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유목민 이야기 55회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이 된 크림 한국

김현일 연구위원

2019.02.27 | 조회 59

유목민 이야기 55

 

오스만 투르크의 속국이 된 크림 한국

 

크림 한국이 오스만 투르크를 크림 반도에 끌어들인 것은 하지 기레이가 카파 정벌을 하기 위해서였다. 흑해 무역의 거점도시였던 카파는 제노아 인들이 제4차 십자군 원정 이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454년 하지 기레이의 카파 원정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475년 다시 오스만 투르크와 크림 한국의 합동원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스만 제국이 주도하여 원정이 성공하였다. 제노바 인들은 이 원정으로 카파를 빼앗기고 크림 반도에서 쫓겨났다. 당시 크림 칸은 기레이 칸의 아들인 멩글리 칸이었다. 그런데 이 멩글리 칸에게는 누르데블렛이라는 형이 있었다. 둘은 칸 자리를 놓고 싸웠는데 형은 금장한국, 아우는 오스만 제국의 후원을 받았다.

두 사람은 그 전에 각기 크림 한국의 일부를 차지하고 다스린 적도 있었고 형인 누르데블렛이 동생을 쫓아내고 혼자서 칸의 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참으로 못 말리는 형제였다. 그러한 굴곡을 겪다가 금장한국은 1476년 크림 반도에 군대를 보내 멩글리 칸을 내쫓고 누르데블렛을 칸의 자리에 다시 올려놓았다. 멩글리는 오스만 제국으로 도망쳤다. 얼마 있지 않아 크림 한국의 귀족들이 나서서 멩글리를 칸으로 다시 옹립하려고 오스만 술탄에게 청원하였다.

이 요청을 받아들여 1478년 오스만 술탄은 포로의 신세로 감옥에 갇혀 있던 멩글리를 다시 칸으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멩글리를 앞세워 군대를 보내 누르데블렛을 쫓아낸 것인데 당시 금장한국이 크림 한국의 감독을 위해 파견하였던 총독도 쫓겨났다. 멩글리 칸은 1514년 죽을 때까지 칸의 자리에 있으면서 크림 한국을 통치하였는데 금장한국도 크림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Crimean Tatars, p.14-15) 이 시기에 크림 한국은 멩글리 칸의 후원자인 오스만 제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속국, 제후국이라는 표현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림 한국이 주권을 잃어버리고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지는 않았다. 이는 같은 시기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와 유사한 주종관계였다. 조선도 엄연한 주권국가였지만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겼다.

크림 칸은 칭기즈칸의 후예인 기레이 가문 내에서 크림 한국의 귀족들에 의해 선출되고 오스만 술탄의 승인을 받아야 하였다. 크림 한국은 또 오스만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군대를 파견해야 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카파 정복 이후 크림 반도의 해안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오스만은 이 지방을 에얄레드 이 케페’(Eyalet-i Kefe)라 불렀는데 이 해외 영토의 중심지가 케페’(Kefe)였다. 케페는 카파를 투르크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18세기 말 크림 반도를 점령한 러시아인들은 이 도시를 페오도시야’(Feodosiya)라고 개명하였다. 신에게 바친 도시라는 뜻의 그리스 이름인 테오도시아’(Theodosia)를 러시아식으로 적은 것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산맥 너머의 크림 반도 내륙 지역은 크림 한국이 지배했는데 당시 크림 한국의 영토는 크림 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크림 반도로부터 지협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서면 다뉴브 강 북안의 트란실바니아로부터 카프카즈 산맥 밑의 쿠반 지역까지 펼쳐져 있는 스텝 지대가 나온다. 트란실바니아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영토이니 당시 크림 한국은 오늘날의 루마니아로부터 우크라이아 그리고 러시아 남부까지 펼쳐져 있었던 상당히 큰 나라였다.

크림 한국 내에서 칸은 절대군주와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칸은 타타르 귀족들에 의해 쿠릴타이 회의에서 선발되었으며 또 강력한 여러 술탄들이 존재하였다. 칸의 형제나 아들들, 씨족의 우두머리들이 술탄이라는 칭호로 불렸는데 그 가운데 칼가 술탄누렛딘 술탄은 크림 한국의 부왕과 같은 존재였다. 칸이 죽으면 이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다. 오스만의 술탄은 기껏해야 이 두 후보자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유목민 제국에서 흔히 보이는 삼분통치도 여기서도 확인되는데 칼가 술탄과 누렛딘 술탄은 별개의 궁정 뿐 아니라 자신의 통치영역과 병력도 갖고 있었다. 18세기 중엽 크림 한국 주재 프랑스 공사였던 드 토트(de Tott) 남작에 의하면 당시 칸에게는 10, 칼가 술탄은 6, 누렛딘 술탄에게는 4만의 병력이 할당되어 있었다고 한다. (Russian Annexation of Crimea 1772-1783, p.8)

크림 한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 사이의 관계를 잘 드러내주는 제도 가운데 하나가 볼모 제도였다. 오스만 술탄에 대한 칸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칸의 아들들을 오스만 제국으로 보냈던 것이다. 이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을 때 왕자들을 볼모로 보낸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크림 한국은 오스만의 속국이기는 했지만 독립적인 나라였다. 크림 칸은 러시아(모스크바 공국) 및 폴란드 등의 나라와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도장이 찍힌 주화를 발행하였다. 오스만 술탄의 도장이 아니라 칸의 직인이 찍힌 화폐를 발행하였다는 것은 크림 한국이 비록 오스만 제국을 종주국으로 받들기는 하였지만 독립된 주권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준다. 다른 말로 하자면 크림 한국의 종속이 완전한 종속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 칭기즈칸의 후예가 다스리는 크림 한국은 그 다수 주민이 투르크계인 타타르 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같은 이슬람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믿을 만한 동맹국이었다. 오스만이 발칸을 차지하고 있는 서방의 합스부르크 제국과 동쪽의 사파비 왕조 치하의 페르시아와의 군사적 대결에 전력하기 위해서는 북방의 이 동맹국은 비할 수 없이 귀중한 존재였다. 실제로 오스만의 원정에서 크림 한국의 전사들은 경기병으로 큰 활약을 하였다. 병력파견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 대가로 크림 한국의 칸에게 오스만 술탄이 지급하는 돈은 피셔에 의하면 크림 칸의 수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Crimean Tatars, p.15)

 

참고문헌

 

Alan Fisher, Russian Annexation of Crimea 1772-1783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Alan Fisher, Crimean Tatars (Hoover Institution Pres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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