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개벽으로 보는 병란과 인류세

김상일 (클레어몬트대학교 과정신학연구소)

2023.02.10 | 조회 4843

2021년봄 증산도 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개벽으로 보는 병란과 인류세

 

김상일(클레어몬트대학교 과정신학연구소)

 

머리말

 

46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지구의 암석층에는 그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멸종한 기록들이 남겨져 있고 이러한 층을 연구하고 거기에 이름을 매기는 학회를 국제층서학회’(혹은 층서학회)라고 한다. 층서학회에 의하면 지금 우리는 과거 일만 년 동안의 살기 좋던 홀로세holocene를 끝내고 다른 세로 접어들고 있는 데 크뤼천란 학자는 이를 인류세anthropoocene’라 불러야 한다고 한다. 이에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이상북스, 2018)에서 한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임종학을 다루고 있다. 46억년 동안 5번에 걸쳐 대한 멸종이 있었다. 이제 인류는 6번 째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5번의 멸종은 자연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6번째는 인간 자신에 의한 것으로 다른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 야생동물들이 인간의 상위 포식자들로서 인간들은 이들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수 만 년을 살았다. 인간에게 이런 상위 포식자가 없어지고 인간 자신이 지구 상의 가장 높은 포식자가 되자 인간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연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 대기오염, 해수면 상승, 지구 온난화, 폭설, 혹한, 태풍 등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2의 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인류의 시대한혹은 인류세라고 한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의 역사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새로운 지질학적 용어이다”(인류세, 2020, 320). 이 용어가 찬란한 인류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고 6번 째 대한멸종의 위기감 속에서 생긴 어쩌면 매우 불길한 용어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길하다고 해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 귀에서는 삼국시대, 고려, 개화기, 일제강점기란 말보다는 홀로세와 인류세란 말이 더 절실하게 들린다. ‘쥐라기란 영화를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이 상상의 먼 옛날 잠꼬대 같은 것으로 들렸는데 인류세란 말은 피부에 닿을 정도로 절박하게 들릴까? 이 말은 과학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예술계에서 까지 중심주제로 등장할 정도이다. 카이스는 인류세연구소까지 설립하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EBS3부작으로 방영까지 하였다. 인류가 6번째로 대한 멸종을 했을 때에 지층에 콘크리트, 플라스틱, 치킨, 미세먼지, 신종 전염병의 흔적이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번 글에서는 인류세를 점검한 다음 인류세와 신종 전염병에 관련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1. 홀로세와 인류세

 

용어의 유래: ‘인류세짐세

 

인류세란 용어는 20005IGBP(국제 지권-생물권 프로그램)의 뉴스레터에 인쇄물에 파울 크뤼천이 기고한 글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이전 1980년 대한 후반 미국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후의 문헌에 이 말이 등장했으나, 그는 이 용어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확인을 받고 파울 크뤼천은 이 용어에 대한 저작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최평순,2020,20).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IGBP 회의에서 홀로세란 말이 반복해 언급되는 데 대하여 우리는 더 이상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아요고 발언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게 되었고,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데자 뷰현상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들어 본 것 같은 이 말에 공감대가 삽시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인류세가 국제층서학회에서 공식 명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9521일 홀로세는 끝나고 과연 인류세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한한 논의에서 국제층서위원회는 22명 회원중 21명이 그 타당성을 인정했다. 황금못, 캐나다의 호수, 그린란드의 빙하, 바다의 산호 등이 과학적 근거가 되었다. 앞으로 국제층서위원회로부터 최종 결론을 얻기 위해 다음 두 가지, 1. 인류세가 지질학층서학적으로 실재하는가? 2. 1950년대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가? 등이다. 이 두 안건들에 대한하여 34명 중 29명이 찬성하였다.

인류세를 정식 지질연대로 인정하자는 제안서가 2021년 금년에 국제층서위원회에 전달된다. 여기서 통과 되면 학계의 공식 명칭이 될 것이다. ‘인류세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한 세의 공식 명칭으로 될 것이다. ‘줄라기라 하지만 공룡 자신이 자기의 기를 명칭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46억 지구 역사에 인류라는 종이 자기들 스스로가 층서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를 경하할 만한가는 의문이다. 6번 째 대 멸종의 위기 앞에 자구책도 아닌 지구의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를 명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이렇게 압도적 다수로 가결하게 된 배경에는 철저한 탐구와 연구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못과 그린란드의 빙하 두 경우만을 여기서 언급하기로 한다. ‘인류세직전의 홀로세는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 약 1만년 동안 온난화 시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시기를 시각적으로 결정할 단서는 해저나 빙하를 굴착해 뽑아 낸 표본과 동굴 속 석순 같은 것이다. 빙하 속에서 얻어 낸 것을 특히 얼음 코어Ice core’라고 한다. 얼음 코어 속에는 약 10% 가량의 공기가 들어 있는 데, 이 공기를 통해 과거의 대기 온도와 기후, 그리고 온실가스도 읽을 수 있다. 얼음 코어 속의 납 온도를 분석 해 보면 로마 제국의 경제적 흥망성쇠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림 1) 덴마크 스테픈슨교수와 조지프 매코널과얼음 코어 채굴하는 모습과 얼음 코어 층(최평순, 2020, 35)

 

, 로마제국이 번성할 때에 얼음 코어의 납 오염 영향이 증가하다가, 기원후 300-500년 사이에 줄다가 800년경에 다시 급증한다. 카룰로스 대제 때에 로마는 다시 융성해 지기 시작해 주화에 대제의 얼굴을 새길 정도로 은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납온도는 대기를 다시 오염시키고 있다. 산업혁명 때에 화석연료를 태우며 증가한 메탄, 프레온 가스(냉장고를 사용할 때에 발생하는 가스), 1945년 원자폭탄에서 발생한 방사선 탄소 등, 인간의 산 역사가 얼음 코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인류세:인간의 시대, 36) 1963년 평소보다 50배 높은 방사선 물질이 검출되는 데, 이는 1963년 미.소 양국의 핵폭탄을 실험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종이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세와 세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을 국제표준층서구역’(GBSSP)이라 부른다. 뚜렷한 변화가 기록된 최적층이 바로 그 지질시대의 시작점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빙하기(플라이드토세)에서 볼 때에 홀로세로 넘어오는 시작점을 얼음 코어를 통해 찾을 수 있었고, 다음으로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넘어오는 동안 나타난 시작점으로는 농경시작, 산업혁명 등 인류의 활동을 보여주는 층이 최소 5-6번 나왔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2000 여 년 전 로마시대에 시작된 납 오염, 산업혁명부터 증가한 메탄과 프레온, 그리고 잦은 인공가스의 출현, 핵폭탄에서 나온 방사물 등이 얼음 코어에 숨김없이 남겨져 있다. 세계 역사가 기록물보다 더 정확하게 얼음 코어 속에 적나라하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홀로세와 인류세 사이의 선을 그어야 할 순간이 왔다?

