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鳳凰(→용봉龍鳳)

2013.06.17 | 조회 4118

봉황鳳凰(→용봉龍鳳)

 


백제금동대향로

봉鳳

봉황鳳凰은 조류 360종의 수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신조神鳥다. 중국에 있어서 봉황은 용과 더불어 중화문명의 상징이다. 중국에는 현무, 주작, 기린, 백호 등 여러 성수聖獸가 존재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동물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용과 봉황이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라는 한 글자만으로 이 새를 나타내었으나 나중에 이 더해져서봉황이 되었다. 봉황의 고향은 중국의 동쪽 단혈산丹穴山이라는 곳이라 한다.

 

중국인은 일종의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홍색장미조紅色長尾鳥를 봉조라고 여기거나, 혹은 태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홍색 위주의 오채조五彩鳥를 봉조라고 여겼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머리의 앞쪽은 수컷의 기린, 뒤쪽은 사슴, 목은 뱀, 꽁지는 물고기로, 용과 같은 비늘이 있고, 등은 귀갑龜甲과 같으며, 턱은 제비, 부리는 닭과 같다.”고 쓰여 있다. 이 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새․짐승․물고기의 부분을 합친 모양의 봉황문은 유품遺品에는 보이지 않으나, 이 가운데 닭․뱀․용을 합치면 가장 일반적인 봉황의 모습이 될 것 같다.

 

봉조와 태양()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른바 단봉조양丹鳳朝陽이라고 한 것이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봉조는 왜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는가? 『예문류취藝文類聚』에는 닭은 적양積陽으로 남방의 상이다. 화양火陽은 물(物을 정하게 하여 불꽃이 솟는다. 그러므로 해가 뜨면 닭이 우니 유감類感으로써 그런 것이다.(해가 솟을 때 기뻐하여 같은 닮음을 보고 우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현중기玄中記』에는 동남쪽에 도도산桃都山이 있는데, 위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도도라고 부르며, 나뭇가지 사이가 삼천리나 뻗어 있다. 위에는 천계天鷄가 있어, 해가 처음 떠서 이 나무를 비추면 운다. 그러면 천하에 모든 닭이 일제히 따라 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태양과 닭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긴 것이다. 해가 뜨면 닭이 울거나, 혹은 닭이 울면 해가 뜨는 것으로 양자는 상호 인과 관계, 피차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유감類感의 발생을 초래하는 것이다.

 

대개 닭의 무리에 속하는 봉조는 원래 긴 꼬리 들 닭, 혹은 길들여진 집닭을 말한다. 해가 떠오르면 울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태양이 닭을 불러 깨우거나, 혹은 닭이 태양을 일깨웠다고 여겼으므로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가 된 것이다. 고대인들은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었으니, 태양은 바로 고대인들의 생활․생존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보배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고대인들은 태양과 닭류에 대해 숭배하기 시작했고, 양자가 복합된 토템을 탄생시킨 것이다. 옛사람들은 모두 불과 태양이 상통하며, 봉과 화, 즉 태양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봉은 불의 조화를 상징한다. 상고시대의 봉토템족은 역시 불을 숭배한 종족으로 불과 봉황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용은 물의 조화를 상징한다. 용은 비를 관장하며 가뭄과 장마를 주관하였으므로 고대 중국인들은 용을 우신雨神·수신水神으로 여겼다. 이렇게 용龍은 물의 조화를, 봉鳳은 불의 조화를 상징한다. 용과 봉이 결합하여 수화일체의 용봉문화를 이루게 된다.

 

봉토템과 동이족

태양을 숭배하는 동이족과 삼족오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 장사長沙 출토 마왕퇴馬王堆의 백화帛畵에는 양오陽烏(태양까마귀)가 보이고 달 속에는 두꺼비가 보인다. 그러나 이때의 태양까마귀는 모두 두발[二足] 까마귀였다.

 

고구려 유물에는 태양() 안에 세발까마귀를 넣은 그림이나 조각이 여러 점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파리 7호 무덤에서 나온 해뚫음무늬 금동장식품(日光透彫金銅裝飾品)’을 들 수 있다. 이는 왕의 장식품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 겹의 태양 동그라미 속에 황금빛 세발까마귀를 불타오르듯 절묘하게 넣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1974년 첫 발굴보고서가 나온 중국 요녕遼寧성 조양朝陽지구 원태자袁台子 벽화묘에도 세발까마귀 태양1점 그려져 있는데, 중국학자들은 선비족의 한 갈래인 모용선비慕容鮮卑의 무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고조선으로부터 나온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에 나타나는 일월 숭배사상에는 용봉문화의 오랜 자취가 남아 있다. 한민족의 일월숭배사상은 흔히 일월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와 두꺼비로 나타나며, 이들은 각기 봉황과 용으로 대치되기도 한다.

 

이렇게 봉토템은 동이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봉황이 동방군자의 나라에서 나왔다는 것도 동이족이 봉토템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예이다. 봉황은 동방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四海밖을 날아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서 자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봉황은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한유韓愈의 『송하견서送何堅序』에서는 내가 듣기로 새 중에 봉이라는 것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 라고 하였다.

