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

◈증산도의 근본사상 제4회 원시반본原始返本 4

유철 연구위원

2017.06.15 | 조회 26

증산도의 근본사상 제4

원시반본原始返本 4

 

2) 우주론적 원시반본과 상제

 

후천개벽의 근본정신은 우주의 주재자가 우주자연의 새로운 운행질서를 마련함으로써 모든 존재들이 그 존재근원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준엄한 추살의 심판을 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 근본정신을 다르게 표현하여 원시반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우주론적 원시반본은 하추교역기에 우주의 질서가 정역운동을 하게 되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우주 주재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포함할 것이다.

도전의 여러 구절들에서 우리는 우주변화라는 것은 우주의 주재자에 의해 주어지는 필연적이면서 절대적인 원리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 절에서도 인용한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2:20:1) 라는 구절은 우주변화의 원리를 주재의 결과와 동일시하는 내용이며,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이르나니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어찌 알리요(4:152:1)라는 구절은 천지의 운행은 바로 주재자의 주재 권능의 표현임도 알 수 있다.

"이치가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이치니(4:111:13) 자연의 이법을 통해서 상제를 인식하고, 그 존재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후천개벽이라는 우주변화, 생장염장이라는 우주1년의 질서는 궁극적으로 우주의 절대적 주재자로서의 무극상제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자연의 원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가을전환기는 서신으로서의 우주 절대자의 필연적 역사 섭리를 실재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주관적 관념론자인 조지 버클리(G. Berkeley, 1685-1753)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대답을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다음의 결론을 위한 첫 단계이다. 그의 마지막 결론은 신은 존재한다.’이다. 그렇다면 버클리는 어떻게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그의 철학적 논증을 거울삼아 우주론적 원시반본을 통해 우주 주재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버클리에게 중요한 물음은 사물들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물음이 아니라 사물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 물음의 결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지각하지 않는 존재자들의 존재성을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버클리에게 있어서 한 송이의 장미는 우리의 감각사실(감각 자료 ; sense data)의 종합이외의 다름이 아니다. 즉 장미는 우리에게 감각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존재성을 감각된 것과 감각된 것의 종합, 즉 관념으로 한정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모든 사물들은 우리에게 감각된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세계는 감각된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지각하지 않는 사물들의 존재성이다. 즉 대전에 있는 나에게 서울의 63빌딩이나 백두산 천지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과연 어떻게 존재하는가?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인 버클리에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절대적 지각자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은 영원하며 절대적인 지각자로서 존재하며, 그러므로 내가 잠잘 때 사물들이 사라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신에 대한 믿음이 명백한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하나의 이유이다. 만약 우리가 물질적 사물들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상식적 견해를 가진다면 우리는 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될 것이다.

버클리에게 있어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는 사물들이 형이상학적 실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이다. 그 결과 버클리는 독단적 관념론자란 이름을 얻었지만 대신 신의 존재 확실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사물이 존재하므로 신이 존재한다는 추리가 아니라 오히려 신이 존재하므로 사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감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사물들은 바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클리의 결론은 현상론現象論이 유신론有神論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우주론적 원시반본에서 후천개벽이라는 개벽현상은 우주 통치자로서의 상제의 주재가 필연적 사실임을 수반한다. 앞 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주 일 년의 순환은 역학자들에 의해 자연의 섭리로 설명되었으며, 필자는 우주 주재자의 무위이화의 현현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버클리의 신존재 증명의 방식을 차용하여 우주 주재자로서 상제의 존재확인을 우주론적 원시반본의 의의라고 규정해볼 수 있다. 후천개벽을 통해서 우주 주재자가 있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의 절대적 주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후천개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후천개벽을 통해 우주가 새로운 존재상태, 정역운동을 하게 되는 것은 우주의 절대적 주재자가 존재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의 통치자를 알려 할 때는 그가 주재하는 우주의 법도, 즉 우주가 변화해 가는 원리를 캐보면 그 신비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론적 원시반본은 우주가 가을 개벽기를 맞이하여 본래의 존재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러한 우주의 변화를 통찰 이해함으로써 그 변화의 근거로서의 절대자의 존재를 확인함이다. 이는 도의 근원을 찾아감이며, 우주의 존재 근원을 드러냄이며, 상제문화로의 복귀이다.