여기에 얼음 코어 이외에 또 다른 증거물은 동굴 속의 석순이다. 인도네시아 마오물로 동굴 속에 있는 황금 못 golden spike’에 신생대 제 4기 홀로세 중 가장 최근에 해당하는 시기가 있는데, 이는 신생대-4-홀로세 중 가장 최근인 메갈리야절이다. 역사에도 편연대가 있듯이 46억년 지구에도 편년대가 있다. 그것은

 

누대, 累代, Eon-, , Eon-, , Period-, , Epoch-, -Age

 

와 같다. 홀로세와 인류세는 누대,,기 다음이고 메갈리야절이란 세의 하위 시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 살고 있으며 그리스어 전체를 의미하는 홀로holos’에서 유래한다. 빙하기 이후 약 15천년 기간이고 인류세와 동격이다. 그러나 메갈리야절이란 홀로세의 다음 시기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 황금 못 속 석순의 절단면을 통해 메갈리야절의 흔적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동굴 석순 표본을 통해 기후 변화는 알아 본 결과 지구의 역사 자체를 읽을 수도 있었다. , 4200 년전 시리아 대가뭄 때문에 4대강 문명의 위기를 고스란히 다 담고 있는 데, 4112년 물부족으로 문명의 붕궤가 초래된 역사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직도 수많은 토론 거리를 남겨둔 인류세 담론은 앞으로 한 달 후면 학계에서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20214월 기준). 어떻게 결론이 내려 질지는 모르지만 인류세 토론과 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우리 하계가 환단고기나 부도지 같은 문헌을 두고 위서 논쟁을 벌리고 있는 마다에 위 그린란드의 얼음 코어나 인도네시아의 황금 못의 석순은 차리리 이런 문헌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그림 2)의 구체적인 년대인 4112, 5084, 그리고 6581년은 우리 단군 고조선과 그 이 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세 후기 메갈리야절 말이다.

 


                                       (그림 2) 석순의 단면                      (그림 3) 석순의 측면


우리 민족 사서 부도지에 보면 인간들이 자기들이 살던 시대를 짐세 朕世라고 하면서 대위기의 순간으로 진단하는 장면이다. 대 위기란 마치 인간들이 대 멸종을 할 위기 같은 것으로 그것은 인류세를 정의하는 것과 하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 학계가 주체성이 있고 자존심이 있다면 인류세란 말 대신에 짐세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사대주의는 용어에서부터 발단한다는 사실을 우리학계는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한류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이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활성화 되었고 이는 뿌리박힌 사대주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논란의 인류세에 거의 해당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부도지가 손꼽을 수 있다. 즉 부도지의 내용 중에 朕世란 말은 역사 편연대라기 보다는 차라리 지구층서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최초의 음식은 땅에서 나는 지유地乳가 유일하였다. 그러나 인간들이 포도를 따 먹기 시작하면서 불행이 초래 되었고, 마고가 마고성을 파멸시키기로 마음 먹는 계기가 된다.

이말은 인간들이 유목 수렵채취를 끝내고 농경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은 신이고 거기에 흠집을 내서는 안 되지만 농경은 호미와 쟁기로 땅을 훼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약성서에서도 신이 농경을 하던 카인을 저주하고 양을 치던 아벨을 축복한다. 그래서 혹자들은 인류세의 시작을 농경시대로부터 간주하기도 한다.

부도지에서 말하는 짐세란 인간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던 란 뜻으로 마고 자신이 지배하고 다스리던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4 빙하기 이후 홀로세 시작으로서 지구가 온난하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땅을 훼손하지 않아도 되던 때이다.

 

인류세논란에 대하여

 

해밀턴은 인류의 임종을 막으려는 네 부류의 운동을 말하면서 신인간중심주의를 제시한다. 신인간중심주의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전개되고 있는 다른 세 가지 운동들의 과오를 지적하는 데서 해밀턴의 주장이 분명해진다. 물론 해밀턴이 그렇게 연관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신인간중심주의가 그 내용면에 있어서 주체사상의 그것과 같다고 보아 인류세에 대한 주체세Juchecene’라는 층서명을 독자적으로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인류세가 인류가 멸종한 다음 미래의 암반에 기록될 명칭이라면 주체세는 다가올 임종을 막아보자는 처방전이라는 점에서 인류세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해밀턴은 자기 책의 마지막 끝 단어를 두 번 다시 아니어야 never again’로 끝내고 있다. 지구에 두 번 다시 이런 재앙이 오지 않게 하는 처방전은 과연 무엇인가?

에를레프니스erlebnis’란 말은 갑자기 우연히 생긴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말로 별안간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 온 방식대로는 지구와 인간의 역사에 별안간 나타난 엄청난 균열의 규모를 포착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20세기와 21세기 초의 특정한 사회현상을 뛰어 넘어 인간의 조건과 지구상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한다.”(해밀턴, 102)

이제 겨우 5000여 년도 안 되는 인간의 역사를 말하기엔 간에 풀칠 할 정도라고 봐야 한다. 삼국시대, 고려시대가 아닌 층서학자들이 지구의 지질을 연구할 때 사용하던 절age, epoch, period, era, 누대eon 같은 용어들이 더욱 실감나게 되었다. 코로나가 인류 대멸종의 전조가 아닌지 지구촌이 함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의 가장 큰 원인이 지구의 기후 변화에 있다면 질병의 원인을 지방, 인륜, 세회(사회), 세시(우주변화)의 네 가지로 분류한 이제마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인간의 질병이 오존층 파괴에 의한 기후변화와 코로나19가 무관하다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존층 파괴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바 있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파울 크뤼천 박사는 2000인류 전체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므로 현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지질시대의 가장 큰 단위가 신생대, 중생대 같은 대()이고, 중간이 페름기, 쥐라기 같은 기()이고, 가장 작은 단위가 홀로세, 플라이스토세 같은 ()’이다.

