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논문

선후천과 개벽 2

양재학(상생문화연구소)

2023.02.24 | 조회 4056

. 생명과 시간의 새로운 창조

 

1. 천간지지天干地支에 담긴 시간의 비밀

 

증산도사상의 종지인 원시반본原始返本은 시간의 본성에 대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원시반본의 시간적 상징체가 60갑자甲子 이론이다. 60갑자는 천간지지天干地支로 이루어져 있다. 천간지지는 천지일월의 변화현상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술어로서 천문학을 비롯하여 일상생활 곳곳에 뿌리박혀 동양인의 삶을 지배했다. 천간은 하늘의 줄거리, 지지는 땅의 가지를 가리킨다.

동양인들은 하늘의 음양운동을 천간天干으로, 땅의 음양운동은 지지地支로 표현했다. 천간지지를 줄여서 보통 간지干支라 부른다. 동양인의 시간의식은 천간지지天干地支에 투영되어 있다. 왜 하늘의 질서는 10단계이며, 땅의 질서는 12단계인가? 여기에는 우주변화의 신비가 함축되어 있다. 하늘의 질서[天干]와 땅의 질서[地支]로 구성된 천간지지에는 하늘의 섭리가 땅에서 축복으로 구현된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특히 십이지지十二地支를 중심으로 시간의 질서가 원시반본되는 이치를 밝힌 것이 바로 천지의 위대한 숨결과 조화造化[天地之用]라는 명제다.

천간지지는 태고의 도술로서 시간의 규칙적 흐름과 작용의 핵심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증산도의 시간관은 천간지지天干地支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전에는 시간, 역사, 신도,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가르침이 압축되어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세계 민족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에 매여 있으니 십이물형十二物形을 그려라하시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쓰시고 그 글자 위에 점을 찍으시며 이것은 비복신법飛伏神法이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천은 축판丑板이니라하시니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는 시간의 법칙을 헤아리는 술어이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歷史文明]이며, ‘비복신법은 신도를 꿰뚫는 방법이며, ‘축판은 선천이 후천으로 뒤바뀌는 우주변화의 극치를 뜻하는 용어다.

생명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과정을 거쳐 성숙되고,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 그 목적을 완수한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신비를 시간의 순환 형식으로 언급한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단계인 하늘의 운행은 12단계의 땅의 질서로 성숙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것은 하늘의 원리가 땅에서 완수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크게는 무형에서 유형의 형상이 생겨나서 쇠퇴하는 과정과, 작게는 인간의 한많은 인생의 곡절을 되새기게 하는 시간과 생명의 원리이다. 한마디로 천간지지는 우주원리를 이해하는 최고의 코드인 것이다.

땅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12지지 속에는 생명과 시간이 새로운 내용으로 완성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도 천지개벽의 파도를 타면서 선천이 후천으로 바뀐다는 개벽의 시간관이다. 왜냐하면 선천은 자판子板이라면 후천은 축판丑板이기 때문이다. 선천에서는 시간이 자궁에서 잉태되어 생겨났다면, 후천에서는 판이 통째로 바뀌어 시간과 생명의 옹달샘이 의 자리로 자리바꿈한다는 뜻이다.

 

상제님께서 십이지지十二地支 물형부物形符를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이는 태고太古 시대의 도술道術이니 선경세계를 건설할 때 크게 쓸 것이니라. 익히 공부하여 두라하시니라.”

 

최덕겸崔德兼천하사는 어떻게 되옵니까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라 가로로 쓰신 후, 다시 그 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라 쓰셨다.”

 

천간지지에는 천상의 질서가 지상의 질서로 전환함으로써 조화선경이 건설되는 방법이 압축되어 있다. 증산상제는 천간보다는 지지에 훨씬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도술에서의 도는 진리와 시간의 원형을, ‘은 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킨다. 도는 술을 통해 전개되고, 술의 목적은 도를 구현하는데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도술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동양의 역법이 대변한다. 역법에는 태음력太陰曆과 태양력太陽曆과 이들의 결합체인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 있다. 태음력은 달의 운행주기를 역법의 기초로 삼은 것이고, 태양력은 태양이 춘분점에서 출발하여 다음의 춘분점으로 돌아오는 회귀년에 근거한 역법이다. 1년을 대략 354(29.5 × 12 = 354)로 사용하는 태음력은 농경생활에 부절적하다. 농부는 계절의 변화와 밀접한 태양력을 바탕으로 농사지어야 편리한 까닭에 태음력에 태양의 주기를 결합시킨 역법인 태음태양력이 등장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중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태음력은 1360일을 중심으로 6일이 모자라고, 태양력은 일이 넘쳐 있다. 한마디로 사계절이 항상 1360일이라면, 태음력과 태양력을 억지로 꿰어 맞추는 불편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것은 하늘과 땅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하늘과 땅의 위대한 숨결[天地之用]’이라는 명제는 생명의 본성과 시간 흐름의 질서와 작용을 밝힐 수 있는 하도낙서의 시간관을 담지하고 있다.

하도낙서에 대한 시간 흐름의 질서를 표현한 것이 바로 천간지지로 이루어진 60갑자이다. 하도낙서와 60갑자는 조직론의 극치이다. 도수의 조직으로 디자인된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뜻이다. 기독교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했다면, 동양에는 갑자甲子로 시작해서 계해癸亥로 끝나는 합리적 조직론이 존재했다.

육갑은 달이 찼다가 이지러지는 달의 주기 혹은 계절의 규칙적 교대와 태양의 운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천지의 율동상을 토대로 삼는다. 자연현상의 시간표를 보여주는 어떠한 징후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서양 격언에 신은 낮과 밤을 만들었고,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달력이 없다면 생활의 리듬이 뒤죽박죽이 될 것이 뻔하다. 이처럼 달력은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2. 시간의 방정식- 순역운동

 

달력 구성의 근거는 음양의 변화에 있다. 음양의 변화를 달리 표현하면 순역운동順逆運動이다. 예컨대 봄과 여름을 뽐내는 나무는 뿌리로부터 생명수를 위로 날라서 잎과 가지를 풍성하게 자라게 한다. 이처럼 뿌리라는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성장해가는 양의 과정을 의 운동이라 부른다. 이와는 달리 성장의 극한에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수렴하는 음의 과정은 의 운동이라 한다. 이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원리가 바로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따라서 원시반본은 생명이 순환하는 대원칙이며, 시간의 본성을 뜻하기도 한다.

