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환단고기
도전 술어
세 살림 도수
세 살림 도수度數는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 종통대권을 전해 받은 태모 고수부님께서 보내신 삶의 역정을 가리킨다. ‘세 살림’은 세 개 혹은 세 번째까지 가는 살림살이, ‘도수’는 천도지수天度地數 또는 천지도수天地度數의 줄임말로서 하늘의 변화 정도程度가 땅에서 수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세 살림 도수’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당시 운세에 따라 살림살이를 세 번 옮겨 다닌다는 의미이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태모 고수부님께 음양합덕 이치에 따라 종통대권을 전하셨다. 이에 따라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 어천 후에 도문을 개창하여 상제님의 무극대도의 씨앗을 키우시고, 도운이 난법 시대를 지나 상제님 진리의 참 주인에게로 계승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으셨다.
세 살림 도수는 고수부님께 지워진 운명이자 섭리이다. 도운의 파종 역할을 맡은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께서 정하신 세 살림 도수에 따라 크게 세 차례 변화마디를 거치며 도운을 개척해 가신다.
이와 관련된 성구는 다음과 같다.
무신년 겨울에 대흥리에 계실 때 어느 날 수부님께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써서 붉은 주머니에 넣어 주시며 “잘 간직해두라. 내가 옥황상제니라.” 하시니라.
또 수부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오.” 하시니 수부님께서는 다만 상제님께서 어느 외처에 출입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아시니라. (『도전』 6:82:1~5)
또 상제님께서는 “삼천三遷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도전』 6:64:8),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도전』 5:356:4) 고 하셨다. 상제님께서 이렇게 표현을 바꾸어 거듭 말씀하신 것은 이 진리야말로 대경대법大經大法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주만사는 생生·장長·성成 세 박자의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어느 하나도 이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는 물론 태모 고수부님께서 보시는 천지공사도 삼변성도의 과정을 거쳐 전개된다. 고수부님의 도업道業 전개과정도 마찬가지다.
상제님께서는 무신년 어느 날 공사를 보시면서 “내가 애초에 이 세상에 내려올 적에 ‘내가 천지 일을 마치고 어느 때 돌아오리라.’ 하고 내려와 한 치의 빈틈 없이 공사를 행하고 있다.” 라고 하셨고, 또 기유년 어느 날에는 “ 내가 천지운로天地運路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라고 하셨다. 고수부님의 삶의 역정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께서 공사 보신 세 살림 도수에 따라 상제님 무극대도를 지구촌에 뿌리 내리시기 위해 22년 간 도장道場을 세 번 옮겨 다니시며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
첫째 살림은 정읍 대흥리에 개창하신 교단에서 7년간(1911년 9월~1918년 9월) 지속되었다. 신해년(1911) 9월 20일 성령의 감응 속에서 대도통을 하고 신권과 조화권을 획득한 태모 고수부님께서는 그해 10월 정읍 대흥리 차경석 성도의 집을 본소로 정하고 도장 개창을 선언하셨다. 이로써 태모 고수부님의 첫째 살림이 되는 대흥리 도장 시대가 열렸다. 이는 도운이 성립되고 포교 운동이 일어나 자리 잡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살림은 김제 백산면 조종리 교단에서 11년간(1918년 9월~1929년 9월)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대흥리 차경석의 교단 성금 유출사건으로 고수부님께서는 목포경찰서에 구속되시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세상 사람들은 이를 ‘무오년 옥화獄禍’라 하였다). 이 시기에 고수부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조종리로 본소를 옮긴 지 8년이 되는 병인(1926)년 고수부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천지가 다 알게 내치는 도수인 고로 천지공사를 시행하겠노라. 신도행정神道行政에 있어 하는 수 없다.”(『도전』 11:76:2)고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칠성공사, 도체공사, 숙구지공사, 남조선배공사 등 주요 공사가 이 살림에 행하여졌다. 기사년(1929) 9월 19일, 고수부님께서는 상제님 어진을 모시고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성촌인 정읍 왕심리旺尋里로 옮겨 가셨다. 왕심리 도장에서 고수부님께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대흥리 보천교 신도들을 건져주시는 일에 전념하셨다. 태모 고수부님의 둘째 살림 13년(왕심리 도장 3년간 포함)은 각 교파가 분열해가며 크게 성장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세 번째 살림은 신미년(1931) 동짓달에 태모 고수부님께서 보천교 간부였던 이상호의 간곡한 권유로 김제 용화동으로 살림을 옮기신 후부터 시작되었다. 상제님께서 일찍이 고수부님께서 “금구로 가면 몸이 부서진다.”(『도전』 6:67:9)고 경계한 공사를 보아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고수부님은 용화동에서 기두起頭하시는 3변 도운 지도자에게 종통전수를 위해 기꺼이 옮기신 것이었다.
용화동 세 번째 살림은 2년간(1931년 11월~1933년 11월) 지속되었다. 고수부님의 셋째 살림 기간은 짧았으나 추수도운의 발판을 마련해 주셨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시기에 고수부님께서는 천지에서 신도가 크게 내려 여러 차례 용봉龍鳳을 그려 깃대에 매달아 놓으시고 공사를 행하셨다. 용화동을 떠나기 얼마 전, 고수부님께서는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도전』 11:365:3) 한다고 다짐받으셨다. 용봉을 상징하는 인물에게 종통 도맥을 전하시는 공사였다. 계유년(1933) 동짓달 5일 고수부님께서는 세 살림의 파란곡절을 뒤로 하고 용화동을 떠나 선화하실 장소인 옥구 오성산 도장으로 옮겨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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