인류세가 다른 세와 다른 점은 세의 주인공인 인류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란 점이다. 충적세와 홍적세 그리고 홀로세 등이 있지만 공룡이 자기 살던 세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류세는 스스로 인류 자신이 인류세를 만들었고 이름마저 스스로 붙여 보았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대로 임종의 침상에 지금 누워 있다.

크뤼천 박사가 인류세란 명칭을 붙인 다음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 시대의 인간의 운명을 단행본으로 논하고 있다. 과학은 물론 철학과 신학을 망라한 시각에서 멸종 앞에 선 인류의 미래에 관해서 치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인류세에 대하여 반론으로 인간세’, ‘자본세등 다른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인류세 대신에 주체세를 논해 본다. 그것도 해밀턴이 말한 신인간중심 사상이 주체사상의 사람중심과같이 들리기 때문에.

 

1945년과 인류세의 시작

 

역사시대가 아닌 지질시대 구분법에 따라 인류문명사를 구분하면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신생대Cenozoic 4기에 속하는 홀로세Holocene이다. 신생대가 시작된 지는 6600만 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가운데 제4기가 시작된 지는 고작 258만 년 전이다.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 년 전부터 홀로세에 들어섰다. 그런데 바야흐로 그 홀로세가 우리 인간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끝나고 인류세도 인위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크뤼천이 1945년을 찍어서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원자폭탄이 투척된 이래로 지구촌 곳곳에서 핵실험의 결과로 10만 년이나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방사성 동위원소가 거의 영구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말름(Andreas Malm) 같은 사람은 인류세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본세 Capitalocene’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여성해방 운동가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자본주의란 궁극적으로 부유한 백인 남성중심 문화의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 자체와 대척점에 있는 술루(Chthulu)를 따와 술루세(Chthulucene)’라 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인류세를 정의하는 제 관점에서 볼 때에 인류세는 우리 한반도의 운명과 어느 하나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어 보인다. 1945년과 자본주의, 그리고 백인 남성 문화가 인류세 정의의 중심에 등장하는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북이 같이 인류세보다 더 적합한 용어를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관점에서 홀로세 다음에 급격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와 이에 대처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지구과학자들이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믿는 주된 이유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급격한 증가와 그로 인한 지구 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연쇄적 영향 때문이라 한다(해밀턴, 16).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지구 시스템에는 급격한 혼란이 조성되었다. 변화의 속도와 파급력이 인류 역사상 전체를 통해 볼 때에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 시기를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라 부른다. 100만 년 이래의 암석 기록들을 보면 1945년 원자폭탄 피폭 이후 지표면에 퇴적된 방사능이 급작스럽게 쌓이게 되었고 이를 밤 스파이크 Bomb spike’라 부른다.

밤 스파이크와 함께 일본은 패망하였고 우린 해방과 함께 분단이 되었다. 우리 한반도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에 인류세도 자본세도 술루세도 다 옳다. 1945년이 인류문명사에서 새로운 의의를 갖는 이유는 자연이란 개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이 어떻게 언급할 수 없는 것이라 정의되어 왔는데 1945년 이후부터는 인간이 자연을 만들고 있으며 그 만들어 놓은 자연에 인간 자신이 종속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세먼지 같은 경우는 인간이 만든 결과이지만 인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자연, 2의 자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과거 1만년 홀로세 동안 인간은 따뜻한 기후, 그리고 맑은 공기와 물을 즐기며 잘 살아 왔다. 다시 말해서 홀로세가 주는 제1의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되돌아가자고 구가하면서 잘 살아 왔는데 이제 인류세의 도래와 함께 제2의 자연, 즉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연을 향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을 수 있겠느냐 이다. 우리에겐 돌아 갈 자연은 없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2자연의 도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세계와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를 전도시키고 말았다. 1세기 전, 아니 30여 년 전만 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해밀턴은 경고하고 있다. “지구 경로의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변화가 우리의 미래이며, 역사적 균열이 존재하기 이전 시대에서 물려받은 사고방식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이다”(해밀턴, 70).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잘났다고 자랑하던 그러한 관념부터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GNPGDP를 자랑하고 매년 경제성장률이나 각국마다 비교하는 사고방식을 언제까지 더 유지할 것인가?

 

인류세 앞에 잘못 진단한 운동가들

 

그럼 인류가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던 것인가? 당장 1989년 동구 공산권이 무너질 때에 자본주의의 만수무강을 외치고 공산주의의 영원한 패망을 선전하던 사람들이 지금 인류세에 대하여 무슨 언질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인류가 화석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위기 앞에서 지금도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부르짖고 있을 것인가?

인류세의 저자 해밀턴은 인류 멸종의 위기 앞에 임종의 병상에 처해 있는 진단하고 처방하는 족속들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위기는 오직 신의 섭리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주장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 이제 인간에게 해결할 능력이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환경운동가들과 생태학자들-‘포스트휴머니즘’, 인간에게 위기 극복의 강한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에코모더니스트’, 인간의 강함과 지구의 강함을 더욱 강화시켜 양자가 맞물리게 해야 한다는 신인간중심주의가 그것이다. 표로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이들 네 부류의 사람들이 지금 인류의 임종의 침상에 나타나 너도 나도 자신들이 해결사라고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들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인간중심주의를 제외하곤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번째로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the new anthropocentrism)를 대안으로 들고 있다. 이 마지막 부류의 주장은 환경 파괴자들이든 보호론자들이든 자기들의 힘을 과신하고 남용해 무절제하게 사용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더 힘을 절제 있게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해밀턴은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라고 말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다만 반자본주의, 반백인남성주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면서 해밀턴은 서양 철학과 신학 전반에 걸쳐 비판적이다. 서양 철학의 주류가 된 이원론적 사고 구조와 뉴턴-데카르트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구조를 만들어 결국 환경 파괴 주범이 되었다.