현대인은 너나할 것 없이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른다. 등산가가 땀을 흘리면서 힘들게 산에 오르는 것은 의 과정이고, 정상에 올라 목청을 돋아 야호하고 소리를 지른 다음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것은 의 과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호흡을 통해 내 몸에서 나가는 날숨과 다시 들어오는 들숨이 순역운동을 반복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순역운동은 뱀이 제 꼬리를 입에 문 형상처럼 원시반본의 순환을 지속하는 것이다. 순역운동에서 신도가 개입하여 역의 질서가 순의 질서로 바뀌는 결정적 역할을 맡는다.

증산도 우주관은 상생과 상극의 원리가 근간으로 형성되어 있다. 상생상극은 후천개벽의 과정과 목적을 해명하는 우주변화의 결정판이다. 그것은 하도낙서河圖洛書라는 그림 한 장에 온전히 담겨 있다.

 



 하도 낙서

하도낙서의 설명체계가 곧 역도수逆度數와 순도수順度數이다. 역도수란 상극질서를, 순도수란 상생질서를 뜻한다. 낙서는 상극질서를, 하도는 상생질서를 가리킨다. 이때 상극세상을 상생의 세상으로 바꾸는데 신도가 막중한 역할을 책임진다.

그러니까 하도낙서에는 우주사와 문명사와 역사의 전개양상이 총체적으로 압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증산도사상에서 말하는 하도낙서는 세계의 기원과 생성을 설명하는 철학적 체계를 넘어서 신도를 통한 우주에 대한 상제의 주재권능이 개입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종합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증산상제는 자연신으로서의 망량과 조왕과 칠성을 가을개벽으로 인도하는 주인공으로 역사役事시켰다. 신도는 우주의 이법과 역사현실을 연결시키는 일종의 매듭이다. 신도는 상제의 권능에 의해 역도수로 발동되어 선천을 후천으로 전환시키는 역동적 천지기운인 동시에 신명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신도원리의 핵심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천지가 역으로 가니 역 도수를 볼 수밖에 없노라하시고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左旋 四三八 天地魍魎主張하고

九五一 日月竈王主張하고

二七六 星辰七星主張이라

좌선이라 사삼팔, 천지는 망량이 주장하고

구오일, 일월은 조왕이 주장하고

이칠륙, 성신은 칠성이 주장하느니라.”

 

증산상제는 천지일월과 은하 속의 무수한 별을 다스리는 신명들의 실체에 대해 밝혀주었다. 천체 운행을 주재하는 성신에 대해 천지는 망량 성신’, 일월은 조왕 성신’, 그리고 우주의 모든 별자리는 북방의 칠성七星의 성신들이 주재한다는 것이다.

천지일월의 분신이 바로 성신이라면, 칠성은 이를 대표하여 세상을 조화시키고 질서지우는 주도적 존재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천지일월은 칠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망량은 우주의 바탕자리로서 생명의 본원이라면[造化],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전통의 부엌신에 해당하는 조왕신은 천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생명을 성숙시킨다[敎化].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온갖 별들이 칠성으로 귀속되는 핵심적 별자리임을 감안할 때, 칠성은 생명을 실질적으로 통솔하고 유지시키는 중추이다[治化].

위 인용문에서 천지가 역으로 가니 역도수를 본다는 말은 원시반본의 이치에 따라 신도[魍魎, 竈王, 七星]를 개입시켜 생명의 본성자리로 되돌리는 상제의 조화권능의 발휘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 입장에서 말하면, 역도수는 성숙을 지향하면서 순도수가 발동하도록 신도를 개입시켜 가을개벽의 D - day만을 남겨 놓은 것을 뜻한다.

낙서의 상극질서는 중앙의 황극을 중심으로 좌우상하 또는 대각선의 수를 합하면 어떤 경우든 15가 된다. 특히 중앙의 5를 중심으로 각각의 짝들은 10수를 지향한다. 동학의 최제우가 그렇게 부르짖었던 10수 무극대도의 세계는 우주운동의 본체인 5황극의 막중한 역할에 힘입어 10무극으로 열리는 것을 표상한다.

5황극은 원래부터 운동의 본체였다. 다만 우주는 시간의 주기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까닭에 문왕팔괘도에서는 5황극이 숨겨져 존재할 따름이다. 한마디로 낙서의 역의 과정과 하도의 순의 과정에서 생명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운동의 주체가 바로 5황극이다. 5황극은 선후천변화가 이루어지는 핵심인 동시에 10수 무극대도가 열리도록 하는 열쇠에 해당된다.

 

龜馬一圖今山河幾千年間幾萬里로다

胞運胎運養世界하니 帶道日月旺聖靈이로다

하도와 낙서의 판도로 벌어진 오늘의 산하.

수천 년 동안 수만 리에 펼쳐져 있구나.

가을개벽의 운수 포태하여 세계를 길러 왔나니,

변화의 도를 그려 가는 일월이 성령을 왕성케 하는구나

厥有四象抱一極하고 九州運祖洛書中이라

道理不慕禽獸日이요 方位起萌草木風이라

대자연에는 사상四象이 있어 중앙의 한 지극한 조화기운을 품고 있고,

온 세상 운수의 근원은 낙서洛書 속에 들어 있네.

도리를 우러르지 않으니 금수시대요,

사방에서 싹을 틔우니 초목에 바람이 이네

 

하도와 낙서는 인간의 눈이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천지의 조화세계, 그 오묘한 이법을 상수원리로 밝혀주는 우주변화의 암호 해독판으로서 신의 가르침을 자연수로 표현한 진리의 원 뿌리요 원형이다. 이 두 그림이 인류문명에 출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연계의 음양운동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도와 낙서는 한 쌍으로서 각각 상생과 상극, 과 역의 논리를 보여주는 생명의 율동상을 형상화한 도상이다. 하도는 우주 창조의 설계도이며, 낙서는 인간 역사가 후천의 성숙한 세계를 향해 발전해가는 성장 과정의 원리를 담고 있다.

하도낙서의 무궁무진한 변화상을 반영한 수리론이 서양에 전달되었다는 글을 쓴 프랭크 스워츠(Frank J.Swetz)Legacy of the LuoShu에는 천지변화의 문제를 다루는 낙서의 다양한 형태가 소개되어 있다.

한동석이 지적했듯이, 낙서의 도상을 원형으로 삼은 문왕팔괘도는 지축이 기울어진 원인을 형상화한 것이다. “문왕괘도는 지축이 경사진 에서 취한 것이고, 정역괘도는 지축이 정립된다는 입장에서 취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왕괘도의 시대, 즉 현실의 금화교역은 불완전한 교역이므로 변화가 불측하지만 정역괘도의 시대는 변화가 정상으로 되므로 不測之變이 없는 평화시대가 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도가 개입되어 가을개벽의 기운을 몰고 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신도에 의해 선후천이 교체되는 신도우주는 우주관의 꽃이다.

