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언어학 칼럼 1. 불어권 아프리카 이야기

홍미선 연구위원

2020.03.17 | 조회 660

[언어학 칼럼] 불어권 아프리카의 언어 이야기

 

홍미선(상생문화연구소 번역실 불어팀)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은 불어권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불어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대륙이다. 불어권 국가의 의미를 불어가 대다수 국민의 제1 언어(모어)이거나 제2 언어인 나라, 또는 불어가 국가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는 나라라고 넓게 본다면, 아프리카 대륙에는 약 30개의 불어권 국가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대륙이 50여 개의 나라로 나뉜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이다. 사실 이 30여 개국 중에는 카메룬이나 세이셸처럼 헌법이 불어와 영어를 동시에 공식어로 규정하는 예외적인 곳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에서 영어와 불어가 실질적으로 평등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카메룬에서는 불어 사용이 절대적으로 우세하고, 세이셸에서는 영어의 영향력이 불어보다 우세하기 때문에 카메룬은 불어권 국가, 세이셸은 영어권 국가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불어권의 의미를 조금 축소하여, 불어가 공식어로(또는 공식어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는 나라를 불어권 국가라고 한다면 아프리카 대륙에는 다음과 같이 총 21개의 불어권 국가가 있다.


   

이 중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적도기니, 그리고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17개 국가는 모두 프랑스의 옛 식민지이다. 적도기니는 스페인어와 함께 불어도 공식어로 지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스페인어권 국가이다. 국민 10명 중 8-9명이 (주로 제2언어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데 반해,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스페인어에 이어 1997년에 불어가 두 번째 공식어로 지정될 만큼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적도기니가 불어권인 가봉과 카메룬에 둘러싸인 아주 작은 국가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이셸의 경우, 먼저 50여 년(1756-1810)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다시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영국의 지배를 받고 1976년에야 독립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불어보다 영향력이 단연 우세하다.

 

따라서 위 21개 국가 중에서 사실상 스페인어권인 적도기니와 사실상 영어권인 세이셸을 제외한 나머지 19개 국가를 공식적이면서 실질적인 불어권 국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국가의 위상을 갖지 않아 위 목록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오늘날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남아 있는 레위니옹 섬(지도상 Reu)과 마요트 섬(지도상 May)도 불어권 아프리카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다. 아울러, 불어의 공식어 지정을 거부하지만 실질적으로 불어 사용 인구의 비중이 매우 큰 북아프리카의 4개 국가, 곧 알제리(지도상 Alg), 모로코(지도상 M), 튀니지(지도상 T), 모리타니(지도상 Mau)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국가들은 모두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수십 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불어는 프랑스 식민지배의 유물

 

가장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당했던 나라는 알제리였다. 1830년 프랑스의 침입과 함께 식민지가 된 알제리는 1954년부터 1962년까지 8년에 걸친 처절한 독립 전쟁 끝에 독립할 수 있었다. 무려 132년간이나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알제리인들에게 불어는 청산해야 할 과거의 잔재로 여겨지곤 한다. 알제리 정부가 불어를 공식어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불어를 축출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어는 실질적으로 링구아 프랑카 lingua franca’(공통어: 서로 다른 모어를 쓰는 화자들이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제3의 언어)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실제로 알제리는 세계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불어 사용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프랑스의 지배를 44년간 받은 모로코(1912-1956), 60년간 받은 모리타니(1900-1960), 75년간 받은 튀니지(1881-1956)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불어를 공식어로 규정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공교롭게도 이 두 그룹은 지리적으로도 분리가 된다. 불어의 공식어 지정을 거부하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는 북아프리카(아랍권)의 나라들이지만, 불어를 공식어로 선택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흑아프리카(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속한다. 이 두 그룹 중 흑아프리카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공식어인 불어와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아프리카어들이 공존하는 매우 복잡한 다중언어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중에서도 다중언어 상황이 특히 극심한 카메룬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만하다.

                              불어권 흑아프리카 도시 서점가

   

          

()아프리카의 축소판, 카메룬

 

카메룬의 헌법(1996.1.18.) 13항은 영어와 불어를 동등한 지위의 공식어로 삼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크게 영어권과 불어권으로 양분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카메룬은 공식적으로 영-불 이중언어주의를 표방하는 예외적인 국가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착어의 수도 약 250~300개로, 대륙 전체에서는 나이지리아(500여 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불어권 국가로는 가장 많다. 여기에 더해, 공식어인 두 유럽어와 토착민의 모어인 아프리카어들 간의 접촉은 다양한 혼종적 언어들을 탄생시켰다. 하나의 국토 안에 불어권과

영어권이 대립하는 동시에 수많은 토착어들과 아프리카-유럽 혼성어들이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는 카메룬은 아프리카의 언어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어 축소판 아프리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카메룬 지도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카메룬은 북서쪽으로는 나이지리아, 동쪽으로는 차드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쪽으로는 콩고, 가봉, 적도기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인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 유일의 스페인어권 국가인 적도기니를 제외한 모두가 불어권 국가들이다. 카메룬은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분할통치(1919-1960)에서 비롯된 영어권과 불어권의 경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카메룬의 영토는 10개의 주()로 나뉘는데, 위의 지도 상에서 붉게 표시된 북서주와 남서주만이 영어권이고, 녹색으로 표시한 나머지 8개 주는 모두 불어권 지역이다. 행정수도인 야운데 시와 경제수도인 두알라 시는 모두 불어권 지역에 위치해 있다.

 

 

카메룬의 예로 본 흑아프리카의 언어 상황

 

카메룬의 공식어는 유럽어인 영어와 불어뿐이다. 최소 250여 개로 파악되고 있는 토착어들 중 어느 것도 공식어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다. 카메룬의 토착어들은 그 수가 많은 만큼 종류도 다양해서, 하나의 어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니제르-코르도판 어족, 나일-사하라 어족, 아프로-아시아 어족에 나뉘어 분포한다. 여기에 더해, 유럽어들과 토착어들 간의 접촉으로 탄생한 여러 개의 혼성어들은 카메룬의 언어 모자이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영어와 토착어들 간의 접촉으로 생겨난 교통어인 피진 영어, 토착어·불어·영어의 3중 혼합으로 형성된 캄프랑글레camfranglais’, 토착어인 풀풀데어와 불어의 접촉으로 생겨난 프랑풀풀데franfulfuldé’ 등이 대표적인 카메룬의 혼성어들이다.

 

고유한 토착어들이 있음에도 카메룬이 옛 식민종주국들의 언어를 공식어로 채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종족 및 언어의 다양성과 국가적 교통어의 부재였다. 무수한 종족과 언어가 어느 하나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 채 혼재하는 복잡하고도 비균질적인 모자이크 사회에서 특정 종족의 언어에 공식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종족 간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독립 후 출범한 신생 카메룬 연방정부에게는 유럽의 언어인 불어와 영어를 공식어로 선택하는 것이 국민의 화합과 국가의 안정을 위한 중립적이고 타협적인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독립 당시 토착어들은 대부분 문자체계도 없는 음성언어였던 데 반해, 영어와 불어는 국제어의 위상을 지닌 언어가 아닌가. 이 두 유럽어는 선진 서구문명의 학술적, 기술적 개념을 전파하고 외교와 무역 등 국제적 교류를 증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카메룬에서도 불어와 영어는 여전히 행정, 교육, 법률, 외교,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이자 사회적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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