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33회 러시아 연대기에 보이는 쿠만 족

김현일 연구위원

2017.07.18 | 조회 9392

유목민 이야기 33

 

러시아 연대기에 보이는 쿠만 족

 

쿠만(Cuman) 족은 페체네그 족의 뒤를 이어 11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초까지 흑해 북안과 남러시아 일대의 스텝 지역을 지배한 투르크계 유목민 집단이다. ‘쿠만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와 라틴 사료에서 사용된 명칭이고 러시아인들과 폴란드인들은 그들을 폴로비츠라고 불렀다. 폴로비츠의 어원에 대해서는 중세 슬라브어의 폴로비가 노랗다는 뜻이므로 폴로비츠가 노랑머리를 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쿠만이라는 말의 어원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헝가리인들은 쿠만족을 이라는 불렀는데 이는 쿠만과 같은 어원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Golden, p.277-278) 아랍인들과 페르시아 인들은 쿠만 족을 킵차크라고 불렀다. 주지하다시피 칭기스칸 사후 몽골 제국이 분열되면서 생겨난 나라 가운데 하나가 킵차크 한국’(Kipchak khanate)이다. 몽골 이전에 남러시아 일대를 장악한 쿠만 족의 이름을 따서 지은 나라 이름이다.

킵차크 인들은 돌궐의 일부로서 원래는 알타이 지역에 살았는데 돌궐 제국이 해체되면서 서진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오구즈 투르크를 압박하여 오구즈 인들로 하여금 남러시아 일대로 들어가 페체네그 인들을 밀어내게 만들었다. 이는 예전 훈족과 아바르족 등의 이동과 같은 아시아 유목민들의 연쇄적 서진의 물결 가운데 하나였다.

킵차크 인들의 대규모 이동은 중앙아시아 근처의 회교도들에 의해 포착되었다. 12세기 알 마르와지라는 회교도 학자의 책에 이러한 킵차크 즉 쿤 족의 이동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쿤 족은 원래는 중국 북변에 살았는데 키타이(거란) 족에 대한 두려움과 초지의 부족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Golden, p.279)

남러시아 일대에 쿠만 인들이 도착한 것은 11세기 중엽이었다. 키예프의 역사를 기록한 루스 초기연대기에 의하면 1061년 폴로비츠(쿠만) 인들이 이스칼이라는 이름의 두목의 지휘 하에 루스 땅을 공격하고 루스 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쿠만 인들은 곧 퇴각하였다. 아마 이 원정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원정이었을 것이다. 이후 쿠만 족의 침공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루스 초기연대기에는 이들의 침공에 맞서 싸운 키에프 인들의 이야기가 장황할 정도로 상세히 실려 있다. 당시 키예프 국가는 바이킹의 후예인 루릭 가문의 사람들이 키예프 대공 자리와 다른 주요 공령의 지배권을 하나씩 맡아서 통치하는 분할통치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장자상속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 자리를 계승하는 형제상속이 빈번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에 형제간 및 조카삼촌 사이의 투쟁이 자주 일어났다. 이러한 빈번한 상층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루스 인들은 쿠만 족에 대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때로는 일부 공들이 쿠만 족과 동맹을 맺고 그들을 권력투쟁에 끌어들였다.

체르니고프 공 올레그의 이야기는 당시 루스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그는 러시아 최초의 법전을 제정하였던 현자 야로슬라브의 손자이다. 야로슬라브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쟈슬라브와 스뱌토슬라브 2, 그리고 브세볼로드 세 명이 아들들이 차례로 키예프 대공을 역임하였다. 올레그는 스뱌토슬라브 2세의 아들이다. 그는 삼촌들에 의해 자기가 차지했던 블라디미르 공령을 빼앗기자 동생인 트무타라칸 공 로만에게로 도망갔다. 트무타라칸은 크림 반도에 위치한 도시로 예전에는 카자르 제국이 다스리던 요새도시다. 올레그는 사촌인 보리스와 함께 쿠만 족에게로 가서 그들과 동맹을 맺고 루스 땅으로 쳐들어가 삼촌 브세볼로드를 격파하고 체르니고프를 점령하였다. 체르니고프는 키예프 공령 다음으로 중요한 영지였는데 패배한 브세볼로드는 형인 키예프 대공 이쟈슬라브와 손을 잡고 이 못된 조카를 체르니고프로부터 쫓아내었다.(1078) 간신히 탈출한 올레그는 다시 트무타라칸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곳의 카자르 인들이 그를 붙잡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버렸다. 동생 로만은 카자르 인들에 의해 축출되었다. 비잔틴 황제에 의해 로도스 섬에 유배되었던 그는 몇 년 후 트무타라칸으로 돌아가 그곳의 통치자가 되었다. 아마 옛 동지였던 쿠만 족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1094년 올레그는 쿠만 족의 군대를 이끌고 체르니고프로 진격하였다. 그는 사촌인 블라디미르가 차지하고 있던 체르니고프, 자기 부친의 영지였던 그 체르니고프를 유목민 전사들의 힘을 빌려 탈환한 것이다. 그러니 올레그가 쿠만 족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는 쿠만 족의 약탈원정을 적극적으로 제지하려고 하지 않아 루스 초기연대기저자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하느님 그를 용서하소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에 의해 학살되고 포로로 잡혀 여러 곳으로 끌려갔나이다.” (The Russian Primary Chronicle p.180)