인류세가 반자본주의 그리고 반백인남성주의를 겨냥한다면 미국에 대척점에 서 있는 곳과 나라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고, 그 곳은 북부 조선혹은 북조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어떤 희망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걸고. ‘인류세란 말 자체가 인류의 멸종을 전제한 후의 지구과학에 부쳐진 이름이라면 이 시점에서 이 지구를 구제한다는 전제를 할 때에 그 곳은 당연히 자본주의와 백인남성이 지배하지 않는 곳이 될 곳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눈은 북부 조선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자본세와 인류세

 

자본세란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제이슨 무어이다. 그는 크뤼천의 인류세란 말에 반기를 들고 자본세란 말을 만들어 내었다. 층서위원회는 되도록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하려고 한다. 홀로세 다음으로 자본세가 집중조명 되는 이유는 제2의 자연이 자본주의를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때문에 산업혁명 이후 소비지상주의가 만연했고, 화석연료 생산업체들의 로비의 영향력으로 1945년 제2차 대전 이후부터 놀랄 만큼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 되었다.

백인남성 그리고 부자 자본주의에 대척점으로 혹자들은 정착토착민(settler colonialism) , 미국 인디언을 손꼽는다. 인류세 담론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백인남성은 1492년 이래로 정착토착민들을 살던 곳에서 추방하고 살해한 후, 거기다 오늘날 자기들 중심의 국가를 건설하여 드디어 인류세를 도래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세가 말하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토착민들이 살아 온 방식과 그들의 토착지식과 정신세계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정착토착민을 강화시켜 다른 백인 남성부류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에서 토착민들이 외래인들을 밧줄로 묶어 두면 힘을 못 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외래인들은 밧줄을 끊고 말았다.

크뤼천은 책의 결론에서 새로운 인간, 신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신인간상이란 인간의 강해진 힘지구의 강해진 힘이 결합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신인간상은 인간의 강해짐이 자연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환경 재앙이 왔다는 포스트휴머니즘이나 존재론적 다원주의를 반대한다. 다른 한편 인간을 강하게 함으로 지구를 약하게 하려는 에코모더니즘도 부정한다.

크뤼천은 일부의 철학자의 입장은 지구의 강해진 힘만을, 다른 입장은 인간의 강력한 힘만을 인정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두 힘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지구와 인간의 힘 모두를 인정할 때 우리는 인간이 직면한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인류세의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인류세의 이율배반이란 인간은 더 강해졌다. 자연도 더욱 강해졌다와 같다. 인류 문명사란 인간과 자연 간의 힘겨루기이었으며 인간과 지구가 모두 강해지는(win-win) 것이 새로운 인간상인데, 그것은 이율배반적 혹은 역설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를 이중진리라고 한다. 인간과 자연은 지금까지 대립 구도이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예속 내지 종속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낡은 인간상이다. 그래서 인간과 지구가 모두 동시에 강해지도록 하는 것이 신인간상이라고 한다. “신인간 중심적 자아는 근대의 주체처럼 자유로이 부유하지 못하며 항상 자연에 엮인 채 자연의 구조 안에서 매듭을 이룬다.”(91)

인간이 자연과 매듭같이 맞물린다는 것은 국지적 local’이기도 하고 보편적 global’이기도 한 ‘glocal’이다. 자연에서 벗어나 있지만 자연에 의해 제약받고 있으며, 힘과 자주성을 누리고 있지만 그 자주성이 방종에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신인간중심적 자아이다.

 

신인간중심주의와 다른 견해들의 비교

 

해밀턴은 인간과 지구(자연)약해진 힘강해진 짐을 적용하여 위의 표와 같이 네 가지로 지금까지 나타난 이론 혹은 운동을 분류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의 임종을 앞두고 임종의 침상에서 보이는 네 가지 종류가 일목요연하게 표로서 제시되었다. 우측 하단의 신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힘도 지구의 힘도 모두 강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다른 세 가지 이론과 운동 차원에서 볼 때에 모두 비판의 대상일 수 있다.

종교적 근본주의적 입장은 인간도 자연도 모두 무기력하여 오직 신의 섭리만이 답이라는 주장으로 신천지를 비롯한 기독교의 빛바랜 주장으로서 제일 처음으로 폐기처분 될 수밖에 없다.

에코모더니즘 운동은 잘 알려진 대로 인간의 기술이 갖는 힘을 휘두르거나 강화시켜서 지구 자연을 더 제어해 나가야 한다는 모더니즘을 더 강화시키자는 운동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신인간중심주의와 인간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지구를 인간이 제압해 약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이들은 마치 에덴동산을 거니는 아담과 하와가 신으로부터 자연을 잘 다스리라고 부탁 받은 청지기와 같이 지구상에서 행세하려 한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노예에 대한 착한 주인이 없듯이 착한 청지기는 없었다. 에코모더니즘은 이렇게 아직도 홀로세에 인간이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신인간 중심주의 강한 지구 그리고 약한 인간을 대망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치고 있는 조류이다. 오늘날 위기가 인간의 힘이 비대해지고 지구가 약해진데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역으로 지구(가이아)에 힘을 실어 주고 인간을 약화시키자는 주장이다. 신유물론이라고도 하며 인간의 청지기 직분을 박탈해 자연에 돌리려 하나 역설적이게도 이 운동은 오히려 인간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오늘날 주변의 페미니즘과 생태철학 그리고 포스트 식민주의 운동이 모두 포스트휴머니즘 운동에 해당한다.

신인간중심주의는 포스트휴머니즘이 자연을 약화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서로 맞물리자면 인간과 지구(자연) 간에는 서로 균형이 같거나 맞아야지 어느 하나가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최근에 와서야 자기 당착에 직면하여 인간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신인간중심주의가 주장하는 인간과 자연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페미니즘이나 생태환경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교모하고 공허한 말장난으로 자가당착적 모순에서 벗어나려하는 모습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뉴턴-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결국 자기 자신들이 인간과 지구를 이원론적으로 대립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이에 신인간중심주의는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을 극복하나 정신과 물질의 상호 맞물려 있음을 인지하고 인간도 지구도 상호 강화되어야 한다고 한다.