 

 

 

3. 하늘과 땅의 숨결[天地之用]

 

사마천司馬遷(BCE 145 - BCE 86)하늘과 사람의 근원적 관계를 규명하고 옛날과 지금의 변화를 하나로 꿰뚫어 일가의 학설을 이룬다[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라고 말하여 역사철학의 웅대한 구상으로 사기史記를 지었다. 사마천이 비록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3등분했으나, 그것은 시간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시간의 이미지일 따름이다.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시간에 대한 구조적 본질, 즉 선천과 후천의 교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둘러싼 개념들과 씨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시간은 화살과 같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의 배를 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시간의 배에서 내릴 수 없다. 시간의 변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들의 끊임없는 순환운동에서 비롯된다. 달은 자전하면서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을 감싸 안고 공전한다. 이러한 천체운동이 시간의 주기를 빚어낸다. 삼라만상은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변화한다. 그래서 시간을 자연의 얼굴이라 부르는 것이다.

유형무형의 모든 사물은 시간의 먹잇감이다. 인간은 만물을 마구 먹어치우고 심지어 쇠도 녹슬게 하는 시간의 이빨에 속수무책이다. 시간의 법칙인 생로병사의 과정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사물 형성의 근거이자 내용이며 형식이다. 증산상제는 하늘과 땅의 위대한 숨결[天地之用]에 함축된 삶과 죽음의 법칙이 곧 생명과 시간의 본성임을 밝히고 있다.

 

天地之用(A)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藏이니라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

(B) 藏死病衰旺冠帶浴生養胎胞니라
장사병쇠왕관대욕생양태포

 

하늘과 땅에서 펼쳐지는 시간질서는 12단계의 절차를 밟으면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역의 방향과 순의 방향이라는 양면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A)는 무형에서 유형의 형상이 생겨나 성장하고 쇠퇴하는 상극질서를 반영하는 세계상이다. 생장염장이라는 커다란 생명의 순환 싸이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늙어 죽음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바로 (A)의 핵심이다. 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생명의 노화법칙을 뜻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의 본성으로 회귀하는 갱소년갱소녀更少年更少女의 길을 뜻하는 (B)의 단계에 나타나 있듯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미지의 생명의 정보가 원래부터 미리 입력되어 있음을 표상한다. 따라서 그 프로그램대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상생질서의 세계상을 지적한 것이다. 순역順逆상호 교통의 시스템은 증산도의 시간관을 이해하는 최상의 코드이다.

우리는 현실로부터 사물을 분석하는 귀납적인 사고는 의 사유방식이고, 사물의 근본 바닥자리를 마음의 심층적 본성으로 꿰뚫어버리는 사고를 의 사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순역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은 인생의 두 날개와 같다. 삶의 이면이 곧 죽음이요, 죽음의 이면이 곧 삶이다.

우리는 날마다 무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요람에서 나와 차표 한 장을 끊고 벌써 무덤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저 세상으로 가고 있으며, 나 또한 그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삶이 과거에 뿌리박고 있다면, 죽음은 미래에 뿌리박고 있다. 인간의 삶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역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죽음은 미래에서 현재를 향하는 순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순역順逆은 생명의 본성을 설명하는 시간의 물레방아와 같다.

순역원리順逆原理는 생명의 시간표인 우주 1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선천 봄과 여름은 역 운동의 시기이고, 후천 가을과 겨울은 순 운동이 작동하는 시기이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는 역에서 순으로, 양에서 음으로, 분열에서 통일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상극에서 상생으로자연질서의 틀 자체가 바뀐다. 역의 운동이 순의 운동으로 자리를 넘겨주는 사태가 바로 가을개벽인 것이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계절에는 생명의 존재방식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생물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통해서 시간의 질서를 깨닫는다. 분명히 사물의 씨앗은 태초의 과거에 있지만, 미래에서부터 진리의 빛이 비추어져 오는 원리에 의해 생명은 영속한다. 생명의 원초적인 근거는 하늘의 이치에서 비롯되었으나, 생명의 성숙은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순역론의 핵심이다.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은 생명 에너지의 전달 경로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자연질서의 원형이다. 12포태법인 생명의 원리가 바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는 시간의 질서이다. 그것은 주관적 억측이 아니라 자연의 객관적 법칙임을 뜻한다. 이처럼 12포태법의 프로그램[度數]에 시간의 질서가 디지털화되어 있는 것이다.

 

4. 생명 완성의 길- 3변성도三變成道

 

모든 생명체는 천지부모와 일월성신의 운행 덕분으로 태어나서 자라나고 늙는다. ‘이라는 글자가 형성된 배경을 살펴보면, 바뀔 은 날 아니 물의 조합어다. ‘에는 자연의 섭리, 즉 해와 달의 운행법칙에 역행逆行하지 말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해와 달은 자연계의 변화, 즉 시간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초적 동력인 까닭에 시간의 법칙에 거슬려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의 수수께끼는 가장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시간관은 진리관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시간관의 입장에서 진리관을 조명한다면, 과거적 진리관과 미래적 진리관과, 이 양자의 통합적 진리관이 있을 것이다.

과거적 진리관은 진리의 원형을 과거에 두는 경향이 짙다. 과거적 진리관이 과거적(직선적) 시간관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은 인과율을 최상의 원칙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인과율이 갖는 강점은 사고의 명료성에 있음은 다음의 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과율에 의하면, 왜군이 쏜 총알(원인)이 이순신의 가슴에 박혀 피를 흘리며 죽은 것이지(결과), 이순신이 죽은 다음에 총알이 날아와 심장에 박힐 수는 없다.

결과가 원인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은 인과율의 철칙이다. 아기를 낳은 다음에 임신할 수 없다는 말은 원인이 있어야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는 곧 시간의 모태는 과거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즉 할아버지가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이치와 같다. 인과론은 시간의 역전현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나 괘의 구성원리를 설명한 주역』「설괘전은 처음에서 끝으로[始終 = 直線]의 사유가 아니라, 끝과 시작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종시론終始論을 얘기한다. 종시론은 시공간이 처음으로 생겨난 이후 자연과 문명과 역사는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우주와 시간의 순환은 과거의 것이 마냥 되풀이한다는 단순 반복형의 논리가 아니다.

미래적 진리관은 미래적 시간관과 동일선상에 있다. 과거적(직선적) 시간관에서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은 일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뒤집어 생각할 수 있다. 미래는 끊임없이 현재를 혁신, ‘개벽시키고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는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미래적 시간관에서는 미래 현재 과거를 향하여 현재를 변혁시키면서 시간이 흘러간다고 상정한다. 이는 시간관의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적 시간관과 미래적 시간관의 통합형이 바로 증산도의 시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역도수와 순도수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역도수는 과거 현재 미래를 지향하며, 순도수는 미래 현재 과거를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형용한다. 역도수의 이면에는 순도수 있고, 순도수의 이면에는 역도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증산도의 시간관은 단순히 과거적 시간관 또는 미래적 시간관에서 말하는 일방향적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쌍방향적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자연적 시간관이다. 그것도 우주1년이라는 거대한 순환 속에서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른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는 3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한다는 거대한 담론이 동시에 구비된 개벽의 시간관이라 할 수 있다.

