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국가에 있어서 선비의 위상과 정신

최영진(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2023.03.02 | 조회 3427

2021년봄 증산도문화사상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국가에 있어 선비의 위상과 정신

 

최영진(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초록

유교에서 이상적인 국가는 가정과 학교의 결합체로서, 생명공동체교육공동체도덕공동체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天德[生生之德]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적인 책무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하여 도덕성을 함양함으로서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고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그 다음의 과제이다. 여기에서 군주를 대표로 하는 통치자는 부모=교사로, 민은 자식=학생으로 유비된다. 그러나 군주가 군주답지 못할 때 인민은 군주와 대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군주답지 못한 군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이 호/하는 것을 거꾸로 /하는 자이다. 군주와 민의 호/오가 상충될 때 양자는 모순과 갈등의 관계로 빠져든다. 왜 호/오가 상충되는가. 민심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보편적인 공공성이 담보된 것이다. 군주가 이것을 어기는 것은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천=인민이 위임한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공공의 이익을 사유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교의 이상적인 국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통치자가 이기심을 극복하고 통치객체라는 타자를 위하는 마음 곧 이타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현대 한국은 다산이 그토록 소원했던 하이상下而上이 제도화된 국가이다. 국민이 자율적인 의지로 선택한 한국의 통치자들이 과연 자신의 이기심을 스스로 극복하고, 국민이라는 타자를 위하여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이타적 존재일까. 과거나 현재나 통치자들은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한 자들이다.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앞에서 인용한 서경명을 따르는 자는 조상 앞에서 상을 주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에서 죽이되 너희들 처자까지 죽이리라라는 구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강력한 권력 행사를 원한다. 이들이 스스로 이타심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삼권분립, 정당정치, 언론, 시민단체 등 제도적 장치만으로 국가 권력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버리고 정의를 취하는 사생취의舍生取義의 선비정신이 오늘날에도 절실하다.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들이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선비의 얼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I . 서론

 

선비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유교용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재 선비라는 용어는 한자어 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다. ‘선비은 몽골어의 ‘sain’과 연관되는데, 이 단어는 어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는 몽고어와 만주어에서 지식인을 의미하는 박시에서 온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선비는 한국 고유의 언어로서 어질고 학식이 있는 지식인을 뜻하는데, 이것이 의 번역어로 채택된 것이다. 특히 유교 중에서도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작동하였던 조선시대에 있어, ‘선비는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지식인 겸 관료, 즉 사대부를 지칭하게 되었다.

유교는 국가가 군주에 의하여 통치되는 왕정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국가는 군주가 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집단의 보좌를 필수적인 요건으로 요구한다. 주대의 문헌과 금문 등의 자료에 의하면 이미 주나라 건국 초기에 봉건 관료제도가 시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춘추시대 공자가 설립한 학교는 바로 관료양성기관이었다. 공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관료로서의 전문지식과 소양을 길러주는 교사였다.

주대의 통치 집단은 천자天子 제후諸侯대부大夫 라는 다섯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한대漢代에는 관료층이 스스로의 신분을 대부나 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사대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송대 이후에는 독서인, 즉 지식인 겸 관료인 사대부가 정치 학술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주체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원래 유교는 재야성在野性을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공자와 맹자는 모두 재야에서 활동하던 지식인이었으며 동시에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유교는 태생적으로 국가의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하였듯이 유교적 지식인들은 국가 경영에 적극적 참여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노력 하였다. 유교적 지식인, 곧 선비는 재야에 있을 경우에는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서 국가의 권력을 견제하였으며, ‘재조在朝의 경우에는 국가 권력의 핵심적 계층으로서 기능하였다. 즉 선비는 국가라는 체제와의 긴밀한 연관성 하에서 존재하고 기능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통치의 주체와 객체로 구성된다. 유교의 이상적인 국가는 통치의 객체, 즉 민을 위한 국가였다. 맹자는 당시의 국가를 군주를 위한 국가로 보고 민을 통치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위민정치爲民政治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교의 이상은 역사상 실현된 적이 없다. 작년 말에 회자되었던 어느 가객의 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라는 주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통치의 주체는 피통치자를 위하여 가치를 정당하게 분배해야 한다라고 하는 국민을 위한 국가[爲民, for the people]’의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못한 것 같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TV를 통하여 생존권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 독재자들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진압되는 유혈사태를 목격하고 있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그 낯익은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통치자를 위한 국가의 야만적 폭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북한의 세습왕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국가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주기는 커녕,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피통치자들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인권을 말살하고 있다. 21세기, 합리성[탈주술화]인권 자율 등 근대적 가치를 넘어 탈근대를 기획하는 지금, 지구 한 쪽에서는 전근대적인 폭력적 권위주의 정부에 의하여 국민의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계몽주의는미완의 기획이었을까. 18세기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근대화는 이직도 미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점검해 보면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근대 서구 정치철학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가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과 같은 살육의 장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견제되지 않는 국가 권력의 광기어린 폭력을 목격하면서 우리는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줄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II. 유교의 이상 국가론

