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환단고기
도전 술어
상머슴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에는 머슴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다. 수십 마지기의 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가내 사람들만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머슴’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머슴은 흔히 농가에 고용되어 그 집에서 살며 먹고 자거나 이웃에 거주하며 전적으로 그 집안의 농사일을 비롯한 온갖 일을 돌봐주었다.
‘머슴’은 한자에는 없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사전적으로 보면 농사짓는 집에서 새경·사경私耕을 받고 농사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을 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즉 머슴은 농가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사내, 농가에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이나 잡일을 해 주고, 흔히 벼 또는 쌀 등의 현물로 품삯을 연봉식으로 받는 사내를 가리킨다. 농사 주인집에 거주하며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던 농업 노동자가 바로 머슴이다.
머슴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머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에 머슴의 뜻을 갖는 한자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 예가 바로 ‘고공雇工’·‘고용雇傭’·‘용인傭人’·‘용傭’·‘용작傭作’ 등이다. 이러한 표기가 나오는 문헌으로는 고려 후기 학자 이곡李穀의 시·문을 모은 문집으로 1364년에 이색이 유고를 모아 20권으로 편집한 『가정집稼亭集』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고공雇工’은 머슴을 뜻한다. 조선 건국 이후 간행되었지만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오는 ‘고용雇傭’이나 ‘용傭’도 머슴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고려 후기의 문신 이규보의 시·전傳·설·서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용작傭作’도 머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세종실록』, 『성종실록』과 같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등은 물론이고, 각종 문헌 및 개인 문집 등에도 역시 ‘머슴’을 한자로 ‘고공(인)雇工(人)’·‘고용雇傭’·‘용인傭人’·‘용傭’·‘용작傭作’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로 보면 머슴은 주로 ‘고공雇工’·‘고용雇傭’·‘용인傭人’·‘용傭’·‘용작傭作’과 같은 한자어로 표기되었으며, 우리말로 머슴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머슴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비제도가 철폐되면서 노비들이 갈 곳이 없자 머슴살이를 하게 되면서 그들의 호칭도 머슴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머슴은 노동력이나 농사 경험에 따라 ‘상머슴’과 ‘중머슴’, 그리고 보조노동을 하는 ‘꼴담살이(꼴머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상머슴은 25∼43세의 농사 경험이 풍부한 장년층壯年層이다. 50세 전후의 중년층은 ‘중머슴’이다. 19세 미만의 어린 머슴은 ‘꼴담살이(꼴머슴)’, 55세 이상의 노년층을 ‘담사리’라 하였는데, 이들은 주인집에서 땔나무를 장만하거나 물을 긷는 일, 또는 꼴 베기, 애기 보기 등을 해주고 옷가지와 숙식을 제공받고, 나아가 약간의 품삯을 받기도 했다. 증산상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관계를 이러한 머슴과 관련지어 이렇게 말하였다. “일인日人은 일꾼이라. 나의 일을 하나니 큰 머슴이 될 것이니라. 그러나 일꾼이 주인의 집을 빼앗으려 하므로 마침내는 크게 패망할 것이니 일본 사람은 나한테 품삯도 못 받는 일꾼이니라. 일본은 깔담살이 머슴이요, 미국은 중머슴이요, 중국은 상머슴이니라. 깔담살이가 들어가면 중머슴이 나와서 일하고, 중머슴이 들어가면 상머슴이 나오리라.”(『도전』 5:22:6∼9)
이러한 여러 머슴 중 ‘상머슴’은 ‘더 뛰어난’·‘더 으뜸인’을 뜻하는 접두사 ‘상上’과 ‘머슴’이 결합된 용어로, 말 그대로 ‘으뜸가는 머슴’, ‘최고의 머슴’을 뜻한다. 이는 상제가 ‘상上’과 ‘제帝’가 합쳐진 말로, 우주를 통치하는 최고의·지고의 하느님을 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상거지, 상늙은이, 상팔자 등에서 ‘상’의 쓰임도 그 다른 예이다.