역도수와 순도수는 천지질서의 두 얼굴[: 수레바퀴]이다. 증산상제가 물샐틈없는 도수를 짠 내용이 바로 역도수와 순도수이다. 이를 가장 잘 밝혀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方位가 바뀐다고 이르나니, 내가 천지를 돌려 놓았음을 어찌 알리요. 나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이니라. 수화목금[四象]이 때를 기다려 생성되나니 물[]이 불[]에서 생성되는 까닭에 천하에 서로 극하는 이치가 없느니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여 물샐틈없이 도수를 정하였느니라.”

 

낙서洛書[逆度數]가 하도河圖[順度數]로 바뀌는 이치를 깨달으면 선천이 후천으로 전환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선천낙서의 상극질서(역도수), , 3, 4, 5, 6, 7, 8, 9의 순서로 진행된다. 후천하도의 상생질서(순도수)10, 9, 8, 7, 6, 5, 4, 3, , 의 순서로 진행된다. 역도수와 순도수는 공통적으로 물[]1, []2라는 수리 구조로 표상되어 있다. 역도수는 12[一水二火]이므로 선천의 분열성장을, 순도수는 21[二火一水]이므로 성숙과 완성을 지향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즉 역도수는 물이 불을 생하는 원리, 즉 만물이 커가는 이치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물이 불에서 생성되는 까닭에 하늘 아래 상극하는 이치가 없다는 말은 곧 불이 물을 낳는 순도수의 원리, 즉 만물이 성숙되는 이치를 설명한 내용이다. 그것은 역도수와 순도수에 담긴 선후천변화의 필연성과, 지금은 이미 순도수[河圖後天]의 시간대에 접어들었음을 밝힌 말이다.

하도낙서의 본질은 선후천변화에 있음을 김일부는 다음과 같이 확신한다. “하도와 낙서의 궁극적인 원리는 후천과 선천이요, 하늘과 땅의 도는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의 이치에 담겨 있다.” 정역사상은 하도낙서에 연역하여 하도낙서로 귀결되는 특징을 지닌다. 하도낙서는 선천과 후천이 바뀌는 이치를 해명하는 핵심이다. 이 대문을 지나기 위해서는 주역의 기제괘와 미제괘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전자는 63번 째, 후자는 64번 째에 있다. 이들은 수리적으로 각각 6+3=9, 6+4=10의 형식을 이룬다. 9는 낙서 선천을, 10은 하도 후천을 상징한다.

시간적으로 보아서 현재는 9수 낙서세계의 막바지에서 10수 하도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김일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하도낙서는 시간론으로 풀이해야 정역사상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 낙서는 1에서 9로 나아가는 형상인데, 5행에서 1은 수2는 화이므로 물이 불을 낳는 이치를 근간으로 삼아 성립되었다. 반면에 하도는 10에서 1로 나아가는 형상인데, 5행에서 2는 화1은 수이므로 불이 물을 낳은 이치를 근간으로 삼아 성립되었기 때문에 하도와 낙서는 공통적으로 수화운동에 의해 선후천이 전환되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즉 낙서는 수화水火의 체계인데 반해서 하도는 화수火水의 체계를 이룬다. 전자는 낙서선천의 역생도성逆生倒成의 이치, 후자는 하도후천의 도생역생倒生逆成의 이치인 것이다.

그래서 선천은 주역에서 말하는 수화기제괘水火旣濟卦()9수 세계, 후천은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10수 무극대도라 부르는 것이다. 수화운동이더라도 그 중심축이 극적으로 전환됨에 따라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을 3극론三極論에 대응하여 살피도록 하자. 역도수의 작동은 1태극에서 출발하여 2,3,4,5,6,7,8,9의 단계를 거쳐 10무극을 지향하며, 순도수의 작동은 10무극에서 출발하여 1태극을 지향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1태극은 시간의 태초성을, 10무극은 시간의 종말성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1태극에서 10무극으로의 전환은 증산도의 최고이념인 원시반본의 정신을 뜻한다. 거대한 우주1년 속에서 1태극에서 10무극으로의 전환은 후천의 탄생과 새로운 시간질서의 도래(1366일에서 365¼일로, 365¼일에서 360일로)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증산도의 시간관은 1태극(선천개벽)에서 10무극[無極大道, 後天仙境]을 향해 역도수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직선적 시간관이며, 10무극에서 다시 1태극을 향해 순도수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영원회귀의 순환적 시간관이다. 또한 양자가 항상 맞물려 움직인다는 점에서 순환론적 직선형의 시간관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상제의 조화권능에 의해 신도가 주입되어 시간질서가 전환된다는 점에서 종교적 시간관이라 하겠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주1안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선후천 전환의 우주관을 근거로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개벽의 시간관이라 할 수 있다. 후천개벽은 시간의 근본적인 전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증산도의 우주관은 시간론의 문제로 직결된다고 하겠다. 결국 시간의 본성, 우주변화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 우주1년의 핵심인 것이다.

시간의 근본적인 전환은 팔괘도의 변천에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3단계의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핵심이다. 증산상제는 선천에서 후천으로의 전환은 세 번의 굴곡을 넘어서 생명이 성숙된다고 알려주고 있다.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

삼천三遷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니라.”

삼변三變이라야 성국成局이니라.”

선천은 천지비天地否, 후천은 지천태地天泰니라. 선천에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않았으니 이는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에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드는 것이 옳으니라.”

 

시간의 질서가 세 번(원역 윤역 정역)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팔괘도의 변천 역시 세 번(복희괘 문왕괘 정역괘)의 변화를 겪는다. 김일부에 따르면 주역』「설괘전3장은 복희팔괘도, 5장은 문왕팔괘도, 6장은 정역팔괘도를 말한 것이다. 앞의 두 개는 공자가 말한 것을 소강절이 밝혔으나, 6장의 내용은 800년 동안 신비의 베일에 싸여 누구도 몰랐다. 이것이 제3의 새로운 괘도의 질서라는 것을 조선의 김일부가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이정호는 정역은 우주의 변화와 그에 응하는 인간의 개혁을 논하여 자연의 초자연적 변동에 대처할 인간의 초인간적 완성에 대한 담론을 체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복희팔괘도] [문왕팔괘도] [정역팔괘도]

 

정역은 단순한 주역의 해설서가 아니라, 과거의 수많은 이론을 종결짓는 이른바, ‘주역을 바로잡은 역또는 올바른 주역’, ‘바로잡힌 주역’, ‘주역의 본질적 완성을 의미하는 일종의 최종 결론서라는 성격을 갖는다.