 

1. 통치의 주체

 

신석기 시대 말기에 중국의 중원에서 방으로 칭해지는 성읍국가가 출현하였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군장의 강력한 영도 하에 있는 독립집단이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농경에 기반을 둔 자급단체였다. 그리고 군사적으로 자위능력을 지닌 무장집단이었다. ‘이라는 한자어는 구와 과와 일로 구성된 회의문자이다. 둘레, 태두리[]’라는 의미로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경계를 뜻하고, 는 창이다. 그리고 일은 땅을 말한다. 이것은 이 무기를 가지고 자기 땅의 경계를 수호하는 무장집단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은 구와 파의 합성어이다. 는 둘레 테두리이고, 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다. 이 글자는 국가가 민을 복종시키는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표한다. 과 읍두 글자를 종합하면 땅과 거주민과 통치세력[무장집단]이 국가를 형성하는 기본 요소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맹자가 진심장盡心章하편에서 제후의 보배는 땅과 인민과 정사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점을 가리킨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영토 인민 정부 주권을 국가 구성의 요소로 보는 것과 상통한다.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고대 중원의 국가는 구성원을 지배하며 외부의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수호하는 무장집단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국가를 군 통수권자인 군주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서경書經』「탕서湯誓의 다음 구절이 그 예이다.

 

너희들은 바라건데 나 한 사람을 도와서 하늘의 벌을 이룩하라. 내 크게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상을 주겠다.(그러나) 너희들이 서약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너의 차자까지 모조리 죽여 용서하지 않겠다

 

군사들은 나 한 사람[予一人]’, 즉 군주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여기에서 군주는 국가와 동일시되면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강력한 권력자로 그려지고 있다. 이 점은 서경』「감서甘誓의 다음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명을 따르는 자는 조상 앞에서 상을 주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에서 죽이되 너희들 처자까지 죽이리라

 

권력은 권력의 유지와 확산을 그 속성으로 한다. 춘추시대는 이 권력의 속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던 시대였다. 이른 바 오패五覇로 불리우는 패주覇主들은 중앙권력의 공백기에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신장하여 주도권을 쟁취기 위하여 싸웠다. 전국시대에는 열국 간의 약육강식이 더욱 가열되어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시대에 국가는 군주의 권력을 재생산하고 확산시키는 군주를 위한 국가였다. 인민은 세금과 부역을 담당하고 군으로 징집되어 전쟁에 투입되는 도구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춘추시대 공자는 당시의 통치체제를 비판하고 인민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지내듯이 신중히 해야 하며,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의 저변에는 민을 위하여라는 위민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공자의 위민의식은 다음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법제금령法制禁令으로 이끌고 형벌로서 질서를 잡으면 백성들이 [이것들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수치심이 없어진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서 질서를 잡으면 수치심이 있게 되고 올바르게 된다.

 

당시의 국가는 법령과 금령, 그리고 형벌로서 민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공자는 힘에 의거하여 피통치자를 강제로 복속시키는[以力服人] 국가를 비판하고, 덕과 예로서 교화하여[以德服人] 도덕적 정감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국가를 주장한 것이다.