올레그는 또 쿠만 인들에 대한 공격에 참여하라는 사촌들의 요청에도 소극적으로 응하고 자기에게 볼모로 와 있던 쿠만 족 족장 이틀라의 아들을 죽이라는 요청도 거부하였다. 이러한 올레그의 태도 때문에 그와 사촌들과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다.

1096년에는 투고르칸(Tugorkhan) 휘하의 쿠만 족이 페레야슬라블을 공격하였는데 당시 쿠만 족의 공격을 퇴치하러 나선 것은 키예프 대공 스뱌토폴크(이쟈슬라브의 아들)와 페레야슬라블 공 블라디미르 2(브세볼로드의 아들)였다. 그런데 투고르칸은 스뱌토폴크의 장인이었다. 스뱌토폴크는 2년 전에 투고르칸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는 쿠만 족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한 정략결혼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장인과 사위의 관계도 루시와 쿠만 족의 싸움을 막지 못했다. 투고르칸은 페레야슬라블 전투에서 죽었는데 사위는 그의 시체를 키예프로 옮겨 장례를 치러주었다.

투고르칸은 앞에서 언급한 1091년 콘스탄티노플 근처의 레부니온 전투에서 페체네그 족을 격파하고 비잔틴 제국을 구해준 쿠만 족의 우두머리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와 함께 쿠만 군대를 지휘하던 또 한 사람인 보냐크(Bonyak)는 투고르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키예프로 쳐들어가 키예프를 파괴하였다. 쿠만 족 군대는 기독교로 개종하였던 블라디미르 공(블라디미르 1, 958-1015)이 세운 크립트 수도원을 약탈하고 성상들을 대거 파괴하였다.

루스 초기연대기는 이토록 빈번하게 루시를 침략한 쿠만 족의 출처에 대해 그들이 북동쪽에 있는 야트리브사막에서 왔다고 말한다. 이곳이 어딘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 카스피 해 근처의 사막 지역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토르크멘 족과 페체네그, 토르크, 폴로비츠가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고 우리의 연대기 저자는 말하기 때문이다.

루스 초기연대기저자가 수도사라서 그런지 이 연대기에는 성서의 이야기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 또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여러 유목민 종족의 조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카스피 해 지역 인근의 족속들은 모압의 후손이고 불가르족은 암몬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 두 딸과 교합하여 낳은 아들이라고 창세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19:36-38) 쿠만 족에 대해서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스마엘 자식들이라고 불렀는데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이스마엘에게는 12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토르크멘과 페체네그, 토르크, 폴로비츠가 모두 그 아들들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물론 근거가 의심스런 이야기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루스 초기연대기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이 성 미카엘 수도원의 원장 실베스터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대기는 블라디미르 2세가 키예프 대공으로 다스리던 1116년에 썼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2세는 흔히 역사책에는 블라디미르 모노마크로 나온다. 그 모친이 비잔틴 왕가인 모노마코스 가문의 아나스타샤 공주였는데 아마 그 모친의 가문이 명성이 높은 가문이라 그 성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S. Cross et O. Sherbowitz-Wetzor (tr.) The Russian Primary Chronicle : Laurentian Text.

P. Golden, ‘The peoples of the south Russian steppes’ in D. Sinor ed. The Cambridge History of Early Inner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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