이라 하여 태일구고천존의 성호聖號를 암송하면서 수행을 하는 영보파 계열의 도사들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경전이 송말원초에 정사초鄭思肖가 남긴 ?태극제련내법太極祭鍊內法?이다. ?태극제련내법?에서는 태일천존을 원신元神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태일은 진한시대의 북극성 태일신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영아嬰兒이거나, 왼손 벽옥碧玉 사발과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천존의 성상聖像으로 화형化形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점에서 무극태상원군 계열의 태일이고, 태일을 존상하여 감로甘露를 생겨나게 하는 점에서 태일생수가 태일 존상存想과 일정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참고로 태일신을 갓난아기로 표현한 자료를 소개하면 다음의 <도상7>과 같다.



<도상7> 백제 무령왕릉 청동거울

 

<도상7>1971년 여름에 공주 송산리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이다. 여기에는 신수神獸 네 마리와 사람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도상은 용호봉린龍虎鳳麟이란 초기의 사령四靈을 표현한 사신도四神圖에 신인神人이 나타난 변이형인데, 상단 부분에 창을 들고 우측으로 향하고 있는 반라半裸의 신인은 갓난아기 모습의 태일신이다.


이상과 같은 복잡한 논의를 도표로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景星出翼

 

天皇大帝

북극성

 

 

 

 

 

 

 

 

 

 

東皇太乙

 

天皇太乙

 

(蒼天已死)

 

中黃太一

 

太乙救苦天尊

 

 

 

 

 

 

 

* 한무제 태초력 시행

 

 

上上太一

 

無極太上元君

 

 

 

 

無上元君

太乙元君

 

 

 

 

 

 

 

 

 

 

 

東王公

 

 

 

 

 


. 남은 과제

 

태을천존의 연원을 다룬 기존의 연구에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황대제 무극태상원군이 태일신으로 숭배되었다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 다만 진요정과 이원국의 논문에서 태을원군이 진한시대의 태일신에서 파생된 것이라 하여 태을천존의 연원과 관련하여 부분적으로 언급할 뿐이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태을구고천존이란 명호는 당나라 말기에 두광정이 편찬한 ?도교영험기道敎靈驗記?에 처음 등장하고, 태을원군은 태을구고천존보다 6백년 정도 앞서서 4세기경 갈홍의 ?포박자?에 처음 등장한다. 진요정의 주장에 따르면, 갈홍은 진한시대의 태일신이 왕조의 국가제례란 점을 염두에 두고 이를 회피하고자 태일신에 태을원군이란 명호를 부여한 것이라고 파악하며, 불교적 성향을 드러내는 태을구고천존과는 근본적으로 계보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자중경?과 같은 갈홍 이전의 초기 도교경전에서는 태일신에 대한 관념이 한무제 시절의 태일신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갈홍이 생각하는 태일신이 진한시대의 태일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도교 수행과 신앙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진한시대의 태일신은 저 하늘 멀리에 있는 성신星神으로서, 중생의 요구에 부응하여 구체적 형상으로 화신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관음신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심성구고천존尋聲救苦天尊처럼 중생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갖가지 모습으로 화신하기 위해서는 원기 상태로 머물며 변화하는 무극태상원군이 그에 합당한 신격이다. 도교사에 나타난 태을원군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그 점에서 태을천존의 연원은 태을원군에서 비롯하고, 태을원군은 전국시대 이후의 초기 도교문헌에서 나타나는 무극태상원군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태을천존의 연원을 무극태상원군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데 그쳤고, ‘동황태을과 관련한 상상태일동왕공에 대해서는 미결 과제로 남겼다. 상고시대에 새 토템을 숭배하는 종족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상태일에 대한 연구는, 태을천존의 연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 논문에서는 간략하게 언급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추후 다른 기회로 돌리고자 한다.


또한 태일신과 관련한 동왕공에 대해서도 동황태을과 관련지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동왕공이 태일신과 관련한 동방의 신선이라는 점이 주목되지만, 동왕공이 곧 태일신이라 간주하는 관점은 별도로 다루어야 할 과제이다. 일부 학자들은 동왕공이 상고시대의 태양신 동모東母에서 비롯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면, ?초사?「구가동군東君동황태을의 관계가 다시 복잡한 문제로 떠오른다. 왜냐하면 동군이 태양신이란 것이 학계의 정설이고, 동황태을은 성신星神이기 때문이다. 성신설星神說을 부정하면, ?초사?「구가에서 두 가지 태양신을 노래했다는 모순을 낳는다. 게다가 한대 화상석에서 동왕공을 인신人身과 조면인신鳥面人身의 두 가지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조면인신의 형상을 태양조로 이해하면 동왕공은 태양신으로 파악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만, 한무제 이후 북극성으로 간주해왔던 태일신이 과연 태양신이었던가 하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더욱이 동왕공의 문제는 부여계의 대표적인 신화인 동명신화와 직접 관련이 있다. 부상대제 동화제군의 정체가 동왕공이고, 동왕공의 중심 무대가 동방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결 과제는 인접 학문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해결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이 글은 그러한 후속 작업에 조그만 디딤돌이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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