권력은 관계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려는 통치 주체는 반드시 통치 객체의 자발적 복종을 얻어낼 때 그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서 군주를 위하여, 즉 국가 권력을 강화 확산하기 위하여 인민을 통제하는 국가에서부터 통치주체의 도덕적 감화력에 의하여 인민을 교화하는 국가로 획기적 전환이 일어난다. 공자는 인민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고 방위력을 길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교육을 통하여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며, 이를 잘 수행해야 군주는 민의 신뢰를 얻어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위민의식을 계승하여 민을 정치의 목적으로 보는 백성을 위한 정치[爲民政治]’를 주장하였다. 이것은 피통치자를 정치의 목적으로 보는 목적적 피통치자관이다. 맹자는 당대의 정치를 패도覇道로 규정하고 민을 위한 정치인 왕도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당시의 현실을 비판하였다.

 

[권력자]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리고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짐승을 끌어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가 가장 가볍다라고 주장하였다. ‘군주>사직>>’이라고 하는 당시의 국가체계를 >사직>군주라는 정반대의 위계로 역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민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도구화시킬 때, 그 군주는 민에 의하여 교체되어야 한다는 혁명론이 가능한 것이다.

도구적 피통치자관으로부터 목적적 피통치지관으로의 전환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적적 피통치자관서경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율곡은 군주의 교과서인 성학집요』「위정편 첫머리에서 국가는 가정을 유추한 것이다라고 밝힌 다음에서경』「주서周書<태서泰誓>편 다음 구절을 인용한다.

 

오직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이며 오직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진실로 총명한 자가 임금[元后]이 되니, 임금은 인민의 부모가 된다.

 

주역에서 천지의 본질적 기능은 만물을 낳는 것이다[天地之大德曰生]”이라고 간파한 바와 같이, 천지의 본질적 기능은 생명을 낳고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와 같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서 그 자체가 목적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민의 부모인 임금은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천지를 본받아 고통 받는 인민을 구제하며 길러주고 생명을 꽃피워 주어야 한다. 이것이 하늘이 인민을 위하는 것[天之爲民]’을 본받아 임금이 해야 할 책무이다. 천지의 생명을 끊임없이 낳는 공덕[生生之德]’을 본받아 인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길러주어 천덕을 인간 세상에 실현하는 것, 생존권의 보장이 국가 통치자의 일차적 의무인 것이다. 성리학자들이 민생안정이라는 경제문제를 정책의 제일 과제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경제적 안정을 토대로 교육을 통하여 인간다운 삶, 즉 윤리적인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이것이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힌다[明明德於天下]”라고 대학에서 제시한 유교의 이상이다. 세종의 인민을 가르침[訓民]’이라는 개념도 여기에 기반을 둔다고 볼 수 있다.

부모이면서 동시에 교사인 군주에게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修德 修身]이 요구된다. 율곡은 논어위정이덕爲政以德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인군人君이 덕을 닦는 것이 위정爲政의 근본이다. 먼저 군주의 직책이 이 백성의 부모인 것에 있음을 안 뒤에 중을 세우고 극을 세워 표준을 이루면 그 효과가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여 도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이 유교의 이상인 덕치德治이고 예치禮治이며 위민정치爲民政治인데, 이것은 군주의 수덕修德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율곡은 보았다. 군주가 희소한 가치를 인민을 위하여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보다 많은 가치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적인 권력욕을 견제해야 한다. 즉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군주의 권력을 견제하는 일차적 장치는 바로 군주 자신의 마음이라고 보는 것이 유교의 기본 입장이다. 성학집요에 편집되어 있는 주자의 다음과 같은 주석이 대표적인 예이다.

 

천하의 일이 천변만화하여 그 단서가 무궁하지만 인주人主의 마음에 근본을 두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인주의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일이 모두 올바른 데에서 나오고 인주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천하의 일이 한 가지도 올바른 데에서 유래할 수 없다.