 

2. 인류세와 병란

 

과학자 브뤼노 라뚜르는 지금 지구의 급박한 위기 상황을 연료가 바닥난 비행기, 구멍난 배, 불타고 있는 집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급박한 시대를 ‘4.1anthropocene’라고 했다. 충적세나 홍적세같이 이번엔 인간 자신이 만든 세, 4.11945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지구에 쌓이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쓰레기들이 하나의 층을 만드는 세를 ‘4.1’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19가 전 지구촌을 휩쓸자 Before Corona(B.C)After Corona(A.C)로 세기 구분을 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통 하나의 세는 한 종의 멸종 다음에 후대에 부쳐지나 ‘4.1’은 인류가 언젠간 당연하게 사라질 것을 전제하고 부쳐진 이름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다르다. 인류 멸종을 초래할 듯한 코로나,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코로나19 위기의 심각성과 무시된 언어들

 

도덕경 80장에서 배나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이나 개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더라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80) 노자의 이 말은 오늘의 코로나19를 예견하고 한 말 같다. 노자의 말은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으나 결과는 코로나가 우리에 가져다 준 현주소와 같아져 버렸다. 그리고 노자는 날카로운 무기와 튼튼한 갑옷이 있더라도 전쟁할 일이 없다라고 했다. 노자의 희망 섞인 말은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로 남아 왔다. 그러나 노자는 자기가 살던 춘추전국 시대에 어떻게 전쟁 없는 세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진단도 대안도 내 놓지 않았다.

금년은 동학 농민혁명 121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운 최제우는 노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이 오자면 개벽開闢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개벽에는 반드시 괴질怪疾이 따른다고 하면서

 

아동방 3년 괴질, 인물이 많이 상하지 않겠는가?” (용담유사, ‘권학가중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용담유사, ‘몽중노소 문답가중에서)

 

여기서 아동방이란 우리나라란 뜻이고, ‘십이제국이란 세계만방을 의미한다. 전 지구촌에 괴질이 돈 다음에야 개벽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말이다. 120여 년 전 수운의 말을 오늘의 코로나에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지 않을지는 불문에 부치더라도 코로나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가히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이다. ‘전에 들어 보지 못하던 일들something unheard before’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종말의 날에 넷째 봉인을 때니 칼과 굶주림과 역병이 땅에 창궐하여 짐승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생길 것이며”(67대한-8대한)라고 했으며, 정감록에선 말세에 서울에서 여주 이천 사이에 괴질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일 것이라 했고, 남사고는 격암유록에서 말세에 이름 없는 괴질병으로 앓아 죽은 시체가 산과 같이 쌓여 계곡을 메울 것이라”(‘말중운중에서)라고 했다.

이런 묵시문학적 문헌들은 사회혼란과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제도권의 학계와 특히 정치권에선 금서로 지목 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민간 내부의 경우에선 사정이 달라 이들 문헌들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글들로 읽혀져 왔다. 그런데 코로나19와 함께 오히려 이들 문헌들이 더 현실적인 것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오고 있다.

이들 문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위기의 원인이 정치에 있다는 것과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데, 그 대안이란 철저하게 윤리적이라는 데 있다. 요한계시록의 경우 위기의 근원은 로마 제국이고 대안은 앞으로 올 새하늘 새땅이다. 정감록의 경우 정씨 왕국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남사고의 경우는 인간들이 천명을 어겼기 때문이란 것과 그 대안은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과 십승지로 몸을 피하는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코로나 위기를 맞아 그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바른 위기 진단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의혹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자칫 2차 토목 산업 위에 4차 산업을 올려놓으려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시민 단체들은 그린-뉴딜로 반대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위기 진단과 대안이 문제의 본질을 빗겨갈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이 잘못 설정되었다고 한다면 그린-뉴딜은 바로 된 것인가? 그 대안을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상호 관련성과 3통 사상과 연관시켜 민족 대통일 과업에 코로나19가 갖는 의의를 모색해 보기로 한다.

 

리프킨의 위기 진단과 그 대안

 

제러미 리프킨은 경향신문과의 대담에서(2020. 5. 14.) 코로나19 위기의 본질을 두고 기후변화와 잘못된 세계화에 있다고 하면서 물 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라고 진단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은 물로 가득 차 있는 데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물 순환이 바뀌고 있다. 지구가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여 과거에 물로 가득 차 있던 호수를 오랜 만에 방문하게 되면 아마도 리프킨의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 엘에이LA 근교에 있는 빅 베어 산정호수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리프킨의 두 번째 진단은 인간이 야생의 터를 침범한 것에 있다고 본다. 1900년대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14% 정도였으나 지금은 거의 77%이다. 야생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이주를 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이러스 이동과 전염의 원인이 되었다. ,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에볼라, 사스, 메르스, 지카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가 되었다.

리프킨은 앞으로 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 한다. 이제는 팬데믹이 올 때마다 1년 반 정도 록다운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록다운을 해도 약 6개월 뒤에는 두 번째 파고가 찾아온다. 초반에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 두 번째 파고는 훨씬 심각할 것이다. 리프킨은 위기의 원인을 기후변화 다음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손꼽고 있다. 세계화가 각 지역마다 장기 이익보다는 단기 이익을 우선시함에 따라서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4대강 사업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래서 전염병이 발생하는 순간 전 세계 인프라가 동시에 무너져 버렸다.

작년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마찰을 일으킬 때 의료용품까지 관세를 매기는 바람에 미국의 의료 물량이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리프킨은 전염병을 통해 한 가지 배울 것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사실 말이다라고 결론했다.

 

병란兵亂병란病亂은 서로 상통한다

 

19세기 말 전라도 땅에서 태어난 강증산(1871-1909)은 가장 강력한 그리고 가장 큰 판을 짜 괴질을 진단하고 있다. 강일순 혹은 강증산은 시두, 흑사병, 천연두 같은 괴질들을 두고 병란病亂이라고 하면서 같은 발음을 가진 병란兵亂과 대비시켜,

장차 전쟁은 병으로써 판을 막으리라,

앞으로 싸움 날만 하면 병란兵亂이 날 것이니,

병란兵亂이 곧 병란病亂이니라 (도전, 7:35)

 

두 말의 발음이 같아서 병란兵亂전쟁이라 하고, ‘병란病亂은 그냥 혹은 병란이라 부르기로 한다. 음양 이론에 적용하여 병란兵亂이고 병란病亂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를 길항拮抗 관계로 보아 앞으로 큰 전쟁을 막으려면 반드시 병란病亂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19 같은 병란病亂은 오히려 앞으로 큰 전쟁(병란兵亂)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치 음과 양이 서로 상대적으로 길항하듯이 말이다. 참으로 대단한 시각이고 코로나19에 처하여 가장 현실적인 진단같이 보이기도 한다.

