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환단고기
도전 술어
진묵대사震黙大師
진묵대사(1562~1633)는 조선 중기 명종 17년 임술년壬戌年에 만경萬頃의 불거촌佛居村에서 태어나 인조 11년 계유년癸酉年 10월 28일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의 나옹懶翁대사와 더불어 석가모니 화신불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묵대사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중반의 굶주리고 헐벗은 조선 민중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무도 황폐해진 민중들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무애행無碍行을 자유자재로 실천하면서 유유히 떠도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았다. 진묵대사는 지혜의 깨달음을 통해 온갖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깨침의 자유를 얻고, 그 깨침의 자유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한없는 자비를 현실사회에서 몸소 실천으로 옮겼다.
진묵대사는 한국불교사에서 신비롭고도 기이한 일화와 행적을 남긴 특이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진묵대사는 단순히 불교의 승려로만 볼 수 없다. 진묵대사의 삶에는 불자와 유자와 도인의 모습이 중복되어 있다. 왜냐하면 진묵대사는 승려이되 승려 같지 않고, 유자이되 유자 같지 않으며, 도인이되 도인 같지 않은 절묘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진묵대사는 한국불교사에서 유불선 삼교회통의 경지를 지닌 인물이다. 첫째, 진묵대사는 타자구원보다는 자기구원에만 집착하는 소승불교를 비판하고 온갖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행을 행한 부처의 화신이었다. 둘째, 진묵대사는 일곱 살에 봉서사로 출가한 뒤에도 모친과 누이동생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과 동기간의 우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중시한 인물로 유자보다 더 유자다웠다. 셋째, 진묵대사는 대도의 경지에서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우주적 기개를 지녀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도술조화道術造化의 능력을 지닌 선인仙人이였다.
진묵대사는 명리를 초탈하여 삶을 한바탕 연극무대의 놀이마냥 아낌없이 즐기며 아무 것에도 속박을 받지 않은 대자유인이었다. 천 가지 만 가지로 온갖 구별과 차별을 일삼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감싸 안은 넉넉한 가슴과 여유를 보여준다.
하늘 이불 땅 자리 산 베개요,
달 촛불 구름 병풍 바다 술통이로다.
크게 취해 슬며시 일어나 더덩실 춤추다,
긴 소맷자락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하노라.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仍起舞,
却嫌長袖掛崑崙
진묵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진묵대사에게 천지는 한마당의 놀이판이다. 하늘을 이불로 덮고 땅을 자리로 깔며 산을 베개로 벤다. 달을 촛불로 밝히고 구름을 병풍으로 둘러치며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맘껏 술을 마신다. 한껏 술을 마신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크게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흔연히 일어나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이 자유자재하게 춤을 추다가 도리어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진묵대사는 너울너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신선의 참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선仙이란 본디 긴 소맷자락을 드날리며 춤추는 모습(선僊)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묵대사가 개인의 독자적 자유를 맘껏 향유하면서도 자신이 한 작은 행위 때문에 행여 그 어떤 것이라도 다치지나 않을까 세심하게 염려하고 배려하는 따사로운 마음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진묵대사는 뛰어난 도술조화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중기 고난과 슬픔으로 아롱진 눈물 많은 세상에서 오늘보다 더 나은 ‘문명조화文明造化의 삶’을 꿈꾸는 이들의 찬란한 등불이었다. 진묵대사의 문명조화의 이상은 증산도에서 아름다운 한 떨기 꽃으로 새롭게 피어나게 된다. 진묵대사는 증산도에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선천세상을 넘어서 기묘한 조화가 흘러넘치는 후천의 새 세상을 여는데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 인물로 부각된다.
그렇다면 진묵대사와 증산 상제님은 도대체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 것일까? 증산 상제님과 진묵대사는 미륵불과 화신불의 관계를 이룬다. 진묵대사는 민초들로부터 석가모니 화신불로 추앙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진묵대사 자신도 석가모니의 화신불임을 암시하였다. 증산 상제님은 우주생명의 통치자이자 주재자인 옥황상제로서 조화권능을 통해 우주생명을 개벽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상을 용화세계로 건설하려는 ‘미륵불’이자 ‘혁신불’이다.(『도전』 3:84:4)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몸소 내려온 ‘개벽장開闢長’(『도전』4:3:2)이다.
증산도에서 석가모니와 미륵불은 ‘좌불坐佛’과 ‘유불遊佛’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또 구릿골 한공숙韓公淑의 집에 계실 때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처소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遊佛이 되리라.’하시니라.”(『도전』 2:111:2)가 바로 그것이다. 후천의 미륵불은 선천의 석가불처럼 좌선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벽하고 생명을 구제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존재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애기부처를 조성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삭발하고 중이 되라. 불지양생佛之養生이니 불佛로써 깨치라.’ 하시고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집을 지켜라. 나는 선불仙佛이 되어 왕래를 임의로 하리라.’ 하시니라.’(『도전』 5:186:5~7)
‘유불遊佛’은 또한 ‘선불仙佛’의 개념과 동일하다. ‘선불’은 말 그대로‘신선 부처’라는 뜻으로 선도의 조화권능을 지닌 미륵불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신선부처’는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지니고서 온갖 창조적 변화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탁월한 권능을 지닌 ‘조화부처’로서 천지만물의 자연조화를 주재하는 조화주를 가리킨다.