 

서경』「대우모大禹謨편에서 왕위를 선양할 때에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니 오직 정밀하고 하나 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을 잡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군주가 공평무사한 통치규범을 확립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수양공부가 필수적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주자가중용장구서에서 인심과 도심의 근원을 형기지사形氣之私/ 성명지정性命之正으로 구분하고 치밀한 수양론을 전개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검토한 바와 같이, 유교의 이상적 국가는 경제력과 방위력을 향상시켜 인민의 생존권을 보장하여 생명을 보호하는 것[足食足兵]이 일차적 과제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을 통하여 윤리의식을 함양시킴으로서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켜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생명공동체 교육공체 도덕공동체가 유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인 것이다. 이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치의 객체인 인민을 통치의 목적으로 보는 목적적 피통치자관’, 위민의식과 통치 주체인 군주의 도덕적 자기 수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하다.

 

2. 통치의 객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교국가에 있어 통치의 객체는 인민[]이다. 율곡은 성학집요聖學輯要』「위정爲政<안민安民>장에서, 각종 유교문헌에 나타난 인민[]에 대한 구절들을 애민愛民외민畏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민은 군주가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율곡은 왕은 인민을 하늘로 여기고 인민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민이 군주에게 하늘과 같은 존재이며, 하늘 같은 존재인 인민의 경제적 안정이 군주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인민을 정치의 목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유교에 인민에 의한 정치는 없으나 인민을 위한 정치는 더 없이 강조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그렇다면 유교에 있어 인민은 부모이며 교사인 군주, 그리고 그 대행자인 사대부가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인 피동적/유아기적幼兒期的 존재에 지나지 않는가. 태종실록5 태종36월의 다음 기록을 살펴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서전에서 인군은 부모이고 인민은 갓난아이이며 수령은 유모乳母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그 자식을 기르지 못하므로 이를 기르는 자는 유모이고 임금이 그 백성을 스스로 어루만지지 못하므로 이를 어루만지는 자는 군수입니다.

 

여기에서 인민은 젖 먹는 갓난아이로 비유된다.

율곡은 위정편 첫머리에서 오직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이며 오직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진실로 총명한 자가 임금[元后]이 되니, 임금은 인민의 부모가 된다라는서경한 구절과 이에 대한 채침의 주석을 전재한 다음에 대학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시경에서 즐겁도다 군자여. 인민의 부모이다라고 말하였다. 인민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민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니 이것을 일러 인민의 부모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그 뒤편에 나오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을 사람의 본성을 어기는 것이다라고 말하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칠 것이다라는 문장과 연결되다. 이 두 문장을 종합하면 군주가 인민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인민이 호/하는 것을 군주가 호/오하기 때문이다. 인민이 호/오하는 것을 군주가 반대로 오/호할 경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어긴 것으로 규정되어, 부모의 자격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재앙이 반드시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인민은 군주를 군주다운 군주, 즉 인민의 부모로 만드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담보하고 있는 실체로서 규정된다. 이 구절들은 국가의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유교의 전통적 정치사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정치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구절이 서경』「하서夏書에 나오는 민은 오직 국가의 근본이다[民惟邦本]’라는 문장이다. 채침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인민이란 국가의 근본이다. 근본이 견고한 뒤에 국가가 안정된다.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면 비록 진나라와 같이 강하고 수나라와 같이 부유해도 반드시 망하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존립할 수 있는 뿌리가 바로 인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民心]을 얻으면 국가를 얻고 인민을 잃으면 국가를 잃어버린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민심을 얻는 방법은 민이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싫어하는 것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하를 얻는 데에는 방도가 있으니 그 인민을 얻으면 이에 천하를 얻는다. 그 인민을 얻는 데에는 방도가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이에 인민을 얻는다. 그 마음[民心]을 얻는 데에는 방도가 있다. 원하는 것은 거두어 주고, 싫어하는 것은 시행하지 않는 것을 뿐이다.