병란은 큰 전쟁이 나오기 전 전령사같이 올 것이라고 하면서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간다. 난리가 나가고 병이 들어 온다.”(5:33) 그 병란의 참화가 얼마나 심한지 한 집안 문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도 집에 운이 터졌다 하리라.”(7:24) 이 말은 위에서 최수운이 용담유사에서 말한 십이제국 괴질 운수 개벽이 아닐런가와 일맥상통한다. 개벽은 병란과 같은 대 파탄破綻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파탄이 나간다 파탄이 나간다”(5:303)고 했다. 요즘 말로 록다운이 났다는 말이다. 얼마나 파탄이 났는지를 보기 위해 한 번 그 붐비던 공항을 나가보라. 무엇이 파탄인지 실감이 날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던 파탄이다. 반 년 전에도 예측 못했던 파탄이 어디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강증산의 병란과 병란

 

앞으로 한반도에서 세계의 병란을 끝낼 전쟁이 벌어지는 데 그것을 씨름판에서 마지막 승부를 가르는 씨름 즉, ‘쌍씨름에 증산은 비유했다. 씨름을 전쟁에 비유하여 애기판과 총각판으로 나누어 모두 병란病亂으로 끝을 보게 된다고 한다. 1차 대전은 스페인 독감(1918-1919)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19189월 데번스 미국기지에 들어 온 스페인 독감은 하루에 100여명이 죽어나가게 했는데 이것은 전쟁으로 죽는 숫자를 능가했다. 윌슨 대통령도 즉각 전쟁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고, 드디어 19181111일 제1차 세계 대전은 끝났고, 전쟁이 끝나자 스페인 독감은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전쟁과 괴질 사이에는 무슨 상통 관계라도 있는 듯이 말이다.

고대 아테네가 무너진 것도 괴질 때문이었다. 역사학자 투기디데스는 신들을 숭배하든 하지 않던, 역병은 남녀와 노소, 노예와 장군 심지어는 의사들까지 생명을 앗아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역병 때문에 아테네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도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서 서양에 전달된 시두 때문이었다. 남미의 아즈텍이 멸망한 것도 400배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스페인에 망한 이유는 스페인 군의 노예 가운데 하나가 옮긴 전염병 때문이었다.


아시안 혐오와 POX AMERICANA

 

지금 아시안 혐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사회문제로 돼 가고 있다. 2018년에 105, 2019113건이던 것이 2020년엔 무려 222건이나 된다. 애틀란타에서 6명의 아시안 여성등이 백인 남성의 총격을 맞고 숨졌다. BTS 까지 공격을 받을 정도이니 지위고하 남녀 노소 없이 지금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시안 공격은 백인 뿐만 아니라 흑인들까지 가세해 인종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과연 코로나의 발생지가 어디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문으로 남겨져 있다. 아래 책은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에서 발생한 시두가 미국의 독립에 공헌한 것을 고발하는 책 표지이다. 앞에 총맨 군인들이 지나가고 그 뒤에는 시두 귀신이 뒤따르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병란과 병란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서울: 문학사상사, 1998)의 저자 다이아몬드는 무기, 병균, 금속이 어떻게 문명을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와 같은 책의 부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구인들이 총과 쇠만으로는 원주민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온 병균이 빠른 시간에 확산돼 심지어는 인디언 추장과 왕들도 죽게 되었다고 한다. 1713년에 유행한 천연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원주민이었던 산San족을 전멸시켰으며 1788년 영국인들이 시드니에 도착하자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몰살되고 말았다(다이아몬드, 1998, 110).


(그림 4) 1775년 시두와 미국 독립전쟁의 관계

(안경전, 생존의 비밀, 상생출판, 2020, 46)(Elizabeth A. Fenn, Pox American)

 

미국 지배하에 세계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PAX AMERICANA’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세계 제패가 사실상 시두(POX) 때문이라고 하여 POX AMERICANA란 포스터까지 만들어 미국은 기고만장이었다. 이 포스터에 의하면 군대가 열 지어 지나가고 그 뒤로 시두신이 총을 메고 뒤따라 행진한다. 그리고 포스터 밑엔 ‘1775-82의 위대한 시두 전염병이여! The Great Smallpox Epidemic of 1775-82’란 글귀까지 적혀 있다. (그림 4)에 추가돼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군인들과 시두 귀신 뒤에 가방을 든 월가의 상인들일 것이다. 이것이 총,,쇠의 상징이지 않겠는가? 원주민들이 군인들의 총검에 죽고, 전염병에 죽고, 상인들은 재산을 몰수 해 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총,,쇠에 의한 서구의 지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로 그런 미국이 지금 코로나19(POX) 앞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한국에서 입마개와 진단 키트를 구입해 갈 정도이다. 이를 넘어서 코로나19는 미국과 중국의 체면마저 한없이 손상시키고 있다. 이것이 고대 아테네, 로마, 몽골제국의 종언을 고하게 한 신호가 아닌지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증산은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오려면 병으로 병을 씻어 내야 한다”(2:139)고 말했다. 마치 우주변화에서 음이 양을 양이 음을 조절해야 하듯이 병란兵亂은 병란病亂으로 조절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의 종말이 회자에 오르듯 미국의 종말 역시 흥미의 대상이다. 그 종말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은 미생물에서 온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단순히 정치에서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관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음과 양의 길항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이 따라야 한다. 1908년 강증산은 음양 길항이 고난의 앞날을 가져 온다고 보면서 천하 창생이 모두 저 송사리 떼와 같이 먹고 살려고 껄떡거리다가 허망하게 다 죽을 일을 생각하니 안타깝고 불쌍하다. 허망한 세상! 세상만사 덧없이 넘어간다. 세상만사 헛되고 허망하다고 하면서 혼자서 구슬피 울었다고 한다.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5:41)

 

