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祈雨祭

2016.02.23 | 조회 1499

기우제祈雨祭

 


정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할 때 나라나 민간에서 비가 오기를 기원하며 하늘에 행한 제의를 말한다. 기우제는 인간과 비를 오게 하는 궁극적 존재인 하늘, 지고신, 즉 우주 주재자 간의 의사소통의 한 풍습이다.

 

유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우제는 있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의하면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우스의 신목神木인 떡갈나무 가지에 물을 적시어 기도를 드렸고, 로마에서는 소형 신상神像을 티베르강江에 흘려보내면서 비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용龍이 비를 내린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용신龍神에게 토룡土龍을 바치는 기우제 풍습이 있었다. 지금도 중국 각지에는 이러한 풍습이 남아있다. 증산 상제는 “용이 물을 써 올려야 비가 내리는 것이여.”(도전 3:156:4)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가뭄으로 인한 기우제는 상고시대부터 있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은 환국-배달에서 이어지는 (고)조선시대에서도 기우제가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환웅이 천부인과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내려와 나라를 세울 때 풍백․우사․운사를 대동하였는데, 이 때 벌써 비를 담당하는 자가 있었다.

14세 단군 고불 6년 을유에 큰 가뭄이 들자 단군 고불이 몸소 삼신[帝]에게 비를 내려 곡식이 자라도록 때를 맞추어 구제해 달라고 빌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큰 비가 선 자리에서 수천 리에 내렸다. 45세 단군 여루 55년 기묘 여름에 큰 가뭄이 드니 죄 없이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가 염려하여 크게 사면령을 내리고 단군 여루가 몸소 기우제를 지냈다.

삼국시대에도 기우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에서는 가뭄이 들면 시조묘始祖廟와 명산대천에 비를 내려줄 것을 빌었다. 신라 진평왕 때는 여름에 큰 가뭄이 들자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가 내리기를 빌었다고 한다.

기우 의례는 고려시대에 들어 국가의 중요한 제천의례로 발전하면서 여러 왕들에 의해 시행되었다. 고려사 「세가」를 보면 고려시대에 행해진 기우 의례는 총 258회에 이른다. 유교식, 불교식, 도교식 등 다양한 형태로 행한 의례는 주로 기우祈雨를 목적으로 하였다. 기우제는 종묘宗廟·사직社稷·구월산九月山·신사神祠·북교北郊·남교南郊 등에서 행해졌는데, 가뭄이 심할 때는 왕이 직접 백관을 거느리고 나가 기우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저수지 등을 통해 농사에 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으나 그 효용성은 극히 낮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기우제가 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예로 태종은 18년 재위기간 중 기우제를 행하지 않았던 해가 한 해 뿐이었으며, 어떤 해에는 아홉 번이나 기우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용재총화에는 기우제에 관한 방법과 순서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사직과 흥인興仁․돈의敦義․숭례崇禮․숙정肅靖의 4대문, 동·서·남·북의 4교郊와 중앙인 종각 앞, 또는 모화관·경회루·춘당대春塘臺·선농단先農壇·한강변 등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기우제를 지내는 방식

민간에서 행해지는 기우제는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산이나 강, 내, 못 등에서 지내는 산천형 기우제이다. 민간에서 행해진 이 기우제는 산꼭대기나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돼지·닭·술·과실·떡·밥·포 등을 제물로 하여, 그 마을의 우두머리나 관리 또는 연장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마을 전체의 공동 행사로 치르는 제로, 흔히 천신이나 용신에게 기원한다.

전통적 기우제는 일제시대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몇 가지 풍습은 이렇다. 하나, 신성한 장소를 부정타게 하여 천신이나 산신, 용신, 수신의 노여움을 야기하고 그로 인해 천신이나 산신, 용신, 수신이 비를 내리게 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기우제를 지낼 곳에 불결한 짐승들의 피를 뿌리거나 사체를 던져 신의 노여움을 사게 하고 신의 노여움이 비를 내리게 한다는 이치에 따른 것이다. 둘, 밤에 여러 산에 올라가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동시에 불을 피우는 방식이다. 이는 하늘의 밑구멍을 뜨겁게 하면 하늘이 불을 끄기 위해 비를 내리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루어졌다. 셋, 비를 몰고 온다는 용신, 용왕님께 비를 비는 굿을 행하는 형식이다. 넷,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산에서 당산신에게 빌어 비가 오기를 기원한다. 다섯, 시장市場을 높은 곳으로 옮긴다. 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을 높이 옮겨야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것이다.

증산 상제는 기유년 어느 여름날 구릿골에서 공사를 행할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리라”며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찜을 하게 하고, 소주를 사서 사람들과 더불어 음복을 하였다.(도전 5:403 참조)

 

비를 내린 증산 상제

기우제는 이렇게 민간이나 나라에서 비를 내리는 궁극적 존재에 대한 기원을 통해 비를 내리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증산 상제는 공사를 통해 직접 비를 내렸다. 계묘년(1903)에 가뭄이 심하여 이종移種이 어려워 민심이 소란하자 비를 내리게 하여 모심기를 마치게 하였으며(도전 4:40 참조), 정미년(1907)에는 날이 가물어 벼가 뻘겋게 타들어 가 농민들이 근심하자 소나기가 퍼붓게 하여 순식간에 너른 들판에 물이 넘치게 하였다.(도전 9:119 참조) 무신년(1908)에 오랜 가뭄 끝에 논바닥이 타들어 가자 사람들이 하늘만 바라보며 속을 태우니, 참혹한 광경을 보고는 만수萬修를 불러 소나기를 내리게 하였다.(도전 3:227: 4:101 참조)

이러한 예에서 공통점은 상제가 그 스스로 비를 내리거나 우사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게 하였다는 것이다. 상제도 기우제를 지냈지만, 기우제에서처럼 비를 오게 하는 존재에 대한 기원이나 제사를 통해 비가 내린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상제가 사람들이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기원하던 바로 그 대상이었음을 말한다. 증산 상제는 천지조화를 뜻대로 쓰는 권능을 가진 우주만물의 주재자이다. 


참고문헌

이홍직 편저, 국사대사전, 학원출판공사, 1999.

김일권․윤이흠․최종성, 《고려시대의 종교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도전편찬위원회, 증산도 도전, 대원출판사, 2003.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민속대사전, 민중서관, 2002.

 [강영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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