 

민본사상은 주나라 초기에 형성된 천명정치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국 고대의 문헌에 의하면, 인민은 천이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민에 대한 통치권은 원천적으로 천에게 있다. 그러나 천이 직접 인민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사람 가운데 덕이 있는 자[有德者]’를 선발하여 그에게 통치권을 위임한다. ‘통치권을 위임한다라는 하늘의 명령이 바로 천명天命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천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바로 이라는 것이다. 덕을 잃어버리면 통치자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어 하나의 평범한 지아비[一夫]가 된다. 그러므로 군주는 끊임없는 수양을 통하여 덕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누가 덕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것은 바로 민심, 즉 대중들의 여론이다. “천은 우리 인민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고, 천은 우리 인민이 듣는 것으로부터 본다, “인민이 하고자 하는 바를 천은 반드시 따른다라는서경의 구절들이 이 점을 분명히 말해 준다. 즉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에 대한 현실적 임명권은 인민[민심]에게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메카니즘 때문에 국가의 권력은 민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바, 맹자가 민심을 얻으면 국가를 얻고 민심을 잃으면 국가를 잃는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민심은 구체적으로 호/로 나타난다. 인민의 호/오를 군주가 그대로 따르는 것이 민심을 따르는 것이고, 민심을 따르는 것이 하늘의 뜻[天意 天理]’를 따르는 것이다. 주역혁괘革卦 단전에서 은나라의 탕왕湯王과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혁명革命하여 하늘을 따르고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였다라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은 논리에 토대를 둔 것이다.

인민을 국가의 뿌리, 정치권력의 원천으로 보는 유교적 전통[民本思想]18-19세기 조선의 상황에서 재해석한 것이 다산 정약용의 탕론湯論이다. 그는 천자는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었는가라고 자문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5가 인이 되니 5가에서 장을 추대한 자가 인장鄰長이다. 5이 리가 되니 5리에서 장을 추대한 자가 이장里長이다. 여러 현장縣長이 함께 추대한 자가 제후가 되며, 제후가 함께 추대한 자가 천자가 된다. 천자는 대중들이 추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대중들이 추대하여 이루어졌으니 대중들이 추대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자는 아래에서부터 민중들의 추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자를 파직시키는 권한도 역시 민중에게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다산은 하이상下而上이라고 부르고 한대 이후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고 제후가 현장을 임명하고 현장이 이장을 임명하는 방식을 상이하上而下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으니[下而上]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순하는 것이다. 지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니[上而下]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역하는 것이다.

 

천자가 관료를 위에서 아래로 임명해 내려가는 방식을 비판하고 인민들이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위로 천자를 추대해 올라가는 방식이 올바르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산은 천의 권위를 빌리지 않고 직접 민이 국가 권력의 근거임을 논증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산의 근대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상 검토한 바와 같이, 인민은 군주와 사대부가 기르고 보호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 즉 통치의 객체이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민심民心이 바로 군주의 임명권자인 하늘의 마음[天心]이기 때문이다.

3. 선비의 위상

 

유교는 국가가 군주에 의하여 통치되는 왕정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국가는 군주가 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집단의 보좌를 필수적인 요건으로 요구한다. 춘추시대 공자가 설립한 학교는 바로 관료양성기관이었다. 이 점은 논어』「선진편의 다음 기록에 잘 나타난다.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공자:내가 너희들보다 나이가 좀 많지만 어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혹 너희 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로:천승의 나라[제후국]가 큰 나라 사이에서 속박을 받으며 침략을 받고 기근까지 들어도, 제가 나라를 다스린다면 3년 만에 백성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고 또한 올바르게 사는 방식을 알게 하겠습니다.

공자가 미소를 지었다.

공자:야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

염유:6,70리 또는 5,60리쯤 되는 조그만 나라를 제가 다스린다면 3년 만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해주겠으나, 예와 악 같은 것은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공자: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공서화: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고자 합니다. 종묘의 일이나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군주의 예를 돕는 집례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기록에 나타난 바와 같이, 관료는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여 실질적으로 인민을 통치하는 전문가 집단이었다. 공자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은 관료로서의 전문지식과 소양을 길러주는 교사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송대 이후에는 독서인, 즉 지식인 겸 관료인 사대부가 정치 학술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주체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조선의 경우, 여말선초 성리학으로 무장된 사대부들은 역성혁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여 건국한 이후,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에 있어 성리학의 정맥은 조선 초 정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중기 이후 부당한 정권에 비판적이었 재야 사림에 의하여 형성되고 계승되었다. 특히 16세기 중종中宗대에 기묘사림己卯士林이 등장하면서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는 도학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주자 중심의 도통론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몽주鄭夢周와 김굉필金宏弼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통의식이 강화되어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로 계승되는 유학의 계보가 작성되었다. 그 이후 학파에 따라 다른한 계보가 작성되었으나, 김굉필 이후의 도통은 조광조- 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권력을 장악한 사림파의 일부가 재야성을 상실하면서 선비정신은 타락하였다.