병란兵亂을 막기 위해 병란病亂은 불가피하고, 이때에 수많은 군생들이 송사리 떼같이 몰살당할 것을 내다보면서 운 것이다. 그러면서 추운 겨울날 홑옷을 입고 얼음 위에서 의통醫統공사를 했다. ‘의통이란 병든 사람, 병든 세상을 살려내서(), 한 가족 한 마음으로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증산이 말하는 의통은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음양 갈등과 조화에서 오는 치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양란을 겪는 동안 인간들은 한없는 고통苦痛을 겪어야 한다. 고통 다음에 두 란은 서로 상통相通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병란兵亂아마겟돈이라고 했으며, 병란病亂은 넷째 봉인을 뗄 때 나타난다고 했다.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의 고통을 다 겪은 다음에야 서로 상통相通한 다음에야 통일統一이 온다. 우리 겨레는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남다른 의미를 가져야 하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중산은 지구에 펜데믹 병란病亂이 오는 이유는 다이아몬드가 지적한 것처럼 병란兵亂 때문, 즉 총, , 쇠 때문이라고 한다. 병란 다음에는 반드시 병란이 온다고 했다. 그러나 병란病亂의 더 근원적인 원인은 지구의 축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주의 한 주기는 1296백 년인 데, 지구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 계절이 있듯이 우주에도 4계절이 있는 데 지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 가는 기간이라고 한다. , 여름과 가을 사이의 7-8월 삼복이 가장 덥듯이 지구 온화화고 그러한 삼복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 여름의 한 창은 6월인데, 7-8월이 가장 더운 이유는 여름의 초과분의 열기(삼복)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 5) 얼음 코어속의 10만년 주기 빙하 분석표 (안경전, 2020, 132)


빙하기는 대기오염과 자연파괴와는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는 더 큰 시작에서 지구 위기를 진단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증산에 의하면 우주를 지배하는 3대 요소는 이, , 라고 한다. ‘란 이법理法을 두고 하는 말이며, ‘이란 역사를 보이지 않게 지배하는 신명들이고, 신명들이 능동적으로 작용을 하면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작위를 라 한다. 이법과 신과 인간의 삼중주가 작동하는 곳이 바로 우주이고 나아가 인간 사회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법에 대해서만 말해 두기로 한다.

이법이란 (그림 6)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



(그림 6) 선천 후천 변화도(안경전, 2020, 175)


(1) 병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우러져 있는 지축() 때문이다. ()를 선천지축도라고 하며 축미로 정중앙에 위치해야 할 축이 23도 만큼 기울어져 있어서 앞으로 후천에는 축미로 바로잡히는 데 이것이 후천 지축도()이다.

(2) 선천 차원궤도()에서 후천 정원궤도()로 변하게 되고, 지금은 변하는 과정이며, 이는 마치 여름에서 가을로서 변하는 과정과도 같다.

(3) 이렇게 변하는 과정에는 정상이 아닌 초과된 기운(삼복)이 지배를 하는 데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고, 그러한 이유로 지금과 우주에 병란이 발생하는 데 이를 추살秋殺이라고 한다. 이 추살이 곧 우주적 질병이 만연하는 원인이다.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에 원한이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도전2:17:2-4)

 

이러한 추살에 해당하는 종말론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되게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큰 화액다음에 대하여 유교는 대동,’ 불교는 용화,’ 도교는 삼청,’ 기독교는 새 하늘 새 땅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내용을 이, , 사 가운데 이법에 해당한다고 보고 필자는 나름대로 이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다음과 같이 노력해 보았다. (그림 7)은 증산이 말하고 있는 지축의 변화를 음악의 악율론에 적용하여 이해한 것이다.

10천간

12지지

 

 

5

(상화)

군화

7

(변치)

(변궁)

8

12지지

 

 

 

 

 

(그림 7) 간은 변치이고 진은 변궁이다.

 

(그림 7)은 경방의 납갑법에 의한 8괘와 10천간을 대응 시킨 것이다. 기본 규칙은 천지를 건곤의 괘()으로 나누고, 그 괘에 갑을임계를 더한다. 진손의 괘는 경신을 짝짓고, 감리의 괘는 무기와 짝짓고, 간태의 괘는 병정과 짝짓는다이에 대한 각론적 설명은 아래와 같다.

 

(1) 10천간, 5(6), 7, 8괘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놓은 것이다.

(2) 먼저 8괘 가운데서 이법과 관계되는 것은 이다. 진과 간은 괘의 상하가 뒤집힌 것이다. 진에 대하여 공자는 주역 설괘전’ 5장에서

 

상제가 진에서 나와 손에서 깨끗하고, 이에서 서로 만나보고, 곤에 일을 맡기고, 태에 기뻐하고, 건에 싸우고, 감에 위로하고, 간에 이룬다”(설괘전 5)

 

란 입춘이고 임금 혹은 군주를 의미한다. (그림 6)에서 보면 ’()(변궁)()에 해당하며 이에서 입춘 절기가 시작한다고도 한다. 다시 은 봄과 여름이 이어지는 사이의 절기이다. 가정에서는 장녀이다. 진은 사이에 있다. 이는 하지이고, ‘은 입추이고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7-8월 같은 삼복기간이다. ‘는 추분이고, ‘은 입동이다. ‘은 동지이고, ‘은 입춘이다(김재홍, 주역, 상생출판, 2014, 551-2) 우주의 질서가 변화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 순서가 (그림 6)의 순서대로(건곤-감이-손건곤) 8괘를 읽을 때에 이법이 성립한다. 이상과 같이 8괘를 계절로 이해하는 방법에 대하여 방위를 말 할 때엔, “은 동북방에 해당하는 괘이다, 동북방은 만물의 변화가 매듭지어지고,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다라고 해석한다(안경전, 2020, 145)

(3) (그림 7)에서 보면 진과 간이 일치하는 괘는 각각 (변궁)(변치)에 해당한다. 율려신서와 악학궤범 등 음악서에는 5행을 5성과 일치시키고 있다. , -, -, -, -, -수와 같다,

(4)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오행에서 화는 둘로 갈라져 군화상화가 생기고, 음악에서는 치와 궁에서 변음이 생겨 이를 변궁과 변치라고 한다. (변치)는 치 다음이고, (변궁)은 궁 직전이다. 이 때에

 

상화-(변치)-

-(변궁)-

 

과 같이 일대일 대응을 자연스럽게 한다. 진과 간은 건태이진과 손감간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변화의 시작이나 끝에 놓인다.

(5) 음악에서 변궁과 변치는 5성이 회전하는 과정에서 초과분으로 생기기 때문에 변음혹은 변성이라고 한다. 이는 마치 계절 상에서 삼복에 해당하는 곳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초과분이다. 그리고 병란과 괴질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초과분 때문이다.