정역팔괘도의 배열은 문왕팔괘도를 형식적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선후천 변화의 필연성을 밝힌 만물의 이론이다. 우주사와 시간사의 긴 여정은 세 번의 시간적 굴곡을 거친다는 것이 정역의 입장이다.

김일부는 괘도의 변천사가 곧 우주의 변천사와 동일원리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한다. 그는 문왕괘의 질서를 하나의 실패작으로 간주하여 배척한 것이 아니라, 정역괘의 완성을 위해 그 특징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주역에 대한 비판적 극복의 자세를 유지하였다.

정역팔괘도는 세상의 완성 형태를 묘사한 우주의 청사진(Blue Print)이다. 지금은 우주가 완성을 향해 진행되는 과정에 있음을 형상화시킨 것이 문왕팔괘도라면, 그것의 완성 모델이 바로 정역팔괘도인 것이다.

우주생명은 시간의 법칙에 따라 순환한다. 우주는 생명창조의 돌림노래를 부르면서 성숙과 완성으로 나아간다. 지금은 하늘과 땅의 숨결이 호흡조절하는 시기이다. 선천이 후천으로 뒤바뀌는 막바지 징검다리, 즉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우주는 일정한 시간대에 따라 가면을 벗고 후천이라는 얼굴로 변형한다. 1365¼일에서 일이라는 시간의 꼬리가 생기는 달력인 윤역閏曆에서 1360일의 정역正曆의 세상으로 바뀐다. 달력의 구조가 바뀐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지축이 정립되어 생활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겪어야만 하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엇을 위해 창조의 몸짓을 하는가? 우주는 언제 무엇을 위해 열리는가? 우주는 선천개벽(원시개벽) 때 열리고, 후천개벽 때 다시 새롭게 열린다. 선천개벽 때에는 만물을 성장시키기 위해 상극을 주도적 원리로 사용하고, 후천개벽 때에는 인간과 만물을 성숙시키기 위해 상생을 주도적 원리로 사용하여 자연과 문명과 인간을 완성시킨다.

 

인생을 위해 천지가 원시개벽하고, 인생을 위해 일월이 순환광명하고, 인생을 위해 음양이 생성되고, 인생을 위해 사시四時 질서가 조정調定되고, 인생을 위해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창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 성현이 탄생하느니라. 인생이 없으면 천지가 전혀 열매 맺지 못하나니 천지에서 사람과 만물을 고르게 내느니라.”

 

증산도 우주관의 기본골격은 우주 주재자인 상제가 어떻게 상극의 구천지를 상생의 신천지로 전환시켰는가를 밝힌 우주1의 도표 한 장에 녹아 있다. ‘우주1은 증산상제가 알음은 강절의 지식에 있나니 다 내 비결이니라”(도전, 2:32:1-2)고 인정했듯이, 우주와 시간 그리고 역사철학을 통합한 소강절의 원회운세설에 기초하고 있다. 원회운세설은 순환적 시간관을 근거로 정립되었다는 점에 우주1은 넓게는 동양의 시간관이라 할 수 있으며, 선후천의 입장에서는 개벽의 시간관이라 해도 무방하다.

 

 

. 선후천 전환의 핵심- 조화선경

 

1. 후천선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윤역에서 정역으로

 

시간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은 천체의 물리적 순환운동과 함께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 방향성의 결론이 바로 우주1이다. 우주1년은 선천과 후천으로 구성된다. “김일부金一夫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일부가 내 일 하나는 하였다.” 김일부는 선천과 후천으로 구성된 우주1년이라는 거대한 캘린더 속에 숨겨진 시간의 정보를 풀었다는 것이다.

서양 격언에 신은 낮과 밤을 만들었고,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만약 캘린더 없이는 약속이 뒤죽박죽될 것이 뻔하다. 캘린더는 미래의 행사계획을 입력해 놓은 년중 시간표이다. 이처럼 캘린더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인 것이다.

동양 최초의 체계적인 역법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성립한 사분력四分曆이다. 그 명칭은 1년의 날수에 365¼일을 채택한데서 유래하였다. 거기에 윤달을 끼어넣는 치윤법置閏法이 사용되었다. 19년 동안 7번 윤달을 삽입하는 이른바 메톤(meton) 주기법[197윤법閏法]’이 등장하였다. 이를 통해 캘린더[冊曆: 달력]와 계절의 어긋남이 조정되었던 것이다. 서양의 역사가 부활절을 계산한 캘린더 작성의 역사라는 말처럼, 인류문명은 캘린더 제작의 고뇌와 경험을 통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캘린더 구성법칙인 역법曆法과 캘린더 구성의 근거인 역리曆理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김일부는 캘린더 구성의 메카니즘에 대해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궁극적 해답을 내렸다. 캘린더의 두 얼굴인 정역正曆과 윤역閏曆의 구분이 그것이다. 그는 왜 음력과 양력의 차이가 생기는가(음양의 불균형)라는 물음의 밑바닥까지 훑어서 시간의 수수께끼를 파헤쳤다.

현실적으로 지구에 4계절이 생기는 까닭은 지축경사 때문이다. 지축이 기울어진 채로 지구가 태양을 안고 공전하는 궤도는 타원형이다. 지구의 공전주기는 365¼일이며,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대략 29.5일이다. 그것이 12번 반복하면 29.5 × 12 = 354일이다. 360일을 기준으로 태양력 365¼일과 태음력 354일을 비교하면 대략 전자는 플러스 6, 후자는 마이너스 6일쯤 된다. 태양력과 태음력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생기는 생활의 불편 때문에 모든 문화권에서는 태양력과 태음력을 혼용해 왔던 것이다.

김일부는 우주사의 발전과정은 캘린더 구성근거 자체의 변화에 의거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는 우주변화의 한 싸이클을 4개의 시간대로 구분하여 시간성의 내부구조를 밝히고, 후천에는 1360일의 도수가 정립됨은 논증하였던 것이다. 즉 원역原曆(김일부가 밝힌 375) 윤역閏曆(요임금이 밝힌 1366) 윤역閏曆(순임금이 밝힌 1365¼) 정역正曆(공자가 밝힌 1360)로 전개된다. 원역 375도는 우주14계절이 첫 출발하는 시공변화의 기점이며, 선천 시간개벽의 근원이 된다. 달리 표현하면 천지일월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동력원에 시간의 꼬리(6일 또는 )가 붙고 떨어지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전개된 것이 곧 캘린더의 역사이다.

