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6 하지장의 시

원정근 연구위원

2020.12.15 | 조회 100

6. 하지장賀知章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쓴 두 수(회향우서이수回鄕偶書二首)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쓴 두 수(회향우서이수回鄕偶書二首)이다. 이 시의 제목에서 는 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이 시를 지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러나왔다는 뜻도 들어 있다.

하지장(659-744)은 성당盛唐 때의 사람으로 자는 계진季眞이고, 호는 원래 석창石窓인데 말년에 사명광객四明狂客으로 바꾸었다. 월주越州 영흥永興, 즉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항주시杭州市 숙산구菽山區에서 태어났다. 이백李白, 이적지李適之 등과 함께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 불렸다. 695년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 비서감秘書監에 이르렀다. 천보 3(744)에 고향에 돌아와 도사道士가 되었다.   

 

어려서 집 떠나 늙어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 그대론데 살쩍은 세었네.

소꼽동무 보고도 몰라

손님은 어디서 왔소웃으면서 묻네.

소소리가노대회少小離家老大回.

향음난개빈모쇠鄕音無改鬢毛衰.

아동상견불상식兒童相見不相識.

소문객종하처래笑問客從何處來.

 

고향 떠난 지 오래 되어,

요즘 세상일 거지반 사라졌네.

오직 문 앞 경호의 물만이,

봄바람에 옛날 물결 그대로일세.

이별가향세월다離別家鄕歲月多,

근래인사반소마近來人事半銷磨.

유유문전경호수唯有門前鏡湖水,

춘풍불개구시파春風不改舊時波.

 

이 시는 하지장이 나이 86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5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느낀 감회를 읊은 시다. 평이하지만 정교한 시어를 사용하여 독특한 풍격을 보여주는 시다. 어려서 떠난 고향에 백발노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산천도 옛날 그대로이고 고향 사투리도 바뀌지 않았건만, 어려서 친하게 놀던 고향 동무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덧없는 세월이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렀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세상일은 상전벽해桑田碧海.

꿈속에 그리던 고향은 정겹기 그지없건만 막상 돌아와 보니 낯설기 짝이 없다. 어릴 적 함께 놀던 옛 동무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길손처럼 대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힌다. 예로부터 당시의 해설가들은 아동兒童을 그 당시의 아이들로 해석한다. 그러나 손종섭은 노래로 읽는 당시에서 고래의 당시 해설서들이 한결같이 아동지금의 아이들로 풀이하고 있음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아이들과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야 이르나마나거늘, 그런 군더더기에다 천금 같은 시어의 반을 허비할 시인이 어디 있겠으며, 또 그랬다면 그것이 시로서 무슨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두보는 음중팔선가에서 하지장은 말을 타면 마치 배를 탄 듯, 눈이 침침해져 우물에 빠져도 바닥에서 잔다네.”(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라고 한다. 하지장은 술을 마시면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몹시 취하기 때문에 말에 올라타도 마치 파도를 따라 일렁이는 배 위에 몸을 그대로 내맡긴 듯하였다. 설령 우물에 빠지더라도 배안에 있다고 착각하여 그대로 잠을 잘 정도로 술을 즐긴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백인들 하지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백은 하지장을 만나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하지장은 이백을 하늘에서 귀양온 신선(天上謫仙人)’이라고 일컬었다.

 

주인과는 알지 못하지만,

마주 앉은 건 정원 때문이지.

부질없이 술 살 걱정 마시게,

주머니 속에 돈 있으니.

주인불상식主人不相識,

우좌위림천偶坐爲林泉.

막만수고주莫謾愁沽酒,

낭중자유전囊中自有錢.

 

이 시의 제목은 제원씨별업題袁氏別業이다. 시인이 원 씨의 별장에 들렸다가 지은 시다. 시인이 일면식도 없는 원 씨의 별장을 우연히 불쑥 찾은 건 원 씨의 정원 풍경에 매료되어서다. 술 마시는 걸 너무도 좋아했던 시인은 주인에게 술 받아올 걱정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 주머니 속에 술을 살 돈쯤은 넉넉히 있다는 것이다.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소탈한 시인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하지장은 버드나무를 읊조리다(영류(詠柳)에서 이렇게 말한다.

 

푸른 옥으로 단장한 높다란 나무,

만 가닥 늘어진 모습 푸른 실타래 같네.

가느다란 잎 누가 잘라냈는지 모르지만,

이월 봄바람이 가위질한 모양이로세.

벽옥장성일수고碧玉妝成一樹高,

만조수하녹사조萬條垂下綠絲條.

부지세엽수재출不知細葉誰栽出,

이월춘풍사전도二月春風似剪刀.

 

이 시는 버드나무를 노래한 영물시詠物詩. 시인은 버드나무라는 한 글자도 덧붙이지 않았으나 버드나무를 절묘하게 노래하였다. 화가가 버드나무를 그리지 않고 그리듯이, 시인은 버드나무를 말하지 않고 말하는 교묘한 수법을 활용하였다. 봄날 시골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을 비범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가 막히게 쓴 시다. 이 시는 너무도 평범한 버드나무를 아주 평이한 언어를 가지고 기묘하게 노래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봄날의 한 그루 연녹색 버드나무와 잎은 모두 벽옥과 같다. 이 시에서는 벽옥을 이중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벽옥은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버드나무를 가리키며, 가까이서 보면 나뭇잎 하나하나를 가리킨다. 어느 한 나뭇잎의 벽옥은 다른 모든 나뭇잎의 벽옥을 비추고 그 나뭇잎의 벽옥은 동시에 다른 모든 나뭇잎의 벽옥에 비춰진다. 한 나뭇잎의 벽옥에 비춰진 영상이 다시 다른 모든 나뭇잎의 벽옥에 거듭 비춰지며 이러한 통일적 관계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 시의 시안은 이다. 가느다란 버드나무 잎을 과연 누가 잘라냈느냐는 것이다. 이월의 봄바람이 가위질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봄바람의 조화造化, 즉 자연의 조화造化로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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