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 선생이 실존인물임을 드러낸 100년전 문헌들

흑룡 | 2020.06.15 07:29 | 조회 236

계연수(桂延壽, ? ~ 1920년)는 한국의 종교인이며 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존 인물인지는 의심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설명)

지금도 위키피디아 등에는 환단고기의 편저자인 운초 계연수 선생이 실존인물이냐 아니냐부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연수 선생은 실존인물이며 환단고기의 편저자이며 역사광복운동과 무장항쟁을 펼치다가 피살당하신 독립운동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문헌을 통해서 이미 104년 전(1916년)의 행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더 이상 논란이 없는 실존인물임을 기록한 문헌이다. 

정신철학통편(1920년),단군교 기관지 『단탁』 창간호 (1921년 11월) 등 1920년 ,1921년 문헌에 계연수라는 인물의 행적이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그 기록을 통해 최소 1916년 이전 계연수 선생이 실존했고 천부경을 알고 있었다는 알 수 있다. 

먼저 정신철학통편을 보자 

출처 : 환단고기 북콘서트

정신철학통편(1920년) 본문 내용
『동국의 현인 선진(仙眞) 최치원이 말하기를, 단군의 천부경 81자는 신지의 전문(篆文)이다. 옛 비에서 발견되었다. 그 문자를 해독하고 삼가 백산에 새겨넣었다. 살피건대 최공은 당나라 진사 출신으로 삼한으로 돌아와 신선이 되었다. 

이 경문이 작년 정사년(1917년)에서야 비로소 한국 서쪽 영변 백산에서 나왔는데, 계연수라는 한 도인이 있어 약초를 캐러 백산에 들어갔다가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석벽에서 이 문자를 발견하고 베꼈다고 한다

나는 이미 정신철학통편을 편성하고 인쇄를 맡기려고 계획하였을 때 홀연 유학자 윤효정으로부터 천부경을 얻었는데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이한 일이었다.』

정신철학통편 속의 천부경과 저자 전병훈 선생

1911년 『환단고기』를 펴낸 계연수는 1916년 묘향산 석벽에 그려진 천부경 81자를 9월 9일 탁본하여 1917년 1월경 단군교 교당에 보냈다. 

이후 윤효정이 북경에 거주하던 구한말의 사상가 전병훈에게 전하고 전병훈은 「천부경주해」가 붙은 『정신철학통편』을 1920년에 발간한다.

윤효정은 계연수로부터 천부경을 받아 1918년 11월경 이를 유명한 도인 전병훈에게 전달한다 (사진  좌→우: 계연수,윤효정,전병훈)

정신철학통편의 내용을 담은  『우주의 정오』 (2016년 출간 ) 저자 김성환 군산대 교수는 "국내 철학계에서는 '근대화 시기 서양철학을 처음 접한 학자' 정도로 두세 차례 언급됐을 뿐 100년 가까이 관심 밖이었다."라며 기존 지식·이론의 권위에 기대는 데 익숙하고 지적 재창조 작업에는 인색한 학계의 관성적 연구도 한몫 했다. 

한국에 드문 '지적 재창조형' 사상가인 전병훈은 이런 관성에 의해 밀려났다. 게다가 한국 강단 철학이 시작된 경성제국대학에서는 국학 담론이 허용되지 않았고 이런 학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라며 대한민국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전병훈 선생을 등한시한 학계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단군교 기관지 『단탁』 창간호 (1921년 11월) 

단군교 기관지 『단탁』 창간호 (1921년 11월) 출처 : 코베이

단탁 창간호의 목차 부분, 계연수 기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계연수가 보내는 편지
제(계연수)가 일찍이 스승님(이기)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들었습니다. 

“동방에서 나라를 개창한 선조 단군은 신인이었다. 천부경과 도장 세 개를 가지시고 하늘로부터 세상에 내려오시어 덕화를 크게 행하신 것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천여 년이 되었다. 태고시대의 일인지라. 도장 세 개가 무슨 물건이며 무슨 보물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부경은 가르침을 베푼 경전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장소가 있으니 사람이 만약 얻어서 외우면 재앙이 길상으로 변하고 불량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니 오래도록 계속하여 도를 이루면 자손이 번창하고 수명과 부귀가 이어져서 반드시 신선이 될 것이오,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한 부를 간직하고 있으면 재앙을 면할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가슴 속에 새기고 그것을 찾아도 얻지 못하였더니 뒤에 본성을 닦는 수련 공부를 하고 약을 채취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구름처럼 명산을 유람한 지가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태백산에 들어가 발길이 닿는 대로 먼 곳까지 가서 인적이 이르지 않는 곳에 다다르니 개울가 석벽에 오래전에 새긴 글자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손으로 이끼를 제거하니 글자 획이 분명함에 과연 천부신경이었습니다. 두 눈이 갑자기 밝아짐에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공경스럽게 읽으니 하나는 단군 천조天祖의 보배스러운 경문을 기뻐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임을 기뻐한 것입니다. 

