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키움

제57회 콜로키움(중원대 김철수 교수 초빙)

상생문화1 | 2017.08.17 05:05 | 조회 83

                                   

                                   ▲일본 도쿄의 카쿠슈인(學習院)대학
                                    우방문고 자료실에서 김철수 교수


우리 연구소에서는 7월 17일, 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를 펴낸 김철수 중원대 교수를 초빙하여 제57회 콜로키움을 가졌다.


                          
주제: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이번 콜로키움에서 김철수 교수는 최근에 펴낸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를 소개함과 동시에 대부분 국내자료에만 의존했던 보천교 연구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주로 식민권력에서 생산된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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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는 증산 강일순(1871∼1909) 사후 차경석(1880∼1936)이 조직한 교단이다. 차경석은 일제 감정기의 시작과 함께 종교 활동을 시작하여 1920년대 전반기에 자칭타칭 600만 명이라는 많은 신도를 확보하면서 보천교 교단을 세웠다. 그러나 종교단체가 주도했던 1919년 3·1독립운동을 경험한 식민권력은 인적자원과 자금이 풍부한 보천교를 좌시하지 않았다. 집요한 공작으로 보천교의 각종 종교 활동을 방해하고 민심을 이반시킴으로써 보천교 교단은 1925년 경 이후로 변화, 쇠퇴의 길을 걸었고 1936년에 교주 차경석이 사망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보천교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단편적인 연구논문들은 여러 편 발표되었지만 한 권의 책으로 된 체계적인 연구물이 1편 정도 보이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보천교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이강오 교수를 비롯하여 홍범초, 황선명, 안후상, 김재영, 김철수, 일본의 조경달 등에 의해 주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이다. 주로 한국내의 각종 역사적 문헌(신문자료, 공판자료, 교단 자료 등)과 증언 자료들을 통해 연구하여 보천교의 활동 내용과 일제의 탄압 그리고 민족독립운동에의 적극적 기여도 등을 밝혀냈다.
                                             ―김철수, 『잃어버린 역사 보천교』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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