 

4. 선비정신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재를 관료로서 선발하는 데에 달려 있다는 인치론人治論은 유교의 오랜 전통이다.중용에서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아홉가지 길[爲天下國家有九經]’가운데 세 가지가 관료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관료가 학문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등용되어 벼슬에 나가면 관료가 되고 물러나면 재야 지식인이 된다. 앞에서 인용한 논어에서 잘 드러나듯이, 지식인들은 관료로 등용되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이 정치적 현실과 어긋날 때에는 스스럼없이 물러나는 것이 중시되었다. 맹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고,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아니하며, 다스려지면 나가고, 어지러우면 물러서는 사람은 백이이다. ‘누구든 섬기면 군주가 아니며, 누구든 부리면 백성이 아니겠는가다스려져도 나가고 어지러워도 나가는 사람은 이윤이다. 벼슬 할 만하면 하고 그만둘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할 만하면 하고 빨리 할 만하면 빨리 하는 사람은 공자이다.

 

/退, /를 판단하고 행동하며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자신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권위와 관계망도 개입할 수 없다. 오직 만이 판단과 행위의 기준이 된다. 맹자는 참다운 지식인의 용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스로 반성하여 내가 바르지 못하다면[自反而不縮], 비록 천한 자라 할지라도 그를 두렵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여 옳다면[自反而縮], 비록 천만 명이 대적할지라도 나는 나설 수 있다.

 

여기에서 스스로 반성하여[自反]’라는 용어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어떠한 권위와 관계망에서 부터도 독립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잘 그려준다. 이러한 지식인의 모습은 이루하편에서 군자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을 자반이인自反而仁 자반이충自反而忠이라고 표현한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이 선비는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불의한 세력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저항하여 정의를 지켰다. 이 점은 맹자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물고기는 내가 욕구하는 바요, 웅장도 또한 내가 욕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다 먹을 수가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취한다. 삶도 내가 욕구하는 바요, 의도 또한 내가 욕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다 먹을 수가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 취한다. (󰡔맹자󰡕 「고자)

 

여기에서 생명을 버리고 정의를 취하는[舍生取義] 맹자의 신념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도를 실천한다[守死善道]”라는 공자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서,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대표적 구절이라고 할 것이다.

송대의 선비들은 이와 같은 유교적 지식인의 전통을 바탕으로 진리와 역사와 민중에 대한 강렬한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하였다. 장횡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지를 위하여 뜻을 세우고 생민生民을 위하여 도를 세우고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연다.

 

사대부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글이라고 일컬어지는 범중암范仲淹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도 이와 같은 선비정신이 확인된다.

 

고관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에는 민중의 일을 걱정하고 재야에서는 군주의 일을 걱정한다. 나아가서도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걱정하는 것이다.천하의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 사람이 즐거워 한 이후에 즐거워 한다.

 

이것은 유교의 전통적인 우환정신을 바탕으로 민중과 군주에 대한 사대부의 사명을 표현한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한 선우후락先憂後樂은 사대부들이 애호하고 자신의 이상으로 높게 떠받든 문구였다. 송대 이후 사대부들은 확고한 주체의식과 인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역사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단순한 군주의 보좌역이 아니라 군신공치君臣共治의 원칙 아래 정치의 주체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이 점은 조선조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왕조 권력구조는 권력 분산과 권력 견제에 역점을 두어 정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인민을 나라의 근본으로 존중하는 민본정치를 구현하는데 목표를 두었는데, 이를 주도한 것은 사대부였다. 이들은 왕권과 협력/대립의 긴장관계를 형성하였으며 왕권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역성혁명을 일으키고 반정反正으로 왕위를 교체하는 주체 세력이 되기도 하였다.