‘상머슴’은 최고 등급의 머슴으로 체격도 체격이지만 경륜 또한 지긋해서 한 해의 농사쯤은 훤하게 꿸 수 있는, 말하자면 농사일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 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상머슴은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써레질처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도맡아 했다. 상머슴만은 못하지만, 누가 봐도 손색없는 장골壯骨의 체격에 일을 잘하면 ‘중머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어린 머슴은 ‘꼴머슴’이었다. 결국 상머슴은 단순한 농업 노동자를 넘어, 농사일의 모든 과정에 정통하고 탁월한 노동 능력을 갖춘 최고 등급의 머슴, 농사일을 잘하는 장정 머슴을 말한다.
상머슴은 농번기에는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머슴밥’이라고 하는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루 5∼6차례 먹어가며 소와 같이 강도 높은 농사일을 하고, 농한기에는 퇴비堆肥와 연료를 채취하고 가마니 짜기 등을 한다. 그러자면 머슴은 무엇보다 젊어야 하고 힘을 잘 써야했다. 그리하여 젊고 힘을 잘 쓰고, 그리하여 일을 잘하고 일머리가 있는 머슴은 높이 평가되어 연말에 새경·품삯으로 많은 대가를 받았다. 그러한 최고의 일꾼이 바로 젊은 장정이다. 상머슴은 바로 논일이나 밭일과 같은 농사와 관련한 일을 물론이고 농가의 기타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젊은 장정 머슴이다.
머슴은 또한 고용 기간에 따라서는 ‘달머슴(月傭)’과 ‘반머슴(季節傭)’이라는 것도 있었고, ‘고지(雇只)머슴’이라 하여 일정한 토지나 가옥 및 식량을 대여 받고 일정 기간 노동하는 ‘머슴’도 있었다.
이러한 머슴은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약자, 갑을 관계에서 을의 존재였다 머슴은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주종적 관계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관계가 종신적이었다. 주인집·고용주의 가족들은 머슴을 하인下人처럼 여기고 반말을 하는 등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아가 고용주는 머슴의 가족들에게 조차 그러한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머슴’은 갑오개혁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토지 약탈과 인구 증가로 몰락 농민과 함께 그 수가 증가하였다. 8·15 해방 이후에도 머슴 제도는 존속되었고, 6·25 이후 더욱 증가했다. 1950년에는 남한에만 약 27만 명의 머슴이 있었으나, 이후 학교교육의 보급과 군복무 및 산업화로 인해 점차 사라져갔다.
이러한 머슴과 구별해야 하는 용어로 전통사회의 ‘노비奴婢’가 있다. 둘은 하는 일에 있어서는 비슷하였다. 그러나 머슴은 흔히 농사일과 여러 집안일을 주로 해주고 새경·임금을 받는 농업 노동자로, 그 지위는 신분이 아니라 특히 경제적 이유로 그런 처지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노비는 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신분제로 인해 다른 계급에 예속된 사람들로 신분적 한계가 분명하다. 즉 머슴은 고용주의 집에서 새경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언제든지 고용주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은 머슴이 주인과 형식상 민법적 고용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전통사회에서 노비는 그 귀속적 지위로부터 거의 해방될 수 없었다. 노비로 태어나면 사회이동이 거의 불가능하여 한번 노비이면 죽을 때까지 예속된 노비였으며, 그러므로 자신의 사적 경제권이라고는 없었다. 즉 노비는 사적 예속성이 강하다. 이러한 노비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많은 경우 머슴이 되었다.
머슴의 흔적은 1960년대에도 현저하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으로 1960년대 이후 머슴 노동력이 급속히 줄어들고 임시고臨時雇 성격의 날품노동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에 머슴은 거의 사라졌다. 제도가 사라지는 가운데 상머슴이라는 용어도 잊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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