 



 

김일부는 정역을 저술하여 새로운 역을 선포했다. 그것은 천지가 새로운 시간질서로 전환한다는 것을 밝힌 이론이다. 문자적으로 정역은 올바른 변화를 뜻한다. 정역이란 천지가 창조적 변화[造化]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을 밝힌 책이다. 김일부는 대역서大易序에서 정역의 주제는 달력과 성인과 역학으로 집약되며, 그것은 시간의 문제로 압축된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주역이 시간의 꼬리가 붙은 윤역閏曆을 말했다면, 정역은 시간의 꼬리가 떨어진 무윤역无閏曆(= 正曆)이라는 뜻이다. 정역연구자 이정호는 정역은 한마디로 후천역後天易이며, 미래역未來易이며, 3第三易이라고 말했다. 주역은 과거역이고 정역은 미래역이다. 김일부가 말하는 역은 캘린더 구성근거를 의미하기 때문에 과거의 주역은 물러나고 미래의 정역으로 전환한다는 뜻이다. 지나온 세상이 선천이며,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은 후천이다. 따라서 후천의 새로운 역의 원리, 곧 새로운 시간질서의 변화를 들여다본 것이 정역사상이라 할 수 있다.

정역은 미래의 후천에 사용될 캘린더다. 이는 윤역에서 정역으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간질서가 정립되는 초역사적인 사건을 뜻한다. 결국 새로운 시간의 차원에서 천지질서와 문명질서를 비롯하여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는 문제를 던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미년(1907) 12월에 정토칠봉淨土七峰 아래 와룡리臥龍里 문공신文公信의 집에 계시며 대공사를 행하시니라. 며칠 동안 진액주津液呪를 수련케 하시고 당요唐堯역상일월성신경수인시曆象日月星辰敬授人時를 해설하시며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아니면 빈 그림자라. 당요가 일월이 운행하는 법을 알아내어 온 누리의 백성들이 그 은덕을 입게 되었느니라.”

 

윤역에서 정역으로의 전환은 현실세계에서 천지의 시공질서의 개벽운동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천체의 궤도가 수정되어 일어나는 지축이동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정역 360일 세상은 음양이 조화된 정원궤도를 형성한다. 하지만 선천의 봄과 여름의 윤역[366일의 생, 365¼일의 장] 세상은 음양의 균형과 조화가 깨져 타원궤도로 운행한다. 지구의 타원궤도는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며, 이것은 천체의 정립과 경사의 반복운동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천체의 정립 혹은 경사 운동현상이 바로 천지개벽이다. 천지개벽은 시간의 질적인 변화로 완결된다. 천지개벽은 상씨름, 병겁, 지축정립의 세벌개벽으로 종결되는데, 특별히 지축정립은 삶의 터전인 시공간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혁명적 사태이다.

 

2. 정음정양의 후천선경

 

선천에는 하늘의 정사가 자에서 열렸으나, 후천에는 땅의 정사로 바뀌어 축에서 열린다. 그러니까 선천에서 시간의 모체였던 자궁子宮은 후천이 되면 새롭게 변화한다.후천은 축판이니라.” 이는 한마디로 선후천의 교체는 판의 변화[正陰正陽]로써 이루짐을 밝힌 것이다.

 

나는 판밖에서 일을 꾸미노라.”

내 일은 판밖에서 성도成道하느니라.”

동서남북에서 욱여들어 새 천지를 만들리니 혼백魂魄 동서남북이라. 이 일은 판밖에서 이루어져 들어오는 일인즉 그리 알라.”

 

선천판이 후천판으로 바뀌는 이유는 그 작동 방식(후천의 順度數와 선천의 逆度數])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천지개벽이란 이제까지의 시간과 공간의 운행질서, 즉 그 근본 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시간과 공간의 판 변화를 겪어야만 윤역이 정역으로 변화하고, 판의 변화는 구체적인 캘린더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축판丑板의 정립에 따른 묘월세수卯月歲首의 등장으로 나타난다. 이는 자연의 극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내 세상에는 묘월卯月로 세수를 삼으리라. 내가 천지간에 뜯어고치지 않은 것이 없으나 오직 역만은 이미 한 사람이 밝혀 놓았으니 그 역을 쓰리라.”묘월세수는 억지로 양력과 음력을 끼워 맞춘 인위적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 시간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서 일어나는 최종 결과인 것이다. 이는 중국의 하나라 때부터 비롯된 선천의 인월세수寅月歲首가 후천의 묘월세수卯月歲首로 바뀌는 원리를 가리킨다.

묘월세수라는 후천 축판丑板의 열림은 양력과 음력이 하나로 통일되는[正陰正陽] 것을 뜻한다. 이는 역법의 인위적 개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는 양력과 음력을 억지로 짜맞추는 일도 없어진다. 캘린더와 계절의 변화가 근원적으로 일치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자연의 변화와 역사의 진행은 모두 시간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역= 역사= 캘린더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러니까 캘린더의 극적인 전환은 사회와 역사와 문명의 잣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사상가들이 부르짖던 시간의 존재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사유의 폭을 뛰어넘는 후천개벽의 조화造化의 시간관이다. 또한 그것은 동양의 특유한 역법 개정의 변천사를 요약한 체계가 아니라, 해와 달의 운행이 정상화되는 이치를 밝혀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일깨우는 거대 담론인 것이다. 그 핵심은 시간의 질적 변화를 통해 천지가 성공한다는 후천개벽이다. 특히 시간의 꼬리인 윤역이 떨어져나가 정음정양의 세계가 도래하여 인간농사가 마무리된다는 후천개벽의 시간관인 것이다. 이는 동서양의 고전적 시간관에 종지부를 찍는 혁신적 시간관이 아닐 수 없다.

시간질서의 근본적 전환을 통해 나타나는 후천개벽의 특징은 무엇인가? 후천개벽은 지축정립의 자연개벽, 인류가 일구었던 역사의 근본 틀이 바뀌는 문명개벽, 참다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개벽을 통과하여 조화선경이 현실로 구현된다. 그것은 상생의 신천지, 새로운 환경의 신문명, 신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조화의 세상이다.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조화로써 다스려 말없이 가르치고 함이 없이 교화되며 내 도는 곧 상생이니 서로 극하는 이치와 죄악이 없는 세상이니라. 후천은 온갖 변화가 통일로 돌아가느니라. 후천은 사람과 신명이 하나가 되는 세상이니라. 모든 사람이 장생불사하며 자신의 삼생三生을 훤히 꿰뚫어 보고 제 분수를 스스로 지키게 되느니라.”