사대부가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재야에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상소上疏를 통하여 정치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재조공론在朝公論과 구분되는 재야공론在野公論을 형성하여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였으며, 특정 정치세력을 강화/견제하였다.

이와 같이 사대부는 탁월한 도덕성과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정치권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왕권을 견제하여 가치가 인민들을 위하여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조치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사리사욕과 사사로운 관계망을 넘어설 수 있는 공인정신이 강도 높게 요구되었다. 율곡은 논어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를 해석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인신人臣의 악은 사당私黨보다 심한 것이 없고, 인군이 매우 미워하는 것도 붕당朋黨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군주를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선비[]는 도를 같이하는 것으로서 붕당을 이루는 자입니다. 한마음으로 군주를 사랑하고 한마음으로 나라를 따르니 당이 융성할수록 군주가 더욱 성스러워지고 나라가 더욱 편안해 집니다.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권세를 굳건하게 하는 선비는 이익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붕당을 이루는 자입니다. 사사로움을 도모하고 공공한 것을 내버리며 군주를 뒤로 하고 어버이를 버리니 그 무리가 비록 적어도 주상을 속이고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율곡은 를 매개로 붕당을 이루어 군주 국가라는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군주를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선비[正君治國之士]’이익[]’을 매개로 붕당을 이루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권세를 굳건하게 하는 선비[榮身固權之士]’를 대립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공//이 날카롭게 대비되면서 전자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바와 같이, 지식인 겸 관료로서의 선비는 모든 외적인 권위와 관계망에서 벗어나 자기 판단[自反]에 의하여 진퇴를 결정하며, 인민과 역사에 대한 투철한 책임감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인 동시에 최고 통치권자의 권력을 견제하는 자율적 존재로서 그려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사에 대한 엄격한 구별을 통하여 사리사욕을 극복하고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인정신이 강도 높게 요구되었다. 그 바탕에는 불의에 저항하는 사생취의 舍生取義의 정신이 짙게 깔려 있었다.

 

5. 결론

 

유교에서 이상적인 국가는 가정과 학교의 결합체로서, 생명공동체교육공동체도덕공동체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天德[生生之德]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적인 책무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하여 도덕성을 함양함으로서 자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를 만들고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그 다음의 과제이다. 여기에서 군주를 대표로 하는 통치자는 부모=교사로, 민은 자식=학생으로 유비된다. 그러나 군주가 군주답지 못할 때 인민은 군주와 대립하게 된다. 그 전형적인 실례가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의 경우이다. 걸이 자신을 태양에 비유하자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극언하였다.

 

이 태양은 언제 없어질 것인가. 너도 죽고 나도 죽어 너 죽고 나 죽자[予及女偕亡]”

 

그렇다면 군주답지 못한 군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이 호/하는 것을 거꾸로 /하는 자이다. 군주와 민의 호/오가 상충될 때 양자는 모순과 갈등의 관계로 빠져든다. 왜 호/오가 상충되는가. 민심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보편적인 공공성이 담보된 것이다. 군주가 이것을 어기는 것은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천=인민이 위임한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공공의 이익을 사유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교의 이상적인 국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통치자가 이기심을 극복하고 통치객체라는 타자를 위하는 마음 곧 이타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현대 한국은 다산이 그토록 소원했던 하이상下而上이 제도화된 국가이다. 국민이 자율적인 의지로 선택한 한국의 통치자들이 과연 자신의 이기심을 스스로 극복하고, 국민이라는 타자를 위하여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이타적 존재일까. 과거나 현재나 통치자들은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한 자들이다. 대부분의 통치자들은 앞에서 인용한 서경명을 따르는 자는 조상 앞에서 상을 주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에서 죽이되 너희들 처자까지 죽이리라라는 구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강력한 권력 행사를 원한다. 이들이 스스로 이타심을 발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삼권분립, 정당정치, 언론, 시민단체 등 제도적 장치만으로 국가 권력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버리고 정의를 취하는 사생취의舍生取義의 선비정신이 오늘날에도 절실하다.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들이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선비의 얼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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