진묵대사는 문명개화에 최선을 다한 ‘문명의 수호신’이자 ‘문명의 파수꾼’이었다. 그는 평생 동안 조화造化를 부리는 신통한 능력을 지니고서 온 천하를 크게 구제하고 문명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진묵대사의 원한 맺힌 죽음은 후천의 조화문명의 건설과 관련된다. 진묵대사는 평소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도전』 4:138:20)려는 숭고한 사명과 웅대한 포부를 갖고 있었다. 지방문화의 정수를 모아 문명의 교류와 통일을 촉진시킴으로써 문명을 개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진묵대사는 고루한 유자인 김봉곡에게 죽임을 당하여 그 원대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진묵대사는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도전』4:14:4~5)다. 죽어서도 그 사무치는 문명개화의 소망을 달랠 길 없던 진묵대사는 증산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동양의 문명에 달통한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다.
증산 상제님이 타의에 의해 불행하게 죽은 진묵대사의 사건을 부각시킨 것은 선천 상극시대의 원한의 문제와 조화문명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종교와 문명의 새로운 회통과 화해의 필요성을 우주사적 차원에서 역설하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증산 상제님은 진묵대사의 이승의 삶보다 저승의 삶을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묵대사는 마테오 리치(1552~1610)를 뒤이어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서양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천 조화문명을 여는 선봉장의 노력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진묵대사는 마테오 리치 신부와 더불어 조화문명 건설의 화신이자 수호신이다.
진묵대사의 사명은 증산도 사상과 관련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선천세계와는 다른 후천세계의 신천지와 신문명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석가모니의 화신으로서 미륵불을 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에다 새롭게 여는 지상낙원으로서의 ‘용화세계龍華世界’의 건설, 중생과 함께 하면서도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참 자유의 실현, 도술 조화로 이루어지는 후천 통일문명의 건립이다. 이런 맥락에서 증산 상제님은 후천의 새 세상을 건설하는 데 진묵대사의 소임이 너무도 막중하다고 한다.
증산 상제님은 스스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미륵불임을 강조한다. 미륵불이자 혁신불로서의 증산 상제님은, 석가모니를 대신해 진묵대사를 후천의 새 세상을 건설하는 후천 개벽의 지도자로 삼는다. 후천의 통일문화를 건립하기 위해 기획한 천지공사의 조화정부에 진묵대사를 불교의 종장으로 임명한다. 모든 생명이 제각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천지 안에 있는 온 생명들과 한 가족으로 조화調和를 이루며 살아가는 ‘천지일가天地一家’ 또는 ‘천하일가天下一家’를 열기 위해서다.
선도와 불도와 유도와 서도는 세계 각 족속의 문화의 근원이 되었나니 이제 최수운은 선도의 종장宗長이 되고 진묵은 불도의 종장이 되고 주회암은 유도의 종장이 되고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 이제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나의 도道는 사불비불似佛非佛이요 사선비선似仙非仙이요, 사유비유似儒非儒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도전』4:8:1~9)
동아시아의 유불선 삼도와 서양의 서도는 세계 각 족속들의 문화의 근원을 이루었다. 증산 상제님은 선천문화의 모든 정수를 하나로 모아서 새롭게 소통시키고자 한다. 선천 선도의 종장으로 있던 노자 대신에 최수운을 후천 선도의 종장으로, 선천 유도의 종장으로 있던 공자 대신에 주회암을 후천 유도의 종장으로, 선천 불도의 종장으로 있던 석가모니 대신에 진묵을 후천 불도의 종장으로, 이마두를 서도의 종장으로 삼았다. 그것은 증산 상제님이 선천 문화의 지역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여 후천의 새 통일문화를 열기 위한 것이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각 지역문화의 진액만을 끌어 모아서 통일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동서양 인류문명의 모든 법을 하나로 합하여 쓰는 ‘무극대도無極大道’(『도전』1:8:22)가 바로 그것이다.
진묵대사의 일차적 소임은 후천 개벽을 통해 온 생명을 한 가족으로 만드는 통일문화를 여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진묵대사의 소임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진묵대사의 또 다른 소임은 후천개벽의 통일문화의 진리를 담고 있는 『도전』 간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6월 24일에 이상호가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간행하니 7월에 고찬홍이 책을 가져다 태모님께 올리거늘 태모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담뱃대로 바닥에 놓인 책을 옆으로 획 밀쳐 버리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의아해하며 그 책을 집어다 한쪽 구석에 천으로 덮어 놓으니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운장雲長과 진묵震黙은 나의 보필이니 상제님과 나의 사략史略을 편찬할 사람은 진묵밖에 없느니라.(『도전』11:244:1~5)
태모 고수부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진묵대사의 ‘진묵’의 기운을 받아 새 우주문명의 설계도를 담고 있는 경전이 등장한다. 증산도의 『도전』이다. 증산도의 『도전』은 무극대도의 원전이라는 뜻으로, 무극대도의 주재자인 증산 상제님의 후천 세상의 소식을 담고 있다. 『도전』은 증산 상제님이 구현하고자 했던 무극대도에 입각해 선천의 상극세상을 넘어서 모든 생명이 새로 거듭나는 후천의 상생세상을 열어가는 개벽문화의 원천源泉이자 보고寶庫이다.
증산도에서 진묵대사의 사명은 후천세계의 조화문명을 건설하는 데 있다. 진묵대사는 석가모니의 화신불로서 미륵불 증산 상제님을 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위에 도술 조화로 꽃피는 후천 통일문명의 건립이다. 증산 상제님은 진묵대사의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공사’를 통해 진묵대사를 서양에서 조선으로 귀환시켜 진묵대사가 그렇게 소망했던 문명조화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후천 조화선경 건설의 주역으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진묵대사의 소임이 조화문명의 역사에 참여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조화문명의 실천적 프로그램을 담지하고 있는 인류문명의 새 나침반인 『도전』 발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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