후천은 모든 갈등이 해소되어 각종 모순과 대립이 통일되고, 만물이 완성되어 인류의 희망이 지상에 실현되는 조화선경이다. 또한 신명과 인간이 합일하고, 과학과 종교와 정치의 통일이 이루어져 투쟁과 반목이 소멸되고, 인간의 영성이 극도로 밝아지는 영성문화가 활짝 열린다.

후천은 온갖 변화가 통일로 돌아간다는 말을 반대로 표현하면, 선천의 변화는 성장과 분열 위주의 상극세상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극이 상생으로 바뀌는 후천은 죄악이 소멸되기 때문에 만국이 상생하고 남녀가 상생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합하고 분수에 따라 자기의 도리에 충실하여 모든 덕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대인대인大仁大義의 세상으로 변한다. ‘만국이 상생한다는 것은 지구촌에 무극대도가 펼쳐져 새로운 통일 문명권이 세워진다는 것이며, ‘대인대의의 세상은 사회적으로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구현되는 세계를 뜻한다.

조화선경은 진리와 기술[道術]이 합일된 형태로 나타난다. 고도의 철학적 진리와 과학기술이 합일되어 물질문명의 극치를 넘어서는 도술문명道術文明이 탄생한다. “선천은 기계선경機械仙境이요 후천은 조화선경造化仙境이니라.” 후천에는 인간의 정신이 최고로 발달하고, 영성이 밝아져 신명과 의사소통하고 온갖 조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도술의 차원으로 다가온다.

 

선천에서 지금까지는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이요, 지금부터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이니라.”

 

금수대도술은 선천 성자들이 이끗과 본능에 매달려 사는 인간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으로 교화하는 가르침을 지적한 말이다. 반면에 지심대도술은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읽고 영혼을 꿰뚫어 세상사를 뜻대로 하는 도통문화의 극치를 가리킨다.

선천의 닫힌 우주에서는 마음 문이 닫혀 자기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온갖 갈등과 모순, 대립이 싹텄으며 급기야 원과 한을 낳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천에서는 마음의 문이 열려 인간이 온 우주와 교감하며 만물의 신성과 대화하는 고도의 영성문화가 열린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명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영적 커뮤니케이션 대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사지萬事知 문화.

이밖에도 지축정립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시공간으로 접어들면 인간의 생리구조 역시 큰 변화를 맞는다. 유전자를 비롯한 신체의 구조와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과 경계가 한없이 깊고 넓어진다. 더 나아가 수행을 통한 마음개벽과 비약적인 의학의 도움을 받아 몸개벽이 이루어져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류가 꿈꾸어 왔던 장생불사가 현실로 다가와 각종 질병과 노화로부터 해방되어 누구나 장수문화를 누린다.

3. 간방艮方에서 새문명이 싹트다

 

온 누리에 장수문화가 열리는 조화선경의 심장부는 어디인가? 이러한 물음은 지상선경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무엇인가라는 우주관을 비롯하여 세계의 중심은 어디이며, 지금의 세계정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욱여들고 있다는 시대인식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가정의 중심에는 아버지, 회사의 대표는 사장, 국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조직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촌 문명의 센터는 바로 간방艮方이며, 이 간방을 중심으로 조화선경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함축한다.

간방은 후천의 신비로운 건설과 시공간에 얽힌 수수께끼가 직결되어 있다. 우주의 창조 섭리인 간도수에 따라 동방 조선 땅에 강세한 증산상제는 장차 개벽의 땅 한반도를 구심점으로 삼아 신천지 새 역사의 운이 열리도록 하였다.

 

신축년 이후로부터는 세상 일을 내가 친히 맡았나니, 사절기四節氣는 수부에게 맡기고 24방위는 내가 맡으리라. 동서남북에서 욱여들어 새 천지를 만들리니 혼백魂魄 동서남북이라. 이 일은 판 밖에서 들어오는 일인즉 그리 알라.”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증산도에서 말하는 선후천론은 우주사와 시간사를 관통한다. 전자는 복희괘伏犧卦 문왕괘文王卦 정역괘正易卦로의 세 단계의 진화과정을 거쳐 우주가 완성되며, 후자는 원역原曆 윤역閏曆 정역正曆으로의 세 단계의 전환을 통해 1360일의 시간질서가 완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간방에서 끝맺는다[終於艮]’는 개념은 간방에서 끝맺고 다시 간방에서 시작한다[終於艮始於艮]’는 말의 준말이다. 이는 복희팔괘도의 건괘乾卦로부터 출발한 선천이 문왕팔괘도의 간괘艮卦에서 끝맺고, 곧이어 정역팔괘도의 간괘에서 새로운 천지가 열려 만물이 재창조되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선천의 동북방이 후천의 동방으로 바뀜은 지축정립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인류의 궁극적인 구원문제를 주역』「설괘전에서 결론지었다. 그는 유가의 이상인 대동사회가 간방에서 이루어지는 천도의 이법을 다음과 말했다.

 

간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다. 만물의 끝매듭을 이루는 것이요 새로운 시작을 이루는 까닭에 간방에서 하늘(하나님)의 말씀이 완수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물을 끝맺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간괘의 이치보다 성대한 것이 없다.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이미 만물을 이룬다.”

 

은 문왕괘에서는 동북방, 정역괘에서는 동방이다. 간방은 만물의 변화가 매듭지어지고 시작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그것은 하늘(하나님의 섭리 또는 상제님의 조화권능)의 말씀(logos)이 간방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간도수艮度數하는데, 다시 말하면 천지병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간방인 동북아 조선(한국)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간방에서 새롭게 열리는 신천지는 선천의 온갖 갈등과 부조화가 해소되어 인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조화선경, 지상선경의 세계이다.

증산상제는 서양의 초강대국 혹은 문명화된 국가를 제쳐두고 동북아의 조그마한 한반도에 강세했는가? 주역에 의하면 조선은 지구의 동북방에 해당하는 간방艮方이다. ‘은 시작과 결실을 의미하는 생명의 열매를 상징한다. 열매는 초목의 열매’, ‘인간의 성숙’, ‘문명의 완성을 포괄한다. 지정학상으로 볼 때, 한반도는 기존의 역사와 문명을 마감하고 새 시대와 새 문명을 여는 지구의 중심이다. “한반도는 지구의 핵, 중심자리다. 동방 조선땅에서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종결되고 가을철 새 역사가 출발한다. 선천 성자들의 모든 꿈과 소망이 한반도에서 성취된다. 이것이 바로 간도수의 결론이다.”

