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칼럼(舊)

■유목민 이야기 13회 아틸라 이전 훈족 왕들

김현일 연구위원

2016.06.20 | 조회 10943

■유목민 이야기 13회

 

 아틸라 이전 훈족 왕들

 

훈 제국은 아틸라 왕 시대(434-453)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아틸라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은 적지 않다. 심지어 앞에서도 언급한 프리스쿠스처럼 그를 직접 대면한 사람의 기록도 있다. 그런데 그 이전의 훈족 왕들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이 남아 있을까? 여기서는 사료에 나타난 아틸라 이전의 왕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발람베르(Balamber) :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 나오는 왕으로 훈족이 370년대에 고트족을 공격하여 그 지배하에 넣었을 때의 왕이다. 동고트족의 비니타리우스가 훈족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자 발람베르는 세 차례의 싸움 끝에 비니타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 손녀 바다메르카와 결혼하였다. 이 때부터 고트족 전체가 훈족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요르다네스는 기록하고 있다. (249) 발람베르가 고트족 공주와 결혼하였다는 기록은 주목할 만하다. 후대의 아틸라 역시 일디코라는 게르만족 처녀와 혼인하였다. 훈족의 피가 게르만족 왕가의 피와 섞인 것이다. 지난번에 보았던 니벨룽겐 이야기에도 훈족의 에첼 왕이 부르군드족 공주 크림힐트와 부부로 나온다. 당시 지배적인 훈족 왕가와 피지배 게르만족 왕가 사이에 통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2) 바지크(Basich)와 쿠르시크(Kursich) : 프리스쿠스의 비잔틴사에 나오는 훈족의 지배자로 그리스 말로는 아르콘타스로 칭하고 있다. (279) 395-396년 아시아 대원정 때 훈족을 지휘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훈족의 부왕인지 아니면 최고 지배자였던지는 확실하지 않다.

 

3) 울딘(Uldin) : 5세기 말, 6세기 초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시무스의 새로운 역사와 비슷한 시기의 교회사가 소조멘의 교회사에 나온다. 다뉴브 강 이북에 자리잡고 있었던 그는 훈족 전체의 왕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4) 카라톤(Charaton) : 5세기 전반의 동로마의 역사가 올림피오도루스가 남긴 사서에 언급되어 있다. 올림피오도루스는 당대의 서로마 제국에 대한 기록을 22권의 책으로 기록하였는데 현재는 그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단편만이 전한다. 그는 문인으로서도 명성이 높아서 동서 로마 제국에서 외교사절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412년 훈족의 본영으로 가 훈족의 왕을 만났는데 카라톤이었다. 이 카라톤을 올림피오도루스는 왕들 가운데 첫째 왕” (ὁ των ρηγων πρωτος)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당시 훈족에 여러 왕들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5) 옥타르(Octar)와 루아(Rua) : 이 두 사람에 와서야 우리는 아틸라의 가문을 만나게 된다. 어떤 역사가는 옥타르와 루가가 울딘의 아들이었다고 주장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요르다네스의 게티카에는 아틸라의 계보에 대해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180) 아틸라의 부친은 문주크, 아버지의 형제들은 옥타르와 루아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아틸라의 아버지 문주크는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옥타르와 루아 두 형제가 훈 제국을 분할 통치하였는데 옥타르는 서방, 루아는 동방을 통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훈족과 부르군드족의 싸움을 서술한 교회사가 소크라테스의 기록에는 훈족의 왕을 웁타로스라고 기록하고 있다. (VII, 30) 웁타로스는 옥타르를 말한다. 당시 부르군드족은 라인 강 동쪽에 살고 있었다. 옥타르가 서쪽의 부르군드족을 상대한 것으로 보아 그를 서방 왕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 제국 북쪽 국경 너머에 자리잡고 있던 훈 제국은 서방의 왕이 서로마 제국을, 동방의 왕은 동로마 제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동서 분할 통치 방식은 유목민 제국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훈족의 경우 그 연원이 오래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멘헨-헬펜의 지적대로 우주론적, 종교적 이념에서 온 것일 수도 있지만 동서 로마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동서 분할통치 체제를 만든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좌우간 옥타르-루가 체제는 옥타르 왕의 돌연사로 붕괴된다. 교회사가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 과식해서 배가 터져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옥타르가 죽은 시기는 430년 전후이며 그의 사후 루아 (소크라테스는 루가스로 적고 있다) 왕이 훈족 전체를 다스린 것은 확실하다. 아에티우스가 판노니아로 가서 훈족 왕에게 도움을 청했던 432년 당시 그가 만난 훈족의 왕은 서방 왕인 옥타르가 아니라 동방 왕이었던 루아였다. 루아는 훈족 전체의 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루아 왕은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하면 로마 황제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한 탓에 벼락 맞아 죽었다고 한다. (VII, 43) 교회사가 다운 이야기지만 물론 그것을 사실대로 믿기는 어렵다.

 

6) 블레다(Bleda) : 루아 왕의 사후 그의 조카였던 블레다와 아틸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다시 두 명의 왕에 의한 분할통치로 돌아간 것이다. 블레다와 아틸라는 문주크의 아들들인데 이들이 다른 사촌 왕자들을 제치고 왕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런 사촌들이 없었는지의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요르다네스는 아틸라가 형인 블레다를 살해하고 훈 제국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블레다가 훈족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훈족의 왕제가 이중왕제’(double kingship)가 아니라 지역분할 통치제였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주는 기록이다. 블레다는 434년 아틸라와 함께 왕이 되어 445년 살해되었다.

블레다는 아틸라와 함께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두 번이나 침략을 하였는데 그 전쟁은 동로마 제국과 훈족의 관계를 드러내준 아주 중요한 전쟁이기 때문에 따로 서술하기로 한다.

 

참고서적

 

R. C. Blockley, The Fragmentary Classicising Historians of the Later Roman Empire, Eunapius, Olympiodorus, Priscus and Malchus. Text, Translation and Historiographical Notes, Francis Cairns, 1983.

 

Jordanes, Getica. English tr. by C. Mierow, The Gothic History of Jordan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15.

 

Socrates Scholasticus, Church History in From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2. Translated by A.C. Zenos. Edited by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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