가슴이 터질듯 하여 실물을 얻음에, 비로소 스승님께서 허황된 말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백보마다 돌을 쌓아 길을 표시하고 돌아와 종이와 먹을 가지고 다시 산 속에 들어가니 전날 지나갔던 곳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리저리 찾으며 마음속으로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여 세 밤을 자고 나서 비로소 찾으니 때는 9월 9일이었습니다. 

겨우 한 부를 탁본하니 글자가 아주 모호하여 다시 한 부를 더 탁본하고자 하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이에 험한 길을 힘겹게 걸어 산사로 돌아와 밤새도록 해석하였으되, 요령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돌아 보건데, 젊어서 학식이 부족하였고, 늙어서는 총명함을 잃어버려 더이상 연구를 하지 않고 다만 입으로만 외울 뿐이었습니다.

마침 경성으로부터 어떤 사람이 와서 경성에 단군교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 몸소 가고자 하였으나, 발걸음이 어긋나고 떨어지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일만 끌다가 봄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도중에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을 만나 이에 탁본을 올리니 바라옵건데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중생들을 깨우치면 중생들이 반드시 복록을 받고 교운이 이로부터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귀교를 위하여 축하를 드리며 또 들으니 단군시대에 신지씨가 고문자로 새긴 것이 고려시대 까지 전래되었다고 하니 그것을 구해보아 만약 얻으면 다시 마땅히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하지만 얻으면 다행이고 얻지 못하면 보내주지 못할지라도 신용이 없다 하지 마시고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수도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정사년(1917년) 정월 초 십일 향산유객 계연수는 두 번 절합니다. 

혹자는 위의 기록들에 대해서 이런 가정을 내놓는다.

일제 강점기의 기록을 제외하면 계연수의 생애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오직 이유립의 말에 따를 뿐 기록을 통해서 검증된 적이 거의 없다.” (장신: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 역사와 현실, 2020.3)

만약(if)이라는 가정 자체가 잘못되었다가장 중요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일제 강점기 기록을 왜 제외해야하는가? 계연수의 존재가 문헌에 기록될 때 이유립은 나이 14살의 청소년이다. 환단고기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유립 선생이 개입하거나 조작한다는 가정은 모든 것을 원하는 결론에 맞추어놓고 추리하는 데서 빚어지는 철저한 왜곡과 음모일 뿐이다. (그렇기에 일제시대 기록은 제외하고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오래된 기록이 아닌가)  

계연수는 실존인물이다. 이것이 확실히 드러난 기록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문헌들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 문헌은 계연수 선생은 이미 천부경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다수의 「천부경」 연구자들은 계연수의 편지 내용을 정밀하게 제대로 보지 않았다. 천부경을 알고 있어야 천부경인지 알고 발견할 수 있다. ‘원래 「천부경」을 전혀 알지 못하던 운초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에서 고각을 처음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천부경」을 알게 되었다’고 오해하거나 왜곡한다.

스승(해학이기)을 통해서, 환단고기를 통해서 "그것이 아직도 전해져오는 곳이 있다"는 스승의 말을 믿고 찾았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암벽에 새겨진 희미한 최치원의 필적인 천부경을 계연수 선생은 이미 알고있었기에 단박에 이것이 천부경인것을 알았다.

<계연수기서>의 원문인 "상금유전처(尙今遺傳處 )"를 잘못해석한데서 오해가 비롯된다.  "아직도(상금尙今) 전해지는 곳(전처傳處)이 남아 있으니(유遺하니) 찾아보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여러 산을 전전하다가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글이다. 그런데 이를 "이제야 세상에 전하게 되니"라고 오역을 하면서 계연수선생을 그전에 없던 천부경을 묘향산에서 처음 발견한 사람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보아서 계연수 선생은 단순히 약초캐는 향산유객도 아니고 단순히 도인도 아니다. 이는 편지라는 형식이 자기 소개를 할때 자신을 한껏 낮추는 예를 표하는 경우에 해당할 뿐이다. 

즉, 1911년 환단고기 초간본에 천부경이 들어있고 이를 편저하여 30권을 발간한 역사에 조예가 깊은 운초 계연수 선생은 천부경을 당연히 알고 있었고 공부도 하고 연구도 했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추리다. 

내용상 중요한 것은 1916년에 이미 계연수 선생은 실존인물이고 천부경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5년 전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낸 기록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 초간본을 마치 없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도 계연수 선생을 허구의 인물,이유립 선생이 지어낸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하나하나 밝혀지는 내용들은 그 반대로 계연수 선생이 실존인물임에 힘이 실어지고 있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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