 

4. 후천선경의 주체는 누구인가

 

후천개벽으로 새롭게 열리는 조화선경의 세계는 인간역사를 통해 그 열매를 맺는다. 후천개벽은 자연질서의 대변혁만을 말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선천에서 인간은 최선의 노력으로 일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후천개벽은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필요로 한다. 증산상제는 이를 일러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고 하였다. 이는 개벽의 시간대에 들어선 지금, 인간이 개벽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비로소 후천개벽이 완수된다는 사명감을 일깨운 말이다.

선천의 인간은 존귀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선천은 상극이 지배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가을철은 더 이상 어떤 신이나 영험한 존재가 인생사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천지 안의 문제를 끌러내야 하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인 것이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인존의 문자적 의미는 인간이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우주의 봄은 인간이 하늘을 높이 받든 천존의 세상이며, 우주의 여름은 인간의 삶이 땅의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지존의 세상이라면, 우주의 가을개벽을 거치면서 펼쳐지는 후천에는 인간사의 모든 고민거리가 완전히 해결되는 인존시대이다. 따라서 인존의 궁극적 의미는 장차 천지가 꿈꾸는 이상을 지상에 건설하여 천지성공을 일구어내는 실질적인 주체라는 뜻이다.

 

인생을 위해 천지가 원시개벽하고, 인생을 위해 일월이 순환광명하고, 인생을 위해 음양이 생성하고, 인생을 위해 사시질서가 조정되고, 인생을 위해 만물이 화생하고, 창생을 제도하기 위해 성현이 탄생하느니라. 인생이 없으면 천지가 전혀 열매 맺지 못하니, 천지에서 사람과 만물을 고르게 내느니라.”

 

알찬 인간열매를 거두려고 말없이 돌아가고 있는 천지와 시간 흐름의 목적은 인간의 성숙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근거인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뿌리는 우주에 있고, 또한 인간은 하늘과 땅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천지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만이 가을 개벽기에 가장 보람 있는 큰일을 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다. 이 때는 자신의 생명과 세상을 구원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은 천지의 목적을 완결지어야 할 당위성과 인간역사를 매듭지어 조화선경의 문명을 여는 위대한 일꾼인 것이다. 일꾼은 천지의 뜻을 대신하는 천지의 대역자로서 하늘과 땅, 인간과 신명의 이상을 성취하는 역사의 주인이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나니, 그런 고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언일묵一言一黙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이는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인간의 자세를 일깨운 말이다. 후천선경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인간이 능동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우주가 새롭게 탄생하려는 몸짓이 후천개벽인 것처럼, 조화선경을 건설하는 인간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새롭게 탈바꿈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인간은 마음을 새롭게 바꾸는 일에 용감해야 한다. 심법개벽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천지의 마음을 내 마음의 모델로 삼아 천지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천하사를 맡은 일꾼은 천지의 마음을 본받아 후천선경을 건설하고자 하는 웅대한 기개를 갖추어야 한다.

일꾼의 일은 후천의 새 세상을 건설하는 천하사다. “천하사는 지금까지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온 봄여름 생장의 선천 우주를 문닫고 모든 인간의 생명과 영혼, 마음과 생각이 성숙되어 하나로 조화되는 대통일의 가을천지 문화권의 시간대를 맞아, 후천 오 만년 조화선경을 이 땅과 현실세계에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천하사를 책임진 일꾼은 성과 웅을 겸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꾼이야말로 성인의 지혜와 영웅의 기개를 갖추어 인류의 생사를 거머쥔 실질적인 천지의 대행자인 것이다.

인류의 생명을 건지는 천하사 일꾼은 상생의 정신으로 모든 생명을 살려내고자 힘쓰는 존재다. 그것이 바로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덕을 쌓는 일이 곧 일꾼의 덕목인 것이다.

지상선경은 인존의 세상이다. 선후천이 교체하는 지금, 천지는 인간이 성숙하여 열매 맺기를 원하고 있다. 가을개벽의 정신을 깨달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세계가 바로 후천선경이다. 천지는 인간이 되돌아갈 고향이지만, 인간이 없으면 천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꽃 중에서 인간 꽃이 제일이란 말이 있듯이, 인간은 천지의 위대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천개벽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개벽은 하등의 가치와 의미가 없다. 일꾼은 후천개벽의 의미를 찾아 실천하고, 후천의 선경세상을 건설하는 주체로서 개벽 실제상황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을 후천으로 인도하는 역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후천개벽은 우주의 소멸과 역사의 파멸로 이어지는 종말론이 아니다. 그것은 선천 5만년 동안의 인류문명사에 대한 총결론이다. 후천개벽은 인간역사를 통해 매듭지어진다.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天地無日月空殼, 日月無至人虛影]”는 증산상제의 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천지일월은 인류구원(사람농사)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람농사라는 목적이 없다면 천지일월은 아무런 존재이유가 없는 것이다.

 

에필로그

 

코페르니쿠스와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일종의 과학혁명이었다면, 김일부는 선후천 교체의 필연성을 논증하였고, 증산도사상은 종교와 철학과 문명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천지개벽을 선언했다. 19세기에 출현한 증산도의 조화관(선후천론)은 인류역사를 뒤바꿀 제3의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동서양의 수많은 성자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우주의 근본 틀이 바뀌어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후천개벽이 일어나는 근원적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선후천 교체의 실상이 바로 후천개벽이다. 19세기 조선에서 출현한 동학이 ‘12제국 괴질운수다시개벽을 외친 것은 선후천의 전환을 예고한 것이고, 정역사상이 말하는 천지일월의 역법이 바뀌어 윤달이 없어지고 새로운 시간질서가 세워진다는 것도 후천개벽이다. 참동학인 증산도는 무극대도의 주인[上帝]이 이 땅에 직접 강세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지상선경의 건설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후천개벽의 눈으로 자연과 문명과 인간의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후천개벽의 문화는 앞을 내다보는 문화다. 이제는 개벽문화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개벽문화는 하늘과 땅보다는 인간을, 선천보다는 후천을 앞세운다. 오늘의 문제는 선천에 있지 않고, 후천에 있다.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다. 상극에 있지 않고, 상생에 있다. 쓸데없이 꼬리가 붙은 윤역閏曆이라는 낡은 캘린더에 있지 않고, 새롭게 불끈 솟아오르는 정역正曆이라는 캘린더에 있다. 원한과 갈등에 있지 않고, 해원과 조화에 있다.

이는 선천을 문 닫고 새롭게 후천을 여는 천지개벽이 아니고는 펼쳐지지 않는다. 후천은 상생의 시대로서 성숙과 통일의 문명권이 들어선다. 선천시대에 걸쳐 극도로 분열되었던 여러 갈래의 종교와 사상과 문명 등이 모두 하나의 열매 진리로 통합되는 조화선경의 문화가 열린다. 여기에 선후천 개벽의 핵심이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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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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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易

皇極經世書

周易本義

東經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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