 

3) 우주의 가을정신으로서의 원시반본

 

후천의 가을개벽에 있어서 원시반본 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주가 정역운동을 하게 된다는 환경의 변화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여름과 가을의 전환의 시기는 자연의 과정이면서 우주의 근본을 찾는 계기가 되지만 "천지의 대덕大德이라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어지느니라.”(8:62:3)라는 구절에서처럼 심판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즉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때는 생사판단을 하는 때(2:44:4-3)이다. 우주의 후천 가을개벽정신으로서의 원시반본은 모든 생명존재의 근본 뿌리를 찾는 생명회복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심판을 뜻하기도 한다.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가 되면 병세를 불러일으키게(7:38:3) 된다. 가을의 심판은 병겁으로 온다는 것이다. 우주의 가을정신은 생장염장이라는 우주의 변화과정에서 드러나는 추수의 정신이면서, 삶에 있어서 새로운 살림, 새 생명의 길을 드러내는 구원의 정신이다.

우주의 가을정신으로서의 원시반본은 지축이 서는 자연의 거대한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주의 전환기를 의미하며, 동시에 신도의 차원에서 내려지는 선천의 모든 악업과 죄악의 심판 및 이를 통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기운은 만물을 내어놓는 것()이고 여름기운은 만물을 호탕하게 길러내는 것()이요 가을기운은 조화의 신이며 겨울기운은 근본인 도이니라(6:124:9)라는 구절에서 가을기운은 신이라고 했다. 즉 가을의 변화는 신의 섭리가 숙살지기를 띠고 천지에 실현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신은 가을의 기운으로 우주를 섭리한다는 것이다. 우주론적 후천개벽은 신의 법도로 이루어지는 선천말세의 심판과 우주의 변화원리에서 드러나는 후천가을의 결실이념이 함께 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주의 가을에 천지와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즉 우주론적 원시반본이 내포하고 있는 가을정신은 무엇인가를 우리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이란 구절에서 더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는 천지성공시대라. 서신이 명을 맡아 만유를 지배하여 뭇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른바 개벽이라. 만물이 가을바람에 혹 말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혹 성숙하기도 함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어 그 수가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지라.”(4:21:1-7)

 

이 구절은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지만 대신 열매를 맺는 바와 같이 서신, 즉 가을의 신으로서의 우주 주재자가 하추교역의 후천개벽기에 천지의 생명열매를 추수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우주의 가을정신으로서의 원시반본은 필연적 과정 속에 내포된 수렴 통일이며, 그 과정을 주재하는 주재자(서신)의 씀(무위이화)이기도 하다.

우주의 가을도래는 우주가 순환적으로 운행되는 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우주의 섭리과정이다. 지구의 4계절이 1년의 필연적 과정인 것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우주론적 원시반본은 곧 지축의 정립을 통해 천지자연의 환경이 바뀌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분열성장한 만물의 모습을 수렴하고 통일하는 전환점을 통과하게 된다. 이 전환점은 심판의 전환점이면서 구원의 전환점이다. 그래서 천지가 성공하고 선천의 원과 한이 해소되는 이 시기를 증산은 원시반본 하는 시대라고 했던 것이다. 가을 심판의 이때에 모든 것이 근본을 되찾아야 하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주장한 것이다.

증산도에 의하면 묵은 하늘이 빚은 무도無道와 죄악은 우주변화의 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후천가을에 그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고, 이는 신의 준엄한 심판에 의해 의통과 구원의 갈림길을 맞이하게 된다. 후천의 병겁은 바로 죽음의 심판이면서 동시에 살림의 새 길이다.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땅위에 있는 모든 큰 겁재를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을 붙여 주리라(7:33:5-6)는 구절은 가을개벽기 신의 심판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는 바로 생사를 판단하는 때"(5:347:9)인 것이다. 천지성공시대에 신위神威를 떨쳐 불의를 숙청肅淸하며, 혹 인해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4:21:6)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병겁과 의통을 통한 증산도의 구원관이 갖는 사랑과 정의의 또 다른 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증산은 이러한 가을의 기운을 다음과 같이 시로써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증산이 어렸을 때 지은 시이다. "운수가 오면 무거운 돌도 산이 멀어도 관계없고 잘 깍은 방망이로 세상을 다듬질하니 고목된 가을이구나!”(8:44:3) 이는 가을 운수가 될 때 증산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교화하여 심판하니 죄와 악업은 낙엽이 지듯 정리되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후천개벽의 가을정신을 압축적으로 풀어낸 이 시에서 우주 1년의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우주의 변화와 그 변화의 정신을 통찰할 수 있다. 이때는 "우주 자연의 철바꿈의 대전환 시대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을의 정신을 이해하고 가을철에 인간의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천하의 대세를 알고 있는 자는 살 기운이 붙어 있고, 천하의 대세에 눈 못 뜨는 자에게는 천하의 죽을 기운밖에는 없을(5:347:12)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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