 

삼족오는 유일하게 남은 태양() 3신神의 상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태양 3신에 대해서 박은식朴殷植은 고조선의 국교는 삼신교三神敎[神敎]라고 하면서, 3신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다. 고조선 사람들과 그 후예들에게 3신은 생명을 주고 가호하는 신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3신에게 제사하고 고하는 의식과 관습이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원시봉조인 삼족오가 태양 3신이며, 곧 환인 환웅 단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용과 더불어 중화민족의 상징인 봉황은 그 원시봉조는 삼족오三足烏, 또는 준오踆烏로 동이족의 신교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龍

중국에서 용은 원시시대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다. 용은 각종 수족水族(주로 양자악揚子鰐․뱀․거북 등)을 주체로 하며, 새와 짐승을 복합하여 토템으로 삼는 씨족 혹은 부족의 휘지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용이란 비늘달린 충虫의 우두머리이다. 능히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며, 혹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혹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는데 춘분에는 하늘을 날며, 추분에는 연못으로 들어간다.(, 鱗虫之長, 能幽能明, 能大能小, 能短能長, 春分而登天, 秋分而入淵.)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원시적인 용은 만악灣鰐·양자악揚子鰐, 즉 중화 타룡鼉龍이다. 상대商代 도상圖象에 나타난 용의 형상은 바로 만악灣鰐·양자악揚子鰐의 형상이다.

 

상대商代의 용자는 본래의 용과 무기 도구의 복합적인 형태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즉 용족의 족휘는 용 자체의 형상을 취한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복합성 족휘이며, 이로써 용숭배의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림易林』에 말하기를 황제가 용을 부리고 봉에 올라타니 동쪽으로 태산에 올라 남쪽으로 제와 노에 순유하니 나라 전체가 함께 기뻐했다.(駕龍乘鳳 東上太山 南遊齊魯 邦國咸喜.)”고 했다.

 

서량지徐亮之는 이 말은 용봉 이원적 연맹인 동이, 서하 연맹이 상서로움을 가져다 주어(龍鳳呈祥) 나라전체가 함께 즐거워했으며 후일 동이족과 화하족이 일체화되어 중국민족 구성에 있어 정통문화 탄생의 원시기초라 말하고 있다.(後來東西一體 夷夏一家 中國民族構成 正統文化誕生的原始基礎.)

중국 역사시기 이전의 황제시대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동서연맹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연맹의 주체는, 동방은 봉토템의 동이이고, 서방은 용토템의 서하西夏이다. 동이는 최고 토템을 장악한 봉조씨의 소호少皞를 대표로 하고, 서방은 최고 토템을 장악한 황룡씨의 황제를 대표로 한다.

 

이러한 연맹은 본질상 동이서하의 연맹으로 「용」「봉」一元의 연맹으로 결과적으로 「용봉정상龍鳳呈祥」이다. 후에 동서일체의 중국민족구성, 정통문화탄생의 원시기초이다.

 

신교문화의 핵심은 영원히 불멸하는 생명을 뜻하는 선仙에 있다. 그 불멸하는 생명선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용봉이다. 천지와 더불어 영원불멸하는 인간의 생명의 이상과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용봉은 신교 선문화의 음양의 두 축이기도 하다.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의 해解는 해(태양)와 통하여 태양숭배 종족의 유풍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개국 사화에서 태양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불덩이 형태가 아닌 알[]이나 일광日光 등으로 나타나며, 천자나 국조를 상징한다.

 

해모수 단군은 천제의 아들로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거를 타고 왔다. 머리에는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을 찼으며, 아침에는 인간 세상에서 살고 저녁에는 천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해모수 단군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고대 한민족 용봉문화의 뚜렷한 흔적이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의 거처가 다르다는 묘사는 하루 동안의 태양의 운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태모 고수부의 용봉도수공사

증산도 태모 고수부는 용봉을 그려 종통 도맥을 전하였다. 고수부는 용화동에 있을 때 천지에서 신도가 크게 내리매 여러 차례 용봉龍鳳을 그려 깃대에 매달아 놓고 공사를 행하더니 용화동을 떠나기 얼마 전에 다시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두시고 이상호에게 이르시기를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고, “용봉기를 꼭 꽂아 두라.” 하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道典 11:365:1-3)

 

이것이 바로 고수부가 천지도수로 행한 종통전수 도수, 즉 용봉도수이다. 용은 물의 조화를 상징한다. 봉은 불의 조화를 상징한다. 용봉은 수화일체水火一體의 인사법도로 종통이 전수되고 도운이 추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용은 봉과 함께 일체가 되어 종통전수 도수를 이룬다.

증산 상제의 용봉도수공사

증산 상제는 계묘癸卯(道紀 33, 1903)4월에 모악산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에 머무르시며 용봉 도수공사를 보았다.

 

상제님께서 11일 해 돋기 전에 공사를 마치시고 아침해가 솟아오를 때에 용봉龍鳳두 글자를 상하上下로 대응시켜 크게 쓰신 뒤에 그 왼편에 작은 글씨로독존석가불獨尊釋迦佛이라 써서 금곡에게 주시니 금곡이 상제님의 친필을 공손히 받아 먼저 깨끗한 종이로 싸고 다시 비단으로 고이 감아 보물처럼 보관해 두니라.”(道典 6:8:2-4)

 

용은 천지의 물의 조화 신성을, 봉은 불의 조화 신성을 상징하여 인사의 두 추수자가 수화일체로 용사하여 도성덕립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김선주]

 

 

 


참고문헌

徐亮之, 『中國史前史話』, 華正書局, 1979.

안경전, 『이것이 개벽이다』, 대원출판사, 1995.

왕대유, 『용봉문화원류』, 동문선, 1994.

고종원, 『용의 후손』, 생각하는 백성,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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