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증산도 사상 제8회 | 원시반본: 근본으로 돌아가라

유철 연구위원

2017.09.13 | 조회 37

증산도의 근본사상 제8

    

 

원시반본: 근본으로 돌아가라

 

5. 인간생명의 근본과 원시반본 : 일심一心

 

우주 1년의 순환은 우주의 필연적 법칙이면서 생장염장의 과정으로 드러나는 우주 주재자의 무위이화의 현현顯現이다. 이 법칙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선천과 후천의 순환과정을 겪게 되며, 이와 함께 인간 구원의 필요조건으로서 상생의 이치가 우주의 근본원리가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구원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또 다른 필요조건으로서 구원을 향한 인간의 적극적 실천이 요구된다. 즉 우주 1년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환경적 변화를 통해서 그 가능성이 열려지는 이상세계를 현실적으로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한 인간적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구원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며 원시반본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증산의 "이제는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니라.(4:5:5)는 말은 인간의 실천적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여기서는 가을 개벽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인간의 실천원리가 무엇인가란 물음을 일심一心과 관련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1 ) 마음개벽과 천지일심

원시반본 하는 이 시점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원시반본 정신에 의하여 근본과 뿌리를 찾지 못하는 자들이 후천개벽이 일어날 때 다 죽는다면(7:17:1-4) 인간 생명의 살림은 원시반본을 떠나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 모든 생명의 살림을 도모하는 원시반본이 후천개벽기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 1년의 과정 속에서 후천개벽을 통한 새로운 천지 운행질서와 천지공사에서 보여지는 예정적 존재질서가 모든 인간의 구원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생명의 근원자리로의 회귀로서 원시반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간의 구원이 원시반본과 관련하여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다음의 도전구절은 후천개벽과 심적 실천의 상호연관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내가 천지운로(天地運路)를 뜯어 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치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 이제 9년 동안 보아 온 개벽공사의 확증을 천지에 질정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5:414:3-6)

위 구절은 후천개벽을 통한 선경의 가능성은 그 가능성에 대한 일심의 믿음으로써 확증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심은 원시반본의 또 하나의 의미이다.

후천의 선경을 현실적으로 이 땅, 이 시대에 이루기 위한 심적 상태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곧 후천개벽을 통해 가능해진 이상세계를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일치한다. 증산도에 있어서 구원은 크게 후천개벽이라는 타력적 요소와 심적 개벽을 통한 일심의 실현이라는 자력적 요소, 이 양자에 의해 가능하다. 앞의 물음과 관련되어 있는 이상세계의 조건은 인간 마음의 본래적 상태, 원시심原始心, 순수심純粹心, 본원심本原心을 회복하는 것이다. 현대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욕망구조나 과학적 물신주의는 선천의 상극이치 속에서 생겨난 비본질적 마음이며, 이는 무도無道의 근거이며, 원한의 씨앗이 된다. 즉 정신의 참된 본성을 벗어난 비본질적 마음은 인간의 역사를 원한의 역사, 욕망의 역사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원한의 역사를 해원하고 상생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며, 그 속에서 생명을 되살리고, 선경을 실현할 수 있는 구원의 마음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참된 삶을 찾을 수 있는 본래의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혹은 인간의 본성은 과연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 가는 상태의 연속인가?

선진유가先秦儒家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하고 있다. 공자의 인이나 맹자의 성선설性善說, 순자의 성악설性惡說 등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질다거나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로 인간의 모든 행위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환경에 따라 인간의 본성은 악하게도 혹은 선하게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규정으로서의 선이나 악은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행위로 드러날 경우에 그 행위가 규범에 일치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유가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은 곧 도덕적 본성의 측면에서 논의되는 것이며 이는 상대적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순수심, 혹은 원시심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나 개념으로 구분되기 이전의 근원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지는 마음은 상대적 가치를 갖는 도덕적 범주가 아니라, 절대적 의미를 갖는 자연적 본성, 구분되고 분화되기 이전의 순수한 심적 상태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래의 마음은 우주의 순환원리에 의한 변화와 삶의 가치의 다양화, 존재본질의 상실로 인해 절대적 본성을 상실하고 상대적 의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위기의 원인은 바로 여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위기의 원인이 분열된 마음에서 찾아진다면, 위기의 해결책은 분열된 마음의 통일에서 구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원시반본을 "무극의 통일 상태로 돌아감"이라고 해석할 때, 그 통일 상태는 생명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기 이전, 즉 주객이 분리되기 전 인간과 우주생명의 상대성을 초월한 절대자리이다. 그 중 인간 마음의 통일 상태는 바로 다양한 가치로 분화되기 이전의 마음상태, 절대적 가치로 존재하는 통일된 심적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경계가 사라진, 그래서 절대적 가치를 회복한 상태를 마음에 있어서 무극의 통일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시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상태인가. 도전에서 인용한 다음의 구절은 마음의 이러한 경지, 즉 원시심은 곧 천심天心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에 나아가나니 그런고로 천하의 이치를 잘 살펴서 일언일묵一言一黙이 정중하게 도에 합한 연후에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4:95:11-12)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心法으로 삼는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어야 함을, 그리고 그렇게 하여 천지의 이치와 마음씀(心法)이 일치하여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 때 인간의 본래 마음(원시심)은 사사로움이 없는 공평한 마음, 곧 천지심天地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근본자리로 되돌아 감(심적 원시반본)은 곧 천지의 이치와 일치함, 혹은 위 도전의 인용문처럼 우주의 사시四時, 즉 생장염장의 순환법칙에 대한 체득體得이며, 이는 바로 도의 근원에 합치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근본적으로 생명의 본 바탕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후천선경의 실현이라는 인간 구원의 구체적 모습은 마음의 근본자리로 돌아감, 즉 마음의 절대적 상태의 회복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 개벽, 즉 심적 원시반본의 방법적 측면은 초월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절대자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실천적인 인간의 마음 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후천선경의 인간적 조건이며, 생명의 근본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다음의 도전구절은 마음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으며, 그 마음자리는 인간의 현실적 노력의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시어일심始於一心하고 종어일심終於一心이니라. 천지 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느니라. 일심이 없으면 우주도 없느니라. 너희는 매사에 일심하라. 일심하면 안되는 일이 없느니라. 일심으로 믿는 자라야 새 생명을 얻으리라.(2:91:2-5)

이 구절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일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언뜻 관념론적觀念論的 세계관을 연상케 한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성을 주관主觀에서 찾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한다면 마음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존재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 된다. 이 구절의 본래의 의도는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심에서 천지가 비롯된다는 것은 마음이 천지의 존재근거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보다는, 천지의 이치, 우주의 원리는 마음에 의해 깨침으로서 그 진리성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즉 이 성구에서 매사에 일심하라의 의미는 일심을 갖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며 그 노력의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일심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개벽을 통해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임을, 그리고 천심이 일심一心임을 깨달음으로써 인간 본래의 마음자리, 원시심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 생명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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