(6) 서양음악에서는 이런 초과분을 피타고라스 콤마라고 하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피타고라스의 순정율과 바흐의 평균율이 음악사에 등장하게 된다. 가장 다루기 난처한 존재가 이 콤마이고 변음들이다. “질병대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간방, 동북아 조선에서 나온다는 은유적인 표현은 곧 가장 난해한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7) 이러한 변치()을 다스리는 것이 순정율과 평균율이라고 했거니와 이를 두고 증산은 간도수艮度數라 했다. 이 간도수를 두고 율려律呂라고 한다.

 

마고와 율려에 관하여

 

부도지에는 태초에 우주와 세계가 어떻게 창조 되었는가와 이 세상에 질병이 어떻게 유래 했는가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세계 어느 문헌 치고 이만큼 심각한 수준에서 질병의 유래를 다른 문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19’와 그 이후에 우리 아니, 인류 전체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할 가장 귀중한 자료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키트를 발명해 지금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는 이상으로 부도지를 소개해 알려야 할 것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태초에 율려律呂가 있었다. 율려가 천지를 창조했다고 한다. ‘이란 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음양이 있었고 음양으로 우주가 창조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도지는 인간 세상에 병이 들어 온 이유는 율려의 파괴, 다시 말해서 음양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율과 려는 양과 음의 음악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성서 같이 신이 먼저 있고 천지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율려가 먼저 있었고, ‘마고麻姑라는 여신도 율려에 의해 생겨났고, 그 다음 마고가 마고성, 실달성과 허달성 같은 땅을 지었다. 율과 려가 몇 번이고 반복하여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별들이 생겨났다. 이 때를 짐세朕世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율려가 지배하던 시대이다.

짐세에서는 오직 온 우주에 율려 만 가득 차 있었으며 율려에서 다섯 가지 음과 일곱 가지 곡조가 생겨나 온 우주에는 곡조만 울려 퍼지니 율려가 조화롭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천자문은 율려조양律呂調陽이라고 한다. 이런 짐세에는 질병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땅에서 나는 젖 즉, 지유 地乳를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 같이 젖만 먹으니 이빨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마고는 궁희소희라는 두 명의 여자만 낳는다. 두 딸을 낳는 방법도 율려라는 바람을 하늘로부터 몸에 받아서 이다. 궁희와 소희라는 두 여인 역시 율려를 받아 네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를 낳아 땅에 인종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클라이브 해밀턴이 말하는 ‘4.1人類世가 시작된 것이다. 홍적세도 가고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는 세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들이 지유가 나오는 샘으로 가니 지유가 나오지 않았다. 지유가 나오는 샘터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기다려도 지유는 나오지 않는다. 마치 이 장면은 입마개를 구하려고 약국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배고픔을 참지 못 한 인간들은 넝쿨에 달린 포도를 따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젖은 아무 맛도 없고 비린내 만 나는 데, 포도는 오미五味의 맛 즉,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떫고 매운 맛이 다 나니 인간들은 신기하고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이 이런 오미를 혀에서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질병이 이 짐세에 퍼지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마고성 인간들은 들판에 나와 포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호탕하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율려를 능가하는구나

이것이 도대체 어떤 도인가?

오호라, 포도의 힘이로다.”

 

그 동안 짐세 동안 마고성에는 오직 한가지 자재율만 있었다. 타율이 아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운용되었다. 그 자재율이란 율려에서 나온 음과 성에 의한 조율이었다.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것도 땅에서 흘러나오는 젖뿐이라는 것이다. 가이아 어머니 몸에서 나오는 젖만이 유일한 음식이란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먹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을 포도를 먹는 것마저도 살아있는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보는, 죄악으로 본 것이 짐세의 생명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포도를 먹기 시작하자 인간들은 처음으로 병이 몸에 생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 아픈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피와 살은 탁해지고 마음은 독해져서 유순하고 맑은 성질은 잃어가기 시작했다. 수명은 짧아지기 시작하니 포도를 처음으로 먹게 한 지소씨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죽은 시체가 산천에 버려지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마고의 짐세에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먼 곳에 와 있는가? 한갓 열매에 불과한 포도를 먹은 것이 이런 후과를 가져 왔다면 지금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을 길러 그것을 도축해 푸줏간에 사각으로 각을 떠 토막 내 먹는 정도라면 우리는 지금 너무 먼 곳에 와 있지 않는가? 포도 먹은 것이 원인이 돼 질병이 처음 들어와 사람들이 병들고 죽기 시작했다면, 이런 짐세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우리는 지금 와 있다.

지금 지구촌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서로 코로나19에 대한 책임전가 하기에 영일이 없다.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무기도 감당할 수 없는 인류의 최대의 적, 아니 앞으로 더 무서운 적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짐세에서 한 참 떠난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상념에 젖어야 할 것인가?

영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작가인 존 그레이(John Grey)는 지금의 위기는 안정된 균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진 상태가 아니라 인류가 역사의 전환점에 직면한 것이라고 했다. 그레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나 사회적 감시체제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세계 각국이 장벽을 높인 채 안보와 과학연구, 기술혁신에 이전보다 더 주력함으로써 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 또한 바틀코 돌고래와 백조, 물고기떼가 돌아오고 공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면서 코로나19가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먼저 언급했다. 바닷가에는 거북과 돌고래가 수 만 마리 올라오기 시작했고, 들판에는 야생동물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오래된 고사서 부도지를 다른 어느 책 보다 우선적으로 꺼내 읽어야 할 순간이다. 설령 지금 우리가 짐세로 되돌아 갈 수는 없어도 우리의 본향이 어디이고 그 곳에서 누가 무슨 일을 했고 무슨 가치가 지고의 가치였는지는 반드시 한 번 생각하고 넘어 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도 인간도 그리고 다른 어떤 만물도 있기 전에 율려가 있었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되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기성 종교와 사상이 범한 가장 큰 오류는 사람과 같은 어떤 인격체가 우선이고 먼저라는 생각 때문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어떤 인격체도 먼저 있기 전에 거기에는 율려가 있었고, 율려에서 소리가 나와 이 소리가 조율되니 신도 인간도 땅도 하늘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종교 그리고 철학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가치관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래 된 미래의 책 부도지와 증산의 사상 안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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